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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펑크의 처음시작 - 삐삐밴드 <문화혁명> (1995)

“이거 음악 맞아?”, “그래도 영국에서 하는 음악이라던데…” 삐삐밴드의 처음 시작은 이러했죠. 발라드 아니면 댄서블 리듬으로 양분되던 주류 진영, ‘록’이라하면 밴드가 전부였던 가요에서는 일반적인 음악 기준과는 너무 다른 ‘이윤정’의 보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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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음악 맞아?”, “그래도 영국에서 하는 음악이라던데…” 삐삐밴드의 처음 시작은 이러했죠. 아름다운 발라드 아니면 댄서블 리듬으로 양분되던 주류 진영, 그리고 ‘록’이라하면 테크닉 중심으로 무장한 메탈 밴드가 전부였던 가요에서는 일반적인 음악 기준과는 너무 다른 ‘이윤정’의 보컬, 처음부터 끝까지 ‘안녕하세요’만 무한 반복하는 곡 진행은 음악 팬들에겐 무척이나 생소했을 테니까요. 이들의 뒤에는 헤비메탈과 하드록에 기반을 두었던 그룹 ‘에이치투오(H20)’의 강기영, 박현준, 그룹 ‘사랑과 평화’를 시작으로 김현식, 한영애 등의 음반 프로듀서로 활동해온 ‘송홍섭’이 있었습니다. 가요에서 ‘펑크’의 처음 시작, 삐삐밴드의 데뷔작입니다.

삐삐밴드 <문화혁명> (1995)

딸기는 한 순간에 다의어로 바뀐다. 빨가니 아슬아슬한 이 장미과 다년생 식물은 접시 위에서 스피커 위로 순간 이동을 감행한다. 오선지에 갇힌 음표는 지루해 보였는지 자꾸만 튕겨져 나온다. 재밌지만 기괴한 듯, 통쾌하지만 너무 과감한 듯, ‘딸기’는 심하게 대시(dash)한다. 그리하여 결국. 앞으로 딸기는 특별한 ‘감각’이란 걸 갖게 된다. 젊은 피들이 사랑할 수 있는 “보남파초노주빨강”, ‘퍼엉크’, 개성이 비벼버린 탐스러운 혼색이다.

“자 여기, 딸기 드세요.”

1993년 그룹 에이치투오(H2O)의 해산 이후, 기타리스트 박현준과 베이시스트 강기영은 곧 합작을 모색했다. 힙합과 레이브, 하우스와 레게 등에 입각하여 남한 청소년 일동 거침없는 춤사위 속에 질풍노도를 솎아내던 와중이었다. 점풍기는 이미 댄스 음악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역시 록으로, 그러나 ‘펑크’로 완전히 운전대를 돌렸다. 초면인 이윤정이 곁에 있었다. 아직 크라잉 넛이 말을 달리지도, 델리 스파이스가 「너의 목소리」를 ‘듣도보도’ 못했던 1995년 어느 날이었다.

세 사람이 처음 선보인 「안녕하세요」는 평범하면서도 무언가 달랐다. 이윤정의 경쾌한 보컬 뒤에 방긋대는 코러스와 강아지 소리는 괜스러우면서도 다정했다. 장난을 치는 것도 같았다. 그런데 속지를 펼쳐보는 순간. 단순하게 들리는 가사 뒤에는 의미 있는 괄호 단어가 달려 있었다. 일부러 구증(口證)하지 않을 뿐이었다. “…… 안녕하세요 (신세대 여러분) 잘 가세요 (낡은 사고방식)…… 내일 우리 같이 (文化)여행을 떠나볼까……”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일상성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녀 이름은, 이. 윤. 정.

눈 맞은 청춘을 묘사한 「슈퍼마켓」이나 시인 원태연이 나열한 「요즘 애들 10계명」의 낱말들은 방방 뛰는 비트 사이를 미끈하게 빠져나간다. 천진난만한 「딸기」와 「도레미파솔라시도」에 가서는 이야기와 전달 출구가 모두 대담해진다. 그 중, 이윤정의 표독스러운 연출이 돋보이는 「딸기」는 걷잡을 수 없는 도발로 나타난다. 드럼과 전자음의 수고가 그녀를 더욱 자극하는 듯, 목소리는 극한으로 치닫고 덩실댄다.

이윤정은 이 곡을 통하여 한동안 세기말 신세대의 표상이 되었다. 그녀의 자유분방한 외침이 젊은 대중들에게는 하나의 통쾌한 분출구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은 눈가리개 역할을 동시에 자초하기도 하였다. 「딸기」의 노래 스타일 하나가 그녀의 전부인양, 많은 대중들의 눈빛이 애정보다는 호기심을 담고 있었다.

