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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강의실] 스무 살 공지영을 만나다 - 『도가니』 공지영

‘20대, 꼭 해야 할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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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의 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내 귀에서 음소거를 해놓았는지, TV 볼륨을 가장 작게 내려놓은 것처럼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잠시 후, 단 한마디에 나의 귀의 볼륨은 최고조로 맞춰졌다. “공지영 작가님을 소개합니다.” 남색원피스를 입은 조금은 딱딱할 것 같은 여자가 구두 굽을 또각거리며 강단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는 말했다.

※ 이 기사는 강연회에 참석한 정유정 회원님이 쓰신 후기입니다.


이상스레 더운 날이었다. 조금은 선선해질 법한 9월 말인데도 여름은 꼬리를 내놓고 사람을 괴롭게 했다. 더군다나 공지영의 강연 소식에 열 뜬 나였으니 더했으리라. ‘공지영’ 그 이름만 들어도 얼마나 설레는 사람인지. 한때 사랑에 빠져 찾아가며 읽었던, 그 사랑에 빠진 시기가 고3이라 ‘몰래한 사랑’이긴 했지만 왠지 그래서 더 애틋한 사랑. 그분이 전주, 그것도 내가 다니는 이 학교에 오신다는 걸 듣고 그때부터 가슴은 쿵쾅거렸다.

강연이 시작되는 일곱 시 전부터 사람들은 몰려오기 시작했다. 합동강당 안에 두 겹 세 겹으로 있는 줄은 공지영 작가의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나 역시 그 줄에 서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나의 입꼬리는 조금 더, 조금 더 올라가는 듯했다. 개관식도 하지 않고 아직은 페인트 냄새가 옅게 남은 합동강당이 공지영 작가의 강연 장소였지만 ‘새 건물에서 나는 풋내, 조금은 싫은 그 냄새마저도 참아주마.’ 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사회자의 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내 귀에서 음소거를 해놓았는지, TV 볼륨을 가장 작게 내려놓은 것처럼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잠시 후, 단 한마디에 나의 귀의 볼륨은 최고조로 맞춰졌다. “공지영 작가님을 소개합니다.” 남색원피스를 입은 조금은 딱딱할 것 같은 여자가 구두 굽을 또각거리며 강단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는 말했다. “안녕하세요. 공지영입니다.” 강단으로 올라선 공지영 작가는 강의 대상자가 이렇게 젊다 못해 어린 친구들일 줄 몰랐다며 강의 주제를 조금 바꿔야 할 것 같다고 수줍게 웃었다. 내가 생각한 공지영 작가의 이미지와 다르지 않은 그 웃음을 보며 조금은 편하게, 혹은 조금은 긴장된 채로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공지영 작가는 ‘20대, 꼭 해야 할 3가지’라는 주제로 강연을 시작하였다. 20대 꼭 해야 할 세 가지는 의외로 ‘코피 터지게 연애할 것, 도서관의 책을 다 읽어볼 것,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 볼 것.’이었다. 연애와 여행은 누구나 말하는 20대의 교양필수 아닌가? 공지영 작가이기 때문에 독특한 그 무언가를 알려줄 것이라 알고 기대했던 나는 조금 실망이었다. 하지만 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의 로망이지만 이것을 이룬 20대는 얼마나 있을까? 나는 지금 이 세 가지를 이루고 있을까?’ 하고 한참을 곱씹게 됐다.


