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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트 파이터 2 ‘장풍싸움’ 기억나세요? -슈팅 게임의 문제설정 ②

격투게임 속 슈팅의 흔적, ‘아도~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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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팅 게임의 몰락은 격투 게임의 붐,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캡콤의 <스트리트 파이터 2>가 게임센터에 등장한 1991년을 전후하여 시작되었다. <스트라이크 1945> 시리즈로 유명한 사이쿄와 <도돈파치>를 제작한 케이브 정도가 근근이 명맥을 이어나갔다. 단순히 ‘격투 게임이 더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빠른 세대교체였다. 시기적으로 봤을 때 슈팅 게임의 몰락은 90년대 대중문화의 흐름과 그 맥을 같이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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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쏘는 놈, 맞는 놈, 피하는 놈 -슈팅 게임의 문제설정 ①

맞는 놈 ─ 객체와의 거리

슈팅의 흔적

슈팅 게임의 몰락은 격투 게임의 붐,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캡콤의 <스트리트 파이터 2>가 게임센터에 등장한 1991년을 전후하여 시작되었다. <스트라이크 1945> 시리즈로 유명한 사이쿄와 <도돈파치>를 제작한 케이브 정도가 근근이 명맥을 이어나갔다. 단순히 ‘격투 게임이 더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빠른 세대교체였다. 시기적으로 봤을 때 슈팅 게임의 몰락은 90년대 대중문화의 흐름과 그 맥을 같이한다고 생각한다.

<스트리트 파이터 2>

앞서 살펴봤던 근대적 슈팅 게임, 하나의 주체가 수많은 객체들을 제거하는 패턴은 어느새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 못하고 있었다. 슈팅 게임만의 책임은 아니다. 어느새 유저들이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스트리트 파이터 2>를 통해 ‘실제 사람과의 격투’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한 뒤에 말이다. 그것은 1992년 서태지의 <난 알아요>를 듣고 나서 다른 대중가요들이 답답하게 느껴졌던 경험과 흡사했다. 화면의 그래픽을 제거하면 게임센터에서 실제 사람과 1:1로 싸우는 모습은 <스페이스 워>의 그것이다.

니들과 웨지의 모습은 류와 켄의 형상으로 서서히 중첩되었다. 당시 일명 ‘장풍싸움’이라고 하여, 다른 버튼이나 기술은 일체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파동권만 사용해서 승부를 내는 결투도 있었다(이건 당시 만화잡지에 연재되던 『드래곤볼』의 영향이 크다). 파동권은 한 번에 한 발만 쏠 수 있다는 점에서 초기 슈팅 게임의 미사일을 연상시킨다. ‘슈팅’이라는 행위는 이렇게 다른 장르의 게임에서도 스치듯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슈팅의 흔적을 통해 우리는 슈팅의 본질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켄 vs 블랑카

열대림이 우거진 브라질의 원주민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무술가의 결투가 벌어지고 있다. 마을 주민 블랑카 씨는 밀림에서 자란 탓에 야생의 외모와 습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모글리’ 같은 청년(?)이다. 오늘의 대결상대는 미국에서 온 격투가 켄. 일본에서 가라데를 배웠다는 켄은 특유의 거만한 표정으로 싸움을 걸어온다.

“라운드 1. 파이트!” 블랑카 씨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싸움을 한다. 그의 주특기는 빠른 점프와 강력한 펀치다. 직접 몸을 던지는 롤링어택 역시 강력하다. 어쨌든 그는 모든 짐승들이 그렇듯 자신의 신체를 직접 사용해 싸워야만 한다. 블랑카 씨의 움직임이 부담되는지 켄은 멀리서 파동권을 날린다. 마치 엽총으로 짐승을 사냥했던 유럽인의 모습이다. 그는 블랑카보다 느리고 파워도 약하다. 대신 파동권이라는 장거리 무기를 가지고 있다. 덕분에 그는 굳이 다가가서 주먹을 날릴 필요가 없다. 파동권을 사용하고 상대가 점프해 오는 것을 노린 다음, 승룡권을 날린다. 이것이야말로 켄이 늘 머릿속에 그리는 필승전략이다. 이에 대한 블랑카 씨의 선택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막거나 뛰어넘거나…….

이상은 <스트리트 파이터 2>의 한 장면을 재구성한 것이다. 게임은 예측할 수 없는 우연성 때문에 그 미적 가치를 획득한다. 파동권을 날리는 켄이 퍼펙트로 승리할 수도 있고, 몸이 재빠른 블랑카가 일방적으로 승리할 수도 있다. 여기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승패를 떠나 싸움의 방식에 관한 것이다. 위에서 묘사한 켄과 블랑카의 싸움은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과 그렇지 않은 짐승 간의 싸움을 은유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장거리 무기가 없는 블랑카는 어떻게든 접근해야만 공격이 가능하다. 그래서 블랑카는 호시탐탐 켄의 장풍 너머로 점프할 타이밍을 노린다. 어느 정도 예측해서 뛰어넘지 않으면 곧바로 날아오는 승룡권의 먹이가 된다. 켄은 굳이 자신보다 신체적으로 강한 상대와 정면대결을 할 필요가 없다. 그는 항상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파동권을 날리고 블랑카가 점프해 올 타이밍을 계산한다. 물론 ‘승룡권’을 제대로 한 방 먹이기 위해서다.

사자는 자신의 네 발로 달려가 날카로운 이빨로 사냥감의 목을 물어뜯는다. 독수리는 지상으로 돌진해 뾰족한 발톱으로 먹이를 낚아챈다. 허나 인간은 직접 달려가지 않는다. 그는 도구를 사용해 상대방을 공격한다. 도구는 인간과 사냥감을 매개한다.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힐 필요가 없다. 평뛅가 마샬 맥루한(Herbert Marshal Mcluhan)의 견해를 빌리자면, 미디어는 신체와 감각의 확장이다. 따라서 슈팅을 하는 주체는 자신의 신체를 확장해 상대방을 공격하는 셈이다.

