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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주도권을 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 『불편해도 괜찮아』 김두식

법학자 김두식 교수, 영화를 통해 인권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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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 기가 막혀~♪” 노래라도 나와야 할 판국입니다. 집 나간 인권, 버림받은 인권. 조금씩 차츰 자리를 잡아가는 건가, 착각했습니다.

#1. “다문화라는 말이 싫어요.” 누구의 말일까요. 순결(?)한 민족주의자? 아니면 과격한 국수주의자? 그도 아니라면, ‘나파요, 사장님’? 아닙니다. 외국인 100만 시대, ‘다문화’가 대세인 지금, 왜 싫다는 말이 나왔을까요.

그 말을 한 장본인은, 다문화가정의 일원이었습니다. 기사의 요지는 그랬습니다. 파키스탄 남성과 결혼을 한 한국 여성이 다문화가정프로그램 공고를 보고 신청을 했는데, 결혼이민자여성이 아니란 이유로 거절을 당했습니다. 다문화 관련 지원은 이주여성들에게만 해당된다는 겁니다. 기사를 읽기 전까지 몰랐습니다. 다문화라는 말에, 그런 ‘차별’이 숨어 있을 거라곤 생각 못했습니다.

기사는 한국에 유입된 전체 이주자(유학생 등 포함) 가운데 10%를 차지하는 결혼이민자 여성에게만 혜택이 가는 기형적인 다문화관련 프로그램을 지적하면서, 이주남성과 결혼한 가정들이 받는 차별과 ‘다문화에서도 배제’되는 차별적 현실을 꼬집었습니다.

끝은 이렇게 맺습니다. “한국 국민으로서 태어나서 여자나 남자로 사는 일이 뭐 그리 다른 삶일까 싶었던 나의 20대의 생각은, 파키스탄 남자와의 결혼을 통해 ‘이주한 남성과 결혼한 한국여성으로 사는 일이 간단치 않은 일’임을 톡톡히 맛보고 있다. 그런 나의 경험을 함께 공유하며 살고 있는 파키스탄 커플모임의 한국여성들은, 왜 한국사회가 이렇게 변화가 느린지 답답해하고 있다. 그냥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것일 뿐인데 말이다.”

#2.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것, 쉽지 않음을 일상은 늘 알려줍니다. 그럼에도 망각할까봐 두려운 게 있습니다. 맞아요. 용산입니다. 돌아설 때 가장 두려운 건 ‘적’보다 ‘망각’이라지요. 지난 1월, 1주기를 앞두고 가까스로 장례식을 치렀지만, 아직 여물지 않은 상흔. 뭣보다 국가에 의해, 참혹하게 죽어가야 했던, 버림받은 겨울. 폭염에 지쳐 널브러진 이 여름보다 훨씬 더 뜨거웠을, 상처 입은 겨울.

남일당 옥상이었습니다. 불꽃이 있고, 두 손을 머리에 올려 하트를 만드는 사람, 그 직후에 망루가 터져 올랐습니다. 한 시민이 외쳤다죠. ‘저기 사람 있어요!’ 하지만, 그 사람은, 누군가에겐, 어쩌면 국가에겐 사람도 국민도 아니었던 걸까요.

세계인권선언의 첫머리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며, 인류는 서로 형제애로 대해야 한다.” 매년 12월10일 세계인권선언일로 그것을 상기하지만, 그 선언은 결국 세계가, 인간이 그렇지 않음을 대변하는 셈이기도 하죠.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지 않고 불평등하며, 인류는 서로 적대감을 갖고 살아간다. 용산을 놓고 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죽어서도 자유롭지 않고 불평등하며, 버림받을 정도니까요.

“인권이 기가 막혀~♪” 노래라도 나와야 할 판국입니다. 집 나간 인권, 버림받은 인권. 조금씩 차츰 자리를 잡아가는 건가, 착각했습니다. 아녔습니다. 아직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소수자나 약자는, 설 자리도 없고, 없는 존재로 치부당해야 하기가 일쑤.

가출한 인권, 두 손 놓고 넋 빼고 있을 순 없지요. 법학자 김두식 교수가 그에 관한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영화를 통해 인권을 말합니다. 『불편해도 괜찮아』(김두식 지음|창비 펴냄)입니다. 인권감수성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그를, 지난 11일 서울 홍대 부근에서 뵀습니다. 책에 쓴 것처럼 조곤조곤 말하는 그와 나눈 이야기, 책처럼 즐거웠습니다.


