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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신은 어떻게 예능 늦둥이가 되었나

윤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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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칼럼은 특정 인물을 다루는 게 아니라, 예능을 겸업하는 가수들을 보며 느꼈던 단상을 윤종신을 중심으로 천천히 털어놓는 형식이 될 겁니다.

서론 1. 본 칼럼에 들어가기에 앞서 심심한 사과의 말씀 먼저 올려야겠습니다. 지난 칼럼에서 5월 6일이라고 그렇게 설레발을 쳤던 <김제동 쇼>는 방송이 또 미뤄진 모양입니다. 본의 아니게 독자 여러분을 낚아서 만선 어부가 되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본방 사수할게요’라고 말씀해 주신 독자 여러분들 한 분 한 분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만, 여의치 않아 이렇게 머리말로 대신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이러나저러나 양치기 소년이지만, 고의는 아니었으니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이죠? 13일 0시 무렵에 <김제동 쇼> 공식 트위터(twitter.com/kimjedongshow)에 올라온 소식에 따르면 정기 채널 개편으로 인해 아직 준비 중이라고 하는군요. 저번에 방송이 일주일 미뤄졌을 때도 명확한 이유나 해명이 없었던 지라, 내심 불안하고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닙니다. 오이 밭에서 신발 고쳐 신지 말고 배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매지 말랬다고, 어쩐지 김제동이라서 더 걱정이 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어서 빨리 방송 일정이 잡히길 바랍니다.

서론 2. 이번 칼럼은 특정 인물을 다루는 게 아니라, 예능을 겸업하는 가수들을 보며 느꼈던 단상을 윤종신을 중심으로 천천히 털어놓는 형식이 될 겁니다.

땡땡, 예능에 도전하는 가수들을 생각하다

천안함 사태로 인한 예능 결방과 MBC 파업 5주는ㅡ저는 개인적으로는 간절한 마음으로 파업을 응원했습니다만ㅡ제가 사랑하는 몇몇 방송들을 볼 수 없던 탓에 즐겁다고만은 말할 수 없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사적인 영역에서의 저를 조금이나마 목격하셨던 분들이나 지금은 잊혀진 이름 <CQ>를 기억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제가 항우울제 대신에 <무한도전>과 <황금어장-라디오스타>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를 ‘복용’하는 것으로 오랜 우울증을 버텨 내고 있다는 걸 아실 테지요. 인터넷에서 “<무한도전> 팬들, 무기력증 호소” 같은 타이틀을 단 기사 혹시 보셨습니까? 거기 나오는 무기력증을 호소하는 팬이 바로 접니다. 재방, 삼방도 하루 이틀이지요. 저처럼 <무한도전> 총 198개 에피소드를 틈만 나면 바둑돌을 한 알씩 정성 들여 닦는 심정으로 복기한 덕분에, 이제 눈을 감고 봐도 다음 대사가 뭐가 나올지 아는 사람은 어서 다음 에피소드가 나와 주기만을 사지를 비틀며 기다리는 겁니다. 그래도 딴에는 파업을 응원한다고 ‘재방, 삼방도 빵 터진다! 걱정 말고 투쟁해라!’라고 말은 했습니다만, 내심 시커멓게 썩어 가는 마음 달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아마 방송을 어서 다시 보고 싶단 마음에 노조의 승리를 더욱 간절히 원했는지도 몰라요).


