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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연재] 생명을 탄생시키는 어머니는 신이나 다름없다

이상권 「날다」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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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눈이 “아!” 하는 탄성을 지르자 뭔가 몸 밖으로 나왔다. 알이었다. 하늘눈의 피가 조금 묻어 있는 자그마한 우주였다. 알은 오목한 집으로 나오자마자 폭신한 품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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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흔들림의 미학

오리바위 밑에서 시작되는 갈대숲 끝자락에서 나무모심과 거미모심의 자잘한 목소리가 밀려왔다.
갈대들은 그들 특유의 부드러움으로 세찬 바람을 이겨내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몸을 흔들어 이웃과 이웃의 살을 비벼대면서 쏟아지는 햇살을 마른 잎으로 받아냈다. 뿌리에서는 굵고 파란 새순이 은밀하게 나오고 있었다. 갈대밭에는 병꽃나무들이 갈대랑 뒤섞여서 살았다. 나무모심이 그 병꽃나무로 날아갔다. 나무모심이 줄기를 붙잡으면 병꽃나무는 그 무게가 버거워서 흔들렸다. 그렇게 흔들림으로써 새의 중력을 이겨냈다. 병꽃나무는 Y자 모양으로 가지를 펼쳤다. 그들은 바로 그 가지에다 집을 올리고 있었다.

붉은머리오목눈이들은 그 누구에게도 집 짓는 과정을 배우지 않았다. 그저 먼먼 조상으로부터 피를 통해 암호로 내림 된 그 비밀스런 장인정신이 오늘날 이 숲 속에서 살아가는 새들 중에서 최고의 예술가로 만들었다. 고물상도 그들의 집을 보면 “정말 대단한 놈들이야. 바람조차 감탄을 할 정도로 집을 지었군. 이놈들은 바람의 마법사야. 바람하고 가장 잘 어울리는 집이야!” 하고 말했고, 자존심이 누구보다 강한 하늘눈도 인정하기 싫지만 “이 숲에서 사는 새들 중에서 최고의 장인이야!” 하고 칭찬했다. 그만큼 그들은 집을 잘 지었다.
그들은 집 지을 기둥으로 삼은 병꽃나무를 올려다보면서 대충 머릿속에다 설계도를 그렸다.

“비이비이~ 비이~ 병꽃나무 줄기가 좀 가늘기는 해도비이이~ 이 정도면 괜찮겠어.”

“비이비이~ 맞아, 이 가지에다 집을 올리면 무난하겠지비이~ 게다가 여기는 그 누구의 눈에도 안 띌 거야.”

“비이비이~ 비~ 그럼 슬슬 시작해볼까. 박새랑 딱새랑 다들 집을 지은 것 같던데비이~ 우리가 좀 늦었다비이비이~”

먼저 나무모심이 근처에 있는 마른 갈댓잎을 물었다. 나무모심은 발로 갈잎을 잡고 입을 가위 삼아 길쭉한 이파리를 반으로 갈랐다. 반으로 갈랐는데도 자신이 가늠한 것보다 이파리가 넓어서 그걸 다시 반으로 갈랐다. 그제야 이파리 넓이는 자신이 가늠한 대로 나왔다. 그걸 물고 가려고 하니까 너무 길었다.
나무모심은 자기 몸보다 네 배 정도의 길이를 눈어림하였고, 나머지 부분은 입을 톱 삼아서 잘라냈다.
그걸 물고 날아가서 Y자 모양의 가지 아래다 걸쳤다. 바람이 불면 날아갈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못을 박을 수도 없었고, 끈이나 철사로 묶을 수도 없었고, 가지에다 구멍을 뚫어 꿰어놓을 수도 없었다. 갈잎은 너무 가벼웠다. 아니 가벼워야 했다. 그래야만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버틸 수 있었다. 나무모심은 나뭇가지에다 걸쳐놓은 갈잎을 발로 꾹 누르고 거미모심을 기다렸다.
거미모심은 갈대밭을 벗어나 바위틈이나 돌멩이 사이를 비집고 다녔다.

