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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강연회] 장안농장 류근모 농부, 명품 상추 천기누설 - 『상추 CEO』 류근모

내일 지진이 나도 상추를 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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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서울 신촌, 상추 냄새 폴폴 날립니다. 커피 향 탈탈 지우고 찾아간 자리, ‘『상추 CEO』(류근모 지음 | 지식공간 펴냄) 저자 강연회’. 농사를 천직이라고 믿으며, 정말 농사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류근모 농부를 만났습니다.

“우리들의 한 끼 밥상을 위해 온 우주가 동원된다는 말이 있다. 햇빛과 바람과 비가 협력해 곡식과 채소를 키워냈다. 촉촉한 봄비와 여름의 천둥번개, 초가을의 태풍까지 대자연의 사랑이 있었고 그 작업내용은 우리가 먹는 쌀 한 톨 한 톨에 새겨져 있는 것 아닌가? 거기에다 여름내 땀 흘려 일한 농부와 바닷바람 맞으며 일한 어부의 정성이 이 모든 것을 있게 했다. 도시에 사는 우리는 너무 자주 그들의 수고를 잊는다.” (한겨레 칼럼 / 박어진 「한끼 밥상에 동원된 우주」 중에서)

시티 키드 앞에 밥이 놓입니다. 흠, 쩝, 입맛을 다십니다. 밥맛 다지는 소년에게, 이런 말씀 똑 떨어집니다. “이 밥을 만들기 위해 땅, 햇빛, 바람은 물론, 농부가 얼마나 고생한 줄 아니?” 소년, 아주 초큼 잠시 그것들 떠올리지만, 먹을거리 앞에 놓고 제사 지낼 리는 만무. 소년 입은 그저 주둥이, 냠냠, “아, 맛있다, 밥맛 조오타~” 할아버지가 농부였던 시티 키드에게도 쉬이 들어오지 않던 소리. 정말 도시에 사는 우리는 너무 자주 그들의 수고를 잊고 사나 봅니다.

그래도 휴~ 다행인 것 같아요. 영영 그 수고와 고마움을 너무 자주 잊고 살 팔자는 아니었던 바. 소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아니지만 한 끼 밥상에 동원된 우주를 종종 생각합니다. 한 끼 밥상에 감동하고 싶고, 그 밥상을 차려준 농부를 비롯한 우주에 고맙고, 내 한 끼 밥상으로 연결된 이 세계의 경이로움을 느끼고. 그렇게 더디지만 조금씩. 짜잔~

“먹는 것이 곧 사람이다.” 『프랑스 스타일』의 저자 미레유 길리아노, 말합니다. “네~ 저 여기 있어요~. 아니, 잘 듣고 있어요.” 소년에서 청년이 된 자의 바람. 주둥이에서 입이 되고 싶어라. 이젠 누군가를 알기 위해 그 사람이 먹는 것도 흘깃흘깃. 어떤 재료와 어떤 땅에서 자란, 농부의 어떤 마음을 담은 것인지, 알고 싶어요. ‘왜 점점 나이 처먹으면서 까칠해지느냐?’고도 하지만, 우리 이젠 아무 음식 먹기 싫잖아요. 그렇잖아요. 아니, 먹으면 안 되잖아요. 괜히 먹자고 그랬어. 먹지 말걸 그랬어. 뭘 먹어야 돼…….(들썩들썩)

(뽀로롱~) 농부가 정성 들여 가꿔 온 우주가 깃든 먹을거리! 요즘 M본부의 드라마 <파스타>에 빠진 마음 같아서야, “쉐엡~” 하며 최현욱(이선균) 셰프를 부르고도 싶었지만, 여기 이 말에 꽂혔어요. “우리는 장안농장이다. 장안농장,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나라 농업의 미래를 만드는 일이다.” 아니, 이 어찌 거만 오만 방만(방자 아냐? -.-;)이란 말이오, 라고 누군가는 버럭버럭할지 몰라도, 또 누구에겐 자신감으로 비쳤지요. 뉴규? 바로 저. 궁금했습니다. 어떤 농부의 마음이기에, 농업의 미래를 들먹일까, 저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커피를 만들다 말고, 달려갔습니다. 헉헉. 지난 18일 서울 신촌, 상추 냄새 폴폴 날립니다. 커피 향 탈탈 지우고 찾아간 자리, ‘『상추 CEO』(류근모 지음 | 지식공간 펴냄) 저자 강연회’. 농사를 천직이라고 믿으며, 정말 농사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류근모 농부를 만났습니다. “하루 종일 일에 묻혀 살아도 쌈 채소가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하루의 피곤은 다 잊는다.”(p.213)고 말하던 양반. 에이 설마, 아무리 하나에 미쳤기로서니, 저런 상투적인 말을 자신이 쓴 책에 내뱉다니. 그래, 속단하지 말자. 그저 레토릭(수사)에 불과할지도 몰라. 두 눈 부릅뜨고, 양 귀 바짝 세우고, 행여나 야바위놀음에 속지 말기. 아자!