이야기하기의 즐거움

출판가의 속설 중 하나. ‘영화를 테마로 책을 내는 건, 사업적으로 좋지 않다.’ 그런 마당에 인권까지 가세하다니요. 웃자고 하는 짓도 아니고, 죽자는 마당입니까! 하지만, 의외로(?) 호응이 좋습니다. 김 교수가 옆집 아저씨처럼 조곤조곤 말하는 이야기가 통(通)했습니다. 사실 부담이 왜 없었겠어요. 영화이론을 아는 것도 아니요, 영화미학을 들먹일 처지도 아니요, 세계적인 이창동 감독을 하나의 시각만 갖고 비판의 날을 갖다 대기도 하는 등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격이었으니까요.

그렇다고 김 교수가 부담에 억눌리기만 한 것은 아녔습니다. 까짓 거, 내 이야기를 풀자. 영화평론가도 아닌 마당에. ‘몰라서’ 편하고 즐겁게 책을 썼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여태껏 쓴 책들 가운데 이렇게 즐겁게 책을 써본 적이 없었을 정도였답니다. 그 즐거움, 희한하게 저도 느꼈습니다. 행간마다 철철 묻은 즐거움, 읽어본다면 분명 느낄 수 있습니다.

“즐겁게 책을 쓴 것이 책 읽는 분들에게 전달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행히(독자들이) 이메일이나 트위터 등을 통해 재밌고 즐겁고 행복했다고 얘기해줬어요. 인권을 이야기 하는 것이 고통스러운 경우가 많은데, 재밌게 얘기하는 게 좋은가 하는 부담도 있었어요.”

하지만 이번 책 쓰면서 김 교수의 욕망(!)도 스멀거렸습니다. 앞서 여러 권을 냈음에도, 그닥 듣지 못했던 이 말. “책, 재밌게 읽었어요.” 『불멸의 신성가족』의 경우, 쓰는 것도 고통스러웠고, 독자도 고통스럽게 읽었으니까요. 그렇기에, 『불편해도 괜찮아』, 즐겁게 썼기에 무거운 주제에 비해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이 아닐까, 조심스레 진단합니다. “오늘 트위터에서 어떤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얘길 들었는데, 참 고마워요. 책을 보면서 눈물 흘릴 때가 참 좋은데, 다른 분이 눈물을 흘려서 저한테도 좋아요.”

이런 즐거움의 교감, 하마터면 느끼지 못할 뻔도 했답니다. 주변의 권유가 많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주춤거렸거든요. 하지만, 나올 책은 나와야 하는 법. 시쳇말로 ‘나쁜 교수’가 되지 않기 위해! 또한 국가인권위원회 위원들의 뚝심 덕분에, 책은 잉태됐습니다.

사실, 책의 잉태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을 겁니다. ‘이야기하기의 즐거움’을 아는 김 교수가 어찌 거부할 수 있었을까요. 더구나 그는 이야기의 힘을 믿는 사람이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예수님도 민중이 알기 쉬운 이야기로 접근했고, 2000년 지나서도 그 이야기를 읽는 가운데 우리 인생이 바뀌는 걸 느끼거든요. 그런 점에서 늘 하고 싶었던 것은 이야기였어요. 내 이야기, 친구 이야기를 하면서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아무렴. 자신의 이런저런 치부를 이야기하는 것도 좋았다는 그입니다. 글을 쓰면서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인식한다는 것. 그러다보면 성찰하게 되고, 살아남고 사랑받기 위해 자신을 변화시키게 되고. 더불어 책의 힘까지 느꼈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한 번 들어보시죠.

“딸이 얼마 전, 이 책을 읽고 이런 말을 해요. 어쩌면 아빠가 자기가 생각하는 것보다 훌륭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고. 그래서 그랬어요. 네가 아는 평소의 아빠가 진짜라고. 심지어 딸까지도 활자의 마력에 빠지면, 오해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책이라는 게, 사기성이 농후한 매체구나.(웃음) 사람이 훌륭하게 보이는 힘이 있는 거잖아요. 이 책을 쓰고, 재미있게 느꼈던 부분 중의 하나에요.”


