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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하다던 열일곱 살 소녀들의 독백

“힘찬 연어처럼 거슬러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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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규와 승훈이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다. 울산에 있는 한 공업고등학교에 다니고 있고 학교가 끝나면 인근에 있는 통닭 체인점에서 배달 일을 하고 있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시작한 오토바이 배달 일이다.

다시 공부를 시작하기에는

철규와 승훈이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다. 울산에 있는 한 공업고등학교에 다니고 있고 학교가 끝나면 인근에 있는 통닭 체인점에서 배달 일을 하고 있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시작한 오토바이 배달 일이다. 한동안 아르바이트를 쉬다가 한 달 전부터 이곳에서 다시 일을 하고 있다.

“사실 다시는 배달 일 안 하려고 했는데 돈이 필요해서 하게 된 거예요. 서 빙 일은 안전하긴 하지만 사람한테 치이고 힘도 들고 돈도 안 되고, 오토바이 일은 위험하긴 해도 맘 편하고 돈을 많이 주거든요.”

돈이 필요하면 부모님께 달라고 하면 되지 않느냐는 나의 물음에 철규는 폐 끼치기 미안해서 직접 돈을 벌어 쓰고 있다고 했다. 스스로 돈을 벌어 쓴 세월이 오래되다 보니 이제는 돈 달라고 말하는 게 오히려 어색하다고도 했다. 철규와 승훈이는 오후 여섯시 반에 이곳으로 와서 저녁밥을 먹고 하루 평균 네 시간 정도를 일하고 있다. 시급 4천5백 원을 받는데 주말에는 하루 종일 배달 일을 하니까 한 달 평균 수입이 칠팔십만 원 정도이다. 방학 때는 하루 종일 배달 일을 할 수 있으니 백오십만 원 가까이 돈을 벌어본 적도 있다고 한다.

“평균 백만 원을 번다고 치면 삼십만 원은 부모님을 드리고 오십만 원은 내 용돈 쓰고 이십만 원은 통장에 넣어뒀다가 필요할 때 써요.”

한동안 배달 일을 안 했더니 통장에 있던 돈마저 다 써버려서 다시 일을 나왔다는 철규는 인터뷰 도중에도 가게주인의 호출이 오면 곧바로 달려가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나갔다. 헬멧을 쓰지 않은 채다. 장거리는 헬멧을 쓰는 편이지만 단거리 배달 갈 때는 그냥 나가는 일이 잦다고 한다.

철규와 승훈이를 만나러 이곳으로 오는 동안에도 많은 오토바이들이 배달 물건을 싣고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더러는 교복을 입은 친구를 뒤에 태우고, 달리는 자동차들 사이를 곡예하듯 내달리는 오토바이도 볼 수 있었다. 열이면 아홉이 헬멧을 쓰지 않은 채였다. 가끔 헬멧을 쓰고 규정 속도로 달리는 배달 오토바이도 볼 수 있었는데 그런 경우는 대개가 어른이 탄 경우였다. 청 소년들은 배달 일을 오토바이로 하지만 대부분 헬멧을 쓰지 않고 과속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저승에 있을 놈이 이승에 있으니 신기하다고, 그때, 사고현장을 본 경찰이 그러더라고요. 친구랑 오토바이 타고 가다가 에스 자 커브길 돌다 미끄러져서 탑 비슷하게 생긴 비석에 박았거든요. 오토바이는 완전히 다 찌그러졌어요.”

승훈이는 오토바이를 타다가 죽을 뻔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병원으로 옮겼지만 무면허라 보험처리가 되지 않았다. 결국 병원비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나흘 만에 퇴원했다고 한다. 그 사고 이후로는 직접 오토바이를 타지 않고 가게 안의 일을 하고 있다. 자식이 이런 위험한 일을 하는데 부모님의 반응은 어떨지 궁금했다.

“처음엔 말렸죠. 그렇다고 서로 싸우거나 그런 일은 없었고요. 그냥 나중엔 조심해서 타라고 하더라고요.”

