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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행복 말고 다른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위대한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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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개인의 행복과는 큰 상관이 없을 수도 있고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 곧 불행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찰스 디킨스는 사랑과 행복의 작가라기보다는 따뜻한 인간미의 작가로 기억될 듯하다.

여러분 안녕, 안녕! 나의 연인 같은 여러분, 안녕! 어쩐 일인지 여행기를 내고 앓아누워 버렸어요. 지상의 가장 안정된 온도라는 36도를 벗어나 버린 거죠. 그렇게 앓던 어느 날, 농익은 무화과 달콤한 냄새 진동하는 시골의 기차역에 서 있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들은 담배를 피우고 할머니들은 짐 보따리를 들고 구부정하니 서 있을 때, 그 옆엔 사루비아가 하얀 담벼락에 빠알간 원색의 아름다움을 뿜어대며 마치 그들의 동료처럼 서 있었습니다. 강렬한 빨간색을 보자 문득 로르카의 시 「솔레아의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아마도 사루비아가 빨간 망토를 걸친 여자처럼 생각되었던 모양입니다.

검은 망토를 걸치면 그녀는
세상은 쪼그맣지만
가슴은 광활하다고 생각한다

까만 망토를 걸치면 그녀는

부드러운 한숨과 절규 또한
흘러가는 바람결에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발코니를 활짝 열어 두었다
여명이 밝아오자, 발코니로
온 하늘이 쏟아져 들어왔다

아이 야야야야이
까만 망토를 걸친 그 여자

나 또한 한바퀴 빙그르르 돈 다음 사루비아처럼 빨간 망토를 걸치고 싶어 할 때, 쓸쓸한 가을의 대기는 사람들은 지금 모두들 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알려주는 듯한 바람을 타고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날아오르는 나뭇잎 하나가 조금 굽어진 화살표를 공기 중에 그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뭔가 다른 세계로부터 신선하고도 쾌활한 공기가 불어올 조짐은 없던 이 가을에 나는 갑자기 나의 독자이기도 하고 내 벗이기도 하고 내 말 상대, 내 밤새인 여러분들과 이제 다시 칼럼으로 이야기를 나눠야 할 때란 생각이 들었어요. 언젠가 우리 모두 한 글 안에서 만나게 되는 상상을 해봤어요. 저마다 자기가 아는 문장에 각자의 주석을 다는 거예요. 자기만의 주석으로 가득 찬 책을 한 권씩 품에 꼬옥 안는 꿈을 꾼 밤은 따뜻하더군요. ‘모든 사람은 모두 자기 자신의 저자다.’ ‘모든 사람은 모두 자기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텍스트는 텍스트 밖에도 존재한다. 삶에도, 거리에도, 빌딩에도, 걸음걸이에도, 이 강력한 믿음이 갑자기 어서 어서 힘을 내자, 라고 나를 움직이게 했어요. 나는 ‘우리 서로 접촉하자!’라고 입술 끝으로 속삭였어요. 아니, ‘우리 서로 밀착하자!’라고 속삭였다는 게 더 맞는 것 같습니다. 옆에 있는 뭔가와 밀착해 우리 둘 사이에 벌어질 어떤 일, 그것이 이 가을날의 한때가 되길 다시 갈망하게 되었어요. 나에게는 오싹한 추위로만 느껴졌던 이 가을날이 사실은 청량한 바람 부는 아름다운 날이었다는 것, 너무 늦지 않게 몸으로 느끼고 싶었어요.