‘법조계-기독교-인권’, 두식이즘 삼부작

『불편해도 괜찮아』, 책 제목, 처음 듣고선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맞습니다. 이중적이기도 해요. ‘정말 괜찮냐’는 질문이자 불편한 시선을 받는 소수자들을 위한 옹호. 책에서 ‘불편해도 괜찮아’라는 키워드가 되는 챕터는 2~3개지만, 김 교수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예컨대 장애인 인권을 다룰 때, 그 장애에 대해 누구나 인식하지 않는 상태가 인권감수성이 가장 높은 단계잖아요.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는 상태가 이상적인 상태이긴 한데, 현 단계에서 인권을 이야기할 수 있는 단어가 ‘불편함’인 것 같아요. 제목 자체에 불편을 느끼는 분들이 있는 게 의미가 있고, 인권감수성이 보다 더 뛰어난 분들은 이 제목에 불편함을 느끼고. 책 제목은 양날의 칼인 것 같아요. 쉽게 다가가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그만큼 제목이 갖는 한계도 드러나거든요.”

김 교수가 앞서 낸 책 제목을 훑어봤어요. 지난해와 올해, 1년여에 걸쳐 낸 책들의 제목을 한 번 보죠. 『불멸의 신성가족』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불편해도 괜찮아』. 우와, 무려 세 권입니다. 제목을 보자니, 허허 그것 참. 대놓고 말하기 껄끄럽거나 혹은 내뱉기 싫은 분야로군요. 법조계(카르텔)와 기독교(비판)에 이어 지금 이 시대, 실종돼서 미아신고라도 해야 할 인권까지. 아니, 어쩌다? 작정하고? 감히 억지로 말을 붙이자면, ‘두식이즘 삼부작’?

이 삼부작. 실은, 별 계기는 없답니다. “책을 써야 하는 기회나 상황이 온 것 같아요. 몇 년 동안 대외적인 글쓰기를 안 하고, 신문?방송에 안 나가면서 축적한 시간이 있었어요. 1년 동안 종합적으로 정리되면서 책이 차근차근 나온 거죠. 사실 교수가 논문을 써야 한다는데, 작년과 올해 논문 1편도 안 쓴 상황에서 책 3권은 대단한 건 아니에요.(웃음) 다만 좀 다른 길을 택한 교수였던 거죠.”

그래도, 『불멸의 신성가족』이나 『불편해도 괜찮아』는 모험을 해보자는 제안이라, 하기 싫긴 했지만, 억지로라도 하게 만든 동인이 있었다는 것. 아 역시나, 만날 사람은 만나고, 나와야 할 책은 나오기 마련이라지요.

이 때 든 궁금증. 앞선 두 책, 법조계와 기독교계에선 뭐라고 했을까. ‘불편해도 괜찮아’라고 말했을까요, 아니면, 어떤 위협이라도? 우선, 『불멸의 신성가족』. 비판이라면 양호한 거고, 험한 말씀도 많이 받았는데, 문제는 험한 말씀 대부분이 책도 읽지 않고 행한 조건반사적 거부감이었다는 것. 법조계에선 법원이나 사법연수원 등에서 많이 읽혔다고 들었는데, 좋은 반응도 꽤 있었답니다.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는 어땠을까요. 김 교수는 이런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정작 이 책을 읽어야 할 사람들, 논쟁해야 하는 사람들은 안 읽어서 생각보다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책의 내용에 이미 동의한 분들이 책을 많이 사는 게 아닌가 싶고, 안전하긴 하지만 의도했던 바는 아니었어요. 겁냈던 것보다는 많이 열려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 한편, 살벌한 메일도 좀 받았어요. 너무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했죠.”

좋든 나쁘든, 이런 반응 역시 자신과 연관 돼 풀어내는 이야기의 진솔함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무플(무반응)보다는 악플(악담)이 낫다는 말, 그래서 있잖아요. 이번 책에도 딸과의 문제를 다루면서 언급된 ‘지랄총량의 법칙’ 등이 꽤나 인상 깊었거든요. 그러니까, 김 교수가 하고자하는 것은, 다시 언급하지만 늘 ‘이야기’. 그것도 자신에게서 출발하는 것. 남 얘기 지껄여봐야, 남 얘기일 뿐. 더구나 어떻든 주류에 있는 그가 인권에 접근할 수 있는 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수밖에 없으니까요.

