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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보적인 맛! 쇠고기보다 맛있어!’ -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한창훈

한 번도 못 먹어봤다는 말은 한 번도 못 가봤다는 말보다 더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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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와 제주도 중간지점에 솟아 있는 섬 거문도.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라 내륙 사람들에게 섬 풍경과 바다의 맛을 퍼트리는 이가 한창훈 작가다.

바다의 작가, 한창훈 작가님의 초대

여수와 제주도 중간지점에 솟아 있는 섬 거문도.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라 내륙 사람들에게 섬 풍경과 바다의 맛을 퍼트리는 이가 한창훈 작가다. 이번에는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고 도시민을 본격적으로 부추기는 책을 냈다. 30여종의 해산물이 등장하고, 낚시와 채취, 요리법,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사람살이가 담긴 이야기다. 이에 걸맞은 작가와의 만남. 한창훈 작가가 독자 다섯 명을 거문도로 초대했다.

“저는 섬에서 살았습니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온통 푸른 바다뿐인 그곳에서 위태로운 첫발을 떼었고 말을 배웠습니다. 세상이란 일년 내내 파도치고, 바람 불고, 고기잡이를 하다가 사람이 빠져 죽고, 고구마 밭을 매고, 철새가 지나가는 곳이라 생각했지요. 섬을 떠나 육지에 살면서 나이가 들자 그곳이 그리워졌습니다. 그 그리움을 글로 쓰다 보니 작가가 되었지요.” (소설 『열여섯의 섬』 작가의 말)

그는 바다의 작가라고 불린다. 바다는 한창훈 작가의 또 하나의 정체성이다. 그의 책, 어느 부분을 펼쳐보아도 단번에 확인할 수 있다.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 『가던 새 본다』 『나는 여기가 좋다』 등의 소설집부터 한겨레 문학상 수상 장편집 『홍합』까지. 그의 책 속에는 거문도 바다가 넘실거린다.

문학평론가 김명환은 “한창훈은 고집스러운 소설가다. 그의 작품세계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다.”고 말했다. 음악실 디제이, 트럭운전사, 커피숍 주방장 등 이런 저런 일을 전전하면서도 늘 바다 곁에 머물며 문장을 지었으니, 거기에 바다 내음이 짙을 수 밖에.

서울, 대구, 부산 곳곳에서 달려온 독자 다섯 분과 여수 여객터미널에서 합류했다. 나름 꽤 높은 경쟁률을 뚫고 거문도 초대장을 받으신 분들이다. 각자 뱃속에 혹은 인생에 허기 느끼는 도시민들이겠으나, 서로의 들뜬 얼굴에서 그런 기미는 좀체 찾아볼 수 없다.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고 작가님이 허기진 이들을 불렀으니, 독자들은 입맛을 다시며 배에 올라 탄다. “책에서만 읽은, 맛본 적 없는 회를 꼭 먹어봐야겠다” “회로만 배를 채워봐야겠다”는 둥 야무진 계획을 나누며 ‘줄리아 아쿠아’에 올라탔다. 거문도까지 데려다 줄 여객선이다.

“복도 많다. 이런 날씨에 오고”


주말에 날씨가 흐리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다행히도 여느 때보다 바다는 잠잠하다. “하모, 나오길 잘했제.” 군데군데 정박한 섬에서 올라탄 여행객들이, 바다를 보며 거듭 탄사를 쏟아낸다. 배는 고른 바다를 일직선으로 가르며 나아갔다.

여수에서 출발한 배가 거문고에 닿았다. 창문 밖으로 한창훈 작가님의 모습이 보인다. 독자들을 마중 나와 기다리고 계셨다. “이게 다여. 섬이 이래.” 털털하게 웃는 작가님이 먼저 손을 내민다. 근처에 마련된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이동했다. 살구색 잠바를 걸친 채, 한 손은 주머니 속에, 한 손은 담배를 쥐고 앞장 서 걷는 작가님. 비늘 같은 회색 머리칼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이라니. 바다’싸나이’ 특유의 기풍이 매력적이었다.

“이 사람이, 책 속에 나오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우체국 직원이야, 이 사람은 눈알 모으는 아빠.” 작가님이 일행을 소개할 때마다, 독자들은 반갑게 끄덕인다. 책으로 미리 예습했던 터라, 책 속의 캐릭터로 접했던 인물을 실제로 만나는 기분이 기묘하다. 이미 잘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한창훈 작가가 미리 빌려놓은 배를 타고, 본격적으로 낚시를 하기 위해 가두리로 향했다.

