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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콘서트]가을밤 ‘시와 음악’의 세계에 다녀오다 - 신경림, 박후기, 강성은 시인

잔잔한 음악이 아니었어도 무척이나 잘 어울렸던 ‘시와 음악’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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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음악은 따로도 좋지만 같이 어울렸을 때 빛을 발하는 분야들이다. 특히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그 음악을 배경으로 시를 읽을 때 많은 독자들이 공감하고 감동하게 된다. 하지만 잔잔한 음악이 아니었어도 무척이나 잘 어울렸던 ‘시와 음악’의 세계에 다녀왔다. 바로 홍대 KT&G 상상마당 라이브 홀에서 열린 평화방송과 예스24, 그리고 도서출판 창비에서 주최한 북 콘서트였다.

시와 음악은 따로도 좋지만 같이 어울렸을 때 빛을 발하는 분야들이다. 특히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그 음악을 배경으로 시를 읽을 때 많은 독자들이 공감하고 감동하게 된다. 하지만 잔잔한 음악이 아니었어도 무척이나 잘 어울렸던 ‘시와 음악’의 세계에 다녀왔다. 바로 홍대 KT&G 상상마당 라이브 홀에서 열린 평화방송과 예스24, 그리고 도서출판 창비에서 주최한 북 콘서트였다. 이날의 초대 손님은 최근에 ‘창비시선’을 통해 첫 시집을 출간한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의 강성은 시인과 무거운 듯 가벼운 시집을 펴낸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의 박후기 시인, 그리고 ‘2009년 대한민국 필독 시집’으로 뽑힌 『낙타』의 시인 신경림 선생이었다. 더불어 잔잔한 음악보다는 개성 있는 음악을 들려주었던 ‘와이낫’ ‘타루’ ‘하이미스터메모리’는 신나는 공연으로 무대를 빛내주었다. 그동안 다양한 뮤지션들이 나오는 북 콘서트를 다녔지만 이번만큼 즐겁기는 처음이었는데 어느 평론가의 글을 패러디한다면 가장 최근 공연이 항상 그 프로그램의 최고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가끔은 썰렁한 코멘트를 선보이며 방청객을 즐겁게 해주는 박용환 아나운서의 인사로 시작된 북 콘서트는 개성 있는 인디밴드 와이낫의 등장으로 막이 올랐다.

2집으로 돌아온 박후기 시인과 와이낫

2002년 첫 앨범을 발표하고 정규 앨범으로는 7년 만에 선을 보인 와이낫은 그동안 추구했던 치고, 달리고, 뛰고, 날뛰는 그런 음악이 아니라 말랑말랑하고 리드미컬한 음악이 가득한 2집을 갖고 나타났다. 강한 리듬의 1집과는 반대되는 곡들이다. 하고 싶은 음악이 많다 보니 ‘모두 다 해보면 안 될까?’ 하는 생각에 만들었다는 밴드명 와이낫은 강한 부정이야말로 긍정을 나타낸다는 의미로 만든 이름이란다. 2002년 첫 앨범 발표 후 몇 장의 미니 시디를 냈지만 정규 앨범으로는 오랜만에 발표를 한 셈이다. 그동안 치고, 달리는 음악에서 잔잔한 음악을 내게 된 것을 의아해하는 팬들에게 와이낫의 보컬 주몽 씨는 사과를 예로 들며 하나의 사과를 보고 느끼는 감정 표현들이 화가나 작가, 음악가에게 각기 다른 형태의 느낌으로 보이듯이 와이낫이 가진 감상의 표현도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기존의 강한 사운드에서 어쿠스틱하고 자연스러우며 잔잔한 음악을 만들게 되었다. 여름에 나온 음악이지만 이 가을에 한결 잘 어울리는 음악이 될 것이라 했다. 첫 노래로 2집에 들어 있는 「I need your love」를 들려주었다.