물론 K 본부의 <해피투게더 3>라거나, <남자의 자격>과 같은 대용품들이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일용할 웃음의 절대 총량이 턱없이 부족해진 터라 그것만으로 견디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지친 제가 마지막 순간에 기댄 것은 <유희열의 스케치북>(이하 <스케치북>)이었습니다. 웃음이 절박하게 필요해지는 순간이면 저는 ‘아이유를 바라보는 유희열의 매의 눈’을 복기했고, 윤하가 불러낸 깜짝 게스트 카라를 영접하고는 몸 둘 바를 몰라 온몸이 새빨갛게 달아올라서 버벅대던 유희열 카덕 인증의 순간을 거듭 재생하며 한고비씩 넘겼습니다. ‘김연우를 바라보는 매희열’ 동영상에 ‘국민 귀신 알렉스’ 노래를 입혀 본격 퀴어물로 돌변시킨 UCC를 보면서 눈물을 훔치며 웃다가 잠이 드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날이 늘어났지요. 진지한 얼굴로 화려한 재담을 날리는 유희열이 아니었다면 전 진짜 지난 두어 달 사이에 무슨 일을 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그가 처음 <스케치북>을 진행한다고 했을 때, 이미 수년간 라디오 DJ 생활을 통해 강철 이빨을 자랑한 유희열이지만 과연 TV 환경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내심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가 순도 높은 웃음 폭탄을 투척해 대는 걸 보니 걱정했던 게 무색해질 지경이더군요. 유희열식 개그는 그가 자신의 기획사 ‘안테나 뮤직’ 식구들과 함께 벌인 콘서트 <안테나뮤직 배 보컬경연대회 대실망쇼>에서 그 정점을 찍었습니다. 김동률을 성실하게 모창하며 「그림자」를 부르는 유희열은, 도가 지나친 진지함과 극적인 콘트라스트를 빚어내는 처절한 가창력으로 보는 사람의 호흡을 앗아갑니다. 임성한 작가가 일찍이 <하늘이시여>에서 ‘사람은 <웃찾사>를 보다가 너무 웃긴 나머지 숨질 수 있다’고 우겼던가요.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을 잠시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궁금하신 분들께서는 가까운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서 동영상 ‘대실망쇼’를 검색해 보세요).

유희열은 <스케치북>에서 한번도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는 수려한 진행 솜씨를 보여줍니다. 화려한 재담과 진지한 음악 이야기를 섞는 솜씨가 메이저리그 투수들 볼 배합 솜씨에 맞먹어요. 게다가 누가 나와도 농담의 적정 수위를 유지하면서 상대에 대한 존중도 잃지 않는 매너는 가히 ‘음악계의 유재석’이라 불러도 좋을 수준입니다. ‘왜 이 자는 이제서야 TV에 진출했는가’ 하는 의문마저 품게 만듭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에 떠오르더군요. ‘왜 유희열은 이렇게 사람을 웃기고도 여전히 진지한 음악가로 존중을 받는 반면에, 윤종신은 언제부턴가 깐죽 대마왕이 되어 음악가로서의 커리어가 희미해진 걸까?’ 하는 질문 말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이어 길, 이하늘, 김장훈, 김C와 같은 다른 가수들의 이름도 딸려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질문의 가장 모범적이고 정석적인 답안은 이렇습니다. 유희열이 <스케치북>에서 맡은 역할은 ‘농담도 잘할 줄 알지만 기본적으로는 현업 음악가로서 게스트와 관객들, 시청자들 사이를 잘 중재해서 음악을 소개하는 중재자’지요. 윤종신처럼 ‘본격적인 예능 선수’ 의 역할을 수행하는 건 아니니까 시청자들의 반응 역시 윤종신을 대할 때와는 다를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무리 담당 PD가 왕년에 <해피투게더>를 연출하던 광수 PD이고, 개그우먼 박지선이 나와서 입담을 뽐내는 고정 코너가 있다고 하더라도 <스케치북>은 결국 라이브 음악 프로그램입니다. 비록 노영심부터 시작된 KBS 음악 라이브 프로그램 중에서는 <스케치북>이 가장 웃음의 비중이 크지만, 음악 프로그램이라는 본질이 흔들리지 않는 한 유희열은 여전히 자기만의 세계를 가진 음악가로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 답안으로는 ‘왜 윤종신은 가수를 겸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능인 윤종신의 이미지가 음악가 윤종신을 압도하는가’라는 궁금증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더 독한 캐릭터로 예능 선수로서의 데뷔를 마치고서도 리쌍의 6집 앨범 <Hexagonal>을 성공적으로 런칭한 길도 있잖습니까? 반면 윤종신의 음악인으로서의 커리어는 얼마나 희미해졌는고 하니, 윤종신이 자신이 만들고 성시경에게 준 노래 「거리에서」를 부르는 동영상 밑으로 ‘윤종신이 이렇게 노래를 잘하는 줄은 몰랐다’라는 리플들이 주렁주렁 매달리는 지경이에요. 물론 저를 비롯한 제 윗세대들은 여전히 윤종신, 하면 음악가 윤종신을 먼저 떠올립니다만, 이제 가수로서의 윤종신보다 예능인 윤종신을 더 익숙하게 생각하는 세대가 등장하기 시작한겁니다. 015B에 목소리를 빌려 주며 청아한 미성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고, 「오래 전 그날」로 청춘 남녀의 가슴을 에게 했으며, 「환생」으로 음악 순위 차트를 호령했던 발라드 음악가 윤종신은 요즘 젊은 세대에겐 낯선 존재가 되었구나 싶어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쩌면 장르의 문제일지 모른다고 생각해 봤습니다. 적극적으로 망가져 가며 사람을 웃겨야 하는 예능과, 듣는 사람을 울려야 하는 발라드라는 장르 사이에 놓인 격차는 실로 엄청나지요. 치질과 장 트러블, 쉬지 않는 깐죽거림으로 예능계를 종횡무진하는 예능인 윤종신과, 처연하고 가슴 아픈 발라드를 부르는 음악가 윤종신 간의 갭은 어마어마하니까요. 하지만 역시 그것만으로는 여전히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리쌍의 이번 앨범 타이틀곡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는 전형적인 리쌍식 발라드 트랙이고 가사는 이별하는 연인들의 이야기를 잔인하리만치 냉정하게 그려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곡을 작곡한 음악가 길과 <무한도전>의 ‘길메오’ 길 사이의 갭에도 불구하고, 아직 음악가로서의 길의 이미지가 위태롭다거나 하진 않잖아요.