아픈 동안에 어쩐 일인지 가치 전복적이란 말을 매일 생각했어요. 전복적이란 말의 어두우면서도 미끄러지는 듯한 느낌이 좋더군요. 누군가가 내 눈을 가리고 내 손을 잡고 뛰는 심장을 조금만 진정시켜 보라고 말하면서 묵직한 안개 속 어디 다른 데로 데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베르길리우스의 손을 잡고 지옥과 천국을 여행하는 단테의 심정도 이와 비슷했겠죠. 내 발밑에 뭐가 있든 나는 내딛게 되어 있었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뭔가를 겪고 체험해 보게 되어 있었던 거죠. 나에게 어디 다른 데로 가본다는 말은 내게 다가온 모든 상투적인 일들에 새로운 해석을 시도해 본다는 것과도 같은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새벽은 캄캄한 뒤에 온다는 말은 험준한 산맥이 신의 미소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놀라운 은유인 것입니다.



 

오늘 고전은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을 골라봤습니다. 어린 시절에 최초로 좋아한 디킨스의 책은 『올리버 트위스트』였습니다. 불행하나 근본이 선량한 아이에게 닥쳐오는 계속되는 불운, 그러나 결국 찾아오는 해피엔드와 그때의 안도감을 잊을 수가 없어서 어쩌면 나는 유독, 어린아이들에게 닥쳐오는 비극적 최후를 감당 못 하는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단 한 명의 어린아이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도 있는 사람이 되자는 어느 날 아침의 결심은 지금도 희미한 그림자에 불과할 수도 있는 내가 단단하게 발붙이고 있는 암석, 세계의 기반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 가을에 뭔가 내 눈동자 안에 반짝이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어떤 용기일 수도 있단 생각은 듭니다. 선량함과 따뜻함, 인간적 온기를 찾아 먼저 길을 나서는 자의 사소하지만 중요한 용기일 수도 있을까요? 그런데 그런 용기의, 한 처량하고 어딘가 옹색한 인간의 용기에 대해선 우리의 『위대한 유산』의 핍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용기가 위대한 유산이 되고 문학이 되었습니다. 『위대한 유산』의 유쾌하고 유치하고 단순하고 시시하게 떠들썩하기도 한 텍스트들 뒤에 있는 세계는 우리 모두의 출발점이었던 어떤 지점을 알려주는 듯합니다. 우리 모두가 어린아이였던 시절. 우리 모두가 따뜻한 인간이었던 시절.

그런데 『위대한 유산』을 좀 더 읽다 보면 다른 생각도 듭니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처럼 어느 이름 모를 폐허 같은 숲에 아름다운 달빛이 흘러내리는 저녁, 손을 잡고 누군가랑 그 숲을 걸어 나왔는데 달빛 아래 그림자를 보고도 우리는 우리가 또 뭘 잃고 살지 예감하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뭔가를 잃고 우수에 젖어 기진맥진해도, 우리는 또 스스로를 위로할 힘을 얻습니다. 세상의 뭔가가 반드시 우리를 덜 외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혹은 나 자신이 세상을 덜 외롭게 할 수도 있습니다. 나에게 『위대한 유산』은 그런 책입니다. 디킨스풍의 인과응보는 한바탕 떠들썩하게 유쾌, 통쾌, 시원한 쪽이라기보다는 쓸쓸하긴 해도 사랑스럽고 따뜻한 쪽인 듯합니다. 어떤 일을 겪게 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다시, 손잡고 숲 속을 걸어 나오던 날의 하얀 달빛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그것이 인간적인 겁니다. 세상은 쪼그맣고 가슴은 광활합니다.