앨범의 면면을 들춰보면 알 수 있듯이, 1976년생 이 스무 살의 왕기(旺氣)는 노래 외에 작사와 작곡에도 적잖이 기여를 하고 있다. 특히 이분된 성(性)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어울리기」, 장주지몽의 아련함을 선물하는 「빠삐용」 등, 그녀의 가사쓰기는 오히려 평담하다. 다시 눈을 돌려, ‘노래를 잘 한다’라는 것에 대한 고정관념도 그녀로 인해 재고를 요구받는다. 신날 때는 천장 끝까지 오르고(「딸기」 「도레미파솔라시도」) 슬플 때는 미려히 고개를 숙이는(「빠삐용」 「때로는 그대가」) 이 ‘소녀’의 목소리는, 결국 노래란 ‘보여주기’ 이전에 ‘자기점유’임을 가르쳐주고 있다.

한편, 깔끔한 기타 톤이 흐뭇한 꿈결로 안내하는 「낮잠」과 라흐마니노프(Rachmaninoff, Sergey)의 곡을 환각적으로 재구성한 「Star」는 강기영과 박현준이 만든 의식적인 중계항이다. 전반적으로 단순명료한 편곡들 사이로 위 두 트랙은 뜻밖의 감상을 주문한다. 이는 소품 성격의 마지막 트랙 「1995년 7월 9일 1:10':15" AM 2:32」로 계속되어 작품의 정체성을 돌아보게 한다. 곡의 무질서한 공기는 기괴스럽기까지 하다.

앨범에 구가된 음악들은 정갈했다. 강기영과 박현준은 과거 이력으로부터 한 줄 띄어 새로운 칸을 메우고 있었다. 헤비메탈과 하드록에 기반을 두었던 시나위나 에이치투오 때의 ‘고기압’ 사운드와는 안녕을 고한 채, 신규 밴드의 드러머 자리를 공석으로 둔 것만큼 모든 재료들을 가뿐히 이끌어 나갔다. 록이 내재한 허무맹랑한 마초이즘은 무시되고 있었다. 이것은 ‘마에스트로’ 송홍섭과 머리를 맞댄 프로듀싱이 그들에게 ‘펑크’라는 해답을 귀띔한 결과였다.

“‘녹슨 철’은 버려라.” DIY로부터.

그 옛날 유니언 잭 위에 우뚝 섰던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와 클래시(Clash)는 한 때 우리로서는 닿을 수 없는 망상과도 같았다. 문화로써 우국충정도 제대로 못하게 했던 칠팔십년 대의 꼴사나운 치부였다. 그러나 의식과 이행들이 그 벽에 부딪고 그것이 묵묵히 무너져가던 21세기 전야에 삐삐밴드의 <문화혁명>은 작지 않은 물꼬를 땄다. 한국대중음악에 건조된 ‘DIY(Do it yourself) 펌프’ 「딸기」와 ‘이윤정’으로 대표되는 암팡진 저항이었다.

그리고 이윽고 또 하나의 ‘가교’ 역할을 하게 되었다. 후에 홍대에서 폭발한 인디 음악의 생경함을 대중들이 무리 없이 소화하도록 돕는 하나의 지침이 되었던 것이다. <문화혁명>은 물론, 휘황찬란한 전자음의 축제 <불가능한 작전>(1996)까지도 그들은 통과의례로 탄생시킬 수 있었다. 내부 진통 후 고구마를 앞장세웠던 삐삐롱스타킹에도, 이어진 저마다의 활동 중에도 당시를 따라잡는 파급은 없었다. 충격이 컸기에 ‘유쾌한 씨’와 ‘딸기’를 맛있게 나누어 먹은 마니아들은 아직도 그들의 한 방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들에게 남은 것은 이슈뿐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웃었지만 미소 짓지 않았으며, 기억했지만 갈구하지 않았다. 국내 펑크의 첫 공식 기록은 이처럼 왜소했다. 하지만 처녀 출전으로서의 역량은 상당했다. 알찬 자유로 홍수를 이루었다. 가요가 원하고 한국 록이 찾던 바. “이것이 우리들의, 처-음 시작”이었다.

-수록곡-

1. 안녕하세요 (작사 강기영 / 작곡 강기영, 박현준)
2. 슈퍼마켓 (강기영 / 강기영, 박현준)
3. 딸기 (박현준 / 박현준, 강기영, 이윤정)
4. 요즘 애들 10계명 (원태연 / 강기영, 박현준)
5. 빠삐용 (이윤정, 강기영)
6. 낮잠 (작곡 박현준, 강기영)
7. Star (편곡 박현준, 강기영)
8. 도레미파솔라시도 (작사 강기영 / 작곡 강기영, 박현준)
9. 때로는 그대가 (박현준 / 박현준, 강기영, 이윤정)
10. 어울리기 (이윤정 / 박현준)
11. 사랑 (박현준 / 강기영)
12. 1995년 7월 9일 1:10':15" AM 2:32

프로듀서 : 박현준, 강기영, 송홍섭

글 / 김두완(ddoobari@hanmail.net)

제공: IZM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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