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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못 한다면 더 이상 살 수 없어 - <라 비 앙 로즈>

에디트 피아프에게 진정 중요한 것은 노래, 그 자체였던 것이다. <라 비 앙 로즈>는 에디트의 삶과 더불어, 작은 새처럼 울어대는 그녀의 목소리와 노래를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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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비 앙 로즈>(La Mome, 2007년)
음악: 크리스토퍼 거닝(Christopher Gunning),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
감독: 올리비에 다안(Olivier Dahan)
주연: 마리옹 코티야르, 제라르 드파르디외

마르셀 세르당은 마지막 라운드까지 가는 격전 끝에 상대방을 때려눕힌다. 온 프랑스가 열광한다. 링 사이드에서 조바심을 내며 경기를 지켜보던 에디트 피아프(마리옹 코티야르)도 그의 승리에 감격하면서 기도를 올린다. 두 사람은 함께 호텔로 간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마르셀은 복도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승리를 축하하는 장미꽃이 복도 한 끝에서 다른 끝까지 깔렸다. 어두운 복도에서도 빨간 장미는 빛을 발한다. 에디트 피아프는 마르셀 세르당이 자신의 생애에서 유일한 사랑이라고 믿었다. 마르셀은 프랑스로 귀국하고, 에디트는 뉴욕 공연 중에 「장밋빛 인생」(La Vie en Rose)을 부른다. 에디트와 마르셀이 함께 했던 순간은 그녀의 인생 또한 장미꽃처럼 활짝 핀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뉴욕에 혼자 남아 그를 기다리던 에디트는 공원 벤치에 앉아 글을 쓴다. 마르셀을 생각하면서 노트에 쓰고 있던 그 메모는 바로 「사랑의 찬가」(Hymne a l’Amour)의 노랫말이었다.

에디트 피아프와 마르셀 세르당의 행복했던 한때

사랑하는 이가 부재하는 도시는 우울하기만 하다. 마르셀이 그리운 에디트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서 뉴욕으로 와달라고 간청한다. 마르셀의 권투 시합 때문에, 에디트의 공연 때문에, 둘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너무나 적었다. 전화를 받은 마르셀은 비행기를 탄다. 그러나 그를 태운 에어프랑스의 록히드 기는 대서양 상공에서 추락하고 만다. 그러나 에디트는 마르셀이 자신을 찾아왔다는 환상에 빠진다. 그녀는 평소와 달리 그를 위해 커피를 직접 준비한다. 주변의 친한 사람들이 모두 찾아와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에디트가 만나고 있는 마르셀은 환상이었던 것이다.

에디트는 절규한다. 그 비명소리는 호텔 방과 복도를 거쳐 콘서트장으로 이어진다. 카메라는 물 흐르듯이 그녀의 감정을 따라간다.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과 이별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신이다. 그녀의 심정을 따라 「사랑의 찬가」가 울려 퍼진다.

운명의 신이 당신을 빼앗아 간다 해도
그대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도 당신을 따라 죽을 거예요.
우린 영원히 같이 살 거예요.


마르셀에 대한 기억과 에디트의 노래가 교차한다. 그녀는 마르셀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이 노래의 가사를 직접 썼다. 작곡은 에디트의 오랜 친구이자 작곡가인 마르그리트 모노(Marguerite Monnot)가 맡았다. 영화에서처럼 실제로도 에디트 피아프는 뉴욕에서 이 노래를 처음 불렀다. 그녀에게 뉴욕은 사랑하는 이를 영원히 기다려야만 하는 슬픈 도시로 남는다.

영화 <라 비 앙 로즈>의 포스터와 OST CD. 에디트의 애칭인 ‘La Mome’(참새)은 프랑스 국민이 그녀에게 바친 찬사였다.
프랑스의 국민 가수 에디트 피아프. 같은 급의 가수를 든다면 우리나라의 이미자, 일본의 미조라 히바리, 포르투갈의 아말리아 로드리게스 정도가 있을까. 노래 한 곡에 그 나라 사람들의 삶과 슬픔을 모두 담았고, 모두에게 감동을 선사했던 목소리들.

그러나 무대에서의 화려함과 달리 에디트 피아프는 유독 굴곡이 심한 생애를 살았다. 마르셀 세르당과의 애달픈 사랑은 그 가운데 하나였다. 그녀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어두운 운명을 암시하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뒤따른다. 병원으로 가던 어머니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경찰의 도움을 받아서 거리 위에서 그녀를 출산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어느 한 곳에 안정되게 머무르지 못할 생을 타고났던 것일까. 곡예사인 아버지와 삼류 가수인 어머니는 그녀를 낳자마자 곧바로 내버리다시피 했다. 에디트는 외할머니와 친할머니 집을 전전하면서 살다가 각막염 때문에 시각을 잃을 뻔한 고비를 넘기기도 한다. 다행히도 성 테레즈에게 기도를 드리며 에디트는 앞을 볼 수 있게 된다. 영화 <라 비 앙 로즈>는 에디트의 유년 시절을 노르망디의 우울한 풍경 안에 그려낸다.

소녀가 된 에디트는 아버지와 함께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닌다. 아버지가 마을 광장에서 곡예를 하면 에디트는 모자를 돌리면서 구경꾼들에게 동전을 받곤 했다. 지루해하는 사람들 앞에서, 아버지의 강요에 못 이겨 에디트는 처음으로 노래를 부른다.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였다. 어린 소녀의 목소리는 거리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그녀의 노래 솜씨는 천부적이었고, 노래를 듣던 사람들은 앞다투어 동전을 꺼내 던져준다. 이렇게 거리의 가수로서의 삶이 시작된다. 피갈을 비롯해서 파리 시내 곳곳에서 거리 공연을 펼친다. 그러나 생활은 여전히 가난했고, 그녀의 생애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낳았던 딸은 두 살의 어린 나이로 죽고 만다.