***

만약 <사운드 오브 뮤직>의 폰트랩 대령의 아이들이 “마리아 수녀님, 도레미 송은 이제 지겨워요. 오늘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다면 마리아가 치마폭에 애들을 둘러앉힌 채 들려주기 가장 좋은 이야기, 아마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일 것이다. 부당하게 세상에 던져져 눈물로 얼룩진 소년이 그 눈물과 웃음으로 범벅된 꿈결 같은 밤잠과 자기만의 너무 거대하지 않은 환상과 꿋꿋함을 유지하기 위해 품고 잘 한 권의 책이 있다면 그 또한 『위대한 유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을 강타한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책 『천사의 게임』 초반부에서 아버지에게 구타당하는 가난하고 외로운 바르셀로나의 소년 다비드 마르틴이 침대 밑에 감춰둔 책 역시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이었다. 그 책을 발견한 아버지의 폭행을 뒤로하고 한밤중에 다비드가 이빨이 깨진 채 셈페레 서점으로 달려가는 데서 잃어버린 책들의 도서관과 그의 인생은 연결될 운명이 된다.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은 익살과 위트와 인간애로 가득 찬 책이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이런 남자를 봤다고 상상해 보자. 분명히 어른이지만 어쩐지 어린아이 적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은, 조금 덜 자란 키에 소년 같은 어깨, 고급 양복이 어딘지 어정쩡하니 어울리지 않는, 무척 소심하고 예민할 것 같은 남자 말이다. 그 남자의 뒷모습은 밝은 햇살 아래, 도시의 먼지 아래, 인파에 쌓인 횡단보도의 명멸하는 빛 아래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지 모른다. 그가 어느 해 떠나온 쓸쓸한 고향을 기쁨으로도 슬픔으로도 잊지 못한다는 것, 고향을 떠나기 위해 처음 양복점을 찾아가 재단사 앞에 섰을 때 자기의 몸을 어쩌지 못하고 불편함과 어색함을 느꼈으리란 것, 고향을 떠날 때 부러움 섞인 마을 사람들의 찬사에 부자연스러움과 함께 자부심과 자책감을 동시에 느꼈으리란 것, 양복을 입고 몇 번이나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 이리저리 걸어보고 한숨을 쉬면서도 대체로 만족감을 느꼈으리란 것, 도시에 올라와 비슷비슷한 양복을 입은 사람들과의 그저 그런 쓸데없는 교제에서, 어느 날은 허망함을 느끼고 비틀거리며 취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삶을 바꾸려 하지는 않았으리란 것, 세련된 미녀 앞에서 자신을 어딘가 꾸어다놓은 보릿자루 같다고 여기며 처량한 자의식 때문에 도움 될 것 없는 고독을 느꼈으리란 것, 다시 고향에 내려갔을 때 지루하고 촌스러운 고향 사람들과 섞이고 싶어 하지 않으며 묘한 거리감을 느꼈으리란 것, 고향의 허름한 식탁에 함부로 앉지 않고 낡은 침대에 다시 편안히 눕지 못하는 데서 한밤에 죄의식을 느꼈으리란 것, 대도시의 어스름 불빛과 더러운 먼지들이 자신을을 책망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으리라는 것. 그러나 그가 어느 날인가는 선량함과 따뜻함을 잃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부끄러움을 무사히 극복해 내리라는 것. 결국은 자기 어깨 위에 자기만의 둥근 세계를 만들어 내리라는 것. 그래서 그의 좁은 어깨는 참으로 많은 말을 해준다. 꼭 한번 안아보고 싶었던 사랑하는 여자를 안아보지 못한 어느 괴로운 날의 쓸쓸함, 그러나 그 어깨에 의지해 오는 사람을 뿌리치지 않았을 때 뭔가 좋고도 필요한 일을 해냈다는 성취감. 그런데 우리 세계는 이런 종류의 어깨에 너무나 많이 기대고 있다.

우리의 핍이 바로 이런 남자이다. 핍은 특별한 남자라기보다는 우리 모두 안에 깊숙이 묻혀 있는 공공선에 가까운 평범한 속성―작은 성공에 기뻐하고 우정을 지키려 애쓰고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견뎌 내려 하고 가난한 친족들을 부끄러워도 하지만 형편이 닿는다면 그들의 의사야 어쨌든 더 나은 삶이라 자신이 생각하는 것으로 이끌어 주려 하고, 신사가 되고 싶어 하고, 무언가를 배신하는 게 힘들고, 은혜를 잊지 않고, 형편이 좋을 때는 어딘가 게으르고, 나태하고, 유머 감각을 잃지 않고―의 대변자인데, 이런 사람들의 삶은 치열하고 예술적이라기보다는 단순하고 소박하다. 그런데 이런 핍이 내 눈에는 거의 예술적으로 보이는 몇 명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위대한 유산』은 이야깃거리가 풍성한 소설이 되었다.

