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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강의실] 이제는 제대로 된 우익, 진정한 엘리트가 나와야 할 때 - 『구월의 이틀』 장정일

“누구보다도 대학교 1학년생이 꼭 읽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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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은 옆구리에 스프링노트를 끼고 나왔다. 한 면이 빼곡한 메모로 가득했다. 이날의 군더더기 없이 꽉 찬 강의는 바로 저 메모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책 읽는 강의실, 그 여섯 번째 주인공은 장정일이었다.

장정일은 옆구리에 스프링노트를 끼고 나왔다. 한 면이 빼곡한 메모로 가득했다. 이날의 군더더기 없이 꽉 찬 강의는 바로 저 메모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책 읽는 강의실, 그 여섯 번째 주인공은 장정일이었다. 지난 11월 24일 한림대 일송기념도서관에서 진행된 특강에서 장정일은, 무려 십 년 만에 선보인 소설 『구월의 이틀』과 그 제목이 함축하고 있는 청춘의 비밀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1984년 「강정 간다」라는 시로 데뷔,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최연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는 시, 소설, 희곡 등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하며 ‘미학적 전복’에 골몰했다. 그가 말하는 미학적 전복이란, “내용과 형식만으로도 기존 체제에 도전할 수 있는 기법”이다. “여기에는 저절로 사회적이고 정치적 발언이 함축되어 있으므로 자유 혹은 민주주의 등의 직접적인 단어가 필요 없게 된다. 하지만 더 이상 미학적 전복만으로는 안 되겠더라. 이것 역시 사회 도피일 수도 있고 굉장히 약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화두가 좀 더 사회적으로 향하게 된 배경에는 지난 2002년, 16대 대선이 있다. 당시 열 권짜리 삼국지를 집필하고 있던 저자는, “마흔 살이 되어 처음으로 집필실을 구했다. 주변이 칸막이벽으로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옆방에서 두런두런 대화하는 소리가 다 들릴 정도였다.”

“노무현 그거 빨갱이 아닌가?”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려왔다. 대구 출신이었던 그로서는 그러한 말들이 새로울 것도 없었지만, 그날만큼은 달랐다. “무척이나 공포스럽게 들렸다. 아무래도 역사서를 집필하느라 예민해진 모양이지만, 대통령 유력 후보가 진짜 빨갱이라면 큰일이 아닌가. 또 빨갱이가 아니어도 큰일인 거다. 저렇게 일반 사람들이 대통령 후보를 무고하게 비난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째서 한국 사회는, 나와 정치적 의견을 같이하지 않는 사람에게 가차 없이 바로 빨갱이 낙인을 찍어버리는가. 이러한 생각이 계기가 되어 『구월의 이틀』을 쓰게 되었다.”

문학사의 틈, 우익 청년 성장소설

광주 출신의 ‘금’과 부산 출신의 ‘은’, 이 둘은 2003년, 그러니까 노무현 정권이 출범한 이듬해에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한다. 운동권 출신의 아버지를 둔 ‘금’은 정치가를 꿈꾸는 야욕 넘치는 청년인 데 비해, 시를 쓰고 미술관을 전전하는 감성적인 청년 ‘은’은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와 우익 대학교수인 작은아버지 아래에서 성장했다. 집안 배경도 성격도 다른 두 사람은 서울에 올라와 자신들의 욕망과 정체성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두 사람은, 그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다.

『구월의 이틀』이 우익 청년 성장소설이 된 것은, 문학사와 관련이 있다. “흔히 문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문학의 기법, 상징, 은유를 배우거나 그것에 골몰해서 작품을 읽는다. 문학사 공부를 좀체 하지 않는다. 전체적인 문학사를 공부해보면 문학사 틈틈이 숨겨진 빈 공간이 보인다. 그곳이 내가 선점할 수 있는 공간이고, 이를 잘 인식하고 전복을 시도한다면 굉장한 규모의 전복이 가능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2002년 생겨난 우익 청년 단체들, 2004년의 뉴 라이트가 조직되는 현실에 비추어서도 이제는 우파 청년 성장기가 나올 때가 되었다.”


