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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강연회] 조정래 “국민은 국가와 재벌의 노예다!” -『허수아비춤』조정래

“민주주의는 그냥 크는 나무가 아니라 화분의 화초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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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삼성 비자금 사건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전국민적인 관심을 받으며 특검을 조직한다, 대대적인 수사를 벌인다며 연일 언론에 대서특필되며 요란 뻑쩍지근하게 수사가 시작됐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삼성 비자금 사건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전국민적인 관심을 받으며 특검을 조직한다, 대대적인 수사를 벌인다며 연일 언론에 대서특필되며 요란 뻑쩍지근하게 수사가 시작됐다. 그러나 처음의 의욕적인 모습과는 다르게 차츰 시간이 흐르며 일반대중의 바람과 상관없이, 사건은 유야무야 조용히 마무리됐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그 끝은 미약하게, 미약하기 보다는 고약하게. 재벌의 손에 면죄부를 쥐어주며 막을 내린 것이다. 역시 평소에 갈고 닦은 노력(?)과 들인 공이 어김없이 위력을 발휘했는지. 처음부터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며 별 기대를 했던 것은 아니라고 해도, 결과가 실망스러웠음을 감출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멀리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현재도 일란성 쌍둥이처럼 똑닮은 재벌 비자금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의 비자금 사건이 특별한 경우가 아니란 얘기다. 이처럼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대한민국 천민자본주의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린 신작『허수아비춤』을 가지고 돌아온 우리 시대의 작가, 조정래의 강연회가 깊어가는 가을 저녁, 광화문 인근에서 열렸다.

강연회가 시작되고 독자들의 환영의 박수를 받으며 조정래 작가가 등장했다. 설명이 필요 없는 조정래 작가이지만 문학비평가 황광수의 조정래 작가의 작품 세계에 관해 소개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조정래 작가는 1970년 데뷔작 『누명』을 시작으로 『불놀이』까지 전집 8권이 전반기 문학, 『태백산맥』『아리랑』, 『한강』이 중반기 문학 그 이후의 세편의 중단편 소설, 『인간연습』과 『모험』을 비롯해 오늘의 『허수아비춤』으로 구분되며 총 두 편의 장편소설과 49편의 중단편 소설 등, 우리 사회의 100여년간의 현대사를 치열하게 통찰하고 있는 소설을 발표했다는 설명이 있었다.

작품세계에 대한 소개가 끝나고 조정래 작가가 포문을 열었다. “왜 허수아비춤이라는 제목을 붙였을까요?”


왜 허수아비춤인가?

조정래 작가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했다. 첫번째로,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소비자들을 빗댄 것. “오늘의 우리 천민자본주의가 이지경이 되어버린 것은 성실한 소비자로서 그들이 부를 축적하게 해준 대중, 즉 우리들이 그들을 맹신해 주었기 때문이다. 기업이 잘되면 우리가 잘 살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정치에 대해서는 혁명을 일으켰지만 경제 범죄에 대해서는 관대하거나, 무관심해 이 지경이 되었다. 정치 독재는 폭압하고 억압하지만 경제 독재는 충성도 높은 소비자에 대해 야유한다. 그것을 보고 분노를 느끼지 않으면 이 땅에 살 자격이 없다.”

남회장은 한 달 만에 자유의 몸이 되었다. 출감 사유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병보석이었다. 그리고 약방의 감초처럼 덧붙여진 한마디는, 국가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이 컸고, 잠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국민경제에 더 이상 부담을 주어서는 안되기 때문, 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 말은 고무도장에 새겨서 필요할 때면 마구 찍어 대거나, 녹음테이프에 녹음해서 반복 반복 또 반복해 가며 틀어 대는 것처럼 벌써 40여 년의 전통을 자랑하며 그 생명력을 과시해 오고 있었다. 그 이유는 세상 사람들이 그 반복 행위를 지겨워하지도 않고, 신물 내지도 않고, 의심하지도 않고 그대로 믿어 주고 따라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큰 기업이 잘돼야 우리도 잘살게 되지. 대중들은 이렇게 동의하고 동조하면서 재벌들이 저지르는 죄를 가볍게 여겼고, 그들이 받는 사법적 특혜에도 지극히 관대했다. 국민경제를 위하여…. 그 기업 옹호론과 재벌 보호론의 주문은 그 효력 좋고 생명력 강대하기가, (중략) 배부른 번성을 누려온 종교들의 질긴 생명력과 맞먹었다. 신문들이 앞장서 설파하고, 법관들까지 활용하고 나서는 그 기업 옹호론과 재벌 보호론은 자본주의 한국에서 출현한 신통력 좋은 신흥 종교이기도 했다. (『허수아비춤』p.64-65)