덧붙여, 딸이 혹시 ‘내 얘길 왜 싣냐’고 반발하지 않았는지, 물었더니, 웬걸. 이런 말씀 하십니다. “반발은 없었어요. 딸은, 요즘 애들이 다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놀라울 정도로 빠른 복원력을 갖고 있어요. 상처 받아도, 아빠와 싸워도 금세 화해하고, 자유롭고, 공부가 아니더라도 뭔가를 열심히 하고. 공부 잘 하는 애들은, 사실 집에서 때려잡아서 잘하는 거예요. 밖에서 온갖 고상한 얘길 해도 5등 이상은 집에서 때려잡거나, 엄마?아빠가 지키는 애들이나 가능하지, 딸과 아빠가 사랑과 유대를 나누는 집안에서 전교 1등은 나오진 않는 것 같아요.(웃음) 딸 키워본 결론이에요. 딸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불쑥 불쑥, ‘그래도 공부는 잘해야지’하며 뒷덜미를 잡을 때도 있지만, 흥미롭게 딸을 지켜보고 있어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하면서.”


자신의 것을 찾는 기쁨

책을 읽으면서 궁금한 건, 이런 것이었어요. 영화를 먼저 선정한 뒤 방향을 잡았을까, 인권 문제를 다루면서 영화를 끌어들인 걸까. 우문현답. “어떤 영화를 봐도 인권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사람 사는 곳에 권력관계가 존재하고, 권력관계 있는 곳에 인권문제가 있어요. 영화감독들도 다 사람이고, 권력문제를 붙잡고 있잖아요. 주변에서 여성영화나 동성애 관련 영화는 챙겨준 것도 있었고요, 그걸 보면서 생각을 정리한 부분도 있었는데, 어쨌든 닥치는 대로 봤어요.”

사실, 책에 언급된 영화를 하나로 꿸 수 있는 열쇳말은 없습니다. 이른바 인디부터 블록버스터, TV드라마까지, 다양합니다. 지난해 이 책을 쓰기 위해 미국에 갔고, 1년여 주야장천 영화를 볼 수 있었던 환경. 부럽기도 했지요. 딱히 기준도 없었고 닥치는 대로 보면서 김두식 만의 시각을 투영한 것이, 『불편해도 괜찮아』입니다.

그는 영화나 책 등을 추천에 의한 선택보다 자신의 감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책의 경우, 추천도서 목록이나 베스트셀러 목록에 기댈 것이 아니라,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르면서 내 것, 내 필이 꽂히는 것을 찾는 과정이 중요하단 거죠. “예전에는 오프라인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르는 게 즐거움이었어요. 책을 읽고 고민해서 사는 게 어린 시절의 즐거움이었는데, 요즘은 선생님이 골라주고, 추천목록에 의존하고. 서점에 가서 직접 고르는 기쁨, 자기 것을 찾는 기쁨이 참 중요해요. 영화도 마찬가지고요.”

그건 이야기의 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아닐까도 싶어요. “잘 만든 영화와 드라마는 평소 상상하지도 못했던 삶 속으로 우리를 인도”한다는 김 교수의 말씀도 있었지요. 그는 ‘이야기의 힘’을 신봉하는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좋은 이야기일까요.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전달하진 않지만,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영화를 만든 사람의 생각을 본다든지, 생각의 흐름에 동참한다든지, 하는 게 있잖아요. 그게 좋은 이야기 같아요. 『불멸의 신성가족』에 대해,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냐’, ‘결론이 뭐냐’, 하는 비판이 있었어요. 근데, 한국 사회는 너무 쉽게 정답을 내놓는 분이 많은 게 문제 아닐까요. 같이 이야기를 하면서 답을 찾는 거지. 바로 답을 내놓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거든요. 오래 이야기를 같이 하는, 그러면서 친구 만드는 과정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친구를 만든다는 것. 친구를 만들고 싶다면, 우정을 맺고 싶다면, 당신의 이야기를 하세요. 무어 그리 감출 게 많은 게 우리네 삶은 아니잖아요.


사탄의 시스템에서 벗어나기

한국의 인권시계는 몇 시를 가리키고 있을까요. 문득 궁금해집니다. 인권이 많이 신장됐다고들 합니다. 상대적 개념입니다. 인권이 지독하게 묵살 당하던 시절에 비해서란 말이죠. 교과서에선 버젓이 ‘천부인권’이라고 나와 있지만, 어디 그런가요. ‘저기 사람이 있’어도 국가가 불을 싸지르는 세상입니다. 당신의 인권이 당장 침해당하지 않았다고 인권이 지켜지는 시대라고 말하진 마세요. 남의 고통에 무덤덤한 사회가 과연 인권이 존재감을 지닌 사회일까요.