그렇게 장안농장산 양배추즙 한잔 쭉 마시고, ‘상추 CEO’ 류근모 농부의 말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저 첫 다짐(?), 어떻게 됐느냐고요? 에이, 농담한 거 갖고 뭘 그러세요. 그저 정신 차리고 듣기 위한 워밍업으로 봐 주세요. 헤헤.

울고 넘는 박달재

지금은 전도유망하고 잘나가는 장안농장(www.ssamnhub.com)에도, 농부 류근모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전략적인 귀농? 아름다운 귀농? 천만에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갈 데가 없어서 시골로 갔습니다.” 국가 부도 사태였던 국제통화기금(IMF) 체제가 되면서, 그도 졸지에 길바닥으로 내쫓겼어요. “제 나이 마흔 때였습니다. 조경 사업 실패로 신용불량자가 되어 쫓기다시피 충주로 ?농했습니다. 손에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고, 생활고에 등을 떠밀려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초기 자금은 어렵사리 융자받은 300만 원이 전부였습니다.”(p.4)

그 300만 원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이 땅의 ‘신용불량자’ 낙인은, 루저와 마찬가지죠. 사회에서 튕겨져나간 느낌. 누구도 반겨주지 않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심한 말로, 쓰레기 취급까지 받는, 1등만 기억하는 아주 더러운 세상~. 아차, 말이 빗나갔네요. 미안. ^^;

그렇게 300만 원이라도 융자받으려고 했으나, 대부분 이 땅의 은행이 그렇듯 문전 박대. 공공성이나 금융 ‘기관’으로서의 위치는 나 몰라라 하고, 금융 ‘회사’가 되어 ‘돈 장사질’에 여념이 없게 된 어떤 은행(들). “은행들이 그때는 그렇게 문전 박대를 하더니, 지금은 집 앞에 찾아와요. 지금도 거래 안 하는 은행이 하나 있어요. 그 은행에 갔는데, 신용 상태도 안 되고 재산도 없으니, 창구 아가씨가 무조건 안 된대요. 300만 원이 꼭 필요했는데. 그때 다짐했어요. 살아 있는 동안 이 은행과 절대 거래를 않겠다. 망하게 할 수는 없겠지만, 한 300억 손해는 보게 하겠다. 작년에 그 은행 지점장이 찾아왔는데, 자기가 그때 지점장이었으면 빌려 줬을 거래요.(웃음)”

귀농? 환상 속의 그대!

“왜 그런 말씀을 하냐면, 귀농을 하면 지원 제도가 많은 것 같아도 막상 쉽게 주는 법이 없고, 크게 도움도 안 돼요. 농사하면서 망하는 순위가 있습니다. 상 많이 받고, 방송 많이 타고, 상패가 3개를 넘으면, 강연을 많이 다니기 시작하면, 정치 기웃하면, 정부 지원 많이 받으면 망합니다.(웃음) 저도 망할 징조가 보이죠? 어쨌든 저는 정부 지원은 거의 안 받았어요.”

