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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상영회]160분의 위대한 침묵, 그리고 위로의 이야기 -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공지영

상처는, 넘치는 생명력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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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4일 저녁, 씨네코드 선재. 공지영 작가와 독자들이 ‘위대한 침묵’을 했다. 공지영 작가가 유럽의 수도원을 돌아보며 쓴 여행 에세이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과 카르투지오 수도원의 일상을 담은 영화 「위대한 침묵」은 썩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위대한 침묵, 상영관 속 침묵

기도가 시작되고 다른 수녀님들은 다 각자 자리에 앉았다 일어섰다 기도하고 계시는데 젊고 앳된 수녀님이 천장에서 내려온 줄 하나를 붙들고 서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꼭 벌 받는 하급생 같았다. 그런데 기도의 어느 부분이 끝나자, 어린 수녀님이 그 줄을 잡아당긴다. 그러자 먼 곳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녀님들이 동아줄처럼 붙들고선 줄을 따라 시선을 올려보자 천장에 조그만 구멍이 뚫려 있다. 아까 밖에서 건물 위로 종탑이 있는 걸 봤는데 거기서부터 구멍을 뚫어 줄을 연결해놓은 것이다. 원시적이어서 거짓이 없는 종소리는 멀리멀리 퍼져나간다…….(p.165)

물론 카르투지오 수도원에서는 수도사가 줄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해발 1,300m 알프스의 깊은 계곡, 누구도 쉬이 들여다보지 못했던 고요함의 세계가 스크린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영화 <위대한 침묵>에 담긴 카르투지오 수도원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소란스러운 세상 밖으로 문을 열어 보였다.

지난 2월 24일 저녁, 씨네코드 선재. 공지영 작가와 독자들이 ‘위대한 침묵’을 했다. 공지영 작가가 유럽의 수도원을 돌아보며 쓴 여행 에세이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과 카르투지오 수도원의 일상을 담은 영화 「위대한 침묵」은 썩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이미지는 역시 강렬했다고 고백해야겠다. 책을 다시 읽는 동안 군데군데에서 카르투지오 수도원의 영상들을 되새기곤 했으니까, 멀뚱히 카메라를 바라보던 수도사를 내 맘대로 행간 여기저기에 배치해 놓고 떠올렸으니까 말이다. 영화가 수도원의 일상을 보여 주었다면, 고요한 그곳의 이야기를 공지영 작가의 글은 읽어 주는 듯했다.

위대한 침묵, 그렇게 시작한 영화는 두 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 동안 다문 입술을 떼지 않았다. 그야말로 침묵이었다. 영화관 안에는 우리들의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어찌 보면, 영화는 위대한 침묵을 보여 주었을 뿐 아니라, 우리를 침묵시켰다. 그러니까, 다른 어떤 영화를 볼 때보다 긴장할 수밖에 없었는데, 옆 사람이 침을 꼴깍꼴깍 넘기는 소리, 뱃속이 잠시 진동을 일으키는 소리, 뒤척이면서 옷을 구기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들려왔기 때문이다.

영화 「위대한 침묵」 중 한 장면

영화가 어떤 말도 해 주지 않기 때문에, 관객들은 자연히 스크린을 샅샅이 훑어보게 된다. 수도사가 걷고 있는 복도의 생김새는 어떠한지, 기도실 안에는 무엇이 어떻게 놓여 있는지 절로 주목하게 한다. 카메라는 한 사람을 비출 때도, 클로즈업하지 않고 넓은 풍경 안에 담으면서, 이런 관객들의 눈 쫓음을 부추긴다. 영락없이 수도원에 처음 가 본 사람들이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듯이, 그렇게 영화를 보게 된다.

미사와 기도로 채워지는 수도원의 일상뿐 아니라 카메라는 종종 계절을 거듭할 때마다 몸서리치는 자연의 풍경들을 비춰 준다. 성당 입구에 놓인 성수의 떨림, 눈발의 휘날림, 풀잎이 간신히 머금고 있는 빗방울, 긴 복도에 카펫처럼 늘어져 있는 창가의 햇볕 같은 것. 그것들이 끊임없이 제자리에서 고요히 움직이는 모양을 보고 있노라면, 금욕적이라고 하는 수도사들의 일상이 얼마나 자연의 움직임과 닮아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중간 중간 침묵한 수도사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우기도 하는데, 아주 잠시. 그 얼굴들이 나를 응시할 때, 마치 무언가 깊숙이 숨겨 놓은 죄를 들킨 것처럼 마음이 철렁거렸다. 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얼굴 표정 위에서 느껴지는 그 고요함, 안식, 무색무취함……. 그 얼굴이 그들의 정체를 드러내었다. 그 얼굴빛이 세속인과 다른 수행자임을 밝히고 있었다.