와이낫의 노래가 끝난 후, 2006년 첫 시집으로 ‘신동엽 문학상’을 수상한 박후기 시인이 나왔다. 제목도 독특한 두 번째 시집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를 펴낸 시인은 시 제목도 아니고 시 속에 들어 있는 문장으로 제목을 지은 이유에 대해 묻자 몇 개의 후보 제목들이 있었는데 다수결로 뽑은 것이라고 했다. 이 제목은 「사랑-글렌 굴드」라는 시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이 제목이 맘에 든 이유는 첫 시집의 제목이 『내 가슴의 무늬』였는데 1집의 시 대부분이 가족과 부모님의 생활터전이었던 기지촌에 대한 시들이 많았기에 내용 자체가 굉장히 무거웠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 시집에서는 그 무거운 것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 끝에 나온 제목이었다. 그렇다고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다. 시인이라고 매번 인상을 쓰며 살 수는 없고, 누구나 진실보다는 거짓말 같은 말을 듣고 싶어하기 때문에 지은 제목이라고 했다.

또한 독자와 함께할 수 있는 시를 넣으려는 노력으로 ‘사랑’에 관한 시도 많이 넣었다. 「사랑-글렌 굴드」를 보더라도 첫 시집의 어두움에 비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사랑이라는 주제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볍다고 내용조차 가벼운 것은 아니다. 「사랑-글렌 굴드」 외에도 여러 편의 사랑에 관한 시들이 있는데 사랑은 보편적이고 관념적이어서 어떤 사랑이든 간에 개개인의 ‘사랑 감정이 있을 것이나, 개인의 사랑 감정을 글로 썼을 때, ‘어떻게 하면 독자들이 읽고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고 많이 생각하고 고민했다고 한다. 그 고민 끝에 나온 시집이다. 그러나 이 시집의 특징은 사랑이 아니라 혈육과 가난을 강조하면서도 그런 것들을 식물의 이미지로 표현했다는 거다. 그 사실은 박후기 시인도 한 편씩 쓸 때는 몰랐단다. 시집으로 묶어보니 그렇더라고 했다. 인간들은 동물성보다는 식물성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유전자에 집착하고 고민한다. 그런 식물적인 고민을 하며 쓴 시들이 많다. 가난과 현실의 어려움이, 뿌리박힌 식물들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 또 이 시집엔 바닥에 관한 것도 많이 나온다. 바닥을 보며 뭔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아버지의 삶에서 바닥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의지나 생각과는 무관하게 몸과 정신이 어떤 상황에 닿아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주변의 의지나 상황보다는 시인 스스로의 의지와 상황이 바닥이었기에 그런 느낌을 받은 것 같았다고 했다.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를 읽은 와이낫의 보컬 주몽 씨는 이 시집이 1집에 비해 가벼워졌다고 했지만 읽어보니 꼭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와이낫 역시 가벼운 음악을 좋아하기에 공감은 하지만 시집을 읽으면서 내내 ‘이 사람이 지금 무척 힘들거나 혹은 예전엔 힘들었지만 지금은 뒤를 돌아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단다. 그 말에 박후기 시인은 정확하게 본 것이라 했다. 외롭다는 것이 주변에 사람이 있고 없고에 따라 느끼는 것이 아니라 누가 곁에 있든 없든 본인이 느끼는 개인적인 문제의 현실이나 주변 상황, 사회 전반에 관한 것들로 인해 외로워질 수도 있다. 시인은 그걸 놓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이어 낭송의 시간이 있었다. 박후기 시인의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에 실린 시 중에 서 두 편의 시가 마음에 들었다는 주몽 씨가 고른 것은 두 편 모두 음악과 관련된 시였다. 기타 줄을 의미하는 「6번 혈관-콜트기타 해고노동자들에게」와 글렌 굴드라는 천재적인 피아니스트의 이름을 붙인 「사랑-글렌 굴드」였다. 그 중에서 주몽 씨는 글렌 굴드가 격을 파괴하는 피아노의 로커로 생각한다며 「사랑-글렌 굴드」를 읽겠다고 했다. 이 시엔 제목으로 사용한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라는 문장이 들어 있다.

침묵은
말 없는 거짓말,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살아야 하는 여자와
살고 싶은 여자가 다른 것은
연주와 감상의
차이 같은 것
건반 위의 흑백처럼
운명은 반음이 엇갈릴 뿐이고,
다시 듣고 싶은 음악은
다시 듣고 싶은
당신의 거짓말이다.


