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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예술가’ D. H. 로렌스의 ‘기타 등등’

중단편소설, 시, 산문, 여행기, 이야기역사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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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 1885-1930)는 다작의 작가다. D. H. 로렌스는 그리 길지 않은 생애에 많은 작품을 썼다. D. H. 로렌스가 ‘손댄’ 장르 또한 다양하다.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 1885-1930)는 다작의 작가다. D. H. 로렌스는 그리 길지 않은 생애에 많은 작품을 썼다. D. H. 로렌스가 ‘손댄’ 장르 또한 다양하다. 우리는 D. H. 로렌스를 『아들과 연인』 『무지개』 『연애하는 여인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집필한 장편소설가로 알고 있지만, 그의 중단편 역시 뛰어나다. 그는 시인이기도 하다. 여기선 D. H. 로렌스의 본령인 장편소설을 제외한 ‘기타 등등’을 살핀다. 먼저 필자가 처음 쓴 글다운 글이다.

「목사의 딸들」에 나타난 부르주아적 결혼

D. H. 로렌스의 소설을 읽고 우선 깨달은 점은 ‘푸딩의 맛을 알려면 푸딩을 먹어봐야 한다’는 말을 실감한 것이다. 우리는 흔히 로렌스를 성(性)문학의 대가로만 치부해왔지 그의 진면목은 못 본 것 같다. 이러한 오해는 상업주의 저널리즘의 영향 때문인데, 특히 영화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탓일 것이다.

그래서 소설의 영화화는 신중해야 하고, 소설과 영화는 분명히 다른 영역이므로 영화를 갖고서 원작소설을 평가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로렌스에 대한 오해를 더욱 부추긴 영화 <채털리 부인의 사랑>만 하더라도 이미 소설가 로렌스와는 무관한 영화감독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으로 평가해야 마땅하다.

D. H. 로렌스는 셰익스피어 이래로 빛나는 영문학의 전통을 계승한 적자(嫡子)임이 분명하다. 그의 단편선집 『목사의 딸들』(백낙청 옮김, 창작과비평사, 1991)은 비록 번역본이기는 해도 그러한 증거로서 충분하다.

주옥같은 중단편들 속에서 그의 모든 작품을 관류하고 있는 특징을 엿보는 것 또한 어렵지 않은 일이다. 로렌스는 다른 계급 또는 같은 계급에 속한 남녀 사이의 연애를 통해서 자본주의 사회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이 글에서 살펴볼 「목사의 딸들」 역시 그렇다.

이 글의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목사의 딸들」에 나타난 부르주아적 결혼의 양상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 작품 초고의 제목인 「두 결혼」이 시사하듯, 소설 속 두 개의 결혼 가운데 특히 언니 메어리의 결혼을 통해서 부르주아의 결혼관이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결혼은 배타적 소유의 한 형태다.* 결혼을 통해서 형성된 가족은 남편과 아내 사이의 불평등이라는 물질적 기초 위에 의존하고 있으며, 아내는 단지 침식 제공에 대한 대가로서 재산 양도의 법적 상속자를 출산한다.**

또한 부르주아시대의 결혼은 ‘계산결혼’이다. 유산계급은 결혼할 때 항상 신분이라든가 연고를 가장 중요시했다. 하지만 연애를 상품화하게 되는 현상이 근대 부르주아사회만큼 노골적인 때는 없었다. 곧 연애의 상품성은 부르주아적인 결혼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 것이다.*** 이러한 부르주아적인 결혼의 특징은 메어리의 결혼과 결혼생활의 단면을 통해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린들리씨는 자신이 두말할 여지없이 상층계급 혹은 명령하는 계급에 속해 있다고 생각해왔었다.”(41면) 적은 목사 봉급으로 우월한 사회적 지위를 유지해야 하는 형편이면서도, 린들리가(家)는 적어도 관념상으로는 우월한 상층계급의식을 지닌 부르주아다.