하지만 수도사들은 고독해야 한다는 사실, 호기심 어린 어떤 시선도 용납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 그분들은 어쩌면 교과서적인 친절과 자기조차 미망에 빠져버리게 하는 섣부른 연민을 경계하고 계신 것일 테니까. 생은 혼자 가는 길, 혼자만이 걷고 걸어서 깨달아야만 하는 등산로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헬리콥터를 타고 간들 아무도 그가 산을 정복했다고 말해주지 않듯이, 그건 눈보라와 암벽과 싸워서 무엇보다 자기 앞에 놓인 시간과 싸워서 각자가 가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고독한 일이라는 걸 아시는지도…….(p.97)

몇몇은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혹자는 마음을 바꾸었는지, 다시 용기가 났는지 자리로 되돌아오기도 했다. 여느 때보다 소란스러운 상영회였다고 느낀 까닭은, 아마 그곳에 위대한 침묵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어느 영화관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들, 「위대한 침묵」은 분명, 특별한 체험이었다.

매일매일 감사할 수 있는 법

영화를 보고 난 뒤, 공지영 작가는 감사와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다.

영화가 끝나자, 사람들은 그제야 몸을 크게 풀었다. 침묵의 160분은, 물론 수도사들의 60년 금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자리가 정리되자마자, 객석에서 독자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한 공지영 작가가 무대로 올라왔다. 아무래도 유럽의 수도원을 둘러보고 온 작가님에게는 또 다른 의미가 있었을 터. 과거에 보았던 이미지와 기억들이 영화 컷마다 물씬거렸을지도 모른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은, 가톨릭에 마음을 열지 않았던 그녀가 18년 만에 하느님께로 돌아오게 된 이야기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18년 만에 교회로 갔다. 그리고 18년 동안 흘리지 못해 몸속에 고인 눈물을 그 후로도 오랫동안 쏟았다.

상황이, 고통이, 혼란과 광기가 기적처럼 정리된 것은 물론 아니었다. 나는 아이가 젖을 떼고 이유식을 하듯이 조금씩 조금씩 성서를 공부했고 궁금한 책이란 책은 다 찾아 읽었다. 그러면서 그날 내게 대답한 신이 내가 오해하고 있던 그 찰거머리 같은 그 신이면서 또한 그 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내가 사는 동안 한 번도 내게 올 거라 믿지 않았던 평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평화…… 돈도 명예도 사랑도 내게 주지 못했던 그 귀한 것을 거저 얻게 된 것이었다.(p.16)


이런 그녀였기에, 「위대한 침묵」을 보고 난 후 소감을 묻는 질문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과거와 믿음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현실에서 우리는 이런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녀는 그렇게 고민하고 있었다. “고통이, 시련이, 불행이 꼭 나쁘지 않을 수 있다는 역설이야말로, 고등 종교가 우리에게 주는 신비인 것 같아요. 인간은 먹고, 자고, 성욕을 분출하고 재산을 늘리고, 좋은 학교를 가고 이것에 만족하기에는 너무 지능이 높은 것 같아요. 그것도 중요하지만 종교는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돈과 학벌, 더 크게, 더 많이, 더 높이를 강요하는 세상은 우리에게 만족을 주지 않는다는 걸 알려주죠.

제가 아주 그리스도인 입장에서 얘기할 수도 없고 아닌 척할 수도 없어서 애매한데(웃음), 내게 일어나는 어떤 일도 나를 행복으로 이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나서,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우리보다 높은 존재가 우리를 이끄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따라갈 때 삶이 무척 편해졌어요.

서른한 살 꽃다운 나이에, 돈을 일억 벌어 보기도 했고, 남편도 있었고 아이도 있었지만, 지옥을 헤매는 것 같았어요. 그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물질, 명예 이런 것들이 사람이 ?복해지는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걸 체험한 거죠. 그런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알고부터는 독자들과도 더 많이 만나고, 훨씬 자유로워졌어요.”


새해 소망을 묻는 독자에게, 공지영 작가는, 하루하루 즐거울 수 있는 비법(?)을 알려 주기도 했다. 그것은 바로, 감사하는 것이다.

