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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는 것의 의미』

‘셀카질’의 숨은 의미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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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공영 방송 BBC에서 TV 시리즈로 진행된 내용을 책으로 엮은 『본다는 것의 의미』는 어떤 의미에서는 미학에 관한 훌륭한 교양서로, 어떤 의미에서는 미디어와 영상론을 다루는 기초 교재로 꽤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책입니다.

바야흐로 영상의 시대입니다. 인간의 오감 중에 시각은 사물을 인식하는 가장 보편적이고도 객관적인 기준이 되었으며, 무엇보다 시각에 크게 기대는 인간의 습성 탓에 시각 이미지를 다루는 기술은 급격하게 진보했습니다. 실물과 똑같은 영상을 만드는 사진 기술을 넘어, 이제는 심지어 영화를 보면서 평면상의 이미지가 입체로 느껴지는 3D 영상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이미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80년대의 군중집회 현장과 21세기의 군중집회 현장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차이는 패션도, 피켓도 아닌 ‘카메라’의 숫자입니다. 요즘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는 현장에는 어김없이 아마추어와 프로를 불문하고 이른바 ‘대포’라고 불리는 거대한 렌즈를 단 카메라들이 넘실거립니다. 단순히 거시적인 의미의 현장에만 카메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필두로 한 ‘셀카 찍기’ 열풍, 미각마저도 시각화하는 각종 맛집 기행의 사진들은 시각 이미지가 우리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알려 주는 사례들입니다.

『Ways of seeing』, 한국판 제목으로 『본다는 것의 의미』를 달고 나온 이 책 한 권은 그래서 갈수록 시각 이미지가 중심이 되는 세계를 읽는 중요한 이정표입니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부터 <아바타> 3D IMAX까지 이어지는 시각 이미지의 유구한 흐름 속에서 저자 존 버거는 말 그대로 과연 본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공영 방송 BBC에서 TV 시리즈로 진행된 내용을 책으로 엮은 『본다는 것의 의미』는 어떤 의미에서는 미학에 관한 훌륭한 교양서로, 어떤 의미에서는 미디어와 영상론을 다루는 기초 교재로 꽤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책입니다. 미디어가 대세가 된 요즘의 대학교 미디어 관련 교양 수업에서 가장 많이 다룬다는 이 책을 오늘 함께 되짚어 보고자 합니다.

‘본다’는 영상 기술의 발전에 의해 소유할 수 있는 형태로 자리합니다. 초기 인류의 미술이 기복과 감흥에서 비롯되었다면, 저자가 책 1장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르네상스 이후 유화 기술의 발전으로부터 일어나는 시각 이미지의 생산과 소비 양식에 대한 변화입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소유’라는 개념이 자리합니다.

유화는 사물의 시각 이미지와 질감을 기존보다 더욱 또렷하게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유화는 특히 귀족들이나 거상들의 초상화 등에 자주 사용되는데, 이는 실재하는 것이 아닌, 실재와 놀랍도록 유사한 형태를 소유할 수 있게 하는 그림의 기능 덕택이었습니다.

이는 특히 사진이 등장하면서 더욱 새로운 변화를 맞이합니다. 그림보다 선명하게 대상을 재현하면서도 동시에 같은 이미지를 손쉽게 무한대로 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입니다. 적어도 기존의 유화는 그리기 어렵다는 점으로 인한 일종의 희소성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사진의 등장은 이러한 희소성을 없애버림으로써 그림이 가지고 있는 소유로부터의 만족을 제거합니다. 이 작은 차이는 곧 ‘미술품’과 ‘광고’의 차이를 낳습니다. 미술품은 갖고 싶은 것이고, 광고는 ‘갖고 싶은 것을 보여주는’ 역할로 분화되는 것입니다.

‘욕망하는 것을 보여주는’ 형태가 자본주의 체제의 사진으로 귀결되었다는 점을 1장에서 정리한 저자는 2, 3장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이미지의 관점을 조망합니다. 철저한 남성 중심 사회 구조 속에서 생산되는 모든 시각 이미지는 영상 내의 여성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그 제작 과정부터 개입되는 성정치적 역할에 의해 ‘남성에게 보여지는’ 이미지로 가공됩니다. 이는 결국 이미지를 통해 여성을 소유하고 그 소유를 자랑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하도록 하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저자는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다른 곳에서 찾습니다. 애초에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영상 이미지는 ‘보여주기 위한’ 제작 과정을 거친 산물에 대한 인식 행위이므로, ‘이 영상은 왜 만들어졌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답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 존 버거의 답변입니다. 영상은 어떤 경우에도 사회적 관계와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으며, 이는 특히 인간의 시각적 욕망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원론적인 이야기는 책의 후반부에서 보다 구체화됩니다. 존 버거는 앞서 이야기한 인식론의 차원에서 지평을 넓혀 사회 관계망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며, 이를 통해 영상이 가진 이데올로기성을 언급합니다. 영상은 그 욕망을 자극하는 도구로써 생산된다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소유한 자와 소유하지 못한 자를 구분하고 있으며, 소유하지 못한 자에게 선망을 부여함으로써 이익을 만들어냄과 동시에 계급을 구분하고 있다는 점을 다양한 광고 사례 등을 통해 짚어 냅니다.

