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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매니지먼트계의 빅마마 박성혜 (上)

“작가가 스토리를 만들듯 배우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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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독자들에게 박성혜라는 이름은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하지만 한국 영화산업에서 내로라하는 감독과 제작자들이...

일반 독자들에게 박성혜라는 이름은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 영화산업에서 내로라하는 감독과 제작자들이 그녀를 만나보고 싶어 줄을 설 만큼 영향력 있던 시절이 있었다. <씨네21>에서 발표한 ‘2007 한국 영화산업 파워 50’ 조사에서 그녀는 67위로 선정되었다. 그 정도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할지 몰라도 그 순위는 영화산업 전체에 영향을 주는 기획사, 제작자, 투자자, 그리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고 노무현 대통령까지 포함된 순위여서 유명감독들과 배우들도 각 4, 5명밖에 포함되지 않은 순위였다. <씨네21>은 선정 이유로 “박성혜 싸이더스HQ 이사는 국내 최대 매니지먼트사를 실질적으로 관할하는 능력을 높이 평가받았다”고 했다.

당시 싸이더스에 소속된 배우들은 김혜수, 전도연, 지진희, 황정민, 임수정, 공효진, 정유미, 이종혁, 윤진서, 염정아, 송혜교, 김성수, 하정우, 정우성, 전지현, 김선아, 이미연, 차태현, 조인성, 성유리, 공유 등 130여 명이었으며, 그녀는 그 외에도 70명의 매니저를 총괄하는 국내 최대 엔터테인먼트 그룹, 싸이더스HQ의 본부장을 지냈다.

배우 김혜수의 매니저로 본격적으로 매니저 일을 시작한 그녀는 그후 15년 동안 김혜수와 동고동락을 나누었고, 김혜수는 “내가 핸드폰 번호를 외우는 유일한 사람! 15년 동안 함께한 유일한 파트너이자 가장 나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 동지”라고 애정을 표했다. 그런 그녀가 2년 전 그 무거운 자리를 내려놓고 홀연히 뉴욕으로 떠났을 때 김혜수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작가 노희경은 “대중문화산업의 정점에는 배우보다 매니저가 있다. 그들은 배우의 그림자 뒤에서 작가가 스토리를 만들듯 배우를 만든다”고 표현했는데, 매니지먼트계의 빅마마라고 불리는 그녀는 배우의 가장 깊은 본질을 잡아내는 사람이며, 뛰어난 감성, 프로의식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한번 진심을 터놓은 배우들과 오래 일하기로도 유명했다. 12년간 같이 일한 배우 전도연은 “내가 12년 동안 본 그녀의 모습은 누구보다도 프로페셔널한 직업인이자, 많은 스타와 관계자들을 아우르는 대장부적 기질을 가진 여자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징글징글한 언니’ 매니저였다”고 표현했다.

김혜수는 평론가 이성욱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성혜 씨와 계속 일하는 이유는 배우의 본질을 놓고, 이 배우가 진짜로 뭘 하면 좋은지 진지하게 함께 고민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어떻게 하면 빨리 출세하느냐, 어떻게 하면 빨리 돈을 버느냐가 아니라 배우로서 어떤 아이덴티티를 갖추기를 원하느냐에 충실한 사람인 거죠. 끊임없이 배우로서의 자아를 갖도록 힘을 주고, 또 배우가 영리하지 못한 선택을 한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믿어줘요”라고 말했다.

30대 초반에 거대 연예기획사의 본부장에 올랐던 그녀는 지금은 박사학위를 준비하면서 대중문화와 관련된 새로운 일거리를 즐겁게 찾고 있다. 그녀에게 매니저의 세계, 매니지먼트 업계, 매니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한지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화려함만 좇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그녀는 “많은 이들이 동경하는 엔터테인먼트 시장은 어느 산업보다 경쟁적이고, 새로운 패러다임에 급변하는 환경이다. 뿐만 아니라 선배에 대한 ‘우대’나 ‘예우’보다는 ‘진부’나 ‘도태’라는 이름을 쉽게 붙여버리는, 냉정하고 지극히 현실적인 세계이다. 그래서 우리는 때론 이 세계를 ‘진흙탕의 유리성’이라고 부른다”며 현실을 직시하기를 주문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인디음악 관련된 사업 준비하던 것은 잘 되어가나요?

