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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만남]평범한 날에 떠나는 특별한 외출 - 『큐레이터 한나의 뮤지엄 데이트』 송한나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일상이 된 것에 더 많은 가치와 감동을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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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한나 작가가 소중히 챙겨 왔던 물건들은 사실 사소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물건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박물관 여행을 통해 추억이 담긴 물건을 소중하게 다루는 법을 배웠다.

어렸을 적부터 박물관을 좋아했다. 역사를 좋아했기에 옵션으로 붙어온 취향인지는 모르지만, 기억도 가물가물한 어릴 적부터 박물관이 편했다. 일 년에 한두 번 외가에 갈 때면, 부모님을 졸라 공주, 부여 박물관을 들르곤 했다. 석기시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비슷비슷한 유물들에 살짝 싫증을 낼 무렵 만난 것이 러시아 ‘에르미따쥐’였다. 영국의 대영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와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이라 불릴 만큼 천 개의 방은 그야말로 문화 그 자체였다. 러시아 황제들이 유럽에서 사들였던 그 많은 미술품들. 눈을 돌리는 곳마다 마티스, 램브란트의 걸작이 턱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로마노프 왕가가 1917년 러시아혁명으로 무너졌지만, 과거의 유물은 고스란히 에르미따쥐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오감이 충족되는 황홀한 경험이었지만, 부작용이 덜컥 생겨버렸다. 그 어떤 국내의 박물관에 가서 전시물을 보더라도 심드렁해버리는 병이 생긴 것이다. 현대미술관도,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회에 가도 감동이 없었다. 단출하고 소박한 우리의 문화유물 뒤로, 거대하고 화려했던 서양 그림과 문화재가 어른거렸다. 그래서 한동안 박물관 출입을 끊어버렸다. 마음이 움직이질 않으니, 박물관에 가는 것은 시간 낭비였다.

지난 봄. 고향에서 친구가 찾아왔기에 삼청동에 갔다. 지나가는 사람도 많지 않고, 이삼 층짜리 낮은 건물 사이를 지나며 담소를 나눴다. 가게 안 아기자기한 소품도 구경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차도 마시고. 둘이 신나게 걷다보니 길을 잃어버렸다. 둘 다 삼청동은 초행길인 데다가, 지독한 방향치라서 한동안 같은 자리를 빙빙 돌았다. 그러다 발견한 곳이 ‘티벳박물관’. 이 층짜리 작은 건물에 턱 하니 붙어있는 ‘박물관’ 명패가 못미더워, 그냥 지나려 했으나 그러기에 발이 너무 아팠다. 그래서 쉬어가는 의미로 잠시 들른 이곳에서 내 박물관 여행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당연한 것들의 가치를 발견하다

『큐레이터 한나의 뮤지엄 데이트』 송한나 작가와의 박물관 데이트는 토요일 오후였다. 이른 여름 햇볕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날이었다. 여유롭게 삼청동을 기웃거리려는 계획은, 전날 갑자기 터져버린 일 때문에 엉망이 됐다. 허겁지겁 달려갔지만 늦고야 말았다. 나지막한 건물들, 여유 있는 걸음의 사람들 틈에서 달리려니 이상한 나라에 빠진 앨리스가 된 기분이었다. 숨을 몰아쉬며 도착한 북촌생활사 박물관. 이미 안마당에서 작가와의 대화는 도란도란 진행되고 있었다.


송한나 작가의 앞에는 귀여운 보관함이 놓여 있었다. 그 속에 든 사진과 티켓, 팸플릿들이 우선 눈에 띄었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앉거나 서서 작가의 소장품을 구경하고 있었다. 세계 다양한 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기념 배지가 가득했다. 그녀에게 박물관은 단순한 유물을 모아놓은 장소가 아니었다. 송한나 작가의 말에 바쁜 일상에서 조금씩 벗어나, 북촌 생활사박물관만의 여유가 내 몸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꺼내는 한마디.

책을 통해 여러분들께 박물관은 일방적인 정보를 전달받는 교육의 공간이 아니라 추억을 떠올리며 자신을 깨달아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라는 점을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박물관 전시물을 통해 잊고 있었던 추억을 떠올리며 현재를 반영하고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은 박물관에서만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입니다.(p.6~7)

삼청동의 티벳박물관은 생각만큼 작았다. 이 층짜리 건물 전체가 무채색으로 뒤덮인 것만 같았다. 티벳의 전통 옷과 무기, 악기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처음에는 화려한 색이었겠지만, 많이 사용해서 색이 바래고 낡은 것들뿐이었다. 하지만 지친 다리를 쉬기 위해 천천히 유물을 바라보면서 국내 박물관 여행에서는 심드렁하던 심장이 조금씩 뛰기 시작했다. 적의 해골로 만들어 주술적으로 사용했던 북이라든지, 종교적인 색체가 강하게 남은 만다라. 박물관의 유품들은 수년전 네팔 안나푸르나 여행을 떠올리게 했다. 내려오는 길에 어느 노파에게 천 루피를 주고 샀던 유리돌이 붙은 보석함도 생각났다. 그리고 티벳 유랑민의 마을에서 보았던 수공예품을 만들던 그들의 소박한 웃음도 생각났다.

