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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이기에 더욱 기대되는 영화

뜨겁거나 혹은 차갑거나 : <부당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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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거래>는 재기 넘치는 스타일과 보기에 따라 과도해 보이는 액션 장면을 선보였던 류승완 감독의 이전 영화들과 많이 다른 영화다.


<부당거래>는 재기 넘치는 스타일과 보기에 따라 과도해 보이는 액션 장면을 선보였던 류승완 감독의 이전 영화들과 많이 다른 영화다. 하지만 몰락하는 남성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집요함과 느와르적 감성, 밑바닥 인생에 대한 끈질긴 연민 등은 류승완의 이전 영화들과 같은 맥락 속에 담겨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라는 독립영화로 첫 데뷔 이후, 많은 영화들의 잇따른 성공에 류승완 감독은 천재 감독으로 추앙받아왔다. 하지만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짝패>와 <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천재 감독의 신화가 힘을 잃어간다는 평가를 얻기도 했다.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거칠지만 열정과 진심이 통했던 데뷔작 보다 조금 더 성숙한 영화가 나와 주기를 기대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흥행에 대한 조급함 때문은 아니겠지만, 류승완 감독은 <부당거래>를 통해 변화를 추구하게 되었다. 하지만 다양한 필모그래피와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류승완 감독은 여전히 30대의 젊은 감독이다. 데뷔가 빨랐던 만큼 힘을 지속하고 지탱할 수 있는 기한도 꽤 길었던 셈이다.


몰락하는 남자에 대한 연민을 담은 느와르, <부당거래>


<부당거래>의 내용은 거칠고 잔인하다. 초등학교 여학생 연쇄살인 사건이 터지고, 형사 철기, 검사 주양, 건설업체 사장 석구가 그 사건에 얽히게 된다. 거기에 배후 세력까지 사건에 손을 뻗으면서 영화는 단순한 범죄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로 확장된다. 눈을 크게 뜨고 세밀하게 들여다 본 한국 사회는 더럽고, 어지러운 부당거래의 소굴이다. 하지만 류승완의 영화답게 진창에 빠져 질척거리기는 상황을 보여주면서도 날렵한 영화적 재미에도 무게를 실었다. 게다가 류승완 감독은 그런 이야기의 농도에 내로라하는 세 배우의 캐릭터를 앞세운다. 세 인물은 어떻게 보면 전형성에 빠져있지만, 류승범, 황정민, 유해진의 걸출한 배우는 캐릭터의 전형성에 함몰되는 일 없이 균형을 지켜나간다.

세 배우는 진짜 형사, 검사, 조폭 출신 건설업체 사장 같은 사실감을 더하지만, 영화적 허구의 경계를 무너뜨리진 않는다. 세 배우가 부딪히고 조화를 이루면서 만들어 내는 연기의 박진감은 <부당거래>가 내세울 수 있는 큰 장점 중의 하나이다. 소박하고 넉넉한 이미지를 구축한 황정민이 악역으로 돌아왔고, 고상한 척 하지만 비열한 검사 주양 역의 류승범은 날렵한 연기로 강한 개성을 뿜어낸다. 코믹한 조연으로 기억된 유해진은 강한 카리스마로 황정민과 류승범 사이에서 든든하게 중심을 잡아준다. 이들이 어우러진 앙상블은 단단한 찰기가 느껴질 정도로 응축되어 있다. <부당거래>는 류승완이 달라지고자 하는 욕심을 보이는 영화지만, 달라져야 한다는 강박에서는 매끈하게 벗어나 있는 독특한 스타일의 보암직한 영화로 완성되었다.


최근 영등위에서는 <부당거래>에 18세 관람가 등급을 내렸다. 선정성, 폭력성 부분에서 문제는 없으나 ‘형사, 검사 등 수사기관 종사자가 범죄와 비리에 물든 것처럼 보일 우려 때문’에 18세 관람가 판정을 내렸다고 한다. 전체적 이야기의 얼개를 문제시한 것이기에 재심의 신청 없이 <부당거래>는 18세 관람가 등급으로 개봉할 예정이다. 연쇄살인을 다룬 <살인의 추억>이 15세 관람가 판정을 받은 것에 비한다면, <부당거래>의 등급 기준은 정말 ‘부당’해 보인다. 최근 영등위의 심의는 공권력에 대한 비난을 공권력의 행사로 저지하는 우리나라의 현 상황을 보여주는 것 같아 다소 씁쓸함이 남는 하나의 에피소드가 되었다.



