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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말씀과 협박 편지에 모두 메~롱

앞으로 쓰는 글의 마지막 문장엔 “기쁜 하루였다”와 “노력하겠다”를 절대 넣지 마라. 오늘부터 그 두 가지 표현을 금칙어로 선언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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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선생님 훈시처럼 쓰지 마라
- 정음 언니한테 “대박!” 소리 듣고 싶으면 솔직하게, 착한 척은 됐고!

됐고!

<지붕 뚫고 하이킥!> 이야기를 한 번만 더 하자. ‘됐고!’는 극중 황정음이 히트시킨 유행어다. 상대방이 되도 않는 말을 길게 늘어놓을라치면 어김없이 ‘됐고!’를 내뱉었다. 그 광경이 나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가슴 한쪽이 시원해졌다. ‘그래, 지겨운 말은 짧게 해야지. 하지 말든가.’ 황정음을 버릇없다고 욕하긴 어렵다. 지훈이나 준혁처럼, 친하고 편한 관계에서만 그랬으니까. 여기서 의문! 예의범절을 지켜줘야 하는 지체 높은 분이 길고 지루한 설교를 하시면 어떻게 해야 하나. 차마 “됐고!”라는 면박을 줄 수 없다면?

은밀한 혀 놀림 부르는 ‘메롱 유발자들’

‘메롱’이 있다. 다만, 면전(面前)에서는 곤란하다. 뒤통수에 대고 몰래 날려줘야 한다. 혀를 삐쭉 내밀고 메~롱, 너나 그렇게 사세요. 오늘은 은밀한 혀 놀림을 부르는 ‘메롱 유발자’들에 관해 알아보겠다. 그들과 글쓰기 교육의 함수관계를 살펴보겠다.

가장 먼저 교장 선생님이 떠오른다. 초중고 12년간 전체 조회 등을 통해 그분들의 ‘훈시’를 들었다. 안타깝게도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말씀이 없다. 요즘은 어떨까. 초딩 은서에게 물어보았다. “교장 선생님 말씀 재밌니?” 답은 싱거웠다. “아니.” “왜?” “지루해.”

실제 얼마 전 은서가 참가한 학내 동요대회에서 교장선생님이 했다는 치하 말씀의 일부를 전해 들었다. “예로부터 음악이란 인간의 정서를…….” ㅎㅎ

내 기억으로는, 대학 총장님의 말씀도 만만치 않다. 군대에서 하늘같은 연대장, 사단장님의 말씀은 한 등급 위였다. 그들은 늘 책을 읽었다. 구어체가 아닌 문어체였단 말이다. 당연히 생동감이 없었다. 고지식하기 짝이 없는 바른 말씀이었다. 손톱만큼이라도 유머는 없었다. 가르치려고만 했다. 숨이 막혔다(내가 모르는 예외도 있으리라).

거룩한 말보다는 생활의 때가 묻은 언어가 기억을 때리고 마음을 울린다. 가령 21년 전 군대 사고예방교육 시간에 어느 준위 강사가 해준 말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모든 사고는 3분 사발면을 3분 참지 못해 생긴다. 물 부어놓고 꼭 1~2분 만에 봉지를 뜯지? 3분을 기다리고 젓가락질을 하면 사고가 왜 생기겠냐.” 인내심을 가지라는 상투적 교훈이었지만, 웃겼다. 귀에 쏙 들어왔다. 어린 병사들 눈높이에서 짚어낸 비유의 힘 때문이다.

편하게 시작했다가도 끝은 꼭 반듯하네

백만 번 지당한 말씀이어도 도덕 교과서처럼 읊으면 ‘메롱’ 하고 싶다. 이참에 ‘메롱 하고 싶은 글쓰기’를 새로운 유형으로 분류해도 좋겠다. 메롱 하고 싶지 않게 쓰려면 솔직해야 한다. 자신의 마음을 스스럼없이 꺼내놓으면 읽는 이의 마음도 열린다. 불변의 글쓰기 제1원칙이다. 이를 위해선 ‘교장 선생님 말씀처럼 글을 쓰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제발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써보라고. 준석과 은서도 글머리는 편하게 시작해 놓고 끝에 가면 꼭 가공을 하려 한다. 교육으로 주입된 반듯한 이야기로 결론을 맺으려 한다. 버릇이 됐다. 굳어지면 곤란하다.

