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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 ‘빠꾸’당한 소녀의 처절한 복수

네 번 ‘빠꾸’당한 소녀의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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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글쓰기 아동학대 아냐?
명랑하기만 한 은서의 표현 한계, 조급한 다그침보다 기다림도 필요할 듯

오늘은 글쓰기 홈스쿨 현장 중계. 이름하여 ‘초딩 은서 학대사건’. 가해자는 부친.

“맨 첫 번째로 놀러간 곳은 친할머니 집이었다. 할머니는 우리를 무~척이나 반가워하셨다. 맨 먼저 이를 닦고서 세수를 하고서 텔레비전을 재밌게 봤다.(중략) 2일 있다가 곧 외할머니 집에 갔다. 집에 들리기 전에 근처에 생강 도너츠를 사갔다. 역시나 외할머니도 우리를 반갑게 맞으셨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서 안동의 하회마을로 갔다.(하략)”

누가 일지를 쓰랬니? 네가 일지매냐?

☞ 으이그 @@ 에세이를 쓴 거니, 일지(日誌)를 쓴 거니? 네가 무슨 일지매냐?(썰렁) 여행 첫 날 이거 저거 했고, 다음날은 이렇게 저렇게 놀고, 그 다음날 어디 가서 무얼 먹고……. 뒤에 덧붙인 주관적 소감은 달랑 두 가지, “너~무 재미있었다”와 “재밌게 놀았다”. 다시 써!

“이번 휴가는... 컴퓨터와 텔레비전이다. 휴가는 컴퓨터와 텔레비전을 보는 것처럼 즐거웠기 때문이다. 나는 친할머니와 가족과 함께 집 근처의 금대리에 있는 계곡에 갔다. 그곳에 가서 오빠와 함께 누가 맨 마지막에 먼저 가냐 시합을 했다.(하략)”

☞ 어거지다. 조금 유치한 첫 문장을 제외하고는 달라지지 않았다. 역시나 여행에서 경험한 모든 일을 하나씩 똑같은 비중으로 적었다. 몽땅 기록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그 중 인상적이었던 몇 가지 체험을 집중적으로 묘사해봐. 그때의 네 마음까지 묘사해봐. 마지막 문장도 끔찍하다. “어쨌든 이번 휴가는 정말, 좋았다.” 뜬구름 잡는 ‘좋았다’ 말고 다른 거 없니? 한 번 더 써!!

(이후 두 번이나 글을 더 썼으나 그게 그거. 은서는 두통을 호소함.)

“파도치기를 탄 나의 오늘 기분은, 스릴 만점 짱이었다! ㄱ-ㄱ” “내 귀에도 물이 들어갔고, 내 코에도 물이 들어갔다. 수영장 물도 마셨다. 하지만 기분은 짱이었다.”

☞ 네 기분은 짱이지만, 아빠는 짱난다. 너는 ‘휴가지에서 생긴 일’을 주제로 도합 네 번이나 썼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체험만 지루하게 나열했고 느낌은 1차원을 맴돌았다. 네 감정을 디테일하게 설명할 줄 모른다. 아니, 감정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듯 하다. 여러 차례 결함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했지만 알아듣지 못했다. 포기해야 하나? 네가 글을 못 써서가 아니다. 글쓰기 지도의 한계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네가 어떻게 써야 할 지 답답한 만큼, 아빠도 너에게 글쓰기 기술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난감한 캄캄 절벽과 만났다. 문득, 이건 노하우와 기교를 알려준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곱셈, 나눗셈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에게 미적분 문제를 풀라고 시켰다는 자괴감이 솟았다.

원주 신림계곡에서. 비가 스멀스멀 내리는 가운데 간단한 물놀이.

곱셉도 못하는 데 미적분 시킨 셈일지도

열 살 은서는 명랑하다. 농담 삼아 ‘조증’(躁症) 어린이라 놀릴 정도다. 결핍을 느껴보지 못했다. 상처받은 적 없다. 우울함, 그리움 따위가 뭔지 잘 모른다. 사춘기도 겪지 않았다. 경험치의 한계는 형용사의 한계다. “재밌다” “즐거웠다” “좋았다” “짱이다”의 반대 표현을 써볼 일이 없었다. 희로애락을 세밀하게 담아두고 표현할 자신만의 정서 그릇이 없는 셈이다. 연재 17회째다. 선의로 시작했지만, 글쓰기 홈스쿨이 ‘글쓰기 아동학대’가 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조급한 다그침보다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자각이 머리를 친다. (악마의 속삭임 : 아니야. 은서는 이번 기회에 죽도록 고생 좀 해봐야 해. 학대받는 만큼 성숙해진다니깐)

***

그럭저럭 No! 화끈하게 Yes!!

