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이야기’를 짓는 작가, 천명관 - 『고령화 가족』 천명관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지질하면 지질한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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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의 천명관이 『고령화 가족』과 함께 독자들을 찾아왔다. 물론, 『고래』와 『고령화 가족』 사이에는, 그가 아끼는 단편집 『유쾌한 하녀 마리사』가 있다.

『고래』의 천명관이 『고령화 가족』과 함께 독자들을 찾아왔다. 물론, 『고래』『고령화 가족』 사이에는, 그가 아끼는 단편집 『유쾌한 하녀 마리사』가 있다. 『고래』의 독한 맛에 비교되느라, 온전히 제 맛을 보이지 못한 게 아닌가 싶은 이 소설집에는 그의 데뷔작, 「프랭크와 나」를 비롯하여, 유머러스하고 예측할 수 없는 열한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두 권의 책만으로도 천명관은 소설가로서 분명한 인상을 남겼는데, 그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잘(!) 지어내는 작가’라는 것이다. 작가라 하면 누구나 그렇지 않으냐고 반문하시겠지만, 그는 우리가 소위 이야기라고 부르는 ‘삼인칭의 서사’에 각별한 애정을 품고 있다. 그의 이야기가 시간, 장소를 제약 없이 넘나드는 힘이 여기에 있다. 비단 내 이야기, 네 이야기뿐 아니라, 경계 없는 이야기 세계에서는 춘희도, 금복도, 프랭크도, 마리사도 함께 이야기된다.

“프랭크, 그리고 또 다른 프랭크, 토론토, 밴쿠버, 콘수엘로, 칠레, 축구코치……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졌고 우리는 점점 더 크게 웃었다. 볼리비아, 콜롬비아, 에이프릴, 마리화나, 캐딜락 자동차……”(『유쾌한 하녀 마리사』, p.40)가 등장하는 그의 이야기는 옛날옛날, 문명 이전 시대를 훌쩍 넘어, 한국 현대사, 프랑스 혁명사까지 걸칠 뿐 아니라, 미국 마피아의 세계에까지 닿아 있는 범상치 않은 스케일을 자랑한다. 작가는 자신의 책이 “많이 읽히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읽은 독자들만큼은 단단히 매혹시켜버린다. 그의 작품이라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분홍쟁이 님의 리뷰 중에서) 읽겠다는 독자들이 은근한 걸 보니 말이다. 최근 출간된 『고령화 가족』 역시 쫄깃한 이야기의 맛은 변함이 없다.

잘 어울리는 뿔테 안경. 그리고 뚜렷한 이목구비. 방금 책날개의 사진을 보며 받았던 인상 그대로 나타난 그를 보고, 방금 책날개에서 걸어 나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마치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유쾌한 소설을 써내는 사람이라면, 어딘가에 그만큼의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있지 않을까. 대뜸, ‘좀 비관적이시죠?’ 하고 물었다. 바로 돌아온 대답. “심하죠. 병적일 정도로.” 그는 애써 유쾌한 척하지 않았고, 일부러 미간에 잔뜩 주름을 잡고 있지도 않았다. 종종 그의 익살스러운 말투나 표정 때문에 고개를 젖히고 웃어 버린 적이 여러 번이었으니까 말이다. 이날의 이야기마저도 슬퍼한다고도, 웃고 있다고도 하기 애매한, 책날개에 실려 있는 그의 표정과 닮아 있었다.

“이를테면 이런 거예요.” 천명관의 말에는, 확실한 어떤 것이 있었다. 오래 생각해 온 양 정리된 말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소설에 관한 입장이 분명했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 온 흔적이 역력했다. 그리고 아직도 소설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엄연히 소설가니까. 그는 이전까지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했는데, 이날만큼은 ‘엄연히 소설가’를 강조했다. 절반씩 애정을 내어 주었던 소설과 영화의 비중은 한층 소설에 기울어 있는 듯했다. 이 말인즉, 이제 보다 조금 더 자주, ‘소설가 천명관’을 만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어떤 삶이든 제 몫만큼의 의미가 있다는 것

전철을 타고 엄마 집으로 가는 동안 나는 낭떠러지 말고도 또 하나의 선택이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엄마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물론, 이전에도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이지, 죽기보다 싫은 일이었다. 나이 마흔여덟에 칠순이 넘은 엄마 집에 얹혀산다는 건 생각만 해도 쪽팔리고 민망한 일이었지만 더 끔찍한 건 엄마 집엔 이미 쉰 두 살이 된 형이 얹혀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p.12)

『고령화 가족』, 이야기의 시작은 어땠나요?