류승완 월드, 성숙에 앞선 한결같음


2000년 류승완 감독의 등장은 하나의 현상이 될 정도로 주목받는 일이었다. 류승완 감독의 장편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장선우 감독이 <나쁜 영화>를 찍다 남긴 16미리 필름과 6,500만원의 제작비로 네 편의 단편 영화를 장편으로 엮어낸 영화였다. 당시 독립영화로서 드물게 전국 8만 명의 관객동원에 성공하면서, 스물여덟의 젊은 감독은 그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을 이야기하자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이전에 만들었던 단편영화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의 시작은 98년 만든 단편영화 <패싸움>이었다. 98년에 제작한 380만 원짜리 단편 <패싸움>으로 제4회 부산단편영화제에서 우수작품상을 받고, 99년 인디포럼 영화제에서 차기작 지원 감독으로 뽑혀, 두 번째 단편 <현대인>을 완성할 수 있었다. 각각의 단편은 액션, 호러, 페이크 다큐, 갱스터 등 각각 다른 장르의 영화였지만, 4편을 이어주는 것은 하드보일드 액션의 거칠고 생생한 감성이다. 류승완 감독은 이 독특한 장편영화를 통해 딱 제목처럼 ‘인생사, 죽거나 나쁘거나 둘 중 하나 아니냐’는 시니컬한 분위기를 담아낸다. 영화는 감독의 말처럼 자기 의지를 벗어난 삶,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그리고 집요하게 이어지는 밑바닥 인생에 대한 연민, 류승완 감독만의 그 특유한 정서가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너무 이른 나이에 스타 감독으로 추앙받았음에도 그의 입지는 흔들리지 않았다. 인터넷 영화의 가능성을 실험하던 2001년 제작된 인터넷 단편영화 <다찌마와 리>는 컬트영화로 추앙받았고, 류승완 감독의 인지도는 더욱 높아졌다. 성공적인 데뷔작에 이어, 이슈를 만들어낸 스타 감독이 된 그는 차기작을 선택하기 더욱 쉬운 상황이 되었다. 당시 가장 뜨거운 여배우였던 전도연과 이혜영을 캐스팅한 <피도 눈물도 없이>는 한국 영화로서는 거의 드물게 두 명의 여자 주인공을 내세운 액션 느와르였다. 당시 충무로 최고의 여배우였던 전도연과 중견 여배우 이혜영의 캐스팅은 그 자체로 이슈가 되었다. 류승완 감독이 스타 감독으로 떠오르긴 했지만, 당시 그는 마니아들의 지지를 얻는 밑바닥 B급 영화의 감독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이슈와 함께 대체 류승완이 누구기에, 쟁쟁한 두 여배우를 캐스팅할 수 있었을까, 하는 기대감도 함께 떠올랐다. 하지만, 막상 영화는 너무 낯설었다. 한국판 <델마와 루이즈>를 기대했던 관객들에게 영화는 너무 거칠었고, 시각은 남성 중심적이었다. <피도 눈물도 없이>는 여성을 내세운 페미니즘 영화가 아니었다. 여성과 남성이 대치된 홍콩 액션 영화처럼 여성 주인공을 내세웠지만, 영화의 형식은 남성 느와르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 영화 장르의 폭을 넓혔지만, 많은 대중들과 친숙하게 만나지는 못했다.


