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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신동의 재기 넘치는 데뷔작 - 김현철 <김현철 1집> (1989)

매력적인 펑키리듬의 「오랜만에」 「동네」는 이제 막 약관을 넘긴 젊은 청년의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죠. 지금도 영화와 어린이 음악인 ‘키즈팝’까지 넘나들며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는 김현철의 1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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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를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여가수로 끌어올린 프로듀싱,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애청되는 「춘천 가는 기차」, 가장 많이 사랑받은 듀엣 곡 「그대안의 블루」까지. 김현철이 뽑아내는 좋은 선율은 트렌드와는 상관없다는 듯 오랜 시간을 흘러 사랑받아왔습니다. 보사노바의 리듬을 실은 「춘천 가는 기차」를 비롯해 매력적인 펑키리듬의 「오랜만에」 「동네」는 이제 막 약관을 넘긴 젊은 청년의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죠. 지금도 영화와 어린이 음악인 ‘키즈팝’까지 넘나들며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는 김현철의 1집입니다.

김현철 <김현철 1집> (1989)

김현식, 들국화, 신촌블루스, 시인과 촌장, 한영애 등 ‘주류 속의 비주류’ 가수 음반을 잇달아 출반해 80년대 대중음악의 메카로까지 통하던 동아기획의 마지막 신성은 스무 살 앳된 인상의 김현철이었다. 막 대학 재수 생활을 시작한 그는 <우리 노래 전시회3>을 통해 푸른하늘, 박학기와 함께 데뷔했으며, 80년대가 저물어가던 89년 「춘천 가는 기차」와 「오랜만에」가 실린 데뷔앨범을 내면서 단박에 주목할 만한 뮤지션으로 떠올랐다.

1989년의 어느 날, 아직 턱 언저리에 하얀 솜털이 보송보송하게 나 있는 통통한 체구의 앳된 소년이 현대 예술극장에서 공연을 마친 듀오 ‘어떤날’의 멤버 조동익의 꽁무니를 졸졸 쫓아왔다. 그 소년은 조동익에게 말을 건넸고, 전화를 걸었고, 나중에는 데모 테이프까지 보내는 등 풋풋한 열의에 차 있었다. 그 데모 테이프 안에는 놀랍게도 스무 살도 안 된 어린 신동의 음악이 담겨 있었으며, 그 소년은 바로 김현철이었다. (『이 땅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 박준흠)

홀연히 나타난 소년의 재능이 고스란히 담겨 있던 1집 앨범은 음악계 일각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면서 많은 예비 뮤지션들과 음악지망생들에게 동경을 제공했다. 그리 대중적 선풍을 불러일으키지 못했지만 간소한 악기 사용으로도 최상의 세련미를 부여한 김현철의 총기는 이른 듯했지만 대단한 것이었다.

우선 버릴 곡이 단 한 곡도 없다. 팻 메시니의 퓨전 재즈를 추종하는 「어떤날」과 ‘시인과 촌장’ 등의 연장선상에 서 있는 그의 음악에는 패턴화되지 않은 멜로디와 적재적소에 꼭 맞게, 군살 없이 악기 편성을 할 줄 아는 편곡 능력, 그리고 지금까지도 인정받는 프로듀싱의 능력이 여린 감수성을 타고 펼쳐졌다. 어린 나이의 감성과 또 그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은 작곡, 편곡 실력 등이 그다지 인위적인 꾸밈없이 스며들었다. 지적을 받곤 했던 미숙한 보컬도 이 부문의 순수함 덕분에 거슬리게 들리지 않았다.

