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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곳에 속하고 싶었으나 모든 곳에서 쫓겨난 운명의 아웃사이더

리틀 리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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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흑인 뮤지션들이 성스러움과 세속적인 것의 경계를 오가며 그 자극을 바탕으로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켰던 블랙 뮤직의 역사에서도 리틀 리처드만큼 격렬한 진폭을 지녔던 아티스트는 없으리라.

그래미 시상식 등에 출연할 때마다 리틀 리처드는 언제나 자신이 록 음악의 역사에서 수행한 역할의 중요성과 그 대가의 미미함에 대해 잔뜩 흥분하며 침을 튀긴다. 이러한 일련의 장면들은 그가 등장하는 곳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광경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그는 떠버리로 유명하다). 아닌 게 아니라 그가 록 음악, 나아가 대중음악 전반에 걸쳐 이룩한 성과에 비해 그가 받은 보상은 너무나도 적었다. 그것은 록큰롤이라는 음악 자체가 거창하게 말하면 아웃사이더들의 것일 수밖에 없다고 해도, 록큰롤 세계에서조차, 아니 발을 담근 어떤 세계에서도 그가 아웃사이더가 될 수밖에 없었던 운명적인 행각을 들어 일부 설명할 수 있겠다.


록이라는 음악이 원래 아웃사이더들에 의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으리라. 학교에서 뛰쳐나온 소년과 소녀들, 사회로부터의 일탈을 꿈꾸던 비트닉Beatnik(비트족의 일원을 뜻함)과 히피들, 인종이라는 굴레에 의해 억압받던 흑인들과 세계 각지에서 미국과 영국으로 건너간 이민자들, 그 이외의 모든 사회적 소수자들(성 소수자와 장애인을 포함해서)이 바로 그들이었다. 이러한 소외받은 자들의 고통을 통해 록은 탄생되고 발전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록은 그런 아웃사이더들의 사회를 향한 일종의 분노의 표현이었기 때문에 거기에 ‘샤우트’라 불리는, 문자 그대로 절규와도 같은 발성법을 사용하게 된 것은 사실은 어떤 의미에서 당연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이 샤우트를 통해 록의 새로운 표본을 창조한 역사적 인물이 있었다. 그는 바로 리틀 리처드. 희대의 아웃사이더였다.

리틀 리처드(본명은 리처드 웨인 페니먼Richard Wayne Pennyman)는 1932년 12월 5일 미국 남부 조지아 주 메이콘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세븐스데이 어드벤티스트Seventh-day Adventist(제7일 안식일 재림파)라는 기독교 종파의 목사였기에, 그는 어려서부터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게 된다. 그런 엄한 집안 배경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버지는 가짜 술을 만들다 체포되기도 했으며, 손자인 그 자신도 그러한 가정환경을 비웃기라도 하듯 온갖 비행으로 바람 잘 날 없는 소년기를 보낸다. 이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어려서부터 그의 마음속에는 성스러움과 세속적인 것 사이의 심각한 갈등이 반복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에게는 엄청난 비밀이 있었다. 그는 게이였다.

그렇지 않아도 독실하기 짝이 없는 그리스도교도인 그의 부모에게(짜가 술은 어쩌고?!)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용서를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집에서 쫓겨나 당시 성행하던 메디슨 쇼medicine show 극단에 들어가 춤과 노래를 선보이며 전국 각지를 유랑하는 생활을 시작한다. (메디슨 쇼란 의약품의 판촉을 위한 이벤트로 흑인들에 의한 공연이 주가 되었다. 블루스 음악과 R&B 같은 흑인 음악이 미국 전역에 퍼지는 데엔 이런 메디슨 쇼가 커다란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떠돌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그를 반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열다섯이 되던 해 그는 성가대와 메디슨 쇼 극단에서 갈고 닦은 피아노와 노래 실력을 인정받아 술집에서 전업 음악가로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또한 16세가 되었을 무렵에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신인 발굴 오디션에 응모, 당당히 우승을 거머쥐고 첫 레코딩의 기회를 잡았다. 이렇게 1950년대 중반 몇 곡의 R&B 싱글을 발표하지만 세인의 관심을 끌기에는 역부족했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낮엔 식당에서 접시닦이를, 밤에는 여장을 하고 클럽에 나가는 등 어렵사리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그는 기회를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데모 테이프를 인상 깊게 들었던 스페셜티 레코드의 관계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다시 레코딩의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1955년 9월 14일 뉴올리언스의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게 되었고 바로 그때 그의 운명을 바꿀 만한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모처럼 찾아온 기회, 단박에 대박을 터뜨려 팔자 좀 고쳐볼 심산이었지만 녹음은 마음처럼 쉽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곡의 서주 부분만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도 녹음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자 슬슬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레코딩 부스 밖, 음반 관계자들의 표정도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몇 번의 재녹음을 거듭한 그가 급기야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에라이~! 왑 밥빠 루 맙빠 랍! 뱀! 붐!”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그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내뱉은 아무 의미 없는 추임새가 고스란히 녹음되었다.