이어 박후기 시인의 낭송도 있었다. 그는 마흔을 넘기면서 쓴 「사십세」란 시를 읽을까 생각하다가 「6번 혈관-콜트기타 해고노동자들에게」를 읽었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 중에서 노동자들이야말로 기타의 6번 줄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기타에서 6번 줄이 중요하듯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역시 6번 줄과 같은 사람이 많을 거라는 생각에 지은 시란다.

기타 줄은 기타의 핏줄,
질긴 나의 혈관이다
팽팽한 생의 조율 위에서
언제 끊어질지 몰라,
나는 불안한 음계로
죽음의 열네 계단을
오르내리며 매일
고통을 튜닝 한다.
당신들은
나의 노동이 느슨하다며
있는 힘껏 내 목을 조른다.
나는 줄을 칭칭 목에 감은 채
온몸으로 소리친다,
온몸으로 노래한다.
나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자본의 공명을 위해 매인 몸
하지만
줄을 조일수록 울림은 커지고
끊어지지 않는
6번 줄은 나의 동맥이다
가장 낮은 데서 두근거리는
살아남은 유전자의
깊은 숨소리다.


첫 시집을 낸 강성은 시인과 첫 앨범을 낸 타루의 무대

다음 순서는 폭발적인 가창력을 보여준 타루의 무대였다. 정규 1집 앨범을 낸 타루는 그룹 ‘더 멜로디’의 보컬로 활동하다가 멤버들의 입대를 계기로 솔로로 독립한 가수였다. 에픽하이의 「1분 1초」. 휘성의 「Love Seat」 등 피처링에 참여했고, 앞으로 기대되는 완소 유망주란다. 문예창작과를 전공하였기에 다른 뮤지션보다 훨씬 시에 대한 이해도가 깊을 것이라고 했다. 타루는 정끝별 시인의 북 콘서트에도 함께 자리를 해 준 적이 있다고 한다. 타루의 노래 「Night Flying」를 듣고 강성은 시인과 함께 자리를 했다.

먼저 나온 박후기 시인과 와이낫의 공통점이 2집을 펴낸 것이라면 타루와 강성은 시인은 둘 다 1집을 펴냈다는 점이 닮았다. 강성은 시인은 1집을 내고 너무 좋은 것과 부끄러워서 숨고 싶은 두 가지 감정이 공존했단다. 시집이 얇고 작은 책이라 더 기쁘고 부끄러웠다며 소감을 말했고, 타루는 첫 시디가 나온 후 앞에 놓인 큰 산을 하나 넘었으나 또 앞에 산을 앞두고 숨을 쉬는 과정이라고 했다.

강성은의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는 제목만 봐도 동화가 생각난다. 시를 읽으면 역시 동화적이고 몽환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강성은 시인은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의 제목을 보고 다들 생활시가 아니냐고 묻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엔 어떤 생각만으로 시 안에 쌓이는 이미지가 있는데 그게 환상이라면 환상이고 실제라면 실제여서 그렇다고 했다. 강성은 시인의 경우에는 꿈에 보거나 어릴 때 읽었던 풍경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가 한꺼번에 나와 시가 된다고 한다. 박용환 아나운서는 그 시들을 보면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받는다며 시를 읽는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 것이 있느냐고 묻자 “특별히 전달하고픈 메시지는 없지만 시를 쓰면서 보게 된 어떤 풍경을 계속 보다가 시를 이어주는 점들을 발견했다. 이것을 읽는 독자들 역시 내가 그려놓은 풍경을 따라가기보다는 새로운 풍경을 발견하여 또 다른 풍경으로 봐주면 좋겠다.”라고 했다.

타루는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라는 제목을 보고 20~30대의 직장 여성의 비애를 그린 시라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읽어보니 마법구두였다면서 그 역시 그런 동화적이고 마법적인 연상을 좋아하므로 시를 읽으면서 공통점을 찾았던 시집이었다고 했다.