더구나 메어리가 스물세 살 때 린들리씨가 심하게 앓게 되어 집안은 극도로 가난해지지만 그러한 의식은 변함이 없다. “들어갈 돈은 엄청났고 들어올 돈은 거의 없었다. 메어리에게도 루이자에게도 구혼자가 없었다. 그럴 가능성이 어디 있었겠는가? 올드크로스에서는 선택할 만한 젊은이들을 만날 수가 없었다.”(55면)

이때 나타난 사람이 바로 매씨 씨다. 그의 육체적 성격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메어리는 그와 결혼하게 된다. 두 사람의 결혼을 가능하게 한 요인은 무엇인가? 먼저 메어리에게 들어보자. “뭔가 빠진 게 있지. 하지만 뭔가 훌륭한 것도 있어. 그리고 진짜 선하거든-”(65면)

메어리가 생각하는 매씨의 훌륭하고 선한 덕목은 린들리 부인의 생각과 일치한다. “린들리 부인은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서 그가 정혼을 안 한 신사이며 얼마 안 가 일 년에 육칠백 파운드의 수입을 갖게 될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금전적인 여유가 있다면 남자 자체가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57면)

메어리와 린들리 부인에게 있어서 매씨는 돈인 셈이다. 돈은 신실함을 비신실함으로, 사랑을 미움으로, 미움을 사랑으로, 덕을 패덕(悖德)으로, 패덕을 덕으로, 종을 주인으로, 주인을 종으로, 어리석음을 오성으로, 오성을 어리석음으로 바꾸어버린다.**** 메어리와 린들리 부인은 이러한 돈의 속성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계산된 결혼’에서 메어리는 자신을 팔아넘기고 새로운 자유를 얻고자 한다. 그녀는 물질적인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해 육체를 팔아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거래에 만족하는 것은 잠시뿐, 메어리는 “마치 노예가 느끼는 것과 같은 비겁자의 두려움을 그에 대해 마음속 깊이”(72면) 갖게 되고, 임신과 출산으로 인하여 또다시 육체적 존재로 추락하는 고통을 맛보게 된다.

한편 매씨는 인간적 감정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아이에 대한 생각에 몰두한다. “그에게는 세상에 오로지 아기뿐이었다.”(74면)

이상으로 메어리와 매씨의 결혼에 나타난 부르주아적 결혼의 양상과 결혼관을 살펴보았다. 로렌스는 메어리의 결혼을 통해서 자본주의사회에서의 결혼은 이해타산적인 것이고, 여자가 자신의 육체를 영영 노예로 팔아버린다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세례를 받지 않았음에도 부르주아적 연애와 결혼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로렌스가 노동계급 출신 작가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렇지만 로렌스에게도 한계는 보인다. F. R. 리비스의 지적처럼 로렌스는 작품에서 계급 관계를 다루면서도 ‘계급적대의식’은 보여주지 않는다.******

이것은 로렌스가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의 협동공동체인 팔랑스떼르나 뉴래니악과 같은 것을 실제로 이루고자 노력했던 점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목사의 딸들」에서 광산 노동자인 듀란트가 점진적 사회주의자 모임인 페이비언 그룹의 사상을 견지하는 것도 로렌스가 계급적대의식을 드러내지 않는 것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적 사랑에 근접한 루이자와 듀란트가 결혼 후에 외국으로 이민을 떠난다는 결말은 사회구조적인 변화가 없이는 순수한 사랑조차도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로렌스의 진보적 사상이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1992)

* 제라르 베커만 엮음, 『맑스 엥겔스 용어사전』, 이병수 옮김, 논장, 1989
** T. 보토모어 외, 『마르크스 사상사전』, 임석진 편, 청아출판사, 1988
*** 에두아르트 푹스, 『풍속의 역사 4-부르주아의 시대』, 박종만 외 옮김, 까치, 1986
**** 칼 마르크스, 『경제학 철학 수고』, 김태경 옮김, 이론과실천, 1987
***** 프리드리히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김대웅 옮김, 아침, 1987
****** F. R. Leavis, 『D. H. Lawrence: Novelist』, Penguin Books

로렌스 시선집 『제대로 된 혁명』(류점석 옮김, 아우라, 2008)은 역자가 D. H. 로렌스의 시 1,000여 편 가운데 152편을 추렸다. 옮긴이가 덧붙인 D. H. 로렌스의 시론 「현재의 시 Poetry of the Present」는 그의 시관(詩觀)을 잘 보여준다. “시는 대체로 우미한 천상의 아득한 미래의 목소리다. 혹은 풍요롭고 숭고했던 과거의 목소리다.”