“비이비이~ 이상하다. 이 근처에 있을 텐데. 찾을 수가 없네.”

찔레덩굴 속, 아무리 작은 새라 해도 끼어들기가 어려울 정도로 빽빽한 곳까지 들어가서 무엇인가를 찾다가 다래덩굴을 보고 그쪽으로 날아갔다.

“비이~ 비비비~ 여기 있을지도 몰라.”

거미모심은 다래덩굴에 달라붙어서 껍질을 부리로 벗겨냈다.

“이건 오래되어서 쓸모가 없다비이비이~비이~”

다시 햇살이 잘 드는 찔레덩굴로 날아갔다. 파란 찔레덩굴에는 지금 막 토실토실한 잎새들이 쫑알거리고 있었고, 묵은 가지 사이에는 마른 이파리들이 뭉텅이로 걸려 있었다.

“비이비이~ 저기 있다, 찾았어.”

거미모심은 기쁨의 탄성을 지르며 날아가더니, 묵은 줄기에 걸려 있는 이파리를 부리로 찢어냈다. 붉은 거미가 나왔다. 거미모심은 그놈을 잽싸게 잡아먹고 잔가지에 얽혀 있는 거미줄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이파리 뭉치는 거미가 사는 집이고, 그 주위에는 거미줄이 얽혀 있었다. 거미모심은 부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미줄을 걷어낸 다음 “거미들이여, 제가 온몸으로 모시고 갑니다!” 하고 경건하게 말을 한 다음 병꽃나무로 날아갔다.

“비이비이~ 왜 이렇게 늦었어. 난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어.”

나무모심이 꽁지를 흔들고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미안해. 거미줄을 찾기 힘들어서…… 비이비이~”

“비이비이~ 비이~ 응달에는 없어. 응달에는 아직 거미들이 안 나왔어. 어린 거미들은 햇볕을 먹고살아. 양달진 곳 마른 고사리 줄기에 많아. 양달진 덩굴에도 많고. 내가 가서 찾아올게.”

“아니야, 이제 찾았어. 비이비이~ 어딨는지 알아.”

거미모심은 나무모심이 발로 누르고 있는 갈잎 끝을 나뭇가지에다 대고 물어온 거미줄로 붙였다. 그들은 거미줄을 여러 가지로 썼다. 때로는 끈이 되고, 못이 되고, 풀이 되었다. 오직 부리 하나만을 놀렸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내심뿐만 아니라 기술이 필요했다. 다행히도 거미줄은 끈적거림이 좋았다.

“비이비이~ 됐어, 잘 붙어. 만족해.”

거미모심은 예상보다 거미줄이 잘 달라붙자 기분이 좋았다.
그들은 건축자재를 고르는 눈이 무척 까다로워서 햇볕에 잘 마른 이파리만 물어왔다. 물어온 이파리를 가공하는 품이 훨씬 많은 시간을 잡아먹었다. 그들은 종일 십여 개의 이파리를 물어다가 쪼개고 잘랐다. 거미줄로 갈잎의 끝을 붙여놓아서 바람이 불어도 갈잎은 날아가지 않았다. 물론 비가 와도 끄떡없었다. 그들은 진짜 주인인 거미들보다 더 거미줄을 잘 써먹었다. 그들은 자신의 살이 되어주는 거미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를 새삼 깨달았고, 하루 종일 “거미들이여, 진심으로 모십니다” 하는 말을 수십 번도 더 되풀이했다.


Y자로 갈라진 가지는 위로 갈수록 폭이 넓어졌다. 그 사이에다 집을 동그랗게 만들어서 걸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갈잎을 물어다가 아래를 쟁여야 했다. 이백여 개의 갈잎이 동원된 어마어마한 공사였다. 다른 오목눈이들의 집보다 그들의 집이 곱절이나 컸다. 그만큼 집을 짓기에 까다로운 곳이었음을 알면서도 그들은 애써 힘든 일을 즐겼다.