공업고등학교, 상업고등학교들은 예전엔 실업계로 불렀다가 요즘 들어 전문계 고등학교라고 부른다. 이름도 정보고등학교, 마케팅고등학교 등 현대적인 감각을 살린 교명으로 바꿔달았지만 전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상황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 열악한 듯하다. 일이십 년 전만 하더라도 기술을 익혀 자격증을 따서 취업을 하는 학생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가난한 집안 탓에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많이 오는 것 같다. 승훈이와 철규가 다니는 학교의 같은 반 학생들 중에는 고3임에도 불구하고 절반 가까이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한다. 대개가 서빙이나 주유 같은, 비교적 안전한 일을 하고 한 반에 평균 다섯 명 정도는 오토바이 배달 일을 한다고 한다. 스스로 용돈을 벌어 써야 할 형편이고, 또 자신이 번 돈으로 부모님께 생활비를 드리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한 달에 사오십만 원 정도나 되는 많은 용돈을 어디에 쓰느냐고 철규에게 물어보았다.

“비싼 반지도 사고, 여자친구한테 선물해주기도 하고, 명품가방, 옷, 그런 것 사서 꾸미는 데 돈을 많이 써요.”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 그런 것 안 사고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생각을 해보지 않았느냐고 다시 물어보았다.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들은 공부하느라 시간이 없지만 우리는 학교 마치고 나면 시간이 많으니까 꾸미고 과시하고 그런 데 시간과 돈을 많이 써요.”


스스로 돈을 벌어 쓴 생활이 오래된 철규와 승훈이는 이미 자신의 삶에 깊이 배인 소비습관을 잘라버리긴 힘든 듯했다. 언제까지 배달 일을 할 거냐는 물음에 승훈이는 졸업하면 안정된 직장을 갖고 싶다고 한다. 그러려면 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것 같단다. 부산 쪽에 있는 예술대학에 진학해서 가수생활을 하는 게 꿈인 승훈이는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공부나 운동 쪽으로 뜻을 두고 꿈을 키우고 싶어했다. 이제 열아홉, 늦어버렸다는 말이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나이지만, 승훈이는 자신이 무엇을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듯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오랜 배달 일과 사고로 몸도 마음도 나이보다 앞서 지쳐버린 건 아닌지, 아이들을 보는 내내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하지 말라고 해야죠. 첫째는 목숨이 위험하니까요.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내 다리 하나 날아가버리면 뭐해요, 이 일은 오래 하다보면 다리 하나는 잃게 되어 있어요. 내가 잘한다고 해도 뒤에서 와서 박아버리니까요.”

오토바이 배달 일을 하려는 후배가 있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냐는 나의 말에 철규는 손사래를 치며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한다. 철규도 신호위반을 하고 회전을 하던 차와 부딪혀서 사고를 당한 경험이 있다. 그 후유증으로 한동안 오토바이를 운전할 수가 없었다. 운전대만 잡으면 긴장감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다시 주인의 호출을 받고 오토바이를 타는 철규, 여전히 헬멧을 쓰지 않은 채 중앙선을 휙 넘어서 반대편으로 달려가는 저 아이들의 미래는 어디쯤 있을까.


음악, 미술, 체육시간도 점점 없어지고

규진이는 지난해 내가 비정규직 선생으로 근무했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만난 학생이다. 나에게 오토바이 배달 일을 하는 청소년들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해준 학생이기도 하다.
규진이가 2학년이었던 지난겨울, 오전수업을 들어가니 규진이는 이미 가방까지 메고 나와 무작정 지금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오늘 입관식하는 후배가 있어서 빨리 영안실로 가야 한다는 거였다. 입관식이라니…… 난데없고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아직 어린 나이의 규진이가 입관식을 본다는 게 나로서는 선뜻 내키지가 않았다. 여러 차례 만류를 했지만 눈물을 흘리며 가겠다고 하는 아이를 어쩌지 못해 담임선생님의 동의를 얻어 보내준 일이 있다. 죽은 후배는 인근 전문계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었고 규진과는 같은 중학교 선후배 사이였다. 오토바이 사고였다. 일요일 아침, 배달 일을 하던 중이었다. 머리를 크게 다친 게 사망의 원인이었다. 여전히 헬멧을 쓰지 않은 채였다.

