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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야에 더위를 잊는 가장 좋은 방법

공간, 시간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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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야에 더위를 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다음날 아침 웃으면서 깰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를테면 나는 다니엘 윌리스의 소설 『빅피쉬』에 나오는 이런 문장을 생각하면서 잠이 드는 것을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열대야에 더위를 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다음날 아침 웃으면서 깰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를테면 나는 다니엘 윌리스의 소설 『빅피쉬』에 나오는 이런 문장을 생각하면서 잠이 드는 것을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사람을 정말 잘 웃겼다. 초저녁부터 시작한 그들의 웃음소리가 밤새도록 들렸다고 한다. 아버지와 젊은 여자들이 웃는 소리가 밤이면 메아리가 되어서 마을로 울려 퍼지도록 그의 집 현관에 머물러 있었다. 그 웃음소리는 여행자들이 머물러 묵고 가게끔 마음먹게 하는 소리였다.

이런 문장은 한여름의 가벼운 눈송이처럼 너울너울 춤추며 나를 감싼다. 나는 어느 해 여름 질주하던 한 떼의 웃통 벗은 사내아이들과 그들의 등판에 포도송이같이 매달린 땀, 열대의 냄새를 풍기는 소녀들과 그녀들의 가슴에 매달려 있는 큰 꽃들. 휘파람을 부르며 끌어안고 있는 연인들과 그들의 어깨를 비추던 별빛들을 기억해낸다. 그렇다면 내 방 자정의 묵직함은 이렇게 바뀐다.

공간은 무엇인가? 공간은 어깨의 곡선, 얼굴의 타원형이다.
시간은 무엇인가? 시간은 해변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달려가는 젊은이의 움직임이다.

그리고 열대야를 잊는 두 번째 방법은 그리움을 찾는 것이다. 그리움은 우리를 언제나 서늘하게 한다. 그리움은 형용사(뭉클하고 애틋하고 설레고 어둡고 가라앉고 비밀스럽고……)들의 집합체이자 명사들의 집합체이다. 나는 입김과 바람과 나뭇잎과 해변과 나를 지켜보던 사려 깊고 다정한 시선들, 고개 숙인 몸들을 그리워한다. 이를테면 『새』라는 사진집에 나오는 두루미들이 하품하는 사진 밑에 붙은 간단한 설명, “늦가을에 접어들어 기온이 떨어지자 두루미들이 내뱉은 입김이 하얗게 보인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간,해가 뜨는 동안에만 잠시 볼 수 있는 귀한 장면이다”.

혹은 어디선가 읽었던 이런 대화들.

“자네는 바람에도 색깔이 있다는 사실을 물론 알고 있지.”
“나는 전혀 몰랐는데.”
“고대인의 문헌에서 이 믿음의 기록을 발견할 수 있지. 네 개의 바람과 그 아래에 여덟 개의 바람이 있네. 각각은 고유의 색깔을 가지고 있어. 동쪽에서 오는 바람은 짙은 자줏빛이고 남쪽의 바람은 빛나는 은빛이지.”


이런 이야기들이야말로 쫙 펼쳐지며 그림을 내보이는 부채 같은 이야기다. (벤야민은 상상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상상력은 어떤 이미지든 접어놓은 부채로 여길 줄 아는 능력, 그 부채가 펼쳐져야 비로소 숨을 쉬게 되고 또 새로이 펼쳐진 그 폭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특성들을 내부에서 연출해 보이는 그러한 능력이다, 라고. 그렇다면 나는 그리움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그리움은 어떤 이미지든 한때 펼쳐져 있었으나 지금은 접혀 있는 부채로 여길 줄 아는 능력. 그리움이야말로 한때 삶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하는 상상력이다, 라고.)

그런데 며칠 전에 나는 땀에 푹 절어 물에 빠진 가여운 짐승처럼 살고 있는 내 성스러운 벗에게, 열대야에 읽으면 가장 좋은 책 한 권을 골라주고 싶어졌다. 그 이야기 ―파트릭 모드리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 는 전화번호부가 가득한 방에서 시작된다. 소설의 주인공 기는 기억을 잃었다. 기억을 잃은 그가 흥신소의 직원이다. 어쨌든 사람을 추적하는 흥신소에서 가장 중요한 텍스트는 전화번호부였다.

전화부들과 연감들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귀중하고 가장 감동적인 도서관을 구성한다는 것이었다. 그들 페이지마다에는 오직 그것들만이 증언할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사물들과 세계들이 분류되어있기 때문이다.