풀리지 않는 궁금증에 여러 가지 가설을 내세워 봤습니다. 윤종신이 쓰는 곡들이 예전에 비해 안 좋은가? 그것도 아닌 거 같습니다. 정작 본선에서는 떨어졌지만 방송 직후 마약과도 같은 중독성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속출하게 만들었던 「영계백숙」도 그가 아직 건재하다는 걸 증명하지요. 그럼 윤종신이 예전에 비해 음반 활동이 뜸한가? 아니지요. 그는 본격적으로 ‘예능 선수’로서의 입지를 다진 이후에도 음악은 쉬지 않고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부터는 ‘Monthly Project’라고 아예 매월 신곡을 발표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습니다. 5월에 발표한 곡은 「본능적으로」와 「이성적으로」 두 곡이지요. 너무 예능에 오래 있다 보니? 그런 거로 치면ㅡ물론 이 글이 쓰여지는 지금 유학 때문이라니 외압 때문이라느니 말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하차 발표가 있었습니다만ㅡ벌써 거의 3년째 <1박 2일>의 고정 멤버로 활약 중인 김C는 어쩌고요. 김C가 예능 나들이를 하던 건 <브레인 서바이벌> 때로 거슬러 가니 김C도 예능 연차로 치면 결코 빠지는 사람이 아니잖습니까.


생각 끝에 유력한 가설 세 가지 정도가 남더군요. 첫 번째로, 윤종신은 ‘예능도 하는 가수’로 인식되기엔 지나치게 예능을 잘합니다. 위에서 김C의 예를 제가 들기는 했습니다만, <논스톱 4> 시절 때부터 꾸준히 예능에 몸을 담으며 예능감을 키워 온 윤종신은 이제 가히 A급 예능인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게다가 그가 옆에서 꾸준히 호흡을 주고받으며 예능을 배운 사람들은 오늘날 한국 예능의 절대 강자인 유재석, 강호동입니다. 능숙할 만하지요. 그 입담은 <라디오스타>를 통해 더 강하고 독하게 단련됩니다. 깐죽거리며 치고 빠지는 데 능한 신정환, 독설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강철 이빨 김구라, 한때 한국 예능의 신적 존재였던 김국진의 틈바구니에서 결코 지지 않고 적재적소에 멘트를 던지는 타이밍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요. 오죽하면 남이 흘린 멘트를 토스받아 골대로 집어넣는 실력을 두고 ‘예능계의 인자기’라고 부르겠습니까.