인터뷰를 위해 다시 만난 규진은 지난해보다는 많이 편안해 보였다. 지난해, 입관식에 가는 걸 허락했으면서도 나는 규진이 받을 충격을 많이 염려했었다. ‘잘 잊어주어야 후배도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는 아주 평범한 위로를 했을 뿐 규진의 속내를 알 수 없었던 나는 사실 많이 염려스러웠다. 가끔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활발하게 뛰어노는 규진을 보며 다행스러워한 것이 내가 한 일의 전부였다. 올해 3학년이 된 규진은 겉보기에는 예전보다 확실히 건강해 보였다.

“그 후배는 가정형편이 그리 나쁘진 않았어요. 어떻게 보면 잘사는 축에 들었어요. 돈을 벌면 자기가 좋아하는 오토바이를 살 수도 있으니까, 오토바이가 아니어도 돈이 있으면 뭐든 살 수 있으니까요.”

죽은 후배의 이야기를 물어보는 게 미안했지만 규진은 담담하게 후배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토바이를 처음 타는 아이들 중에는 속도감을 느끼려고 타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몇 번 아찔한 사고를 당하고 나면 그런 중독에서도 서서히 깨어나지만 그때는 이미 오토바이 아르바이트가 주는 고소득 때문에라도 계속 타게 된다. 규진의 후배는 오토바이가 주는 속도감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오토바이를 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속도감에 빠져드는 이유, 별 이유 없어요. 그냥 멋을 추구하는 것일 수도 있고, 놀이공원 같은 데서 무서운 것을 탈 때 느끼는 짜릿함 같은 거랑 똑같아요. 즐기는 거죠. 시?함, 갑갑함에서 벗어나고픈 마음, 뭐 그런 거죠.”

규진은 고등학생들이 오토바이를 배달 일이나 교통수단으로 많이 이용이용하는 반면, 중학생들은 오토바이가 주는 속도감에 빠져 타는 경우가 더 많다고 했다. 그러나 배달 일을 하는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이 규정 이상의 속도로 내달리는 걸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하다. 오래 타다보니 속도감을 덜 느낄 뿐이지, 속도감에 빠져 있는 건 배달 일을 하는 고등학생들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머무르기에도, 내다보기에도 불안한 미래 때문일까. 청소년들은 ‘질주’ 그 순간만을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고3이 되어 맘 잡고 열심히 공부를 한다는 규진, 가끔 컴퓨터게임을 하고 돈이 생기면 친구들과 함께 술집에 가서 소주를 마신다는 규진이도 자주 내달리고 싶을 때가 있다고 한다.

“전 오토바이를 탈 생각은 없고요, 자전거를 타요. 자전거는 빠르면 빠를수록 점점 재미있어져요. 특히 내리막길 달릴 땐, 오토바이처럼 빠르니까요.”

인문계 학생들은 그래도 대학을 간다는 희망이 있어 견딜 만하다던 규진이도 내달리고 싶은 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점심시간에 잠시 시간을 낼 수 있다는 고등학생들을 만나러 울산 시내에 있는 한 학교로 갔다. 짧은 점심시간, 밥을 먹은 후 남은 잠깐의 시간이 유일한 휴식시간이다. 남학생들이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있다. 학생 수에 비해 터무니없이 좁은 운동장이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서로 몸을 부딪치며 좁은 운동장 사이를 이리저리 달린다. 약속된 장소인 자습실에서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종익이와 승우, 준수를 만났다. 딱히 여가시간이라는 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쉬고 있을 때는 주로 무엇을 하는지 물어보았다.

“학교에서 밤 열 시까지 공부하니까 솔직히 여가시간은 없어요. 집에 가면 컴퓨터 켜서 게임을 하는데, 이건 좀 비인격적인 놀이예요. 노는 상대가 고정되어 있으니까요. 변화도 없고 별 도움이 안 되는 놀이예요. 소모적이잖아요.”

종익이는 세상사는 건 어차피 힘든 일이니까 가능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힘들다고 불평해봐야 달라질 게 없다는 말인 듯하다. 게임보다는 영화를 보며 쉰다는 승우는 진로에 대해 생각이 많은 아이였다. 진로에 대해 탐색할 기회를 제대로 주지 않는 학교생활에 대해 많은 비판을 쏟아놓았다.