이 책은 전반적으로 ‘차별’에 대한 문제제기가 두드러집니다. 알다시피, 우리 사회는 차이와 차별을 구분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의심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김 교수는 안타깝습니다. 분배정의나 경제 민주화와 같은 것을, 다음 단계의 인권을 이야기해야 함에도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 있으니까요. 검찰 수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의심부터 해야 하고, 기본권 문제가 다시 얘기되다니요. 어째 이런 일이. 국민이 잘못 선택한 대가가 거참. 김 교수는 특히 야권 정치인의 반성도 촉구합니다.

기실 차별은 일상에서 무차별적으로 횡행합니다. 당하는 사람이나 가하는 사람 모두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죠. 왜 그럴까요. 김 교수는 말합니다. “자기는 주류라는 확신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기독교인들이 그게 두드러져요. 기독교인들은 주류가 아님에도 당연히 주류라고 생각하는 게 문제죠. 자신에게도 소수자인 면이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겪는 아픔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책은 청소년 인권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곧 교육의 문제와 연결되겠죠. <날아라 펭귄> <발레교습소> 등의 영화가 책에서 언급되는데, 그걸 읽으면서 최근의 한 사건이 떠올랐어요. 한 외고생이 엄마가 요구한 성적에 도달한 직후, “이제 됐어?”라는 네 글자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던. 부모들은 변명합니다. “이게 다 너를 위해서야.” “이 험한 세상에서 잘 살게 하기 위해서야.”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동생 진석(원빈)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짓이든 한다는 진태(장동건)를 향해 진석은 이렇게 말하죠. “누가 그렇게 해 달랬어?” 물론, 이 외고생은 그렇게 말할 수 없어, “이젠 됐어?”라는 말로 에둘렀는지 몰라도, 지금의 교육체계는 다른 아이는 물론 자신의 아이까지 죽이는 시스템이죠. 김 교수는 그것을 ‘사탄의 시스템’의 대표적인 예라고 말합니다. 그런 사탄의 시스템에서 벗어날 것도 권하고요.

“저는 법조계에서 출발했지만 튕겨 나온 사람이죠. 지금까지 가장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해요. 왕따 당하면서 약간 다른 삶을 사는 게 즐거울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지금의 교육시스템이 이상으로 삼는 건, 외고?특목고에 명문대를 나와서 대기업 회사원이나 의사, 법조인이 되는 거잖아요.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을 지켜봤는데, 그렇게 행복하지도 않은 것 같아요. 삶의 질도 그렇고. 수십 배 재산이 많아도 크게 다른 것 먹는 것도 아니고, 가장 큰 차이라면 어느 아파트에 살고, 어느 차를 타느냐 정도? 거기서 자유로울 수만 있으면 큰 차이 없어요.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성실하게 일해서 먹고사는 시대는 지난 것 같은데, 자기만의 이야기를 갖는 것, 그런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애를 키우는 것도, 자기만의 독특한 이야기를 가진 아이로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개의 사람은 인권이 침해당하거나 차별에 따른 고통을 경험했을 때, 좀 더 그 문제를 사유하고 타인에게도 그것을 투영할 여지가 커집니다. 그에겐 어떤 경험이 있었을까요. “집에선 안 맞고 컸는데, 고등학교 때 굉장히 맞았어요.(웃음) 그런 불의에 항거 못했던 기억들이 ‘아니요’라고 말해야 된다는 생각을 갖게 한 것 같아요.”

버지니아 울프 왈. “가장 단순한 여학생도 사랑에 빠지면 셰익스피어 또는 키츠를 통해 제 심정을 자신에게 표현한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 단지 두통을 느끼게 만들어도 금방 언어가 메말라 버린다.” 무슨 말인지 알겠죠? 고통을 당한 당사자가 이를 남에게 표현하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특히나 소수자의 경우엔 더욱 그렇겠죠. 창구도 제대로 없으니까요.


고통을 직면하고 한계를 인정하기

사회적으로 인권감수성이 섬세해지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남의 고통에 무덤덤해지지 않기 위해, 남을 차별하지 않기 위해, 우리 스스로가 작게라도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김 교수는 ‘이야기하기’와 ‘사랑’을 언급합니다.