어느 정도 기초공사가 튼튼하게 되었다고 판단한 그들은 집을 꾸미기 위해서 고민했다. 건축재료가 문제였다. 그들은 갈잎을 바닥공사나 외벽공사용으로만 사용했다. 알이 부드럽게 굴러다닐 수 있어야 하고, 아기들 살갗에 닿아도 아무런 상처가 나지 않아야 한다. 그만큼 부드러워야 하고 열을 오랫동안 품고 있어야 했다. 다른 새들은 갈잎으로도 내부공사를 하였지만 그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들의 눈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알 수 있었다.

나무모심은 날이 갈수록 몸 나는 버들개지에 앉아서 내벽공사에 쓰일 재료를 생각하다가 고로쇠나무로 날아갔다. 고로쇠나무 껍질을 벗겨내고 다시 속껍질을 벗겨냈으나 내벽공사에 쓰일 만큼 부드럽지 않았다. 나무모심은 억새잎을 뜯어내서 쪼개고 쪼개 가느다란 실을 만들었다. 그걸 가지고 돌아오자 거미모심이 고개를 흔들어버렸다. 나무모심은 새털구름이 가득 밀려오는 한낮, 겨우 개미 몇 마리로 헛헛한 배를 달래면서 다시 숲을 뒤지다가 국수나무 가지에 앉았다. 국수나무 줄기에 껍질이 일어나 있었다. 그 얇은 껍질을 한 오리 벗겨보았다. 풀잎보다 얇았다. 부드러웠다. 나무모심은 기뻐서 소리쳤다.

“이거다비이비이~ 이게 원하던 것이다비이비이~!”

나무모심은 벗겨낸 국수나무 껍질을 발로 잡고 부리로 올올이 쪼갰다. 그걸 들고 집으로 가자 거미모심이 한 오리를 받아들고는, 부리가 전해주는 세심한 감촉에 감동을 받은 표정으로 몸을 흔들었다.

“정말 좋다비이비이~비, 어디서 가져온 거야?”

“비이비이~ 어때, 쓸 만하지?”

“환상적이다비이비이~ 부드럽고 강해서 좋아.”

거미모심은 국수나무 껍질을 한 올 한 올 정성껏 엮었다. 그런 다음 나무모심을 따라갔다. 국수나무는 흔했다. 나무모심이 시범을 보였다. 어린 국수나무 줄기에다 꽁지를 붙이고 약간 들려 있는 껍질을 벗겨낸다. 고르게 힘을 주면서 천천히 힘을 쓴다. 조금이라도 서두르면 입에 문 껍질이 끊어진다. 줄기를 한 오리 한 오리 쪼개는 데 더 많은 품이 들었다. 조금만 방심하면 국수나무 껍질은 엉뚱하게 갈라지거나 끊어졌다. 그들은 서로 도울 수도 없었다. 혼자 발로 누르고 부리로 신중하게 쪼개고 쪼개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쓸 내벽공사용 건축재료는 굵기와 길이도 거의 맞아야 했다. 그들은 아무런 도구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나 물어오는 국수나무 껍질은 기계에서 가공되어 나온 재료만큼이나 굵기나 길이가 딱 맞았다. 그들은 약 백오십 개 정도의 국수나무 껍질을 벗겨서 실오라기를 뽑아냈다. 감히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그 실오라기를 입에다 물고 가로세로로 엮어나갔다. 가로세로로 엮어나가려면 실오라기는 가늘어야 했고 쉽게 구부러지지 않아야 했다. 국수나무에서 뽑은 실은 그런 까다로운 조건을 다 만족시켰다.

집 내벽공사가 대충 갈무리되자 그들은 다시 갈잎을 물어다가 외벽공사를 하였다. 결이 고운 국수나무 껍질로 내부공사를 하였고, 방수성이 좋은 갈잎으로 외부공사를 하는 셈이다. 집 속으로 바람이 통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바람 한 점 통과할 수 없도록 완벽하게 갈잎으로 외벽을 둘렀다. 바람이 들어가면 아기들이 얼어죽을 수 있다.