“미리 진로를 정해서 의사, 변호사가 된다기보다는 그냥 공부를 잘하니까 의대, 법대 가는 거죠. 진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없어요. 주춧돌 없이 바로 사회로 나가버리니까 어른이 되어서도 진로를 많이 바꾸잖아요.”

승우는 공부 잘해서 좋은 직업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격려하는 사회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한다. 직업에 귀천이 있다보니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쉽게 할 수 없는 현실을 느꼈기 때문이다. 차별 없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며 인정받는 세상, 승우가 꿈꾸는 세상이다.

승우가 현실을 있는 대로 느끼고 표현하는 편이라면 종익이는 자신의 느낌을 어떻게든 이 사회에 적응시키려고 한다. 경쟁에 대해서도 종익이는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니 보완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보완을 한다고 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특기자전형, 대학사정관제……. 나름 보완책이라고 내놓은 정책들은 언제나 경쟁을 더 강하게 몰아가는 쪽으로 기울었다. 경쟁이 강해질수록 뒤쪽으로 밀려나는 건 언제나 가난한 아이들이었다. 경쟁의 속성은 자본주의인가. 세상과 융화하며 살고픈 종익이의 소망이 더 이상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 늦게 온 준수는 교지편집부에서 일하는 학생이다. 학생들을 소개해준 선생님에게 책을 많이 읽는 학생이라고 미리 이야기를 들은지라 나는 독서량이 어느 정도나 되냐고 물어보았다. 준수는 자신은 독서량이 많은 게 아니라 읽은 책 내용을 잘 까먹지 않는, 암기력이 좋은 학생일 뿐이라며 맑게 웃는다. 학교가 갑갑하긴 하지만 동아리활동, 교지편집활동 등을 통해 숨 쉴 곳은 있다는 준수. 가끔 야간자습시간에 선생님 몰래 학교 밖으로 도망나가는 것도 준수에게는 휴식이다. 준수는 이것을 “야자를 짼다”고 표현했다.

“교과서는 너무 주입식이에요. 국어시간에 시에 대해 배우는 것보다도 직접 시를 써보는 시간을 가져야 해요. 글 쓰는 시간이 없어요. 미술, 음악, 체육시간도 점점 없어지고, 영어시간도 원어민 교사하고 공부를 하지만 그 나라의 풍부한 문화를 알 수 있는 시간은 없거든요.”

감성이 풍부한 교육, 차별받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를 원하는 이 아이들의 소망과 우리의 현실은 어긋나 있다. 같은 시간과 공간을 살면서도 어긋난 시선. 종이 울린다. 운동장에 있던 아이들이 교실 쪽으로 달려간다. 경쟁과 주입만 있다는 그곳으로.

야간자습을 앞둔 저녁시간, 저녁을 먹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교실 밖을 돌아다니거나 운동장을 뛰어다닌다. 앞으로 대학수능일까지 며칠이 남았는지를 알리는 표지판이 학교 정문 앞에 놓여 있다. 학생들을 소개해주신 선생님께 여학생들을 인터뷰하고 싶다고 미리 연락을 해두었다. 여학생들이라 좀 더 재미있고 발랄한 생활을 담은 말들이 흘러나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가 됐다.

저녁시간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선생님께서 알려준 ?실을 찾아가 아이들을 부르니 네 명의 여학생들이 쪼르르 달려나와 토끼처럼 깡충 뛰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한다. 이제 갓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올라온 1학년 여학생들이다. 인터뷰는 학교 안의 벤치에서 이뤄졌다. “무엇이든 솔직히 다 말하겠다”고 스스럼없이 말했지만 아이들은 인터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말보다는 눈물을 먼저 흘리고 있었다. 지금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니 ‘우울하다’는 열일곱 살의 소녀들. 교정에 내린 어둠이 짙다.


“사귀고 싶은 친구가 있어도 다가서는 방법을 모르겠어요. 나는 그 친굴 좋게 생각하는데 그 친구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고, 친구끼리 협동하며 잘 지내야 하는 건데 친굴 보면 나도 모르게 경쟁, 경쟁하고 있고, 친구인데, 서로 잘 지내면 좋은데, 이렇게 지내는 게 너무 힘들어요.”

