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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이 살기’ 프로젝트(1/2)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참 황당한 사람도 다 있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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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동굴에 들어가 사는 것도 아니고 돈 없이 어떻게 산다는 거지? 구걸을 한다는 건가? 세상에는 참 별별 사람들이 다 있구나 하는 게 내 첫 번째 감상이었다.

Freeconomy Community 창립자 _ 마크 보일 Mark Boyle

수없는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며 먹고사는 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인터뷰를 해야 하는데 리빙 라이브러리 행사를 몇 번 경험한 뒤,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언제부터인가 그들의 삶 자체에 ‘취재’를 넘어서는 관심이 생긴 것이다. 편집에 골라 쓰기 좋게 간단명료하게 요점만 말하기를 요구하던, 시간에 딱 맞게 쓸 만한 인터뷰만 똑똑 따내던 내가, 자꾸만 좀 더 많은 이야기를, 좀 더 깊숙한 사연을 알고 싶어 했고 그들의 삶에 집요하게 앵글을 들이밀게 되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었다. 이렇게 직접적인 질문을 해대면 불쾌해하고 귀찮아하고 할 것만 같았던 인터뷰이(interviewee)들이 의외로 성큼 마음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시간이 없다고 30분 뒤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일어나야 한다던 이가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인터뷰(혹은 수다)에 빠져 다음 일정을 펑크내는가하면 인터뷰를 하다 말고 아예 술집(펍)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도 생겼다.

나는 이런 대화의 힘에 놀랐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카메라를 내 어깨에서 내려놓지 못했던 진정한 이유는 나에게 다른 사람들과 진심으로 소통하고 싶어 하는 강렬한 욕망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발견했다. 어느새 어쩔 수 없이 하던 나의 ‘생계형 인터뷰’는 그렇게 ‘일’이나 ‘직업’을 넘어 새로운 즐거움으로 내 인생을 채워주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리빙 라이브러리’란 별것이 아니다. 타인을 배척하고 무시하는 대신 관심을 갖자는 것. 조금은 별나게 보이거나 특이한 사람들, 혹은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말에도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여 보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리빙 라이브러리’의 대상은 우리 모두의 가장 가까이에 살고 있는 모든 이웃들이다. 자신도 모르게 독서가 습관으로 굳어지듯 편견을 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어느새 ‘살아 있는 사람 책읽기’는 습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그동안 영국에서 인터뷰를 해온 사람들 중 가장 인상적인 ‘사람 책’을 ‘에필로그 인터뷰’ 자격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친구들과 이웃들 모두가 우리가 독서할 수 있는 ‘오픈 북’이라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었던 남자, 그가 나에게 건네준 멋진 에너지를 함께 공감하길 바라며.

***

크리스마스를 얼마 앞둔 겨울이었다. 거리에는 캐럴이 울려 퍼지고, 크리스마스 쇼핑으로 일 년 중 가장 분주한 시간. 나는 영국에 사는 한 청년을 취재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영국에 어떤 청년이 돈 없이 일 년을 살기로 했다는데 그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촬영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참 황당한 사람도 다 있네’였다. 혼자 동굴에 들어가 사는 것도 아니고 돈 없이 어떻게 산다는 거지? 구걸을 한다는 건가? 참으로 이상한 기인들이 많은 나라라지만, 그래서 ‘기네스북’까지 만들어진 나라겠지만, 그래도 세상에는 참 별별 사람들이 다 있구나 하는 게 내 첫 번째 감상이었다.

그런데 그에 대해 사전 조사를 하면서 나는 이 청년이 단순한 가십이나 흥밋거리를 위해 이런 실험을 벌이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마크 보일은 돈이면 무슨 일이든 가능하게 된 우리 사회의 병폐를 비판하는 운동가였으며, 지구의 온난화 속도를 줄이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이런 프로젝트를 기획한 거였다. ‘돈’에 지배당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그렇게 소유하기를 바라마지 않는 ‘돈’이 없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말이다.

‘마크 보일’을 찾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알고 보니 ‘돈 없이 1년 동안 살아보기’(Life without money)라는 그의 프로젝트가 영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꽤 화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긴 언론이 이런 좋은 먹잇감을 놓칠 리가 없다. BBC 비롯한 공중파 방송은 물론, 잡지나 신문에 보도가 되었으며, 다른 나라에도 ‘해외 토픽’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소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후였다. 의외로 손쉽게 핸드폰 번호와 이메일 주소를 알아냈는데, 도저히 연락이 닿질 않았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고, 여러 번 음성 메시지를 남겨도, 이메일을 보내도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그렇게 3일쯤 지났을까, 슬슬 가지고 있는 주소로 무작정 찾아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쯤, 그로부터 겨우 답 메일이 도착했다.

‘돈 없이 사는 프로젝트’ 때문에 그의 핸드폰은 받는 기능만 할 뿐 걸 수는 없다고. 그래서 내 메시지에 바로 답변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핸드폰과 노트북 충전은 태양 에너지를 이용해서 해야 하는데 지난 3일 동안 날씨가 안 좋아서 방전이 됐었단다.

갑자기 헛웃음이 났다. 아, 그렇지. 이 청년은 지금 ‘돈 없이 살기’라는 실험을 하는 중이었지, 하는 뒤늦은 깨달음. 그러자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언제부터 사흘 동안 연락이 안 되는 걸 이렇게 참을 수 없게 되었나.’ 하는. 핸드폰이 없던 시절엔, 편지를 보내 연락을 취했던 이십 년 전만 해도 사흘이 이렇게 불안하고, 견딜 수 없던 시간은 아니었건만.


