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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연극 ‘오세습’의 인기 비결은? -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세탁소를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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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 세탁소가 지난 9월 16일자로 대학로를 지킨 지 무려 5년이 되었다. 소극장 연극으로는 이례적인 기록이다. 기록으로 치자면, 이 연극은 할 말이 많다.

오아시스 세탁소가 지난 9월 16일자로 대학로를 지킨 지 무려 5년이 되었다. 소극장 연극으로는 이례적인 기록이다. 기록으로 치자면, 이 연극은 할 말이 많다.

2003년, 이 작품을 처음 올린 예술의 전당 무대에서는 전회, 전석 매진 기록을 달성했고, ‘올해의 베스트 연극’ ‘동아 연극상’ 연극협회 우수 연극상 등을 수상했다. 2005년, 혜화동 로터리에 당구장을 개조하여 연극 최초로 전용극장을 건립하기도 했다. 100석 소극장의 기적을 일으키며 관객몰이에 기염을 토하더니, 2009년에는 전국 21만 관객을 돌파했고, 그해 윤당아트홀에 또 다른 터를 마련했다. 올해에는 놀라운 소식이 더해졌다.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연극의 대본이 수록된 것. 현재 공연 중인 작품으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소박하지만 정겹고, 세련되지 않지만 인간미 물씬한, ‘오아시스 세탁소’의 영업 기조 덕분이다. 연극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역시 그런 매력으로 대학로 관람객들을 사로잡았다. 과연 어떤 매력이 그 많은 관람객을 이 작은 세탁소로 불러들일 수 있었을까.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세탁소를 하나?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공연 중 한 장면

오아시스 세탁소를 찾은 지 세 번째다. 한 번은 자의로, 한 번은 친구 추천으로 본 기억이 난다. 그때마다 극장은 달랐지만 무대는 여전했다. 손으로 쓰윽 만지기만 해도 이내 먼지가 피어오를 것만 같은 수백 벌의 옷과 낡은 소품이 무대를 빽빽하게 채우고 있었다.

배우들은 이 무대에 올라 공간을 채우는 게 아니라, 도리어 세탁소 공간을 확장시킨다. 옷가지 틈새에서, 문틈, 계단 틈에서 불쑥불쑥 등장하는 배우들이 마음껏 뛰고 움직이기에 이 공간은 좁아보이지가 않는다. 어쩌면 웃거나 깜짝 놀라는 사이에 보는 사람의 마음을 한 뼘 한 뼘 넓혀나가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예. 안녕하세요. 네, 허허허.” 어수룩한 매력을 자랑하는 강태국(조준형 역)도, 그대로다. 난처한 듯 어물거리는 말투에 객석은, 그가 입을 열 때마다 웃음을 터뜨린다. 괄괄하고 수더분한 장민숙(문상희 역)은 첫 장면부터, 특유의 애교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강태국이 유쾌한 웃음을 유발한다면, 장민숙을 보고 터뜨리는 웃음은 훈훈한 웃음이다. 소극장을 여러 번 매우는 웃음소리가 인물들이 바뀔 때마다 다르다.

유학을 가고, 팔자를 고치고, 어머니 호강시켜드리고 싶은 각각의 꿈을 가진 단골손님들이 떠들썩하게 세탁소를 들고나느라 세탁소는 잠잠할 틈이 없다. 그리고 갑작스레 이곳을 습격한 일가족에 의해 세탁소는 발칵 뒤집혀진다.

단지 작은 세탁소에 닥친 사건이 아니다. 빛을 잃어가고 있는 작은 가치들에 대한 세상의 습격이다.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세탁소를 하냐!”는 푸념이 관객의 마음에 파고드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누구나 세탁소같이, 작지만 소중한 것 하나쯤 마음에 품고 있기 마련이니까. 누구나 남들이 인정해주는 크고 좋은 것만을 따라 살지는 않으니까. 적어도 저녁시간 대학로, 이 좁은 공간에 모인 사람들이라면 말이다.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롱런의 비결은?

한자리에 모인 출연 배우들과 5주년 소회를 나누었다.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5주년을 축하하며, 출연 배우진을 만났다. 5주년의 소회를 물으니, 표현은 각자 다르지만, 다들 고맙다는 얘기가 한목소리처럼 터져 나온다. 그들에게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이하 오세습)의 롱런의 비결, 특별한 매력에 대해 물었다.

1.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누구나 “저건 내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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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민숙 역의 문상희(왼쪽), 염소팔 역의 이인호

“내가 생각하는 세탁소 아줌마는 우리네 엄마를 대표하는 역할이다. 이 작품을 하면서 저도 엄마를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진짜 엄마가 되고 나서 연기해보니, 이전에 할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이 느껴지더라. 이런 걸 공감하는 어머니 관객들이 내 편을 많이 든다.(웃음)”

세탁소의 안주인 장민숙 역의 문상희는, 초연 때부터 세탁소를 지켜온 원년멤버다. 결혼과 출산 등으로 잠시 오아시스를 떠났다 복귀했다. “복귀 했을 때 눈물이 다 나더라. 쉬는 동안 연극이 정말 하고 싶었다. 나를 기다려준 무대가 있다는 게 정말 감사했고, 앞으로도 계속 오아시스 무대에 서고 싶다.” 그녀가 밝힌 <오세습> 의 매력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와 이야기.