하지만 D. H. 로렌스는 “무한한 과거와 무한한 미래의 시일 뿐만 아니라 이 순간의 시”인 ‘즉각적인 현재의 시’를 더 높이 친다. “구현된 지금을 노래하는 소용돌이치는 시야말로, 이전과 이후에 늘 존재하는, 보석을 능가하는 최고의 시다. 이러한 시는 그렇게 전율하는 순간 결정체로 되어 진주처럼 단단한 보석들, 영원을 노래하는 시들을 능가한다.”

D. H. 로렌스에게 ‘즉각적인 현재의 시’는 자유시를 말한다. “자유시란 순간적으로 온전한 인간이 쏟아낸 직접적인 외침이어야 한다.” 또한 “자유시는 원형질처럼 찰나적이다. 자유시는 각각의 영원성에 목표를 두지 않는다. 자유시엔 종결이란 없다. 자유시에는 불변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을 만족시켜주는, 만족할 만한 고정성이 없다.”

번역된 시는 온전치 못하다. 원작의 참맛을 느끼기 어렵다. 더구나 (우리말과) 언어학적으로 거리가 가장 멀다는 영어로 쓴 시와 이를 한국어로 번역한 것의 간극은 넓을 수밖에 없다. 우리말로 옮겨진 D. H. 로렌스의 시는 다소 어둡고 약간 병적인 듯하며 더러는 육감적이다. 번역시의 한계를 고려해도 따분하고 싱겁다.

4부와 5부에 실린 것들은 그나마 낫다. 앞에 실린 작품들에 비해 밋밋함이 덜하다. 그래도 ‘만족할 만한 고정성’이 있는 작품은 꽤 드물다. 280쪽의 「당신이 인간이라면 If You Are a Man」정도가 그럴까. 3연으로 된 이 작품은 1연과 2연이 더 안정돼 있다.

“당신이 인간이어서 인류의 운명을 믿는다면/자신에게 말하라. 우리는 초연해야 한다/소유와 돈, 그리고 기구들로부터./대신에 지금 우리 단절되어 있는/심연의 신비한 삶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기계는 다시 지상에서 추방될 것이다./인류가 그것을 고안함은 착오였다./돈은 더이상 존재하지 못할 것이고 소유도 힘을 잃을 것이다./그래서 인류는 삶과 직접 교통하는 방법을 터득해/타인과 가슴으로 만나게 되리라.”(「당신이 인간이라면」, 부분)

『생명의 불꽃, 사랑의 불꽃』(허상문 옮김, 동인, 2006)은 D. H. 로렌스의 산문선집이다. 우리는 ‘D. H. 로렌스 수필 모음’에서 그의 한 단면을 접한다. “나는 어떠한 현혹적인 계시나 절대적인 말들이라도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사상적 배경은 다분히 기독교적이다. D. H. 로렌스가 서양문명의 ‘자식’이라는 의미다. 사실 기독교적이기보다는 종교적이라고 하는 게 더 걸맞다. 물론 그는 절대성을 부정한다. “절대적으로 훌륭하거나 옳은 것은 없다.”

D. H. 로렌스는 유난스럽게 ‘살아있음’을 강조한다. “삶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그리고 살아 있지 않다면 삶이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난 분명히 안다.” 비유하자면 “사자는 개보다 더 낫지만 죽은 사자보다는 살아있는 개가 더 낫다”는 거다. 최근 나는 ‘산 거지가 죽은 정승보다 낫다는 속담은 비루하다’(<시사IN> 제129호(2010년 3/6), 72면)고 쓴 바 있다.

“사랑은 이 세상의 행복이다. 그러나 행복은 완전히 실현된 완성품은 아니다. 사랑은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이 서로 떨어져 있지 않으면 하나가 될 수 없다.” 하지만 “보편적이고도 불변의 사랑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사랑이 절대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그런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D. H. 로렌스에게 “사랑은 여행과도 같은 것”이다.

D. H. 로렌스는 어느 한곳에 정주하지 않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녔다. 『D. H. 로렌스 서한집』(엄정옥 옮김, 원광대출판국, 1987)에 실린 편지 99통의 발신지는 무려 40곳이다. 영국을 제외하고 이탈리아에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머물렀다. 그런데 편지에 나타난 그의 이탈리아 사람들에 대한 생각은 이율배반적이다.

