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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정녕 없는 것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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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사람들보다 우린 2배의 삶을 살게 되는 거야. 당신이나 나나 직업을 두 번, 아니 세 번은 바꿔 줘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거지. 마흔 살을 중년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마흔 이후의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거라구. 지금도 길고 긴 인생을 이모작, 삼모작까지 해야 한다니…… 결혼도 늦게 해, 애도 늦게 낳아. 그러니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한단 거잖아.

몇 달 전, 미국에서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선배와 그의 보스와 함께 저녁을 먹을 일이 있었다. ‘애플의 공습’이니 ‘통신사의 횡포’니 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에선 ‘아이폰’에 대한 기사가 쏟아질 즈음이었다. 을지로 뒷골목의 오래된 가게에서, 푸짐하게 시켜놓은 콩나물 잡채와 보쌈을 뒤적이며 먹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데, 선배의 보스가 불쑥 이런 질문을 던졌었다.

“자기는 몇 살까지 살 것 같아?”
“네?”
“기대 수명이 몇 살이냐고?”
“글쎄요. 한 70살쯤? 길면 80살? 여자 평균 연령이 몇 살이었나, 86세였나? 그건 왜 물어보세요?”
“당신도 자기가 70이나 80살 정도 살 것 같지? 하긴, 나도 그러니까. 그런데 그렇게 살긴 힘들걸?”
“왜요?”
“우리는 삶을 너무 짧게 보는 경향이 있어. 오래 살고 싶다, 오래 살고 싶지 않다, 라는 감정을 말하는 게 아니라, 시대의 변화를 얘기하는 거야. ‘아이폰’ 하나로 얼마나 많은 게 바뀌었나 생각해봐.”
“뭐. 하긴.”
“우리 세대는 120살까지 살게 될 가능성이 많아.”
“어우, 말도 안 돼요!”

120살이라고? 그녀의 말에 의하면, 현대 의학은 이미 인간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연장하는 데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다는 것이었다. ‘삶의 질’까지 보증할 순 없어도 엿가락처럼 수명을 길~게 늘리는 연구들은 이미 수많은 성과를 이루고 있으며, 앞으로도 쭉 그럴 것이란 예견이었다. 그녀는 100살을 넘게 사는 인간의 삶은 과거 선조들이나 이제까지 우리가 살았던 삶과는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미래학 관련 기자의 말을 인용하며 그녀는 한숨을 쉬더니, 내게 말했다.

“과거의 사람들보다 우린 2배의 삶을 살게 되는 거야. 당신이나 나나 직업을 두 번, 아니 세 번은 바꿔 줘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거지. 마흔 살을 중년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마흔 이후의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거라구. 지금도 길고 긴 인생을 이모작, 삼모작까지 해야 한다니…… 결혼도 늦게 해, 애도 늦게 낳아. 그러니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한단 거잖아. 투잡도 모자라서 이 지경이 된 거지.”

한숨을 쉬던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얇은 포장지가 북북 찢어지는 것처럼 마음 한구석에 구멍이 나는 것 같았다.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선배가 내 얼굴을 보더니 심드렁한 얼굴로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21세기 최고의 트렌드는 아마도 자살일걸? 그렇잖아. 사는 게 얼마나 지겹겠어. 목숨만 연명한다는 거, 너무 끔찍하잖아.”

북북 찢어진 가슴에 아예 차가운 북풍이 들이쳤다. 죽고 싶다는 열망 때문에 죽음 산업이 앞으로의 트렌드를 이어갈지도 모른단 얘기에 소름이 돋았다. 120살이라니! 인간이 갈라파고스 거북이만큼 오래 산다는 거 아닌가. 나는 당장 책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터넷에 단어 몇 개를 치는 수고만으로도 나는 그녀가 말한 ‘비보’의 과학적 근거들을 넘치도록 찾아낼 수 있었다.

 

 

미국 MIT 공대 생물학 교수 ‘레너드 게렌테’는 최근에 태어난 아이들은 150세까지 살게 될 것이라고 증언했다. 일본 이토츠 그룹의 마쓰이 요시오 혁신기술팀장은 ‘2025년께는 인간의 평균 수명이 120세까지는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본단다.

페이스 팝콘 같은 미래학자가 ‘생체나이’를 들먹이며 ‘피부나 장기 노화의 정도’가 인간의 계급을 결정하는 또 하나의 지점이 될 것이라고 얘기했던 『미래생활사전』을 펼쳐도, 이런 무시무시한 예언들은 당장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나는 굉장히 오래도록 아프면서, 쇠약한 몸으로 120살까지 살 수도 있는 것이다. 살아 숨 쉬는 생물 중 가장 오래 산다는 갈라파고스 거북만큼이나 인간이 오래 살 수도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어느 겨울날의 기억