책에서 제목과 본문으로 이야기하는 ‘본다는 것의 의미’는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매우 제한적인 시대에 국한된 질문과 답변입니다. 책은 정확히 영상 이미지가 대량 생산, 대량 소비되기 시작한 산업 사회 이후라는 지점을 시대적 의미로 국한하며, 결국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시대 속에서 ‘본다’는 행위가 갖는 의미를 다방면으로 고찰합니다. 산업 사회, 정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본다’라는 단어의 포괄적 의미를 다 사용하지는 못하고 있으며,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이미지만을 보면서 살아간다는 허점을 짚어 냅니다. 그리고, 그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지는 이미지의 제작 의도를 알아내는 것이 현대 사회를 읽는 또 다른 방식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존 버거의 영상에 대한 통찰과 지적은 매우 냉정하고도 날카롭습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우리가 지금 보고 사는 모든 이미지는 만들어진 이미지입니다. 조금 과장을 섞자면 내가 보는 모든 것은 누군가의 의도가 개입된 것이겠지요. 롯데리아의 브랜드 로고가 빨간색인 이유는 식음료 산업에서 붉은색이 가장 식감을 돋우는 색이기 때문이고, TV에서 날마다 접하는 현대카드의 세련된 이미지는 나도 모르게 ‘현대카드=트렌드 리더’라는 인식을 심어 줍니다. 심지어 현대 문명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떠나는 오지와 사막으로의 여행조차도 나의 카메라에 담겨 블로그에 올라가는 순간, 도심 생활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시간과 금전의 여유를 가진 이가 드러내는 보여주기에의 욕망이 됩니다.

욕망에 대한 이러한 지적은 읽는 이를 뜨끔하게 합니다. 수없이 비판받으면서도 꾸준하게 일명 ‘셀카질’이 유행하는 이유는, 자신의 젊고 아름다운 육체와 그 육체가 행동하는 양식이 타인에게 자랑이 될 수 있을 때 발생합니다. 연예인 셀카가 탑 뉴스란과 검색어 상위권에 자주 오르내리는 것도 결국 그 육체에 대한 욕망과 육체를 소유한 이가 갖는 드러내기의 욕망이 만드는 사회적 협주곡이 되겠지요. 욕망으로 돌아가고 욕망으로 성장하는 사회에서는 매우 당연한 일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냥 저자의 논리만 따라가기에도 아쉬운 부분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초기 사진 기술의 등장을 설명하면서 책은 기존의 미술 작품이 갖던 희소성이 사진 복제를 통해 사라지는 장면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건 그림이 보편적일 당시의 이야기이고, 당장 생산되는 모든 이미지가 대중에게 보편적인 대중문화 사회에서는 그 설득력을 잃고 맙니다. 게다가 영상의 소유라는 것은 이젠 누구나 손쉽게 ‘펌질’이 가능한 시대이다 보니 그리 독보적이지 못한 일이 되어, 영상 소유를 통한 만족이라는 것도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소유의 개념 재정의가 필요해진 네트워크 시대니만큼, 존 버거의 논리도 더욱 보강되어야 할 부분이 생겼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의한 차이점은 특히 동영상에 대한 언급에서 크게 두드러집니다. 책 전반에서는 동영상에 대한 이야기 비중이 매우 낮은 편인데, 지금의 독자들은 동영상의 홍수 속에 살기 때문입니다.

만약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광선검 ‘라이트세이버’가 정지 영상으로 있을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존 버거의 입장에서 이 이미지는 광고입니다. 소유욕을 자극하여 새로운 구매를 일으키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구분하는 선이 되어 새로운 욕망을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정작 6부작 동영상으로 구현된 <스타워즈> 시리즈는 대놓고 광고라고 하지 않습니다. 시간과 서사 구조가 포함되면서 <스타워즈>는 광고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으며, 인류의 영원한 욕망을 미래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재구성한, 신화의 재현으로 거듭납니다.

본다는 행위에 대한 고찰은 그 고찰만으로도 사람을 성숙하게 합니다.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너무나도 다중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이 ‘본다’ 개념은 굳이 저자의 이야기인 영상물에만 한정지을 수 있는 개념도 아닙니다. 포르노를 보는 행위는 단지 자극적인 포즈와 행위의 영상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지하철에서 짧은 치마 밑으로 드러난 여성의 다리를 음흉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남성의 시선에서 성립하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존 버거의 『본다는 것의 의미』도 바로 그렇게, 개인의 시선이 머무는 관계를 사회적 관계 고찰로부터 파악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았다는 점은 웹페이지를 ‘보고’ 있는 독자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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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는 것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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