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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만남] 눈물의 힘으로 쓴 첫 소설로 독자와 만난 충만한 자리 - 『눈물은 힘이 세다』 이철환

“눈에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카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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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눈길을 끈 것이 있었어요. 여느 독자 만남과는 다른 작가의 태도.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놓기 전, 작가는 먼저 나서서 각 테이블마다 인사를 다닙니다. 허허, 이런 경험, 처음입니다. 더구나 작가가 품고 있는 시들이 즉석에서 낭독됐다지요.

지난달 36주기를 관통한 파블로 네루다가 있었죠. 알다시피, 그는 칠레의 명민한 시인이자 혁명가로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대문호입니다. 늘 9월이면 그를 떠올리는데, 올해라고 예외는 아니었죠. 더구나, 지금-여기는 네루다와 같은 혁명 시인이 절실히 필요한 시절인지도 모르니까요. 세상과 민중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충만했던, 로맨틱한 시로 세상의 숱한 연애를 도왔던, 그였습니다. 약간 과장해서 칠레 사람치고, 그의 연애시 한편 외우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죠. 물론 한국인이라고 외우고 있지 말란 법은 없다죠.

가을 바람 끝에 낙엽 냄새가 묻어 있는 어느 가을 밤, 네루다의 시를 꺼내 읊조리고 낭독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아, 정말이지, 반가워서 “네루다, 만세.”를 외칠 뻔도 했다지요. 네루다를 들어서, 네루다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그렇게 멋진 가을밤. 36년 전, 야비한 놈들 틈바구니에서 숨을 거두고 구름의 저편에 있을 네루다도, 36년 뒤 자신의 대륙 반대편에서 이뤄지는 낭독에 참으로 반가워했을 밤.

네루다의 시를 그렇게 낭독한 이는, “눈물은 힘이 세다.”고 말하는 작가, 이철환입니다. 지난 15일이었죠. 서울 광화문의 한 커피 전문점, ‘이철환 작가와의 티타임’이 열렸고, 이 자리를 찾았습니다. ‘작가 이철환을 만나고 싶다.’라는 열망을 품고 쌀쌀한 날씨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지요. 『연탄길』로 사랑을 받은 이 작가의 첫 번째 소설 『눈물은 힘이 세다』(이철환 지음/해냄 펴냄) 출간 기념 독자들과 만난 시간이었습니다.

유난히 눈길을 끈 것이 있었어요. 여느 독자 만남과는 다른 작가의 태도.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놓기 전, 작가는 먼저 나서서 각 테이블마다 인사를 다닙니다. 허허, 이런 경험, 처음입니다. 더구나 작가가 품고 있는 시들이 즉석에서 낭독됐다지요. 가을이 덕지덕지 묻은 시가 내 귀를 간질이는 밤, 그렇게 따뜻하게 감싸고 위로할 수 있는 온기를 품은 자리, 이날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이 됐다지요.

아픔을 딛고, 다시 책으로 돌아온 이철환 작가

이철환 작가는 당부합니다. “뭐든 질문해 주세요.” 그렇게 함께 호흡할 것을 권하며, 나중에 선물까지 증정하겠답니다. 『눈물은 힘이 세다』 표지 그림이 담긴 액자. “와 주셔서 무척 감사합니다. 오늘 이 자리는 여러분이 주인공입니다. 저 같은 사람이 주인공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고요, 『눈물은 힘이 세다』 주인공이라는 말은 맞겠네요. 무엇보다 격의 없이 얘기를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계급장 떼고 마음에 있는 얘길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진정 있는가 하면, 그렇질 않죠. 이 시간을 통해 조금 더 인간적으로 나눌 수 있는 공감의 장을 마련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이 시간을 추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운을 뗀 이 작가는, 자신이 겪은 우울증을 털어놓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눈물은 힘이 세다』의 주인공, 유진이 겪었던 우울증. 역시나, 이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겨진 것이네요. ‘작가의 말’에서 적지 않은 자신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고 언급했듯이. “전 물이 없으면 30분 이후는 발음이 안 돼요. 왜냐면 우울증 약을 3년을 먹었습니다. 그 약, 독합니다. 빨간색 우울증 약이에요. 약 이름을 알고 싶어서 물으니까, 간호사가 웃어요. 적어줬는데 ‘센시발’이에요. (웃음) 아침에 2알, 저녁에 3알, 하루 5알을 먹었습니다. 진짜 독한데, 그만큼 우울증이 깊었던 겁니다. 그거 먹을 때는 발음이 안 돼요. 자율신경계에 변화를 주기 때문에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까지 온 겁니다. (물을 마시는 건) 그 약의 부작용인 거죠. 이 물이 기름 역할을 하는 것이라 강의 같은 게 있으면 물통을 끼고 삽니다. 원하신다면 혀가 엉키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웃음)”