강원도 한 산골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우연히도 칠십을 훌쩍 넘긴 두 명의 작가와 함께 지냈었다. 은퇴 후, 말년을 문학에 투신하겠다고 결심한 한 열정적인 노인과 말기 암으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수십 년간 기적처럼 생존해 아침마다 그림을 그리는 은퇴한 평론가였다. 그건 정말이지 너무나 특별한 경험이라, 지금도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이전까지의 나는, 노인의 삶이 어떠할 것이란 구체적인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두 분 할아버지는 비교적 일찍 돌아가셨고, ‘이미자’와 ‘패티김’을 지구 최고의 가수라 믿어 의심치 않는 할머니는 충청도의 짱짱한 햇볕 아래에서 평생을 농사일로 단련됐을 만큼 건강하셨다. 무엇보다 시골에 계신 그분들과 나는 일찌감치 단절되어 있었다. 노년의 삶이란 내게 피상적이었다. 이제까지 나이 듦에 대한 내 통찰은 대부분 책에 빚진 것들로, 철학적 사유의 틈새에서만 존재하는 그런 빈약한 것들이었다. 생각해보면, 정말 그랬던 것 같다.

내가 지나온 20대가 진저리쳐지는 실패와 혼란한 좌충우돌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노희경이 배종옥의 내레이션을 통해 보여주는, 나이 든 자의 따뜻한 위로의 시선이 포근했었다. 가수 양희은이 ‘나는 나이 든 지금이 좋다. 무지했던 20대보단 늙어가고 있다는 게 행복하다’라고 속삭일 때, 나는 그녀의 말에 말없이 지지를 표명했었다.

그러나 노인이 된다는 건, 그저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하고, 피부에 마른버짐이 피고, 경험들이 축적돼 지혜로워지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눈이 보이지 않아 눈앞에서 물을 흘리고도 닦을 수 없거나, 더 이상 번호를 식별하지 못해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탈 수 없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었다. 헐거운 이빨 탓에 잇몸이 아파서, 원치 않아도 치과의 단골이 되어야 하는 삶, 원치 않는 몸의 붕괴일 것이다.

“중년 남자가 좋지 않은 건 말이야, 체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마음만이라도 소년으로 되돌아가려 한다는 점이야. 마음은 소년인데, 몸은 아저씨. 이렇게 도움이 안 되는 건 세상에 없다구! 여자에게 필요한 건 마음은 중년, 몸은 소년인 남자라구.”

 

나는 ‘다이라 아즈코’의 소설을 떠올렸다. 그리고 지난 해 읽었던 소설을 다시 빼들었다.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이었다.

명성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번역이 되지 않는 필립 로스의 신간이니 무조건 사놓고 볼 일이었다. 침대에 앉아 다시 읽기 시작한 소설은 역시 섬뜩했다. 작가는 이런저런 삶의 비의들을, 마른 무덤 위에 난 잡초를 솎아내듯 무심히 뽑아대고 있었다. 정확히 혈관을 찾아 주삿바늘을 찔러 넣은 것처럼 온몸이 저릿했다. 그의 시선이 너울대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손등에 검버섯이 피어오르고, 까만 머리칼에 먼지처럼 뿌연 새치가 돋아날 것 같았다. 나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돌연 나이를 먹는 괴상한 시간 계산법을 상상하다가, 책장을 덮었다.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라는 문장의 섬뜩함 때문이었다.

필립 로스의 문장이 내 등 뒤에 버티고 서서 뻣뻣한 어깨를 짓눌렀다. 살 떨리는 사유들이 소설 밖으로, 내 무릎 아래로 범람해 발끝을 시리게 했다. 책장을 덮고 나서 나는 막막한 얼굴로 창밖을 내다봤다. 사골의 밤은 채 5시가 되기도 전에, 찾아온다. 책장 속 백발의 필립 로스가, 일흔 여덟의 한 노인이 꿰뚫어보듯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날 이 주의 북부와 남부에서 이런 장례식, 일상적이고 평범한 장례식이 오백 건은 있었을 것이다. (중략) 그러나 가장 가슴 아린 것, 모든 것을 압도하는 죽음이라는 현실을 한 번 더 각인시킨 것은 바로 그것이 그렇게 흔해빠졌다는 점이었다. 몇 분이 안 되어 모두 가버렸다. 지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우리 종(種)이 가장 좋아하지 않는 활동으로부터 떠나가버렸다. 그리고 그는 뒤에 남았다. 물론 다른 누가 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비통해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거나 자기도 모르게 안도했다. 또는 좋은 이유든 나쁜 이유든 진정으로 기뻐하기도 했다.

몇 분도 되지 않아 모든 사람들이 떠나버린 장례식장. 이 소설은 황량한 사막을 바라보는 눈으로, 그렇게 시작된다. 죽음을 바라보는 필립 로스의 시선은 오히려 ‘인간종’을 바라보는 생태학자에 가깝다. 같은 DNA를 나누어 가졌지만, 평생을 의기양양할 정도로 건강했던 형과 다르게 태어난 허약한 몸. 삶을 유지하기 위해 목구멍과 심장 여기저기에 주렁주렁 매단 심폐기계 장치들과 온몸에 꽂힌 주삿바늘들은 주인공 남자의 삶을 추상 표현주의 화가의 작품처럼 보여주고 있었다.