최종적으로 남는 문제는 대상과의 거리다. 도구의 사정거리는 주체의 이동을 강제하고, 주체와 객체 간의 거리가 줄어들수록 리스크는 증가한다. 이기기 위해서 어떻게든 상대방에게 접근해야만 하는 블랑카처럼 거리의 문제는 필연적으로 이동의 문제를 수반한다. 결국 이런 거리의 문제를 어떻게 디자인적으로 재현하느냐에 따라 어떤 것은 슈팅이 되고, 어떤 것은 액션이 된다.

<제비우스>

<제비우스>

이러한 거리의 문제를 제기했던 슈팅 게임은 남코의 <제비우스>가 아니었나 싶다. <제비우스>에서는 어두운 우주를 벗어나 지상과 바다가 묘사되기 시작했다. 배경이 서서히 스크롤 되는 장면은 머나먼 대륙을 향해 조종간을 당기는 파일럿의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놀라운 점은 이 게임이 단순히 육지를 보여준 것에서 그치지 않고 플레이어가 육지를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는 것이다.

아군 전투기는 두 가지 무기를 사용한다. 하나는 공중의 적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요, 또 하나는 지상의 적을 위한 것이다. 아군의 전방에는 늘 십자 모양의 가상 표적이 따라다닌다. 이것은 지상공격용 폭탄의 낙하지점을 알려준다. 적이 다가오는 속도와 표적의 위치, 그리고 폭탄이 발사되는 시간을 고려해 플레이어는 정확한 타이밍에 폭탄 버튼을 눌러야 한다. 그러면 잠시 후 현란한 폭발음과 함께 지상의 목표물이 잔해를 남기면서 파괴된다. 폭탄이 터질 때까지의 경직시간은 유저에게 지상까지의 ‘높이’로 인식된다. 즉, <제비우스>에서 게이머는 그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화면 속의 높이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높이’의 이면에는 ‘거리’가 감춰져 있다. 사거리에 제한이 없는 공중공격과 사거리에 제한을 둔 지상공격에 따라 플레이어의 이동패턴에는 차이가 발생한다.

지상공격을 위해서 플레이어는 폭탄의 사거리만큼, 적어도 십자 표시에 닿을 때까지는 적에게 다가가야 한다. 따라서 플레이어가 인지해야 할 공간은 단지 비행기의 작은 동체에 국한되지 않는다. 다가오는 적의 탄을 피하면서도 끊임없이 지상의 적과 거리를 좁히기 위해 십자 모양의 표적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슈팅 게임의 플레이어는 자신이 발사하는 매개물과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다. 탄이 적에게 닿는 범위까지가 플레이어의 인식영역이자 확장된 감각의 영역이다. 슈팅 게임의 고수들은 아마도 자신의 확장된 감각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 한계점을 자유롭게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보안관의 낡은 장화

캡콤의 <건스모크>는 서부영화의 보안관이 등장하는 슈팅 게임이다. 전투기가 아닌 사람이 등장한다는 점, 게다가 <건버드>처럼 날아다니지 않고 지상을 열심히 뛰어다닌다는 점에서 보기 드문 스타일의 슈팅 게임이었다. 보안관의 무기는 오직 쌍권총. 폭탄이나 다른 회피 수단이란 처음부터 생략되어 있다. 다만 플레이어는 게임 중 등장하는 아이템을 통해 몇 가지 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 장화(이동속도 증가), 탄환(탄의 속도 증가), 장총(유효 사거리 증가)이 그것이며, 이 세 가지 아이템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게임은 A, B, C 3개의 버튼이 탄이 발사되는 방향(좌측, 중앙, 우측)과 대응하는데 플레이어는 역시나 사거리의 제약을 받는다. 따라서 목표물을 화면 뒤쪽에서 편안하게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적어도 사거리에 닿는 곳까지 움직이지 않으면 적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건스모크>

<제비우스>처럼 과녁이 보이지는 않지만 플레이어는 자신의 유효 사거리를 금세 인지할 수 있?며, 그 반경 내에서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그리고 게임의 모든 아이템은 주체와 객체 사이의 거리를 직?간접적으로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사거리를 늘려주는 장총은 좀 더 멀리서 안전하게 적을 공격하도록 몶와준다. 한편 장화와 총탄은 각각 보안관의 이동 속도와 그가 쏘는 탄의 속도를 높여준다. 이 두 가지 아이템은 거리로 인해 발생하는 이동의 문제를 어느 정도 보완하는 셈이다(어차피 적에게 다가가야만 한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다가가는 것이 유리하다).

탄의 방향을 버튼으로 선택하고, 탄의 사거리에 제한을 둔 <건스모크>는 결과적으로 일반적인 슈팅 게임과는 다른 경험과 재미를 유저에게 선사한다. 서부영화에서 앞만 보고 총을 쏘는 사람은 없다. 허리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그 방향으로 두 팔을 쭉 뻗어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정석이다. <건스모크>는 총탄의 방향을 버튼으로 구현함으로써 이러한 시각적 디테일을 살렸다. 또한 제한된 사거리로 인해 플레이어는 멀리서 저격하는 스나이퍼가 아니라 적들이 포진해 있는 영역으로 돌진해서 현란한 컨트롤로 다수의 적들을 섬멸하고 다시 안전한 위치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플레이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부영화의 연출방식을 그대로 재현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작은 규칙의 변화로 새로운 재현세계를 만들어내는 게임의 힘이 아닐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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