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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강연회]처녀 귀신은 왜 흰 소복을 입고 나타날까?

처녀 귀신은 있는데 왜 총각 귀신이나 선비 귀신은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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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는 데도 개의치 않고 오는 독자들, 그들은 도대체 뭐가 궁금했을까? ‘귀신?’, ‘처녀?’ 아니면 ‘죽음?’. 아마도 그 모든 것이 궁금했을 것이다, 우리 옛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귀신, 그것도 처녀 귀신의 존재와 사연, 죽음 등등 호기심과 흥미가 당겼을 테니.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던 금요일 저녁, 어디선가 으스스한 우비 입은 귀신이라도 나타날 것 같았던 날에 ‘처녀 귀신’을 만나러 갔다. 이런 궂은 날의 강연은 누구라도 꺼릴 텐데 혹여 독자들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닐까, 관계자도 아니면서 걱정을 했더랬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기우였을 뿐. 시간이 가까워오자 하나둘씩 모여드는 독자들은 연령이 다양했고, 남녀의 구분도 딱 좋았다. 비가 이렇게 내리는 데도 개의치 않고 오는 독자들, 그들은 도대체 뭐가 궁금했을까? ‘귀신?’, ‘처녀?’ 아니면 ‘죽음?’. 아마도 그 모든 것이 궁금했을 것이다, 우리 옛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귀신, 그것도 처녀 귀신의 존재와 사연, 죽음 등등 호기심과 흥미가 당겼을 테니. 사실은 나도 그랬으므로 이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강연을 듣겠다고 온 게 아니었던가.

이 날의 강연은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키워드 한국문학 여섯 번째 책인 『처녀 귀신』의 저자 최기숙 교수님이 해주셨다. 이미 책을 읽어 ‘처녀 귀신’의 존재를 다 알았으나 눈으로 읽는 것과 직접 쓰신 저자를 만나 귀로 듣는 일은 또 다른 거였으므로 최기숙 교수님이 들려주는 귀신이야기에 빠져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나, 나이가 들었으나 귀신이야기는 언제나 흥미진진.

강연에 들어가기에 앞서 저자는 질문을 하나 던졌다. ‘누군가의 전기를 쓰고 싶다면 그 상대는 누구인가?’ 독자들이 쭈뼛쭈뼛하더니 하나둘씩 손을 들었다. 출판업을 하는 사장님의 열정의 일생을 그려보고 싶다, 평생 자식을 위해 살아온 엄마의 일생을 정리해보고 싶다, 또 이미 그 전기가 나와 있지만 그럼에도 궁금해서 꼭 써보고 싶은 스티브 잡스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나왔다. 저자는 그렇다면 거꾸로 질문을 하겠다며 ‘나’의 전기를 써 줄 사람을 찾는다면 누구에게 의뢰하고 싶은 건지 생각해보라 했다. 한번도 누군가의 전기를 써보겠다거나 내 전기를 누군가가 써주면 좋겠다고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들처럼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나도 고민을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일생에 대한 서술은 내가 타인에 대해 쓰는 동시에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내가 누구에게 위임된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고 폭력적이며 난폭하다고 생각한다. 서술은 사후에 발생하는 것이므로 모든 글쓰기는, 더구나 나에 대해 누군가 썼을 때 그 글은 내가 모르는 미화된 다른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저자가 말을 한다.

어라, 그러고 보니 그렇구나! 사람들은 죽은 사람에 대해선 일단 호의적인 감정을 표하고 보니까 말이다.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최근에 던지는 질문 중에 ‘과연, 나는 한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이 있는데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겉으로 드러낸 형태만 보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를 이해한다며 상대가 써 놓은 글을 읽는다면 깜짝 놀랄, 끔찍한 환상이 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전기라는 게 어찌 보면 한 사람의 미화된 인물전인 셈이다. 알고 보면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하나의 업적으로 인해 미화되고 존경받을 수도 있는. 그런 점에서 저자의 말에 매우 공감을 했다. 한데, 처녀 귀신은 그렇지 못했다. 아무도 그녀의 죽음에 대해 미화하지도 평가하지도 않았으니.