“오래전에 집을 떠났던 형제들이 세상살이에 실패하고 늙은 엄마 집에 모여 살아요.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의 나이인 형제들이 어릴 때처럼 티격태격하는 상황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비슷한 얘기를 어디서 들었어요. 물론 당사자들에게는 괴로운 일이겠지만, 저로서는 거기에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겠다 싶어서 그렇게 시작을 한 거죠.”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건가요? 이전 작품들과 달리, 작가님 가까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90년대 이후 한국 문학을 보면 내면성의 문학이라고 해서, 대부분 문학이 작가 자신이 주인공인, 소위 ‘고백적 자아’라고 할만한 인물이 등장해요. 저는 삼인칭의 서사, 가능하면 저로부터 먼 이야기를 쓰려고 하는데, 이 소설은 아마 제가 쓴 소설 중에 저와 가장 가까운 얘기가 아닐까 싶어요. 이것도 일종의 통과의례라고 할까요? 작가로서 자신에 관한 이야기. 자기 주변의 가까운 이야기도 한번 거쳐 가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쓰게 됐습니다.”

영화감독, 보험 모집인 등 작가님과 비슷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가 눈에 띕니다.

“제가 잘 아는 세계죠.(웃음) 그래야 제가 다루기도 용이하고, 사실은 그게 보통 사람들이죠. 그런 사람들을 다루다 보니 직업이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실패한 영화감독, 보험 모집인…….”

이번에도 120킬로그램의 거구 캐릭터가 등장했어요. 혹시 작가님도 거구가 아닐까 상상해 봤어요.(웃음) ‘오함마’라는 인물은 어떻게 구상하게 되셨는지요.

“제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이거든요. 120킬로그램의 거구에, 『고래』에서는 ‘걱정’이라는 인물로 나왔고, 데뷔작인 단편 「프랭크와 나」에서는 ‘프랭크’, 그리고 ‘남편’ 이렇게 반복해 등장하는데, 저는 그걸 ‘걱정이 캐릭터’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하도 많이 먹으니까, 먹고살 일, 입에 풀칠할 일이 걱정이다, 해서 ‘걱정’이에요.(웃음)

만약 과거였다면 전쟁터에 나갈 만한 유능한 인물일 수 있겠죠. 장비 같은 캐릭터잖아요. 사실 현대사회에서는 딱히 운동선수가 아닌 한, 그렇게 큰 거구가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아요. 오히려 거대한 육체 안에 숨어 있는 비극성이 있죠. 『고래』에서도 그런 얘길 한 것 같은데, 거기 등장하는 ‘춘희’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인물들에게 애정이 가요. 왠지 안쓰럽고. 덩치는 큰데 이 사회에 적응을 못해서 힘겨워하는 모습에 연민이 있죠.”


소설 속에서 작가 헤밍웨이가 중요하게 다뤄지잖아요. 인물들이 각성하는 계기도 되고. 왜 ‘헤밍웨이’였나요?

“제가 청소년기에 굉장히 좋아하던 작가고요. 『킬리만자로의 눈』이나 『무기여 잘 있거라』…… 어떻게 보면 흔한 작가죠. 널리 알려지고, 청소년기에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작가고, 영화화도 됐고, 가족사도 복잡해서 굉장히 흥미가 있는 인물이었어요. 헤밍웨이 소설 스타일도 좋아했어요. 기자 출신이다 보니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고, 장식적이지 않은 문장을 구사했죠. 미국 문학사에 헤밍웨이 이후의 문학들은, 그렇게 사실주의적이고 간결한 문체로 바뀌어 간 것 같아요.

그런 작품 세계가 추구하는 것과 잘 맞았어요. 미국 문학은 문어체적인 어휘들을 썼는데, 헤밍웨이 이후에는 입말, 현실에서 쓰고 있는 말,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로 바뀌기 시작했어요. 그것이 제가 추구하는 바이기도 하고요. 이런 데에도 애정이 있었고, 헤밍웨이는 삶 자체도 무비 스타처럼 파란만장했죠. 여행도 많이 했고, 죽을 고비도 넘기고, 전쟁에도 참여하고, 굉장히 화려했지만 결국 엽총으로 자살하잖아요.

소설 속 주인공은 거기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한 인간이고, 엄마 집에 얹혀서 조카한테 담뱃값도 뜯어내는 찌질한 인간인데, 그렇지만 인간의 실존이라고 하는 것은 다 누구나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것…… 누구나 구원을 꿈꾸지만 쉽게 찾아오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그런 찌질한 인생이 의미가 없는 게 아니라, 누구나 각자 만큼의 의미가 있다는 것…… 그런 걸 대비해서 보여 주고 싶었어요.”


내게도 아마 헤밍웨이의 젊은 날과 같은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세상은 신비하고 달콤한 희망으로 빛나며 옆에 누워 있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래서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던 시절…… 하지만 그 상대가 누구였는지, 당시의 감정이 어땠는지는 이제 잘 기억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는 것이며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거였다.(p.94)

헤밍웨이 책을 쓰레기통에서 가져오잖아요. 그 사람도 낡아져서 엄마 집에 돌아오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그런데 말씀하실 때, ‘한국 문학과 달리’라는 말씀을 자주 하세요. ‘다르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나요?

