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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어던』

국가는 왜 필요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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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어던』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 책 한 권에서 상당히 많은 현대국가의 개념이 원시 형태로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화 <터미널>에서는 독특한 상황에 처한 한 개인의 이야기를 유쾌하고 따뜻하게 담아낸 바 있습니다. 미국에 여행 온 주인공은 조국에 문제가 생겨 갑자기 무국적자가 되는데, 이 덕분에 미국 입국이 금지되면서 공항 터미널 안에서 하릴없이 살아가야 하는 신세가 됩니다.

개인은 국가와 떼어놓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특히나 현대사회에서 평범한 현대인으로 살아가는 이라면, 국가와 관계없는 개인은 존재도 드물뿐더러 생각 외로 받는 피해도 작지 않습니다. 언뜻 보면 마냥 세금이나 떼가고 쓸데없는 정치 싸움이나 하는 것 같지만, 사람이 만든 기구다 보니 나름의 이유와 목적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런 국가의 개념을 처음 만들기 시작할 때의 논의는 그래서 국가 없이 존재하기 어려운 개인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인식하기 좋은 텍스트가 됩니다.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저작이 오늘 소개할 홉스의 『리바이어던』입니다. 교양서나 학교 교과 과정을 통해 간략하게 그 내용은 소개되어 있지만, 사실 상세한 내용을 들여다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리바이어던』 소개에 앞서 먼저 전개해야 할 이야기는, ‘국가’라고 부르는 단어를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한 전제들입니다. 한국에서는 그저 국가라고 통칭할 수 있지만, 사실 서양에서 이야기하는 국가라는 개념은 근대 이후에 형성되는 개념입니다.

근대국가의 출현 시기 자체는 정확히 규정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근대적인 국가간 외교 조약의 시초를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보는 한, 그 앞뒤로부터 근대국가의 모습을 추정할 수는 있습니다. 베스트팔렌 조약은 신-구교간의 충돌로 발생한 30년 전쟁을 종결지은 종교조약으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실제 내용과 결과를 보면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국가가 종교를 선택할 수 있는’ 형태입니다.

이전까지의 유럽은 신성로마제국이라는 교황의 영향 아래에 놓인 왕권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형태였습니다. 그러나 각각의 문화권에서 나름의 영향력을 갖던 왕권들은 신-구교간의 갈등 속에 나름의 종교 체제를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정도까지 영향력이 확장되었고, 종교 아래에 있던 국가 개념은 마침내 최상위기구 개념으로 정립됩니다.

『리바이어던』이 말하는 국가는 바로 이 개념입니다. 중세까지 이어지던 봉건영주 치하의 권력체계가 아니라, 최상위기구로서의 사회집단, 구성원과 긴밀한 관계를 주고받는 사회집단으로서의 국가를 가리키고, 그 국가의 모습에 대해 정의하는 내용이 『리바이어던』의 중심입니다.

『리바이어던』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반부는 인간론, 후반부가 국가론입니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의 구성 순서를 매우 부드럽게 전개해 나가는데, 그 목차만 봐도 어떤 식으로 논의가 확장, 전개되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감각 → 상상 → 상상의 흐름 → 언어 → 추론과 학문 → 정념과 언어 → 담론 → 덕과 결함 → 지식의 주제 → 힘, 가치, 지위, 명예 → 행동양식의 차이 → 종교 → 인간의 자연상태 → 자연법 → 인격체’

보시는 것처럼, 홉스는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외부 교류채널인 감각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합니다. 이 감각작용에 대한 고찰은 점점 복잡성을 더하고 범위를 키우면서 개인의 내면 전체를 거쳐 각각의 개인들이 갈등하고 살아가는 사회를 다루고, 마지막으로 ‘감각의 개인’이 아닌 ‘사회 속의 개인’을 정리합니다. 국가를 다루기 위해 그는 책의 절반을 인간이라는 국가구성요소가 가진 속성을 정리하고, 탐구합니다.

그리고 이 속에서 유명한 구절이 나옵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라는 것은 홉스가 인간의 자연상태를 논하면서 펼치는 논지입니다. 홉스는 인간이 스스로 가지는 본능이 사회에서 부딪히며 발생하는 상태들을 이야기하며, 경쟁과 명예와 같은 상대가치가 발생하는 점을 짚습니다. 그리고 이로부터 모든 사람들이 자연 상태에서는 서로에게 전쟁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이로부터 홉스의 논의는 본격적으로 개인을 넘어 집단에 대한 이야기로 펼쳐집니다.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에 놓인 인간들이 나름의 합의점을 찾기 위해선 ‘자연법’이라고 부르는 이성에 의해 발견될 수 있는 규칙을 정해야 하고, 이것이 인간이 가지는 본성을 효과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자연법을 만들고 자연법에 의해 정리된 사회 속에서 인간은 개인이 아닌, ‘인격체’, 다시 말해 집단 속의 개인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합니다. ‘인격체’는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사회 속의 개체를 가리키며, 이는 계약 속의 주체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들이 모여서 만드는 거대한 계약의 기초로서 홉스는 국가를 이야기합니다.