“저를 뽑아주시면, 착실한 봉사활동은 물론이고, 왕따 없고 화목한 우리 반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배려하는 반장이 되겠습니다.” 지난 3월 학급 반장 후보로 출마했던 은서의 발표문이다. 교장 할아버지 같은 말씀만 했다. ‘메~롱’ 해주고 싶다. “됐고!”도 들리는 듯하다. 은서야 눈을 감고 그려봐라. 정음 언니가 엄지손가락을 들어 “대박!”이라 외치는 모습을. 그런 칭찬을 들으려면 먼저 솔직하게 써라. 착한 척은 됐고!!

***

결기가 심하면 우스워진단다

정말 ‘메~롱’ 해주고 싶은 글을 하나 소개한다.

앞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의 ‘메~롱’이다. 공자 말씀이어서가 아니다. 뻔하거나 착해서가 아니다. 결기가 시퍼렇기 때문이다. 그 결기의 허망한 끝이 자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아래 글은 내가 쓰라고 시키지 않았다. 준석이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이를 바득바득 갈며 자발적으로 작성해 은서에게 던진 글이다. 보자.

슬피 울어도 절대 안 봐줘!

To 고은서

1. 니가 11시 이후 안방으로 갈 때마다 발을 밟아버리겠다.

2. 니가 안방으로 가려하다가 들킬 때마다 ‘다시는 11시 이후 안방으로 가지 않겠습니다’를 매회 2배씩 늘려쓰게 할 거다(첫번째 50번, 두번째 100번, 세번째 200번)

3. 아빠 편 들어서 일부러 너같은 인간 안방에서 재우면 아주 그냥 작살을 내버릴테다.

4. 니가 안방으로 가다 들킬 때 내가 원하는 무모한 짓 하나를 네게 시킬 테다.(참고로 2,6번 중에서 선택)

5. 안방으로 갔다가 들켜 다시 니 방으로 갈 때 슬피 일부러 크게 울면 그래도 안 봐준다.

6. 만약 모르는 사이에 아침에 깨어났는데 니가 안방에 있으면 핸드폰을 부숴버리겠다-하고 싶으나 돈 때문에 못하겠고 세계지도를 두 시간 안에 그리게 할 것이다.

7. 만약 모르는 사이에 아침에 깨어났는데 니가 안방에 있으면 핸드폰으로 몰래 친구 이간질 문자메세지를 보내버리겠다.

2010. 4. 11

어른들의 성명서가 생각나는구나

준석은 아니꼬웠다. 은서가 ‘막내’라는 프리미엄을 안고 안방에서 엄마, 아빠와 자는 꼬락서니가 눈꼴시어 봐줄 수가 없었다. 은서가 유치원 다닐 때는 그러려니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봐주기로 했다. 서로 새끼손가락까지 걸었다. 하지만 은서는 무섭다는 핑계로 그 시한을 자꾸만 미뤘다. 그 세월이 무려 3년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에 올라가는 2010년 3월부터 반드시 자기 방에서 자야 했다. 은서도 맹세를 했다. 실제 은서는 2010년 3월 1일 밤, 자기 방에서 잠들었다. 대견스러운 일이었다. 문제는 가끔 오빠의 눈을 피해 안방으로 잠입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몇 번 걸렸고, 준석은 은서에게 신경질을 부렸다. 급기야 어느 날 은서의 은밀한 안방행을 또다시 포착한 준석은 “발을 밟아버리겠다” “핸드폰을 부숴버리겠다”며 최후통첩을 보낸 것이다. “다시는 안 하겠다”며 오빠에게 싹싹 빌던 은서. 오빠가 사라지자마자 혀를 쑥 내민다. ‘메~롱’

결기가 심하면 우스워진다. 그래도 준석은 선전포고문에 유머를 담았다. “만약 모르는 사이에 아침에 깨어났는데 니가 안방에 있으면 핸드폰을 부숴버리겠다-하고 싶으나 돈 때문에 못하겠고 세계지도를 두 시간 안에 그리게 할 것이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세계지도 빨리 그리기’가 모진 고문이라도 된단 말인가. “핸드폰으로 몰래 친구 이간질 문자메시지를 보내버리겠다”도 웃기다. 처음엔 이 말의 뜻을 이해 못했다. 은서 핸드폰을 몰래 가져가 은서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절교하겠다. 니가 너무 싫다” 따위의 문자를 보내 친구간의 싸움을 조장한다는 의미였다. 그래, 잘했다. 비장하기만 하면 안 된다. 끝까지 유머를 잃지 말아야 한다.