그에 말에 따르면 “이제까지 한국의 성장소설은 천편일률적인 좌파 청년 일대기”였다. “지난 20년 민주화 운동에 앞장선 이들 중 문인들이 다수를 차지했다는 점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좌파 청년 성장기는 언제나 불길한 결말을 끌어안고 있는데, 성장소설이 늘 예술가 소설과 접목해 버린다. 주인공들이 작품 말미에서 늘 소설가가 되겠다는 각오를 한다.” 소설 속 ‘금’이 바로 이런 전형적인 유형에 해당한다. “이는 자신이 뛰어들기에 현실 진입 장벽은 너무 높고, 자신의 순수는 도저히 훼손할 수 없다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허위의식이다. 진창 같은 현실을 바꾸려면, 자신에게도 진흙이 묻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신 포도 이야기에 나오는 여우처럼, 높은 담장 위에 열린 포도라고 해서 ‘저것은 맛없고 신 포도’라고 자조하며 돌아설 것인가. 포도를 따려면 가시에 찔리고 긁혀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은’이야말로 젊은이들의 모델이자 성장소설의 주인공답다. 비록 훼손될지언정 현실에 뛰어들어야 한다.”

“너 아니? 사람들이 우리 보고 뭐라고 하는지?”
“뭐라는데?”
금이 묻자 은은 약간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서로 사귀는 사이래. 애인.”(p.282)


동성애를 다루고 있는 까닭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설명했다. 이제껏 없었던 이야기지만, 앞으로 세대에게는 생겨날 만한 법한 고민이기 때문이다. “중세 로망스부터 현대 소설은 이성 간의 짝짓기로 점철된 이야기들뿐이다. 이제 더 이상 로미오가 줄리엣을 찾고, 이 도령이 춘향을 찾는다는 이야기는 성장소설로서 리얼리티가 약화된 것이다. 기본적으로 인간들은 양성애다. 사회, 법, 도덕이 이것을 억누르고 있어서 그렇지, 이런 기제들이 옅어지면 양성애 기질이 발현될 기회가 많아질 것이다. 아마 앞으로의 세대들은 이러한 고민을 더욱 많이 하게 되지 않을까. 또한 한국 문학사적으로도 이러한 소재를 선점하고 싶었고, 먼저 시도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설과 시는 여러 글쓰기의 일부일 뿐

금은 한 번도 문학 작품에 관심을 둔 적이 없었다. 그런 것들은 새로운 전자 제품을 샀을 때, 박스 속에 딸려 있는 제품 설명서에 불과하다. (…) 세상을 직시하기로 하고, 날것 그대로 경험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현실을 설명하는 부가적인 문서가 무슨 필요가 있다는 말인가. (…) 말보다 더 강한 현실에 비해 한낱 꾸며낸 것에 불과한 소설 나부랭이는 한심하기 그지없었다.(p.28)