아침 8시에 학교에 와서 밤 10시에 교문을 나선 후에 곧바로 수학전문학원에 갔다가 자정이 넘어서야 집으로 들어간다는 희주는 친구들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했다. 친구뿐만 아니라 선생님들조차도 공부 잘하는 아이, 못하는 아이로 나눠서 차별하는 것 같아 한번 찍히면 그 선생님을 대할 때 어려움을 느낀다고도 했다. 일요일에 교회에 가서 바이올린을 배우는 것 외엔 달리 여가시간이라곤 가져본 적이 없는 희주. 마음껏 악기 한번 배워보는 게 소원이란다.

“남학생들은 운동장에 나가 축구라도 하지만 우린 교실에 앉아 수다 떠는 일밖에 없어요. 그러니 엉덩이만 커지고…….”

여학생이어서 더 힘든 일이 없느냐는 나의 물음에 수지가 답한다. 수지는 이런 갑갑함을 핸드폰 문자를 보내는 일로 해소하고 있다고 했다. 관심이 있는 남학생에게 문자를 보내고 답 문자가 오면 그 문자를 보는 일이 고단함과 외로움을 견디는 힘이라고 했다.

“솔직히 별로 풀 수도 없고, 풀 시간도 없고, 컴퓨터 하다 보면 갑갑함을 잊을 때도 있고, 그러다가 어떨 때는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서 즐기고 와요.”

중간고사가 막 끝나고 성적 결과가 나오는 지금 같은 때가 제일 힘들다는 지현이는 컴퓨터를 하고 가끔 노래방에 가는 일이 우울함을 잊는 유일한 방법이다. 얼마 전 일방적으로 차버린 남자친구를 떠올리면 괴롭다고도 했다.

“학교에서, 예를 들면 5교시 같은 때는 밥 먹고 잠 오고, 공부가 잘 안 되는 시간이잖아요, 그런 때, 특별한 것, 예를 들면 노래 부르고 노는 시간, 한 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을 준다면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엄마, 아빠가 맞벌이라 집에 가면 말할 사람도 없고, 어쩌다 친구들에게 내 속내를 이야기해도 별로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아요. 그런 게 외로워요. 엄마, 아빠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었음 좋겠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으냐는 나의 물음에 연희는 작은 관심이라도 받으며 살고 싶다고 한다. 동그란 눈에 유달리 뽀얀 피부색을 가진 아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비교적 덤덤해 보였던 연희의 내면에도 깊은 외로움이 깔려 있었다. 오늘 나와 인터뷰를 한 네 명의 여학생들은 자신의 속이야기를 밖으로 드러낸 게 처음이라고 한다. 한 학교에서 하루 종일 붙어 지내면서도 마음속 이야기는 전혀 할 수도 없고, 하지도 못했다는 아이들을 보며 가슴이 아려온다. 부모님께조차도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마치 사방에서 조여오는 철판에 갇혀 있는 여린 생명들 같았다. 하루 열여섯 시간을 학교와 학원으로 내몰리고도, 공부를 더 잘하지 못해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아이들. 꿈이 있다면 공부를 더 잘해 선생님께 차별받지 않고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딸이 되는 거라고 한다. 자신을 위해서는 뭘 하고 싶으냐는 나의 물음에 “그저 잠이라도 실컷 자고 싶다”던 아이들의 말을 떠올리며 학교 문을 나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나는 잠시 주저앉았다. 참담함이 길을 막는 듯했다.

전문계 고등학생들은 학교 밖에서,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들은 학교 안에서, 서로의 처지는 다르지만, 상자 안에 갇힌 듯, 외로움과 고단한 일상을 버티고 사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예상보다 훨씬 암울했던 학생들의 내면을 보며 마음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치유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도 가졌다. 희망은 없는 걸까. 학교를 그만둘 수도 없고 유학을 가지도 못하는 대한민국의 고등학생들에게 희망은 없는 건가. “우울하다”는 아이들의 고백을, 그냥 계속 ?렇게 살도록 내버려두는 일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건가. 부끄러운 자책으로 며칠을 보내다가 나는 우연히 ‘희망’이라고 말해도 좋을 청소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울산시 중구 성남동에 있는 대안문화공간, 책마을 ‘페다고지’에서다.

