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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강연회] 당신의 생각, 정말 당신 겁니까? 확실해요? - 『생각의 좌표』 홍세화

‘내 생각을 내 생각에게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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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8일 저녁 신촌 토즈 아트레온점의 큰 방 하나에서 『생각의 좌표』를 새로 펴낸 홍세화 저자의 강연이 있었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로 잘 알려져 있는 그는 처음에 조그만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떤 평범한 소시민 남자에게 낯선 사람이 찾아와 “당신은 지구를 날려버릴 위력을 가진 폭탄입니다.”라고 말했다. 소시민은 날마다 찾아오는 그 사람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다. 자기는 정말 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낯선 사람은 그마저 주입된 생각이며, 주입된 기억이라 했다. 집요한 낯선 사람의 방문에 지친 소시민은 ‘혹시 내가 정말 폭탄인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말이 스위치가 되어 지구는 폭발했다.

위는 중학교 때 읽은 책 내용이다. 누가 지은 것인지, 어떤 경로로 읽은 것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묘하게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내용이다. 생각이 무엇인지, 진실을 아는 것이 어떤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전달하는 공상과학 소설. 홍세화 저자의 강연을 듣고 돌아오는 내내 이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럼에도 생각을 뒤집어야 하는가, 참혹한 진실을 알아야 하는가.


글쓰기 좀 하시나요?

정말 허접스러운 이유로, 다 읽지도 않은 홍세화 저자의 『생각의 좌표』를 그다지 호의 어린 눈으로 보지 않았다. 띠지에 얼굴이 너무 노골적으로 인쇄됐다는 것, 삽화의 ‘tone and mood’가 약간 오래돼 보인다는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르치려는 듯한 문투. 그런데 강연회에 다녀와서는 홍세화의 가르침이 얼마나 끌리는지를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다. 가르친다는 것, 깜냥이 안 되는 사람들이 하면 우스워지지만 자격 있는 사람에게 그 일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미션일 수 있다. 순식간에 홍세화의 생각이 담긴 『생각의 좌표』에 ‘강추’라는 딱지를 붙이고 싶어졌다.

1월 28일 저녁 신촌 토즈 아트레온점의 큰 방 하나에서 『생각의 좌표』를 새로 펴낸 홍세화 저자의 강연이 있었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로 잘 알려져 있는 그는 처음에 조그만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건 쑥스럽거나 원래 목소리가 작아서가 아니라 그의 화법인 듯했다. 강연 초반에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아, 이분이 전문가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면 실례일까? 하지만 내게 이 생각은 찬사다. 나는 전문적이지 못한 사람이 대중을 모아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것에 그다지 끌리지 않으므로. 저자는 “글 좀 쓰세요.”로 말문을 열었다. “독서는 사람을 풍요롭게 하고, 글쓰기는 사람을 정확하게 합니다. 삶을 풍요로우면서도 정교하게 만들고 싶다면 읽기뿐 아니라 글쓰기도 하세요.” 시간이 없다거나, 글쓰기가 어렵다거나, 나중에 쓰겠다거나 하는 것은 모두가 핑계일 뿐이라 했다. 텔레비전 볼 시간을 반으로 줄이면 되고, 일단 쓰면 점점 쉬워지므로 첫술에 배부를 생각 하지 않아야 하고, 나중은 끝까지 나중일 뿐이라고 그는 잘라 말했다.

그럼 무슨 글을 어떻게 쓸까? 저자에 따르면 사회적 의제에 대한 짧은 글짓기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는 인터넷 토론방 같은 곳에 뜨는 의제들, 예컨대 군가산제, 존엄사, 사형제, 한 자녀 낳기 등에 관한 글을 써보기를 권했다. 단, 자신의 생각을 쓸 것. 생각(견해, 주장)과 이유(배경, 근거, 논거), 예시, 맺음말의 형식으로 일주일에 한 편씩만 쓰면 6개월 후 몰라보게 글 잘 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란다.


당신의 행복은 ‘편함’ 속에만 있나요?

