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돈 없이 살기’ 프로젝트(2/2)

하루 세 끼 먹을 식량은 이웃과의 물물교환 방식으로 얻는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마크가 가진 건 오로지 몸뚱이 하나, 즉 노동력뿐. 이웃에 있는 농장들을 방문해 일을 해주고,

하루 세 끼 먹을 식량은 이웃과의 물물교환 방식으로 얻는다. 마크가 가진 건 오로지 몸뚱이 하나, 즉 노동력뿐. 이웃에 있는 농장들을 방문해 일을 해주고, 그 대신 그들의 밭에서 소량의 채소나 곡식을 얻어서 먹고 산다. 조리 역시 직접 만든 기구를 이용한다. 버려진 휘발유 깡통에 구멍을 뚫어 원시적인 화덕을 만들어 이걸로 요리를 한다. 땔감은 동네 쓰레기장에서 주워오거나 야산에서 나무를 구해 쓴다.

마크의 설명마다 ‘우와’ 하는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땅을 파서 직접 만들었다는 화장실이나, 몇백 미터 떨어진 시냇물까지 물을 길으러 간다는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어쩐지 요즘 같은 세상에 비현실적인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저 환경 운동이라고 하기에는 좀 유별나고, 극단적으로 보이는 이런 실험을 굳이 선택한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걸까? ‘돈’이라는 시대적 도구에 이렇게 반기를 들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가 나는 궁금해졌다.

“돈은 사실 인류가 고안해 낸 여러 가지 도구 중에서 가장 멋지고 똑똑한 도구라고 생각해요. 인류의 삶을 정말 편리하게 바꾸어 주었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소비 패턴도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죠.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 사용하는 물건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고 있고, 솔직히 관심도 없어요. 모든 물건들은 본래 가지고 있던 의미를 잃어버렸죠. 그러면서 무차별적인 과소비가 생겨났어요.”

마크의 주장은 이런 거다. 어느 날 누군가 방을 청소하다가 문득 생각한다. ‘어휴, 저 책상이 좀 낡았네, 내다 버려야지’라고. 그런데 만약 그 책상이 본인이 며칠 동안 공을 들여서 직접 만들었다면 그런 생각을 쉽게 하지는 못할 거라는 거다. 혹은 그 책상이 어린 시절 아버지가 열심히 대패질을 해가며 만들어서 선물한 거라면 그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 사용된 노동력과 에너지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런데 돈을 사용하면서부터 우리는 그런 마음을 잃어버렸다. 물질 만능주의적인 사고방식과 습관에 너무 길들어져 언제부터인가 쉽게 물건을 버리고, 새로운 물건을 구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물건의 진짜 가치를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돈이 표시하는 숫자에 따라 가치를 매기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물건 자체보다 어느 브랜드인가, 가격이 얼마인가가 더 중요해졌고 그 사람이 소유한 물건으로 그 사람을 재단하고 평가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마크는 우리의 삶이 이렇게 변질된 게 너무 슬펐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돈은 우리 인생에서 주인이 될 정도로 그렇게 대단한 존재는 아니라고. 돈에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극단적으로 돈이 곧 행복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라고.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돈’에 반기를 들겠다는 것이었다. 돈 없이도 이렇게 살 수 있다는 걸 세상에 온몸으로 증명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마크가 이런 실험을 하겠다는 선언에 대한 세상의 반응은 생각보다 매우 냉소적이었다. 사람들은 ‘별 미친놈을 다 봤다는 식’으로 그를 대했다. 원시시대도 아니고 ‘돈’ 없이 산다는 게 말이 되냐는 거였다. 특히 그가 왜 이런 실험을 하려는지 이해하는 사람들조차 환경 운동을 하려면 그냥 조용히 하지, 유명해지려고 별짓을 다한다는 비난을 했다. 그들의 논리는 그랬다. 너 혼자 그렇게 일 년을 산다고 세상이 얼마나 바뀌느냐는.

더 심한 건 언론의 태도였다. 마크가 이런 프로젝트를 결심한 이유는 쏙 빼고 그의 기인적인 삶의 방식만을 흥미 위주로 보도했다. 땅을 파고 볼일을 보는 남자라거나, 신문지를 화장지 대신 쓴다는 사실만을 헤드라인으로 뽑고 마크가 이런 운동을 하는 이유는 가린 채 순식간에 그를 ‘별종 인간’으로 포장했다.