앨범의 백미는 13년이 훌쩍 넘어버린 지금에도 1980~90년대 가요 명곡으로 빠지지 않고 연상되는 「춘천 가는 기차」가 아닐 수 없다. ‘어떻게 그 어린 소년이 이런 곡을 써냈지?’ 하는 식의 찬사와 함께 김현철의 이름을 10년이 훨씬 넘게 지켜준 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련한 플룻 소리의 설렘과 나른한 듯 재즈풍의 세련된 편곡, 그에 걸맞은 패턴화되지 않은 멜로디가 충분한 감성의 하모니를 직조해냈다. 한때 춘천을 관광의 명소로 부흥시켰던 것도 이 '춘천 가는 기차'의 나른하고 매혹적인 감성이 한몫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외에도 당시 음악 팬들의 입에 특히나 많이 오르내린 곡으로 「오랜만에」가 있다. 알차게 짜여진 편곡은 여전하며 다소간의 펑키함이 첨가되어 재즈풍의 흥을 돋운다. 짧지 않은 스무 해를 넘기며 살아온 그의 동네에 대한 소박한 단상을 담은 「동네」 또한 「춘천 가는 기차」와 함께 대중적 친화력을 발휘한 곡이다. 재기발랄한 리듬과 펑키 필, 가사의 순수함이 감성적인 곡. 아마도 이러한 곡들이 이후 김현철이 집착하게 되는 브라스를 동원한 흥겨운 펑키 넘버들ㅡ「왜 그래」 「그렇더라도」 등ㅡ로 이어지는 듯하다.

평범하지 않은 선율의 「눈이 오는 날이면」, 김현철이 고등학교 시절 조직해 활동했던 아침향기라는 밴드의 동명 곡 「아침향기」는 잔잔하게 흐르는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보드라운 플루트 연주가 잘 융화되어 있는 곡이다. 색소폰의 달콤한 음색이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와」, 조동익을 생각하며 썼다는 「형」에서 들려주는 김현철의 어리광 섞인 티 없는 열정은 이후 그의 행보에 기대를 잔뜩 모으게 하는 요소였을 것이다.

김현철 1집은 신동이 탄생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재기가 넘쳐흐르는 음반이었다. 아마도 공연을 끝낸 조동익을 놓칠세라, 두근거리는 설렘을 안고 쫓아가며 ‘나 이만큼 잘해요, 내 노래 좀 들어주세요’ 하는, 조금은 자아도취일지 몰라도 눈빛만큼은 맑은 고교 갓 졸업의 소년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친구들과 조직한 밴드에서, 그리고 자신의 동네에서, 조그만 방에서 악기를 만지며 자신이 만들어내는 음악에 기뻐하는 예쁜 감성의 소유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감성은 1집과 <그대 안의 블루 OST>(1992), 그리고 2집 <32℃ 여름>(1992)에서 모두 보여주고 말았다. 흔히들 김현철 음악의 정점을 이루었다고 평가되는 2집 이후 그는 수많은 가수들의 음반을 매만졌고 많은 곡을 써냈다. 최고의 여성 가수 중 하나로 분류되는 이소라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며 눈부신 프로듀서의 역량을 뽐냈고, 수많은 듀엣곡과 총 8장의 정규 앨범도 쏟아냈다.

그러나 김현철 음악은 어느 순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비판의 화살들을 피할 수 없었다. 일례로 이소라와의 듀엣곡 「그대 안의 블루」의 큰 성공 이후 「하물며」 「그대니까요」 등의 듀엣곡 히트 사냥이 그랬고, 뭔가 자신만의 새로움을 찾기보다는 별반 다를 게 없는 극도로 세련된 펑키함과 재즈풍을 그대로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것들에서는 구어체의 재미난 가사와 치밀하게 계산된 놀라운 편곡을 맛볼 수는 있을지언정 「춘천 가는 기차」만큼의 자연스러운 감성이 부족했다.

이 앨범은 따라서 그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도 많은 뮤지션들은 어린 신동이 내놓았던 재기의 결정체를 신기함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고, 많은 음악 팬들은 「춘천 가는 기차」와 「동네」를 들으며 옛 시절을 추억하려한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감성을 품고 있던 재기가 머리로 치우쳐지면서 자연스레 관록으로 또 신동에서 천재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1998년 김현철이 여섯 번째 디스코그래피를 추가할 당시, 조동익은 음악평론가 박준흠 씨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가 좀 더 예전 같아졌으면 한다. 그는 똑똑하기 때문에 자기 계산대로, 자기 방식대로 갈 것이다”라고.

- 글 / 김소연(mybranch@hanmail.net)


제공: IZM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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