“제가 『고래』를 썼을 때, 내가 ‘한국 문학에 빚진 게 없는 작가’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70, 80년대까지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읽은 많은 한국 문학들이 저에게 아주 큰 영향을 주었죠. 당연히 그 흔적들이 제 문학 속에 있다고 생각하고요. 제가 빚진 게 없다면, 90년대 문학이에요. 90년대 이후에는 저도 나이가 서른이 넘어가니까 소설과 멀어졌죠. 90년대, 소위 내면성 문학이라는 것이 저와 좀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것에 ‘빚지지 않았다.’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어요. 저는 2000년대 작가죠.

‘조부 법칙’이라는 게 있어요. 미술사에서 쓰는 말인데. 어느 새로운 예술가군이 등장하면, 이 사람들은 자기 아버지 세대의 예술을 부정하면서 등장해요. 그러다 보니까 할아버지 세대와 닮게 돼요. 다 그런 건 아니지만, 2000년대 문학이 그런 지점에 있어요. 90년대 문학과 연장선에 있는 작가들도 있고, 90년대 문학을 부정하면서 등장한 작가들이 있어요. 그런 작가들은 80년대 문학과 닮아있어요. 저도 그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80년대는 민주화라는 큰 명제 앞에 봉사하는 문학이 많았죠. 사회의식이나 역사에 관심이 많은. 그에 비해 90년대 문학은 좀 더 개인적이고, 거대 담론 속에서 개인을 발견하는 문학들이죠. 그러다 보니 삼인칭의 서사가 사라진 것 같아요. 저는 삼인칭의 이야기 예술로서의 소설을 추구하거든요. 그래서 90년대 문학과 차이가 있다고 보는 것 같아요. 한국 문학에 빚진 게 없는 건 아니고요. 빚은 많이 지고 있어요.(웃음)”



가족, 그 풀리지 않는 문제에 관하여

막장 드라마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이러다 혹 어느 날, 대기업의 총수가 내 앞에 나타나 ‘실은 내가 네 아비다.’라고 말하는 건 아닐까?(p.140)

막장 드라마에 출생의 비밀이 빠지지 않는 까닭이 뭔가요.(웃음)

“시한부까지 넣고 싶었어요.(웃음) 막장 드라마의 컨벤션이라고 하는 게 있잖아요. 그 요소들을 다 끌고 와서 쓰고 싶었어요. ‘막장’이란 말 자체가 부정적이고, 욕을 많이 하는데도, 시청률이 30퍼센트 이상 나와요. 막장이라야 시청률이 나와요. 얼핏 생각하면 ‘세상에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있느냐.’ 싶죠. 툭하면 시한부고, 기억상실증이라든가 이런 특수한 예들이 아무렇지 않게 등장하는 게 막장 드라마일 거예요.

저는 이런 통속적인 규칙 안에 보통 사람들이 느끼고 싶어 하는 비밀이 숨어 있다고 생각해요. 재미있으니까 볼 거 아녜요.(웃음) 그런 요소들을 끌어 와도, 새롭게 쓰면, 그것도 의미 있는 작품이 된다고 생각해요. 저에게는 막장이 따로 없어요. 『고래』도 얼마나 막장이 많아요.(웃음) 정말 막장이죠.”


말씀하신 대로 막장 드라마는 욕하면서도 보게끔 하는 힘이 있잖아요.(웃음) 그런 힘이 비밀 같은데, 그 비밀이 뭘까요?

“드라마도 보면, 수준 높은 드라마가 있고, 정말 말도 안 되는 드라마가 있어요. 그 안에는 대중이 좋아하는 요소라는 게 분명히 있을 거예요. 그런 요소라고 해서 언제나 고급 예술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눈에 어긋난다고 해서 그것이 가치가 없는 것도 아니고 다 이유가 있는 거죠. 소설에서 그런 것들을 두루두루 그려 보고 싶었어요. 저는 그런 경계가 별로 없는 사람인 것 같아요. 부연하자면, 저는 문학주의자, 예술지상주의, 문학에 지나친 엘리트주의를 굉장히 싫어해요. 지식인들의 전유물인 것 같이 고급한, 대중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쓰는 것. 저는 그걸 라틴어라고 부르는데(웃음), 전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가족을 유지하는 데는 의리 정도만 있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쉽지 않은 건데, 의리라는 게) 이 소설을 쓰면서 가족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거나 정리된 게 있나요?

“소설을 보면 ‘가족이란 평생 몸에 달고 사는 오래된 지병 같은 것이다.’라고 부정적인 언급이 있잖아요. 한국식 가족주의라고 하는 것이 개인보다는 집단이고 그것은 지역, 사회, 학교 등 수없이 많은 커뮤니티에 속하게 돼요. 개인으로서 존재하기 어렵잖아요. 그중에서 가장 집요하고, 가장 강력한 것이 가족이에요. ‘서로 물고 빨고 핥느라 개인의 인생은 모두 소진시켜 버리는’이라는 구절도 있는데 사실 한국사람 치고 ‘내가 차라리 고아였음 좋겠다’는 생각 한번 안 해본 사람이 없을 거예요. 그만큼 부담이 있다는 거죠. 명절 때 가족들 만날 생각하면 늘 기쁜 것만은 아니잖아요.