거리를 떠돌며 동전푼에 의존하며 노래를 부르던 에디트를 발탁한 것은 루이 르플레(제라르 드파르디외)였다. 키가 142센티미터밖에 되지 않았던 그녀에게는 ‘작은 참새’(la mome piaf)라는 예명이 붙여졌다. 그렇게 샹젤리제의 고급 카바레 제미(Le Gemy)에서의 공연이 이루어졌다. 무대에 선다는 것은 몹시나 두려운 일이었고, 넓은 공간에서 그녀의 몸은 너무나 왜소했지만, 노래가 시작되자 그녀는 좌중을 휘어잡는 거인임을 입증해 보였다. 관객들은 그녀의 목소리에 매료되었고, 프랑스를 대표하는 샹송 가수로서의 이력을 쌓아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에디트 피아프의 삶은 술과 약물로 점철된 삶이었다. 연하의 연인 이브 몽탕과의 사랑, 샤를르 아즈나불과의 관계 등이 있었으나 모두가 허무하게 떠나갔다. 결혼 생활에도 애정이 없었다. 그런 탓이었을까, 에디트는 잠시도 쉬지 않고 노래에만 몰두했다. 노래만이 그녀의 진정한 삶이자 안식처였던 것이다. 교통사고를 겪고, 술과 약물에 찌든 에디트는 급격히 늙어갔고 실제 나이에 비해 무척이나 나이 들어 보였다. 공연 도중에 자꾸 쓰러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주변 사람들은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1년에 단 한 번. 프랑스를 대표하는 가수들에게 주어지는 무대인 올랭피아 극장 공연을 앞두고 있을 때 작곡가 샤를르 뒤몽이 찾아온다. 에디트는 시간을 내주고, 샤를르는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작곡한 곡을 들려준다. 그녀의 마지막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Non, je ne regrette rien」(아니야, 후회는 전혀 없을 거야)이다.

에디트 피아프와 가족의 묘. 그녀의 무덤엔 사철 헌화가 끊이지 않는다.

마지막 공연에서 에디트는 「Non, je ne regrette rien」을 열창한다. 몸이 불편해서 구부정한 자세로 올라온 그녀를 향해 관객들은 열렬한 박수를 보내고 조용히 기다린다. 정적 속에서 반주 음악이 흘러나온다.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한 에디트의 작은 몸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니야, 후회는 없어.
아니야, 후회는 전혀 없을 거야.
지금껏 받은 친절도, 애달팠던 슬픔도 전부 잊어버렸어.
후회는 없어.


평생을 함께했던 친구들이 그녀의 마지막 공연을 지켜본다. 자신의 삶이 뇌리에 스쳐 지나간다. 이렇게 노래 부를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어린 시절의 웃음, 해맑았던 눈동자를 느끼면서 마지막 공연을 펼친다. 노래를 부르면서 자신의 모든 삶이 후회는 없었음을 노랫말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한다. 누군가가 인터뷰 도중 그녀에게 물었다.

“노래를 못 하게 되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더 이상 살 수 없겠지.”

에디트 피아프에게 진정 중요한 것은 노래, 그 자체였던 것이다. <라 비 앙 로즈>는 에디트의 삶과 더불어, 작은 새처럼 울어대는 그녀의 목소리와 노래를 담아낸다. 에디트의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프랑스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느끼면서 가슴 뭉클하게 흘러가는 시간들이다.

에디트(마리옹 코티야르)의 열창 장면

[Tip 1] 에디트 피아프는 1915년 9월 19일 태어나 1963년 10월 10일 죽었다. 주요 사인은 간암이었다. 공식적인 발표는 10월 11일에 나왔다. 공교롭게도 이 날 장 콕토도 사망한다. 생애 내내 친교를 나누었던 프랑스 문화계의 두 거인이 동시에 숨을 거둔 것이다.

[Tip 2] 영화에서는 큰 비중으로 다루어지지 않지만, 에디트 피아프와 작곡가 마르그리트 모노는 오랜 우정을 나누었다. 마르그리트는 「사랑의 찬가」 외에도 「Milord」 「C’est l’Amour qui fait qu’on s’aime」 등을 작곡했다. 프랑스에서 성공적으로 상연되어 브로드웨이 무대에까지 오게 된 뮤지컬 <당신에게 오늘 밤을>(Irma la Douce)의 노래들을 작곡한 것도 마르그리트 모노였다.

[Tip 3] 마르셀 세르당은 프랑스 역사상 최고의 권투선수 중 하나였다. 생애 통산 117전 113승 4패, 그중에서 66번 KO 승을 거둔 강펀치의 소유자였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경기는 토니 잘(Tony Zale)을 때려눕히고 미들급 세계 챔피언이 된 시합이었다. 이후 마틴 스콜세지의 <성난 황소>의 모델이었던 제이크 라모타에게 패해 타이틀을 빼앗긴다. 비행기 사고로 죽기 직전이었고, 그의 생애 마지막 시합이었다.

[Tip 4] 뉴욕 공연이 끝난 후 마르셀과 테이블에 앉아 있을 때, 마를레네 디트리히가 찾아온다. 독일과 프랑스가 낳은 최고의 여성 엔터테이너들이 만나는 자리였다. 마를레네는 “오늘 밤엔 에디트, 당신 노래를 들으니 파리에 있는 것 같았어요”라고 친근하게 말한다. 2차 대전 중에 마를레네 디트리히는 유럽으로 가서 연합군들을 위해 노래를 불렀고, 에디트는 파리에서 레지스탕스를 도왔다. 뉴욕에서 만난 두 사람의 감회는 남달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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