그럭 & 저럭의 필연적 결과다.

8월 초에 휴가를 얻어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올해엔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강원 원주에 있는 아이들의 친할머니 집에 3일 머물렀고, 경북 풍기의 외할머니 집에서 이틀을 묵었다. 집에 돌아온 뒤에는 용인에 있는 물놀이 테마파크를 하루 다녀왔다. 전체적으로는 컨셉이 없는 여정이었고, 깊은 인상을 받을 만한 개별 방문지도 없었다. 게다가 4박5일의 일정 중 이틀이나 비가 오락가락했다. 아이들은 두 할머니 집에선 텔레비전만 봤고, 아빠는 잤다 ㅠㅠ. 비가 멈췄다 싶으면 차를 타고 계곡이나 관광지에 들린 뒤 점심과 저녁을 먹었다. 극단적으로 ‘개고생’을 할 여지도 없었다. ‘그럭저럭’이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의 글도 ‘그럭저럭’ 평균치거나 그 이하를 밑돈다. 둘 다 ‘휴가지에서 생긴 일’을 주제로 쓰게 했다. 먼저 중딩 준석의 글이다.

해일을 맞고, 총알을 맞다

“이번 여행은 재미있었니?”

“네.......”

저 대화를 듣기만 해도 아이의 모습이 ‘참 부정적이다’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재미없었나 보네..’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런데, 한번 생각을 바꾸어 보자. 완전히 다른 생각으로 말이다. 아이는 여행이 즐거웠을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오래되고 차 이동량이 많은 여행에 지쳐 마치 여행이 즐겁지 않았던 듯 대답을 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바로 이 경우에 속한다.

그렇다. 말 그대로, 여행을 갈 때부터 돌아오는 때까지 여러 가지 안 좋은 상황에 맞섰다. 친할머니 댁 여행에서는 3일 동안 여행을 갈 때부터 차 안에서 멀미가 나 코를 막고 자며, 귀가 찢어질 듯한 매미소리를 듣고, 그와 동시에 해가 방출해 내는 엄청난 햇살. 외할머니 댁 여행에서는 2일 동안 역시 매미들의 합창과 엄청난 햇살의 압박이 여행의 호감을 떨어뜨렸다. 친할머니 댁에서는 계곡에 가서 뛰어놀고, 멍~하니 앉아 TV로 짱구나 코난을 보고, 플롯을 연주하거나 나의 음치 음성으로 가스펠송을 불렀다. 외할머니 댁에선 안동 하회 마을에 가서 그 ‘마을’ 거리를 활보하고 전통 놀이 기구도 타고, 생강도 먹고, 나의 이번 여행에서는 많은 고난과 동시에 즐거움을 겪었다. 얼마나 힘들었던지. 그러나, 이 외할머니, 친할머니 댁 여행은 OO랜드와 함께 한 캐리OO 베이에서의 복잡한 과정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럼 지금부터, 이번 여행에서 가장 신나고 생소했던, 그리고 가장 짧은 시간인 11시간을 소비한, 제일 매운 작은 고추인 ‘캐리OO 베이’를 소개한다.

역시 그 곳에 가는데도 정말 날씨의 운이 따라 주질 않았다. 아버지는 ‘휴가는 이게 끝이니 꼭 가자!’라고 결심하시고 가셨지만 오는 도중 한숨을 푹푹 내쉬시고, 내렸다 말았다 하는 변덕쟁이 소나기. 닌텐도 갖고 싸우는 우리들, 그런 우여곡절을 겪고 도착한 것이 바로 케리OO 베이.

많은 사람들은 그곳에 가 보아서 알 것이다. 만약 누군가에게 ‘캐리OO 베이 아세요?’라고 한다면, ‘아~ 그 큰 수영장!’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대충 설명하자면 맞다고 할 수 있다. 광고에서 연예인이 파도타기를 하는 것만 봐도 알 테니까. 하지만 그것만 알아서는 이 수영장의 진실된 쾌감과 즐거움을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왜냐, 보통 수영장과는 차원이 다르니깐 말이다.