“아니요. 전혀 안 되고 있어요.(웃음) 펜타포트 사무국에서 일하다가 갑자기 갑상선에 문제가 생겨서 수술을 하게 되었잖아요. 그래서 일단 보류하고 있어요.”

박준흠 선생의 대중음악 관련 강의들도 듣고, 관계자들도 만나고 그랬었잖아요.

“그렇죠. 그게 계기가 되어서 하게 되었는데, 퇴원하고 나서도 못 하고 있는 게, 내가 학교 다니잖아요. 기말고사며, 과제가 장난이 아니어서 그거 준비하고 그러다보니까 미뤄졌어요. 다른 일도 좀 생겨서 하게 되니까 음악 일은 당분간 시작하기 힘들 것 같구요. 어차피 음악 일은 돈 벌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좋아해서 그쪽 분야 일을 해보고 싶었던 것인데, 급하게 억지로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때가 되면 그때 가서 하자는 생각을 했죠.”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영화보다는 음악 쪽의 매니저를 하고 싶었다면서요. 여러 가지 권한이 있는 자리에 있을 때 음악 쪽으로도 관심을 넓힐 수 있었을 것 같은데요. 회사에 “가수도 좀 해보자”고 할 수도 있었을 것 같구요.

“그게 좀 달라요. 진짜 좋은 것은 직업으로 삼지 말라는 얘기도 있구요.(웃음) 내가 가수 매니저 하려다가 배우 매니저를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일을 시작할 17년 전 당시에는 매니저라고 하면 전부 가수 매니저를 생각했던 시절이었어요. 내가 매니지먼트 회사를 들어갔을 때 당연히 매니저 하면 가수인 줄 알았지, 배우 매니저인 줄은 생각을 못했다는 거죠.(웃음)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고, 거기는 연기자 위주로 되어 있는 회사라서 자연스럽게 배우 매니저가 된 거고요. 워낙 세계가 다르잖아요. 가수 쪽 일과 배우 쪽 일이. 하면서 옆집에 대해서 흘깃흘깃할 만한 역량이 없었어요.”

어떻게 보면 매니저 일을 시작한 것도 어렸을 때부터 꿈을 꿔온 것이 아니라 우연한 계기에 의해서 되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내가 어렸을 때는 매니저라는 직업이 알려지지 않았고, 최진실 씨 매니저였던 배병수 씨가 죽고 나서 배우 매니저가 알려진 거잖아요. 그게 내가 대학교 때인데요. 어렸을 때는 매니저라는 직업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대중문화 자체에 관심이 많았어요. 어렸을 때 가수가 나오면 가수만 보는 것이 아니고 뒤에 나오는 백댄서들까지 기억할 정도로요. 당시의 나는 대중문화를 다 접할 수 있는 직업이 매니저라는 것은 몰랐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놀라운 게 몇 년 전인가 ‘아이러브스쿨’에서 중학교 동창들 모임을 갔어요. 이런저런 얘기 하다가 중학교 동창이 그 얘기를 하더라구요. “너는 네 꿈을 이뤘네. 너는 중학교 때부터 매니저가 되고 싶다고 했었잖아”라고 하면서 “매니저가 뭔데” 하고 물어보니까 “이런저런 거야”라고 했대요.(웃음) 그래서 “내가, 중학교 때?”라고 반문을 했거든요. 고등학교 때나 대학교 때 가서야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아서 “거짓말하지 마라”고 했더니 자긴 분명히 기억한다고 하더라구요. 어렸을 때부터 그런 것을 하는 자리, 직업, 역할에 대한 꿈은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죠.”

연예계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알았다는 거잖아요.

“그랬나봐요. 그래서 대학교 때 다양한 분야에 대한 아르바이트도 하고, 말도 안 되는 곳 같은 데도 쫓아가서 기획 같은 것도 배워보고, 돌아가는 세계를 접해보고 싶었던 것이 그런 데서 나왔던 것 같아요. 매니저란 직업이 다양하게 뭔가를 할 수 있는데, 다만 자기가 주체가 아니란 것, 그런 부분이 다른 건데요. 거기서 나오는 매력도 있고 그렇죠.”