광고계에서 훌륭한 사회생활을 마치고 당당히 은퇴한 그는 노년의 삶을 화가가 되어 그림에 투신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1942년 시작된 탈장수술 이후, 원인 불명의 통증과 막연한 죽음에 대한 공포는 그를 자유롭게 놓아주지 않는다. 그는 세 번 이혼했고, 헌신보다는 비행과 실수로 더 유명한 ‘비행남편’이었으며 ‘연쇄바람둥이’였다. 비교적 성공한 삶이었지만 노년의 삶으로부터 그를 구원해줄 가족들로부터는 외면당했다. 가족 해체는 사실상 그의 전공이었다.

물론 외롭게 살겠다고 스스로 선택한 건 그였지만,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외롭게 살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외로운 상태의 가장 나쁜 점은 그것을 어떻게든 견디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끝장나니까. 과다하다 싶을 정도로 넘쳐났던 과거를 게걸스럽게 돌아보다 마음이 사보타주를 일으키는 것을 막으려면 열심히 일을 해야만 했다.

성공적인 과거를 가진 남자들의 은퇴 후 삶은, 예상과는 달리 낙관적이지 않다. 한 정신분석가의 말에 의하면, 아이러니하게도 은퇴 후 가장 취약한 계층은 다름 아닌 ‘대기업 CEO 출신’이다. 자신이 하는 ‘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받았던 이들은 ‘일’이 사라지는 순간 방황하게 된다. 자기계발서들이 말하는 ‘은퇴 후 삶’이 정말 재테크에 맞추어져 있다면, 이들은 누구보다 성공적인 은퇴 후의 삶을 만끽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온통 혼란스러움으로 가득 찬다.

교회라도 좀 다니세요. 딸 아이가 말했었다. 교회를 싫어한 건 아니지만 나는 무언가...그래도…그랬다. 어떤 무언가가 내 삶에 남았을 거라 믿어왔다. 여유가 있고 비로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그런 노후....퇴직을 하고 한동안 그런 삶을 산다는 착각에 빠졌었다. 데생을 배우기도 했고, 기원을 오가고, 아주 잠깐 철학강의를 듣기도 했다. 그리고 곧, 걷잡을 수 없는 무력감이 밀려들었다. 할 일 없는 인간이 되었다는 자괴감, 쓸모없는 인간이 되었다는 허무함, 길고, 시들고, 말라가는 시간의 악취.......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다시 일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오가는 직장인들을 바라보는 스스로의 진심에 나는 좌절했었다. 그토록 지긋지긋했던 그 삶이 결국 내가 원하는 삶이었다니. 언젠가 퇴직을 하면, 하는 상상으로 삼십삼 년간의 직장 생활을 견뎌내지 않았던가. 내 삶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삶이란…무엇일까.

- 박민규, 「낮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정녕 없는 것일까. 나도 늙어갈 것이고, 당신도 역시, 어느 날 우리는 노인이 되고, 상실의 고통을 얻게 될 것이다. 그것은 시간의 상실, 시력과 청력의 상실일 수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치명적인 상실일 수도 있을 것이므로, 나는 가슴에 손을 얹고 아직 반듯하게 뛰고 있는 내 심장 소리를 오랫동안 귀 기울여 들었다. 만약 내가 120살까지 살게 된다면, 100살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러나 노인은 이미 ‘끝장나버린’ 존재가 아니다. 우리의 삶이 ‘성장’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순간, 조금 더디고, 이전과는 다른 방식이라 할지라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욕망에 휘둘리고 참을성이 없어지는 노인과, 풀어지며 여유로워지는 노인의 차이가 존재하듯, 삶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지 않는다. 구하고, 느끼고, 깨닫는 자에게 더 좋은 것을 줄 것이기에. 삶을 ‘사는 것’과 죽음을 ‘기다리는 것’ 사이에 그토록 많은 차이가 있듯이 말이다. 섣부른 희망도 쉬운 절망도 없이…… 그렇게 하루를 그저 뚜벅뚜벅 인간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실력을 인정받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 덕에 63세 때 당당히 은퇴를 할 수 있었죠.
그런 지금 95번째 생일에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내 65년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0년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나는 퇴직 후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그냥 덤이다.
그런 생각으로 그저 고통 없이 죽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덧없고 희망이 없는 삶
그런 삶을 무려 30년이나 살았습니다.
30년의 시간은
지금 내 나이 95세로 보면
3분의 1에 해당되는 기나긴 시간입니다.
만일 내가 퇴직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때 나 스스로가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95세지만 정신이 또렷합니다.
앞으로 10년, 20년을 더 살지 모릅니다.
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째 생일날!
95세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 <동아일보 칼럼>, 95세 노인의 이야기

영화 <시>를 보다가 몇 가지 든 생각들.

보톡스를 맞지 않은 채, 자연스러운 ‘노인’이 되어 가는 영화배우 윤정희의 주름살은 예뻤다. 그나저나 이창동 감독의 얼굴이 나날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시거를 닮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녕 나밖에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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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백영옥

장편소설 『스타일』로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 2008년에서 2009년에 걸쳐 YES블로그에 장편소설 『다이어트의 여왕』 연재, 일간지 연재칼럼을 모아 낸 에세이집 『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 단편집 『아주 보통의 연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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