작가님 왼쪽 분이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우체국 직원’.

뒤에 서 계신 분들도 모두 책 속에서 뵌 적 있는 분들이다.


“복도 많다~ 이런 날 오고.”

이날 참 많이도 들은 얘기. 가을 들어 가장 좋은 날씨였다고 할 만큼 맑고 화창한 날이었다. 한창훈 작가님이 “다리미로 펴 놓은 듯한 바다”라고 일러주신다. 마치 그림같이 색칠된 바다, 이런 날엔 멀미도 안 한단다. 가두리에 닿자 배가 닿자 금선이가 제일 먼저 사람들을 반긴다. 금선이는 가두리를 지키고 있는 개다.

이렇게 배가 들어올 때만 사람 구경을 한다. 페르시안 고양이도 거문도에서 며칠 묵으면 사람을 반긴단다. 금선이 보니까 알겠다. 낯선 손길에도 이내 드러누워 애교를 부린다. 그래서 손길 한 번 더 가고, 눈길 한 번 더 가는 거문도 바다, 그 위에서 낚시를 시작했다.

사람들을 보고 달려나오는 금선이. 금세 누워 애교를 부린다.

섬의 풍요는 이런 모습으로 온다

“먹고 싶으면 낚아!”

이것이 생계형 낚시의 룰이다. 생계형 낚시란 “먹기 위해서 낚는다는 말로 레저형 낚시의 반대(p.58)”다. 한창훈 작가가 낚싯대를 들고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링을 젖혀 줄을 내리는 법. 입질이 왔을 때, 손으로 낚아챌 정도로만 감고 물고기를 거두는 법. 그러니까 “바닥에 닿을 만큼 납을 내리고, 그냥 물기를 기다리면 돼.” 가장 간단하게 다룰 수 있다는 낚싯대를 들고, 초보 낚시꾼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창훈 작가가 직접 시범을 보이며 낚시를 가르쳐주고 있다.

과연 정말 물고기가 낚여 올라올까? 저녁을 먹을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염려와 기대 속에 미끼를 담가두길 잠시. 입질이 온다는 얘기가 들린다. 한 마리, 두 마리, 손바닥 크기의 전갱이가 낚여 올라온다. 인증샷, 기념샷은 필수. 초보낚시꾼들 얼굴 위에, ‘월간 낚시’ 표지에 걸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감격스런 미소가 퍼진다.

독자들이 전갱이를 낚아 올렸다.

평균 수심 16미터. 가두리 양식장에서 가출한 눈먼 고기를 몇 마리 낚아 올리던 독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들었다. 한창훈 작가가 오전에 손질한 삼치회를 꺼내 오셨기 때문. “먹다 보면 낚싯대는 쳐다보지도 않어.” 마치 이 주문에 걸린 마냥 독자들, 삼치회 상자 안으로 들어갈 듯이 몸을 기울여 허기진 배를 채운다.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는 잎새주까지 곁들인다. 부드럽고 싸한 입안의 바다. “나는 이곳이 좋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한 번도 못 먹어봤다는 말은 한 번도 못 가봤다는 말보다 더 불쌍하다. 못 사먹는다면 방법은 하나. 낚아 먹으면 된다.(p.78)”

한창훈 작가님이 직접 준비하신 삼치 회,
세 마리로 열 사람의 뱃속을 거뜬히 채웠다.

삼치는 이 책에 “독보적인 맛”으로 소개되어 있다.

“기름지고 부드러워 이빨 없는 노인들에게 좋다. 씹을 것도 없이 녹는데 고소하기 그지 없다.(…) ‘쇠고기보다 삼치 맛’이라는 말이 그냥 생긴 게 아니다.(p.32)”

“이런 건 또 처음 해봐.”

독자들 얘기가 아니다. 한창훈 작가님 말이다. 이렇게 얼음까지 정성스레 깔아 회를 이렇게 ‘데코레이션’하기는 또 처음이라고. 세 마리 잡았는데 열 사람 배를 두둑이 채운다. 이 정도 양이면, 삼치가 적어도 1미터 길이는 됐을 터다. 손님 맞기 위해 지인들과 함께 아침 일찍 쳐낸 회다. 여러모로 ‘독보적인’ 경험이다.