“농사 때문에 알려진 이름인데 농사가 뒷전이라니, 더 이상 강의할 것도 없고, 더 이상 취재할 것도 없을 뿐 아니라 이제는 농사도 다시 짓기 힘들다. 손쉽게 돈 버는 방법과 명예를 누렸던 사람이 다시 흙을 만지면서 살 수 있겠는가. 나는 수많은 농업 선배들이 어떻게 자신을 망쳤는지 지켜봤다. 정치에 열중하다가, 공짜를 바라다가 끝내 다시 돌아오지 못할 삼천포로 빠져버린 사람들을 숱하게 보았다.”(p.223)

어쨌든 그는 어쩔 수 없이 귀농을 하게 됐습니다. 귀농을 결정한 것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어디로든 가야 했으니까. 올해, 십몇 년 만에야 빚을 다 갚게 될 것 같다고 말합니다. 아니, 스타 농부인 그가 이제야 빚을 다 갚게 되다니 싶지만, 이런 말 던집니다. “상추 팔아서 무슨 떼돈을 받겠습니까. 농업 하면 돈 안 남습니다.”

물론 이는 농업이나 농부라는 직업을 폄하하는 것, 아니죠. 어쩌면 이 땅의 농업 현실입니다. 억대를 번다는 농부들의 이야기가 간간히 미디어를 타고 흐르지만, 그건 극소수의, 혹은 미디어가 과대 포장한 낚시질에 가깝습니다. 그런 농업 현실에도 불구, 류 농부의 농업을 향한 무한 애정은 DNA에 박혀있지요. “농업만큼 신천지인 분야도 드물다. 그렇다면 농업을 부흥시킬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 바로 에디슨과 같은 엉뚱한 아이디어이다. 끊임없이 호기심을 갖고,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찾아야 농업을 미래의 각광받는 산업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p.22)


다시 돌아와, 그는 정말 시골로 가기 싫었답니다. “책에 쓰진 않았지만. 시골로 간 그날따라 비가 왔어요. 어제 중소기업 사장이 자살했다는데, 충분히 이해가 돼요. 정말 밑바닥까지 갔어요. 정말 어려우면 전화할 데가 없습니다. 자살을 꿈꿀 정도가 되면 전화할 데는커녕 1만 원 꾸기도 쉽지 않아요. 전화해서 5만 원 빌릴 데 있으면, 어려운 분 아니에요. 제가 겪어 보니까 그렇더라고요.”

그렇게 바닥에서 헤매던 어느 해 추석 무렵, 큰집에 갔던 일도 꺼냅니다. 주머니에 있던 2만 원으로 큰집에 갖다 줄 닭을 샀더니 남은 돈 2천 원. “주머니에 누가 준 10달러짜리 하나 있었어요. 주유소에 가서 10달러어치 넣어 달라니 안 넣어 주더라고요.(웃음) 큰집의 형수가 꼬맹이 과자 먹으라고 3만 원을 주셨어요. 그걸로 기름을 넣고 돌아가는데, 정말 비참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잘못 살았나 싶어서. 그런 과정을 겪으니 강연暫나 방송에는 잘 안 나갑니다. 일요일에 TV서 성공 프로를 많이 하는데,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요. 엄한 놈 또 잡는구나. 성공했다고 나오는 농사짓는 사람 때문에, 도시 사람들이 진짜 어려운 농촌을 진짜 어렵다고 여기질 않아요.”

회사에서 잘리면 귀농하겠다? 류 농부의 대답은, “턱도 없어요.” 귀농해서 농사짓는 것의 반(50%)만 노력해도 2년 내 두 단계 이상 진급할 수 있을 거랍니다. “농사짓는 사람은 밥 먹고 양치질할 시간도 없어요. 옛날 농촌 드라마를 보면, (극중 인물의) 이빨이 왜 그렇게 하얀지 모르겠어요.(웃음)”

그래도 귀농을 하겠다면

“체력을 충분히 키워 둬야 합니다. 하프 마라톤은 룰루랄라 하면서 뛸 정도가 돼야 하고요, 잠은 5시간을 넘어선 안 되고, 책은 한 달에 20권쯤 읽어야 합니다. 대충 농사만 지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요? 턱도 없습니다. 다만 이런 분은 귀농하셔도 됩니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땅이 크거나, 한 달에 500만 원 이상 나와서 취미로 하겠다. 직장 생활하면서 귀농 강좌 가 보고 주말 농장 한다고 귀농 준비가 됐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농사야말로 경쟁이 정말로 심합니다.”

