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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없이 수업하는 초등학교에 ‘깜짝’

교과서적 지식이 곧 상상력의‘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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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엽부터 교과서를 상품으로 여기기 시작하면서 교과서에 시각적 이미지가 첨가되는 등,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다. 소비자의 구매욕을 자극하기 위한 요소가 필요했던 것이다. 주로 목판화나 에칭화가 교과서의 내용과 병행해서 인쇄되었다.

교과서의 기원

교과서는 무엇인가?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학교에서 교과과정에 따라 주된 교재로 사용하기 위하여 편찬한 책”이 교과서이다. 사전적 의미로 본다면, ‘교과과정’에 사용하기 위해 만든 책을 교과서라고 부르는 것이다. 한국에서 교과서의 역사는 『천자문』까지 거슬러올라갈 수 있겠지만,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근대적 교과서의 개념은 일제식민지 시절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원래 교과서는 서양에서 라틴어 문장을 아동에게 가르치기 위해 고안되었다. 초보적인 알파벳부터 조금 긴 문장이나 문단을 읽을 수 있게 교과서로 편찬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런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 최초의 교과서는 문법과 독해 위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따르면, 교과서라는 말이 오늘날 통용되는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 18세기 말이었다고 한다. 그 이전까지 교과서라는 말의 의미는 중구난방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오늘날 쓰이는 교과서라는 말의 의미는 곧 교실에서 학생과 교사가 특정한 지식을 전수하고 사사받기 위해 사용하는 교재를 가리킨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교과서의 기원 자체가 글과 관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위해 교과서가 사용되고 만들어졌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글이라는 것은 한 시대의 사유구조를 지배하고, 때문에 교과서의 내용을 보면 그 당시의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를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대체로 이 과정은 교사가 묻고 학생이 대답하는 문답식 수업을 전제하는 것이다. 이런 식이다.

교사: 문법이 무엇이지요?
학생: 문법은 생각을 서로 나누는 기술입니다.
교사: 그럼 영문법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학생: 영어의 원칙과 관용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초기 교과서가 이렇게 문답식으로 엮어진 까닭은 그리스 철학의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소크라테스는 평생 글을 남기지 않았고, 대화를 통해 아테네의 청년들을 교육시켰는데, 이에 대한 기록을 플라톤이 대화로 남기고 있다는 사실에서 이런 추측은 설득력을 갖는다.

처음에 문법과 쓰기를 가르치기 위해서 도입되었던 서양 교과서의 역사는 우리와 사뭇 다른 배경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필요한 기초지식을 요약 정리해서 알기 쉽고 명료하게 전달하는 것이 교과서의 기능이라는 사실에 대한 합의가 이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에 대한 도전이 교과서에 대한 서양의 통념을 뒤흔들어놓기도 했다. 1990년대에 영미권에서 불붙은 교과서 논쟁의 핵심은 새로운 매체환경의 시대에 교과서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이었다.

“복잡다단해진 현실을 담아내기에 교과서라는 형식이 턱없이 왜소하다”는 주장과 “아무리 사회가 변화하고 교육목표가 바뀌었다고 해도 기초학력을 탄탄하게 만들어줄 교과서의 역할은 쇠퇴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겉으로 보기에 대립적인 이런 주장은, 그러나 하나의 전제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말하자면, 두 주장 모두 교과서를 ‘보완’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교과서라는 형식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나, 기초학력의 강화를 위해서 교과서의 활용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나, 모두 교육이 교과서에 머물지 말고 더 확대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거부하지 않는다. 따라서 서양에서 교과서의 개념은 어디까지 보조교재이다. 좀 더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을 읽기 위한 입문단계로서 교과서가 필요한 것이다.

19세기 초반까지 교과서는 교본처럼 반복적인 학습을 통해 오류를 교정하는 역할을 했다. 당연히 교과서는 암기의 대상이었고, 어떻게 잘 외울 것인지 이 문제에 학습방법이 집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암기위주의 교과서 학습에 대한 비판이 서구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났고 교육혁신을 주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19세기 중반으로 들어서면 암기위주 교육에 문제제기가 본격화되었던 것이다.