그 뒤로는 당신이 이룬 20대의 3가지 것, 그리고 조금은 운명적으로 걷기 시작한 작가의 길에 대해 이야기했다. 책을 많이 읽고 지는 낙엽에도 눈물을 글썽일 것만 같았던 공지영 작가가 사실은 도서 대출증을 굉장히 유용하게 사용하였다는 것과, 한때 혁명가를 꿈꾸었다는 이야기는 살짝 귀엽기까지 했다. 점차 ‘그녀도 나와 같은 20대를 보냈구나.’ 하는 생각에 굳었던 표정이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 내가 공지영 작가를 동경하는 것처럼 공지영 작가도 그 시절의 문인들을 동경하고 기쁘게 ‘미스 공’이 되어 지냈던 시절의 이야기, 혁명가가 되자는 생각에 공장에 들어가 한 달여를 일하다 결국 그만두고 참여한 농성. 그리고 이어지는 작가가 된 이야기. 자신의 한계에 도달했을 때 든 생각이 소설 한 편을 쓰고 싶다는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내가 하고 싶은 일도 ‘그 정도의 상황이면 나타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정말 무엇을 위해 이 자리에 있는지 하는 생각이 조금 나를 힘들게 했다. ‘나에게도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올까? 공지영 작가가 말한 대로 핸드폰을 끄고 다 저녁 논길을 한없이 걸으며 그런 생각을 해볼까?’ 하는 오만 생각이 머릿속에서 하나하나 퐁퐁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동안에도 강연은 계속됐다. 이야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이 3가지를 하는 방법, 해야 하는 이유였지만 나는 공지영 작가가 겪은 그 경험, 단 하나의 길을 선택하게 된 그 계기. 지금은 방황 중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는 나에게 공지영 작가의 이야기는 강연이 끝난 후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강연이 끝나고 질의 응답 시간. 질의 응답 시간에는 공지영 작가의 신간 『도가니』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연재되는 내용을 읽을 때 ‘한때 민주화 운동의 성지’라는 등의 비유를 읽으며 ‘이 이야기가 광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야기가 실화라는 것을 책을 통해 알게 되면서 충격은 더해졌다. 그런 말도 안 되고 파렴치한 일이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 이 시간에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나를 조금 멍하게 만들었다. 또 함께하며 끝까지 아이들을 지켜내 ‘홀더’를 만든 서유진이 내가 생각하는 정의였고 올바름이었지만 결국 천막을 지키는 자리에 가지 못한 강인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 사회가 이런 것일까? 결국 우리는 이렇게 겁쟁이가 되어버린 것일까? 질의 응답 시간에도 답변했지만 누구도 강인호를 욕할 수는 없었다. 그가 타협한 세상에 대해 모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테니까. 책의 말미에 왜 주인공을 결국 돌아가지 않게 했느냐고 묻는 독자의 질문에 이해해 주실 것이라 답했던 작가의 말에 수긍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그런 이유 아니었을까.

나는 그랬다. ‘지금이 유신정권도 아니고 읽을 것, 들을 것 넘쳐나는 이 시대에 책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이 광란의 도가니를 고발하는 책 한 권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작은 분노마저 일었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고 있다. 책 한 권으로 책 속의 ‘자애학원’인 광주의 그곳은 재조명되었고, 어두운 곳에서 묵묵히 약자를 돕는 사람들 또한 세상에 알려졌다. 공지영 작가가 도가니로 말하고자 한 것은 ‘우리의 관심이 상류층의 침묵의 카르텔을 깰 수 있다.’였다. 우리들의 관심 하나, 말 한마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란 이야기, 그리고 책 한 권이 바꿔가고 있는 이 사회가 그래도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기분에 안심이 됐다. 이제 나도 내 목소리를 내야겠다. 이제는 불의가 일어나기 전에 어두운 곳을 들여다보고 두들겨봐서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리고 내가 사는 이 사회가 더 이상 ‘광란의 도가니’가 되지 않도록.


강연이 끝나고 난 뒤에는 벌써 하늘이 어둑해진 뒤였다. 내 손에 들려있는 것은 책 한 권뿐이었지만 내 마음은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 해야만 하는 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제 나도 어두운 곳에 눈을 돌릴 수 있는 사람이 되기로, 그리고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기로……. 발을 돌려나오면서 또 다시 한 마디 한 마디를 곱씹어 보게 하는 강연이었다. 지금 작가 공지영이 하고 싶은 이야기, 그리고 스무 살 공지영이 하는 자신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나는 그날 작가 공지영을 만났지만 마음은 자기 이야기를 소곤대던 스무 살 공지영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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