동생 류승범과 다시 뭉친 <아라한 장풍 대작전>은 당시 드물게 판타지 액션을 선보인 영화였다. 색다른 장르영화에 한국적 정서를 녹여낸 류승완 특유의 재기 넘치는 연출 스타일이 돋보인 작품이며, 당시 큰 흥행 성공을 통해 류승완, 류승범 형제의 인기가 동반상승하는 결과를 낳았다. <피도 눈물도 없이>가 새로운 영화의 매력 대신 한국적 정서를 포기했던 것에 비하면, 진일보한 모습이었다. 이어지는 <주먹이 운다>는 동생 류승범의 연기가 특히나 돋보였던 영화였다. 밑바닥 인생의 서러움과 아픔이 진심어린 연기로 재현되는 모습에서 둔탁하지만 묵직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완급을 조절하는 능력에 있어서? 류승완 감독은 한결 안정적인 궤도에 오른 것처럼 보인다. 류승완 감독이 집요할 정도로 파고드는 밑바닥 인생의 정서에서는 이전의 한국 영화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낯설고 날선 비린내가 난다. 스스로 체화하지 못하면 표현할 수 없는 막장 인생의 체취와 특이하지만 현실에 발을 담근 캐릭터들이 기성세대와 싸우고, 기득권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쾌감을 선사한다. 시각적 폭력과 육두문자가 난무하는 청각적 폭력 사이에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박진감을 담아내는 류승완의 스타일은 자신만의 영화언어로 표출되는 경지에 이른다. 하지만 최민식과 류승범이라는 걸출한 투 톱 배우를 데리고 강약의 조절을 못해, 최민식 쪽 이야기에 현실감과 감동이 떨어지는 등 균형의 배분에는 다소 아쉬움을 남기고 말았다.


무술감독인 정두홍과 영화감독인 류승완이 주인공을 맡은 <짝패>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그 완성도에 있어서는 결코 실패한 영화가 아니었다. <짝패>는 대놓고 80년대 감성을 드러낸다. 변치 않는 우정을 약속한 친구가 라이벌 구도가 되어 만나게 된다는 도식적인 익숙함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파괴된 전통성 앞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흥행에 성공한 <아라한 장품대작전>에서 멀어지고 초기 작품들의 날선 느낌에 더 가까워진 <짝패>는 극의 흐름보다 극의 흐름을 타고 리드미컬하게 펼쳐지는 액션 장면에 더 많은 공을 들인다. 액션 영화, 라고 한다면 흔히 기대하게 되는 장면들에서 류승완은 일찌감치 한 발 더 앞서 나간다. 그것이 류승완 감독의 영화가 단순한 상업 영화로 분류되지 못하고 장르 영화의 특성에서도 조금 빗겨나 있는 이유다. 2008년 단편 <다찌마와 리>를 장편으로 새롭게 만든 영화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는 재기와 유희정신이 넘치는 영화였다. 대놓고 유치하고, 대놓고 낄낄대는 영화이다. 류승완 감독은 김지운 감독의 <놈,놈,놈>에 앞서 ‘만주 웨스턴’의 스타일을 앞서 보여준다. 2001년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다찌마와 리>의 기억을 떠 올린다면, 이 영화에 대한 대중들의 무관심과 무덤덤한 반응은 아쉽게 느껴지지만, 류승완 감독의 생생한 장난기는 여전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였다.


장르영화의 특성으로 보자면, 액션 영화는 늘 그 균형에 있어서 작가주의 영화보다는 상업영화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류승완의 액션 영화는 상업 영화의 틀거리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류승완 감독은 액션 영화를 통해 사회를 비판하고, 사회 속 소외된 사람의 속내를 들여다본다. 그것이 류승완 감독의 영화를 그저 마냥 신나게 즐길 수만은 없는 이유이다. 다시 <부당거래>로 돌아와서, 이 영화는 류승완 감독이 액션을 정면에 드러내지 않은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이다. 상업성에서 다소 벗어난 액션을 포기했다면, 그의 영화 색깔은 어떻게 변해있을까, 큰 기대를 하게 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우리는 젊은 감독을 향해 그만큼 했으면 지금쯤은 더 성숙해져야 한다고 쉽게 얘기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하면 제자리걸음이라 꾸짖고, 조금 뒤처지면 퇴보했다고 칼날을 휘두르기 좋아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한결같음이 성숙함에 앞서는 경우도 있다. 변화무쌍한 세상 속에서 뚝심을 지키지 못했다면, 어느 누구도 한결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부당거래>는 여전히 류승완스러움을 드러내는 영화이기에 반갑고, 그가 조금 스타일을 바꿨기에 더욱 기대가 되는 영화이다. 류승완이 지속적으로 보여준 한결같음은 그의 내공이다. 그 내공은 뇌관이 되어 곧 폭발할지도 모른다. 아주 날렵하고 재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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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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