“마치 스테이크를 방불케 할 만큼 두툼한 두께! 풍부한 육즙, 혀끝에서 부드럽게 녹는 질감까지. 내륙에서 나름 회 좋아한다고 먹고 다녔다는 독자도, 난생 처음 보는 맛이란다.

“이래서 육지가면 회 못 먹는다”던 그 말, 농담이 아니다. “삼치회는 내륙 횟집에서는 못 먹는다. 선어 보관이 용이치 않기 때문이다. 막 잡은 삼치를 얼음에 채워놔도 이틀이 한계다. (…) 워낙 부드러워 조금만 거칠게 다루면 살이 뭉그러져버린다.(p.33)”

해가 지고 또 한차례 바다 맛을 건져 먹었다.
독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다가왔다. 플래쉬 세례를 받으며 회를 뜨는 모습

금세 해가 저물어오자 배에서 전기를 끌어와, 조명을 달았다. “잘 달아봐, 각이 다르잖어.” 제대로 각을 잡고 달자, 금세 가두리 위가 환해진다. 그 위에서, 우리는 양식장의 물고기 몇 마리 더 건져와 싱싱한 바다 맛을 보았다. 참돔, 도미, 어른 팔뚝만한 물고기가 금세 앙상한 뼛채로 벌거벗겨진다. 잠깐이었지만, 생계형 낚시꾼 체험에 빙의되어, 너도나도 입맛을 다신다.

“이 정도면 바다가 생선을 그냥 퍼주는 것이다. 변방의 외로움과 거친 환경을 잘 견뎌낸 이들에게 주는 선물이겠다. 섬의 풍요는 이런 모습으로 온다.(p.268)”

저 멀리 학교에서 하교를 알리는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빠알갛게 깜박이는 등대. 멀리 보이는 육지의 검은 실루엣. 그 위로 어둠에 잦아들어가는 하늘을 보는 맛이란. 회 맛과 더불어 평생에 잊지 못할 기막힌 맛이었다.

해 저문 거문도의 풍경
바다는 지금도 출렁이고 있습니다

다음날 아침, 차가운 바다 바람이 눈꺼풀에 어린 잠을 금세 물리쳤다. 숙소 가까이에 있는 한창훈 작가님 댁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했다. 한창훈 작가님 댁을 둘러보? 독자도 있었고, 집 근처를 거닐며 바위 틈에 자라는 해산물을 채취하는 독자도 있었다. 작가님도 함께 나와 직접 칼로, 거북손을 따다 주기도 했다. “이것 저것 신기하지? 집에 가져가 봐라. 2, 3일 지나면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릴 걸!” 소라며 거북손이며 주머니에 고이 담는 독자들을 보고, 작가님이 웃으며 한 말씀 하신다.

돌계단 틈새에 붙어있는 거북손을 작가님이 직접 채취해 나눠줬다.
신기하다고 웅성거리는 독자들.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작가님 표정이 재미있다.

한창훈 작가님 집의 부엌은 들이닥친 아홉 사람의 엉덩이로 꽉 들어찼다. 한 편에 자리잡고 있는 오디오에 작가님이 씨디 한 장을 걸었다. 타임 투 세이 굿바이. 작별을 기념하는 의미로 작가님이 선곡하신 음악 한 곡 감상.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을 음미하고, 어떤 사람은 어제 일을 추억하기도 했을 시간. 그렇게 거문도에서 보낸 시간을 정리하고 일어섰다. 작가님의 배웅을 받으며 여수로 향하는 ‘줄리아 아쿠아’에 올라탔다.

서울로 향하는 긴 여정에 몸은 무겁고, 금세 허기가 진다. 다시 대구로, 부산으로 제각각 흩어진 독자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터. 주섬주섬 주머니에 담아둔 거북손도, 소라 껍질도 어쩌면 잃어버리게 될 지도 모르겠지만, 그날 맛본 고기 맛, 바다 맛은 어째 쉽게 잊혀질 것 같지 않다. 다시 책을 펼친다. 작가님 의 털털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저 때문에 죽어간 해양생물들, 미안합니다. 하필 저는 먹어야 하는 입을 가지고 태어났지 뭡니까. 잠깐 바다를 내다보니 바다는 지금도 저렇게 출렁이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저 깊고 푸른 바다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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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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