매우 얕지만 넓은 야외의 수영장, 거기서도 거슬리는 것이 있기 마련이었다. 얕은 물에서의 거친 바닥, 그곳에서 몇 번을 ‘아야!’ ‘아야!’ 했던지... 하여튼 그곳에서 스포트라이트는 ‘거친 해일(?)’이다. 해일이 와서 우리를 쓸어 간다~ 그 후의 느낌이 정말 한마디로 ‘시원’했다. 물론, 수영장 위로 둥둥 뜨지는 않아서 제대로 실감은 못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날씨가 즐겁게 놀고 있는 우리를 질투하나 보다. 우리에게 복수하러 왔다. 그리고 비는 정말 억수같이, 엑스피드로 쏟아져 내렸다. 마치 ‘아프지 않은 총알’을 연속으로 맞았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툭하면 어디로 사라져 버리는 은서를 찾느라 고생도 꽤 했다.

자, 그럼 그 다음엔 과연 어딜 갈까? 힌트는 ‘실외’의 반대말, 실내이다. 실내 수영장에 갔더니만 이렇게 좋을 데가! 비도 안 내리고 훨씬 좁고, 얼마나 완벽한가. 드디어 제대로 놀아보자 하고 은서와 함께 수영하며 노는데 뭐야 저건, 안전요원 아저씨가 자꾸만 모자를 쓰라고 한다. 좀 놔두지 그러냐, 어쩔 수 없이 모자를 쓴 나는 누가 더 물속에서 숨 오래 쉬나 , 추격전, 수영 결전 등의 놀이를 했다. 안타까운 건 엄마가 비치볼을 안 가져오셨다는 것, 엄마는 원래 수영할 때 준비가 철저하진 못하시니, 다 익숙해지는 수밖에.

그리고, 캐리OO 베이가 내게 덤으로 준 시간 죽이기 방법. ‘OO랜드!’ 물론 리더는 은서였지만 나도 즐겁게 놀았다. 비록 두 개밖에 놀이기구를 타지 못했어도, 그 놀이기구의 스릴은 엄청났다. 내가 거꾸로 눕다가 올라오다를 반복하고, 초강스피드 열차를 타며 레일을 누비는 그 스릴과 스피드감, 쾌감, 즐거움은 만땅이었다. 겉으론 표현하진 않았지만, 내 기분은 이랬다. ‘정말 이거 매력있는데?’

무엇보다 OO랜드 간 지 3일밖에 지나지 않아 글을 쓰건만, 이렇게 그리울 수가 없는 것 같다. 지금은 다시 학원 생활을 하고 있다. 학원 생활이 웬만해서 익숙치도 않은 편이다. 그리운 OO랜드, 다시 한번 꼭 갈 것이다.

죄다 비슷하게 나열하는 ‘병렬병’

준석이 글에 점수를 주라면 69점이다. 70점에서조차 1점 빼고 싶다. 제 실력을 모두 발휘하지 않았다고 판단해서다. 이 글의 문제점을 굳이 진단하라면 ‘병렬병’이라고 말하고 싶다. 병렬적인 이슈의 나열이라는 의미다. 여러가지 사안들을 똑같은 비중으로 배치한 것이다. 평범하고 특징 없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치 않다. 한 번 고쳐 쓴 글인데도 그렇다.

‘병렬병’에 걸린 글엔 대표상품이 없다. 준석은 휴가지에서의 체험 중 캐러OO 베이에 대해 조금 더 인상적으로 피력하긴 했지만, “조금 더 즐거웠다” 수준이다. “시원했다”거나 “매력있었다”거나 “쾌감 만땅이었다”거나 하는 표현들도 전혀 와 닿지 않는다. 준석은 내세울 게 없으니 체험을 안일하게 나열했을까? 사실 너희들이 가장 좋아하는 캐러OO 베이에서 논 것도 따져보면 3~4시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 그럭저럭 지지부진하게 체험한 탓으로 돌리자. 다음은 은서 글이다. 세번 ‘빠꾸’당하고 네 번째 쓴 글이다.

아파트 4층 만한 파도가 나를 얕은 곳으로

드디어 여름휴가가 왔다. 오빠와 나는 여름휴가를 아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벌써 여름휴가가 오다니! 아, 역시 시간이 빠르긴 빠른가 보다.

우리 가족은 이번 여름휴가를 두 할머니 집에서 보낸 다음, 에버OO에 있는?케리OO 베이로 가기로 했다.

두 분의 할머니 댁도 기대가 있었지만, 가장 기대되는 것은, 에버OO에 있는 케리OO 베이에 가는 것이다.

나는 케리OO 베이에 가기 전에 하나의 상상을 했다.

멋지게 수영을 하며서 파도치기를 느낀 다음, 슬라이드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상상. 하지만 내 상상을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물을 얕아서 수영을 하려고 다리를 흔들면, 다리가 바닥에 닿아서 내 발에 멍이 몇 군데 들었다. 그리고 슬라이드는 줄이 너무 길어서 줄서기가 귀찮아서 안했다.