‘고품격 음악 방송’을 자처하는 <라디오스타>에서 윤종신은 전체 맥락을 붙였다, 떼었다를 수행하며 웃음과 진행 사이의 원활한 소통을 중재하는 중간자 역할을 합니다. 오랜 라디오 DJ 생활을 통해 매끄러운 진행 솜씨를 갖춘 윤종신은 독설을 던져야 하는 순간에는 신정환, 김구라와 호흡을 맞추며 독설의 수위를 높였다가 다시 맥을 이어야 하는 순간 김국진과 함께 전체 쇼의 진행을 도모함으로써 쇼의 호흡을 조절하는 페이스 메이커가 됩니다. 가수라는 본업을 내려놓은 지가 좀 오래된 신정환에 비해서 꾸준히 음악 작업을 하고 있는 덕분에 음악인 게스트들과의 친밀도도 높은 편이지요. <라디오스타>가 순도 100퍼센트의 혼란인 것처럼 보여도 사실 어떻게든 진행이 되고 있는 것은 멤버 4명 간의 찰떡 호흡 덕이고, 그 안에서 윤종신이 수행하는 역할은 상당합니다.


<패밀리가 떴다> 시즌 1에서도 그렇습니다. 윤종신은 쇼가 자신에게 요구하는 바를 제법 명확하게 간파하는 편인데요, 김수로와 함께 최고령자인 윤종신은 활달하고 액션이 큰 김수로와 콘트라스트를 이루며 사지 육신이 골골해서 만사가 귀찮은 최고령자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무한도전>에서 박명수가 수행하고 있는 역할과 흡사하지요. 그의 만사 귀차니즘과 비난 8단으로 빚어지는 해프닝은 <패밀리가 떴다>에 다양한 상황과 갈등 구조를 부여하면서 에피소드의 현실성을 살려 줍니다. 그런가 하면 <라디오스타>와 비교적 포맷이 비슷한 <절친노트-찬란한 식탁>에서는 또 다릅니다. 차분한 진행과 설탕을 두른 독설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박미선에게 쇼의 전체 흐름을 맡기고 신정환과 함께 쇼의 잔재미 지수 상승에 충실하게 복무하는 편이지요. 팔색조처럼 변신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자신의 색을 쇼의 필요에 맞게 변주하는 윤종신의 능력은 프로의 면모를 보여 줍니다.

두 번째 가설은 그가 함께 어울리기를 즐기는 멤버들이 윤종신의 가수 이미지를 가릴 정도로 독한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그와 가장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는 <라디오스타> 멤버들만 봐도 그렇지요. 김구라 옆에서 4년이나 호흡을 맞추면서도 크게 밀리거나 위축되지 않는다는 걸 보세요. 그 4년간 서로 독설을 주고받으며 알게 모르게 깎아내린 이미지가 오죽하겠습니까. 옷 입는 것, 머리 스타일, 진취적인 구강 구조, 치질과 장 트러블, 개그 스타일, 가족사, 그리고 윤종신으로서는 무덤까지 지니고 들어가고 싶은 실언일 ‘회’ 사건까지. 그렇다고 가수 동료들이 도와주는가 하면 또 그것도 아니잖습니까. 그와 가장 근거리에서 작업을 함께했던 김장훈과 유희열은 틈만 나면 윤종신을 개그의 먹잇감으로 삼습니다. 간신배 이미지에서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 때 타이즈를 입고 플라멩코를 췄던 이야기, 그가 썼던 군가 「훈련의 노래」 「사나이 사나이」까지. 상황이 이 지경이니 말입니다. 윤종신이 무대 위에서 진지하게 발라드를 부른다고 예능 이미지들이 안 겹쳐 보일 수 없는 상황인 겁니다.

실제로 저만 하더라도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에서 김장훈과 유희열이 치를 떨며 폭로했던 군가 「사나이 사나이」 노래가 귓전에 아른거리는 덕에, 윤종신의 무대를 맨 정신으로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전성기만큼은 아니더라도 노래로는 누구에게도 안 빠지는 윤종신입니다만, <라디오 스타> 멤버들과 유희열, 김장훈의 틈바구니에서 망가진 이미지가 도무지 복구가 안 되는 겁니다. 「사나이 사나이」와 유희열, 김장훈의 숨넘어가는 웃음이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되는 통에 진정이 안 되어 슬플 지경입니다. 심지어 <스케치북> 2회에서 김장훈은 윤종신을 배려한답시고 키 높이를 맞추기 위한 스티로폼 발판을 들고 나왔지요. 물론 모이면 서로 농담 따먹기를 일삼는 절친 셋이 모였으니 가능한 설정이었겠습니다만, 세 명이 함께하는 무대인데 이상하게 시선은 발판에만 가는 걸 어찌할 수 없더군요.