핍이 아직 읍내의 양복점에 가서 양복을 맞추기 전에 이미 그의 인생의 중요한 일은 다 일어나기 시작했다. 59장에 이르는 이 긴 글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은 1장 첫 문장이다.

우리 아버지의 성은 피립이고 내 세레명은 필립이었는데 어린아이 적 내 짧은 혀는 이 이름과 성을 핍 이상으로 길게도 분명하게도 발음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늘 내 이름이 핍이라고 말했고 그 결과 나는 핍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우리 아버지의 성씨가 피립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아버지의 묘비와 우리 누나인 조 가저리 부인―누나는 대장장이의 아내였다―의 말에 근거를 둔 것이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본 적이 없고 그분들의 사진 같은 것도 본 적이 없으므로 그분들의 생김새에 관한 내 최초의 상상은 터무니없게도 그분들의 묘비로부터 비롯되었다. 아버지의 묘비에 새겨진 글자들의 모양을 보고 나는 이상하게도 아버지가 네모나고 단단한 체구에 살결은 가무잡잡하며 머리카락이 검고 곱슬진 사람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품었다. 그리고 상기한 자의 부인 조지애너 역시 여기 잠들다, 라고 적힌 비문의 글자체와 문투를 보고 어머니는 얼굴에 주근깨가 있고 병약한 사람이라고 어린애처럼 멋대로 결론을 내렸다.

내가 이 문장을 처음 본 것은 졸음이 쏟아지던 순간이었는데, 무덤의 글자를 보고 이미 죽고 없는 자기 부모님의 모습을 상상하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읽게 되자, 마치 그 무덤의 글자들이 하나, 둘씩 날아서 꽃잎처럼 내 눈앞을 날아다니는 것 같았고, 한없이 외로운 마음이 한없는 풍부함과 맞닿는 어떤 지점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애틋하게 결합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읽는 즉시 핍에게 매료되었던 기억이 난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은 아직 큰 왜곡 없이 외로운 교회 무덤 너머 강과 바다로 그 가녀린 호흡을 뿜어대고 있었다.

영화 <위대한 유산>(1998)의 한 장면

매부 조 가저리의 도제가 되어서 평생 대장장이가 될 운명의 핍의 인생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최초의 사건은 두 가지다. 하나는 외로운 교회 무덤 너머 선처럼 보이는 것이 강이라는 것, 바람이 야수처럼 숨어 있다가 사납게 휘몰아치며 불어오는 저 먼 곳은 바다라는 것, 그 모든 게 무서워 조그만 몸을 벌벌 떠는 존재는 바로 자기 자신이란 것을 핍이 인식하던 어느 날 “이놈 꼼짝 마라!”라고 외치는 한 탈옥수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핍은 거친 회색 옷차림에 발에는 쇠고랑을 차고 절뚝거리며 떨고 있는 탈옥수에게 빵과 돼지고기 파이를, 무서운 누나 몰래 거의 목숨을 걸고 훔쳐다 주는데(누나가 너무 무섭기 때문에) 이 일이 중요해지는 것은 우리의 탈옥수가 한 어린 소년이 자신을 위해 빵을 훔쳐다 주었단 것을 평생 결코 잊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핍의 인생의 두 번째 중요한 사건은 미스 헤비셤과 그녀의 양녀 에스텔라와의 만남이다. 미스 헤비셤은 핍의 마을에 사는 부유한 상속녀인데, 엄청난 부자이자 무서운 부인으로 쇠창살을 친 커다랗고 음울한 저택에서 철저히 은폐된 삶을 사는 기괴한 여자로 동네에 소문이 나 있었다. 미스 헤비셤에게는 공공연한 비밀이 하나 있는데, 그건 그녀의 젊은 날 결혼식 날짜가 정해지고 웨딩드레스가 준비되고 신혼여행 계획이 세워지고 결혼식에 올 하객들도 다 초청되고 난 후, 미스 헤비셤이 결혼식장에 가려고 드레스를 막 입던 9시 20분에 신랑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 그녀는 햇빛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웨딩 케이크를 치우지도 않았고 웨딩드레스도 면사포도 하얀 구두도 벗지도 않았다. 그 집의 시계는 영원히 9시 20분에 멎게 되었다.