나는 바로 답변을 보낸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당신을 만나러 가겠노라고. 허탕을 쳐도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당신을 찾아가고 싶다고. 나는 왠지 그렇게 해서라도 이 청년을 꼭 만나고 싶어졌다.

마크 보일은 잉글랜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골이라는 소머셋 지역에 살고 있었다. 대학 도시로 유명한 브리스톨에서 멀지 않은 한 시골 농장의 부지에 세워둔 낡은 카라반이 그의 보금자리였다. 약간은 저돌적이고 막무가내 격인 이메일을 보내고 찾아간 나를 그는 맑은 웃음으로 맞아 주었다.

“오늘쯤 고향에 가려고 했는데, 오신다고 해서 내일로 미뤘어요. 돈 없이 살고 있으니, 자전거를 타고 가야 해서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야 하거든요”라는 게 그의 첫 인사.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니 아일랜드, 도네갈이란다. 그의 대답과 동시에 내 눈이 커다래진 건 당연한 일. 도네갈은 얼핏 짐작에도 마크가 사는 소머셋에서 300km도 넘는 거리. 특히 바다를 건너야 하니 차를 가져간다 해도 10시간 이상은 걸리는 그곳에 그는 자전거를 타고 간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무렇지도 않게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그는 도대체 왜 이런 황당 도전을 시작한 걸까?

“사람들이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는 이유, 불행하게 만드는 게 다름 아닌 ‘돈’ 때문이잖아요. 근데,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건 뭔가 주객이 전도되어 있다고. 우리가 편하자고, 조금 더 행복하자고 만든 ‘돈’이 오히려 우리를 옥죄고 있다면,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이 분명 있을 거라고. 그래서 이런 실험을 해 보기로 결심했죠. 1년 동안 돈을 쓰고 않고, 한번 살아보자고.”

일명 ‘돈 없이 살기 프로젝트’를 결심하고 나서 부딪힌 첫 번째 당면 과제는 어디서 먹고 잘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프리사이클’(www.freecycle.org)이라는 사이트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프리사이클이란, 필요 없는 물건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대신, 다른 사람들에게 기부한다는 일종의 시민운동. 새로운 물건의 소비를 줄이고, 쓰레기를 줄이자는 단순한 아이디어로 시작된 이 환경운동은 순식간에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며 시선을 모으게 되었다. 지금은 영국에서도 지역별로, 동네별로 활성화되어 있다고.

마크는 생각했다. 일단은 집세를 내지 않고 살 집이 필요한데 집이 필요 없어져서 쓰레기통에 버리는 사람이야 설마 없겠지만 집을 대용할 도구, 이를테면 캠핑용 텐트 같은 걸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그런데 마침 운 좋게도 낡은 카라반*을 버리려는 사람이 있었다. 화장실이 없는 초소형 사이즈, 비록 가스레인지나 냉장고처럼 실용적인 전자 제품은 없었지만, 마크의 입장에서는 감지덕지한 일이었다.

마크는 이 사이트를 통해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태양열 에너지 판도 구했다. 에너지를 생산하는 판의 크기가 너무 작아서 아주 적은 양의 전기밖에 생산할 수 없다는 이유로 버려진 것이었다. 하지만 전자 제품이 거의 없는 마크에게는 딱이었다. 마크에게는 딱 세 가지 전자 제품이 전부였으므로.

그가 끝까지 없앨 수 없었던 전자 제품은 핸드폰, 노트북, 그리고 충전식 미니 전등이었다. 사실 이 물건들도 눈 한번 딱 감고 없애버릴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살아보겠다고 결심한 건 기인으로 살겠다거나 도를 닦고자 하는 게 아니라, 보다 환경 친화적인 삶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프로젝트였기에 그에게는 이런 활동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존재했다.

마크가 언론의 인터뷰를 마다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었으며 적극적으로 블로깅을 함으로써 세상과 소통하기를 원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즉 그에게 ‘돈 없이 살기’라는 프로젝트의 핵심은 성공이냐, 실패냐 하는 결과가 아니었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는지에 대한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었기에 그 과정에 대한 기록이 소중했다. 그러니 당연히 노트북은 껴안고 있어야 했다.

핸드폰은 수많은 친구들과 가족들을 위해서 남겨놓았다. 그의 삶에 적극적인 지지를 해줄 뿐만 아니라 그가 잘 살고 있는지를 수시로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연결할 수 있는 끈을 없애고 싶지는 않았다. 단 매달 사용료를 내는 것이 아닌, 사용한 만큼 돈을 지불하는 방식의 전화기를 마련해 걸지는 않고 받기만 한다. 마지막으로 전등은 밤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 위해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물론 태양열을 이용하기 때문에, 그것도 아주 좋은 태양열 장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쓸모없다고 버린 물건을 이용하기 때문에 전자 제품의 사용은 아주 제한적이다. 특히 영국은 변덕스러운 날씨로 유명하고, 겨울이면 흐린 날이 며칠씩 계속되기도 하며, 그럴 때는 아무리 책이 읽고 싶어도, 아무리 컴퓨터를 켜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참아야 하는 때도 있다. 내가 그와 사흘이나 연락할 수 없었던 것처럼.


* 카라반(Caravan, 혹은 Travel Trailer라고도 부른다): 평범한 자동차에 연결할 수 있도록 고안된 이동 자동차로 보통 간단한 취사시설과 화장실, 침대가 갖추어져 있다. 호텔에 머물지 않고 여행할 수 있도록 고안된 카라반은 유럽과 북미,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인기 있는 여행 수단이며 최근에는 초호화 카라반이 등장하기도 했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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