의외로 그 우울증은, 『연탄길』로 엄청난 사랑을 받은 이후였어요. 아이러니하게도 그 엄청난 사랑 때문에 반대급부로 우울증이 왔다고나 할까요. 『연탄길』이 잘나가자 여기저기서 많이 그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단 한 군데도 거절을 안 했다네요. 공명심 이런 건 아니었고, 고마워서였답니다. 1997년 첫 책이 나왔으나 사람들의 외면을 받았던 기억 때문에. 그러나 그렇게 모든 호출에 응하다 보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었고, 결국 우울증까지 왔습니다. 엄청난 영광과 명예가 안겨다 준 후폭풍이랄까요. “그렇게 깨지고 나니까, 이름을 얻는다는 것, 박수를 받는다는 것도 별 게 아니라는 깨달음도 얻게 됐습니다. 그땐, 정말 『연탄길』을 제 눈앞에서 보면 (가슴에서) 불덩이가 올라오더라고요. 세상과 단절했습니다. 머리도 안 감고, 세수도 안 하고, 발톱 손톱도 안 깎고, 문밖출입도 안 했어요. 이빨만 닦았어요. (웃음) 하루 한 끼 정도 먹었어요. 죽을까 봐. 환청도 들리고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었지요.”

희한한 일이죠?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꿈을, 각고의 노력 끝에 이뤘는데, 우울증이라니요. 『연탄길』이 나오기까지 캄캄한 시간이었는데, 그것이 나왔을 때는 앞을 보지 못할 만큼 눈이 부셨어요. 그러다 다시 어두운 방에 처박혀 있을 때, 또 캄캄한 밤이었지요. 3년 만에 (우울증을 떨치고) 일어섰을 때, 뭘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들었습니다. 예전처럼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칠 것인가, 글을 쓸 것인가. 그 결정은 어렵지 않았어요. 다시 글을 쓰자.”

그가 다시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바로 독자들 때문이었습니다. 용기를 준 거죠. 그 이후 그는 다시 책을 냈고, 이번에 첫 번째 소설까지 짓게 된 것이죠. 물론 그는 ‘글이 또 다시 절 쓰러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지만, 그를 다시 살게 하는 것도 글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는 책을 통해서도 그 깨달음을 이렇게 얘기하고 있으니까요. “사람을 꿈꾸게 하는 건 기쁨이 아니었다. 사람을 꿈꾸게 하는 건 아픔이었다.”(p.75) “바람개비를 돌아가게 한 건 바람이 아니었다. 바람개비를 돌아가게 한 건 바람개비의 구멍 뚫린 가슴이었다.”(p.101) “아픔을 위로할 수 있는 건 아픔일 테니 말이다.”(p.124)

맞아요.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 없습니다. 이 작가에게도 글쓰기는 참으로 고역이고 힘듭니다. 단명하는 1위 직업군 바로 글 쓰는 사람이라는 통계도 얘기합니다. 허허,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허접한 잡글이나 쓰는 나도 빨리 죽는 건가?’라는 생각이 스칩니다. 미인은 박명이라지만, 미인도 아닌 제가 단명이라니요. 흑, 슬퍼요. 우리, 술 퍼요.