페스탈로치라는 교육학자의 영향은 이런 교육혁신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암기위주의 교육방식에서 이해를 중요한 목표로 내세우는 학습법의 도입이 권장되었는데, 언론暫나 교육기관이 이런 교육목표를 설정하고 교사들에게 새로운 철학을 도입하도록 요구했다.

자연스럽게 이와 같은 교육이념에 충실한 교사 연수나 양성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은 바로 교과서를 상품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의식의 변화였다. 미국의 경우 시장의 논리가 도입되면서 교육의 이념이 암기에서 이해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은 역사가들이 확인해주는 사실이다.

19세기 중엽부터 교과서를 상품으로 여기기 시작하면서 교과서에 시각적 이미지가 첨가되는 등,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다. 소비자의 구매욕을 자극하기 위한 요소가 필요했던 것이다. 주로 목판화나 에칭화가 교과서의 내용과 병행해서 인쇄되었다.
내용도 바뀔 수밖에 없었다. 종래의 교과서 구성에서 주종을 이루었던 교리문답 방식이 이해력을 강화하기 위한 귀납적인 질문으로 변화했다. 물론 열악한 환경 탓에 이런 전환이 순식간에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시장의 논리에 따라 교과서의 구성방식이 달라졌다는 사실일 것이다.

영국의 교과서

물론 이런 교과서의 도입과 사용이 나라마다 동일한 것은 아니다. 영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내가 놀랐던 것은 초등학교에 교과서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대신에 초등학교 학생들은 다양한 책들을 접할 수가 있었다. 영국은 교과서 자유제를 채택함으로써 교사가 교과서를 사용할 수도 있고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교과서를 사용하는 중등교육 이상의 과정에서도 교과서의 지급은 무료이며, 학생들은 교과서를 집으로 가져갈 수가 없다. 말 그대로 교과서는 학교에서만 보는 책인 셈이다. 교과서는 기초교육을 위한 것이지 그 자체에서 학습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교과서만 ‘달달 외워서’ 시험을 보고, 그 평가를 바탕으로 대학에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가 없다. 우리로 치면 수능시험이라고 할 수 있는 GCSE(General Certified of Secondary Education)은 11학년 말에 치르는 시험이다. GCSE를 본 뒤에 학생들은 대학에 가기 위한 준비과정인 A-level이나 직업교육과정에 들어갈 수가 있다. 과목은 총 45개이고 이 중에서 선택과 필수를 나누어서 시험 준비를 한다.

보통 필수과목에 해당하는 것이 영어?수학?과학인데, 과학은 생물?물리?화학이다. 선택과목은 학교마다 다른데, 대체로 이들 과목 중에서 9개 정도를 정해서 시험을 치른다. GCSE의 평가방식은 필기시험과 코스웍이다. 필기시험은 한국처럼 객관식이 아니고 짧은 에세이를 쓰는 형식이다. 기초과정과 상급과정으로 시험이 나뉘는데, 상급과정을 통과해야 A 까지 점수를 받을 수가 있는 구조이다.

GCSE를 통과한 영국학생들은 A-level을 제공하는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가 있다. 이 학교는 우리로 치면 고등학교인 셈인데, A-level을 구성하는 과목은 총 61개에 이른다. 이 과목들은 훨씬 추상적인 내용을 다루게 되는데, 예를 들어 ‘비판적 사고’나 ‘유럽학’ 같은 분야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과목을 이수한 뒤에 면접을 보고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것이 영국의 교육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교과서는 말 그대로 학습보조를 위한 교재로서 활용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특정한 교과서를 공통적으로 공부하는 체제를 영국에서 상상하기는 어렵다. 자율적으로 학생들의 수준에 맞춰서 교과서를 채택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목적은 교과서에서 다루는 내용보다 좀 더 추상적이고 어려운 지식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교과서는 본격적으로 어려운 책을 읽기 위한 기초과정으로서 기능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영국의 경우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교과서에 대한 규정은 하나일 수가 없다. 모든 학습행위가 교과서에서 시작해서 교과서로 귀결하는 것은 바람직한 교육이 아니다. 교과서는 교과서 밖의 책들을 읽기 위한 입구이지만, 한국의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한국은 교과서를 ‘암기’하는 것이라는 19세기적 발상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못하다. 교과서를 외워서 그 내용을 얼마나 숙지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방식은 교육철학의 부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영국에서 만날 수 있었던 이공계열 대학생들은 문학이나 철학에도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하고 있다. 파리의 공원에 가면 두꺼운 철학책을 쪋연덕스럽게 읽고 있는 고등학생들을 만날 수 있다. 물론 이런 일이 가능한 까닭은 입시제도에 철학이나 인문학 과목이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과목을 설정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 과목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교육의 목표에 대한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