염소팔 역할의 배우 이인호도 이 점을 꼽았다. “아이부터 어르신들까지 모두 좋아한다. 아이들은 꺄르르 웃고, 어른들은 흐뭇하게 공감하면서 볼 수 있는 연극이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2. 가족 같은 단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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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엄마, 허영분 역의 서희정(왼쪽), 노숙자 역할의 정래석

극중 소녀 엄마와 허영분 역을 맡고 있는 배우 서희정은, “배우들끼리의 리듬이나 흐름이 있다. 서로간의 약속이 잘 이루어지고, 다른 작품에 비해 가족 같은 느낌이 있다.”며 단원들 사이에 친밀한 관계를 그 비결로 꼽았다.

가족 같은 사이라는 게 예삿말이 아니다. “오늘 누가 아프거나 무대에 오르지 못할 일이 생기면, 역할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친구가 한 시간 안에 달려온다. 급체나 갑자기 쓰러지는 일이 있어서 다섯 번 정도는 그렇게 공연이 올라간 적이 있었다. 집결력이 남다르다.” 조준형의 말이다.

오아시스를 함께 꾸려가는 배우들 뿐 아니라, 심지어 거쳐 간 배우들까지 항상 가족 같은 마음으로, 준비되어 있다는 얘기. “배우들이 공연 끝나고 자기 옷을 챙겨간다. 언제든지 달려와 무대에 바로 설 수 있도록.(웃음)”

3. 훈훈해서 더 특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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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옥화 역의 우승림(좌) 조명, 음향 오퍼레이터 유향미

“그냥 웃기는 얘긴 줄 알았는데, 은근히 감동도 있네.”

공연이 끝나고 극장을 빠져나가는 길에 한 커플이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떠들썩하게 웃다가도 마음을 적시는 연극, 오아시스 세탁소라는 이름이 예사 이름이 아니었다. 거칠고 난폭한 이야기, 막장 드라마라는 오명이 공공연히 붙여지는 이야기들 속에서, <오세습> 이라는 훈훈한 연극은 오히려 독특하게 다가온다.

습격 사건의 중심이 되는 역할인 서옥화와 나양미 두 역을 맡고 있는 배우 우승림은, 이러한 점을 <오세습> 의 매력으로 꼽았다. “요즘 많은 미디어에서 자극적인 장면들을 내보내고, 그런 것에 사람들이 점점 익숙해 있잖나. 그런 것들이 인간 본연의 좋은 것들을 끌어내는 것은 아니다. 따뜻해서 눈물을 흘리고, 웃을 수 있는 이 연극이 선한 마음을 자극하는 것 같다. 인간 본성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앞으로 세대가 바뀌어도 누구나 즐겁게 볼 수 있는 연극이 아닐까 싶다.”

이 연극의 훈훈함은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올해 중학교 교과서에 연극의 일부 대본이 실린 것. 조준형은 ‘대대손손 명예가 될 일’이라고 기쁨을 드러냈다. “많은 작가들 중에 교과서에 실리는 작가가 몇이나 되는지 생각해보았다. 유치환, 한용훈, 조지훈. 이런 작가들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는데, 우리 공연이 교과서에 실렸다는 소식이 정말 영광스럽게 들렸다. 내 얼굴도 나오지 않나.(웃음) 두 권이나 사두었다.”

4. 연기인지 실제인지? 배우들의 혼연일체 열연

배우들은 점점 자신의 역할에 닮아간다고 고백했다. 1인 2역을 맡고 있는 서희정은, 딸에게 용돈을 준 세탁소 주인을 성추행범으로 오해하고 횡포를 부린다. 다른 역인 허영분은 사치스럽고 돈 밖에 모르는 역할이다. “아들이 있는데, 실제 소녀엄마 역을 할 때는, 이전에는 생각지 않았던 사회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된다. 허영분 역할 일 때는, 또 그렇게 성격이 바뀌어 간다. 이것저것 사고 싶고, 살도 빼서 이런 저런 옷도 입어보고 싶다.(웃음)”

무대 위에서 섹시한 매력을 한껏 발산하는 박아주, 안미숙 역의 이희재도, 마찬가지라며 웃었다. “옷 입는 스타일도 캐릭터를 닮아가고, 심지어 다리를 벌리고 앉아있을 때도 있다.(웃음) 안미숙은 원래 어리바리한 캐릭터인데, 내가 원래 미숙한 부분이 있어서 더 잘 묻어나오는 것도 같고.(웃음)”

