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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뒤에 숨은 사랑

‘흩어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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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진 이 말은 팔레스타인을 떠나 온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이르던 말이었다.

모어와 모국어가 일치하는 경우는 국가 내부의 언어 다수자들뿐이며 실제로 어느 나라에든지 모어와 모국어를 달리하는 언어 소수자가 존재한다. 그 존재를 무시하거나 망각하고, 아무런 의심 없이 모어와 모국어를 동일시하는 것도 단일민족국가 환상의 소행이라고 하겠다. 일반적으로 언어 소수자란 하나의 국가 내부에서, 그 나라의 다수자와는 다른 모어를 가진 사람들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영국의 웨일스인, 스페인의 바스크인, 중국의 위구르인 등이 그들이다.

- 서경식 『디아스포라 기행』


디아스포라.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진 이 말은 팔레스타인을 떠나 온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이르던 말이었다. 그러나 이제 ‘디아스포라’는 고국을 떠나는 사람들을 의미하게 되었다. 내가 처음 디아스포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누군가의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았거나, 텔레비전 시사프로그램에 나오는 농촌의 다문화 가정의 확산과 관련된 뉴스 때문이 아니라 내가 살던 동네에서 본 어떤 사소한 풍경 때문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카페에 나가 글을 쓰던 즈음, 나는 자작나무가 서있는 한 골목에서 이제 막 대 여섯 살밖에 되 보이지 않는 아이의 손을 잡고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던 한 필리핀 보모를 보게 되었다. 한 손에는 편의점 마크가 찍힌 비닐봉지 하나가 들려 있었고 한쪽 어깨에는 아이의 노란색 유치원 가방이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그녀는 억양이 분명한 필리핀식 영어를 썼는데, 가끔 아이의 눈을 다정히 바라보며 ‘선생님’ ‘맘마’ 같은 한국말을 곧잘 내뱉기도 했다. 나는 아침이면 버스를 기다리는 그녀와 종종 마주쳤고 그녀의 이름이 ‘마리아’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곧 곱슬머리 사내아이의 짙은 개암나무색깔의 눈동자가 그 아이의 독일인 아버지의 유전자 때문이라는 것과 아이의 엄마가 ‘루프트 한자’에 다니는 한국인 스튜어디스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집은 독일인과 한국인 필리핀인이 사는 다문화 가정이었고, 그것은 한국에서 보기 드문 특별한 형태였다.

‘마리아’라는 이름을 떠올릴 때면 나는 늘 ‘사운드 오브 뮤직’의 마리아가 떠오른다. 어느새 머릿속에 알프스의 따사로운 햇볕과 신선한 바람이 깃든다. ‘메리’가 아닌 ‘마리아’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여자의 상냥한 미소가 꽤나 미더워진다. 잠시 밴쿠버에 머물 때, 나의 하숙집 아줌마 이름도 ‘마리아’였다. (그녀는 올드델리에서 태어난 인도인이었다) 나는 그녀가 부엌에 서서 산더미 같은 감자를 깎던 날의 햇살을 기억하고 있다. 또 그녀가 해주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인도식 카레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뜨거운 홍차에 우유를 부어주던 눈길을,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끝끝내 고치지 못한 나의 v와 b 발음을 교정해주던 마리아의 손길을.

나의 이 대책없는 낭만주의 때문인지 마리아란 이름을 가진 여자는 기타를 잘 치고, 목젖이 보이게 유쾌하게 웃으며, 귀신 같이 감자를 잘 깎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어릴 적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영화를 본 부작용일지도, 먼 곳에서 만난 하숙집 아줌마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상상은 여기까지였다. 우리가 조금씩 가까워지던 어느 오후 편의점 앞에서 모르는 단어를 핸드폰의 영어사전을 찾아가며 더듬거리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녀의 세계가 나의 세계와 얼마나 다른지 알게 되었다. 사실 그것은 기묘한 통증이었다. 처음에는 모서리가 둥근 둔중한 것에 잠시 팔을 스치는 것처럼 별 다른 느낌이 없다가, 며칠 자고 일어나보면 몸 안의 명증한 상처가 되어 내 팔과 늑골 언저리에 푸릇한 멍처럼 보이는 상처를 남겼다.

마리아의 외로움, 마리아의 쓸쓸함, 마리아의 노동과 그녀가 흘리는 땀, 그녀가 ‘코리안 드림’을 의지해 어떻게 이 먼 이국의 땅까지 흘러들어오게 됐는지 안다면 나의 이 상상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는지……목덜미가 발개지도록 창피하고 부끄러웠다.디아스포라들의 삶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아픔이 있다. 그것은 그들에게 천형처럼 주어지는 언어와도 깊은 관계? 맺고 있으며 내가 작가로, ‘모국어’를 다루고 있는 이상 그것은 쉽게 외면할 수도, 방관할 수도 없는 문제였다.