“처녀 귀신은 다르다. 귀신은 무섭게 나타났지만 그건 그 사람의 본질이 아니라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투영된 존재이다. 처녀 귀신은 아무도 그녀의 일대기를 서술하지 않았기에 스스로 나타난 강한 자의식을 가진 주체이다. 그 힘은 사회를 전복시키고 삶과 죽음을 뛰어넘을, 강렬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두렵고 무섭다. 그런 차원에서 처녀 귀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버려지고, 소외된 주체의 인생을 이해하려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그 처녀 귀신을 죽게 만들고, 죽은 후에는 왜 편안히 갈 수 없는 것일까? 이것에 관한 관심이야말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타인에게 보여야 할 배려와 관심, 가치의 표현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처녀 귀신이 되어야만 했던 이유


이번 강연은 모두 14개의 주제를 가지고 그 주제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저자는 책 제목을 『처녀 귀신』이라 정하고 “조선시대 여인의 한과 복수”라는 부제를 달았다. 그 이윤 이렇다. 조선시대에서 처녀 귀신이 직접 복수하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처녀 귀신들은 합리적인 관리를 찾아가 합법적으로 복수한다. 근데도 복수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유는 개인적인 한을 사회적으로 복수해주고 그것을 신원(伸寃)해주는 사회적 장치에 윤리와 법이라는 매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14개의 주제 중 그 첫 번째는 ‘왜, 처녀 귀신인가?’ 하는 처녀 귀신의 문화적 표상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것을 필두로 ‘처녀 귀신의 출현 법칙’, ‘왜 처녀 귀신이 되었는지’, 또 ‘처녀 귀신이 우는 이유’와 꼭 ‘소복’을 입어야 하는 배경에는 무엇이 숨어 있는지, 고소설에 나타난 ‘자살의 원인과 그 성공률’, ‘환생의 딜레마’와 ‘저승에 관한 상상력’ 등등 처녀 귀신과 관련한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지면 관계상 모두 말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관심 있게 들었던 이야기를 하려 한다.

우선 ‘왜 처녀 귀신인가?’ 하는 점이다. 처녀 귀신이 가진 문화적 표상성에는 이런 것들을 들 수 있다. ‘젊은 나이에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억울한 죽음이다.’, ‘죽어서도 저승에 가지 못한다.’, ‘ 억울함을 하소연하러 현실에 나타난다.’, ‘그녀를 본 사람은 죽는다.’ 예를 든 것처럼 대부분 처녀 귀신의 죽음은 억울하다. 요즘과 달리 조선시대에서 처녀로 살아가는 삶은 고달픈데 ‘삼종지도(三從之道)’라는 말이 있듯이 결혼 전에는 아비의 말을 따르고 결혼 후엔 남편의 말을 따르는 것이 여자로서의 올바른 행실이었다. 이게 훼손되면 여자들은 좌절하게 된다. 남편의 얼굴도 결혼식 당일에서야 알 수 있었던 시대였다. 남자는 여자의 외모든 성격이든 마음에 안 들면 첩이나 기생을 만날 수 있었지만 여자는 그럴 수 없었다. 결혼과 동시에 오로지 남편만 바라봐야 한다. 내가 원하든 말든 그걸로 끝인 거다. 복종하며 살아야 하는 것. 하지만, 그런 불합리한 관행 속에서도 자기를 찾는 여성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부모에게 무시당하고 만다. 그랬을 때, 그녀들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죽음이었다. 자살하는 거다.

그녀들이 죽는 이유 중 또 한 가지는 사랑고백의 거절이다. 남성의 전유물로 알려진 프러포즈. 21세기인 요즘도 대부분의 프러포즈는 남성이 먼저 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조선시대는 아마 더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시대에 자기감정에 충실한 여성들이 있었다. 예를 하나 들자면 이런 거다. 조선시대엔 책을 읽을 때 소리를 내며 읽었다. 한 처녀가 매일 들려오는 옆집 선비의 글 읽는 목소리에 반해 선비의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때 선비의 반응은 두 가지일 것이다.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거나. 근데 이 선비는 뛰어 들어온 처녀에게 두 가지의 모욕을 주었다. 사랑도 거부했고 여자로서 행실이 아니라며 꾸짖기까지 한 것이다. 처녀는 사랑고백도 실패했는데 선생님께 나무람을 받듯이 수직적인 관계에서 선비에게 모욕을 당했다. 그걸 처녀로서는 참을 수 없었다. 그런 모욕을 당하고 살아갈 수도 없는 것이다. 결국 그녀는 자살을 택하고 만다. 그녀는 죽을 수밖에 없다. 자기감정에 솔직한 처녀였기에 안 만난 척 하며 살 수도 없었고, 세상사람 다 속여도 자기 자신은 속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데 문제는 그다음에 발생한다. 그녀가 죽은 후부터 선비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한다. 처녀 귀신의 복수 때문이라고들 하는데……