『구월의 이틀』에는 문학의 무용성, 허구성을 밝히며 이를 부정적으로 언급하는 부분이 많다. 장정일은 “문학에 대한 실제 나의 혐오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문학과 예술은 문명의 동력이 된 적이 없고, 문명의 장식, 액세서리에 불과하다. 교양의 폭은 굉장히 크다. 그에 비해 소설과 시는 교양의 일부분일 뿐, 교양에서 다룰 수 있는 사유의 폭을 담아낼 수 없다.” 무엇보다 장르의 피라미드, 혹은 장르의 계급화가 한국 문학의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글쓰기에는 가짓수가 굉장히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글을 쓴다고 하면 시와 소설을 떠올린다. 이것 역시 글쓰기의 일부일 뿐인데, 여러 장르 중에 시와 수필을 상위 장르로 두고 나머지 수필, 희곡, 기사, 논픽션 등의 장르를 하위분류로 취급한다. ‘쟤들은 시, 소설 못 쓰니까 저런 글 쓴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는 BBK와 최근 일어난 부산 실내 사격장 화재 사건을 예로 들었다. “만약 서구 사회나 일본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얼마 안 되어 서점가에는 사건에 관련된 논픽션이 쏟아져 나오고, 이런 책들이 백만 부 넘게 팔려 화제가 되고 여기저기서 이야기되었을 것이다. 그래야 미비한 법들이 구체적으로 개정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리 사회적 발언을 담고 있는 소설도, 결국 허구라는 장르의 특성상, 파생되는 논의의 정도가 확연히 다르다. 사람들은 책을 다 읽고 ‘그래도 이건 소설이니까’ 하고 덮는다. 건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지금 문학이 담당하는 사회적 몫을 줄이고, 다른 장르와 그 몫을 나눠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작가들의 색인(index)이 너무 빈약하다고 말했다. “식품 첨가물이 그 식품을 만드는 것처럼 작가의 색인이 그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인데, 시인이 되겠다고 시만 읽고, 소설가가 되겠다고 소설을 읽은 사람들의 글에서 독자가 얼마만큼 사유할 수 있겠는가. 그러고도 책을 내면 그 속에 우주의 비밀을 담아놓은 듯 말하지만, 이것이야말로 거짓말이다. (웃음)” 그가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된 일화가 소설 속에 고스란히 그려져 있다.

“저거 다 김정일한테 퍼줘 갖고 타는 거 아니가?”
그 말을 들은 은은,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바래질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대한민국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기 위한 개인적 욕심에서, 호시탐탐 남한을 노리고 있는 북한에 뇌물을 쓰기까지 한다는 말인가? 자기 또래의 다른 학생들이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저런 엄청난 사실을, 자신만 모른 채 흐뭇해져 있었다니? 은은 그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내가 한심스럽고 현실에 어두운 까닭은, 다 시집을 끼고 있기 때문이야. 조금만 생각해보면 다 아는 것을 나만 모르는 것은 그래서야.”(p.150)


위의 비슷한 상황에서 장정일은 ‘은’처럼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나는 저런 생각 혹은 의문도 갖지 못하는데,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런 질문을 하는가” 사건의 진실 여부보다 자신은 그러한 발상, 질문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그에겐 충격적이었다. 누군가는 책에서 보고 뉴스에서 들은 것만 전해 듣고 전달할 뿐인데, 누군가는 전복적인 질문을 던지고 시야를 달리해주는 발상을 제기한다. 이 둘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그는 이것이 바로 ‘인덱스의 차이’라며 “한사람이 생각하고 질문하는 것은 모두 그가 쌓아온 인덱스로부터 비롯한다”고 말했다. 이러하니 소설만 읽은 소설가, 시만 읽은 시인의 인덱스를 의심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런 우익이 있었으면 좋겠다

책에서 문학 혐오와 더불어 자주 강조되는 화두는, 엘리티즘에 대한 희구이자 열망이다. “엘리트가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 그가 얻은 결론이다. 하지만 이때의 엘리트는 소설 속에서처럼 우익, 좌익 한쪽의 모습을 의미하지 않는다. “엘리트란 단순히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엘리트란, 국가 통치 기술을 다년간 연마한 사람이자, 이웃과 공동체, 사회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다. 옛날로 치면 동양의 사대부쯤 되겠다.”

“그래, 은 네가, 아주 정확하게 파악했다. 젊은 우파라면 적어도 이런 수준에서 시작해야 해. 그런데 보통은 이런 근기로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고, 대항 의식으로부터 시작하지. 예를 들어 ‘나는 좌파가 싫다’, ‘나는 운동권 애들이 너무 설쳐서 싫다’, ‘나는 김정일이 너무 밉다.’ 이렇게 해서는 결코 제대로 된 ‘대한민국 재 건국’ 운동을 할 수 없어. 미국에 시작될 ‘대한민국 재 건국 운동은 그런 대타 의식으로부터 벗어나 ‘강한 것이 선한 것이고. 강한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라는 자긍심과 자기 정립에서부터 시작해야 해. 내 윗세대인 올드 라이트(old right)는 일제나 독재에 가담한 원죄가 많고, 상대적으로 젊은 나와 같은 뉴 라이트(new right)는 좌파에 대한 원한이나 피해의식이 있어. 그래서 원죄도 원한도 없는 순수한 우파, 너와 같은 영 라이트(young right), 퓨어 라이트(pure right)가 필요해.”(p.269)