과연 그런가? 전화번호부는 어떤 텍스트인가? 나는 오래전 미국의 한 도시 한인타운의 전화번호부를 펼쳐본 일이 있었다, 숙자네 캐터링, 김씨 론더리. 수지 킴의 허벌 하우스. 명동반점. 미스 킴스 리얼 에스테이트……. 그때의 전화번호부는 사람들의 슬픔과 행운, 불운과 불안으로 이뤄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전화번호부의 숫자와 문자들은 어쩐지 절박하고 긴장되어 보였기 때문에 나는 전화번호부에 진심으로 감탄하게 되었다.

기는 과거의 자신이 한때 스티오파란 사람과 어울려 지냈던 어떤 사람과 닮았다는 걸 알게 된다. 러시아 망명귀족 스티오파를 만났을 때 기의 심정은 이랬다.

나는 그 모든 건물의 정면 벽들과 내가 서있는 창과 똑같이 불 켜져 있는 그 모든 창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어지럽게 늘어서 그 건물들과 층계들과 승강기들과 저 수백 개의 벌집 같은 창문들 속에서 한 남자를 발견했던 것이다.

자신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한 사람,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자신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다른 어떤 사람을 아는 한 사람. 이야기는 그렇게 이어진다. 하나의 삶을 찾아내려면 그렇게도 많은 타인들의 삶이 필요하다. 과연 누가 기를 기억하고 있을 것인가?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는 없는 것일까? 혹은 반대로 우리는 나를 기억하기 위해 누구의 삶을 기억해야 하는가? 나는 그 절박함 앞에서 긴장되지만 기는 우아하다. 마치 자기 자신을 허공에 매달려 있는 어떤 사라져 버릴 결정체처럼 본다. 그리고 그것이 더 절박해 보인다.

스티오파는 댄서였던 게이 오를로프의 소녀 시절을 알고 있었다. 기는 스티아포의 사진통에 들어 있는 게이의 사진 속에 있는 어떤 남자가 자신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게이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몇 년 전 자살해 버렸다. 하지만 기는 아름다운 게이 오를로프가 하워드 드 뤼즈란 사람과 알고 지냈단 것을 알게 된다. 기는 이런 질문들을 던진다. 내가 하워드 드 뤼즈였을까? 혹은 하워드 드 뤼즈가 아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만약 하워드였다면 모스크바 출신의 전직 댄서와 나는 무슨 대화를 했을까? 우리는 어느 나라 말을 이야기를 나눴을까? 기는 흥신소에서 일했을 때 그의 고용주였던 위트와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곤 했었다.

그들은 어느 날 무로부터 문득 나타났다가 반짝 빛을 발한 다음 다시 무로 돌아가 버린다. 미의 여왕들, 멋쟁이, 바람둥이들, 나비들. 그들 대부분은 심지어 살아있는 동안에도 결코 단단해지지 못할 수증기만큼의 밀도조차 지니지 못했다. 위트는 해변의 사나이라고 불리는 한 인간을 나에게 그 예로 들어보이곤 했다. 그 남자는 사십 년 동안이나 바닷가나 수영장 가에서 여름 피서객들과 할 일 없는 부자들과 한담을 나누며 보냈다. 수천수만 장의 바캉스 사진들 뒤쪽 한구석에 서서 그는 즐거워하는 사람들 그룹 저 너머에 수영복을 입은 채 찍혀 있지만 아무도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며 왜 그가 그곳에 사진 찍혀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아무도 그가 어느 날 문득 사진들 속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 해변의 사나이들이며(…)

우리 모두가 해변의 사나이들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우리의 바캉스 사진 뒤편에 찍혀 있는 사람들을 결코 알지 못한다. 우리가 누군가의 사진에 어떻게 들어가 있는지도 알 수가 없다. 그 사진속의 우리들에게는 어떤 결론도 없다. 사진 속의 나는 파도보다 솟구쳐 오르지 못하고 추억의 대상도 영원히 손길과 시선이 닿는 기념품도 될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우리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고 우리는 누군가의 존재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우리의 뒤돌아보는 등 뒤편에 있는 것이 잠시 반짝이다 스러지는 공허뿐이라 할지라도 그 공허마저 비밀스런 출발점처럼 느껴진다.

기는 자신이 드니즈 쿠르되즈와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만이 한때 그를 기다리고 있고 그가 이 도시에서 실종될 것을 걱정하는 유일한 여자였단 것을 기억하게 된다.