마지막 가설은 조금 슬픕니다. 윤종신의 가수로서의 커리어를 조롱거리로 삼아 개그의 소재로 활용하는 데 가장 열심이었던 건 사실 윤종신 스스로입니다. 어떤 분들은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실 테고, 또 어떤 분들은 갸우뚱도 하실 거 같습니다만. 혹시 기억하십니까? 윤종신은 한때 「너의 결혼식」의 첫 소절인 ‘몰랐었어’를 유행어로 밀어 보려고 처절한 몸부림을 쳤더랬습니다. 덕분에 전 이제 「너의 결혼식」을 진지하게 들으려다가도 자꾸만 예능의 이미지가 어른거려서 그 노래를 제대로 못 듣습니다. 비극이지요. 게다가 「오래 전 그날」의 첫 소절 ‘교복을 벗고 처음으로 만났던 너’에 에로 이미지를 덧씌워 개그 소재로 유통시키는 바람에 「오래 전 그날」도 이제 정결한 마음으로 듣기가 곤란해져 버렸습니다. 게다가 기껏 <스케치북>에 나와서 첫 곡 「이별택시」를 더없이 진지하게 마치고 나서 유희열과 나눈 대화에서 그는 원래 가사에 ‘따블’ ‘할증인가요 아저씨’ 같은 가사를 넣고 싶었노라 말하며 자기 노래를 개그의 소재로 삼습니다. 방금 전 무대의 감흥이 채 가시기도 전에 ‘피아노 옆에 서서 이야기하자고 굳이 말한 건 내가 피아노보다는 키가 크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바람에 오랜만에 ‘가수’ 윤종신을 보고 싶었던 저는 크게 낙심했더랬습니다.

예능에 종사하는 가수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인데, 자신이 제일 잘 알고 편한 소재로 개그를 하는 걸 나무랄 일은 아닙니다만 자기 본업을 개그의 소재로 삼는 건 자칫 본업의 이미지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습니다. 틈만 나면 S.Papa 시절을 개그의 소재로 활용하는 탁재훈에게 지금 가수의 이미지가 남아 있는가 생각해 보면 쉽지 않은지요. 그래도 탁재훈은 지금 거의 완벽에 가까운 전업을 했으니 그렇다고 칩시다. 앞으로도 계속 작곡가 겸 가수로 활동을 해야 하는 윤종신의 경우라면 적어도 자기 커리어를 개그의 소재로 삼는 무리수는 두지 말았어야 옳습니다. 그래도 윤종신이 워낙에 예능감이 뛰어나서 망정이지, <스타 골든벨>에서 비슷한 테크트리를 타다가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 버린 김종서를 생각해 보십시오. 자칫 잘못하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잃을 수도 있는 악수입니다. 물론 예능에서 받은 활력을 가수 활동의 원동력으로 삼는 사람들도 분명 있습니다. 싸이나 MC몽, 은지원과 같은 사람들은 예능에서 받은 활력소를 가수 활동의 원동력으로 삼지요. 하지만 정색을 하고 듣는 사람의 눈물샘을 자극해야 하는 발라드에 자기 기반을 둔 사람이 예능의 영역과 자신의 본업의 영역을 섞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문제가 그리 간단해지지 않습니다.