이제껏 한국 문학사에서 이야기되지 않았던, 바람직한 우익의 상(像)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진정한 우파적 엘리트라면, 스스로에 대한 강한 자긍심, 선한 힘을 지녀야 한다. 사자는 독이 없다. 스스로 강하기 때문이다. 지네, 전갈 등을 보라. 연약하고 힘없는 것들이 독을 품고 있다. ‘은’으로 대표되는 퓨어 라이트는 야비하기도 하고 이중 인격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인물에게는 없는 자기 개발 특성과 사태를 객관적으로 보려는 반성 능력이 있다. 비록 ‘은’이 지금은 올드 라이트와 뉴 라이트 아래에서 성장하고 있지만, 건강한 비판능력과 반성능력을 통해 선하고 강한 힘을 지닌 퓨어 라이트로 단련되어나갈 것이다.”

죽도록 공부하고 죽도록 놀아라

그는 이 책을 “누구보다도 대학교 1학년생이 꼭 읽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매미는 7일을 울기 위해 7? 동안 애벌레로 땅속에 있는다. 그 7일에 해당하는 짧고도 귀한 시간이 바로 ‘구월의 이틀’이다. 그렇다면 이 귀한 대학 시절을 어떻게 보내야 하겠는가? 죽도록 공부하고 죽도록 놀아라. 장정일 가라사대 그리하면 길이 열릴지니.

“여러분이 대학 4년 동안 해야 할 일은 딱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죽으라고 공부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죽으라고 노는 것입니다. 이게 대학생이 할 일입니다. 공부와 놀기를 물과 기름처럼 여기고 이 두 개를 따로 하는 사람도 많은데, 잘 찾아보면 공부와 노는 것을 같이할 수 있는 것도 많습니다. 내 생각에는 순수한 전공 서적은 공부겠지만, 전공 서적이 아닌 문학이나 인문 교양서를 읽는 것은 공부와 놀기를 함께하는 방법 가운데 진수에 속합니다. 그리고 각종 전시회나 음악회는 물론이고, 열정을 쏟기에 따라서는 영화 관람도 충분히 공부와 놀기를 동시에 하는 것에 속합니다.”(p.141)

이와 더불어 평생 따르고 존경할 만한 선생을 찾는 일을 대학 4년의 과제로 삼으라고도 말했다. “행여 스승 찾는 일이 현실에서 어려움이 있으면 책 속에서라도 발견하라. 소설 속 ‘은’이 무려 여섯 명의 선생 아래에서 성장하는 풍경은 이러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라며 이와 반대로 만류하고 싶은 것으로 아르바이트와 잦은 술 문화를 꼽았다. “’뜨거운 아이스크림’이 형용모순이듯 ‘돈 많은 대학생’이란 어색하기 짝이 없다. 청빈 역시 대학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대학 졸업 후에는 청빈이 아니라 궁상이 된다. (웃음)”

지금도 늦지 않았다. 고전을 읽어라

강의를 마치자 여러 사람들의 질문이 바로 이어졌다.

원래 꿈이 공무원으로 취직해서, 퇴근 후 책 읽는 삶이라고 말했는데. 언제 작가가 되기로 마음을 바꾸었는지 궁금합니다.

꿈이 바뀐 게 아니라, 못 이루었기 때문에 작가가 된 겁니다. (웃음)

고등학생 때와는 달리, 대학생 때 문학을 읽을 때는 어떻게 다르게 읽어야 합니까? 구체적으로 알려주십시오. 그리고 제대로 책을 읽는 게 1, 2년 안에 가능하겠습니까?

