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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마저 야코죽이던 본좌 중의 본좌

밥 딜런(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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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누구인가? 흔히 록의 르네상스 시대라 칭해지는 1960년대를 통해 문화적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비틀즈와 자웅을 겨루었던 영웅, 아니 비틀즈마저 야코죽이던 본좌 중의 본좌가 아니던가?

솔직히 툭 까놓고 이야기해보자. 음악에 관심이 있다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봤을 법한 그 이름, ‘밥 딜런’에 대해서 말이다. 각종 대중음악 관련 자료를 뒤적여 보아도, 음악 깨나 들었다던 평론가 양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모두 예의 그 위대한 시, 탁월한 작사에 대해 입을 모으며 ‘무릇 밥 딜런의 진가는 가사에 있다’고 결론짓곤 한다. 그러나 영문학에 일가견이 없는 이상, 추상적이고도 현학적인 수사로 가득 찬 그의 가사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밥 딜런의 신화는 비영어권의 인민들에게 있어 한낮 허구에 불과한 것인가? 적어도 나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그가 행한 ‘포크’에서 ‘록’으로의 사운드적 변신은 (전통적인 포크 팬들은 통기타를 버리고 일렉 기타를 맨 그를 ‘변절자’라 맹비난했다) 그야말로 혁명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곧 ‘포크록’의 시발점인 동시에 60년대 세계 대중음악의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그의 그러한 결단이 있었기에 록 음악은 50년대의 그늘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었고, 심도 깊은 주제 의식과 폭넓은 스펙트럼의 표현 양식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작년 겨울 무렵이었을 것이다. 음악 평론을 업으로 삼는 어느 지인으로부터 밥 딜런이 내한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뭐?! 밥 딜런이 한국에 온다고??’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사실 지금에 와서 해외 아티스트의 방한이라는 것이 그다지 놀랄 만한 것도 아니겠지만, 밥 딜런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않는가. 그가 누구인가? 흔히 록의 르네상스 시대라 칭해지는 1960년대를 통해 문화적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비틀즈와 자웅을 겨루었던 영웅, 아니 비틀즈마저 야코죽이던 본좌 중의 본좌가 아니던가?

비틀즈를 비롯한 영국 세력이 진출하기 직전인 1960년대 초반 미국에서는 대학생을 중심으로 인종 차별과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학생 운동의 물결이 거세어지고 있었다. 이에 포크 뮤지션들은 이른바 ‘프로테스트 포크 운동’(우리나라의 ‘민중가요’와 비슷한 의미라 생각하자)을 전개하며 젊은 운동가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고 밥 딜런은 그러한 흐름의 중심에 있었다. 반골적 성향의 포크 지지자들은 ‘러브 송’ 일색이었던 당시의 팝이나 로큰롤을 배척하고 소박한 사운드에 실린 풍자적인 시 세계에 빠져들었다.

1964년 이미 미국을 대표하는 젊은 지성이었던 밥 딜런은 당시 파란을 일으키며 멀리 섬나라로부터 물 건너온 네 명의 떠꺼머리총각과 조우하게 된다. 약관의 나이를 갓 넘긴 천재들의 대화는 어떤 것이었을까? 시시껄렁한 농담이 오가던 중 밥 딜런이 존 레논을 향해 일침을 가한다. “근데 말이지……. 자네들 음악엔 메시지가 없어.”

이후 비틀즈의 음악적 혁신에 있어 (특히 존 레논) 밥 딜런이란 존재가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쳤는가는 아마 많은 분이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한다. (비틀즈에게 처음 마리화나를 권했던 것도 밥 딜런이었다.) 그는 대중음악의 가사를 예술의 위치로까지 극상 시켰으며, 단조로운 포크 음악에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 비트를 도입, (이것은 반대로 비틀즈로부터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현대적인 록 사운드의 포문을 열었다.

밥 딜런(본명은 로버트 앨런 지머맨)은 1945년 5월 1일 미네소타주 히빙에서 태어났다. 그의 고향은 중서부의 철강 도시로서 미국의 경제 발전과 함께 성장해 온 전형적인 지방 도시였으며 그의 부친은 전기 기술자 일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 나갔다. 사실 밥 딜런은 ‘로버트 앨런 지머맨’이라는 실명 외에 ‘샤브타이 자이셀 벤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유대인이 가지는 종교적인 이름으로서 그의 가정은 당시 그 도시에서는 드문 ‘유대계 가문’이었다.

