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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강연회] “일본에서 배운 애매한 그림이 근대미술?” -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전준엽

화가라는 이름에는 얼마나 많은 의미와 느낌이 깃들어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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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지식 없어도 그림을 쉽게 읽을 수 있다. 저자는 기자를 오래 했고, 성곡미술관 설립 멤버이기도 했고, 성곡은 물론 리움 등에서 전시 기획도 오래 했지만 본질은 화가이다. 책 제목에서도 그렇게 밝히고 있고, 강연회에서도 강조하듯 말한 것은 화가로서의 전준엽이다.

평론가 말고 화가의 눈으로 그림 읽기

10월 13일. 북카페 살롱드팩토리에서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저자 강연회가 있었다. 누가 뭐래도 깊은 가을이어서 그림 이야기를 듣는 맛이 더욱 깊고 그윽했다. 저자는 기자를 오래 했고, 성곡미술관 설립 멤버이기도 했고, 성곡은 물론 리움 등에서 전시 기획도 오래 했지만 본질은 화가이다. 책 제목에서도 그렇게 밝히고 있고, 강연회에서도 강조하듯 말한 것은 화가로서의 전준엽이다.

화가라는 이름에는 얼마나 많은 의미와 느낌이 깃들어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내내 했다.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고흐, 십년 동안 화가였던 그는 화가가 아니었던 스물 몇 해를 화가라는 이름으로 덮어버린 이다. 『달과 6펜스』의 모델이 되었던 고갱…. 책 속에서 스트릭랜드는 화가가 되기 위해 영혼까지 팔아버린 이로 나온다. 화가는 어쩌면 선택이 아니라 숙명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인상주의는 누가 시작했지?


소슬한 바람이 가을임을 쉴 새 없이 소근거리는 저녁, 좀 일찍 도착했더니 이어서 저자가 도착했다. 시작 전의 썰렁함을 메우기 위해 슬쩍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옆에 앉아 몇 마디 나눴다. 저자는 쉽게 말을 터주는 사람이었다. 기자, 전시기획자의 이력 때문일까? 그러나 한 마디 한 마디는 문외한이 듣기에 그리 쉽지 않았다. 역시 화가이기 때문이겠지? 누군들 초면에 염화시중의 커뮤니케이션이 되랴.

짧은 이야기는 인상파의 특징과 조선 풍속화의 닮은 점에 대한 것으로 채워졌다. 소수를 위한 그림, 연출된 그림이 보통 사람들의 삶, 시민을 위한 그림으로 옮겨가는 과정, 삶의 모습의 포착 등을 인상주의의 특징이자 근대 미술의 특징이라고 하면 이미 조선시대 김홍도나 신윤복이 그것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수십 년 앞서서. 우리나라에서는 근대미술을 서양 기법을 흉내 낸 어설픈 화가들 몇몇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아하, 고개가 끄덕여졌다. 뭔가 할 말이 많으시겠구나 했다.

개인전을 위해 만들었던 팜플릿을 건네주어 들여다보니 그의 그림은 낯익은 듯 낯선 듯했다. 전통회화에 현대적인 맛이 가미된 느낌이라 할까. 한국적인데 그렇지 않기도 한 그런 느낌이었다. 따뜻하고도 쓸쓸한 정서. 나중에 강연회가 끝나고 독자 다섯 명을 추첨하여 직접 그린 소품을 나눠주었는데 어찌나 부럽던지… 나도 따뜻하면서 쓸쓸한 그런 그림 좋아하는데, 하는 부러움을 좀 가졌다. 11월에 전시회를 한다고 하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몇 년 새에 화가의 그림은 어떻게 달라졌으며 또 같은지를 살펴보고 싶었다. 문학의 작가들도 시대별로 조금씩 다른 내면, 표현방식을 보여주듯이 화가도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겹치고 반복되며 나아가는 미술사조


강연회는 책을 죽 훑어준 느낌… 말하자면 서양회화의 역사를 일괄해주고, 마지막으로 우리 그림에 대해서 정리해주는 그런 느낌이었다. 실제로 책이 그렇게 구성돼 있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책은 뒤표지에 명시해 놨듯이 정말 ‘미술 지식이 없어도 그림을 쉽게 읽는 즐거움을 주는 책’이다. ‘미술은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화가의 눈으로 보고, 화가의 마음으로 그림 읽는 법을 차근차근 가르쳐준다.’ 그저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설렁설렁 한 꼭지를 편하게 읽을 수 있는데, 꼭지 말미에는 조그맣게 그림을 다시 노출하여 핵심만 딱 요점 정리해주어서 살뜰하게 그림을 챙겨보는 기분이 들게 한다.

물론 저자가 말했듯이 생각보다 쉽기만 한 내용은 아니다. 되새겨보니 매우 전문적인 이야기들이 다 알알이 박혀 있는데, 그게 쉬운 말로 풀어져 있다. 그게 이 책의 최대의 장점이다. 한 마디로 글을 잘 썼다는 것. 쉽게, 단문으로… 내가 저널리스트의 경력을 지닌 저자들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도 그것.

그리하여 고대 그리스, 르네상스, 중세, 근대를 거쳐 현대 서양미술의 역사가 저자의 입을 통해 다시 정리되었다.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좀 아는 이야기, 미술이 두려워 관심을 갖지 못했던 사람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이야기. 역시나 인상적이었던 건, 인상주의와 추상주의에 대한 부분이었다.