사실을 의심하면

장섭이와 성진이는 지난해 겨울방학 동안 ‘페다고지’에서 열린 다다프로젝트에 참가한 학생들이다. 다름과 다양성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의 이 프로젝트는 다양한 인문학 강좌와 영상, 글쓰기, 연극 등의 기획 강좌를 계획했다. 장섭이는 글쓰기반에, 성진이는 연극반에 참가한 학생이다. 다음 날이 시험이라 많은 시간을 내기 어렵다는 아이들을 점심시간을 이용해 ‘페다고지’에서 만났다. 장섭이가 참가했던 글쓰기반은 르포 쓰기를 중심으로 진행했는데 시장 사람들의 삶 들여다보기, 노동운동가와의 인터뷰가 과정 중에 있었다.

“그전에는 텔레비전에서만 모든 사실을 봤잖아요. 그런데 다다에 참가해서 제가 본 것은 텔레비전 밖 세상이었어요. 경제가 어렵다는 것도 시장을 경험해보니 알게 되었고, 굴뚝투쟁을 하신 이영도 선생님을 만나고는, 노동현실이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고쳐야 할 것이 많다는 걸 느꼈어요.”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뼈저리게 느낀 건 학교는 암기기계를 만드는 곳일 뿐이라는 장섭은 글쓰기반에 참여해서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 훨씬 많다고 한다.

체육교육과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 성진이는 자신은 그래도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하루 종일 교실에 앉아 공부하는 학생들보다 정신적 스트레스는 덜하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연극을 좋아했는데 문화가 빈약한 울산에서는 연극을 볼 수가 없었다. 연극반에 참여해서 직접 출연한 연극이 연극을 접한 첫 경험이었다.

“전 다양한 매체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어요. 연극을 좋아했지만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어요. 무대에서 주연을 해보는 게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는데 다다에 와서 그 꿈을 이뤘어요. 원래 성격이 밝았는데 지금은 더 밝아졌어요.”

소 등급 매기듯, 수능시험은 그런 등급 매기는 시험이라고 말하는 장섭이는 학교생활은 여전히 갑갑하지만 그래도 ‘페다고지’에 와서 많은 경험을 하고 좋은 친구들을 만난 게 살아가는 데 힘이 된다고 한다. 예전에는 학교 안의 세상만 알았는데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나니 힘들 때도 다소 여유를 가질 수 있단다. 눈앞에 보이는 게 다는 아니라는 걸, 삶은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걸 알아버린 걸까.

장섭이와 성진이를 만난 일요일은 때마침 ‘페다고지’에서 ‘정세청세(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세상과 만나다)’가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여 다양한 주제를 놓고 영상도 보고 토론도 하는데, 내가 ‘페다고지’를 찾아간 날의 주제는 ‘의심하기-진실’이었다. 같은 건물 지하에 있는 소극장‘품’에서 ebs e-채널에 나온 영상을 감상하고 다시 이층 ‘페다고지’로 올라온 오십여 명의 학생들은 정해진 조별로 앉아 토론을 시작했다. 중?고등학생들이 섞여 있는 조이다. 의심을 당한 경험, 의심을 해본 경험 등 개인적인 경험에서 토론을 시작하던 학생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토론의 범위를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옮겨가고 있었다.

“거짓 속에 어떻게 진실이 있나요?”

거짓을 의심하면 진실이 보인다는 한 학생의 말에 맞은편에 앉은 학생이 되묻는다.

“권력에 의해 묻혀진 진실이 있잖아요. 왜곡되고 가려진 것을 열어보면 그 안에 진실이 있어요.”

“모든 사실이 꼭 진실은 아니에요.”

“서울 용산 철거, 두리반 칼국수집 철거가 개발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지만 그건 진실이 아니에요. 철거를 의심하면 진실이 보여요.”