동시에 또 이렇게 가족주의가 강하게 된 데 대해서는 어떤 이유가 있을 거예요. 분명히. 이 시스템을 만든 것에는 분명 그런 필요가 있다는 거죠. 서구식 개인주의와 비교하면 다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미국 영화 보면 가끔 그러잖아요. 10년 만에 재회한 아버지에게 딸이, ‘아빠 인사하세요. 제 남편이에요.’ 이런 식의.(웃음)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장단점이 있을 거예요. 저 개인에게도 가족이란 여전히 힘든 것도 있고, 풀리지 않는 그런 것이었어요. 이 소설을 쓰면서 조금 풀렸다고나 할까요. 정리가 됐다고 할까요. 딱 얘기하긴 어려운데,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작가님의 생각은, ‘그래도’ 가족 단위의 생활이 개인적인 삶보다 장점이 더 많다는 것인가요?

“그래도 역시 가족이 좋다거나 하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에요. 잘 모르겠어요. 가족에 대해 풀리지 않은 문제를 가지고 있던 누군가에게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치유가 된다면, 그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저는 보람이 있다고 생각해요. 딱히 제가 가족주의의 병폐에 대해 고발하려고 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가족주의를 옹호하려고 쓴 것도 아니고, 저는 그냥 이렇게 살고 있는 한 가족을 그려 보였어요. 누군가 여기서 뭔가 얻어 가면, 좋은 거죠.”

소설 속에, 여중생 납치 사건에 대한 언급이 있어요. 자연스럽게 스토리상 이야기된다기보다는 작가님의 어떤 목소리 같았어요.

“그런 사이코패스는 선진국형 범죄잖아요. 과거 공동체에는 그런 일들이 없었어요. 그만큼 개인의 소외가 깊다는 거거든요. 80년대에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있었잖아요. 평화로운 농촌이거든요. 평야 지대고. 그곳에서 연쇄살인이 벌어졌다는 건, 그때 이미 우리는 병들어 있었다는 거예요. 그때가 군부 독재 시절이잖아요. 완전히 시골, 농촌에서 그런 사건이 벌어졌다는 건, 우리의 병이 그만큼 깊었다는 거예요. 그것의 방증이거든요.”


텅 빈 부엌에서 매 끼니 무언가를 만들어 내셨던 어머니

언제나 텅 비어 있는 컴컴한 부엌에서
우리의 모든 끼니를 마련해준 엄마에게(p.5)


가족에 대해서도 어머니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첫 장에 어머니께 헌사도 적으셨고요. 실제로 작가님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어요?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완벽한 존재죠.(웃음) 저희 어머니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걸 깨닫게 되었는데, 저희가 6남매예요. 돌이켜 보면, 상상이 안 돼요. 여섯 명을 어떻게 키웠을까? 막내와 맏이가 12년 터울이 있어요. 이 모든 자식들이 성장할 때까지 한 끼도 거르지 않고 밥을 해 주신 거잖아요. 지금 생각하면 놀라운 힘이죠.

제가 어릴 때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가 안 계시면, 부엌에서 뭔가 찾아 먹을까 해서 들어가 보곤 했거든요.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웃음) 컴컴한 부엌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 아무것도 없는 부엌에서 엄마는 매 끼니 무언가를 만들어 내신단 말이죠. 마술 같은 일이죠.

아마 우리 어머니께서 이 책을 보시면 집어던질지도 몰라요. 우리 어머니는 야한 거 나오는 거 되게 싫어하시거든요.(웃음) 예전에 『고래』는 읽다가 내던지셨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목사 욕했다고.(웃음) 독실한 신자시거든요. 어쨌거나 어머님이 어떻게 받아들이실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저희 어머니께 바치는 소설로써 썼어요.”


어머니께서 아직 안 읽어보신 거죠?

“아마 읽고 계실 텐데, 뒤에 팬티 얘기 나오고 이러면…… 모르겠어요.(웃음)”

성장 과정에서 어머니와는 어떠셨어요? 어머니와 작가님은 기질이 많이 다르실 것 같은데.(웃음)

“보수적인 분은 아니세요. 어머님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자질이랄까. 인생을 이해하는 어떤 감수성, 이런 것이 정말 뛰어난 분이세요. 만약에 제가 조금이라도 그런 게 있다면, 그건 어머니께 물려받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고마워하고. 제가 자랄 때 한 대도 안 때리셨어요. 항상.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가치들을 가르치셨고요. 남의 물건 탐내지 마라. 거짓말하지 마라. 불쌍한 사람들 도와줘라. 지금도 그러세요. 열심히 돈 많이 벌고 잘살라는 그런 얘긴 절대 안 하세요. 불쌍한 사람 보면 도와라. 겸손해라, 이런 얘기…….”