티벳박물관 안에 모여 있던 것들은 유물로 전시되기 위해서 제작한 것이 아니었다. 타고난 손재주를 부려서 정성을 들여 만들었던 일상품이나 제의도구가 수대를 거쳐 내려와서 남아있는 것이었다. 유물로서의 가치는 티벳 문화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모르지만, 물건을 소중히 아꼈던 사람들의 마음이 따뜻하게 전해졌다.

720개의 박물관 얼마나 가보셨나요?


책을 읽고, 또 강연회를 통해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국내에 박물관이 720여개나 있다는 것’. 그간 내가 다닌 국립박물관과 미술관 대학박물관 등을 통틀어 봐도 50여 곳, 앞으로 가야 할 곳이 670여 군데나 남았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작가가 책에 수록한 열다섯 곳의 박물관은 일상적인 곳보다는 특이한 주제가 담긴 곳뿐이었다. 고래박물관, 한국 이민사 박물관, 화장 박물관……. 호주 시드니에서 실내건축학과를 전공하고, 박물관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작가는 박물관에 대한 편견이 전혀 없었다. 박물관 전시품은 오래되고 예술적 가치가 높은 물건만 있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막연한 생각도 뒤흔들었다.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체험자로서의 순수한 감흥뿐’. 그 감흥은 대부분 개개인의 추억에서 시작되는 것이기에, 자신의 삶과 닿아 있는 박물관을 찾았던 것 같다.

북촌생활사박물관에 다녀온 후 생긴 버릇이 있다면 현재 사용하고 있는 물건들을 좀 더 아끼고 소중히 다룬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예사롭게 사용하고 있는 물건들은 이미 유행을 지나 촌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내가 거쳐 왔던, 내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 내가 자식과 손주들을 얼마나 생각하고 사랑했는지를 조금이라도 전해주고픈 마음에 ‘아직 시집도 가지 않은 애가 주책’이라며 꾸중을 하는 엄마의 잔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늘도 주섬주섬 내 물건을 모으고 정리한다.(p.124)


송한나 작가가 소중히 챙겨 왔던 물건들은 사실 사소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물건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박물관 여행을 통해 추억이 담긴 물건을 소중하게 다루는 법을 배웠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 옛것이 되니, 지금 사용하는 물건들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삶의 반 넘게 해외생활을 한 그녀가 박물관에 관심을 갖게 된 이야기, 그리고 송한나 작가가 생각하는 박물관에 대한 것을 도란도란 나누다보니 어느새 1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적지에서 내가 느낀 것은 ‘죽은자들의 무덤’이었다. 콜로세움, 화려한 궁전.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 남겨준 것으로 돈벌이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넘쳐나는 사람들은 관람객이었고, 그들은 언제나 규모와 역사적인 가치에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들 틈에서 나 역시 한 사람의 평범한 관람객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진심으로 감탄한 것은, 적어도 지금까지 내 기억 속에 놀라움으로 남아있는 것은 다른 종류의 것들이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300년 된 역사적인 건물들. 화려한 석상이 장식되어 있는 그 건물에 사람이 여전히 살고 있다는 것과 몇백 년 전 중세와 마찬가지로 시장이 열리고 있는 에스토니아의 광장. 단순히 역사적 유물로 남은 것들보다는, 고스란히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일상이 된 것에 더 많은 가치와 감동을 받았다.

요즘은 대량생산으로 같은 틀에서 찍어낸 탓에, 지금 내가 사용하는 넷북이 나중에 빛나는 가치를 인정받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 대부분이 패스트(fast)세대답게, 비싸지 않고 특별하지 않은 것들뿐이다. 책을 읽고 또 작가의 강연회를 듣고 생긴 가장 큰 욕망은, 내 추억이 담긴 물건을 후손에게 남겨주고 싶다는 열망. 그러자면 그 물건을 소중하고 아끼는 내 마음 또한 더해져야 할 것이다.


박물관에 가보면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아이 손을 붙잡고 온 학부모들이다. 학교 숙제로 혹은 아이에게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보여주고 싶어서 박물관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박물관을 찾게 되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단순히 ‘공부거리’로 박물관을 생각한다면 그 아이는 자라서도 박물관을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곳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데이트 장소가 아쉬운 커플이나, 혼자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특히 아이들에게 일상의 소중함을 전하고 싶은 학부모라면 『큐레이터 한나의 뮤지엄 데이트』 한 권을 들고 매주 나들이를 떠나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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