골목들과 대로들의 저 미궁 속에서 어느 날 드니즈 쿠르되즈와 나는 서로 만났던 것이다. 거대한 전기당구대 위에서 때때로 서로 부딪히기도 하는 수천수만 개의 작은 당구공들처럼 파리 시내에서 오가는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따라가는 저 도정들 가운데서 서로 마주치는 도정들. 그런데 그것으로부터 이제는 아무것도 심지어 하나의 반딧불이 지나가면서 남기는 저 가느다란 빛의 줄무늬조차도 남은 것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는 드니즈를 생각하면서 한 단편들, 파편에 가까운 단편들을 서서? 기억하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전깃불에 비친 초록색 잎새들, 계단에 앉아 있는 야광빛 흰 양복의 남자. 여름같고 비현실적인 것들. 하지만 드니즈는 누구였을까? 그는 어떻게 그녀를 잃고 마침내 기억을 잃게 되었으며 왜 그 혼자만이 “저기 공원가의 어느 아파트 속에 내 삶의 무엇인가가, 나를 알았던 어떤 사람, 아직도 나를 기억하는 누군가가 아직도 살아남아있는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며 밤거리를 거닐게 되었는가?

소설의 마지막 순간까지 기는 자신이 누구였는지 완전히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가 가봐야 할 곳은 로마,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한 군데만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의 질문은 이제 “나는 과거에 누구였던가?”라고는 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 모든 것이 내게는 어찌나 종잡을 수 없고 어찌나 단편적으로 보이는지……. 몇 개의 조각들. 어떤 것의 한 귀퉁이들이 갑자기 내 수사의 과정을 통하여 되살아나는 것이었습니다. (…)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인생이란 바로 그런 것인 모양이지요. 과연 이것은 나의 인생일까요? 아니면 내가 그 속에 미끄러져 들어간 어떤 다른 사람의 인생일까요?

내가 나 자신에게 누구였던가를 찾아내는 것보다 내가 그 또는 그녀에게 누구였던가? 내가 누구의 인생에 미끄러져 들어가 보았던가를 찾아내는 것이 혹시 더 놀랍고 신비로운 것이 아닐까? 소설은 그가 처음에 얻은 게이의 소녀 시절 얼굴을 다시 들여다보는 걸로 끝난다. 그런데 사진을 처음 볼 때 몰랐지만 나중에 자세히 보니 사진 속의 소녀는 울고 있었다.

한 어린 소녀가 황혼녘에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해변에서 돌아온다. 그 아이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계속해서 더 놀고 싶었기 때문에 울고 있다. 소녀는 멀어져간다. 그녀는 벌써 길모퉁이를 돌아갔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 또한 그 어린아이의 슬픔과 마찬가지로 저녁 속으로 빨리 지워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기억이란 어떤 것일까? 우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 속에? 혹은 내가 기억하는 것들 속에? 나는 더운 여름밤마다 이 소설에서 지극한 아름다움을 보곤 했었다. 결코 되돌이킬 수 없는 희미한 시간에의 탐색, 그리움에서 또 다른 감정과 질문을 끌어낼 줄 아는 시선, 하지만 결코 손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나. 이 소설을 읽다보면 도시에서 혼자서 숨바꼭질을 하는 사람에게 기억이란 마치 어떤 빈집에 차려진 따뜻한 식사와도 같이 느껴진다. 지금은 그 식사를 차려놓고 방안을 덥혀놓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그러나 그 사람은 어딘가에 있다. 그래서 기가 기억을 찾아 헤매는 동안 누군가는 기를 기억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그는 그토록 오래전에 오직 두 번밖에 만나지 못했던 그 남자가 이 여름 저녁 인도 위의 마지막 햇빛의 반점을 뛰어넘고 있는 어린아이와 함께 있는 자신만큼이나 한가하고 행복하기를 바랐다.

어느 해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는 “햇살에 눈이 녹고 가벼운 잎사귀에 적힌 시빌라의 점괘들이 바람결에 사라질 때”, 이런 『단테의 천국 여행기』에 나오는 문장을 떠올렸다. 눈이 녹고 난 뒤 우리는 잎사귀를 들고 무엇을 보게 될 것인가? 아마도 어쩌면 우리가 존재 속에 들어가도록 도왔던 얼굴들, 사건들, 형상들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형상들은 어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마치 흐릿한 흑백사진들처럼. 그러나 나 역시 곧잘 내 기억 속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걷는다. 그 거리를 걷다가 차가운 햇빛 비추는 날 반짝이는 어떤 것을 보고 잠시 발걸음을 멈추기도 하지만 또 걷는다. 내 옆에서 누군가가 걷다가 사라지고 또 한참을 같이 걷기도 한다. 그 거리에서 내 흔적은 너무나 연약하지만, 그들 모두가 나를 잘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함께 걷고 있다. 나는 길을 잃기도 하고 찾기도 한다. 하지만 이 도시의 많은 것들은 내가 놓쳐서는 안 되는 어떤 것들을 말해주려는 듯 나를 바라본다. 그 시선이 아름답다는 것 때문에 나는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걷는다. 그러고는 어두운 거리 속 모퉁이를 돌아 사라진다.

세상을 설명하거나 구축하는 것보다 우리가 존재 속에 삽입되는 일을 심화시켜주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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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혜윤 (C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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