그는 체력의 중요성을 절감했습니다. “오전 9시 충주에서 출발해 서울에 올라가 명일동부터 수십 군데를 돌아다니면 다음날 아침 7시에 다시 충주에 도착했어요. 그 생활을 2년 가까이 했습니다. 어떨 때는 출발한 기억은 나는데,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이 안 나기도 해요. 체력이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정말 어렵습니다.”

“농사꾼은 농사와 관련된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손이 100개여도 모자라고, 임기응변이 100가지여도 부족하다. 농사는 막노동이 아니다. (…) 어떤 직종보다 더 많은 노력과 더 많은 경험과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이런 속사정을 모르고 귀농을 마치 드라마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pp.206~207)

그러다 혹시 농사가 망하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친척과 친구들이랍니다. 농사가 잘 안돼도 고생한 것이 너무 아까워서라도 버리질 못하기 때문이란다. 어떻게든 땀의 결실이니까, 주변의 친척이나 친구에게 줄 수밖에 없어서 농사가 망하면 주변 사람들이 신난다나 뭐라나.

“돈이 아주 많이 벌리는 농업은 귀농해서 할 수 없어요. 왜냐면 자본이 많이 들어가야 하니까. 자본이 들어가야만 부가가치가 높은 농업을 할 수 있습니다. 시골로 내려가서 어떤 농사를 지을 것인가 고민이 많았는데, 난들 이런 농사를 짓고 싶었겠습니까. 형편만 되면 과수원해서 말 타고 다니면서, 친구들한테 사과 좀 먹어 봐, 이랬지. 누군들 상추 하고 싶어서 했겠어요.(웃음)”

상추, 내 인생!

말은 그러면서, 류 농부에겐 ‘상추 작렬’입니다. ‘완소상.’(완전 소중한 상추) “생명이 있는 것들은 모두 신기하지만 내게는 상추만큼 신비로운 것도 없다. 봄에 너무 일찍 심으면 일조량이 부족하고, 너무 늦게 심으면 뻣뻣해진다. 또, 하나의 뿌리에서 자란 상추라도 부위에 따라서 맛이 다른데 북쪽보다는 남쪽을 향해 있는 상추들이 햇빛을 보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더 깊은맛이 난다. 즉 같은 상추라도 수확 시기와 부위에 따라 맛이 다르다.”(p.79)

상추를 만난 건 우연이었습니다. “철학이 있어서 한 거 아니에요. 먹고살려고. 돈이 없으니까, 자금 회전이 빠른 걸로 해야 돼. 영업도 잘할 자신이 없고. 전 제 능력을 압니다. 사실 명절 전후가 제일 곤혹스러워요. 이럴 땐, 돈 안 들어가는 걸 잘해야 하잖아요. 명절 잘 보내셔요, 같은 거. 이것도 못하고, 춤, 노래, 술, 담배 아무것도 못해요. 영업 잘하면 뭐 하러 시골까지 가서 상추를 심었겠어요.”

“새로 농업에 뛰어들기 위해 당시 내가 생각했던 것은 다음의 세 가지이다. 첫째, 초기 자본이 적어야 한다. 둘째, 수확 기간이 짧아야 한다. 셋째, 자금 회전이 빨라야 한다. 그런 농사가 뭘까? 답은 의외로 빨리 찾았다. 이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채울 수 있는 것은 채소밖에 없었다.”(p.27)

그에게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은, 농사와 상추입니다. 들입다 파고들다 보니, 상추에 관한 한 박사가 되고 있습니다. 각종 데이터도 축적하게 되는데, 가령 이렇습니다. 소득 수준이 높고 학력이 높을수록 크기가 작은 상추를 선호한다는군요. 요즘처럼 올림픽 외에는 짜증 낼 일이 많고 엄한 시절에는 큰 상추가 대세라네요. 남부 지방에선 컬러풀한 상추는 또 잘 안 먹는다고요. 그렇다면, 류 농부가 묻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맛있는 상추는 무엇일까요?~ 허허. 가장 맛있는 상추라, 생각해 보지도 못한 일.

