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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신화를 담아

중세의 예술에서 르네상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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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로 보티첼리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비너스를 소재로 그림을 그렸고, 죄악시하던 인간의 육체를 온전한 나체로 표현하였다. 보티첼리의 과감한 시도는 중세의 예술을 르네상스로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 이탈리아 | 피렌체에서 작품을 통해 성서를 읽다

입장을 기다리는 민석과 나. 그리고 실비아와 베르나르

우피치는 8시 15분에 문을 여는데 우리는 8시 50분 정도에 도착했다. 주차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 먼 곳에 주차를 하고 입장권을 사기 위해 긴 줄 끝에 섰다. 예매한 사람들을 위한 줄과 현장에서 입장권을 사는 사람들을 위한 줄이 따로 있었다. 당일 입장 줄이 길어 보이지 않아서 예매하지 않았는데 예매표를 가진 사람이 자꾸 줄을 끊고 먼저 입장하는 바람에 오늘 과연 입장은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다음에 또 우피치에서 오게 되면 꼭 예매해야겠다.

길고 긴 시간 동안 우리 바로 뒤에 서 있던 프랑스에서 온 두 명의 여자와 민석이가 이야기를 한다. 나는 이들의 통역관이 되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도왔다. 유럽 사람의 눈에 지구 반대편에서 온 소년이 자신들의 문화를 꽤 해박하게 알고 있는 것이 신기하고 기특했는지, 민석과의 대화에 성의를 보였다. 서로 흥미롭게 대화를 나누게 되었을 때 쯤 우리는 작별인사를 하고 우피치에 입장했다. 시간을 보니 입장까지 두 시간 반이 걸렸다. 우피치가 괜히 ‘두 시간 박물관’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게 아니었다. 또한 이 미술관에서는 어린이에게도 입장료를 받는다. 가격은 10유로. 유럽에서는 어린이에게 입장료를 받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어서 그런지, 그 규정이 조금 얄미웠다.

철통 같은 방탄유리 속 명화

중세에는 성인 혹은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만 예술의 소재가 될 수 있었다. 그 당시 인간의 육체는 더러운 것으로 여겨졌고 모든 작품은 가톨릭의 소유였다. 그러나 산드로 보티첼리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비너스를 소재로 그림을 그렸고, 죄악시하던 인간의 육체를 온전한 나체로 표현하였다. 보티첼리의 과감한 시도는 중세의 예술을 르네상스로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늘의 신 우라노스는 자식 중 하나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신탁을 받고, 자식들이 태어나는 족족 죽였다. 이 계획을 눈치챈 그의 아들 크로노스는 어머니인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자궁 속에 숨어서 우라노스가 잠든 사이 그의 성기를 잘라 바다에 버린다. 그 후, 바다에 떠다니던 성기 주위에서 하얀 거품이 생겼고, 그 거품에서 비너스가 탄생한다. 바다의 신은 비너스를 조개에 태워 육지로 보내는데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비너스가 키프로스 해안가에 도착했을 때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캔버스에 템페라, 172.5?278.5cm, 1485,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그림 속 비너스의 왼쪽에 있는 두 남녀는 서풍의 신 제피로스와 그의 아내 클로리스이다. 제피로스의 사랑을 받아들여 결혼하게 된 클로리스는 자신의 숨결이 닿거나 손에 닿는 모든 것이 꽃으로 변하는 능력을 받게 된다. 그래서 「비너스의 탄생」 속 그들의 주위에는 꽃이 산발해 있다. 또한 제피로스는 바람을 일으켜 비너스를 키프로스 해안에 도착하게 한다. 비너스의 오른쪽에 있는 인물은 비너스를 마중 나온 계절의 여신 호라이다. 그녀는 비너스에게 옷을 입혀 아름답게 꾸민 후 신들의 자리로 안내했다고 한다.

「비너스의 탄생」은 메디치 가문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그려진 작품이다. 그래서 이 작품엔 생명의 탄생과 결혼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먼저 비너스가 올라가 있는 큰 조개 및 여인이 쥐고 있는 망토 고리와 비너스의 은밀한 부분을 가리고 있는 머리채는 여자의 생식기와 생명의 탄생을 의미한다. 이 조개를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정신적인 부활, 아름다움, 여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조개 위에 서 있는 비너스는 지상으로 발을 옮기려고 하는데, 이는 순결을 상징하는 비너스가 결혼과 가정생활이라는 세계로 들어가는 첫 시점을 나타낸다.