“저는 이탈리아 사람들을 싫어하고 혐오합니다. 그들은 논의하지 않으며, 앵무새 같은 말투를 사용하며 어깨로 밀치며 머리를 한쪽으로 숙이고 손뼉을 칩니다.”(1913년 11월의 어느 화요일 레리치(Lerici)에서 씬시어 애스퀴스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래놓곤 곧바로 말을 바꾼다. “나는 이탈리아 사람들을 매우 좋아합니다.”(1913년 12월 18일 역시 레리치에서 W. E. 홉킨에게 쓴 편지에서)

콘월에서 캐서린 카스웰에게 보낸 1916년 7월 9일자 편지에선 병역면제 판정을 받은 사연을 전한다. 펜잔스에 있는 컬러스 부대에 소집된 D. H. 로렌스는 집결지에서 60마일 떨어진 보드민(Bodmin)으로 이송된다. 거기서 다른 ‘장정’들과 하룻밤을 묵는다. 이튿날 그는 1차 대전 징집 신체검사를 받았다.

“이것이 저의 군인생활의 전부인데 나에게 군인에 대한 충분한 체험이 되었습니다. 일주일만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었다면 나는 죽었을 것입니다. 이 군국주의는 개인 존재의 핵심을 침식하고 개인의 모든 입장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서한집을 엮은 『멋진 신세계』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 1894-1963)에게 D. H. 로렌스는 “진정한 의미에서 창조의 천재를 타고난 사람”이었다. 그리고 “예술가”였다. 헉슬리가 “발작적으로” 썼다는 그의 1927년 12월 27일치 일기의 한 대목은 매우 인상적이다.

“로렌스 부부와 더불어 아주 놀라운 분위기에서, 멋진 이야기를 하면서 점심을 들고 오후를 보냄. 그는 진정한 존경심과 경탄을 불러일으키는 소수의 인물 가운데 하나이다. 내가 만난 어떤 저명한 사람 앞에서도 나는 결국 이들도 나와 별다른 종류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로렌스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질적으로 다른, 질적으로 우월한 무엇을 지니고 있다.”

올더스 헉슬리의 ‘증언’에 따르면, D. H. 로렌스는 무슨 일이든 한번 했다 하면 끝내주게 잘한다. 요리, 바느질, 양말 꿰매기, 자수 놓기, 암소 젖 짜기, 장작 패기에 능했다. 또 “그가 불을 보면 불꽃이 항상 좋았고, 그가 마루를 닦고 나면 마루가 아주 반질반질했으며 그가 닦은 유리는 언제나 깨끗했다.”

D. H. 로렌스의 여행기 『바다와 사르디니아』(박여선 옮김, 범우사, 2000)와 『무의식의 판타지』(박화영?박신영 옮김, 현대미학사, 1993)는 1921년에 쓴 글이다. 이탈리아 시실리의 타로미나에 머물던 D. H. 로렌스가 ‘이곳을 떠나라’는 에트나 화산의 명령을 받고 여행지로 사르디니아와 스페인을 저울질하다 사르디니아를 선택한 이유는 이렇다.

“그들은 로마어도, 페니키아어도 쓰지 않는다. 그리스인도, 아랍인도 결코 사르디니아를 정복하지 못했다. 그것은 바깥에, 문명의 바깥에 놓여 있다. 바스끄(Basque) 대륙처럼, 물론 이곳 역시 철도와 동력 버스가 있으므로 충분히 이탈리아적이다. 그러나 여전히 포획되지 않은 사르디니아가 남아 있다. 그것은 분명 유럽 문명의 그물망 안에 존재하지만, 그러나 아직 낚아지진 않았다.”

『무의식의 판타지』는 『정신분석과 무의식(Psychoanalysis and the Unconscious)』의 속편으로, 전편과 함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비판한다. 성경의 ‘요한계시록’을 분석한 『로렌스의 묵시록』(김명복 옮김, 나남출판, 1998) 도입부에서 D. H. 로렌스는 거듭 읽기를 강조한다.

“독서의 진정한 즐거움은 우리가 책을 거듭 읽을 때마다 그 책이 전과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와 우리를 다른 의미의 영역으로 인도한다는 데 있다”며, “여섯 권의 다른 책들을 읽는 것보다 시간의 간격을 두고 한 권의 책을 여섯 번 읽는 편이 훨씬 낫다”고 주장한다. 거듭 읽기는 읽을 때마다 깊은 경험을 맛보게 하지만, “단지 한 번만 읽힌 여섯 권의 책들은 단지 피상적인 관심의 축적일 뿐”이다.