영원한 이방인

나는 조용히 그리고 적게 말하도록 교육을 받으며 자란 사람인데, 내가 어디 출신이냐, 내가 누구냐 하는 개념들은 최대한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나도 내 유태인이나 이탈리아인 친구들과 비슷했으면, 심지어 아버지 가게 앞에서 얼쩡거리는 흑인 아이들 같았으면 하고 바란 적이 많았다. 그들이 그렇게 자신있게 말하는 방식, 아주 기뻐하면서 손과 엉덩이와 혀로 사실을 기념하는 방식, 보고 듣고 모두를 위해서 그 사실을 다 전시해 두는 방식이 부러웠다.

마리아를 만날 즈음 나는 이창래의 ‘네이티브 스피커’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미 두 번이나 읽었던 그 책을, 그것도 몇 번이나 밑줄을 긋고 반복하여 문장의 일부를 필사하기도 했던 이토록 아름답고 비정한 책을, 나는 6개월 동안이나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난독증에 걸린 것처럼 몇몇 문장들은 아예 읽히지 않았다.

릴리아는 주말에는 한인학교를 보내겠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나는 우리 아들이 고국의 언어를 결코 배우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생각은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애가 자신의 세계에 대하여 하나의 감각만을 가지고 성장하는 것이 내 희망이기도 했다. 하나의 목소리로 이루어진 삶, 그래야만 아이의 반은 노란색인 넓적한 얼굴로는 얻을 수 없는 권위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이것은 동화주의적 감성이며, 나 자신과 이 땅의 추하고 또 반은 맹목적인 로맨스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나는 자신의 조국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는 이민 3세대를 무척 불편한 마음으로 바라봤던 것들을 기억해냈다. 이 나라에 태어나 이 나라의 언어만 구사했던 나 같은 사람은 하나 이상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 ‘언어’란 절대적인 조건으로서 그것이 자신의 삶 속에서 거대한 불균형으로, 혹은 불균질처럼 느낄 수밖에 없는 삶을 살기도 한다는 걸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이전에 다나카 가쓰히코의 논의를 빌려 디아스포라에게는 조국(선조의 출신국), 고국(자기가 태어난 나라), 모국(현재 ‘국민’으로 속해있는 나라)의 삼자가 분열해 있으며 그와 같은 분열이야말로 디아스포라적 삶의 특징이라고 쓴 적이 있다.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기행’은 이것을 ‘분열’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분열’이야 말로 디아스포라적 삶의 특징이라고 말이다. 이것은 이창래의 소설에서 ‘하나의 목소리’라는 조금 더 문학적인 표현들로 기술되어 있다. 그것은 줌파 라히리 같은 이민자 출신의 소설들에서도 나타나는 특징이며, 수키 킴의 ‘통역사들’에서는 조금 더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이질적인 문화 사이의 충돌, 이질적인 언어와의 그 폭발적인 마찰음들은 그들이 자신의 인생을 걸쳐 평생 동안 겪어야 하는 슬픈 노래의 후렴구인 것이다.

누가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인도에서 부모는 서두르지 않는다. 맞는 이름을 짓기까지, 가능한 최고의 이름을 아이에게 지어주기까지 몇 년이 걸리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었다. 아시마와 아쇼크에게는 예닐곱 살이 되어 학교에 들어가게 되고 나서야 공식적인 이름을 갖게 된 사촌들이 있었다(………) 애칭이란 인생이 항상 그렇게 심각하고, 형식적이고, 복잡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는 유물, 어린 시절이 남겨준 유물인 것이다. 애칭은 또한 사람이란 함께 있는 사람,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지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게 해준다. 모든 사람에게 애칭이 있었다. 아시마의 애칭은 모누이고, 아쇼크의 애칭은 미투이다. 귀염받을 때나 야단맞을 때, 그리움의 대상이 되거나 사랑받을 때도 언제나 이 이름이었다.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가족들에게는 이 이름으로 기억되었던 것이다.

- 줌파 라히리 『이름 뒤에 숨은 사랑』



 

줌파 라히리와 이창래의 소설을 읽던 밤,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내가 아직 뱃속의 씨앗처럼 작은 태아였을 때 불렸던 이름, 아직 말을 배우기 전인 두 살 때까지 불렸던 그 이름이 서서히 떠올랐던 것이다. 그 이름 속에는 두 달이 넘는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 병약한 팔삭동이 딸이 오래오래 무병장수하며 살길 기원하는 부모님의 간절한 바람이 있었다. 인큐베이터 안에서 어린 딸이 죽음이 아닌 삶 쪽으로 다가가기 위해 사투를 벌이던 그때, 나의 부모님은 밤새 울음을 삼키며 기도했다.