완성작을 능가하는 거장의 미완성작 「동방박사의 경배」

레오나르도가 스승인 베로키오에게서 독립한 이후에 그린 첫 작품인 「동방박사의 경배」는 미완성이다. 1481년 레오나르도는 밀라노로 떠나기 몇 달 전에 제단화 「동방박사의 경배」를 위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 작품의 배경은 분명히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의 마구간이어야 옳다. 그러나 레오나르도는 이 그림의 배경을 폐허가 된 낡은 석조 건물로 설정했다. 동방박사들의 모습을 살펴보자. 이곳저곳에서 등장하는데다 표정과 제스처 또한 동적인 맛을 더해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을 그려 넣은 구도 역시 중요한 감상 요소가 된다. 레오나르도는 이 그림을 작은 인물화가 아닌 수십 명이 등장하는 거대한 규모로 구성했다. 또한 15세기에 유행한 회화 형식을 따르지 않고 주요 대상만 부각시키는 자신만의 새로운 방법을 적용했다. 즉, 동방박사들, 그리고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모습을 이차적인 거리감으로 확연히 구분한 것이다. 보티첼리와 기를란다요도 각각 「동방박사의 경배」를 그렸지만, 이들은 사람들이 에워싼 가운데 성모가 크게 두드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다 빈치는 처음으로 성모를 두드러지게 구성했다. 독립적이고 단순하게 모습을 드러낸 성모와 그녀 주위로 몰려든 사람들과의 뚜렷한 대조는 그만이 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치마부에나 지오토 등이 다리를 벌린 채 옥좌에 앉은 모습의 성모를 그린 데 비해, 그는 두 무릎을 모은 섬세하고 여성스러운 자세로 표현했고 이는 후대 화가들에게 본보기가 되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동방박사의 경배」, 1481~82, 246.4?243.8cm,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이 작품의 중앙에 종려나무와 쥐엄나무가 보이는데, 종려나무는 평화를 상징하고 쥐엄나무는 세례 요한의 상징인 동시에 유다가 목을 매고 자살한 나무이기도 해. 이 작품에는 두 나무 외에 성서의 내용에 관한 상징물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구나. 참, 13세기 멘데의 주교 기욤 두랑드라는 사람은 교회 안에 있는 그림과 장식은 평신도를 위한 성서 읽기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어. 그렇지만 레오나르도는 그런 의미에서 이 그림을 그리지 않은 것 같아.”

“왜요?”

“글쎄다. 정확한 것은 자신만이 알고 있겠지만, 성서의 내용을 그대로 보여주려는 것보다도 더 중요하게 부각시켜야 할 것이 있기 때문 아니었을까? 성서에 대한 그의 해석은 교회의 입장과 사뭇 달랐다고 해. 일반적으로 동방박사들을 다룬 작품들의 장소는 마구간이지만 레오나르도의 그림에서는 폐허가 된 석조건물인 것도 그 근거지. 동방박사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뒤로한 채 구원의 주를 찾아 나서잖니? 그런데 그들이 구세주를 발견하게 된 곳은 도시나 궁궐 혹은 사람이 없는 자연 속이 아닌 폐허와 혼돈의 한복판이야. 이것을 석조 건물로 표현한 것 같아. 그리고 작품 상단에는 말 탄 사람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데, 이것은 그 시대의 혼돈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구나. 인간을 위해 태어난, 인간들의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이라는 것이지. 아빠는 레오나르도가 마구간이라는 장소 대신 석조 건물을 그려 넣은 것은 그만큼 그림 속의 의미나 뜻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라고 생각해.”

민석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참, 이 작품을 보고 필리포 리피, 기를란다요, 보티첼리가 감동을 받았고 특히 라파엘로가 영감을 받아 이런 요소를 「아테네 학당」을 그릴 때 응용했대. 미켈란젤로도 영감을 받아 이 작품 속 요소를 시스티나 천장화에 그렸다는 이야기도 있단다. 그는 이 그림에서 빛에 의해 다양하게 시각화되는 인체의 조소적 효과를 표현하려고 했대. 레오나르도는 1481년 3월 아버지가 작성한 특이한 계약서에 서명했는데, 수도승들이 시스티나 성당에 그리는 그림에 대한 돈을 지불하는 대신 발델사에 있는 땅을 주기로 했고, 제단화를 24~30개월 사이에 완성시켜야 한다는 조건도 있었다는구나. 그런데, 레오나르도는 작품을 완성시키지 못했어. 아직 거장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그는 다른 예술가들과는 달리 바티칸? 초대되지 못했고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었지. 결국 어려운 경제 상황에 빠지게 되어서 1481년 말 화가가 아닌 군사 기술 전문가로서 밀라노 대공 루도비코에게 초청되어 그를 위해 일했단다. 궁핍했던 그의 재정 탓에 더 큰 일을 찾다가 이런 기회를 만난 것 같아. 결국 그 당시 작업 중이던「동방박사의 경배」는 미완성인 채로 남아야 했어.”

이후 다른 사람들에 의해 여러 번 그림에 덧칠되었음이 엑스레이 투시 조사를 통해 검증됐다. 미완성인 그림이지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스케치들은 당시 다른 화가들과는 확연히 다른 드라마를 구현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미완성으로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연구대상이 되는 것을 보면 대작은 대작이다.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마리아와 예수를 둘러싸고 경호하는 듯한 동방박사들의 모습에서 레오나르도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다. 그것을 통해 그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예수의 존귀함이었던 것이다.

우피치 미술관 관람을 끝내고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며 다음 목적지에 어떻게 가야 할지 고민했다. 이곳의 지리를 파악하지 못한 우리를 위해, 식당 주인이 직접 피렌체 지도를 구해 와 친절하게 붉은색 볼펜으로 표시까지 해주며 아카데미아 미술관과 브란카치 성당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

art in ads 11★ 순결함과 아름다움의 모티브








「비너스의 탄생」은 작품의 아름다움과 유명세뿐 아니라 르네상스와 결혼의 본격적인 시작을 내포하는 선언적인 성격으로도 잘 알려졌다. 그리고 이러한 면들에 초점을 맞춘 다양한 패러디 작품이 생겨났다. 1959년도 잡지 광고에서 옥스퍼드 페이퍼 컴패니는 첨단 디자인의 수영복을 입은 모델이 새로운 수영복 패션의 탄생을 알리는 비너스로 등장했으며, 2002년 개봉한 영화 「몽정기」 포스터에서는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교 남학생들의 비너스로 영화배우 김선아가 포즈를 취했다. 이외에도 다이아몬드 원석 업체인 드비어스 광고에도 소재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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