리쌍의 길이 아마 윤종신의 반대편에 서 있는 좋은 예일 겁니다. <무한도전>과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에서 그가 보여주는 개그는 독하기 그지없는 개그입니다. 게시판 지분 1, 2위를 다투는 그는 자신의 몸을 가지고 웃기고, 자신의 무식을 무기 삼아 웃기고, 심지어 오줌싸개 이미지도 쏠쏠하게 써먹습니다만 결코 자신의 본업인 힙합을 개그의 소재로 삼지 않습니다. 진지하게 접근해야 하는 영역을 예능의 영역에서 멀찍이 분리함으로써 자신의 음악적 커리어까지 웃음의 소재가 되는 걸 애초에 방지하는 편이지요. 덕분에 그가 리쌍 6집 <Hexagonal>로 활동하면서 이별에 대한 날 선 노랫말을 부를 때에도 설득력을 크게 잃지 않을 수 있는 겁니다. 김태원도 비슷한 케이스지요. 그는 ‘눈도 안 보이고 귀도 안 들리는’ 자신의 쇠약한 육신을 개그의 소재로 삼아 ‘국민 할매’, 나아가 ‘국민 시체’로 사랑받고 있습니다만, 25년을 이어 온 자신의 밴드 부활의 이야기가 나올 때만큼은 진지합니다.

윤종신 본인은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검색을 해보다가 예전 한 인터뷰에서 그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언급했더군요. ‘왜 슬픈 노래를 하는 사람은 다른 모든 면이 슬퍼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런 잣대 자체가 너무 촌스럽다고 본다. 평소 열심히 재밌게 살던 사람이 슬퍼질 때 더 지독하게 슬퍼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이미지 싸움이라는 문제에서 해방되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예능 프로그램 나와서 웃기는 것도, 무대에 올라 슬픈 노래 부르는 것도 모두 윤종신이다. 왜 사람들은 그게 같은 인물일 수 없다는 걸까.’ 물론 그 말도 맞습니다. 웃고 떠들다가도 슬퍼지는 게 사람이고, 자신의 다면적인 면모를 매력으로 발산하는 것도 좋지요. 다만 그 슬픈 노래를 부르고 내려와서 자기가 부른 슬픈 노래에 대한 농담을 조롱조로 던져 버리면 아까 그 노래를 듣고 눈시울을 붉혔던 청중들이 뻘줌해질 거란 것도 염두에 두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군요.

아마 제가 위에서 든 세 가지 가설이 모두 조금씩 작용을 했던 것 같습니다. 워낙 예능을 잘하기도 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독하기도 하고, 자기가 툭하면 자기 본업을 개그의 소재로 삼기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겠지요. ‘예능인’ 윤종신의 팬 입장으로는 그가 이제 능수능란한 예능 선수가 된 게 기쁩니다만, ‘가수’ 윤종신의 팬으로서는 그렇게 달가운 상황은 아닙니다. 아마 저 역시도 예전과 같은 기분으로 윤종신의 무대를 보기는 쉽지 않겠지요. 물론 윤종신 본인은 상당히 즐거워 보입니다. 오히려 가수만 하고 살 때에 비해서 더 행복해 보입니다(물론 결혼과 2세 탄생으로 덜 외로워진 것도 한몫하겠습니다만). 인터뷰에서도 먹고살기 위해 예능에 출연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즐겁게 살기 위한 거라는 요지로 말한 바 있지요. 게다가 요새 10대들이 자기가 가수이자 작곡자라는 사실을 알면 깜짝 놀란다는 이야기에 ‘나 그런 반응 좋아한다’며 자기는 끝까지 행복하게 살겠다니, 팬의 입장으로는 미우나 고우나 응원할 수밖에요. 아쉬워도 본인이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된 게 아닌가 하며 아쉬움을 달래 봤습니다.

글을 마무리해야지 하고 생각하다가, 왜 가수들이 앞다투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밖에 없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 봤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렇지요. 한국은 대중문화 종사자와 그 수준에 비해서 절대 인구수가 턱없이 작습니다. 인구가 4천8백만인데 무슨 헛소리냐 하시겠지만, 실제 시장에서 ‘돈’을 지불하며 대중문화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은 참 적지요. 21세기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대중음악계는 참 볼품없이 축소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 살 깎아 먹기에 지나지 않았던 컴필레이션 앨범의 난무, 소비자들의 불법 다운로드, 디지털 음원 수익 분배와 관련한 통신사와 저작권자 간의 공정치 못한 비율 등.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음악을 만들고 홍보하는 데 필요한 자본은 점점 규모가 커져 가는데 수익이 발생할 만한 창구는 점차 줄어들었지요. 지난 10년간 금방이라도 완전히 무너질 것만 같았던 한국 음반 시장을 그나마 구색이라도 갖출 수 있도록 유지해 주고 있는 건 진지한 리스너들에겐 경시의 대상이었던 아이돌들이었습니다.