“두 번째로, 재벌을 에워싸고 머리 좋고 많이 배운 소위, ‘엘리트’들이 반사회적, 비인간적인 행위를 서슴치 않는다. 그들의 행위가 사내귀족으로 등극 하는 게 아니라, 허수아비춤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윤실장의 별명은 ‘특급 충견’ 이었다. 그는 그만큼 회장에게 충성을 다 바쳤고, 그 대가로 사내 귀족의 신분을 확보하고 있었다. 물론 재벌 기업에서 임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 충견 아닌 자들은 하나도 없다고 해야 옳았다. 개도 부지런해야 더운 똥을 얻어먹더라고 경쟁의 첩첩산중에서 동료들 짓밟고 선배들 무찌르며 임원 쟁탈전에 승리한 사람들은 이모저모로 부지런하게 충견 노릇을 잘한 분네들임이 분명했다. 그 중에서도 윤실장은 단연 금메달감이었다. (p.30)

작가는 이 두 가지가 소설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우리의 천민자본주의가 고쳐져야 할 때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을 하고 경제발전을 할 때, 지금은 분배의 시기가 아니라 축적의 시기다, 언젠가 기다리면 반드시 분배해주겠다는 약속을 했고 순진한 국민은 그것을 믿었다. 그러나 40년이 지난 후 우리에게 무엇이 있나. 그런 작태들이 여러 번 우리를 배신했다. 정부가 민족자본을 형성하고, 최고의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며 재벌을 비호해서 오늘을 만들어 놨더니, 거대자본을 모은 그들은 비자금을 통해 국가 권력 및 언론 조직을 회유해 자기들 손아귀에 넣어 국민 전체를 배반한 것이다. 이것을 모르고 가면 우리들에겐 미래가 없다.”

작가는 “20여년 전 우리는 정치민주화를 쟁취해 냈다. 이제 우리의 천민자본주의를 극복하고 경제 민주화를 이룰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말했다.

책을 읽으며 이런 내용을 어떻게 취재했을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레 들었는데, 작품의 집필을 위해 조정래 작가는 취재를 많이 하지 않았다고 했다. 작가는 1970년대부터 분배의 시기가 언제인가를 기다렸고, 경제집단이 정치집단과 결탁해 대중을 기만하는 행위를 할 때마다 기억해 두었고 그것이 쌓이고 쌓여 작품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허수아비춤을 별로 쓰고 싶지 않았다. 답답했다.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우울했다는 말을 했다. 우울했지만 이 소설을 쓰고 나면 한 가닥 푸른 빛이 보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마칠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2만불에 왔다. 처음 경제개발을 시작할 무렵 국민소득은 80불,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오늘날의 눈부신 경제발전은 국민의 노동, 아니 중노동을 통해 이루어 냈다. 그러므로 경제발전으로 축적된 부는 국민 모두의 것이지 재벌의 것이 아니다. 기업가, 생산노동에 종사한 노동자, 상품을 사준 소비자가 합쳐져 오늘날의 자본을 이루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에 대해 감시 감독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재벌들은 주식회사는 형식이고, 모든 것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한다.”

회장님…, 사원들에게 그 존재는 어떠했던가. 살아 있는 임금,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높은, 살아 있는 황제가 바로 회장님 아니었던가. (중략) 회장님은 엄연히 살아 계시는 우리 일광그룹의 황제이셨다. 아니 하늘이셨고, 태양이셨다. 그건 결코 과장도 ?아냥도 아니었다. (중략) 일광그룹의 회장님도 손가락질 한 번씩으로 생계 수단을 몰수하고 박탈해 버리는 절대권을 언제든지 휘둘러댈 수 있었다. 일광그룹의 19만 사원들은 남녀노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회장님 앞에서는 호랑이 앞에 토끼요, 독수리 앞에 참새였다. 그 옛날 황제나 임금 앞에서 모든 신하와 백성들이 고개를 들 수 없었듯이 회장님 앞에서도 그 누구든 감히 눈길을 세울 수 없었다. 모든 사원들은 회장님의 기척만 느끼게 되면 먼발치에서부터 벌써 허둥지둥 피해 서고, 물러서기 바빴다. 그리고 자동차를 타고 지나갈 때도 허리가 반으로 접히는 절을 해야 했다. 그런 일사불란한 충성은 누가 가르치고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었다. 해병대 신병 훈련에 못지않게 호된 신입사원 연수에서도 그렇게 하라고 한 적이 없었고,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전체 사원 연수에서도 그런 말이 나온 적이라고는 없었다. (중략) 모든 사원들은 타고난 생존술을 그렇게 잘들 발휘하고 있었다. (p.17-18)