상추 박사는 말합니다. ‘5월 6일~10일 사이 크기 8cm, 무게 4.8g의 남쪽으로 난 상추.’ 쿨럭. 날짜에 크기와 무게에, 방향까지. 그 맛있다는 명품 상추가 한번 먹어 보고 싶어졌어요. “바로 5월 6일 아침 10시 남쪽으로 자란 크기 8cm의 상추 잎으로, 줄기는 두꺼운 것이어야 한다. 바로 이 상추 2잎이 명품 중에서도 최고 명품이다. 물론 이런 결론은 한두 번 재배 경험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백 번 심어보고, 먹어보고, 재배하고, 수확하면서 자연스럽게 답을 찾았다. 그래서 이 최고 명품 상추 1.5kg에 10만 원이라는 가치를 매긴다.”(p.79)


데이터를 찾아라

“대부분의 농사는 객관적 데이터가 없어요. 우깁니다. 맛있다고. 막연하게 얘기하죠. 소비자들도 상추 값은 깎습니다. 농산물 값은 깎지 말아야 합니다. 비싼 옷은 잘도 사면서. 외국에서 들여온 가장 좋은 농산물도 우리나라의 가장 질 낮은 농산물보다 좋지 않습니다. 농산물 자체가 전혀 다르거든요. 작년에 미국 산타바바라 양상추가 500만 톤 수입됐는데, 패스트푸드점에 다 깔렸습니다. 양상추가 아주 연해요. 충주에서 서울로 배송돼도 별로인데, 캘리포니아에서 여기까지 오면. 어휴.”

류 농부는 데이터, 표준화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감으로 농사짓고, 옛날에 했던 것으로 10년이고 수십 년이고 우려먹는 것을 경계하자고 합니다. “농사를 짓기 위해 고수들을 찾아갔는데, 많은 분들이 그런 식으로 해요.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농업은 농업 외의 것이랑 합쳐져야 시너지가 커집니다. 김영모 빵집이나 김연아, 유명 디자이너, 리라 초등학교 학생회장을 불러서 농업 교육을 해야 하고, 전혀 다른 분야의 이야기를 들어야 농업이 살아납니다. 자기 조직 안에서 안 된다고 하면 다른 조직의 이야기를 들어야 해요. 그건 분명합니다.”

전국 방방곡곡 농업의 고수를 찾아다니고 연구한 끝에 상추를 시작하고 그만의 색깔을 입혀서 지내온 세월. 지난해 115억 원의 매출을 올린 상추의 달인. 물론 손댄 농사 모두가 성공한 것은 아니죠. 야구로 치면 3할대도 못 치고, 사장감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도 많답니다. 직원이 현재 212명인데, 50명 안팎의 사장이면 딱 좋을 것 같다고 말하는 그. 그가 믿고 자신 있는 것은 오로지 품질. “술 마시고 접대하고 아부하는 일은 체질에 안 맞았지만 품질만큼은 인정받을 자신이 있었다.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p.126)

아마도 그 역시 이런 과정을 거쳤을 겁니다. 필라멘트 재료를 찾기 위해 1만 번의 실험을 거듭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끝내 일본 대나무에서 답을 찾아낸 에디슨이 했다는 이 말처럼. “나는 1만 번을 실패한 것이 아니라, 필라멘트의 재료로 적합하지 않은 1만 가지 재료를 발견한 것이다.”(p.14)

내일 지진이 나도 상추를 심겠다

철학자 스피노자의 말을 살짝 바꿔 준 류 농부의 다짐은, 한 공간에서 함께 숨 쉬는 동안 ‘진심’이라는 생각을 들게 만들더군요. 상추에 관해서라면, 독보적인 존재가 된 그를 만든 것은 남다른 생각과 상추를 향한 무한애정 때문이 아닐까도 싶고요. “스타벅스에서 보면 웃기겠지만, 내 경쟁 상대는 스타벅스다.”라고 말하는 그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겁니다.