책의 주제에 맞게 ‘생각’ 이야기나 할 일이지, 왜 글쓰기를 이야기하는 걸까, 하는 의문은 금방 풀렸다. 글은 대표적인 생각의 표현 방식이고, 인터넷에서의 글쓰기는 그 자체로 여론이 되기 때문이다. 그가 책을 쓴 이유, 그가 강연하는 이유, 그가 글쓰기를 하라고 하는 이유는 다 일맥상통한다.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싶어서. 그러나 생각을 바꾸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기 때문에, 그에 앞서 생각에 대해 ‘생각’ 좀 해보자고, 제발 당신의 생각이 어디서 왔는지 한 번 생각해 보자고 외치기 위해서인 것이다. 사실은 현장에서 듣는 그의 강연은 외침보다 더 강한 절규였다. 그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나중에는 웅변 같은 느낌으로 변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제공: 김태형

‘내 생각에 대해 내 생각에게 묻는다.’가 이 책이 던지는 유일하고도 무이한 질문이며,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다. 또한 강연의 주제이기도 했다. 왜 생각에 대해 물어야 하나, 라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이고, 생각을 고집하며, 생각에 따라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생각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없죠. 내 생각은 어떤 경로로 내 속으로 들어왔을까, 이걸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은, 생각에 가치관, 세계관이 묻어 있고, 누구나 생각에 따라 삶의 방향을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소리를 낼 것인가, 침묵할 것인가 등등. 생각은 머리 모양이나 옷차림과 달라 남에게 물어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철저히 자신만의 것인 생각에 대해 누구에게 물어볼 수 있을까요? 내 생각에 대해 물어볼 곳은 내 생각밖에 없죠.”

갑자기 의문이 생겼다. ‘삶을 규정하는 내 생각은 과연 나의 주체적인 생각일까? 그 생각에 따라 사는 내 삶은 내가 주인인 온전한 내 삶일까?’ 이렇게 생각하자 자신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한 번뿐인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면, 어쭙잖게 혹은 주도면밀하게 주입된 다른 사람의 생각이라면? ‘당장 내 생각에다 내 생각을 물어봐야겠구나.’

저자는 이런 회의를 한마디 단어로 끝없이 심화시켜 버렸다. ‘경제동물’이라는 단어가 그것이었다. “인문학의 위기는 학문의 위기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자기 삶을 성찰하는 기본적 질문조차 던지지 않고 그저 욕망에 끌려 살아가는 경제동물로 축소된 현실에서 기인합니다. 온통 관심이 소유에만 쏠려 있고, 전인적 인간으로서의 고민은 던져 버리고 사는 것이죠. 경제동물로서 오로지 나와 내 가족, 내 새끼의 편함을 추구하다 보니, 내 편함을 위해 이웃의 불편함을 요구하거나 고통과 불행, 죽음까지도 강제하는 사회가 되어 버렸어요.”

얼핏 극단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솔직히 누군들 저자의 이런 힐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저자가 말했듯이 인간은 근본적으로 편함을 추구한다. 궁극적 관심은 누울 자리를 어떻게 하면 편하게 둘 것인가이다. 그러나 인간은 고립된 채 살지 못하는 사회적 존재이므로, 사랑이나 연대로 표현되는 ‘만남’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그 행복을 위해 불편함을 자발적으로 선택할 줄도 안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편함만을 추구할 것인가, 함께 살기 위해 일정 정도의 불편함을 달게 받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에게 달렸다. 자신의 삶의 최종 평가자는 자신이므로. “강자와 다수의 탐욕에 의해 약자와 소수에게 주어지는 고통에 분노하고, 약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불편함을 선택하며, 그 과정에서 주어지는 참된 만남에서 행복을 찾을 용의는 없는가요?”라고 저자는 질문했다. 대답은?


모피어스의 빨간 알약, 먹고 싶은가요?

