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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온 네 명의 더벅머리

비틀즈(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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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의미에서의 록큰롤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새로운 역사를 맞이하게 된다. 영국에서 온 네 명의 더벅머리는 그렇게 세상을 바꾸어 나아가기 시작했다.

“같은 종의 생물이라도 지리적 또는 생리적으로 격리되면 그 환경에 알맞게 변하여 새로운 종이 된다.” 진화론에 입각한 여러 학설 중 하나인 격리설은 록의 세계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장르를 막론하고 모든 팝의 발상지는 변방이었다. 거기엔 언제나 민족 문화의 충돌과 융합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변방의 아티스트들은 어떠한 형식에 관해서도 유연한 태도를 취했고 그것은 장르 간의 하이브리드, 더 나아가서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대중음악의 기나긴 연보를 통해 극명히 드러나는 사실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영국의 항구 도시 ‘리버풀’은 20세기 대중음악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지역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초기의 비틀즈

비틀즈를 낳은 도시 리버풀은 잉글랜드 북서부의 해안에 자리 잡고 있으며 바다 건너엔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이 위치해 있다. 예부터 무역항으로 번영, 아일랜드 이민자들과 아프리카, 서인도 제도에서 온 노예들로 들끓는 인종의 용광로 같은 도시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리버풀은 대영제국 국내에 위치한 국경의 땅이며, 실제로 비틀즈 멤버 중 링고를 제외한 존, 폴, 조지는 아일랜드 이민자의 자식이었다.

We love the Beatles

미국의 흑인음악이 정작 자국의 젊은이들에게는 서서히 잊히고 있던 60년대 초반. 어떤 연유에서인지 영국의 젊은 뮤지션들은 블루스의 종가 미국의 흑인 아티스트들에게 심취하여 그들을 모방하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비틀즈 또한 그런 젊은이들이 만든 밴드였다. (롤링스톤즈가 계약을 위해 미국에 건너가 당시 흑인 음악 최고의 레이블이었던 ‘체스 레코드’를 방문했을 때, ‘블루스의 신’ 머디 워터스가 사내의 벽에 페인트 칠 노동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유명한 에피소드이다. 중앙 무대에서 밀려난 R&B나 블루스가 다시금 미국 백인 청중들에게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중반이 될 무렵이었다. 이것은 영국의 ‘블루스 리바이벌 붐’이 미국에 역수입된 경우라 하겠다.)

함부르크 시절

 

“아일랜드인은 유럽의 흑인이다.” 이것은 거리 음악인이 가장 많다고 하는 아일랜드를 무대로 펼쳐지는 어느 무명 소울 밴드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the Commitments>(알란 파커, 1991)의 주인공 지미의 대사이다. 한때 영국에서 노예와도 같은 취급을 받았으며, 지금까지도 북아일랜드의 독립 문제로 영국과 분쟁을 벌이고 있는 ‘변방의 민족’ 아일랜드인. 그들과 ‘개척자의 땅’ 아메리카 흑인의 유사성은 실로 흥미로운 것이다. 비틀즈 사운드의 저변에도 이러한 아일랜드 민족의 혈통이 관계하고 있음에 틀림없으리라. (비슷한 예로 1960년대에서 현제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연예계ㅡ특히 음악계ㅡ를 살펴보자면, 그간 활동해 왔던 상당수의 예능인이 재일교포 출신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공연히 한국인 차별을 일삼던 전후(戰後) 일본 사회의 그늘에서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의 대부분은 암흑가와 관계된 일, 그리고 연예계 진출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비틀즈와 민족이라는 키워드를 그들의 주변 인물들과 연관지어 생각해 보자면 더욱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된다. 비틀즈의 성공에 있어 가장 중요한 존재이자 비틀즈의 다섯 번째 멤버로 불리던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유태인 출신의 화가 지망생 게이였던 것, 밴드의 무명 시절에 만나 그 후 비틀즈의 친구로서, 혹은 앨범 커버(<리볼버>, 1966)를 직접 제작한 디자이너로서, 베이시스트로서 비틀즈에 크게 기여한 독일인 클라우스 부어만, 조지 해리슨의 음악과 삶의 철학에 있어 결정적 영향을 미친 인도의 종교인 ‘마하리쉬 마헤쉬 요기’와 시타르 연주자 ‘라비 샹카’, 비틀즈의 건반 세션을 도맡았던 미국 출신의 흑인 뮤지션 ‘빌리 프레스턴’, 그리고 존 레논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비틀즈 자체의 운명을 크게 바꾸어 놓은 일본인 아티스트 ‘오노 요코’. 그들은 모두 각각의 민족이 가진 고유의 문화와 철학을 지닌 뛰어난 인재들이었다.

We love you Beatles

앞서 언급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 비틀즈는 ‘다문화 밴드’였다. 그들은 전 세계의 문화를 골고루 수용해 독창성을 확립해 나아갔다. 그들만큼 차례차례로 혁신적인 스타일을 구현해냈던 아티스트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듯 세계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 추출액을 창작의 동력원으로 취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자신의 재능 덕분인 동시에, 섬나라 영국과 항구 도시인 고향 리버풀만의 독특한 문화, 이방 문화를 게걸스럽게 수용하고 그것을 능동적으로 진화시켜 나아간 고유의 기술을 몸으로 체득한 결과이리라.

그리하여 리버풀에서 등장한 비틀즈는 머나먼 미대륙을 자신들의 영향권 아래 놓을 수 있었고, 그들을 필두로 하여 수많은 영국 밴드가 미국에 진출하여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이 역사적인 ‘브리티시 인베이젼’(영국의 침략. 주로 영국 출신 록 가수들이 미국이나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 흥행에 크게 성공을 거두는 경향을 말한다. 브리티시 인베이전은 특히 1964년부터 1966년 사이에 일어났던 음악적 조류를 가리키기도 하나, 보통은 그 당시를 포함하여 이후 여러 그룹에 의해 진행되었던 영국 음악의 세계적 대중화를 지칭한다)은 또한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잊혔던 뛰어난 흑인 뮤지션의 존재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십 대의 비틀즈

1950년대 록큰롤 붐을 타고 등장한 성난 젊은이들의 문화가 어느새 특유의 박력이 거세된 아이돌계 록큰롤로(폴 앵카, 리키 넬슨, 코니 스티븐스 등의 꽃돌이들이 주도하던) 대체되던 시기에 다시 한번 젊은 세대를 각성시킨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록큰롤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새로운 역사를 맞이하게 된다. 영국에서 온 네 명의 더벅머리는 그렇게 세상을 바꾸어 나아가기 시작했다.

※ 후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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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차승우

밴드 문샤이너스에서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다. 초등학교 때 뱀이 그려진 전자 기타를 외할머니에게 선물로 받아 처음 기타를 잡았고, 고등학교 때 크라이베이비라는 밴드로 활동을 시작했다. 역시 고등학교 때 노브레인을 결성하여 2집까지 활동한 후 일본의 도쿄 스쿨 오브 뮤직으로 기타를 공부하러 갔다. 하이라이츠라는 밴드를 거쳐 문샤이너스를 결성했다. 최근에 문샤이너스 정규 1집인 <모험광백서>를 펴내고 열렬하게 활동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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