논노에 다니시다가 회사가 망해서 스타서치라는 매니지먼트 회사에 들어갔잖아요. 그 회사도 금방 문을 닫았구요. 대기업에서 초일류 매니지먼트를 하겠다면서 일류대 출신들만 뽑아서 사업을 한 건데요. 기존의 시스템과 다른 매니지먼트를 해보겠다고 의욕적으로 만든 회사인데, 한국에서는 좀 빨랐다는 생각도 들구요. 한국에서 그동안 일해오던 방식하고 그 회사가 달랐던 셈인데, 거기서 느낀 점도 있고, 시행착오를 보면서 배운 것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기업형 매니지먼트라는 것이 기업이 돌아가는 구조 안에서 매니지먼트를 하는데요. 콘텐츠가 사람이다보니까 기업논리로 해석이 안 되는 부분이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순발력을 요구하는 부분, 직관과 직감 같은 것으로 일해야 되는 부분이 많은데요. 기업은 항상 그런 것들을 해석하고 풀어서 보고 형태를 띠어야 되고, 원인과 결과를 분석해서 왜 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컨펌을 받고 진행을 해야 된다든가, 이런 식인데요. 매니지먼트라는 것이 그때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오너 비즈니스였잖아요. 굉장히 빠르게 진행이 되어야 되는 것들, 이런 부분이 많았구요. 관리자들 중에 매니지먼트를 아시는 분이 없었습니다. 광고대행사 출신들인데, 광고를 알면 매니지먼트나 엔터테인먼트 전반에 대한 이해가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구성된 분들이었는데요. 매니지먼트의 매자도 모르는 분들이 우리를 가르치고, 대학 갓 졸업한 사람들이 매니저라고 하면서 베테랑 연기자들을 관리했으니 될 리가 만무했죠. 다만 오너 되시는 분의 사업적인 비전은 지금 미국의 CAA(Creative Artists Agency)나 ICM(International Creative Management) 같은 대형 에이전시들이 추구하는 모습을 추구하낁고 노력했다는 면에서는 굉장히 앞서갔었고, 매니지먼트계에도 소위 고급인력들이 들어와서 매니지먼트의 질을 높이자는 시도를 해봤다는 점들에서는 의미가 있는데, 아쉽게도 오래 못 갔던 거죠.

케이블TV가 출범하고 같은 해에 회사가 창업했기 때문에 그때 당시 콘텐츠에 너무나도 목말랐던 시기여서 시기적으로 굉장히 적절했었는데, 어떻게 보면 경험 미숙이라든가 이런 것들 때문에 안 됐었죠. 그때부터 기업형 매니지먼트에 발을 담고 있었던 셈인데, 현재의 기업형 매니지먼트들은 그 오너들이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거기서부터 출발해서 오너가 되거나 관리자가 된 사람이 대부분이고, 거기에 CFO 같은 전문인력들이 들어오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기업형 매니지먼트가 어찌보면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구요. 다만 가수 쪽은 정착이 되었는데, 배우 쪽은 다시 춘추전국으로 돌아간 것 같은데요. 지금 기업형 매니지먼트라고 얘기할 수 있는 배우 사이드의 회사는 거의 없잖아요.”


한국영화계는 사람 따라 움직이고, 정에 좌우되는 면도 많은 것 같아요.

“기업형 매니지먼트에서 만들어내는 가수들이 대부분 아이돌 가수들이잖아요. 트레이닝을 해서 가수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지만, 배우는 트레이닝해서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것 같아요. 아이돌 가수 같은 경우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회사들은 7?8년, 아니면 그 이상 오랜 기간 트레이닝을 하잖아요. 하지만 배우가 트레이닝을 받는다고 좋은 연기가 나오고, 인물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트레이닝이 불가능한 것이 배우 사이드이기 때문에 기획사가 주도적으로 힘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장기적으로 가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시스템화되기 힘든 부분이 있구요. 또 조직관리가 다른 거죠. 아이돌은 관리가 되잖아요. 배우들은 데뷔를 하고, 명성을 얻으면 배우가 가지고 있는 개인 잠재력이 그 배우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고, 매니지먼트는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 서포트하는 역할이 주업무기 때문에 업무의 주체관계가 바뀔 수밖에 없는 거구요. 그래서 조직화가 안 되고 기업화가 안 되는 것 같아요. 노예계약이니 뭐니 해서 SM엔터테인먼트 같은 경우를 보면 기간이 굉장히 장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관리라는 것이 들어가고, 시스템화하고, 장기적인 플랜을 세울 수 있는 거지만, 배우는 그러기 힘들어요.”