그전에 생각할 일은 내 생각이, 내 생각이 된 경로이다. 저자는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면서 누구나 인정하는 주입식 교육의 무서움을 지적했다. 유럽에서 ‘주입식’이라는 말은 대단한 공포라고 했다. “사람 몸에 주사를 주입하듯, 머리에 생각을 주입하다니!”라고 그는 말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면 사람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은 인간과 사회에 대해서입니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죠. 그런데 이런 물음에는 생각이 있을 뿐 정답이 없습니다. 사형 제도에 대한 생각을 묻기 위해 ‘다음 중 사형 제도가 실질적으로 사라진 나라는?’이라는 사지선다형 질문을 던지는 나라에서 어떻게 주체적인 생각이 자랄 수 있겠어요?”라고 했다. 줄 세우기, 대학 서열화를 위해 학문을 끼어 맞추는 형국이라고도 했다. 생각이 아니라 암기로 상위권 대학에 들어가고, 그들이 사회 상층을 차지하는 현실, 그리고 그것이 대물림되는 현실에서 생각이 자라날 여지는 많지 않으며, 우리가 주체적 사고를 하면서 살아갈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고 했다.


홍세화 저자는 숱한 질문을 연이어 던졌다. ‘혹시 나는 생각을 지배당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내가 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계층적 위치는 정확히 어디인가? 민주주의 체제에서 내가 가진 권리를 쓸 때, 나는 내 위치에 상응하는 선택을 하지 않는가? 무엇이 내 처지를 배반하는 선택을 하게 하는가? 왜 소수의 상층이 다수를 지배하는가? 그들은 몸을 지배하는가, 생각을 지배하는가? 무엇이 그들에게 다수의 생각을 지배할 힘을 주었는가?’

당장 정답을 얻는다는 건 좀 섣부를 수도 있을, 많은 생각을 요하는 질문들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질문을 통해서만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가 말했듯이 ‘인간이 생각하는 동물’인지라 생각이 언어로 변화하는 유아기 때 “왜?”라는 질문을 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인데, “나중에 크면 알게 돼. 왜 이렇게 귀찮게 하니? 텔레비전이나 봐.” 등으로 대답하기 일쑤인 부모와 학교와 사회에서 성장하는 우리 아이들이 비판적 시각이나 진실을 보는 눈을 기르기 힘든 것은 번연한 일이다. 의문을 표하고 답을 찾는 대신에 우리 아이들은 잠자는 시간도 줄여 가며 달달 외우는 일을 해야 한다!

많이 공감되고, 다소 충격적이고, 매우 새삼스러운 한 시간 반 동안의 강연. 홍세화 저자는 많은 이야기를 했고, 그걸 다 옮기지 못했거니와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의 책 『생각의 좌표』가 모자란 부분을 채워줄 것이다.

다만 그가 던진 질문, ‘내 생각을 내 생각에게 묻다.’가 매우 심각하고도 절실하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 모두 느끼는 우리 사는 세상의 온갖 부당함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우리는 대개 행복하지 않고 늘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불안의 근본적 원인이 자신에게만 있다고 믿어온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누가 나를 이렇게 불안한 삶을 살게 밀어붙이는가? 이처럼 피 말리는 경쟁은 과연 옳은 것인가? 상위권 대학을 나온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온갖 특혜는 정말로 정당한가? 생각해 볼 일이다. 물론 그전에 ‘내가 가진 생각은, 제도권 교육과 미디어에 의해 주입된 것일까? 혹은 독서와 토론, 경험을 통해 체적으로 키워온 것일까?’에 대한 깊은 생각이 선행되어야 하리라.

중간에 저자는 영화 <매트릭스>의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제시하는 알약 이야기를 했다. 빨간 약을 먹는 순간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음에 대한 이야기. 진실을 알아 버린 자의 선택. 세상의 모순된 구조에 눈을 뜨면 누구나 갑갑함을 느낀다고 했다. 자신이 철창에 갇힌 존재임을 알아 버린 죄수 혹은 배부른 돼지가 스스로 돼지임을 깨달은 순간. 갇히거나 배부른 돼지로 그냥 살아가기엔 늦어버린 ‘각성자’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이 글의 처음 부분, 진실을 너무 늦게 깨닫고 폭발해 버린 소시민에게 진실은 그저 폭탄이기만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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