“영화감독 타르코프스키는 그의 책 『봉인된 시간』에서, 사람들이 영화관에 가는 것은 잃어버린 시간과, 놓쳐버린 시간과, 아직 성취하지 못한 시간 때문이라고 말했다. 삶도 그랬다. 잃어버린 시간과, 놓쳐버린 시간과, 아직 성취하지 못한 시간 때문에 삶은, 살아지는 거였다.”(p.158)

독자들이 있기에 충만한 자리

무엇이 당신을 살게 하나요. 죽고 싶다는 생각도 하다가 다시 살고자 하는 욕망이 생긴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이 작가는 아마도 글을 통한 소통이 자신을 다시 살게 한 것이 아닐까 얘기하네요. “제가 주인공이 아니라 여기 오신 분이 주인공이라고 한 거, 진심이기도 하고요, 저는 지금 이 자리에 굉장히 충만해 있습니다. 이 시간이 굉장히 그리울 것 같아요.”

그는 작가의 말에 이런 말을 밝혔죠. “나는 나의 글쓰기가 세상과의 소통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나의 글쓰기가 허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나의 글쓰기가 밥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소설은 한 개인의 소통과 허영과 밥을 뛰어넘어 그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 그 길은 내게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캄캄한 빛이었다. 나는 지금, 충만한 기쁨으로 그 빛을 찾아가고 있다. 다만, 깊이가 없는 높이는 높이가 아님을 끝끝내 잊지 않을 것이다.”(pp.241~242 작가의 말 중에서)


그는 말을 잇습니다. “언어예술이든 무대예술이든, 예술가들은 허영이 없으면 못할 것 같아요. 그 대신 허영만 있는 게 아니고, 묘한 느낌이 있습니다. 거창고등학교에 가면 직업선택 십계가 있는데, 재미있는 것들이 있어요. 하나는 월급이 적은 곳으로 가라. 또 하나는 유명해지는 것과는 거리가 먼 곳으로 가라. 거창고가 4년제 대학입학률 전국 1위라지요. 의식?생각 있는 사람들의 자녀나 예술가 자녀들도 많이 다니고, 들어가기도 쉽지 않대요. 지금 시대에 보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직업선택의 십계가 있는데, 전 그 말이 이해가 가요. 전 유명한 사람이 아니지만, 한편 유명해지고 싶은 생각도 있거든요. 당신, 그만하면 많이 가진 거 아니냐고 하는데, 아닙니다. 사람의 인식의 기준은 발을 딛고 있는 이곳인 것 같아요. 계단 열 개 밟고 올라온 곳이 기준이 되는 것이죠. 여기서 밑으로는 안 보이는 거죠. 이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자리에서 불안해하지 않기.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어느 자리, 어느 위치에서건, 그것을 배반합니다. 불안해할 뿐 아니라, 공포에까지 사로잡히죠. 불안과 공포의 일상화. 시대나 권력이 시민들을 통치하는 강력한 수단이기도 한데, 사람들은 끊임없이 다른 누군가와 비교를 합니다. 엄친아, 엄친딸이 자연스레 통용되는 이유죠. 이거 골 때립니다. 자기 자신을 살피고 돌아보지도 않고, 비교를 통해 불안해하고 공포심에 포획됩니다.

“여기에 서서 불안해하지 않으면 되는데, 불안해합니다. 괴테가 봉우리에는 휴식이 있다고 했는데, 그게 아닙니다. 지금의 봉우리는 끊임없이 봉우리를 갈망해요. 제 스스로 그런 모습을 보고 한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지금에서야 유명해지는 것과는 거리가 먼 곳으로 가라는 말이 이해가 갑니다. 끝이 없다는 것이죠.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릴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여기 이곳에 온 것도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걸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삶의 선택이 다르다고 봅니다.”