미스 헤비셤 곁에는 에스텔라라는 아름다운 양녀가 있다. 에스텔라는 모든 남성들에게 복수하라고 미스 헤비셤이 기른 아이다. 어느 날 핍은 미스 헤비셤의 집에서 오만하고 아름다운 꼬마 숙녀 에스텔라를 만나게 되는데 그 이후 그의 삶은 바뀌어 버린다. 그날 이후 핍의 돈과 신분에 대한 비참한 동경은 모두 그녀로부터 나왔다. 대장장이의 도제가 된 핍이 화덕의 불길 속에서 쇳덩이를 꺼낼 때 그의 얼굴 앞엔 새빨간 불빛이 넘실넘실 대고 있는데, 그 불빛은 자신은 비참하고 더러운 꼬마에 불과하지만 언젠가는 아름다운 에스텔라에게 걸맞은 신사가 되길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갈망하는 핍이 가까운 시간 안에 비참함과 고통을 지옥 불처럼 경험하게 될 거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철과 금, 가시와 꽃’의 삶.

그런데 어느 날 핍은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으로부터 오는 ‘위대한 유산’을 받게 되고 그렇게나 염원하던 신사가 되기 위해 런던으로 떠나게 된다. 언젠가는 ‘구운 쇠고기, 자두 푸딩, 맥주 일 파인트, 일 갤론의 겸손’으로 이뤄진 정찬을 마을 사람들에게 베풀어주려는 계획을 갖고. 그런데 그 위대한 유산은 도대체 누가 준 것일까?

등장인물들이 모두 얽히고설키는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의 매력은 조 가저리, 미스 헤비셤, 탈옥수 매그위치 같은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조 가저리는 선량함과 강인함에 있어서는 <반지의 제왕>의 호빗 ‘샘’ 급에 해당한다. 그는 부드러운 절대 선을 상징한다. 조 가저리는 ‘사람을 으깨버릴 수도 있고 계란을 살며시 두드릴 수’도 있는 힘과 부드러움을 겸비한 사람인데, 대장장이의 힘센 팔을 가졌음에도 핍의 누나이기도 한 아내에게 핍과 함께 모질게 맞고 산다. 조는 핍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불쌍한 우리 어머니에게서, 고되게 노예처럼 일만 하면서 정직한 마음에 상처만 입고 평생 하루도 마음 편하게 지내지 못하는 그런 여자의 모습을 너무나 뼈저리게 보았단다. 그래서 여자에게 올바른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잘못을 저지르는 걸 끔찍이 두려워하게 되었단다. 그래서…… 내가 좀 불편하게 사는 것이 둘 중에 그래도 낫겠다고 생각했지. 물론, 핍, 괴로움을 당하는 게 나 혼자라면 얼마나 좋겠니…….”

이런 대화가 오고갈 무렵, 핍은 어렵사리 배운 영어로 조에게 엉망진창 철자로 가득한 편지를 쓰는데, 나는 이 편지을 읽을 때마다 꼬마의 다정함과 자기 마음을 어떻게든 알리고 싶어 하는 천진난만함 때문에 자꾸만 웃게 되고, “핍, 나한테도 한 통 써줄래? 내용은 ‘검나게 보고 시퍼요. 검나게 조아해요’라고 해줄래?”라고 말을 걸고 싶어진다.