필자가 이해한 바로는 이렇다. ‘서양 미술은 오랜 세월 스토리의 구현이라는 흐름을 따라 내려왔으나 인상주의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다른 길을 모색하게 되는데, 바로 이야기를 버리고 단어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초기의 인상주의는 빛의 파동이나 입자라는 원칙에 충실해 망막에 맺히는 순간적인 모습을 포착하는 데 충실했고, 이것이 시민사회의 삶의 모습을 단어 하나 하나를 적듯이 담는 흐름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다 후기 인상주의에서는 망막에 맺힌 상이 뇌에서 어떻게 인식되는지를 다루는 흐름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고흐가 대표적인 예다. 이처럼, 근대시민사회의 발전과 공업혁명이 맞물려 나타난 인상주의는 미술에서 일종의 혁명이었다.’

‘그런가하면 추상주의는 최소한의 의미를 지닌 단어조차도 버리고, 글자를 자음과 모음의 수준으로 낱낱이 분해해 그리는 것이다. 의미가 사라진 자리를 방법이 메운다. 어떤 방식으로, 어떤 재료를 사용하는가의 방법론적 회화가가 되는 것이다. 추상주의에 이르면 감상하는 그림은 사라지고 감동도 사라진다. 한낱 자음에서 무슨 감동을 느끼겠는가. 이러한 추상은 결국 말레비치가 빈 캔버스를 걸어놓은 것과 같은 절대주의로 치달으며, 출구가 없는 끝을 보는 듯하지만 마침내 돌파구가 생기는데, 바로 가시화할 수 없는 감정 등을 표현하는 추상표현주의가 그것이다. 저 유명한 잭슨 폴록이 이에 속한다.’

저자에 따르면 모든 미술 사조는 무 자르듯 하나가 끝나고 다른 하나가 시작하는 것은 아니며, 전 시대 사조의 대안적 사조나 강한 흐름이 부각될 뿐이라고 했다. 일견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자주 착각하고 잊고 산다. 그래서 ‘지금이 어느 때인데,’라는 말로 쉽게 그림을 폄하하기도 한다. 대중문화에서 소재를 채용하는 팝아트의 전성기가 이어지는 지금, 기법이나 표현이 파격적이지 않은 다른 미술이 좀 묻히는 느낌인 것도 연장선상에 있는 것일지.

배부르게 미술 공부한 뿌듯함


짧은 시간에 고대 그리스의 미술에서부터 머릿속에만 존재한다는 개념미술에 이르는 서양 회화의 역사, 거기에 더해 고려불화에서부터 조선 풍속화와 민화, 우리나라 근대미술에 이르는 방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느라 좀 쫓기는 듯한 느낌은 있었지만 배부르게 미술 공부를 한 뿌듯함이 뒤따랐던 강연이었다. 유교적 문인화에서 천시하던 색채의 과감한 채용으로 더 빛나는 신윤복에 대한 저자의 사랑이 인상적으로 다가왔고, 실제의 산수를 그리되, 이를 오감으로 이해하여 표현한 진경산수의 정선이 우리 근대미술의 시발점이라고 하는 저자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우리나라에는 근대미술관이 없다. 박물관에서 현대미술관으로 건너뛴 느낌이다. 그건 민화가 지닌 색채성, 현대적 조형어법 등을 무시해 버리고, 서양화가 들어오자 그 이전의 미술을 전통으로 치부해 버린 뒤 일본에서 몇몇 화가가 배워온 수준이 애매한 그림을 근대미술이라고 이름 붙인 데서 비롯된 것이다.”

저자는 책 말미에 이와 비슷한 약간의 분개를 드러내면서 우리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묶어 소개하고 있는데, 다음에는 우리 그림 이야기만 책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저자 자신의 그림이 흔히 말하는 한국화의 범주에 속하기도 하므로, 더 할 말이 많을 거라 싶었다.

감정을 쏟아내는 ‘표현주의’를 소개하면서, 병약했고, 어릴 때부터 죽음과 병에 대한 공포로 시달렸을 뿐 아니라, 서른두 살이 될 때까지 어머니, 누나, 아버지, 남동생의 죽음을 차례로 지켜봐야 했던 뭉크의 이야기는, 그러나 그가 그림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해서인지 80세를 누렸다는 대목에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강연은 대체로 진지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강연 후 독자 하나는 ‘그저 그림에 관한 편안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왔는데, 좀 어려웠다.’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재미있었다.

그림 감상의 마지막 조언은 대개 자신의 방식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인데, 전준엽 저자도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제 식으로 감상하고 즐기라는 말은 사실은 문외한에게는 여전히 숙제다. 그 유명한 말, 그림도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일종의 벽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알아야 한다는 건 그림 문외한에게 참 무서운 말이다. 차라리 보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그나마 위로가 될까. 결국 왕도가 있겠는가, 동어반복할 수밖에. 자꾸 보다 보면 보이고, 알고 싶고, 찾아보게 되는 것이라고. 일단 미술관에 한 번 발길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나 싶다. 그런 의미로 11월에는 전준엽 개인전 구경을 나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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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전준엽> 저13,500원(10% + 5%)

미술 지식이 없어도 그림을 쉽게 읽는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는 별다른 지식이 없이 그림을 쉽고, 맛있고, 재밌게 읽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전준엽은 민중미술을 하는 젊은 작가에서 그림을 이야기하는 미술기자로 한때는 전시를 기획하는 미술관 학예실장이었다가 지금은 올곧이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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