그는 자신을 돌이켜 보고 마음을 헤아려 본답니다. 독자들이 선택하지 않았을 때,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글쓰기는 제게 밥이거든요. 생존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그리 생각합니다. 한 십 년 전쯤에 돌아가 봅시다. 각자 갖고 싶은 것이 있었을 것이고, 지금 가진 것이 있을 거예요. 저는 그것만 있으면 끝난다, 만족할 게 없다고 생각한 게 있었어요. 근데 그것을 가졌을 때, 그 기쁨이 그리 오래가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그가 다시 글쓰기에 매진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독자들. “엊그제 아내에게, 어느 날 머리를 빡빡 깎고 들어오면, 일정이나 행사는 다 취소해달라고 얘기했어요. 아내도 제 사정을 알고, 몇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왜 이렇게 집착하고 있는가, 이 책에 집착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익숙한 환경 속으로 매일 나가는 사람과 낯선 풍경 속으로 매일 나가는 사람은 다릅니다. 사실 이 자리, 익숙하지 않은 자리죠. 그게 저를 충만 되게도 하지만 굉장히 힘들게도 합니다. 근데 어떤 것이든 다 할 수 있거든요. 책을 위해서라면. 『눈물은 힘이 세다』를 위해서라면, 제주도에서 오라고 하면, 비행기를 못 타니까 배를 타고서라도 갈 것 같아요. 이게 집착입니다. (웃음)”

그는 그 집착을 버릴 수가 없다고 합니다. 서평을 통해 욕을 먹기도 하고 칭찬을 듣기도 하지만, 그 순간, 그는 이 책을 썼던 아주 뜨거운 여름이 생각이 난답니다. 영화 100편 중 흥행에 성공하는 영화들은 몇 편 되지도 않지만, 감독들의 거의 대부분은 대박을 예감하는 건, 자신만의 진리 속에 빠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게 없으면 영화를 끌고나갈 수가 없음을 예로 듭니다. 두 해의 뜨거운 여름 보낼 때 사람들 앞에서 큰소리를 치진 않았지만, 스스로 진리 속에 빠져 있던 적도 있음을 실토합니다.

쉽지 않았던 거겠죠. 자신만의 진리를 글 쓰는 동력을 삼으면서 자신과 싸워야 했던 사투 혹은 안간힘. 작가의 말에서 그는 이렇게 얘기하고 있었죠.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두 번의 여름을 보냈다. 가족의 소중함과 인간의 곡진한 사랑과 삶에 대한 눈물겨운 공감을 ?고 싶었다. 열등감과 모욕도 인간의 삶을 이끌고 가는 힘찬 발걸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쓰고 싶었다.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연민을 쓰고 싶었고, 인간을 꽁꽁 묶어버린 이성이나 논리의 함정도 쓰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독자들 자신이기를 바랐다.”(p.240 작가의 말 중에서)

이철환 작가와 묻고 답하기

첫 소설인데, 소설을 쓴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오늘도 모 방송에서 책에 관한 인터뷰를 했는데, 진행자가 “정당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이름이 알려지셨어요.”라는 질문을 했어요. 그래서 전 “개인적으로 참 외로운 싸움이었습니다.”라고 솔직하게 답변했습니다. 제가 등단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한 번도 시도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정공법을 택한 거죠. 그렇게 가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97년에 첫 책이 깨지고 아주 운 좋게도 2000년에 『연탄길』이 나와서 알려지고, 그 뒤로도 교보문고 올해의 좋은 책에 몇 권이 뽑혔어요. 그때 서울대 어느 교수분이 심사평을 이렇게 쓰셨어요. ‘비문인들 중에서 이런 책이 나오고 있는데, 문인들이 선전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 비문인에 제가 들어간 거예요. 그때 아주 기분이 안 좋았어요. 일종의 서러움인데, 그때뿐 아니라 그 이후로도 계속 그랬습니다. 평론가 한 분 추어주는 분도 없었고, 추천사 받을 때는, 그걸 받기 위해서 전국 어디든, 1번 안되면 2~3번 부탁드리면서 지금까지 왔어요.