치내하는 조 난 당시니 아조 자알 지네고 이끼를 비러요. 난 내가 빨리 조 당시늘 가르쳐줄 쑤 이끼를 비러요. 그러믄 우린 매우 기뿔 거예요. 그리고 내가 조 당시느 도재가 되믄 얼마나 신날가요. 날 미더요. 사랑하는 핍이.

어린 핍의 ‘날 미더요’란 말에 마치 ‘널 미더. 너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날 미더라’라고 대답하듯이 산 게 조의 삶이었다. 절대 선의 상징인 조는 초라해 보이는 시골 사람에게도 진정한 자존심이 있다는 걸 멋지게 보여준다. 그는 어느 날 런던으로 신사 핍을 찾아가는데 그때 그는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굴종하는 듯한 태도로 어색하고 초라하게 있다가 이런 말을 한다.

“앞으로 넌 이런 옷차림을 하고 있는 날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텐데, 그건 내가 자존심이 강해서가 아니라 그저 올바른 자리에 있고 싶어서라고 해야 할 거야.

혹시라도 네가 날 다시 만나고 싶은 일이 생긴다면 그땐 대장간에 와서 창문으로 머리를 들이 밀고 대장장이인 이 조가 거기서 낡은 모루를 앞에 두고 불에 그슬린 낡은 앞치마를 두른 채 예전부터 해오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도록 하거라. 대장장이 옷을 입고 손에는 망치, 또는 담배 파이프라도 들고 있는 내 모습을 생각하면 너는 나한테서 지금 이런 차림의 반만큼도 흠을 발견하지 못할 거야.”


세상만사가 바뀌어도 자기가 믿는 그곳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생활하고 그곳에서 평가받으려는 선량한 무지렁이 대장장이에게서 나는 진짜 명예로운 남자의 모습을 보곤 하는데, 소설의 거의 거의 마지막 장면에서 조가 빚쟁이에게 쫒기고 병든 핍을 돌봐주는 장면을 읽다 보면 조 같은 사람이야말로 우리 곁에 있는 구세주란 생각이 든다.

영화 <위대한 유산>(1998)의 한 장면

그러나 윤리적 미덕, 그리고 진실의 속성에 관해서 가장 놀라움을 선사하는 인물은 평생을 비참함과 굶주림과 구타 속에 살았던 탈옥수 매그위치이다. 자기의 유산은 미스 헤비셤이 은밀히 하사한 줄로만 믿고 있었던(그 결과로 헤비셤의 상속녀이자 양녀인 에스텔라와도 결국은 결혼하게 되리라 믿고 있었던) 우리의 엉터리 신사 핍에게 어느 날 불량하고 탐욕스럽고 게걸스럽게 먹어대던 그 옛날의 종신 죄수가 한밤의 불길한 운명처럼 다시 찾아온다. 그리고 너무나 놀랍게도 자신이 위대한 유산을 준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너는 나한테 고귀하게 행동했단다, 핍. 고귀하게 말이다. 나는 그걸 결코 잊지 않았다. 내가 널 신사로 만든 사람이란다. (…) 그때 난 맹세했다. 일 기니를 벌 때마다 그 돈은 반드시 너한테로 갈 거라고. 네가 편안하게 살도록 난 고생을 했고 네가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난 열심히 일했단다. 양들의 얼굴 말곤 아무도 못 보며 살았을 때 난 네 얼굴을 떠올렸다. 여기 그 애 얼굴이 다시 보이는군,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날 바라보고 있는 그애 얼굴이 말이야. 난 안개 낀 습지에서 널 보았을 때처럼 똑똑히 네 얼굴을 보곤 했단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탁 트인 하늘 아래서 외쳤지. 내가 만약 자유의 몸이 되고 부자가 된다면 반드시 그 앨 신사로 만들겠습니다. 만약 그렇게 안 하면 날 꼬꾸라지게 하소서. 그런데 난 정말로 그걸 해낸 것이다. (…) 저 자는 몇 년 전에 죄수였다고. 그리고 지금도 비록 운이 좋아 부자가 되었지만 역시 무식한 상놈일 뿐이라오, 라고 말했을 때 나 자신에게 비록 내가 신사가 아니고 배운 것도 전혀 없지만 난 유식한 신사를 소유한 몸이시다……”