하지만 나에게 힘이 돼준 남아있는 상상이 하나 있기는 있었다. 바로... 실외수영장에서 파도타기였다. 실외수영장에 들어가기 전에 스쳐봤는데, “삐-”소리가 들리자 사람들은 주춤거리고서 파도가 오면서 파도가 사람들을 휩쓸고 있는 모습을 봤다.

나는 너무 기대가 됬다. 그래서 빨랑빨랑 구명조끼로 빌려서 물속으로 들어갔다. 맨 처음에 갔을 때 내가 너무 멀리 있어서인지, 파도는 내 근처까지 밖에 못 왔다. 그래서 나는 더욱 더 앞으로 갔다. 그래도 내 무릎까지 밖에 못 왔다. 더욱 더 앞으로 갔다. 경비원이 막는 때까지 그 때의 파도는 내 키보다 높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오는 파도는, 높이는 우리 아파트 4층 만했고, 넓이는 한... 5m정도하는 것 같았다. 나는 경비원이 막기 전에 재빨리 들어갔다. 더 이상 발이 닿지 않았다. 나는 쫌 무서웠다. 수영도 잘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삐-”소리가 들리면서 파도가 왔다. 나는 파도가 나를 물이 얕은 곳으로 보내 줄 것을 기대하고 눈을 감았다. 파도가 나를 지나갔다.

내 예상대로 파도는 나를 물이 얕은 곳으로 보내줬다. 내 귀에는 수영장?물이 들어갔고, 수영장 물도 조금마시기도 했고, 코에도 수영장 물이 들어갔다. 선생님께 들었는데, 수영장 물은 우리 몸에 안 좋다고 말씀해주셨다.

파도타기를 탄 나의 오늘 기분은, 스릴 만점 짱이였다!ㄱ-ㄱ

안동 하회마을. 고택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은서.

엉, 다시 보니 준석 글보다 괜찮네

다시 보니, 심하게 타박을 당했던 은서의 글이 오빠 준석의 그것보다 낫다. 은서가 처음과 두 번째로 쓴 글은 49점이었다. 50점에서도 1점을 빼고픈 수준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병렬병’이 지독했기 때문이다. 자기가 간 곳과 한 일과 먹은 것을 ‘일지’처럼 나열했다. 아빠가 “제발 나열하지 말라”고 몇 번을 이야기했더니, 나중에는 하나에 집중해서 썼다. 여름이 오기 전부터 그토록 노래를 불렀던 ‘캐러OO 베이’에서의 경험으로 승부(!)를 건 셈이다. 위의 글엔 74점을 주고 싶다. 준석보다 3점을 더 주고 싶다.

그러나 아빠는 위 글을 통과시키지 않았다. 웬지 끝까지 시비를 걸고 싶었다. 마지막까지 ‘불합격’ 판정이었다. 대신 더 이상 ‘빠꾸’시키지 않을 테니 ‘빠꾸 당한 슬픔’에 관해 써보라고 회유했다.

아빠는 화를 내며 다시 쓰라고 했다

나는 ‘휴가지에서 생긴 일에 대하여’를 쓸 때 너무 힘들었다.

왜냐하면 만~날 쓸 때마다 아빠에게 빠꾸를 당해서 맨날 맨날 다시 쓰기만 했기 때문이다.

한... 5번 정도는 썼을 것이다. 너무 힘들었다. -3-

내가 생각해도 내가 이번 글을 너무 많이 계속 쓴 것 같다. 나는 생각을 한번 해 봤다. 내가 정말 글을 그~렇게 못 썼길래 아빠가 나한테 계속 빠꾸를 한 것인가?

사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내가 글을 좀 못 쓴 것 같다. (좀) 하지만, 내가 그렇게도 못 쓴 것 같지는 않다. 나도 잘 쓴 부분은 많다. 그래도 내가 아빠가 이렇게 저렇게 써라라고 한 말을 기억을 잘 못해서 못 쓴 이유도 있다.

우리 아빠는 예전에 이미 한 번 책을 낸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아빠는 글을 보는 눈이 좀 높은 것 같다. 내 글은 그냥 보통 글인데, 아빠는 내 글이 못 썼다고 말했다. (너무라고도 말하면서 화를 내셨다.) 그냥 차분히 틀린 부분을 말해주면 안되나? 그런데 오히려 종이를 구기면서 화를 낸다. 만약에 아빠가 편집장일 때 사람들이 쓴 글보고 구기면서 던지면서 막 화를 내면, 다른 직원들의 눈초리는 아주 매서울 것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해도 마지막으로 쓴 ‘휴가지에서 생긴 일’ 글은 잘 쓴 것 같다. 그것도 아빠가 화를 안 내면서 다시 쓰라고 했다. 엄마도 내가 그~렇게 못쓰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아빠는 내가 글을 너무 못 쓴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욕까지 하였다. 나는 아빠가 내가 쓰는 글을 보는 눈이 좀 낮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글을 못 쓸 때도 좀 봐주면서 고쳐줬으면 좋겠다.