까치나 어치들은 높은 곳에서 살기 때문에 집에다 바람구멍을 남겨두지만 오목눈이들은 다른 방법으로 바람을 피했다. 흔들림이었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원하는 대로 바람이 원하는 만큼 져주는 것이다.
그것을 그들은 ‘바람모심’이라고 했다. 그들은 흔들흔들 흥을 알면서 바람을 모시는 억새숲을 좋아했고, 역시 바람을 모실 줄 아는 병꽃나무한테 자신들의 운명을 맡겼다. 어치나 까치처럼 바람을 모실 줄 모르는 굵고 뻣뻣한 나무를 택했다면 그들도 바람구멍을 막지 않아야 한다. 흔들리면서 바람을 모시는 것이야말로 상처 하나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임을 그들은 잘 알았다.

그들은 다시 이백여 개의 갈잎을 물어다가 거미줄로 붙여가면서 외벽공사를 마무리하였다. 아무리 바람이 짓궂게 굴어도 갈잎은 풀어지지 않았고, 아무리 굵은 빗줄기가 내리쳐도 집 속에 있는 아기들이 안전할 거라는 판단이 들 때까지 두껍게 외벽을 둘렀다.
거미모심이 먼저 집에 앉아보았다. 완벽했다. 천 개가 넘는 건축자재가 동원된 대역사였다.
바람이 불자 갈잎들이 흥얼흥얼 춤을 추었고 그들의 집도 같은 흐름으로 흔들렸다. 신중하게 그 흔들림을 관찰하고 있던 나무모심이 갑자기 소리쳤다.

“잠깐만, 더 신경 써야 할 곳이 있다비이비이~비이!”

나무모심은 집이 왼쪽으로 기울었음을 알았다. 거미모심도 고개를 내밀어서 보았다. 지금은 약간 기울어져 있으나 알을 낳고 아기들이 커지다보면 그 무게 때문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나무모심이 어느새 갈잎을 물어다가 집 오른쪽에다 꿰기 시작했다. 그래야만 집의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거미줄은 단순히 갈잎을 묶어주는 역할만 하는 게 아니었다. 비바람을 막아주는 역할도 하였다. 거미줄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들 종족은 오늘날까지 번성하게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의 생존비결은 거미줄에 있었다.
나무모심의 보강공사가 마무리되었다.

“비이비이~ 이제 됐어. 완벽해.”

거미모심은 꽁지를 위아래로 흔들어댔다.
그들의 집은 백 살 먹은 아름드리 참나무를 쓰러뜨릴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어도 안전했고, 억새들이 울타리를 치고 있어서 바람이 아니라면 그들의 은폐된 집을 찾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했으며, 적당한 높이에 있어서 기어다니는 고양이나 족제비의 눈도 피할 수 있었다. 기둥인 병꽃나무는 너무 가늘어서 족제비나 뱀이 기어오를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뛰어오를 수도 없었다. 하늘을 나는 매나 까마귀의 눈은 저 갈대들이 가려주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집이었다.

6. 생명을 탄생시키는 어머니는 신이나 다름없다


하우스 속에서 겪었던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하늘눈은 한동안 공황상태로 지냈다. 먹이도 잡지 못했다. 어치 도토리황제의 작은 헛기침에도 경기에 가까운 몸짓으로 떨었다. 그들의 소리가 악마의 발톱 목소리로 들렸기 때문이다. 도토리황제는 까마귀 소리뿐만 아니라 고양이나 족제비 소리도 비슷하게 흉내냈다. 도토리황제는 목소리의 마술사였다.

번개부리는 하늘눈에게 정성껏 먹이를 물어다 주었다. 하루, 이틀, 사흘…… 일주일이 지나서야 가슴속 파장이 조금 가라앉았고, 먹이를 사냥할 수 있었다. 번개부리는 하늘눈의 그림자가 되어서 항상 붙어다녔다. 하늘눈 근처에 누군가 오기만 하면 버릇처럼 날아갔다. 그만큼 하늘눈을 지켜주어야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하늘눈은 개미사냥에 푹 빠져들었다. 개미들은 파릇파릇 새잎이 깝죽거리는 다래덩굴이나 찔레덩굴에다 진딧물 목장을 하였다. 하늘눈은 덩굴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진딧물 목장으로 가는 개미 일꾼들을 톡톡톡 쪼아먹었다. 박새 속임수나 오목눈이 나무모심도 개미를 좋아했다. 개미는 워낙 많았고, 그것 때문에 서로 다툴 일은 생기지 않았다.