어린이들도 잘 아는지 모르겠으나, 어른들은 주먹 말고도 성명서로 싸운다. 성명서는 다른 말로 하면 ‘공식적인 말싸움’이다. 어떤 주의와 주장을 논리로 포장한다. 거기엔 대개 분노와 결기가 담기기 일쑤다. “좋게 얘기할 때 내 말 들어라. 안 그럼 가만 안 두겠다”는 엄포나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비장한 엄살도 있다. 미안하지만, 그 비분강개의 글을 보면서 혼자 ‘메~롱’ 할 때가 있다. 그 뜻이 아무리 타당하더라도 조금은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성명서나 투쟁선언문에 웃음이 묻어선 안 된다는 법은 없다. 물론 감히 준석의 협박 편지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

선거 연설문엔 뻥이 심하다지

다음은 ‘메~롱 하고 싶은 글’에 관한 다른 케이스다. 바로 선거와 관련된 글이다. 그러고 보니 6·2 지방선거도 얼마 남지 않았다. 군수·구청장·도지사·시장 등 기초·광역자치단체의 장과 지방의회 의원을 뽑는 정치행사다. 이런 선거철만 되면 정치광고회사나 홍보대행사들은 호황을 누린다. 이들은 선거에 출마하는 입후보자들과 계약을 맺고 그들이 이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전략을 짜주고 선거운동 실무를 진행한다. 연설문도 대신 써준다. 그 글들은 보는 이들의 마음에 얼마나 와 닿을까. 확신하건대, 선거 후보자들의 연설문은 이 세상에서 가장 뻥이 심한 글에 속한다. 물론 뻥도 재밌게 치면 봐줄 만하다고 생각한다. 같잖은 뻥은 ‘메~롱’을 넘어 ‘됐고!’다.

어린이들의 반장 선거를 도와주는 정치광고대행사는 없을까. 만약 있다면, 다음에 은서의 선거운동 기획을 의뢰하고 싶다. 지난 3월, 은서가 반장 선거에 나서며 친구들 앞에서 읽었던 연설문은 너무나 썰렁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밋밋하기 그지없었다. 차라리 뻥을 치지, 쯧쯧쯧.

안녕하세요. 반장 후보로 나온 고은서입니다. 저는 우리반을 위해서 열심히 일해보고 싶습니다. 만약에, 저를 뽑아주신다면, 착실한 봉사활동은 물론이고, 왕따 없고 화목한 우리 반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배려하는 반장이 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10. 3

뭐 그렇다고 6·2 지방선거에 나온 입후보자들의 연설문이 이것보다 딱히 수준 높다고는 보지 않는다. 유권자들의 마음을 예민하게 건드리고 감동시키는 연설문을 듣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아무튼 은서도 본인의 연설문이 썩 좋다고 보지는 않은 모양이다.

나까지 웃으면 걔는 넘 불쌍해

반장, 회장 선거에 대하여

학교에 들어간지 5일 만에 반장, 회장 선거를 했다. 먼저 반장선거를 먼저 하였다.

반장 후보는 5명이 나왔다. 나, (고은서) 오OO, 고OO, 최OO, 김OO. 이 5명이었다.

아! 그 중에서 김OO은 안 나간다고 해서 반장 후보로 나온 사람은 4명이 되었다.

나의 라이벌은 3명밖에 안 됬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왜냐하면, OO이와, OO이와, OO이는 남자 아이들 중에서 인기가 많고, 친구도 많기 때문이다. 잘 하면 걔네가 날 이길 수도 있다. 드디어 반장이 되면 할 일을 말할 시간이다. 먼저, 첫번째로 고OO이 나갔다. 고OO은 봉사를 열심히 하고, 친구들과 싸우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아이들은 OO이에게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나며 우~ 소리를 했다. 그게 작심삼일이 될 수도 있다고 난 생각했다.

이번엔 내 차례가 되었다. 나도 역시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배려하는 반장이 되고,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은 최OO이였다. 걔는 그냥,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만 하고 들어갔다.

난 한눈에 딱 보였다. 아이들은 쟤를 안 뽑아줄것이라고... 왜냐하면 아이들은 설교를 재밌게 써서 재밌게 말하는 반장이 좋기 때문이다. OO이의 설교는 허무하게 끝났다.

그 다음은 3번 후보 오OO이었다. 오OO은 "저는 품질이 아주 좋은 신상품 같은 존재입니다. 만약에 저를 안 뽑으신다면 이 물건, 이 신상품은 다 품절이 되고 말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투표를 했다. 첫 번째는 오OO이 뽑혔다. 그 다음은 내 이름이 불러졌다. 두근두근거렸다. 그 다음엔, 오OO이였고, 그 다음엔 또 오OO이었다. 나는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그럼 그렇지, 내가 그 다음 연속으로 나왔다. 그런데, 이번엔 자꾸만 오OO 이름이 불러졌다. 난 이미 예상했다. 난 이제 오OO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오OO은 나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 것을.) 주위를 둘러보는데, 고OO이 눈에 딱 들어왔다. 난 생각했다. 고OO도 반장 선거에 나왔으니 한번 붙어보겠다고...