사실을 두고 보자면, 처녀의 자살과 선비의 불운은 하등의 관계가 없다. 하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그걸 연결하는 문화 논리를 형성했다. 조선 시대는 성리학과 윤리의 시대였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이 하기 어려운 일을 했을 때 그것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도덕과 윤리보다 앞선다는 것이다. 융통성 없게 윤리 도덕을 지키는 것보다는 그 이면의 심리가 무엇인지 배려하고 고려해줘야 한다는 거다. 사회가 원하는 것도 그런 융통성 있는 관리였다. 귀신이 나타났다고 기절부터 하는 관리가 아닌. 그런 배짱으론 백성들을 살피고 보살필 자격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야담집에서는 강제 혼인과 정절 스캔들, 자의식의 좌절과 사랑고백의 실패로 처녀들이 자살하는 걸로 나오는데 야담이 아닌 다른 장르에서는 여자들이 왜 자살하는 지 궁금했다며 순수한 호기심으로 865종 고소설의 줄거리를 읽으며 여주인공들의 자살 유형에 대해 알아봤다고 한다. 읽어보니 야담집과 사실은 별 차이가 없었단다. 비슷한 유형의 자살 외에 그다음의 유형은 비관형인데 가족의 상실, 신체 비관, 수치심 등등이 자살을 부추기는 원인이었단다.

억울한 죽음, 귀신이 되어 나타나다


아무튼 그녀는 죽었지만 저승에 갈 수 없었다. 왜, 억울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든 하소연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그녀들은 나타난다. 소름끼치듯 흐느끼며 곡을 하면서. 그럼, 처녀 귀신들은 왜 울면서 나타나는 걸까? 그건 여자로 살면서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어린 아이들이 어디가 아프면 그냥 우는 것처럼 여자들도 똑같다. 무조건 울고 보는 거다. 그래서 귀신이야기 중에서 중요한 것은 귀신의 곡성에 담긴 문법 체계를 읽어내는 거다.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처녀 귀신은 소복을 입고, 긴 머리카락 휘날리며, 또 피를 흘리면서 나타나는 걸까? 그건 소복이 어둠과 순결의 대비라서 그렇단다. 여자를 죽인 것은 음험한 현실의 어떤 면을 상징하는데 그래서 어둠이 배경이 되어 밤에 나타난다. 그때 여자는 하얀 소복을 입는데 그건 순결을 의미한다. 빛과 어둠, 어둠과 순결에 강한 색채 대비를 가지고 있는 것. 만약, 그녀가 장식을 하거나 색이 있는 옷을 입는다면 사람들은 그런 장식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런 것을 배제하고자 소복을 택한 거다. 요즘 공포 영화에 교복을 입은 청소년들이 등장하는 것도 비슷한 사례다. 곡성과 소복은 처녀 귀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남자들은 자살을 하지 않았을까? 남자들도 자살을 했다. 그 대부분은 비관형이었으며 충?열에 관한, 국가 이데올로기와 관련한 자살이었다. 한데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자살을 시도했을 때 살아남는 비율은 남자보다 여자가 더 크다고 한다. 그건 자살의 이유가 다르기 때문이다. 남자는 자살에 성공해야 주제가 완성되지만 여자는 대부분 억울하기에 죽지 않으면 자살의 구원자가 꼭 나타나서 구해준다. 대부분의 구원자는 선녀이거나 동자 혹은 사슴 같은 동물들이다. 초월적인 존재들인 셈. 이것의 의미는 사람을 죽게 할 수도 있지만 세계는 정의로워서 죽게 내버려두질 않는다는 것. 그런 초월적인 존재 외에 그녀들을 구원하는 존재는 배우자였다. 천생배필, 죽을 뻔한 여자를 구하고 보니 정혼자였다, 라는 공식. 또 고소설을 읽으면 나타나는 죽음의 구원자는 가족이다. 가족이 아니라면 나이가 든 노인들인데 성적으로 안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이 가정이라는 구원자에게 구원을 받았을 때, 과연 안전한 것일까? 여성을 자살로 내모는 배경 중에 하나가 가족 때문인 것을 알면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단편적인 예가 바로 『장화홍련전』이다.