김혜수 씨 같은 경우 “배우의 본질을 잘 이해해주기 때문에 같이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사업적으로 보면 영리한 매니저는 아니”라고 했거든요.(웃음) “나만의 소신 몇 가지는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하셨는데요. 첫째가 “전체 드라마 제작비 중 배우의 출연료 비중이 30%를 넘어가지 않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배우들을 관리하는 입장이기도 하지만, 영화나 산업의 전체 판을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내가 관리하는 배우가 한두 명이라면 배우와 나와의 릴레이션쉽이라든가 우리의 개인적인 목적만을 위해서 개런티를 무조건 많이 받으면 좋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우리는 130명 정도의 배우들이 있으니까 시장이 죽거나, 산업이 죽으면 공멸하는 거거든요. 스크린쿼터 때 위기를 맞으면서 몸소 느꼈어요. 제작비를 늘리고, 상승시키고, 출연료가 부담이 되면 제작은 취소될 수밖에 없고, 배우 기용에서도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거든요. 전체를 보고 일을 해야 되는 상황이었고, 싸이더스라는 리드 기업이 가지고 있는 위상이라든가 이런 게 있잖아요. 그런 모습들을 보여줘야 될 필요도 있었구요. 그런 책임감이 많은 편이었고, 다행히 같이 일하는 배우들이 너무 그 부분에 연연해서 “누구는 얼마 받는데” 이러지를 않았다는 거죠. 나의 매니저가 하는 일이 나를 위한 최선일 거라는 믿음을 배우가 갖고 있지 않으면 그 관계가 지속되기 힘들고, 많은 분쟁들이 나오거든요. 그런데 우리 배우들은 ‘당연히 최선을 다했겠지’ 하는 생각을 해줬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원칙은 “배우들의 연애엔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요.

“주어진 스케줄에 무리가 갈 정도라든가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당연히 얘기를 하지만, 본질적인 것, 누구를 만나고 누구를 사랑하고 이런 것에 대해서는 전혀 간섭을 하지 않는다는 거죠. 스케줄에 지장을 주거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아무리 의리나 정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의 매니지먼트 업계라고 하지만, 철저하게 해야죠. 어떤 친구랑 오래 일을 했어요. 그 친구가 연애를 해요. 그러면 매니저로서가 아니라 언니로서 동생으로서 사석에서 둘이 의논하고 이러는 경우는 있죠. 언니 동생으로서의 상대지, 매니저로서 연애에 간섭하는 것과는 다른 성격이죠.?

김혜수 씨와는 15년간 일을 하셨고, 전도연 씨와도 12년, 지진희 씨의 경우 본인이 안 하겠다던 배우의 길로 들어서게 한 사람이라 더 각별했을 텐데요. 나머지 배우들은 ‘뭔가 저분들에 비해서 나를 소홀하게 대하지 않나’ 하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내가 오래 일했다고 해서 매일 만나는 것도 아니고,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경우도 있구요. 촬영장에도 한 작품 하는데 한 번 정도 가기 때문에 마음속의 깊이가 큰 것이지, 보여지는 행동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다른 많은 배우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티 나게 행동을 하거나 이러지도 않고, 이들 역시 그것을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매니저가 자기 일에 더 충실하고,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것은 대부분의 연예인들 생각일 수 있잖아요. 그런데 나랑 같이 일했던 배우들이 소유욕을 가지고 독점적으로 자기 일을 해주기를 바라기만 했다면 내가 더 많은 배우들을 관리하고 더 많은 사람을 관리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 올라갔을 때 사이가 안 좋아지거나 컴플레인을 하거나 떠나거나 이런 부분들이 있었겠죠.

그런데 이들이 스타가 되면서 많은 네트워크가 생기고 소위 명예가 생긴 것처럼 이들이 나에게도 매니저로서 누리는 명예라든가 그런 것을 굉장히 배려해준 것 같아요.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다른 배우들하고 얘기를 더 많이 한 경우가 많아요. 같이 일하는 팀장 매니저들도 많이 있고, 나도 나이가 올라가잖아요. 젊은 남자배우들은 내가 부담스러워서 오히려 형들하고 소통하는 것을 원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렇게 점차점차 경계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정리되더라구요. 나는 같이 놀고 싶은데, 나만 가면 젊은 남자 배우들이 얘기를 안 해요.(웃음)”


매니저 하면 남자들의 세계로 인식되는데요. 주먹들도 필요할 것 같고, 거친 면도 많은 것 같구요. 운전사나 보디가드 역할도 해야 할 것 같은데요. 그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으시잖아요. 운전면허도 없이 매니저를 했구요. 그 사이에서 버텨내고, 오히려 130명의 배우와 70명의 매니저를 관리하는 자리에 오른 비결은 무엇인가요?