힘든 일을 갈무리하고 돌아가는 해는 지쳐 보였으나, 그렇게 지치고 나서야 강렬한 빛이 순해지면서 아름다워지는 해를 배웅하려고 구름이 모여들었다. 구름조차 빨갛게 물들어서 붉은 산이 되었다. 그런 세상으로 물오리들이 날아갔다. 하늘눈은 물오리들의 비상이 부러웠다. 자신도 생을 걸고 그곳으로 날아가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으나 그보다 더 강렬한 본능이 배 속에서 꿈틀거렸다. 그때마다 하늘눈은 허기를 느꼈다. 아무리 먹이를 배 속에다 쟁여넣어도 배고픔을 재울 수 없었다. 하늘눈은 숲 바닥에 앉아서 나뭇잎을 부리로 들어내고 발로 땅을 헤집었다. 딱정벌레부터 지렁이까지 닥치는 대로 잡아먹었다.

어느 정도 배가 불러오자 햇순이 옹알이하는 참나무에서 쉬다가 자기도 모르게 집으로 들어갔다. 무엇인가 간절한 부름을 느끼고 있었다. 집에 앉고 나서야 자신이 이곳에 와 있음을 알았다. 아랫배가 아팠다. 하늘눈은 몸을 돌려 바위옷을 물어다가 다른 곳에다 놓아도 보고, 자신의 깃털을 몇 개 뽑아서 바닥에다 깔아도 보고, 밖에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기를 되풀이하였다. 정확하게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몸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이상해. 불안해. 왜 이러지?”

하늘눈은 옆으로 다가온 번개부리를 보면서 자꾸 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괜찮아. 누구나 가끔씩 배가 아플 때가 있어. 푹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번개부리는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안심을 시키면서도 속으로는 그 자신도 무척 불안해하고 있었다. 오늘 낮에 뭔가를 잘못 먹고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까투리가 떠올랐다. 까투리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소리치면서 숲 속을 돌아다녔고, 다른 동료들이 따라다니면서 위로해도 속수무책이었다. 까투리는 몇 시간 뒤에 계곡물 옆에서 숨을 거뒀다. 번개부리는 그런 불길한 생각이 번져오자, 절벽 위로 날아가서 목소리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아름다운 집이 있으니까.”

초저녁 바람은 부드러웠고, 번개부리의 목소리는 군부대가 있는 곳까지 산울림이 되어 날아갔다. 하늘눈도 집을 나와 남편이 있는 곳으로 날아왔다. 하늘눈이 그렇게 높은 곳까지 날아오는 경우는 드물어서 번개부리는 놀랐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내가 자랑스러웠고, 아내한테 힘을 주고 싶었다. 번개부리는 다시금 노래를 하였다.

“나는 당신을 사랑해. 그놈, 악마의 발톱을 만나면, 아니 그놈을 꼭 만나서 내가 복수해줄 거야. 그놈이 반드시 후회하도록 해줄 거야.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해. 해보다 달보다 물보다 내 몸보다 더 소중해.”

하늘눈은 가슴이 뭉클해졌고, 불안하던 마음도 편해졌다. 그들은 밤이 깊어가도록 절벽 위에 앉아서 어둠에 잠긴 골짜기와 별들이 마실 나와 놀고 있는 하늘을 바라다보았다. 가끔씩 물오리들이 색색색! 날아갔다. 숲 바닥에서는 산토끼들이 바스락바스락 뛰어다녔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이 자랑스러워. 너무 행복해.”