아빠도 그렇지만, 나도 참아야 한다. (왜냐하면 내가 어른이 돼서 회사원이 된다면 이런 빠꾸 정도는 몇 십번 당할 테니 말이다.) 국내에서 최초로 부녀가 (오빠도 동참) 서로 같이 글을 써서 책을 내는 것이니 말이다. 하하하!

이걸 참아내서 빨리 책을 내면 선생님도 나에게 잘해주실 수도 있고, 아이들도 나를 존경하고, 신문에도 나오고 그러면, 친구 엄마들도, 이 친구랑 좀 친해지렴, 이라고 말할 수 도 있다. (예를 들면 말이다.)

사실 난 그림으로 상을 받아 본 적은 있지만, 글쓰기로 상을 받아 본 적은 없다.

그래도 국내에서 최초로 하는 것이니 더 열심히 써 봐야겠다.

여행 마지막 날 태양이 식은 뒤 테마파크 ‘더블락스핀’에 오르다.
제각각 다른 탑승자들의 다리 모양이 이채롭다.

종이를 구기고 욕을 했다고?

낯이 뜨겁다. 은서는 복수를 했다. 아빠를 비난했다. “종이를 구기면서 화를 냈다” “그러면서 욕까지 하였다” 등등의 문장에서 드러나는 정황이다. 그럼에도 웃음만 나온다. 역시 ‘개고생’을 시키니까 괜찮은 결과물이 나오는 걸까? 글 솜씨가 일순간에 일취월장했을 리 없다. 자신의 마음고생 스토리를 있는 그대로 털어놓으니 재미있을 수밖에. 역시 솔직한 글이 최고다. 은서야, 이 글엔 85점을 주마!!

위 글에서 보는 것처럼, 아빠는 은서에게 “국내에서 최초로 부녀가 (오빠도 동참) 서로 같이 글을 써서 책을 내는 것”이라는 감언이설로 꼬드겼다. 글쓰기로 계속 부려먹기 위한 일종의 정신적 자극이다. “힘들어도 왜 매주 글을 써야 하는지” 에 대한 사상교육이라고나 할까?

‘휴가지에서 생긴 일’엔 뭔가 억지로 쓴다는 느낌이 배어나왔지만, 위 글에는 그런 게 없다. 단어와 문장 곳곳에 네 마음이 우러나온다. 우러나와 쓰는 글엔 실감이 있다. ‘병렬병’ 같은 어줍잖은 논리를 적용시킬 구석도 없다. 네 마음을 읽으며 아빠는 반성도 했다. 버럭 짜증낸 거 사과한다.

오늘의 결론을 조심스럽게 맺어본다.

첫째, ‘병렬병’을 조심하자.

‘왕 소재’를 하나 세우자. 그 외 다른 이야깃거리는 ‘왕 소재’를 보필하는 ‘신하 소재’로 만들어주자. ‘왕 소재’는 왕이다. 당근 크게 세우는 거다. 소재의 ‘주종관계’(主從關係)가 필요하다. 으뜸으로 부각시킬 만한 이슈가 ‘왕 소재’다. ‘왕 소재’는 없고 다들 고만고만한 ‘신하 소재’거나 몽땅 ‘왕 소재’면 그게 바로 ‘병렬병’으로 연결된다. 이럴 경우 전문용어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뭐야, 야마가 없잖아?” “뭐야, 컨셉이 없잖아?”

둘째, 그럭저럭 살지 말자.

체험이 그럭저럭이면 글도 그럭저럭이다. 사는 게 그럭저럭이면 글도 그럭저럭이다. 뭐든지 화끈하게 해야 글도 화끈하다. 화끈하게 부딪쳐봐야 우여곡절이 있는 스토리와 드라마가 생산된다. 은서도 화끈하게 글을 여러 번 고쳐 쓰며 아빠에게 이를 갈아보니 화끈하고 재밌는 글이 나오지 않니? “그러니까 공부도 화끈하게……”라고 방향을 틀면 다들 이상한 눈으로 보겠지? 그래도 밀고 나가련다. 공부도, 이왕 할 거면 화끈하게! 물론 놀기도, 이왕 놀 거면 새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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