“그 반대라서 그런 것 같아요. 매니저 하면 주먹, 운전 이 두 가지가 가장 먼저 생각나잖아요. 나는 이 두 가지와 정반대 선상에 있었던 사람인데요. 주먹이 아닌 데다가 여자죠. 게다가 운전을 못했잖아요. 일반적인 매니저와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주목 아닌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고, 뭘 하나 못하면 크게 못해 보이고, 잘해도 더 잘해 보였던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남자가 아니고 운전을 못했기 때문에 디테일한 부분이 더 강할 수가 있어요.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정서적으로 더 섬세할 수 있고, 배우와 관계를 맺는 것에 있어서 더 유연할 수 있구요. 이런 부분이 배우들과 일을 상의하거나 계획을 잡거나 매니지먼트 전반적인 것을 해나갈 때 장점이 되는 거 같아요.

남자 매니저가 “이건 이거야”라고 말할 때 저는 “이게 이래서 이런 것 같지 않니?”라고 얘기했을 때 좀 더 나이스해 보이는 것 같구요.(웃음) 가수들은 모르겠지만, 배우들은 작품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기 때문에 그럴 때 대화하기 더 좋은 상대였지 않나 싶구요. 운전을 못했기 때문에 운전을 할 동안 나는 다른 것을 할 수 있잖아요. 일찌감치 현장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게 더 빨리 올라갔던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예술가들의 섬세한 면을 이해해줘야 되는 부분도 있구요. 사생활이 없이 갇혀 지내야 되는 사람들이라 주위사람들을 더 믿을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이 유리할 수도 있겠네요.

“여자 매니저들이 도덕적인 성향이 더 셀 수 있어요. 남자들은 성향상 유혹에 쉽게 흔들릴 수 있잖아요. 여자들은 소심해서 그런지 유혹에 약하지 않기 때문에 그동안 불미스러운 사고 같은 게 없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신뢰감을 더 높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카리스마는 항상 극적인 순간에 발휘된다고 생각해요. 매번 카리스마를 풍기며 다닐 수도 없고, 나는 그런 재주도 없는 것 같구요. 사건의 연속이잖아요. 순간적인 판단력과 대처능력이 발휘되어야 할 경우 나도 모르게 나오는 어떤 기운, 이런 게 카리스마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결정을 해야 되는 경우가 너무 많았어요. 들으면 바로 결정을 해서 지시를 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그럴 때 능력이 발휘됐을 수도 있구요. 나는 사무실에서 만났을 때와 밖에서 만났을 때의 분위기가 달라요.(웃음)”

그렇겠죠. 술 마실 때 사무실에서처럼 하면 안 되겠죠.(웃음) 어떤 결정을 하거나 어떤 태도를 보였을 때 사람들이 그렇게 느낀 것 같습니까?

“영화홍보대행사 대표가 나?? 그런 얘기를 하더라구요. 월요일마다 내가 주재하는 매니지먼트 회의가 있었거든요. 모든 팀장이 들어와서 하는 회의예요. 모바일 서비스를 하는 SK가 1대 주주여서 모바일 서비스에서 연예인과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봐라, 고 하는 회사의 내부방침이 있어서 팀장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했습니다. <새드 무비>란 영화를 했을 땐가봐요. 우리 배우들이 총출동을 했었잖아요. 그 홍보대행사 대표가 회의에 참석한 거예요. 각 팀장들에게 홍보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그 사람 증언에 의하면 나는 가만히 듣고 있더래요. 결국 누구는 뭐가 안 돼서 홍보를 할 수 없고, 누구는 왜 할 수 없고, 이러는데 내가 가만히 있더래요. 그러더니 나중에는 책상을 내리치면서 “그러면 도대체 니네들은 왜 여기서 월급 받고 있냐. 무조건 한 명이 한 건은 하도록 해라”라고 애들을 닦달을 하는데, 담배를 피면서 놀고 있다가 결국에 그 얘기를 하고 나니까 “저희는 뭘 하겠습니다” 하면서 한순간에 정리가 다 됐대요. 팀장들이 남자들이고, 경력들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을 컨트롤하면서 업무를 이끌려면 당근과 채찍이 다 있어야 되는데요. 내가 만날 소리 지르고 하면 가뜩이나 여자 상사인데, 얼마나 싫겠어요. 나는 화를 내고 이런 캐릭터라기보다는 마지막에 정리하는 타입 같아요. “맘껏 시켜, 난 짜장면” 이런 캐릭터였던 것 같기도 하구요.(웃음) 머릿속에 답을 갖고 있으면서 “맘껏 얘기해봐” 이렇게 얘기하는 스타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 들어가서 매니저 생활을 할 때는 대부분 남자들이었을 것 같은데요. 동료들이 같이 일하기 꺼려하는 부분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동료로 받아들이지 않는 과정들을 극복하고 인정받게 된 계기는 어떤 게 있나요?