그리고, 드디어 결과가 나왔다. 반장은 할 말을 멋지게 다한 오OO이 반장으로 뽑혔다. 오OO은 한...14표 정도로 뽑혔다. 많이 뽑힌 것이다. 나는 한 9, 10표 정도로 뽑혔다. 그리고 고OO은 나보다 딱 하나 밑이였다.

고OO은 좌절해 있었다. 그래서 오OO이 반장이였고, 내가 여부반장, 고OO이 남부반장이었다.

드디어 회장 선거가 시작 되었다. 회장 선거에는 OO이와, 피OO, 그리고 또 최OO, 빈OO이 나갔다. 피OO은 "우리 인간적으로! 한 표 정도는 뽑아줍시다!"라고 말했다. OO이는 설교처럼 길고 아주 길게 말했다. OO이는 "딱 한표만~! 딱 한표만~!" 이라고 말했다. OO이는 반장후보에 나온 것과 같이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하고 자리에 들어갔다.

피OO이 아주 많은 표를 얻어서, 회장이 되었다. OO이는 긴장한 듯이 바짝 허리를 들어 올렸다. 그럼 그렇지, 역시나 OO이가 여부회장이 되었다. 그 다음 한표만 이라고 구걸했던 OO이가 2표를 받아서 남부회장이 되었다.

아이들은 2표 받아서 부회장이 된 OO이를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킥킥 웃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웃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까지 웃으면 OO이가 너무 불쌍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부반장이 된 게 좀 창피하다. 난 지금까지 딱 2번했는데 그 2번에서 2번 둘 다 부반장으로 됬기 때문이었다. 고OO도 2번 부회장, 부반장이 되었다. 그래도 부반장이 되어서 기쁜 하루였다.

2010. 3

은서는 반장 선거에서 9~10표 정도를 얻어 2위를 했다. 반장은 못 됐지만, 여 부반장이 됐다. 발표문이 너무 건조했고, 다른 아이디어도 없었다. 그에 비하면 반장이 된 친구는 말솜씨 측면에서는 은서보다 재치가 있었다. 친구들의 관심을 끌려면 뭔가 달라야 한다. 발표문이 그저 그렇다면 패션이라도 달라야 한다. 아니면 공약이라도 귀엽고 엉뚱해야 한다. 은서는 완전 실패했다. 이 점에서는 중딩 준석도 마찬가지였다.

임원에서 떨어진 자의 비참함?

반장선거

한 2주전이던가...?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매우 중요한 날, 반장선거였다. 그 날은 경쟁이 정말 치열했다. 될 수 있는 임원은 2개. 반장과 부반장. 경쟁자는 나를 합쳐서 8명이나 된다. 정말 이런 선거는 해 본 적이 없다.

반장선거를 네 번 정도 한 나였지만, 이번 선거는 의미가 달랐다. 이번 반장이 되기 위해서는 이미지를 업시키는 것이 필요한데, 나는 그런 것을 한 번도 해보질 않아서 잘 안 된다. 이로서 나는 반장이 되지 못했다. 입 밖으로 내긴 좀 그렇지만, 반장 부반장이 된 아이는 이OO와 이OO이라는 친구들이다. 질투가 나기는 해도, 걔들에게서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 ‘이미지업’! 경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둘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초등학교 때 절대 임원을 놓치지 않고, 6학년 때는 전교 부-전교회장까지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에게는 특별함이 있었다. 반장이 된 이OO는 별 공약을 내세우지 않았지만 그냥 ‘에너자이저’란 것을 갖고 팔굽혀펴기를 백만스물하나! 백만스물둘! 그리고 봉사할 정신이...주저리 주저리. 하여튼 별 공약이 없지만 코미디로 얘들을 이끌었고, 결국 반장이 되었다.

부반장을 살펴보면, 이OO은 뭐 간식파티를 열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1등, 아 기억이 안 나는데 111의 의미가 뭐 어쩌고 주절 주저리 했다. 이걸로 남을 끌어들여, 부반장이 되었다. 그래도, 역시 공약이나 코미디보다는 경력 등이 더 많은 아이들을 끌어들이게 된다.