“누구나 크든 작든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갖고 살아요. 남에게 얘기 못하는 고통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고통에 대해 정직해지면 남의 고통에 대해서도 마음을 열 수 있어요. 일종의 사랑이죠. 제 경우, 사랑하는 사람의 아픔에 대해 얘길 들으면 후유증이 오래 갈 때가 있어요. 몸이 아프고 탈진하는 때도 있고. 그게 사랑인 것 같아요. 나이브한데다 감상적이라 들릴지 몰라도, 책 제목도 ‘인권을 넘어 사랑으로’라고 할 생각도 했어요.(웃음) 사랑이 고통을 느끼게 만들고, 고통을 느끼면 이해하고, 이해하면 더 사랑하고……”

문득 이 말이 떠올랐습니다. “사랑이 이 세계를 구원하리라.” 그래서 김 교수에게 건넸더니 너털웃음을 띄우시더군요. 설마 그러진 않겠지만,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 오래전부터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어떤 주의자도 아니지만, 굳이 꼽자면 사랑지상주의자가 돼 볼 생각은 있으니까요. 당신은 어떠세요. 사랑이 세상을 구원할까요.

좀 나이브한 면도 있죠?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건 한편으로 어떤 한계일지도 모릅니다. 김 교수는 인터뷰 중에 ‘한계’라는 말을 많이 꺼냈습니다. 자신이 지닌 한계. 그 한계를 알고 인정한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더 깊이 와 닿았는지도 모르겠네요.

우선 애드버킷. 3자 입장에서 변론할 수밖에 없는 한계이면서 출발점, 한편으로는 어떤 힘. 또 그는 빈부의 문제 등을 깊이 다루지 않은 데 대한 한계를 말했습니다. 오창익 인권연대 국장이나 양효실 선생이 행한 소수를 타자화 하거나 인권에 대한 불편함까지 획득하는 주류적 시선에 대한 비판까지, 그는 순순히 인정하고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다른 분들이 하신 얘기도, 책에 대한 비판보다는 제 자신에 대한 비판이라고 봐요. 사실 한 마디도 반박할 수 없죠. 한국 사회에서 소수자를 옹호하는 것 자체도 커밍아웃하는 분위기일 수 있는데, 나름대로는 용기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엔 우스울 수도 있어요. 저의 한계는 갈수록 더 느끼지 않을까 싶어요. 양효실 선생님의 비판도 좋은 지적이었고 그 서평을 보고 참 좋았어요. 인권에 대해 자신의 문제가 아닌 사람들이 그 담론까지 가져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은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반성도 하고, 어떻게 될 진 모르겠지만, 제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고마운 서평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완전 동의하는 이 부분. “남자들하고만 같이 있으면 피곤하고 남자들만 있는 모임에는 특히 이야기가 되질 않아요.” 역시 이야기의 문제입니다. 앞 다퉈 자기 잘난 이야기만 해대니, 싫을 만도 하지요. “여자들과 함께 있으면 재밌고, 잘난 척 안 해도 되고 좋아요. 예를 들면, 진보적이라는 지식인들 세 명과 밤새도록 얘길 했는데, 이 사람들 개인적인 고민이 뭐고, 이 사람과 그 가족은 어떤 사람들이고, 이렇게 밤새도록 술 마시면 가족들은 뭐라고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어요.(웃음) 여자들은 누구와 얘길 해도 재밌고 유쾌하고, 술이 떡이 되지 않아도 금방 친구가 돼요.”

기실, 제가 살아본 바에 따르면, 남자들의 ‘의리’라는 것도 그래요. 남자라서 의리가 있는 것도 아니요, 의리 지키고 싶은 사람에게만 이해관계 따져서 지키는 게 의리요, 의리 내세우는 조폭들, 의리가 아니고 ‘이리(夷利)’죠.

물론, 김 교수, 한계를 인정합니다. 여성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남자니까요. 그럼에도, “아내가 매일 새롭고, 여성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걸 매일 느껴도, 여성이 주도권을 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아무렴요. 세상의 거의 모든 나쁜 짓은, 이슬람계도, 아프리카계도, 아시아계도 아닌, 남자들이 저지른답니다. 물론, 무늬만 여성이고 속은 남성(수컷)이나 다름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여자를 믿지 마세요.


