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출신의 뮤지션이지만 미국의 블루스 음악을 하는 밴 모리슨(Van Morrison). 그래서인지 상대적으로 블루스 음악의 팬 베이스가 좁은 우리나라에서 그의 이름을 듣기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영화 <적과의 동침>에 삽입되면서 「Brown eyed girl」이란 곡이 국내에서도 잘 알려지게 되었죠.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나 브라이언 맥나잇(Brian McKnight) 등의 가수들이 리메이크를 할 만큼 훌륭한 명곡을 많이 남긴 뮤지션입니다.
밴 모리슨(Van Morrison) <Moondance> (1970)
그는 마치 외계인 같았다. 1960년대 중·후반, 모든 이들이 반전과 평화의 구호를 외치며 현실 사회 속에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을 때, 그것과는 동떨어져 자신만의 세계 구축에 몰두했던 그의 형상은 흡사 다른 별에서 연착륙한 지구 밖 생물처럼 보였다.
1968년에 발표한 걸작
<Astral Weeks>를 통해 록의 예술적 지평을 한층 넓히며 독립 음악 아티스트로서 성공적 출발을 알렸던 밴 모리슨(Van Morrison)은 2년 뒤 내놓은 본 회심작
<Moondance>(빌보드 앨범 차트 29위)로 대중적 피드백까지 획득, 그의 음악 인생에 있어 최초로 가시적인 상업적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바로 이 점, 비단 예술적 성취뿐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만만찮은 축하 세례를 받았기에 그의 앨범 가운데 명반이라는 특전은
<Astral Weeks> 외에 이
<Moondance>에게도 변함없이 주어진다(<롤링 스톤> 등 서구의 각종 음악 잡지가 선정하는 명반에 밴 모리슨 것으로는 이 2장의 앨범이 부동의 상위권을 점한다). 이 레코드를 통해 그는 그룹 뎀(Them) 시절부터 천착했던 포크, 블루스 등의 미국 전통 음악 위에 아일랜드의 신비스러운 음악적 베일을 덧씌우면서 후대의 모든 아이리시 밴드들을 위한 기본 토양을 마련해 주었다.
설명했듯, 밴 모리슨은 솔로로 데뷔한 이래 적극적으로 모국 아일랜드의 독특한 정서를 바탕으로 자신의 독자적 음악 세계를 축조해 온 인물. 이를 통해 이른바 ‘켈틱 소울’(Celtic Soul)이라는 음악적 신천지를 개척했다. 바로 지금까지도 그가 유투(U2), 엔야(Enya), 시네드 오코너(Sinead O'Connor) 등의 고향 후배들로부터 일제히 경배와 헌사를 받는 이유다. 적어도 아일랜드 뮤지션에게 밴 모리슨은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로 통한다.
이러한 아일랜드만의 토속성 위에 포크의 안식과 블루스의 쓰라림, 록의 호방한 기세와 재즈의 자유분방함이 마름질되면서 그의 음악 세계를 관통하는 ‘신비’라는 테마는 그 설득력에 무게감을 높였다. 「Into The Mystica」 「Moondance」 「Caravan」 「These Dreams Of You」 등 수록곡들의 제목만 살펴봐도 왠지 모르게 현실과는 유리된 ‘탈속'’脫俗)적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소울풍의 코러스를 통해 목가적인 고양을 부추기는 절묘한 발라드 「Crazy Love」와 피아노와 기타, 관현악이 함께 어울려 재즈적 향취를 내뿜는 「Into The Mystic」, 팝 싱글 차트 39위까지 치솟은 「Come Running」 등은 이미 록 클래식으로 극빈 대접을 받고 있는 트랙들. 대표곡 중 하나인 「Brand New Day」와 구미 로큰롤 문법에 속해 있으면서도 그의 목소리를 통해 이러한 굴레를 훌훌 벗어던지는 「And It Stoned Me」 「These Dreams Of You」 등을 통해서도 밴 모리슨만의 특장인 독야청청 자세는 확연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 외의 곡들, 예를 들어 아일랜드 휘슬을 이용해 소울 재즈에 켈틱의 음악적 오로라를 입힌 「Moondance」와 「Everyone」, 밴 모리슨의 열정을 투사하는 창법이 광채를 발하는 「Caravan」 등도 현실 무대와는 다른 궤도를 타고 내공 증진에만 몰두해온 그의 ‘음악 도인’적 시각을 잘 대변해 준다.
밴 모리슨의 음악은 이처럼 히피의 음악 교사를 자청했던 비틀스, 도어스 등의 사이키델릭 음악과 같은 화려한 치장은 없었지만 대담하게 모든 것을 감싸 안는 그 원초적 정신성으로 록 예술성의 기치를 한껏 올릴 수 있었다. 한마디로 그것은 프리섹스와 마약 등의 향락에 빠져 있던 당시 사회에 대한 속죄의 비의(秘意)를 담고 있는 ‘음악적 씻김굿’이었으며 리얼리즘의 바다 건너편에 있을 미지의 세상에 대한 힌트를 제시했던 빛나는 ‘정신적 주석’이었다.
이후 30년 이상 영적 음악의 세계 건설에 심혈을 기울여온 그는 2년 전인 2003년에 발표한 근작
<What's Wrong With This Picture?>를 통해 자신의 시들지 않는 상상력을 다시 한번 과시, 평단과 마니아들의 호평을 받았다. 다채로운 탐색과 서술은 별로 없었지만 별개의 디테일한 스타일들을 전체로 소급할 줄 아는 음악 대가만의 방법론은 여전히 그를 주요 음악가로 기억하게끔 만든다.
밴 모리슨을 오늘날 음악가와 팬들 사이에 잊혀지지 않을 이름으로 조각(彫刻)한 앨범이다. 「Crazy love」를 애론 네빌(Aaron Neville)과 브라이언 맥나이트(Brian McKnight)가 리메이크하고, 「Moondance」를 마이클 부블레가 재해석하고 「Everyone」의 경우는 영화
<로열 테넌바움>의 엔딩 크레딧을 밝히는 등 몇몇 단편 사례가 말해 주듯 수록된 곡 대부분이 세월을 뛰어넘어 강한 생명력을 전하고 있다.
‘이런 앨범이 있기에 우린 싱글이 아닌 앨범을 고집한다!’는 앨범 팬들의 의기(義氣)가 저절로 솟아난다. 이것은 벨파스트의 앨범 아닌 아일랜드 앨범, 아일랜드의 앨범 아닌 세계의 앨범, 세계의 앨범 아닌 은하계의 앨범이다. 확실히 그는 외계인이다.
- 글 / 배순탁(greattak@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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