이 장면은 핍의 관점에서 보자면 진정한 진실은 언제나 생소한 것이고 진실은 언제나 ‘폭로’된다는 것. 그래서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우리가 다른 세계에 놓이게 된다는 것, 모든 익숙한 것들이 낯설어진다는 진실의 속성을 말해주기도 하지만 매그위치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생은 누구에게나 살아가야 할 분명한 이유와 하나의 열정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나는 런던에서 영원히 추방당한, 평생을 위선적인 가짜 신사들에게 호되게 당하고만 살아온 매그위치가, 런던의 신사를 기르며 살아갈 이유를 찾는다는 점, 빵 한 조각을 가져다 준 어린아이의 행동에서 고귀함을 보고 거기에 일생을 걸고 답하려 했다는 점에 안쓰러운 매력을 느낀다. 그리고 그가 런던에 돌아오면 교수형 당할 운명임을 알면서도 핍을 찾아와 영원히 같이 살고 싶어 했단 점 때문에 인간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핍이 진정한 신사가 되는 것은 매그위치와의 재회 이후다. 핍은 성공한 사람에게 등을 돌리는 것보다 실패한 사람, 곤경에 처한 사람에게 등을 돌리는 것이 더 어려운 유형의 사람이다. 자기에게 돈을 준 사람이 흉악한 죄수라는 사실에서 핍이 느꼈던 수치심과 당혹감은 이내 세심한 배려와 의리와 선량함으로 바뀌는데 그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변신이 소설의 그 어느 장면에서보다 그를 돋보이게 한다. 그는 구속된 매그위치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는 당신 곁을 결코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느님께 빌며 말하건대 당신이 저에게 그랬던 것처럼 저도 당신에게 충실하게 행동하겠습니다.” 그에게는 쓸쓸한 따뜻함이 있다. 그는 결코 동정심을 잃지 않았고, 시절이 좋았을 때는 사랑에 눈먼 소심하고 게으른 한량에 불과했지만, 매그위치와 미스 헤비셤을 대하는 태도는 고결했다. 매그위치는 기쁨을 알고 죽을 수 있게 되었다.

미스 헤비셤은 살아가는 할 분명한 이유로 복수를 택한 사람이다. 나는 종종 자기가 사는 집 시계의 시침과 분침를 세워버린 미스 헤비셤에 대해 생각한다. 9시 20분에, 9시 20분에, 9시 20분에. 그녀는 평생 그 시간을 얼마나 많은 이미지와 결부시켜 보았을까? 9시 20분에 드레스의 지퍼를 올렸지. 9시 20분에 아직 상처받지 않은 가슴을 쭉 펴보았지. 9시 20분에 행복을 꿈꿨지. 9시 20분에 우편마차는 달렸지. 9시 20분에 편지 한 통을 받았지. 영원히 저주스러운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영원히 반복되는 삶을 사는 것과도 같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기가 받은 고통과 비탄만 기억하고 살기로 마음먹고 자기 슬픔에 광적으로 집착했고 죽음에 임박하기까지 자기의 허위의식에서 벗어난 적이 없고 자기의 시련을 견디느라 남의 시련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기 때문에 이 소설에 나오는 누구보다도 공허하면서도 위선적이고 자기 탐닉적이다. 절망 때문에 머리를 아래로 처박고 자멸하는 하얀 머리의 새가 그녀의 이미지다. 그녀는 나중에 핍에게 용서를 비는데 둘 사이엔 이런 대화가 오간다.