김두식이 바라는 세상

김 교수는 대한민국 가장 보통의 엄마아빠들이 자식에게 가장 많이 요구(!)하는 직종 중의 하나인, 검사직을 자발적으로 그만뒀습니다. 그 이유가 인상 깊었어요. 특수교육을 공부하는 부인의 뒷바라지를 위해서였습니다. ‘검사’ 김두식을 버리고, ‘전업주부 김두식’으로 보낸 2년, 어땠을까요.

“즐겁고 힘들었어요.”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이 중용. 남자가 전업주부를 한다는 사회적 편견은 둘째치고라도, 한 번도 제대로 해보지 않은 중노동을 하려니, 오죽했겠습니까. 그도, 집안일이 정말 어렵구나,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답니다. 딸도 중요한 시기에 그렇게 아빠가 키웠는데, 엄마와 아빠의 사랑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답니다.

그와 더불어, 이런 고민과 걱정도 있었습니다. “월급 받는 사회로 복귀할 수 있을까.”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지금, 어찌 보면 성공적으로 복귀한 셈이지만, 한때 우울이 급격하게 몰려왔던 시기도 있었다고 하네요. “한 유명인사가 그랬어요. 집안일은 흐트러진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이라고. 그것이 무의미하다는 건 아니지만, 어떤 날은 아내가 출근하고 애는 유치원에 간 뒤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던 때도 있었어요.”

그 우울, 어떻게 처리했을까요. “하루는 아내가 돈을 주는데, 10만원을 주는 거예요. 당시 가난하게 살았던, 근근이 이어가던 시기라, 굉장히 큰돈이었어요. 마음대로 쓰고 오라는 말을 듣고 이 돈을 어떻게 쓸까 상상하는데, 우울이 밀려났어요.” 부인의 장학금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그래서 ‘등처가’로 살아가야했던 시기였습니다. 한때 평생 전업주부의 꿈도 가졌지만, 쉽진 않아서 결국 접어야했다지요.

그는 책만 확실하게 잘 팔리면 전업주부로 살 생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깨달은 바가 있답니다. 아, 한국에서 책을 내서 먹고사는 건 불가능하구나. 시장도 좁고 사회과학 분야는 더 좁아서 포기. “학교에서 월급 받고 있는 게 무척 고맙더라고요.(웃음)” 역시나, 그도 가장 보통의 사람입니다.

전업주부 등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좀 더 여성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계를 알고, 그래도 자신의 세계를 넓히고자 노력하는 자세. 어쩌면 우리 사는 땅의 인권도 그렇게 가고 있는 것 아닐까요.

혹시나 물었습니다. 변호사를 하다가 영화계로 투신한 조광희 대표처럼 영화계에 종사할 기회가 온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조광희 대표는 르네상스인이고 천재라서 가능한 거예요. 영화계에서도 ‘아, 이런 사람이 있구나’ 해서 데려간 거고.”

다음 책도 물었습니다. 김 교수의 한 선배는 법조계, 기독교, 인권, 자신이 몸담았던 곳을 향해 과녁을 겨눴으니, 다음은 ‘대학’이냐고 물었다는데, 지금 당장은 계획이 없답니다. 다만 자연과학분야의 교수를 하고 있는 형이 제안한 건 있다고 하네요. 형은 자연과학, 동생은 인문사회과학을 맡아서 공저를 하는 것. 진도는 아직 하나도 나가지 않았고, 워낙 바쁜 형이라 가능할까도 싶지만, 그건 모르는 일이겠죠. 두 ‘식’ 형제가 어떤 상찬을 내놓을지도 은근히 기대가 되고요.

김 교수, 사랑이 구원할 세상도 말했고, 여성이 주도권을 쥔 사회도 말했습니다. 정리하자면,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면서 사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게지요. 조한혜정 교수가 말하는 마을이야기 같은.

제가 생각하기에도 말이죠. 남자들이 주도권을 쥔 곳에는 사랑보다 암투가, 서로 의지하기보다 죽고 죽이는 경쟁이 더 횡행할 것 같아요. 그러니 아이들에게도 놀지도 못하게 하고, 죽어라 공부하라고 윽박만 지르지요. 엄마가 더 그런다고요? 그건 남성(성)이 만든 시스템이라서 그래요. 여성(성)이 만들어 봐요. 어디 그런가.

약간 과장해서, 저는 아이 없는 비혼의 남자지만, 아이가 아이답지 않은 것만큼 슬픈 게 없다고 생각해요. 아이에게서 아이다움을 뺏는 세상. 미친 거지요. 아이를 아이답게 하라. 어른들이 제 역할을 못해서 그런 거지요. 어른의 몫까지 아이들이 짊어지자니 미칠 노릇이고.