작가님이 쓰신 작품 보면 깜짝 놀라시겠는데요. 욕망이 그려진 영화나 소설…….(웃음)

“그러니까요.(웃음)”


영화와의 작별 인사 같은 소설

충무로의 낭인으로 십여 년을 떠도는 동안 비로소 나는 내가 실패한 것이 단지 흥행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인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p.16)

주인공이 영화에 대해 여러 부분 언급하잖아요. 그 씁쓸한 독백들이 작가님이 영화를 생각할 때 하는 독백은 아닐까 싶었습니다.(웃음)

“아마도 그렇겠죠. 저뿐이 아니라, 충무로에는 낭인들이 많아요. 충무로 언저리를 배회하면서 떠나지 못하는 유령 같은 낭인들이……. 저도 그런 존재였죠, 깊은 상처를 안고 있으면서도, 꿈을 버리지 못하고……. 충무로뿐이겠어요. 세상 전체가 그렇겠죠. 중심에 들어가고 싶지만, 들어가지 못하고, 황폐해진 마음을 추스르며 사는 사람들은 너무 많아요. 되게 마음 아파요.”

앞으로는 영화보다 소설 집필에 매진한다는 기사를 봤어요. 이 작품이 혹시 영화인으로서의 자아를 떠나보내는 애도의 작업이 아니었나, 하는 느낌도 들었는데.

“일종의 작별 인사(웃음), 영화와의 작별 인사 같은 소설……. 저는 그래요. 좀. 한 3년 소설을 못 썼고, 방황하고, 연극도 만들고 시나리오 작업도 하고 했는데, 한 가지 일을 잘하는 것도 정말 힘든 일이잖아요. 여기저기 분산시키지 말고, 공격을 한군데로 모아서. 뭔가 그럴 나이가 됐고. 더 이상 시간도 없고(웃음) 소설에 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소설 미학에 관해 고민도 생겼고. 전엔 뭣 모르고 썼다가……. 쓰고 싶은 것도 많이 생겼고요. 이 일에 대한 애정도 좀 생겼고요. 제가 아마 문학청년들이 소설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그런 시기인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최근에 영화 작업(지난 3월 18일 개봉한 <이웃집 남자>의 시나리오를 썼다)도 동시에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사실 저는 소설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하고 살았는데……. 아까 제가 영화판 얘기를 하면서 언저리를 떠도는 낭인들 얘길 했잖아요? 문학도 그에 못지않은 많은 이들이, 소설가를 꿈꾸면서, 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서 열병을 앓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그들이 나를 봤을 때, 쟤는 갑자기 나타나서 단편 하나 쓰고 등단하고, 장편 하나 써서 되고, 이런 것들이 얼마나…… 그 사람들이 보기에, 부러움과 질시. 그런 게 없잖아 있겠죠. 그런 것에 대해 경건해지더라고요. 최근에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 일에 대해서 애정이 많이 생겼고요. 정말 열심히 해야 되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시나리오를 쓰는 일과 소설을 쓰는 일은 어떤 점이 가장 다른가요?

“영화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되죠. 영화를 하다가 소설을 쓰니까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아요. 소설 쓰는 게 어렵냐? 시나리오 쓰는 게 어렵냐? 제가 시나리오 쓰는 게 어렵다고 그랬더니 문인 일부분이 기분 나빠 했다는 후문이(웃음) ‘감히……!’ 그럴 수 있어요. 이해는 되는데, 시나리오가 어려운 이유는 이런 거예요. 많은 사람의 동의를 얻어야 돼요. 영화가 한 편 가기 위해서는 내가 쓴 시나리오가 연출자, 제작자, 투자자, 배우, 프로듀서 이 사람들이 다 동의가 있어야 돼요. 이 중에 누구 하나라도 동의할 수 없다면 진행될 수 없는 거예요. 기술적인 완성도가 뛰어나야 되고, 모든 요구들이 충족되어야 하죠.

시나리오 작가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예술 세계를 펴 보이는 게 아녜요. 이건 지극히 기술적인 일이고 기능적인 일이에요. 그런 점에서 스트레스가 많고 어려움이 있어요. 소설에도 물론 창작의 고통이라는 게 있어요. 그렇지만 그건 한편 건강하고 좋은 스트레스예요. 내가 어떤 대목을 못 넘어가서 힘들고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하다가 그걸 돌파했을 때, 혹은 내가 멋진 문장을 하나 썼을 때 그 희열이 있잖아요. 그 순간 스트레스는 다 사라져요. 근데 시나리오를 쓰면서 겪는 스트레스는 사람 스트레스거든요. 이건 제 안에 트라우마로 남아요. 그런 면에서 소설이 더 쉽다고 얘기한 거고, ‘쉽다’라는 것보다는 좋다는 거죠. 그런 의미인 거죠.”