그의 조부는 러시아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에 이민 온 인물이었다. 밥 딜런 또한 엄격한 규율 속에서 유대인으로 성장했으며, 이후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등, 유대교인으로 생활하고 있었지만,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197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 열성적인 기독교인이 되었다. (지금도 콘서트 직전에는 멤버들과 기도의 시간을 빠뜨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 시기 이후 그의 음악에서도 그러한 성향은 짙게 묻어나는데, 가사의 많은 부분이 성경으로부터 인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음악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에 대해 공부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Bob Dylan - 「The Times They Are a-Changin'」

시골뜨기였던 밥 딜런과 음악의 첫 만남은 당시 일반적인 미국 소년들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행크 윌리엄스’의 컨츄리 뮤직이나 ‘지미 리드’와 같은 블루스 맨의 음악을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서서히 로큰롤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많은 이들이 밥 딜런은 포크의 제왕이며, ‘우디 거스리’가 그랬던 것처럼 통기타 한 대를 들고 방랑하는 청춘 시대를 보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고교 시절 친구들과 록큰롤 밴드를 만들어 ‘리틀 리차드’와 ‘엘비스 프레슬리’ ‘버디 홀리’ 등의 곡을 커버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그 시절 버디 홀리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그는 어느 날 버디 홀리의 콘서트에 가게 되는데 공연을 관람하던 중 스테이지 위의 버디 홀리와 잠시 동안 시선이 마주쳤고 그 순간 서로 간에 어떤 의지가 통하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이틀 후 버디 홀리는 비행기 사고로 불귀의 객이 되어 버렸기에 이 사건은 밥 딜런에게 있어 꽤나 커다란 의미를 가진 것일 것이다. (다만 이 이야기는 딜런의 장기이기도 한 일종의 이미지 전략적인 일화 같은 느낌도 없지 않지만…….)

‘포크의 제왕’이라는 그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나도 거대하기에 자칫 오해되기 십상이지만, 훗날 그가 일렉트릭 기타를 가지고 블루스 록 뮤지션으로 변신한 것이야말로 자연스러운 순서였을지 모른다. 오히려 한때 그가 포크 뮤지션이었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말이다. 그렇지만 그런 그에게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 아티스트가 있다면 역시 원조 프로테스트 포크 싱어이자 방랑 시인이기도 했던 ‘우디 거스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를 동경했던 딜런은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우디 거스리를 찾아간다. 그러나 당시 그는 ‘헌팅턴 병’이라는 불치병에 걸린 상태였고 병세가 꽤 악화되고 있던 시점인 탓에 구체적으로 그가 딜런과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전해지는 바가 없다. 다만 그의 처와 아들인 ‘아론 거스리’가 딜런의 방문에 매우 기뻐했다고 전해진다. 아무튼 그 후 딜런의 창법은 점점 더 우디 거스리의 그것과 닮아갔고, 외양적으로도 그와 흡사한 스타일(덥수룩한 헤어 스타일과, 낡은 플란넬 셔츠, 색이 바랜 블루진)을 추구했으며, 가사가 내포하는 사회의식 또한 견고해져 갔다. (사실 우디의 창법 또한 한때 그가 기차 여행 중 만났던 방랑자들, 떠돌이 일꾼들의ㅡ호보 Hobo라고 불리던ㅡ말투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결국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 또한 ‘방랑의 가객’이었던 우디 거스리의 그것과 매우 닮아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결국 대학을 중퇴하고 뮤지션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홀로 히빙을 떠나 뉴욕으로 이주, 당시 포크 뮤지션들이 모여들던 대학가 ‘그리니치 빌리지’ 근처의 커피 하우스를 무대로 활동을 시작한다. 거기에서 그는 10개월간 빈털터리 생활을 하면서도 조금씩 팬을 늘려가며 인맥을 쌓아갔다. 그는 결코 핸섬하지도, 화술이 뛰어나지도 않았음에도 뭇 여성들을 매료시키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다. 비록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촌뜨기에 불과한 그였지만 수많은 여성 동지의 서포트를 받으며 먹을 걱정, 입을 걱정 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절대 음악 이외의 일을 하지 않았다.)

1961년 마침내 딜런은 대형 레이블인 ‘콜롬비아’의 A&R 디렉터인 ‘존 해먼드’의 눈에 띄어 프로 뮤지션으로서의 기회를 거머쥔다. 데뷔 앨범 <Bob Dylan>(1962)은 전혀 팔리지 않은 작품이었지만, 우연히 이 앨범을 듣게 된 한 사내가 딜런에게 관심을 표했다. 그는 바로 훗날 록계를 대표하는 거물 매니저로서 일세를 풍미하게 될 ‘앨버트 그로스만’이었다. 딜런과 같은 러시아계 유대인 가정에서 성장한 그로스만은 경제학 학위를 가진 엘리트였지만 시카고 주택 사무실에서 일하던 시절, 불법 행위가 발각되어 하루아침에 백수건달 신세로 급전직하한 인사였다. 상업적인 감각에 있어서는 초일류의 사내와, 예술적 감각은 일류이나 사회생활에 있어서는 삼류였던 딜런이 복식조를 결성하게 되며 새로운 시대의 막이 열리고 있었다.