그리고 반장이 되기 위해서는 성적이 좋아야 한다. 나는 6학년 때 성적이 좋아 부회장이 되었다. 나는 그때까지는 반장에서, 임원에서 떨어진 자의 비참함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권력, 힘도 좋아야 한다. 거의 남자의 경우지만, 6학년 때 회장이 된 오OO은 싸움-힘 짱이었다.

이번 기회를 바탕으로 중딩 성적이 좋아지면 아이들의 호응을 얻어 좋은 점수를 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공부를 열심히 하고, 친구관계도 누적되어야 한다. 그때까지 노력하겠다.

2010. 3. 21

“회장을 안 해본 친구들은 나를 찍어줘라”

준석은, 자존심 때문인지 자기가 왜 반장 선거에서 떨어졌는지는 안 썼다. 자의식이 강력해지는 과정이라 이런 문제엔 민감하다. 준석 또한 발표문에 힘이 없었다. 차별적인 공약도 없었다. 준석의 글로 유추해보건대, 초등학교와는 달리 중학교 반장 선거에선 ‘스펙’이 중요한 요소다. 초등학교 때 반장이나 부반장을 해봤느냐 하는 경력이 그 스펙의 앞자리를 차지한다. 주먹(싸움 실력)이나 성적도 빼놓을 수 없다. 말솜씨만 갖고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아이디어가 빛나면 열세를 뒤집을 수 있다. 다음은 지난 3월에 지역신문에서 읽은 어느 고1 학생의 학급회장 출마 성공담이다. 그 학생은 공부도 못하고 몸집도 작아 친구들의 관심을 끌 만한 요소가 전혀 없는 고만고만한 학생이었다. 의지만은 강해서 꼭 회장이 되려고 별렀다고 한다. 결국 그 학생은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을 모두 제치고 회장이 되었다.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그 학생의 발표문을 엿보자. (요즘은 학급마다 반장과 회장이 있다. 그 업무 분장은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다.)

“우리 반에서 가장 늦게 머리를 자르겠다. 벌점을 받는 매를 맞든, 기합을 받든 내가 가장 늦게 머리를 자르겠다. 머리 자르기 싫은 사람은 나를 밀어줘라. 나는 성적이 나쁘다. 선생님도 성적이 나쁘다고 출마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성적이 나빠도 회장이 되어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성적이 나쁜 친구들은 나를 밀어줘라! 그리고 난 초등학생부터 지금까지 회장을 한번도 못해 봤다. 회장을 못해본 친구들은 날 찍어줘라.”

- 신동원, ‘내가 만난 반장 K’, 일산덕양파주김포내일신문, 2010. 3. 3

“기쁜 하루였다” “노력하겠다”를 금칙어로

100% 구라일지라도, 그 구라에 한 번 속아 넘어가고 싶다. 도저히 ‘메~롱’ 하고 비웃을 수가 없다. 번개 같은 아이디어는 물론 어떤 진심까지 손에 잡힐 듯하다. 오뚝이 같은 정치 인생을 보여줬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각날 정도다. 그 패기와 자신감에 경의를 표한다. 얄팍한 글쓰기 감각이나, 어설픈 공약으로 친구들을 유혹하지 않았다. 통이 컸다. 준석아, 은서야, 이 고딩 멋지지 않니?

마지막으로 위 준석·은서의 글에 관해 한 가지만 지적하고 싶다. 글의 완성도를 트집 잡으면 한이 없겠으니, 오늘은 한마디만 하자. ‘끝 문장’에 관한 것이다.

그래도 부반장이 되어서 기쁜 하루였다.(은서)
그때까지 노력하겠다.(준석)


이런 걸 어려운 말로 ‘클리셰’라고 한다. 진부한 문구나 표현을 일컫는다. 앞으로 쓰는 글의 마지막 문장엔 “기쁜 하루였다”와 “노력하겠다”를 절대 넣지 마라. 오늘부터 그 두 가지 표현을 금칙어로 선언하노라. 아이들이 일기장에 툭하면 쓰는 말 아닌가. 나도 어렸을 적 그랬던 것 같다. 하루 동안 한 일을 이러쿵저러쿵 한참 나열한 뒤에 “참 좋은 하루였다” “노력하겠다”는 말로 마무리하기 일쑤였다. 준석아, 은서야, 다시는 쓰지 마라~잉! 이렇게 하지 말라고 해놓고, 갑자기 나는 딱 한 번 해보고 싶은 충동이 밀려온다. 오늘만 금기, 아니 금칙어의 선을 넘고 싶다. 안 돼~~~~~

이 글을 다 써 참 기쁜 하루였다!
독자들이 더 재밌게 보도록 쓰기 위해 많이많이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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