“넌 지금 아주 불행하겠지?”
“저는 전혀 행복하지 않습니다. 미스 헤비셤. 하지만 제 불행은 당신이 아는 것 이상의 다른 것들에도 그 원인이 있습니다.”
“불행의 원인이 다른 것에도 있다고 말하다니 넌 고결한 마음을 가졌구나.”


복수를 꿈꾸던 미스 헤비셤이 미칠 듯이 용서를 구하며, 후회로 가슴을 쥐어뜯으며 죽어가야만 했던 것은 어쩌면 자기 불행의 원인을 다양하게 찾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우리가 쓰디쓴 불행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 불행에 결정적인 유일한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 다른 모든 일들처럼 불행도, 그 불행을 부른 우연한 일들도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해석을 기다리는 하나의 의미 있는 사건에 불과할 수도 있다.

심장 없는 미녀 에스텔라와의 사랑에 관해 말하자면, 핍은 정말로 눈멀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핍이 단 한번도 그녀의 존재와 제대로 마주 서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녀 자체가 존재법을 모르는 꼭두각시 미녀였다. 핍은 황폐한 미스 헤비셤의 집을 복구하지도, 어두컴컴한 방마다 햇빛이 비치도록 하지도, 시계들을 다시 똑딱거리게 하지도, 차디찬 벽난로에 불길이 활활 타오르도록 하지도. 거미줄을 걷어내고 쥐와 벌레를 모두 박멸해버리지도, 에스텔라를 위한 로맨스의 젊은 기사가 되지도 못했지만, 그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핍이 미스 헤비셤과 에스텔라에게 보인 관용은 훌륭했고 고결했지만 그렇다고 핍을 행복하게 하지는 않았다.

안톤 체호프는 ‘인생에 행복이란 없고 또 있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인생에 의미와 목적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행복이 아닐 것이다. 그보다 더 위대하고 더 합리적인 어떤 것이리라. 그러니 착한 일을 하라!’라고 했는데 『위대한 유산』의 핍이 우리에게 주는 느낌도 나에게는 이와 비슷하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개인의 행복과는 큰 상관이 없을 수도 있고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 곧 불행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찰스 디킨스는 사랑과 행복의 작가라기보다는 따뜻한 인간미의 작가로 기억될 듯하다. 디킨스는 아무도 피해갈 수 없는 좌절, 배신, 안타까움을 유머러스하게 위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연과 교훈이 넘치는 그의 글에 지루함이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핍은 소설의 끝에서도 사랑받고 행복해지고 싶은 보편적 욕망을 해결하진 못했지만 난 비디(그녀는 핍의 사랑이 될 뻔 했지만 조의 아내가 된 무척 현명한 여인이다)에게 핍이 한 이런 말이 좋다.

“사랑하는 비디, 일찍이 내 인생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던 것을 나는 그 어떤 것도 잊지 않았어. 그리고 일찍이 내 인생에서 조금이라도 자리를 차지했던 것 역시 거의 잊지 않았어, 하지만 내가 한때 가련한 환상이라고 불렀던 그것은 모두 사라졌어, 비디. 그래, 모두 사라졌어.”

하지만 결핍이 없다면 과연 우리가 우리일 수 있을까? 결핍과 우리가 분리될 수 있기나 한 것일까? 결핍이야말로 우리의 안과 밖 아닐까? 그런데 이런 결핍을 인정할 때 오히려 우리는 공허하지 않다.

이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은 시련을 통해 모두 더 나은 사람으로, 더 순수한 쪽으로 변해 가는데 그것이 우리 모두를 위한 디킨스 식 위대한 유산 1호 품목이 아닐까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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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혜윤 (CBS PD)

『런던을 속삭여줄게』,『고전읽기-세계가 두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이후 쭉 고전 읽기에 푹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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