“오늘이 정말 감사하고, 하루하루가 즐거워요. 이건 한 가지 비결인데요. 서른한 살부터 출세해 살았지만, 한 번도 감사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어느 날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보니, 감사했던 걸 말하려니까 너무 긴 거예요. 감사하려고 해도, 할 말이 없었어요. 그래서 ‘오늘 전쟁이 안 나서 감사합니다. 애들이 오늘도 무사하네요.(웃음) 감사합니다.’ 이렇게 억지로 시작했던 것이었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석 달 참고 하니까, 요즘은 정말 감사한 일 투성이에요.

제가 기도하는데 매일 똑같은 소리만 하고 있는 거예요. 명색이 작가인데, 창의성 있게 만들어 주셨는데, 만날 같은 기도하기가 마음에 걸려서 며칠 전부터는 청원 기도를 안 하고, 내내 감사 기도만 했어요. 오늘도 여러분들, 많이 지루하셨을 텐데, 침묵 지키시느라 애써주셔서 감사합니다.(웃음) 나쁜 일도 일어나고 있지만, 여러 가지 감사할 일이 많아, 행복하고 기쁜 밤입니다.(웃음)”


독자들은 상영회가 끝난 늦은 시간에도, 진지하게 저자와의 질의응답에 참여했다.

침묵, 그것은 말을 참는 것이 아니라 겸손한 태도일 테다. 욕심, 열망, 마음에 들끓는 것을 내려놓을 때야만이 온전히 침묵할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고 입만 다물고 있는 상태라면, 우리는 이내 숨을 간신히 참고 있었던 것처럼 말을 토해낼 것이다. 그러므로 ‘위대한 침묵’은 오래 참음, 인내라기보다는 참된 자유에 가깝다. 이러한 침묵을 갖기 위해서는 마음의 고요가 우선이다.

말하고 있지 않는 순간에도 내 마음은 끊임없이 제가 원하는 것을 외쳐 대고 요구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주변에 입술을 꾹 다물고 있는 사람 속에도, 어떤 마음은 뭔가 갖고 싶은 것을 외치고 있을지 모르고, 누군가의 마음은 외롭다고, 고독하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 독자가, 공지영 작가에게 물었다. 언제 외롭고, 외로울 땐 어떻게 하느냐고.

“제가 외로움을 무척 많이 타는 사람이라, 어떨 때는 부끄러워요. 잘 놀다가 저녁에 친구가 헤어지자고 하면,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은 사람이었는데(웃음), 어느 날 그 외로움이 박살이 나는 꼴을 봤어요. 더 밑으로 내려갈 수 없을 정도로 외로웠어요. 그리고 그날 이후로 한번도 외로웠던 적이 없어요.

최근에 아이들 때문에 속상한 일이 있었는데, 의논할 사람이 없어서 뼈저린 외로움을 느꼈어요. 그때 이렇게 생각했어요. ‘할 수 없지, 뭐. 내가 고민한다고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우선 잠이나 자고. 기도나 열심히 하자.’ 이렇게 했더니 지나갔어요.(웃음)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성인이 있는데, 성인의 모자(母子)를 보면서 위안을 얻어요. 그 어머니가 성녀예요. 아들은 방탕한 아들이었고, 어머니가 성녀였으니까 오죽 기도를 많이 했겠어요. 18년 기도했더니, 아들이 돌아왔거든요. 제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저는 한 25년 기도하면 되지 않을까(웃음),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상처는, 넘치는 생명력의 흔적

솔직하게 응대해 주는 작가에게 독자들은 조심스럽게 상처에 대한 질문을 꺼냈다.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등의 에세이를 발간하고, 유독 고민을 들고 오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작가는 독자들이 내보인 그들의 상처에 씩씩하게 위로의 말들을 건네주었고, 자신의 상처를 물어 오는 질문에도 담담하게 대답해 주었다. 공지영 작가는 “상처는, 넘치는 생명력의 흔적”이라고 말했다.

“저도 상처 많이 받았죠. 애기 볼을 꼬집으면 자국이 날까요, 할머니 볼을 꼬집으면 자국이 날까요. 애기 볼만 빨갛게 부어오르겠죠. 새싹은 조금만 만져도 손톱자국 나는데, 낙엽은 부스러져요. 상처를 많이 받는다는 것은, 젊고 생명력이 있다는 소리예요. ‘아, 나는 아직 젊구나. 생명력이 넘쳐서 그렇구나.’ 이렇게 생각해야 돼요.

‘난 별로 상처 안 받아.’ 하는 친구가 있다면 ‘아, 쟤는 다됐군.’ 이러면 될 것 같아요.(웃음) 제가 힘든 시간을 견디는 데 있어서, 인생은 한 번뿐이고 나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던 것이 큰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하면 저 사람이 날 괴롭히는 데 놀아날 시간이 없죠. 그렇게 나 자신을 생산적이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려고 노력한 것 같아요.”