의심을 통해 진실을 찾는 학생들의 토론은 네 시간 넘게 이어돁다. ‘정세청세’가 처음 열린 지난해 유월부터 계속 참가하고 있다는 동철이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다. 정세청세에 참여하고부터는 새로운 생각을 가지고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여전히 학교는 답답하지만 객관적인 거리를 가지고 볼 수 있게 되었는데 그 판단기준은 ‘정세청세’에서 배운 인문학이었다고 한다. 이곳에서의 자유로운 토론 분위기와 경직된 학교 교실 분위기가 많이 달라서 더 힘들어지지 않았느냐는 나의 ?꺹에 동철은 오히려 그 반대라고 답한다.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어서 오히려 마음이 편하고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동철에게 ‘정세청세’는 큰 학교였다. 어디에 가서든 기준을 세워주는 학교, 그래서 흔들리지 않고 예전보다 훨씬 즐겁게 살아가고 있단다. 지우는 이 년 전,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스스로 공부를 찾아하는 지금의 생활이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한 달에 한 번 정세청세에 나와서 토론에 참여하고 있다.

“중학교 때, 학생을 때리는 선생님을 보고도 아무 말을 할 수 없는 나 자신에 대해 무력감을 느꼈어요. 오히려 폭력을 정당화하는 친구들을 보며 학교를 더 다녀야 할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학교를 왜 그만두었냐고 물어보니 지우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체벌이 너무 싫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즐겁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학교를 왜 다녀야 하냐는 생각에 고등학교 진학을 망설였지만, 일단 입학을 하고 한번 겪어보자는 다짐을 하고 입학한 학교였다.

“입학식 날, 학교로 올라가는 길이 굉장히 경사가 졌어요. 나는 힘찬 연어처럼, 그렇게 그 길을 씩씩하게 올라가고 있었어요. 좌측통행을 해서 제대로 가고 있었는데, 뒤에서, “야 거기 서”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나한테 하는 소리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그래서 계속 걸어 올라가는데, “너 거기 서라는데 왜 안 서” 그러면서 주먹으로 탁 치는 거예요. 그날 비가 와서 우산을 새로 샀는데 그 우산이 다 부서지고…….”

입학식 날에 선생님에게 당한 폭력은, 더 이상 겪어볼 가치도 없는 학교를 확인해준 일이었다. 부모님께서 많이 걱정을 하셨지만 오랜 시간 부모님을 설득한 후에 지우는 학교를 그만둘 수 있었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생활이 외롭지 않냐고 물어보았다.

“괴로움보다는 외로움이 좋았어요. 한두 달도 아니고 삼 년을 괴롭게 살 순 없잖아요.”

학생들을 만나 취재를 하고 다니는 사이,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고층아파트에서 한 학생이 몸을 던졌다. 몇 년 전에도 같은 일이 있었다. 이제는 너무 흔한 일이 되어 뉴스에서조차 보도하지 않는다는 청소년들의 죽음. 인구 10만 명당 13.5명의 청소년들이 해마다 스스로 세상을 떠나고 있다. 죽음의 원인조차 보도하지 않는 뉴스에선 통계 낸 죽음의 비율만이 보도되고 있었다. 목숨 걸고 일하니까 돈이라도 많이 받아야 한다던 열아홉의 청소년들, 언젠가 다리 하나는 날아가게 되어 있다면서도 통닭을 싣고 오토바이를 타던 그 아이들은 지금 무사할까. 하루하루, 아니 한 시간이 위태로운 아이들 앞에도 희망은 있는 걸까. 제동이 걸리지 않는 질주를 하는 동안에도 우리 사회의 브레이크는 움직이지 않는다.

우울하다던 열일곱 살의 소녀들, 그날 밤, 학교 안 벤치에서 쏟아낸 눈물 속에 그 무거운 우울도 조금은 씻겨나갔기를. 두 달간을 붙어 지낸 친구들에게조차 보이지 않은 속내를 두 시간 동안 만난 나에게 내보이며 울던 아이들. 왜 우리는 울 수 있는 시간조차 맘 편히 가지지 못했나.

내가 ‘희망’이라고 찾은 청소년들은 학교 밖에서였다. 영상을 보고 토론을 하며 마음껏 생각을 드러내던 아이들, 실수한 친구에 대해서도 손뼉 치며 격려하던 그들을 보며, 나는 비록 학교가 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청소년들은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 그러나 대안문화는 하나의 시도일 뿐, 그 자리에는 수없는 희망이 들어찰 수 있을 것이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야간자습, 보충수업의 선택권을 학생들에게 주는 일 등. 그리고 무엇보다 ‘존재’만으로도 귀중한 이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를 바란다. 비교하거나 평가하지 않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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