뭣보다 그는 고객에게 돈을 받아 상추만 건네준 것이 아닙니다. 그는 고객에게 이야기를, 혹은 감동도 함께 안겨 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마케팅 기법을 묻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상품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감동을 기억한다. (…) ‘좋은 상품을 만들자.’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세상에는 좋은 상품이 넘쳐난다. 제품 만드는 기술은 금세 공유되므로 따라잡기는 시간문제이다. 좋은 상품만으로는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 좋은 상품을 넘어 감동을 주는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유일한 마케팅 비법이다.”(pp.144~145)

물론, 비법이나 비기가 모든 성공을 보장하진 않지요. “문제는 비법이 아니다. 비법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도 이를 자기 것으로 소화해야 비로소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얻는 것이지 그저 방법을 안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p.168)

류 농부는 그런 고객과의 교감을 ‘예술 경영’이라고 일컫습니다. ‘사걀의 그림을 보고 사람들이 감동을 받는 것처럼 쌈 채소를 드시는 분들에게 감동을 선사하자.’ 그의 예술 경영은 그렇게 대단한 것, 아닙니다.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작업장을 갤러리로 바꿔서 부르고, 내부 시설도 갤러리처럼 깔끔하게 정돈하고 항상 청결하도록 신경을 쓰며, 장안농장 갤러리에서 일하는 사람은 당연히 예술가가 되어 쌈 채소가 아닌 작품을 만드는 풍경. 상상 되세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품을 만든다는 심정으로 브로콜리를 세심하게 잘라내고, 옥에 티를 제거하는 심정으로 상추의 끝을 섬세하게 다듬는다. 예술성이 부족한 작품을 일일이 골라내고, 포장조차도 예쁘고 정성스럽게 마무리한다. 예술가의 집념과 솜씨가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며, 이렇게 탄생한 각각의 작품에는 대표 예술가(작업자)의 이름을 적는다.”(p.160)

스스로 내건 약속이자 철칙에 따라서. “나는 이윤을 따르는 장사꾼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장사꾼이 되고 싶다.”(p.133) 네, 맞습니다. 조선 후기의 거상 임상옥(MBC 드라마 <상도>의 실존인물)이 했던 말이지요. 장사란 이익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


마음이 만드는 맛이 있다

커피를 만드는 사람인 저는, 류 농부의 이 말을 믿고 신뢰합니다. 커피 또한 그러하기에. “작업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채소의 맛이 달라진다. 기분 나쁜 상태로 일을 하면 그 마음이 채소에 전달되어 맛도, 감동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 감동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채소를 아무리 꼼꼼히 살펴도 특별한 징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해서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반드시 정성을 들인 만큼 감동은 전달된다.”(p.160)

마음 따위가 농사나 커피에 뭔 상관이냐고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오~ No. 우리가 먹고 마시는 모든 것들에는 서두에 말했듯, 우주의 모든 기가 삼투하기 마련이지요. 농사를 짓거나 음식이나 커피를 만드는 것 모두, 그것을 다루는 사람의 ‘성품’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류 농부가 협력 농장을 심사할 때 가장 중시하는 항목이 ‘성품’이라고 했듯 말입니다.

“농부에게도 성품이 중요하다. 농부가 성품이 좋아야 채소 맛도 좋아지기 때문. 나쁜 마음으로 기른 채소는 질기고 맛이 없다. 이런 채소 아무리 먹어봐야 몸에 좋을 리가 없다. 채소를 그리는 사람이 너그럽고 기쁜 마음을 지닐 때 그 채소 역시 건강에도 좋고 맛도 좋은 채소로 자란다. (…) 순간순간 유혹을 견딜 수 있는 힘은 바로 성품에 달렸다. 성품이 바른 농부는 당장 내일 쫄쫄 굶더라도 양심을 지킨다.”(p.172)

그의 자기 확인은 왠지 믿음이 갑니다. “나는 죽으나 사나 농부이다.”(p.225) 세간의 기준에서 그는 성공 농업인이지만, 농부로서 살아 있음을 느끼는 그야말로 진정한 챔피언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 당장 이 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어제에 안주하는 것도 성공이 아니요, 걱정 없이 내일을 안심하며 사는 것도 성공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면 그것이 곧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 지나간 시간에 연연하지 않고, 불안한 내일 앞에서 주저앉지 않으면서 지금 이 순간에 나를 기쁘게 하는, 내가 즐길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성공이다.”(pp.229~230)

참, 인상적이었던 것, 또 한 가지. 책에 대한 그의 지론. “농부가 책을 읽으면 상추가 잘 자란다.” “농부가 공부를 하면 상추가 잘 자라느냐고? 정말 잘 자란다.” 없는 시간을 짜내 책을 읽고 공부한 것이 오늘날의 장안농장을 일군 것 아닐까요.