반면에, 캐릭터 같은 연기가 아니라, 기존 캐릭터와는 ‘다른’ 연기를 하려고 노력한 배우들도 있다. 오랜 시간 같은 역을 맡으며, 자신만의 캐릭터로 탈바꿈 시키고자 노력한 세탁소 부부, 조준형과 문상희가 그렇다. 문상희는 “전형화 된 어머니 역할이었지만, 지금은 거의 배우 문상희의 모습이 더 드러난다.”고 말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어머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연기가 남다르게 다가오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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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국 역의 조준형

조준형은 강태국과 자신의 성격은 정반대라고 말해 모두의 웃음을 터뜨렸다. “분장실에서 매번 화내고 짜증내는 실제 모습과, 늘 웃고 관용적이고 넉넉한 강태국을 연결시키는 데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그동안 악역을 많이 맡다가 이렇게 착하고 바보스러울 정도로 순진한 역할은 처음 맡았다. 무대 안에서 늘 양보하고, 손해를 자처하다 보니까, 관객들 사랑을 예전보다 훨씬 많이 받게 되었다. 외적으로 보기에 강태국은 남루하고 보잘 것 없지만, 관객들의 사랑의 두께가 말할 수 없이 컸다.”

특히나 5년간 2000여 회의 공연을 쉬지 않고 감당한 조준형에게 캐릭터의 문제는 남달랐을 터. 매너리즘을 피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밝혔다. “5주년 바로 전에 한 달간 영국에 다녀왔다. 어마어마한 횟수의 공연을 하면서, 강태국을 변화시키고, 반복되는 것을 극복하고자 노력했는데, 한 달간 대사를 잊고 쉬다 보니 오히려 자연스럽게 새로운 것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시도해봤는데, 사흘이 지나니 다시 예전의 강태국이더라.(웃음) 역시 사람은 적응력이 빠르고 집착이 강하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배우 서희정은 5년 째 자리를 지켜준 조준형 선배가 있어서 <오세습> 에 큰 힘이 되었다고도 했는데, 아쉽게도 조준형은 이번 5주년 기념 공연을 마치고 무대를 떠난다. “오아시스의 옷을 벗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다른 후배들이 해봐야 또 다른 오아시스가 나올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빠지기로 작정했다. 발전적인 의미로, 정 끊기 작전에 돌입했다.(웃음) 다른 장르에 가서도 오아시스의 기적을 이루려고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오아시스는 계속 갈 거라는 믿음이 있다.”며 오아시스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5. 꿈이 되는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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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딩 강대영 역의 박은미, 배우지망생 역의 최상민

관객들만큼이나 <오세습> 무대를 거쳐 간 배우의 숫자도 적지 않다. 조준형은 “이 무대에서 걸음마를 배워 배우가 된 친구들이 53명쯤 된다.(웃음)”고 말했다. “걷지도 못했는데 뛰기도 한 친구도 있고, 날기까지 한 친구가 한 3명이던가?(웃음)” 이곳을 ‘오아시스 연기공작소’라고 부를 정도로 이 무대에서 꿈을 이룬 배우들이 많다. 지금도 4개월 단위로 몇몇의 배역들이 교체되고, 새얼굴이 오아시스 세탁소에 오른다.

극중 고등학생 강대영 역을 맡고 있는 박은미는 “이 작품은 배우라는 꿈을 꾸게 한 연극”이라고 말했다. “이 공연을 배우가 되기 전에 10번 정도 봤다. 볼 때 마다 재미있고, 배우가 바뀔 때마다 느낌이 다르더라. 극단에 들어와 4개월가량 음향을 맡았고, 지금은 4개월 째 무대에 오르고 있다.”

배우 최상민 역시 관객으로 <오세습> 을 처음 접하고, 공연을 하게 된 케이스. 그는 극 중에서 배우를 꿈꾸는 중국집 아르바이트생 역할을 맡고 있다. “전영민이라는 캐릭터는 저와 같이 배우를 꿈꾸는 사람이거든요. 아줌마 몰래 세탁소에서 옷을 빌려서 오디션을 보러 다녀요. 아저씨가 주는 옷이 이 청년에겐 희망인거죠. 그 희망을 받고 꿈을 꾸는 역할인데, 제가 그렇게 희망을 받듯 관객들에게 제 역할이 꿈과 희망으로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오아시스 세탁소가요. 이 자리에서 30년이에요~”

첫 장면에서, 세탁소의 안주인 장민숙이 관객을 향해 너스레를 떨며 말한다. 이 대사가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세탁소를 하냐?”고 묻지만, 바로 이런 사람들이 지금 같은 세상에도 ‘오아시스 세탁소’를 운영한다. 이런 연극에 많은 관객들이 끊임없이 호응해주고 있다니, 한편 다행스런 마음도 든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1등만 기억하는 세상, 크고 좋은 것만 우대받는 요즘 같은 세상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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