결혼은 무엇인 것 같은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수많은 미혼 여성들에게 조언을 해 달라는 독자의 질문도 있었다.

“딸에게도 고양이들 데리고 혼자 살라고 말해요. 우리에게 열 번쯤의 생이 허락된다면, 결혼도 해보고, 수도원도 들어가 보고, 바람둥이로도 살아 보고 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우리에게 딱 한 번의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이죠.(웃음) 뭐든 선택을 한 것에 최선의 노력을 하고, 만약 아닌 것 같으면, ‘잘못 선택했구나’ 하고 경로를 바꿀 수 있는 유연함이 필요한 것 같아요.

결혼이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책에서 이런 구절을 봤어요.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너 자신과 진정 사랑에 빠져 봐야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사람을 만나 서로 의존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가난이란, 무엇을 가졌느냐 갖지 않았느냐의 문제가 아니에요. 노숙자도 부자일 수 있고, 이건희도 가난할 수 있는 거죠. 가난의 기준이란 물질에 집착하고 있느냐 아닌가의 문제예요. 나는 얼마나 가난한가 생각해 봤더니, 저는 가난하지 않더라고요.

순결에 대해서 어떤 신부님이 말씀하시길, ‘순결이란 누군가와 자고 안 자고의 문제가 아니라, 피조물에게 집착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라고 하시더라고요. 결혼이란 제가 생각하기에는, 공동체를 새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이분들이 이 산속에 들어오기 전에, ‘어떤 수도자가 날 행복하게 해줄 거야.’ 이런 기대하고 들어온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이런 게 결혼의 비밀이 아닐까 싶어요.”


질의응답을 마치고 사인회가 이어졌다.

평소, 독자들에게 책을 많이 소개해 주는 공지영 작가에게 책 선정에 관한 질문도 이어졌다. 어떻게 좋은 책을 고를 수 있느냐는 질문에, 저자는 “많이 읽어 본 독자가 좋은 책을 고른다.”고 답변했다.

“옷 잘 사는 친구를 보면, 걔는 탁 보기만 해도 예쁜 옷을 골라내지 않아요? 그런 친구는 예전에 옷을 많이 사서 망쳐 본 친구예요.(웃음) 연애도 고등학교 때부터 선생님 눈을 피해서 열심히 한 친구들이 잘하고, 책도 부지런히 사다 읽는 친구들이 잘 고르죠. 저는 개인적으로 MD들의 추천을 많이 봐요. 아무래도 전문가들이 골라주는 책이니까요.

악서는 없어요. 이 세상에 빛과 어둠이 있고, 먼지가 더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도 이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 중의 하나일 거고요. 깨끗한 마루와 진창을 같이 보지 않으면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없을 거예요. 지금처럼 잘 차려입은 저의 모습과, 눈곱도 안 떼고 아침부터 소리 지르는 제 모습을 함께 껴안는 것이 좋은 작가 되는 길뿐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이고, 사랑하는 방법이기도 한 것 같아요. 여기 있는 신부님들도 불 꺼지면, 혼자 욕을 할 수도 있고요.(웃음) 맛있는 과자를 몰래 꺼내 먹으면서 킬킬거릴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을 실망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껴안아 줄 때 남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저 젊은이들의 앞날이 밝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세상은 수도원이 아닌 것이다. 나 역시 다시 젊어지고 싶지는 않다. 젊다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형벌이라고 나는 아직도 주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너무나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원칙과,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 우리가 택할 길은 몇 개 안 된다는 현실과의 괴리가 괴로운 것이다. 하느님 품에 안기는 날까지 우리는 방황하리라, 라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노트에 적어가지고 다니던 사춘기가 떠올랐다. 아니 한술 더 떠 괴테는 "모든 인간은 그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고 『파우스트』에서 쓰기도 했다. 여기 모인 젊은이들은 아마도 노력하는 이들일 것이므로 더 방황할지도 모른다. 그걸 생각하니, 기도가 시작되고 음악이 울려 퍼지는데 머릿속으로 기도는 하나도 안 떠오르고 괜히 막막해졌다. 성당 밖에는 겨울 밤을 타고 내리는 빗소리, 그리고 성당 안에는 고운 화음의 기타 소리. 노란 촛불은 혼자서 타오르고, 모여 앉은 젊은이들은 제각기 자기 속에 침잠해 있다.(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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