시험용으로 주제나 형식을 찾는 데 매진하지 말고, 나와 문학작품 혹은 나와 작가가 일대일로 대면해야 합니다. 공식적인 해석과는 다른, 자유로운 독서를 하십시오. 물론 처음에는 어렵습니다만, 열 권 정도 읽으면 머리가 트입니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고전 100권을 읽으십시오. 1,2학년 때 100권을 읽고 문학은 끊어야 합니다. 3,4학년 때는 사회, 철학, 역사서로 옮겨가 더 넓고 깊게 독서해야 합니다.


시를 전공하는 학생입니다. 글 쓰는 일이 오늘 같이 부끄러운 적이 없었습니다. (좌중 웃음) 사람들은 시는 특별한 사람이 쓰는 것이라고들 합니다. 결국 시도 글자를 가지고 쓰는 건데 왜 이렇게 더 부담을 주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보다 더 빨리 깨우치셨네요. (웃음) 시만 특별하다는 생각들은 사회의 허위나 위계질서가 만들어낸 겁니다. 글쓰기는 자기표현이므로, 거기에 맞춰 장르를 선택해야지 어떠한 장르가 높고 낮은 건 결코 없습니다. 그건 순수예술이 과대 포장되어 생겨난 생각입니다.

앞으로 시를 계속 쓰실지 궁금합니다.

시 쓰기를 잊어버려서. (웃음) 더듬더듬 생각은 하고 있는데, 예전만큼 잘 안 됩니다.

저는 30대입니다. 제가 지금부터 책을 읽어도 가능성이 있다고 부디 한마디만 해주십시오. (좌중 웃음)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무시무시한 고전 100권 정도 읽으시면 됩니다.

작가의 사회적인 의무와 책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문학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지극히 흥미로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흥미롭지 않으면 읽기 너무 어려워요. 소설가의 사회적 책무는 흥미를 통해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입니다. 행여 깨달음을 전하기 위해서라도 재미와 흥미를 가져야 하고, 그것이 사회를 움직일 수 있다고 봅니다.

연재하시는 ‘독서 일기’도 꾸준히 보고 있는 애독자입니다. 전업 작가로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십니까?

스트레스를 받을 만한 것을 진작 없애 버렸습니다. 한 번도 휴대폰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연락은 내 쪽에서 취하도록 해두었어요. 운전면허증도 없고, 사실 신용카드의 기능도 잘 모릅니다. (좌중 웃음) 경제적으로 스트레스 받을 만한 것들을 미리 정지시켜두었기 때문에, 별로 안 받습니다.

장정일은 문학에의 혐오와 그 문제점을 누차 강조하면서도, 제때에는 꼭 읽어야 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즉, 문학이란 “유통기한이 있는 음식처럼 취급해야 할 기한이 있다.”라는 것. “소외된 사람들에게 악한 말, 매정한 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때 문학을 읽지 않으면 그런 사람이 된다.” 강의실을 나서며, 요즘 읽고 있는 문학들의 유통기한을 떠올려본다. 아찔해진다. 대학 시절까지 거슬러 갈 것도 없다. 다가오는 연말, 2009년의 독서 리스트만 확인해 봐도 색인의 정체는 금세 드러난다. ‘네가 내뱉는 말과 생각들이 구월의 이틀을 어떻게 보냈는지 증명할 것(!)’이라던 작가의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해서, 올해의 구차한 색인을 무어라 변명도 못 하겠다. 비록 ‘구월의 이틀’이 막 지나가버렸을지라도, 내 색인이 빈곤하다면야, 구월의 끝자락이라도 붙잡고 늘어져, 입은 다물고 한 권이라도 더 읽어낼 일이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 다시 펼쳐든 『구월의 이틀』 곳곳에서 저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여러분, 빙하시대를 불태워버릴 열정으로 이틀 혹은 하루뿐인 당신의 인생을 사십시오. 이 짧은 청춘의 날이 지나가고 나면, 여러분은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울게 됩니다.”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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