하지만 마크는 사람들의 이런 반응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 이미 그에게 이런 언론의 반응은 크게 새로운 일이 아니었으므로.

“사실 인도까지 걸어서 가려고 한 적이 있어요. 그때도 사람들의 반응은 비슷했죠. 정신 나간 놈이 이상한 짓을 한다고. 하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았어요.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은 어쨌든 이 녀석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하느냐는 건지 궁금해했고, 결국에는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니까요.”

2008년 초의 일이었다. 마크 보일이 걸어서 인도를 가기로 한 건. 그때도 동기나 방법은 비슷했다. 사람들이 왜 돈의 노예로 살아야 하는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 돈 한 푼 쓰지 않고 무전여행으로 인도까지 걸어가기로 한 것이었다. 그것도 9,000마일이라는 엄청난 거리를.

그가 가방 하나 달랑 메고 길을 나섰을 때, 역시 수많은 언론들이 그의 행적을 앞다투어 보도했다. 그때도 그랬다. 그가 왜 이런 일을 하려는지 보다 그가 과연 인도에 갈 수 있을지, 오직 그 성공 여부에만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을 지켜보듯이 사람들은 그의 행적을 그저 하나의 가십거리로, 흥밋거리로 취급했다. 그리고 한 달 후 그가 인도까지 걸어가겠다는 실험에 실패했을 때, 사람들은 말했다. 그것 보라고, 역시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은 거라고.

하지만 그는 그런 사람들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 계획을 세우고 한 달 동안 프랑스까지 걸어가며, 그가 배운 많은 것들에 비하면 사람들의 비웃음으로 받은 상처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세상에 숱하게 널린 계획도 세우지 않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종류의 사람들이 이상했다. 그들에겐 어떤 깨달음조차 허락되지 않았을 테니.

다만 그가 뼈저리게 느낀 진실 하나는 이것이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쉽게 바뀌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 아주 잠깐 감동을 하고, 교화될 수는 있지만, 누군가의 뿌리 깊은 삶의 방식이나 태도를 바꾸는 건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 누군가에게 자신의 철학을 전하는 건, 순교자 같은 태도를 가지지 않으면 어렵다는 것.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가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얼마 전에 르포를 쓰는 작가가 저를 찾아왔어요. 왜 ‘돈 없이 살기’ 실험을 하는지 알고 싶다고. 그래서 몇 시간동안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걸 쭉 이야기했는데, 막판에 그가 차갑게 이런 말을 내뱉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사실 나는 환경 따위에 그다지 신경 쓰지는 않는다고…….”

마크는 그의 말을 듣는 순간 큰 상처를 받았다. 자신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줄 것만 같았던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해서 더 그랬다. 하지만 잠시 후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실은 이미 마크의 삶의 방식에 대해 고민을 하고 신경을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그가 진정 환경에 대해 관심도 없고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애초에 마크를 찾아오지도 않았을 거고, 그렇게 강한 방식으로 반론을 제기하지도 않았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기왕 시작한 거 사람들의 반응이 예상과 다르면 뭐 어때, 시큰둥해하건, 비아냥거리건 어떤 식으로든 그들은 마크가 벌이는 일에 관심을 갖는다면 된 게 아니냐고. 재미있는 일들 많이 벌이자고. 그게 옳은지, 그른지는 어차피 그의 행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판단하는 거다. 그의 임무는 화두를 제기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그의 의무는 충분히 수행된 거라고.

그가 얼마 전, 친구들과 벌인 색다른 파티도 그런 ‘화두 던지기’의 일환이었다. 그가 벌인 파티의 이름은 일명 ‘재활용 만찬’. 마크와 친구들은 시내에 있는 레스토랑과 슈퍼마켓, 제과점과 식품점 등을 돌면서 주인들을 설득해 음식 재료들을 얻었다. 단, 그들이 얻은 음식 재료들은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 음식들. 소위 유통기간이 지난 것들이었다. 그들은 그 음식 재료들 중 정말 오래돼 못 먹을 정도로 상한 것들을 제외한 나머지를 이용해 요리를 만들었다. 그래서 재활용 만찬이다. 이 파티의 콘셉트이기도 하다. 전식과 메인 요리, 후식으로 그럴싸한 코스 요리를 만들었고 대대적인 선전을 해 사람들을 초청했다. 그런데 반응은 놀라웠다. 무료로 제공되는 이 ‘재활용 만찬’에 몇백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들어 행사 시작 몇 시간 만에 음식이 다 떨어졌다. 이날 행사장을 찾은 사람들은 대부분 100% 호기심으로 온 것이었지만 마크가 주장하고자 하던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 있었다. 우리들이 그동안 엄청난 양의 소중한 음식들을 아무 생각 없이 버려 왔고, 그것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는.