당시 그가 경험했던 ‘여행다운 여행’이란 사실 ‘잭 케루악’[잭 케루악(Jack Kerouac, 1922년~1969년)은 미국 비트 제너레이션의 대표적 작가이다]의 소설 『길 위에서』를 읽고 홀로 덴버에 간 것을 제외하곤 전무하다고 전해지지만, 많은 이들은 그가 십대 시절부터 고독한 여행을 계속 했던 ‘방랑 가객’이라 믿어왔다. 그의 이러한 이미지는 아무래도 딜런 자신에 의해 가공된 것인 듯하다. 그는 그러한 이미지를 확립하기 위해 자신의 과거와 사생활을 철저히 숨겨왔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방식은 대중들로 하여금 그를 베일에 싸인 신비한 인물로 인식하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한 그의 이미지 메이킹을 상징할 만한 것이 있는데, 다름 아닌 ‘밥 딜런’이라는 그의 이름이다. 미국 각지를 돌며 수많은 명작을 남긴 영국 웨일즈 출신의 시인 ‘딜런 토마스’. 알콜 중독에 신음하다 1953년 서른아홉이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그에게 경도되었던 딜런은 그의 이름을 본떠 스스로 ‘밥 딜런’이라 이름을 붙인 것이었다. (후에 정식으로 개명한다.)

얼마 후 딜런은 몇 명의 지인들과 자동차로 미국 횡단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것은 그의 영감의 원천이자 ‘비트 제너레이션’[제2차 세계대전 후 1950년대 중반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을 중심으로 대두한 보헤미아적인 문학가?예술가들의 그룹을 지칭하기도 한다. 그들은 현대의 산업사회로부터 이탈하여, 원시적인 빈곤을 감수함으로써 개성을 해방하려고 하였다. 사회적으로는 무정부주의적인 개인주의의 색채가 짙으며, 재즈?술?마약?동양적인 선(禪) 등에 의한 도취에 의하여 ‘지복(至福:beatitude)’의 경지에 도달하려고 하였다]의 영웅 ‘잭 케루악’의 여행을 재현해 보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무렵 이미 충분한 재력이 있었던 그는 개인 운전수를 대동했을 뿐만 아니라, 각 행선지 부근의 우체국에 일행이 사용할 만큼의 마리화나가 미리 도착해 있는 등, 『길 위에서』의 세계와는 거리가 먼 단순한 ‘호화 여행’에 지나지 않았다.

그 후, 딜런은 '잭 케루악'의 동지 ‘앨런 긴즈버그’(‘비트 제너레이션’의 지도적인 미국 시인. 그의 시는 산만한 구성 가운데 예언적인 암시를 주면서 비트족(族)의 문화적?사회적인 비순응주의를 주장한 것이었고, 때때로 외설적인 표현을 즐겨 다루었다)와도 교분을 쌓으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앨런 긴즈버그는 일시적으로 딜런의 공연에 동행하며 라이브 게스트로서 시를 낭독하기도 했다.) 딜런은 비트 문화의 직접적인 계승자로서 그 이미지를 더욱 확고히 했다.

그리하여 ‘인종의 용광로’이자 ‘문화의 발신지‘였던 그리니치 빌리지에서의 생활은 딜런에게 데뷔의 기회를 안겨준 것뿐만 아니라, 포크의 역사나 비트 문화 등을 단숨에 습득하게 한 계기가 되었지만 실질적으로 그가 음악계의 중앙 무대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시대의 극적인 변화가 배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Bob Dylan - 「Blowin' in the Wind」

1963년 발매된 그의 두 번째 앨범 <The Freewheelin' Bob Dylan>은 사회의 이면을 꿰뚫는 천재적인 통찰력이 빛을 발한 작품이었다 . 수록곡인 「Blowin’ in the Wind」가 ‘피터 폴 앤 매리’와 ‘스티비 원더’의 커버로 대히트를 기록했으며 전쟁을 먹이로 하는 인간들에 관한 신랄한 메시지를 담은 「Masters of War」와 핵문제를 다룬 「A Hard Rain’s a-Gonna Fall」 등과 같은 문제작이 가득했다. <The Freewheelin' Bob Dylan>은 딜런 자신뿐만 아니라 ‘격동의 60년대’를 상징하는 걸작이 되었다.

※ 후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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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차승우

밴드 문샤이너스에서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다. 초등학교 때 뱀이 그려진 전자 기타를 외할머니에게 선물로 받아 처음 기타를 잡았고, 고등학교 때 크라이베이비라는 밴드로 활동을 시작했다. 역시 고등학교 때 노브레인을 결성하여 2집까지 활동한 후 일본의 도쿄 스쿨 오브 뮤직으로 기타를 공부하러 갔다. 하이라이츠라는 밴드를 거쳐 문샤이너스를 결성했다. 최근에 문샤이너스 정규 1집인 <모험광백서>를 펴내고 열렬하게 활동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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