그렇게 사람들과 부대끼며 작업하다가 혼자 하려니 허전하진 않으세요?(웃음)

“아니요! 전 너무 좋아요.(웃음) 혼자 내가 결정하고 쓸 수 있다는 게.”

그래서 이야기가 쭉쭉 뻗어나가시는 건가요.(웃음) 저지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웃음)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시나리오는 상상력의 제한이 참 많아요. 물리적인 제한도 있지만, ‘이걸 찍을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제약과 더불어, ‘이걸 과연 대중이 좋아할까?’부터 수많은 검열들이 있어요. 존경해요. 저는.(웃음)”


말해져야 할 바는 이야기 속에 침잠되는 법


능수능란한 이야기꾼이라고 하잖아요. 어떻게 시작하세요. 소재를 잡고, 구상하는 데 있어서.

“소설 쓰는 데에 저는 몇 가지 원칙이 있어요. 일단 헛소리를 하지 않는다. 헛소리라고 하는 건 이런 거예요. 작가의 생각을 형이상학적인 개념으로 직접적으로 언술하는 것을 헛소리라고 생각해요. 인생은 이런 거고, 사랑은 이런 거고. 사실 그건 수필의 세계죠. 저는 소설에 관한 한 가지 입장이 있다면 이래요. ‘정작 말해져야 할 바는 이야기 속에 침잠되는 법이다.’ 『고래』를 읽고, 다 읽고 나서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게 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작가의 생각, 주제 문장이 드러난 이야기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이 하는 얘길 거예요. 전 그런 걸 가능하면 안 쓰려고 해요. 정작 말해져야 할 바는 이야기에 침잠되어야 하고, 그 이야기를 통해서 각자 다르게 느껴야 돼요. 그것을 내가 규정해버리는 건, 좋은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가능하면 사실의 진술을 간결하고 알기 쉬운 말로 쓴다. 제가 쓴 첫 문장을 보면 다 나타나요. 항상 사실의 진술로 시작을 해요. 그리고 캐릭터를 만드는 데 있어 공을 들이는 편이에요. 영화 작업을 하다 보면, 보통 문학은 작가 자신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아요. 고백적 자아. 사실 영화에는 그게 가능하지 않아요. 그건, 예술영화죠. 그건. 철저히 삼인칭이잖아요. 저는 가능하면 삼인칭을 쓰려고 하고, 『고령화 가족』은 일인칭이지만, 객관화되어 있는 인물이잖아요. 이게 작가 자신이라고 믿어지진 않잖아요.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있고 하니까. 가능하면 삼인칭 인물을 다루려고 하고, 캐릭터를 만드는 데 공을 들이고. 그렇죠.”


삼인칭 서사. 작가님이 좋아하는 소설가나, 감독들도 그런 작법을 즐겨 쓰는 작가들이죠?

“그렇죠. 조이스 캐롤 오츠 『작가의 신념』에 이런 얘기가 있어요. ‘예술이 있고 기술이 없다면 그것은 아마추어, 개인적인 것일 뿐이다. 그런데 기술이 있고 예술이 없다면 그건 돈벌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지점에 제 고민이 있는 것 같아요. 과연 예술적인 게 뭐냐. 소설은 이성의 산물이에요. 근대의 산물이라는 거죠. 이성으로 이 세계를 보기 시작한 거거든요. 그렇게 보자면, 소설은 차가운 장르예요. 그에 비해 우리는 너무 따뜻해요. 이런 것이 ‘문학적’이라고 말하는 데에 어쩌면 상업주의가 있는 거거든요.”

『고래』라는 첫 작품으로 많은 관심과 찬사를 받으셨잖아요. 이후에 부담감은 없었나요?

“부담은 많았죠. 『고래』는 말하자면, 거의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작품이잖아요. 그다음 작품을 기대하는 독자들은, 이것보다 뭔가 더 강렬한, 이것보다 더 거대한 걸 기대할 거예요. 이보다 못하면 무조건 실망이라고 할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 다음에 단편집이 나올 때, ‘이게 뭐냐, 천명관.’ 이런 댓글이 나오고 그렇잖아요. 저는 그 단편들을 하나하나 다 사랑하거든요. 의미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고래』의 후광 때문에 본의 아닌 손해를 봤죠.