여기까지 들으니, ‘와, 굉장한 강적이다’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 그의 불평처럼 사람들이 그를 ‘기인’으로 오인하고 포장하는 게 아니라 사실상 그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기인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게 많은 상처를 받으면서도 수많은 이벤트를 벌이고, 프로젝트를 만들어 화제를 뿌리고 있는 마크 보일.

그가 특이한 기인으로 보이는 결정적인 이유는 또 있다. 그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경제 학도이자, 실제로 대기업에서 탄탄한 직업을 가졌던, 흔히 이 사회에서 말하는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렇게 돈을 벌고, 돈을 쓰면서도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돈이 주인이 되는 이런 삶이 옳지 않다고 느꼈기에 매 순간 괴로웠다.

그래서 그는 어느 날 문득, 가지고 있었던 여러 개의 은행 계좌를 없애버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 작은 시작의 힘이 몇 년이 지나 커지고 또 커져 그를 여기까지 걸어오게 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면서. 자신의 삶의 방식을 기록하고, 세상에 전파하면서 말이다.

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그의 실험적 삶에 감동을 받는지, 영향을 받고 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의 친구들은 이미 그를 ‘환경 전도사’로 부르고 있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때문에 ‘돈’을 포기하고 있을까도 사실 의문이고.

하지만,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이것이다. 그를 만난 이후, 나는 나도 모르게 그의 블로그를 내 컴퓨터의 즐겨찾기에 저장해 놓았다는 것. 그리고 생각날 때마다 그의 근황을 체크하며, 동시에 내 삶의 패턴을 체크하고, 잘못이 있으면 반성하고 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그가 그렇게 원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화두 던지기’는 이미 절반쯤 성공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 그의 근황은 돈이 주도하는 경제에 반기를 들기 위해 창립한 그의 조직 Freeconomy Community(//www.justfortheloveofit.org)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운영자가 알립니다.
<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6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

<김수정> 저12,420원(10% + 5%)

도서관에서 사람을 빌려 대화하며 한 사람의 인생을 읽는다 런던에서 열린 Living Library 이야기 덴마크 출신의 사회운동가 로니 에버겔이 창안한 『리빙 라이브러리』는 유럽에서 시작되어 빠른 속도로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신개념의 ‘이벤트성 도서관’으로, 도서관에서 ‘책’ 대신 ‘사람’을 빌려준다...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사람을 남기는 독서와 인생 이야기

손웅정 감독이 15년간 써온 독서 노트를 바탕으로 김민정 시인과 진행한 인터뷰를 묶은 책이다. 독서를 통해 습득한 저자의 통찰을 기본, 가정, 노후, 품격 등 열세 가지 키워드로 담아냈다. 강인하지만 유연하게 평생을 치열하게 살아온 손웅정 감독의 인생 수업을 만나보자.

쉿, 우리만 아는 한능검 합격의 비밀

한국사 하면 누구? 700만 수강생이 선택한 큰별쌤 최태성의 첫 학습만화 시리즈. 재미있게 만화만 읽었을 뿐인데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가 저절로 풀리는 마법! 지금 최태성 쌤과 함께 전설의 검 ‘한능검’도 찾고, 한능검 시험도 합격하자! 초판 한정 한능검 합격 마스터팩도 놓치지 마시길.

버핏의 투자 철학을 엿보다

망해가던 섬유공장 버크셔 해서웨이가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거듭난 과정을 보여준다. 버크셔의 탄생부터 버핏의 투자와 인수 및 확장 과정을 '숫자'에 집중한 자본 배분의 역사로 전한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의 진면목을 생생하게 담아 가치 투자자라면 꼭 봐야 할 필독서다.

뇌를 알면 삶이 편해진다

스트레스로 업무와 관계가 힘들다. 불안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다. 그냥 술이나 마시고 싶다. 이런 현대인을 위한 필독서. 뇌과학에 기반해 스트레스 관리, 우울과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기, 수면과 식습관에 관해 알려준다. 처음부터 안 읽어도 된다. 어떤 장을 펼치든, 삶이 편해진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