고백하면 나는 내 이름을 무척이나 싫어했었다. 1900년대 소설에나 나올법한 고전적인 내 이름이 창피했었다. 그래서 소설가가 되던 해, 나의 첫 번째 단편에 나는 ‘백모’라는 이름을 조심스레 적어 넣었었다. 필명을 가지는 것이 지금까지와는 없던 두 번째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밤, 필명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를 듣고 온 술 취한 밤, 내가 끝내 내 필명을 버렸던 건 새벽녘 아빠와의 긴 통화 때문이었다.

“첫 번째 딸을 영영 놓치는 줄 알았지. 널 건강하게 낳아주지 못한 걸 네 엄마는 못 견뎌했어. 네 엄마는 그때 겨우 스물두살이었어. 우린 네 이름을 오랫동안 짓지 못했지. 이름을 짓기 위해서 우리는 먼 길을 돌아왔어. 난 신앙이 있지 않았지만 그때만큼은 네 엄마와 함께 교회에서 꼼짝없이 기도를 했었어. 그래서 우리가 얻게 된 이름이야. 영화로울 영, 구슬 옥, 그렇게 영화롭게 빛나라는 의미에서, 네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지. 난 네 이름이 촌스럽다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어. 네가 만약 사람들로부터 다른 이름으로 불려 진다면 네 엄마와 나는 무척 슬플 것 같아.”

아시마는 요즘 들어 외국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평생 임신한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을 했다. 기다림은 끝도 없고, 언제나 버겁고, 끊임없이 남과 다르다고 느끼는 것이다. 한때는 평범했었던 삶에 이제는 불룩하게 괄호가 하나 삽입되었고, 이 괄호 속에는 끝나지 않은 책임이 들어 있었다. 이를 통해 이전의 삶은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 그 삶은 오히려 더 복잡하고 힘든 무엇인가로 대체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외국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임신했을 때처럼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호기심과, 그리고 동정심과 이해심이 묘하게 뒤섞인 감정을 자아내는 어떤 것이라고, 아시마는 생각하였다.

그날, 버스에서 아이의 손을 잡고 있던 필리핀 보모 ‘마리아’의 이름은 그녀의 부모가 부르던 이름이 아니었다. 그녀의 타갈로그어 이름, 그녀의 진짜 이름은 ‘anak’ (아낙)이었다. 그 이름은 아이를 뜻하기도 아들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많은 딸들이 연달아 태어났다. 아들이 태어나길 바랐던 부모의 마음이 그 이름 속에 숨어 있었다.

‘마리아’는 아니, ‘아낙’은 자신의 이름이 한국어 발음인 ‘아낙’과 비슷하다며 웃었다. 필리핀어와 한국어 사이. 아낙과 아낙 사이. ‘마리아’와 ‘아낙’ 사이에는 수많은 경계들이 있을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김윤아의 ‘going home’을 들었다. 그리고 이 눈물 나게 아름다운 노래가 마리아가 일하는 집 담까지, 그녀가 감자를 깎고 있을 부엌으로까지 사뿐히 스며들기를 바랐다. 그녀가 이 노래를 벗 삼아 편안히 잠들기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는 햇살에 마음을 맡기고
나는 너의 일을 떠올리며
수많은 생각에 슬퍼진다.

우리는 단지 내일의 일도
지금은 알 수가 없으니까.
그저 너의 등을 감싸 안으며
다 잘 될 거라고 말할 수밖에.

더해줄 수 있는 일이
있을 것만 같아 초조해져.
무거운 너의 어깨와 기나긴 하루하루가 안타까워.
내일은 정말 좋은 일이
너에게 생기면 좋겠어.
너에겐 자격이 있으니까.
이제 짐을 벗고 행복해지길.
나는 간절하게 소원해본다.

이 세상은 너와 나에게도
잔인하고 두려운 곳이니까
언제라도 여기로 돌아와
집이 있잖아 내가 있잖아
뮳일은 정말 좋은 일이
우리를 기다려주기를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기를
가장 간절히 바라던 일이
이뤄지기를 난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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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백영옥

장편소설 『스타일』로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 2008년에서 2009년에 걸쳐 YES블로그에 장편소설 『다이어트의 여왕』 연재, 일간지 연재칼럼을 모아 낸 에세이집 『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 단편집 『아주 보통의 연애』를 썼다.

디아스포라 기행

<서경식> 저/<김혜신> 역10,800원(10% + 5%)

디아스포라라는 말은 '이산(離散)'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로, 자기가 속해 있던 땅을 떠나도록 강요당한 이들을 가리킨다. '재일조선인'인 저자는 이러한 ‘디아스포라’의 시선으로 바라본 정치와 사회, 예술에 대한 단상을 책으로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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