“이놈의 공부 때문에 가족 안에서도 사랑이 안 되는 세상이잖나. 공부 얘기만 안 해도 엄마와 딸이 행복하게 살 수 있거든요. 가족 안에 사랑이 넘치면서 이웃도 사랑하게 되고, 가정으로 친구도 불러 영화도 함께 보고 주말을 보내기도 하고. 그런 세상이 좋은 것 같아요. 지금은 가족이 해체돼서 누구도 부를 수 없고, 친구와 주말에 이야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잖아요.”


인터뷰 후기

인터뷰 직후, 여행을 떠났습니다. 『열하일기』를 쓴 연암 박지원의 흔적을 좇아, 혹은 초원을 만났던 여행. 유독 현지 사람들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습니다. ‘다른’ 얼굴이지만, ‘틀린’ 얼굴이 아님을 새삼 확인하고, 그들의 일상과 삶을 상상했습니다. 이방인으로서 한계도 뚜렷했지만, 역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과 나는, 아무 연관도 없는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짐승돌, 짐승남이 대세라지만, 그렇다고 짐승의 시대가 된 것은 참으로 유감스럽습니다. 아니 이 말, 짐승들에게 미안합니다. 인간이 짐승보다 낫다는 근거가 없으니까요. 사실, 저는 짐승보다 사람이 낫다는 말을, 지금 의심합니다. 짐승의 삶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인간이 짐승보다 우위에 있다는 건, 인정하지 못하겠습니다.

차별과 인권 탄압이 횡행하는 현실. 남의 고통에 점점 무덤덤해지는 사회. 과연 ‘문명사회’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사탄의 시스템은 점점 강고해지는 것 아닐까. 가장 보통의 인간인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런 의문을 품고 있는 여행을 떠난 저는, 김 교수가 언급했던 희망의 근거를 떠올렸습니다.

“생각보다 남하고 다른 삶을 살겠다고 작정한 사람이 많아요. 옛날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이상한 얘기지만, 마음이 닫혀 있는 것 같은 분들, 차별적인 시선을 가진 분들이 대개 단순하고 정직한 분들이 많아요. 이 분들은 어떤 계기로 눈만 뜨이면 확 달라질 수 있는 여지가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책을, 그런 분들에게 빌려주고 그러면 ‘아, 이렇구나!’ 하고 눈 뜰 수 있어요. 조용히 이런 책 읽어보라고 권하고, 이야기도 나누다 보면 의외로 우리 사회가 빨리 변할 수 있습니다.”

함께 길을 거닐었던 분들 중에는, 획일적이지 않은 다른 삶이 있음을 알려준 분도 계셨고, 아이들을 사탄의 시스템에서 빼내기 위해 애를 쓰고 계신 분들도 만났습니다. 속으로 박수를 짝짝짝. 한 의사가 그랬다죠. 세상에 박수값을 내라. 아직 세상에 대한 끈을 놓지 않게끔 도와주는 사람들. 사람이 무엇인지, 교육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 사람들. 나도 세상에 박수값을 내야겠구나. 인권이 힘없이 넘어가지 않도록 응원해야겠구나.

그리고 잊지 않고자 다시 생각합니다. 라틴어에서 진실(veritas)의 반대말은 망각(oblivio)이라고 하더군요. 거짓(falsum)이 아니고요. 밀란 쿤데라도 말했습니다. “권력에 대한 인간의 투쟁은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이다.” 의당 잊어야 하는, 망각의 기술이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인권 앞에서의 망각은 곧 ‘침해’와 ‘박탈’을 가져오리라는 것, 이미 경험했잖아요. 두리반과 성미산,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인권침해의 현장에 작지만 힘을 보태야겠어요. 이게 다 김두식 교수와 여행 탓입니다. 그래, 물귀신 작전. 당신도 함께 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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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불편해도 괜찮아

<김두식> 저/<국가인권위원회> 기획16,200원(10% + 1%)

우리 생활과 밀접한 주제지만 항상 멀게만 느껴지는 인권 이야기를 80여편에 이르는 영화와 드라마, 다큐를 인용하며 맛깔스럽게 풀어낸 책. 여성과 장애인 인권부터 인종차별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아우르며 우리 안의 '인권감수성'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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