류 농부의 이야기가 마무리된 시점, 질의와 응답이 이어졌습니다.

어려운 결정을 하는 순간이 많을 텐데, 어떤 걸 기준으로 하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꼭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추천 도서가 있다면.

“글을 잘 쓰는 비법이라고 봤다.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이라더라. 특별한 책을 한 권 읽는 것보다 많은 책을 읽으면 좋지 않을까. 자신에게 맞는 책을 만날 수 있을 거다.

경영과 관련해서 결정할 때, 속 터질 때가 많다.(웃음) 빤한 거짓말을 알고도 넘어갈 때도 있고. 요즘은 원칙이 바뀌었다. 법대로 하자. 원칙대로 바른길로 가자. 회사를 하다 보면 가장 어려운 것이 친척을 쓰면 안 된다. 친척은 잘해준 것은 다 잊고 서운한 것만 기억한다.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잘해줘도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고, 그 직원이 그만두면 원수로 돌변하기도 한다. 떳떳하게 해야 한다. 그 직원이 나가면, 조그만 약점만 있어도 10년을 우려먹는다. 비용은 들어도 바른길로 가려고 애를 쓰고 있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이 있으면 열정을 갖고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고향에서 감귤 판매를 하고 있다. 소득 수준 혹은 지역별로 상추를 좋아하는 종류가 다르다고 했는데, 어떤 방법으로 뽑아낼 수 있는지. 오늘 얘기를 들어보니, 로열 마케팅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데, 프리미엄을 어떻게 잘 구축했는지 알고 싶다.

“로열 마케팅. 말은 좋은데,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한 건 아니다. 내 농사가 잘되면 다른 사람 농사는 안 됐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다. 내 농사가 잘되면 다른 사람의 농사는 더 잘됐거든. 공짜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500봉지를 나눠 줘 봤는데, 제대로 나눠 주지도 못했다. 근처에 가면 쳐다보지도 않더라.” (그는 책에서도 이렇게 썼다. “첫 번째 공짜 마케팅은 보기 좋게 실패로 돌아갔다. 총 5시간 동안 ‘공짜’를 외치며 돌아다녔으나 2봉지 나눠준 것이 전부였다. 공짜라면 너도나도 손을 내밀 줄 알았으나 쉽게 생각한 내 잘못이었다.”(p.94))

“귤을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지 생각해 보라. 기본적으로 맛이 있어야 한다. 농사는 기본으로, 맛이 중요하다. 기본이 갖춰져야 변칙 공격도 가능하고, 정석을 꿰고 있어야 그다음으로 갈 수 있다. 일단 맛이 있으면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기러기 똥으로 키운 귤. 이렇게 제목을 쓰든지. 이 귤 먹고 아들만 세 명씩 낳은 귤이다. 이래야 된다.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요즘 농업에서도 스토리 만들라고 그러잖나. 자기 것은 자기가 해야 한다. 귤을 어떻게 파느냐, 어떻게 차별화를 하느냐가 중요하다.

내 농업 기술을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다. 표준전과 나눠 준다고 다 우등생 되는 것 아니잖나. 농업 기술을 다 가르쳐 주고 회사에서 노하우를 다 알려 줘도, 연봉 올라가고 표창받는 사람 1~2명이다.”


젊은 사람이 귀농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귀농했다가 실패해서 돌아가는 비율이 90%다. 또 성공하는 90%가 다시 귀농한 90%에서 나온다. 농업이 아무리 힘들다 해도, 힘들지 않은 업종이 어디 있겠나. 한시도 마음이 편한 적이 없었다. 귀농해서 성공하는 게 천 분의 일이라고 하면, 그 ‘일’에 내가 들어가면 되는 거다. 확률은 의미가 없다. 사람들은 도망갈 길부터 만드는 것 같다. 직원한테 얘기하는 것 중의 하나가, 사원은 망하면 다른 회사에 가면 되지만, 사장은 망하면 갈 데가 없다. 사장이 가장 비참할 때가 와이프를 데리고 연대 보증을 서러 갈 때다. 그걸 사원들이 알겠나. 목숨 걸고 하는 거랑 그렇지 않은 거랑 차이가 난다. 사장은 갈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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