“장화홍련이 왜 죽었나? 계모 때문에 죽었다. 계모도 가족이지만 전근대적인 시대에서는 혈연만이 가족으로 인정받았고,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피가 다른 존재가 나타났을 때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장화홍련전은 처음부터 공포 호러였다. 가족의 비극 자체가 호러이기 때문이다. 원작에서 계모 때문에 죽은 것을 관리가 해결하고 계모가 죽자 아버지는 세 번째 부인을 맞이한다. 한데 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가 장화홍련의 얼굴을 하고 있다. 행복했을까?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나오지만 사실은 모르는 일이다. 친모의 자궁에서 태어나야만 행복하다는 논리와 혈연 가정만을 정상가족으로 사고하는 유형이 발생하는 한, 가족사의 비극은 항상 발생할 수밖에 없는 거다.”

그러고 보니 세월이 흘러도 가정 내에서의 문제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약한 존재이며 마이너리티에 속하는 여성들이 가정에서마저 위협을 느껴야 한다는 일은 참, 슬픈 일이다.

자, 그럼 자살로 죽은 남자들은 귀신이 되지 않는 건가? 왜 총각 귀신이나 선비 귀신은 없는 걸까? 그건 야담집을 만든 대부분 저자가 남성이기 때문이란다. 남자 귀신? 있다. 없을 수는 없다. 한데 남자 귀신들은 죽어서도 관리가 되고, 집안을 구한다. 조상의 신이 되는 거다. 이 점이 남자와 여자 귀신의 차이점이다. 남자는 양이고 신이지만 여자는 음이고 귀란다. 그래서 남자는 죽어서 신주로 모셔지지만 여자는 그렇지 못한다. 아버지 귀신은 있어서 죽어서도 통제와 명령을 하지만 어머니 귀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상 모두 남성이 글을 썼기 때문이란 거다. 그래서 조선 시대의 야담집을 읽을 때는 누가 쓴 것인지 봐야 한다. 지식층, 성별과 연령을 염두에 두어야만 그들의 이데올로기가 삼투되었는지 아닌지 독자가 알 수 있다. 삼인칭 객관적 시점이지만 허구성이 존재하고, 그 안에 작가와 독자의 이데올로기가 삼투되는 것이다. 남성의 관점에서 여성을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해라기보다는 남성이나 관리는 여성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자들이다. 하지만 여성들은 다르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같이 울어줄 사람을 원하는데 남성들은 모른다. 정의감만 발달이 되어 있을 뿐이다. 그게 조선시대 상상력의 체계인 셈이다.


귀신 이야기는 불멸의 공포이자 비극의 파토스라고 한다. 조선시대로 그 존재가 끝나지 않고, 현재까지도 ‘여고괴담’과 같은 이야기가 존재하는 이유는 여성이 여전히 현실에서도 불평등한 존재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말할 통로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거다. 특히 여고생이나 미성년자에 대한 가중의 억압에 의한 스트레스가 존재한다는 사실.

예전엔 소수자, 마이너리티, 하위 주체들이 자살 혹은 억울한 죽음의 주 대상이었지만 요즘은 다르다. 그들은 고정되어 있는 실체가 아니다. 누구나 소수자 혹은 하위 주체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특히 현재와 같은 초고령화 사회에서는 노인들 역시 하위 주체의 부분을 가지고 있다. 정상적 교섭으로 잘 사는 것 같지만 어느 곳에서는 누군가 배제되고 누락되고 있다는 거다. 그런 것을 저자는 귀신 이야기라는 주제를 통해서 그 영역이 무엇인지, 현대 사회에서 재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귀신이 될 수밖에 없었다면, 그건 말하지 못하게 하거나, 말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에게 그들이 말할 수 있게 하라는 메시지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이 자리에 온 독자들도 자신을 항상 표현하고 말할 수 있도록 길들어야 하며, 어디에서 누구와 이야기 할 것인가, 소통에 대해서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귀신 이야기이나 판타지 문학이 그런 소통의 출구를 재성찰하는 문학적 장소와 처소이기에 처녀 귀신 이야기를 다루었다고 했다.

한 시간 삼십 분 가량 열띤 강연이었다. 그동안 내가 알던 처녀 귀신들이 알고 보니 소통을 하지 못해 나타나는 존재들이었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또 얼마나 말을 하고 싶었으면 죽어서 나타난 것일까. 제목만으로 살짝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 이제 다 알고 나니 그녀들이 안쓰러워졌다. 여자로 태어나 꿈꾸고, 이루고 싶었던 일을 해보지도 못하고 억울하게 죽었을 그녀들, 앞으로 전설의 고향에 나타나는 귀신들이 어쩐지 무서워 보이기보다는 가엾어 보일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그리고 처녀 귀신으로 나타나지 않으려면 열심히 자기 표현력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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