Little Richard - 「Tutti Frutti」

관계자들 또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허허……. 저 친구 못쓰겠구먼!” 하지만 그것을 들은 작곡가 도로시 라보테리는 왠지 그냥 듣고 넘길 수가 없어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좀 난데없긴 하지만, 꽤 엣지 있지 않은가?!” 그 부분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 듣던 그는 그 부분을 살리는 쪽으로 마음을 굳힌다. 록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싱글의 하나인 「Tutti Frutti」는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탄생하게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후크송’이 아닐까? 이 노래는 발매와 동시에 히트, R&B 차트에서 2위, 팝 차트에선 17위까지 오르는 안타를 기록한다. 단번에 그의 전성시대가 도래하게 된 것이다.

이후 무수한 안타 행진이 이어지는데, 목록은 다음과 같다. 「Long Tall Sally」(1956년 R&B 2위, 팝 6위), 「Slippin' & Slidin'」(1956년 R&B 2위, 팝 33위), 「Rip It Up」(1956년 R&B 1위, 팝 17위), 「Lucille」(1957년 R&B 1위, 팝 21위), 「Send Me Some Lovin’」(1957년 R&B 3위), 「Jenny, Jenny」(1957년 R&B 2위, 팝 10위), 「Keep A Knockin’」(1957년 R&B 2위, 팝 8위), 「Good Golly, Miss Molly」(1957년 R&B 4위, 팝 10위).


그의 명곡들은 훗날 비틀스와 CCR 등 수많은 백인 록 밴드들에 의해 불리거나 그들의 음악적 모태가 되었으며 현재에 이르러서까지 ‘록의 스탠더드’라 불릴 만큼의 입지를 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가 낳은 곡들이 해를 거듭할수록 그 빛을 더해가고 있는 반면,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그에 대한 평가는 마찬가지 대접을 받는다고 보기가 어렵다.

글의 서두에 그가 이룬 성과에 비해 받은 보상은 미미했으며, 그 자신도 여러 공식석상에서 못내 억울한 심정을 공공연히 밝힌다는 것을 말했다. 그럼에도 그가 낳은 록 퍼포먼스의 독창성이란 금액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전에 척 베리를 다룬 글에서도 “기타 리프에도 저작권이라는 것이 있다면 척 베리는 엄청난 거부가 되었을 것이다”라고 쓴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왑 빱빠 루밥”이나 “끼야아아악” 같은 추임새(비명에 가까운)에도 저작권이 있다면, 리틀 리처드는 그 특유의 것으로 막대한 부를 손에 넣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가 일구어낸 업적의 위대함이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것이지만, 그 자신이 위대한 인물이었는가, 하면 그것은 또 그렇게 결론을 내리기 힘든 문제다. 그는 위대한 록큰롤러인 동시에 기행의 제왕이기도 했다. 리틀 리처드는 록큰롤러로서 인기 절정을 구가하던 1957년 말 호주 투어 중에 돌연 활동 중단을 선언한다. 그것은 지구가 화염에 휩싸인 채 주말을 맞는 환상을 본 것이 계기였다고 한다. 그것을 신으로부터의 계시라 여기고 신앙인으로서의 길을 가고자 결심한 그는 그때까지 자신이 저지른 죄를 회개하고 선교 활동을 시작하기에 이른다. 특히 약물과 동성애 그리고 록 음악의 해악을 역설하며 복음 가수로 전향하여 세계를 오가며 포교 활동을 벌이게 된다.

Little Richard - 「Ready Teddy」

1962년 영국에서의 복음 투어에 참가한 그는 당시 가스펠 음악계의 히어로였던 샘 쿡(모타운 출신의 소울 싱어)의 무대에 쏟아졌던 열렬한 환호와는 달리 야유 세례를 받게 된다. 유달리 요란한 복장에 특유의 방정하지 못한 무대 매너가 독실한 신앙인들에겐 신성모독적인 것으로 비친 것이다. 이 일로 돌연 다시 록 음악계로의 복귀를 결심하고, <The Real Thing> <King of Rock & Roll> <The Second Coming> 등의 앨범을 차례로 발표한다. 그의 방황하는 영혼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다시금 복음의 세계로 돌아가는가 싶더니, 별안간 유대교로 개종, 그와 동시에 록 가수로의 복귀를 시도하는가 하면 <Down And out in Beverly Hills> 같은 영화에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활동을 선언하는 등 변덕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본업인 뮤지션으로서의 영광은 되찾을 길 없이 멀어져만 갔고 온갖 기행만이 부각되어 비웃음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결국 그의 모든 역사적 명곡들은 그가 게이이고 약물 중독자이며 죄 많은 젊은이였던 시절에 만들어졌다. 이는 록이라는 혁명적인 음악이 당시 사회에서 그 같은 아웃사이더들에 의해 탄생한 것임을 반증한다. 그리고 많은 흑인 뮤지션들이 성스러움과 세속적인 것의 경계를 오가며 그 자극을 바탕으로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켰던 블랙 뮤직의 역사에서도 리틀 리처드만큼 격렬한 진폭을 지녔던 아티스트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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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차승우

밴드 문샤이너스에서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다. 초등학교 때 뱀이 그려진 전자 기타를 외할머니에게 선물로 받아 처음 기타를 잡았고, 고등학교 때 크라이베이비라는 밴드로 활동을 시작했다. 역시 고등학교 때 노브레인을 결성하여 2집까지 활동한 후 일본의 도쿄 스쿨 오브 뮤직으로 기타를 공부하러 갔다. 하이라이츠라는 밴드를 거쳐 문샤이너스를 결성했다. 최근에 문샤이너스 정규 1집인 <모험광백서>를 펴내고 열렬하게 활동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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