스스로를 작가라고 말해본 적이 없었어요. 이번 소설을 내고 나서 말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잘됐다, 안됐다의 문제가 아니고, 썼다는 것이죠. 진즉에 제가 멋진 시집 한 권을 묶을 수 있었다면 좀 더 떳떳했을 텐데. 그런 생각을 왜 안 했겠어요. 그런데 자신이 없었어요. 자신이 없어 마음이 아플 때 미친 듯이 읽었습니다. 거의 광기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종교, 과학, 예술. 종교에서의 진리, 어려운 거죠.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거죠. 고정된 풍경입니다. 연구는 할 수 있어도 정면 도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과학. 학자들도 진리를 추구합니다. 학자들의 진리 추구가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딱 2개가 있었죠. 아인슈타인 상대성 이론과 DNA. 나머지는 레퍼런스죠. 과학에서도 그것을 인정합니다. 문제는 예술입니다. 진리와 미를 추구하는데, 다른 게 뭐냐면 학자들에겐 경제적인 급부가 주어지고, 마음대로 레퍼런스가 허락됩니다. 종교도 그렇습니다. 최소한의 생계비로 유지됩니다.

문제는 예술 하는 사람들에겐 경제적인 급부가 보장이 안 됩니다. 더 문제는, ‘새로운 걸 보여줘 봐.’ 하는 거예요. 인간은 새로운 걸 보여줄 수 없대요. 평소 드라마를 안 보는데, 어젠 <아이리스>를 참 재밌게 봤어요. 이병헌과 김태희가 만나는 과정, 너무도 많이 나온 설정입니다. 그들이 특수부대에 비밀리에 끌려가는 것, 어디에든 나온 것이죠. 새로운 것, 없습니다. 예술 하는 사람들은 그게, 미치는 겁니다.

소설 속에서 완벽하게 새로운 걸 보여줄 수 없었습니다. 영원한 주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만 있을 뿐. 누가 얼마나 멋지게 변주를 하는가. 그게 작가의 역량인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가장 절망하는 게 천재성입니다. 내게 천재성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게 욕심인데요, 그 욕심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소설을 쓰게 된 이유가 좀 더 떳떳해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이 소설을 쓸 때는 문학상에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전체 얼개를 크게 잡았는데, 나중에 부질없는 짓임을 깨닫고, 한 삼 개월 만에 생각을 접었습니다. 잘한 것 같아요. 새삼스레 그리 할 필요가 있을까요.


순수문학과 대중문학 가운데, 어느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나요?

일본의 요시다 슈이치라는 작가가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에서 두 개를 잘 조화시킨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눈물은 힘이 세다』를 쓸 때는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을 동시에 염두에 뒀습니다. 그렇게 잘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죠. 술술 잘 읽히면서 주인공 유진을 통해 내면고백을 할 때는 순수문학을 지향하면서 썼습니다. 윤대녕 작가가 순수문학에 지향점을 두고 글을 썼는데, 어느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이더라,”라는 말을 한 것을 지면에서 봤어요.

한 평론가를 만났더니 그랬습니다. 순수문학이건 대중문학이건, 재밌게 잘 읽히는 것이 첫 번째 미덕이다. 문학은 재밌기만 해서는 안 되고, 어떤 것이든 우리에게 물음을 던져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쓸 때 어떻게 작업하세요?

처음 이걸 쓸 때는,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를 염두에 뒀습니다. 글쓰기는 공감을 확장하는 일입니다. 『눈물은 힘이 세다』는 원고지 800매 정도 되는데, 실제로 쓴 것은 1,500매 정도입니다. 얼마나 많이 버렸습니까. 쓸 때는 자기 진리에 빠져 있었는데, 계속 쓰다 보면 나중에 내공이 쌓일 것 같습니다.

글을 쓰면 출력해서 보는데, 아주 많이 고칩니다. 한 서평을 보니, 책 속의 아포리즘이 소설 흐름을 막고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글 쓰면서) 그게 제일 어려웠습니다. 아포리즘을 끌어내는 것. 그런데 그것 때문에 욕을 먹었잖아요. (웃음) 좋은 글을 고르는 세 가지 시학이 있다고 합니다. 고백, 묘사, 발견. 역으로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세 가지를 담으면 되는 거죠.