번개부리는 아내를 보면서 속삭였다. 그들은 그곳에서 밤을 지새우기로 하였다. 피부에 와 닿는 밤공기가 싸늘했다. 하늘눈은 번개부리의 체온을 더욱 깊게 느끼면서 눈을 감았으나 깊은 잠에 빠져들지 못했다. 새벽부터 다시 아랫배가 땅겼다. 하늘눈은 부리로 아랫배를 쪼면서 참아보려고 하였다. 아직은 어둠의 세력이 강해서 날아갈 수 없었다. 하늘눈은 부리를 꾹 다물고 눈을 감았다가, 배에서 통증이 오면 다시 방향을 틀었다. 아랫배가 팽팽해졌다. 그제야 하늘눈은 알을 떠올렸다. 하늘눈은 어둠 속 벼랑 아래로 몸을 던졌다. 날개가 몸을 편안하게 띄워주었다. 천천히 오리바위에 앉았다. 번개부리가 따라오면서 소리쳤다.

“왜 그래, 어디 아픈 거야?”

“알이 나올 것 같아.”

하늘눈은 곧장 집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망설여졌다. 두려웠다. 자신의 생을 걸고 알 낳는 일을 견디어내야 한다는 불안과 공포가 엄습했다. 하늘눈은 절벽 중턱에 걸쳐 있는 진달래나무로 날아갔다가 되돌아오기를 되풀이하였고, 그때마다 번개부리는 “괜찮아, 괜찮아” 하고 위로하였다. 하늘눈은 몸에서 요동치면서 비집고 나오려고 하는 간질임, 간절함, 통증의 진도를 감지하면서 저도 모르게 집으로 들어갔다.

하늘눈은 집에 앉았다. 오목한 품이 몸에 딱 맞았다. 집은 하늘눈의 노고를 위로하면서 자네야말로 이곳에 앉을 자격이 있다는 식으로, 그 특유의 포근함으로 영접하면서 마음을 안정시켜주었다. 흙탕물처럼 불안하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집이 살아 있는 생명체 같았다. 아련하기는 해도 하늘눈이 아기였을 때 어미의 품 안에서 맛보았던 그런 따스함이었다.

집이 눈을 감으라고 속삭였다. 이제는 시키는 대로 순응하기만 하면 된다고, 집하고 자신은 다른 몸이 아니라고 중얼거리면서 하늘눈은 눈을 감았다. 봄비가 어루만진 바슬바슬한 흙속에서나 느낄 수 있는 꿈틀거림이 하늘눈의 몸속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하늘눈은 저도 모르게 엉덩이를 들썩이면서도, 몸속에서 휘몰아치는 온갖 아픔을 꾹 다문 부리 안에서 삭여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하늘눈이 “아!” 하는 탄성을 지르자 뭔가 몸 밖으로 나왔다. 알이었다. 하늘눈의 피가 조금 묻어 있는 자그마한 우주였다. 알은 오목한 집으로 나오자마자 폭신한 품을 느꼈다. 무사히 알을 낳았다는 안도감에 한숨을 내쉬면서 알을 느껴보려고 애를 썼다. 아직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늘눈은 알의 감촉이 느껴질 때까지 그대로 앉아 있었고, 알 껍질의 단단함이 느껴지자 슬쩍 몸을 들어서 내려다보았다. 푸른빛이 살짝 얹혀 있는 작고 예쁜 알이었다. 첫 알치고는 큰 편이었다. 하늘눈은 그 기쁨을 혼자 누릴 수가 없었다.

“내가 해냈어, 너무 예쁜 알이야.”

“해낼 줄 알았어. 축하해, 축하해,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어머니가 될 거야. 우리 아버지가 그랬어. 생명을 탄생시키는 어머니는 신이나 다름없다고.”

번개부리는 터져나오는 기쁨을 억누르지 못하고 빠르게 떠벌리다가 집으로 들어갔다. 하늘눈이 뽀얀 알을 보고 얼굴에 열이 오르며 들떴다.

“근사하지? 응, 너무너무 근사하지? 어떤 녀석이 나올까?”

“황홀해. 당신은 영웅이야.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어머니가 될 거야. 자랑스러워. 고마워, 이런 황홀한, 이런 경이로움을 맛보게 해주어서.”

번개부리는 진심으로 옆에 있는 하늘눈을 찬양하였는데, 아내가 이토록 위대해 보일 줄은 정말 몰랐다. 저 알이 아내의 몸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신비로워서 자꾸만 품어보고 싶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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