플로베르도 처음 각광을 받은 작품이 『보바리 부인』이에요. 그 이후에도 50권을 썼는데 사람들은 플로베르에게 평생 『보바리 부인』 얘기만 한 거예요. 그래서 그가 세상에 있는 『보바리 부인』을 다 모아서 불살라 버리고 싶은 욕구에 시달렸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전 그 정도는 아니지만…… 전작을 능가하는 작품을 기대하겠지만, 『고래』보다 더 밀어붙이면 소설의 구조, 구성이 깨져 버려요. 시대적 배경도 『고래』는 그야말로 야만과 문명이 뒤바뀐 순간, 정말 격렬하고 할 말이 많은 시대의 얘기잖아요. 『고령화 가족』은 현대가 무대고, 그러면 상상력에 어마어마한 제약이 따르죠. 여기서 말도 안 되는 유령이 나타날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런 제약이 있어서, 부담이죠. 부담이고. 그걸 넘어서기 위해서 끝없이 노력을 할 테고, 항상 안고 가야 하는 짐이죠.”


저는 『유쾌한 하녀 마리사』를 먼저 봐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고래』가 이것보다 재미있단 말야?(웃음)’ 하면서 봤는데.

“재밌죠, 재밌죠! 그거, 재밌어요. 사람들이 이렇게…… 욕심이 많어.(웃음)”

한국 소설에는 반드시 한국적인 게 들어가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잖아요.

“영화든 소설이든, 현실이 아닌 걸 받아들이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제 단편들은 외국이 무대인 소설이 있어요. 그러면 왜 이런 걸 쓰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아요. 미국의 마피아 얘기라든가, 포르투갈의 하녀 얘기라든가…… 갑자기 빅토리아 시대의 사상가들 얘기. 솔직히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거죠. 평단을 주도하는 세대들은, 소위 역사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작품을 분석하고, 우리 사회와 관련해서 해석을 하려고 하는데, 이런 작품들은 그런 고리가 없어요. 해석이 안 되잖아요. 그러면 화를 내죠. ‘왜 이런 걸 쓴 거야.(웃음)’ 그런 어려움이 있죠. 예를 들어, <배트맨> 같은 영화, 우리나라에서 참패를 해요.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에. <다이하드>같은 영화는 대박이 나죠.”

최근에 <아바타>로 한번 떠들썩하기도 했죠.

“한 세대가 걸러진 거죠. <아바타>를 이해하는 세대가 온 거예요. 제가 처음 영화를 할 때만 해도 <배트맨> 같은 영화, 우리나라에서 참패를 해요.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에. <스타워즈> 같은 거 안됐어요. 그 이후에 마니아들이 생겨나긴 했는데, 그런 비현실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 되게 현실적이고 생생하고 사실 같아야 해요. 그래서 그런 작품들을 쓰는 데 어려움이 있어요. 『고래』가 찬사를 받았다고 말씀하시는데, 실제로 독자들에게 그렇게 많이 읽히진 않았어요. 그렇게 대중적이지 않은 거예요.

이를테면 연예인들이 예전에는 탈을 쓰고 있었어요. 캐릭터라든지 상정한 이미지 같은. 그런데 갈수록 그걸 벗겨 내고 싶어 하죠. 예를 들어 TV에서 보는 애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얘 자신이 누구냐. 얘 아들이 누구고, 얘가 무슨 일을 하는 애냐, 하는 것들을 집요하게 파고들죠. 이런 현상이 좋은 건 아닌 것 같아요.”



문학은 기술 이상의 무언가를 요구해요

이전의 기사나 인터뷰를 보니까, ‘아웃사이더’라는 말이 종종 나오더라고요. 왜 자꾸 선생님은 ‘문단의 아웃사이더’라고 하시는 거예요?

“저는 그 말에 대해 정말 해명을 해야 되는데. 저는 제가 문단의 아웃사이더라고 말한 적이 없어요. 한 번도 없고. 저는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아요. 저는 제 인생 전체가 아웃사이더로서 너무 오래 살아왔기 때문에, 어디에서든 주류가 되고 싶고, 그들로부터 사랑받고 싶어요. 진심이에요.(웃음) 아웃사이더 취급하는 거 정말 싫어요. 아웃사이더가 뭘 하겠어요. 뭘 얻겠어요. 결국 변두리에서 투덜대다가 혼자 나가떨어지는 게 아웃사이더잖아요.”

작가님 관련한 이야기에 그런 수식어가 많더라고요.

“기자들이 기사를 쓰면서, 규정한 거죠. 작가라고 하는 것은, 개개인이 하나의 거대한 세계거든요. 어떻게 획일화되겠어요. 다양해야 되잖아요. 이렇게 쓰는 사람도 있고, 저렇게 쓰는 사람도 있고 그런데 시스템이나, 등단 제도, 문학상, 지원금, 출판 제도 이런 것들이 그런 다양성을 가로막고 있죠. 권력도 좋고 시스템도 좋은데 제일 안타까운 건, 그것이 우리 상상력을 제한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게 제일 안타깝죠.”


소설을 보면서, 작가님 얼굴에는 뭐라고 써있을까 궁금했어요.(웃음) 인터뷰 준비할 때는, ‘그래도 난 영화인’이라고 써있지 않을까 했는데, 오늘 뵈니까, 소설가시네요. (“다행이다.”) 소설을 정말 좋아하시는 분.(웃음) 인상적인 게 ‘한국 문학은 이러이러해요.’라는 말을 반복하신다는 점이에요.