가장 영감을 준 작가나 좋아하는 책이 있으세요?

저는 한 번도 창작법을 듣거나 배운 적이 없지만 선생님은 많죠. 책을 통해 배웠으니까요. 김수영 시인이 말했죠. “시는, 온몸으로 밀고 가는 것이다.…” 저한테는 이게 샘이었어요. 그리고 안토니오 스카르메타가 쓴 영화 <일 포스티노>의 원작인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제가 좋아하는 네루다가 나와서 좋았던 것도 있지만, 읽고 나서 내내 여운이 깊었습니다. 글은 하나의 풍경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지만, 하나의 풍경을 보여주면서 그 풍경 바깥까지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이성복 시인의 모든 시집과 심보선 시인의 「슬픔이 없는 15초」도 굉장히 영향을 줬습니다.

그리고 제 취미가 시를 외우는 것입니다. 시를 외울 때 참 기뻐요. 오늘은 「질투는 나의 힘」을 외웠습니다. 오늘 외우게 될지도 몰라서. (웃음) (시 낭독) 기형도의 시도 굉장히 저를 자극했습니다. (다시 기형도의 「빈집」 낭독) 1명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혼자 먹어야 할 양식 같은 거죠. (웃음)


글을 쓰고 싶은 사람에게 해 주실 말씀이 있다면요.

독서를 많이 하면서 잘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이 읽는 것보다 얼마만큼 기억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내 마음과 치열하게 부딪히는 것, 중요한 것을 접고 체크해서 서른 번, 오십 번 적어 내 안에서 변주하는 것. 그게 좋은 것의 기준이 아닐까 싶어요. 어떤 책이든 마음에 부딪히고 공감한 것을 계속 보면, 좋은 책을 고를 수 있는 안목도 생기고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겁니다.

파블로 네루다, 김수영, 기형도가 함께했던 밤. 이제야 스스로 작가임을 말할 수 있게 된 이철환 작가의 첫 소설과 함께했던 가을밤. “전통과 짝퉁 사이의 거리는 이해와 오해 사이의 거리만큼 멀었다.”(p.112)며 ‘비문인’으로 받은 설움과 눈물만큼 더 힘을 쏟았기에, “눈물은 힘이 세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는 작가의 이야기. 그는 이날, 네루다가 넌지시 속삭인 ‘사랑의 비밀’도 알려줬습니다. 사랑은 게임이나, 게임이라는 것을 보여주면 안 된다는 것. 가장 매력적인 사람은, 키스를 받아줄 것도, 받아주지 않을 것도 같은 사람이라고. 함께한 당신은, 기억에 남을 밤이었나요?

“어릴 땐 돌에 걸려 넘어지지만 어른이 되면 사람에 걸려 넘어지거든…….”(p.175)사람에 걸려 넘어져도,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유용주 시인의 시 제목)고 다짐했던 작가마냥, 나나 당신도 그래야지요. “야비한 사람들을 가리켜 쥐새끼 같은 놈들이라고 하잖냐.”는, 시인이자, 앞 못 보는 철??쳀며, 아픔을 담담히 이기며 살아가는 로맨티스트인 소설 속 아저씨의 말마따나, 쥐새끼 같은 놈들을 어떻게든 버티고 견뎌야지요. 진실 없는 이 시절에서. “진실만이 세상을 이끌고 가는 건 아니잖냐. 질투와 이기심과 절망과 싸움이 세상을 이끌고 갈 때도 있으니까……. 용기 있는 사람이 되려면 때로는 비겁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pp.121~122)

나를 가을밤 속으로 밀어 넣으면서, 한 달여 만에 다시 파블로 네루다를 떠올렸습니다. 김수영과 기형도를 가을밤 하늘에 새겼습니다. 아마, 그들은 그날 밤 별이 됐고, 누군가의 가슴엔 별 비가 내렸겠지요. 집으로 가는 길, 혼자 되뇌었습니다. 또박또박, 이철환 작가가 한 예술가의 말이라며, 책에 직접 적어준 이 문구. “눈에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카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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