『리바이어던』이라는 제목은 ‘레비아탄’이라는 괴물을 영국식으로 부른 이름입니다. ‘레비아탄’은 성경에서 처음 등장하는 괴수로, 욥기에서 신이 인간에게 보여주는 거대한 바다괴물입니다. 종교설화로부터 이어져 온 판타지의 전승에서는 레비아탄을 베히모스와 함께 거대괴수의 쌍벽으로 묘사하기도 해서 익숙하지 않은 괴물은 아닙니다.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4.5 ~ 1679.12.4)
국가를 굳이 괴물과 비교하는 이유는 ‘공포’라는 지점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자연 상태의 인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공포를 느끼는 상태입니다. 자신의 삶과 가치를 위협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자신을 위해 사는 또다른 인간의 욕망이고, 이렇게 통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인은 모든 상대 개인에게 날카롭게 각을 세우고 살아야 합니다.

홉스는 그 지속적인 긴장 상태 해소를 위해 ‘공포를 전가시키는’ 방식을 택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자연법의 발견과 설정을 통해 인간은 서로를 위협할 수 있는 힘과 권력을 공공의 것으로 새롭게 양도합니다. 이 양도받는 주체가 바로 국가입니다.

국가는 개인으로부터 힘과 권력을 양도받았기에, 그 어느 개인보다 막강한 힘을 소유합니다. 그리고 전체 사회 유지를 위해 부여받은 권력을 행사합니다. 『리바이어던』 원서의 삽화에 나오는 괴물 레비아탄은 그래서 실제로 한 손에는 칼을, 한 손에는 권력을 상징하는 왕의 홀을 듭니다. 공포와 권위가 한배를 탄 형상의 이 괴물은 개인들이 서로간에 가지고 있던 공포를 자신에게 집중시키며, 그 공포에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는 힘을 소유해 전체 사회를 통제합니다.

홉스는 그렇게 구성되는 괴물 같은 국가의 체계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하나는 자연적인 힘에 의해 형성되는 군주정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계약과 제도에 의해 설립되는 대리인 체제의 국가입니다.

두 경우 다 국가의 목적은 결국 ‘무정부상태의 차단’에 있습니다.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를 막고, 권력집중을 통해 서로에게 위협이 되는 힘들을 몰아버림으로써 사회는 보다 안정적인 형태로 유지가 됩니다. 이런저런 조건들을 따져 보면 국가는 분명 사회계약론상 개인들에게 득이 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홉스는 굳이 ‘레비아탄’이라는 괴물을 국가에 비유합니다.

그건 바로 국가가 필요악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의 은유입니다. 자연상태의 대혼란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권력을 계약을 통해 몰아준다는 형태는 100% 완벽한 유토피아는 아닙쾴다. 홉스도 이 점을 충분히 알고 있었고, 따라서 국가의 은유는 괴물과 같은 공포의 뉘앙스를 베재하기 어려운 형태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홉스는 괴물 국가에 대해 절대적인 복종을 이야기합니다. 개인들이 정당한 계약을 통해 자신의 안전보호를 목적으로 설립한 단체이니만큼, 국가의 정책과 제도는 반드시 보호되어야 하고, 양도계약의 당사자인 개인은 국가의 권위를 존중하며 그에 따를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홉스는 그래서 왕정이든 민주정이든 딱히 한쪽 편을 든다고 보기 어려운 입장을 취합니다. 그에게 있어서는 국가권력이 어떤 방식에 의해 성립되었는지보다는 자연상태의 욕심 많은 개인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안정을 가져왔다는 점이 포인트입니다.

사실 이러한 논지는 요즘 들어서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당장 이제는 국가와 시민사회가 분리되어 사고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NGO라는 이름이 생소하지 않은 것은 국가라는 독점적 권력체계가 자생적 시민사회에 주는 위험성을 견제하기 위해 국가와 견제관계를 이룰 수 있는 제도를 새롭게 만들어내면서 시민단체의 역할이 증대했기 때문입니다.

홉스의 입장에서 인간은 매우 사악한 존재로 비춰집니다(물론 뉘앙스는 그렇지 않습니다만).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그 노력에는 자연 상태에선 룰이란 게 없습니다. 그 사악한 이기심이 인간 스스로를 잡아먹을 거라고 우려한 홉스는 국가라는 이름의 괴물을 생각해 냈고, 동시대의 수많은 생각들은 근대적 의미에서의 국가 체계를 낳았습니다.

『리바이어던』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 책 한 권에서 상당히 많은 현대국가의 개념이 원시 형태로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민의 위치, 계약과 대리인, 법의 위상, 권력이 시민에 개입할 수 있는 영역 등 우리가 민주주의 또는 정치의 영역이라 부를 수 있는 많은 지점들에 대해 최초에 가까운 통찰을 보여주고 있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딱딱한 정치학 교재보다 더욱 흥미롭게 현대 국가와 시민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텍스트입니다.

동아시아에서의 국가관은 유럽의 그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단일 종교하에서 봉건영주제를 중심으로 특별한 일체감 없이 이어져 온 중세 유럽의 역사와 달리, 동아시아는 강력한 관료제의 지배 아래 꽤 오래전부터 고대 국가의 영향력이 개인들에게 강력하게 미쳤던 역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홉스의 논의는 동아시아 쪽에서의 이해가 조금 복잡한 부분이 있습니다. 다만 ‘국가’라는 단어를 ‘근대 국가’로 놓고, 우리의 인식 속에 국가로 자리잡혀 있는 고대 동아시아의 사회집단을 ‘고대국가’로 분리해서 읽는다면 보다 수월한 독서가 될 수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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