“다른 작가들은 그런 말 잘 안 하죠. 그게 제 세대의 특징인 것 같아요.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자꾸 분석하고, 거기에 뭔가 모순점이 있는지 파헤치려고 하고……. 병이죠, 병.(웃음) 이제 안 그러려고요. 말 잘 듣고, 고분고분하고…….(웃음) 그런 게 있어요. 종교적인 신념 같은 것. 문학에는 그런 게 요구돼요. 다른 것은 기술로 먹고사는 거잖아요. 기술을 배워서 노동을 하면서 먹고 사는 건데, 문학은 기술 이상의 무언가를 요구해요. 진심, 진정성. 사실, 그건 내 내면의 일인데, 그걸 왜 보여줘야만 하나 생각했어요. 그걸 요구하는 분위기가 저에겐 종교적인 느낌으로 다가왔고요. 그게 저에게는 큰 숙제예요.”

『고령화 가족』 캐릭터의 얼굴을 명명하듯, 스스로의 얼굴에는 뭐라고 써있을 것 같으세요?

“‘재수 없어’ 이런 거?”

‘사랑받고 싶어!’ 아닐까요.(웃음)

“사실은 그건데. 사랑을 못 받으니까 ‘땡깡’ 피우는 거 있잖아요. 그런 거죠, 뭐.(웃음)”

평소 성격은 어떠세요?

“보면 알잖아요. 유쾌하죠. 유쾌하다기보다는…….”

이렇게 유쾌하기 때문에 비관적인 데가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웃음)

“심하죠. 병적일 정도죠. (세계관에 있어서?) 그렇죠. 제 근간에 이성이 너무 강한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은 비관적일 수밖에 없어요. 과학적인 사고로 무장한 사람들은 행복해지기가 어려워요. 안타까운 일인데, 저도 ‘자연은 아름답고…… 참 놀랍지 않습니까? 개량 한복 입고. 이 꽁꽁 얼어붙었던 나무가, 보세요. 이 싹을 피우는 것을……’ 이러고 싶어요. (잘 어울리시는데요.) 아, 그래요?(웃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웃음) 그게 안 되더라고요. ”

취미 생활은 어떠세요?

“저는 일 년에 한 번 취미 생활을 바꾸거든요. 옛날엔 별 보면서 일 년, 작년엔 사진에 빠져서 일 년. 뭐든 일 년을 넘기질 못하고 딱 일 년씩 하는데. 지난 일 년 동안 사진을 열심히 찍었어요. 렌즈도 수없이 바꾸고, 누구나 하는 과정을 거쳤죠. 지금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고, 지금은 당구의 기하학에 심취해 있어요.(웃음) 당구는 못 쳐요. 당구장에 돈을 많이 가져다줬어요. 역시 모든 것을 하면서 마지막에 깨닫게 되는 건 이런 거예요. 강호는 넓고 고수는 많다. 그 순간 이제 포기를 하게 되죠.”

『고령화 가족』의 등장인물들같이 뒤늦게 무언가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 주신다면요? 혹은 늦게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들에게요.

“저는 해 줄 말이 없어요. 혹시 얘기할 수 있다면, 자기가 하는 일을 성공이나 실패나, 그런 개념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 자체를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자기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의미로서의 문학 또는 영화,(영화는 그게 좀 어려운데) 그러면 좋을 것 같아요. 주변에 상처 많이 받고,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아요. 책 내도 관심도 안 갖고 청탁도 없고. 자신과 문학과의 관계, 골방에서 스탠드를 켜놓고 그 앞에서 은밀하게 글을 쓸 때, 그 순간의 기쁨들. 그런 것에서 의미를 찾았으면 좋겠어요. 그러지 못하면 미워하게 되거든요.”

최근에 쓰고 계신 작품은 뭐예요?

“제목이 ‘몬스터’예요. 시대배경이 『고래』처럼 약간 모호한. 야만과 문명 사이. 그런 시대 배경이고, 한 앵벌이 소년에 관한 얘기예요.”

작가님, 포르투갈 하녀 이야기 같은 거 정말 재미있어요. 그런 거 많이 써주세요.

“그런 걸 좋아하는 독자가 너무 소수라…… 타산이 안 맞아요.(웃음)”

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하지만 삶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법이다. 내 앞에 어떤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지 나는 짐작할 수 없다. 운 좋게 피해갈 수도 있지만 자칫하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에 대해 미리 걱정하느라 인생을 낭비하고 싶진 않다.
(…) 나에게 남은 것은 부서진 희망의 흔적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헤밍웨이처럼 자살을 택하진 않을 것이다.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지질하면 지질한 대로 내게 허용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내게 남겨진 상처를 지우려고 애쓰거나 과거를 잊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겠지만 그것이 곧 나의 삶이고 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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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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