철학이나 인문 과목을 설정해놓는 까닭이 평가를 위한 과목 하나를 더 늘리는 것이라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를 통해 달성할 수 있는 실질적인 교육의 목표이다. 이런 까닭에 우리의 경우는 교과서에 대한 기본적인 관점이나 입장도 정립되어 있지 않은 것이라고 하겠다.

교과서가 기초적인 읽고쓰기 능력을 위해 처음으로 개발되었다는 사실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말 그대로 교과서의 지식은 기교나 기술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이 교과서의 지식이 절대적 진리로 전도되었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교과서에 빗대어서 복잡한 세계를 재단하는 역전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헝가리 출신의 독일 문예학자 루카치는 ‘히말라야의 토끼’라는 우화를 들려주고 있다. 히말라야에 사는 토끼는 산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멀리 있는 코끼리가 자신보다 작은 존재’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교과서의 지식이 우리에게 초래할 수 있는 오류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교과서는 분명히 읽고쓰기 능력 같은 기초적인 기교와 기술을 집중적으로 학습하기 위해 좋은 교재라고 할 수 있지만, 지식 자체를 절단하고 분절해서 파편화시킬 위험성도 있다. 교과서적 지식에 맞춰서 세계를 보는 것은 세계에 대한 오판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교과서가 쓸모 있지만, 또한 해악일 수 있는 것이 이 때문이다.

교과서를 넘어서

사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교과서에 대한 다양한 비판들이 서구사회에서 제출되었다. 교과서에 대한 문제제기는 결국 교육과정의 최종결과라고 할 수 있는 ‘성적평가방식’과 무관하지 않다. 이 평가방식은 질적 평가와 양적 평가로 나뉠 수가 있을 텐데, 양적 평가는 숫자를 이용한 정량화와 표준화를 전제하는 것이고, 질적 평가는 이런 정량화와 표준화를 피하고 포트폴리오 같은 피평가자의 특성을 살린 내용들을 토대로 평가자 자신의 기준에 따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토익시험 같은 것이 대표적인 양적 평가라면, 논술이나 면접은 질적 평가인 것이다.

교과서는 이런 의미에서 양적 평가에 적합한 근대적 양식이라고 할 수가 있다. 교육철학에서 평가의 방식은 양적 평가에서 질적 평가로 서서히 이동했다고 볼 수가 있는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암기에서 이해로 교과서의 활용방식이 변화해온 것과 이런 변화는 밀접하게 관련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교리문답에 근거한 암기식 교과서는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본격화하고 가치체계가 변화하면서 이해 위주의 교육방식으로 바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교과서도 본 학습을 위한 보조수단으로 바뀌게 되었다.

서구의 교육환경에서 교과서는 말 그대로 좀 더 복잡하고 추상적인 학습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초적인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제인 오스틴 소설을 읽기 위해서 중고등학생들은 오스틴 소설에 관한 교과서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 목적은 제인 오스틴 소설을 읽는 것이다. 『춘향전』에 대해 해설해놓은 교과서를 보고 거기에 나오는 내용을 토대로 시험을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춘향전』을 읽고 이해하기 위한 참고자료로 교과서를 이용하는 것이 타당하다.

서구의 교과서는 이런 목적을 위해 고안되었다.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에 교과서가 놓여 있는 것이지, 교과서 자체가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지식을 담고 있지 않은 것이다. 좀 더 넓은 지식의 세계로 가기 위한 출발점이 바로 교과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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