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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구리 시린 사람에게 상처가 되는 영화<레터스 투 줄리엣>

줄리엣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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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부모님을 존경한다. 지금까지 35년의 세월 동안 늘 함께 해 오셨기 때문이다. 두 분의 인생은 나뉘어져 있을 때보다 함께 했던 시간들이 더 많다.

나는, 우리 부모님을 존경한다. 지금까지 35년의 세월 동안 늘 함께 해 오셨기 때문이다. 두 분의 인생은 나뉘어져 있을 때보다 함께 했던 시간들이 더 많다. 듣기 좋은 꽃 노래도 세 번이면 질린다는데,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우리 부모님은 그 이상을 뛰어 넘었다. 그리고 여전히 늘 함께하며 서로에게 의지하고 사랑하고 계신다. 물론 가끔은 싸우기도 하시고, 아직까지도 불편해 하시는 부분들이 있지만, 그래도 서로의 빈자리가 생길 때마다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하신다. 정말이지 대단한 분들이다.

나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아니 믿지 않는다기 보다는 믿기 어렵다고 하는 게 맞겠다. 단순히 사랑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신뢰가 깊지 않다.늘 반복적으로 해 왔던 이야기지만, 사람에게 마음을 줬다가 쉽게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내 마음을 꼭꼭 닫아 버리게 한다. 그래서 상처를 받기 전에 피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더 이상 괴로워지고 싶지 않다. 귀찮다. 어느 순간 새롭게 관계를 맺기 시작한 사람들의 이름이 머리 속에 남지 않음을 깨달았을 때, 일편 안심이 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조금 쓸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은 참 예쁜 영화다. 메마른 감정을 적시는 착한 영화다. 50년간 마음 속에 간직해 왔던 사랑을 찾는 일. 그리고 그 여정을 통해 진정한 또 다른 사랑을 찾게 되는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작위적이고 또 판타지고,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이 영화의 강점은 바로 그 순수함에 있다. 그리고 그 순수함이 독이 되는 영화기도 하다. 너무나 상투적이라서 심심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미 너무 많은 곳에서 봐 왔던 예쁜 사랑이야기. 해피 엔딩. 그리고 완전한 사랑을 찾아가기까지 펼쳐지는 갈등과 방황. <레터스 투 줄리엣>의 큰 틀은 다른 로맨스 영화들과 비슷한 지점에 맞닿아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만이 가진 독특한 점은 먼저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풍광을 들 수 있겠다. 영화를 보고 나면 ‘베로나’라는 도시를 당장이라도 찾아가 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따듯하게 내리쬐는 태양빛이 초록의 싱그러움을 만나 스크린을 눈부시게 한다. 그림 같은 경치들이 계속 이어지고, 사랑을 찾아 떠나는 여정 속에서 그 풍광들은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관객들의 마음에 스며든다.




그리고 사건의 매개가 되는 편지라는 소재다. 실제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의 그 ‘줄리엣’에게 사랑의 고민을 편지로 쓰면, 공무원들이 그 사랑에 답변을 해 준다는 설정이 무척이나 신선하고 재미있게 다가온다.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 쉽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음에도 편지라는 다소 불편한 방식을 택한 점이 ‘은근한 사랑’을 표현하는 데는 제격이었다고 생각한다. 더 생각하고, 더 고민하고, 그래서 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편지’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맘마미아>로 스타덤에 오른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맘마미아>보다 훨씬 아름다워졌다. 그리고 그녀의 규정할 수 없는 표정과 연기가 <레터스 투 줄리엣>에 딱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다. 그간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수면의 과학>등 비교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에서 훌륭한 연기를 선보인바 있는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캐릭터를 선보이며 주인공 캐릭터의 결정에 동기를 부여한다. 영국적인 매력의 크리스토퍼 이건의 신선한 마스크도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임에 분명하고, 깐느 영화제에서 두 번씩이나 여우 주연상을 수상한바 있는 바네사 그레이브의 빼어난 연기를 감상할 수 있다는 점도 놓쳐선 안될 요소이다.




영화를 연출한 게리 위닉 감독은 <신부들의 전쟁>, <샬롯의 거미줄>,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가지 없는 것>등 여성적인 성향이 강한 작품들을 연출해 왔다. 때문에 그의 섬세한 연출력에 대해서 크게 우려하지는 않아도 되겠다. 전작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착하다는 것 또한 <레터스 투 줄리엣>과 이어지는 부분이다

갑자기 성큼 다가온 가을 날씨 때문에 마음이 헛헛해진 이들에게 <레터스 투 줄리엣>은 꽤 좋은 선물이 될 수도 있겠다. 다만, 옆구리가 시린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상처가 되는 영화로 남을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이 예쁘고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믿는 나 같은 시니컬한 관객들에게는 비웃음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다. 물론 영화를 보고 나서 마음이 바뀔 수도 있다.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탈리아의 예쁜 풍광을 구경하는 셈치고 극장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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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성렬

정성렬의 아비정전(阿飛正傳)
"아비(阿飛)"는 '아비정전'의 주인공 이름이자 불량한 혹은 반항하는 젊은이를 상징하는 이름이며, "정전(正傳)"은 "이야기"라는 뜻. MOVIST.COM에서 "정성렬의 영화칼럼"을 2년 간 연재했으며, 인터넷 한겨레의 문화부 리포터, '연인', '극장전' 등의 홍보를 맡은 소란커뮤니케이션에서 마케터로 활동하기도 했다. 대학원을 진학하려 했으나 영화에 대한 애정을 접지 못하고 (주)누리픽쳐스에서 '향수', '마이클 클레이튼'등의 작품을 마케팅 했다. 현재, 좋은 외화를 수입/마케팅해 소개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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