『역사, 위대한 떨림-D. H. 로렌스의 이야기 유럽사』(정종화 옮김, 민음사, 2002)에서도 로렌스는 그의 타고난 솜씨를 한껏 발휘한다. 고대 로마부터 유럽의 역사를 맛깔나게 들려준다. 로마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겨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을 세운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족보’와 그를 둘러싼 로마제국의 정치적 역학 관계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한다.

정작 우리가 제대로 잘 모르는 기독교인과 유대교인이 견원지간인 이유와 로마제국에서 기독교가 널리 퍼진 까닭은 신선하다. 기독교와 유대교의 갈등은 유대교 쪽에서 먼저 초래하였다. 초기 기독교도의 “적 중에서 가장 지독한 적은 유대인들이었다.” 로마제국에서 기독교의 확산은 노예들이나 부자들이나 모두 일상에 지친 탓이 크다.

“지치고 배부른 로마의 군인과 시민에게, 이 투쟁의 축제와 흥분과 계속되는 목욕 문화의 따사로운 사치가, 인간의 정신에는 해로운 방해물밖에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보다 더 귀한 진리가 또 있을 것인가?” 이 책의 초판에선 그의 이름을 살짝 숨겼는데 필명이 좀 그렇다. 그의 일시적인 필명은 로렌스 H. 데이비슨(Lawrence H. Davison)이었다.

나는 18년 만에 D. H. 로렌스의 새로운 중편소설을 읽으며 감탄 또 감탄한다. 올더스 헉슬리가 로렌스를 일컬어 ‘천재 예술가’ 운운한 것은 전혀 빈말이 아니다. D. H. 로렌스 소설선 『처녀와 집시』(김영무 옮김, 창작과비평사, 1997)의 표제작은 적어도 다섯 번 더 읽을 가치가 있다. 이 소설은 「목사의 딸들」의 새 버전이다.

「처녀와 집시」에도 목사의 두 딸이 등장한다. 언니 루씰은 “너무나 생각이 깊고 책임감이 강했다.” 동생 “이베트는 노련하고 나이 많은 사람의 연륜과 지혜를 언제나 능가하는 젊은이의 연륜과 지혜를 지니고 있었다.” 루씰과 이베트 자매는 젊은 놈팡이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간 엄마를 끝까지 편든다. “엄마가 들었으면 뭐라고 했을까?”(루씰)

‘처녀’ 이베트가 손을 씻으러 ‘집시’ 조우의 포장마차 안에 들어갔다면, 「처녀와 집시」는 쌔고 쌘 통속소설에 그쳤을 거다. 그런 작품이라면, D. H. 로렌스는 폐기처분하거나 그의 방식대로 처음부터 다시 썼으리라. ‘처녀’와 ‘집시’가 집시의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나타난 커플은 로렌스의 개인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 불륜 커플의 남자 찰스 이스트우드 대령은 D. H. 로렌스 자신으로 봐도 무방하다. 로렌스는 영국 노팅엄셔 이스트우드에서 태어났다. 이혼을 앞둔 불륜 커플의 포쎄트 부인은 로렌스의 아내 프리다 위클리다. 그래서일까. 포쎄트 부인에 대한 로렌스의 ‘해명’은 온정적이다. “그녀는 철저히 도덕적이고 또 도덕적이어서 결국 이혼녀가 된 것이다.”

반면, 루씰과 이베트 자매의 아버지 아서 쎄이웰 목사는 이베트와 교류하는 불륜 커플을 거칠게 비난한다. “계집의 재산으로 먹고 살려고 연상의 계집과 줄행랑을 친 젊은 놈팡이! 또 가정과 자식들을 버린 여자를 놓고 뭐라구! 어디서 배웠기에 별걸 다 정직하다고 하는 구나.” 세 번에 걸친 ‘불어난 강물’에 대한 묘사는 파국의 전조다. 소설의 클라이맥스에서 감동의 물결은 더욱 거세게 몰아친다.

D. H. 로렌스는 탄압받은 대표적인 작가 중 한사람이다. 『무지개』는 펴내자마자 판매금지당하고, 그의 그림을 내건 전시회는 그날로 경찰에 의해 폐쇄되었다. 이는 시대적 한계이기에 앞서 “싱싱한 삶을 믿지 않는” 쎄이웰 가문 사람들 같은 그 시절 속물들의 진정 위대한 예술가에 대한 서툰 시샘은 아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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