경제 민주화란 무엇인가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정치민주화가 군부 독재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면 경제 민주화는 모든 기업하는 사람들이 양심적으로 투명한 경영을 하는 것이다.” 회사는 오너 일가족에 의한 족벌 체제가 아닌 민주화된, 그리고 비자금을 조성할 수 없는, 투명경영을 해야 한다. 이러한 투명경영을 기초로 철저히 세금을 징수하고 세금으로 마련된 재원으로 복지제도를 통해 복지 혜택을 모든 국민들이 골고루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경제 민주화를 이룩하지 못하면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없다. 선진국들은 2만불대에 투명경영을 했기에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모든 기업이 탐욕을 부리기에 그것을 막지 않으면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없다고 했다. “재벌들의 범죄와 전횡을 막아야 하는 것은 법이 아니다. 법은 이미 돈에 매수 당했다. 그래서 정치권력, 행정권력은 믿을 수 없다. 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을 지켜야 하는 것은 바로 사회 구성원, 우리 자신들뿐이다.”

시민단체 운동, 경제 민주화로 가는 길

조정래 작가는 작품에서 시민단체 운동을 해결방법으로 제시했다. 이에 대해 해결방안이 안일한 것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이에 대해 조정래 작가는 “우리가 선망하는 선진국들 중 예를 들어 프랑스는 시민단체가 5만여개다. 이러한 수많은 시민단체가 국가권력, 그리고 대기업들을 감시한다. 그것이 서양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방법이다.” 고 말했다. 또 “민주주의는 그냥 크는 나무가 아니라 화분의 화초와 같은 것이다. 화초에 물을 매일 주지 않으면 말라 죽는다. 민주주의도 만들고 가꾸어 나가야 한다. 민주주의가 무엇인가. 민주시민이 되려면 참여해야 한다. 국민은 나라의 주인인가? 그것은 헌법 조항이고. 투표용지를 놓는 순간, 배반당한다.” 고 부언 설명했다.

국민은 나라의 주인인가. 아니다. 노예다. 국가 권력의 노예고, 재벌들의 노예다. 당신들은 이중 노예다. 그런데 정작 당신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것이 당신들의 비극이고 절망이다. (p.322)

“동서양 200년전, 노비, 노예제가 있었다. 그때 오늘날과 같은 민주주의가 오리라는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투쟁하고 저항하고 싸워서 민주주의를 이룩했다. 모든 국가들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타락했기 때문에 시민단체를 만들어 감시 감독하고 고발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도 몇몇 재벌들의 경제범죄가 알려진 것도 시민단체 덕분이다. 직접적 효과가 있다. 시민단체에서 직접 활동하지 않더라도 후원하면 된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 화초에 물을 안 줘서 죽듯이 민주주의는 고사한다.

우리는 가능성이 있다. 역동적인 나라다. 80년대에 이미 독재를 무너뜨렸다. 20세기 이후 민주주의를 이룬 제 3세계국가중 유일하다. 그런 상황에서 경제가 왜곡 되어 전국민을 불행하게 만든다. 이 사실을 국민 모두가 알아야 한다. 그걸 모르면 끝없이 자발적 복종을 하며 노예로 살수 밖에 없다.

저항을 계속하지 않으면 기득권 세력은 배반하게 되어있다. 그게 권력의 속성이다. 시민의 권리, 국민의 권리를 찾으려면 시민 단체에 가입하시기 바란다. 우리의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데 부정을 저지를 수 없다.”


돈에 길들여진 자발적 노예. 돈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매트릭스에 꽂혀 사는 인간 군상들. 그게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대중들이 이를 깨닫고,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를 돈으로 칠한다고 해도, 그것을 뒤로 돌릴 수 없음을 분명히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더 나은 세상에서 살수 있는 길임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볼 수 있는 뜻깊은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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