절대 인구수가 적고, 시장에 참여하는 적극적 소비 계층은 더 적다 보니 장르의 편중화 현상이 더 심해졌습니다. 결국 잘 팔리는 장르의 음악들만 본전을 회수할 수 있는 형식으로 시장이 기형화되었지요. 실제로 한국의 3대 기획사라 불리는 SM, YG, JYP 모두 해외 시장 개척에 열을 올리는 것은 한국의 시장 규모만으로는 프로모션 비용조차 다 회수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느 순간부터인가 드라마를 제치고 다시 예능의 전성기가 도래하자 자신의 얼굴을 가장 쉽게 알릴 수 있는 예능에 나와서 자신을 알리고, 고정 멤버가 되어 지속적으로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찍어 두지 않으면 힘든 시절이 되어 버린 겁니다. 윤종신이야 자기가 좋아서 한다고 하지만, 한때는 살아 있는 전설이었던 백두산의 유현상이 자신의 헤어스타일과 가죽 바지에 대한 농담을 견뎌 가며 예능에 나오는 거나 노래로는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K.Will이나 마이티 마우스 같은 팀이 예능에서 망가지는 걸 보는 게 마냥 즐거운 일만은 아닙니다.

앞으로도 많은 가수들은 예능 나들이를 하면서 자신들의 끼를 뽐내고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을 겁니다. 물론 예능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저는 여전히 즐거운 마음으로 방송을 즐기겠지요. 그래도 한번은 생각해 봅니다. 너무 오래전으로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만, 한때 <젊음의 행진>이나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와 같이 예능과 가요계 종사자들이 조화롭게 어울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좀 더 가까운 예를 든다 해도 <김혜수 플러스 유>까지만 가도 그랬지요. 가수들은 필요 이상으로 망가질 필요가 없었고, 적당한 수준의 토크 이후에는 곡을 소개할 수 있는 무대가 보장되어 있던 날들이 있었지요. 무작정 그 시절이 좋았으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건 분명한 퇴행입니다만, 그래도 가끔은 그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긴 합니다. 적어도 그런 프로그램들이 한두 개 정도는 더 있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하지요. 어쩌면 그 덕분에 <스케치북>의 존재가 더 소중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수들이 웃을 때 웃다가도 노래를 할 때는 진지하게 노래할 수 있는 무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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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의 대표작

짐 자무시의 영화 〈패터슨〉이 오마주한 시집. 황유원 시인의 번역으로 국내 첫 완역 출간되었다. 미국 20세기 현대문학에 큰 획을 그은 비트 세대 문학 선구자,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의 스타일을 최대한 살려 번역되었다. 도시 패터슨의 역사를 토대로 한, 폭포를 닮은 대서사시.

본격적인 투자 필독서

네이버 프리미엄콘텐츠' 경제/재테크 최상위 채널의 투자 자료를 책으로 엮었다. 5명의 치과 전문의로 구성된 트레이딩 팀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 최신 기술적 분석 자료까지 폭넓게 다룬다. 차트를 모르는 초보부터 중상급 투자자 모두 만족할 기술적 분석의 바이블을 만나보자.

타인과 만나는 황홀한 순간

『보보스』, 『두 번째 산』 데이비드 브룩스 신간. 날카로운 시선과 따뜻한 심장으로 세계와 인간을 꿰뚫어본 데이비드 브룩스가 이번에 시선을 모은 주제는 '관계'다. 타인이라는 미지의 세계와 만나는 순간을 황홀하게 그려냈다. 고립의 시대가 잃어버린 미덕을 되찾아줄 역작.

시는 왜 자꾸 태어나는가

등단 20주년을 맞이한 박연준 시인의 신작 시집. 돌멩이, 새 등 작은 존재를 오래 바라보고, 그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시선으로 가득하다. 시인의 불협화음에 맞춰 시를 소리 내어 따라 읽어보자. 죽음과 생, 사랑과 이별 사이에서 우리를 기다린 또 하나의 시가 탄생하고 있을 테니.


문화지원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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