“남자들의 세계는 약육강식, 힘의 원리가 작용하더라구요. 여자들의 세계보다. 남자들의 집단을 보면 그중에 대장 노릇을 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어요. 나이가 같아도 주도권을 쥐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을 잡으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평정이 되잖아요. 그것을 이용했던 것 같아요.(웃음) 우리 회사에서도 뭔가 주도적으로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 사람들에게 동료로서 인정받으면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겠구나, 라고 생각해서 그 방법을 선택했었구요. 그 수단이 주로 술자리를 만들어서 대화를 하는 것이었어요.”

김혜수 씨는 “나를 무조건 좋아하고 이해해주는 사람보다는 나의 본질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들이 좋다. 어머니를 비롯해 이명세, 김지운, 최동훈 등 감독님들, 오랜 동안 친구이자 매니저를 해준 박성혜 이사, 그리고 과거에 사귀었던 어떤 남자친구가 내 삶에 가장 영향을 준 인물”이라고 했는데요. 그런 본질은 어떻게 파악하시며, 김혜수 씨의 본질은 뭐라고 파악하셨나요?(웃음)

“본질에 대한 파악은 노하우나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이해를 하려고 마음먹으면 진심은 통하게 되어 있는 것 같아요. 단순한 논리 같은데요. 솔직히 그 얘기도 있어요. 내가 신인매니저일 때 김혜수 씨는 이미 톱스타였고, 그녀가 이 업계 일에 대해서 아는 게 더 많아요. 오히려 나를 가르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운전도 못하는 나를 자기 매니저로 하겠다고 주장을 하고, 내 매니저 길을 열어준 사람이잖아요. 김혜수라는 사람이 나에 대해서 마음을 열면 나는 누구보다 빨리 매니저로 성장을 할 수 있겠다, 첫 시작은 그런 욕심으로 한 거예요. 그녀를 너무 좋아하고 이래서가 아니라요.(웃음) 나중에 친해지고 나서 “옛날에 되게 싫어했었어” 이런 얘기도 하고 그랬는데요. 동기는 그랬구요. 김혜수 씨랑 같이 일하다보니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이라는 표현을 써도 좋을 정도로 순수하고 정직한 사람이에요. 너무너무 정직해요. 기본적으로 여배우들이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지 않잖아요. 폐쇄된 삶을 살고 있고, 소수의 사람과 교제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을 어떻게 이렇게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을 김혜수 씨한테서 매번 놀라워하면서 발견을 해요. 그러니 자연히 나도 진심으로 할 수밖에 없어요. 오히려 내가 보여준 것이 아니라. 그런 본질적인 것 말고도 김혜수라는 배우한테 너무나도 많은 신세를 진 셈이죠. 혜수 씨 아니면 일을 시작하지 못했겠죠. 운전 못하는 매니저는 아무도 쓰지 않거든요. 자리를 잡은 매니저야 운전을 할 필요가 없지만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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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부』, 『부의 체인저』로 남다른 통찰과 새로운 투자 매뉴얼을 전한 조던 김장섭의 신간이다. 상승과 하락이 반복되며 찾아오는 위기와 기회를 중심으로 저자만의 새로운 투자 해법을 담았다.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 삼아 부의 길로 들어서는 조던식 매뉴얼을 만나보자.


문화지원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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