강성은 시인이 즐겨 쓰는 시의 방식은 ‘순환’이다. 그 외에도 그가 생각하는 시의 방식은 무수히 많지만 도돌이표가 있는 음악이라고 늘 생각한다. 다시 돌아오지만 똑같은 도돌이표는 재미없고 항상 도돌이 하면서 변주된 형식의 음악이 시가 아닐까 생각하며 순환을 사용한다고 했다.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엔 마침표가 없다. 이것도 순환과 비슷하다. 시라는 것은 끝맺음이 없다 보니 끝없이 순환하게 되고 마침표나 기호조차 생략되는 거란다.


이어 타루가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에서 관심 있게 읽은 시 「아름다운 계단」을 낭독했다.

다리를 벌리고 앉은 여자 아래
졸고 있는 죽은 고양이 옆에
남자의 펄럭이는 신문 속에
펼쳐진 해변 위에
파란 태양 너머
일요일의 장례식에
진혼곡을 부르는 수녀의 구두 사이로
달려가는 쥐를 탄
우울한 구름의 손목에서 흐르는
핏방울이 떨어져 내린

……

길을 잃은 아이가
계단을 펼쳤다 접으며 아코디언을 켜고
계단은 사람들의 귓속으로 밀려들어왔다 밀려나가고
사람들은 눈을 감은 채로 계단을 하나씩 오르고
계단은 점점 더 느려져
잠이 든 채 연주되고


이 시를 읽으면서 타루는 꽤 빠르게 읽었는데 시집을 읽으면서 속도감을 느꼈기 때문이라 했다. 천천히 읽으면 뭔가 끊어질 듯한 느낌을 받아 좀 빨리 읽고 낭송하게 되었단다.

이어 강성은 시인은 표제작인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를 읽었다. 이 시는 읽는 사람에 따라 세월, 시간 혹은 인생을 느끼게 한다. 그것도 좋고 그냥 지난여름이라고 생각을 해도 말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박용환 아나운서가 여류 신인들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많이 낸다고 하자 동화적이라고 묶어버리면 좀 쉬운 방법이지만 이례적으론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잠든 사이 붉은 가로등이 켜졌다
붉은 가로등이 켜지는 사이 달에 눈이 내렸다
달에 눈이 내리는 사이 까마귀가 울었다
까마귀가 우는 사이 내 몸의 가지들은 몸속으로만 뻗어갔다
몸속에 가지들이 자라는 사이 말(言)들은 썩어 버려졌다
말들이 썩어 버려지는 사이 나는 구두 위에 구두를 또 신었다
구두를 신는 사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왔다
여름이 오는 사이 도시의 모든 지붕들이 날아갔다
도시의 지붕들이 날아가는 사이 길들도 사라졌다
길들이 사라지는 사이 지붕을 찾으러 떠났던 사람들은 길을 잃었다
그사이 빛나던 여름이 죽었다
여름이 죽는 사이 내 몸속에선 검은 꽃들이 피어났다
검은 꽃이 피는 사이 나는 흰 구름을 읽었다
흰 구름을 읽는 사이 투명한 얼음의 냄새가 번져갔다
얼음 냄새가 번지는 사이 나는 구두 위에 구두를 또 신었다
열두 켤레의 구두를 더 신는 사이 계절은 바뀌지 않았다
구두의 계절이 계속되는 사이
나는 구두의 수를 세지 않았다
구두 속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타루는 앞으로 1집이 나왔으니 열심히 공연해서 다음 앨범을 준비할 것이라며 말을 맺었고, 강성은 시인은 2집은 생각도 못하고 있지만 늘 좋은 시를 쓰고 싶고,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강성은 시인과 타루의 만남은 타루의 노래 「연애의 방식」을 들으며 끝냈다.

시인 신경림 선생과 하이미스터메모리

은희경 작가의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로 곡을 만든 경험이 있는 하이미스터메모리는 그동안 전국을 돌며 시인들과 공연을 했다. 곧 2집이 나온다며 앨범이 나오지 않았지만 2집 앨범에 실릴 에로틱한 곡이라고 소개를 한 노래 「장마」를 불렀다. 아직 나오지 않은 음악을 듣는 행운을 누린 셈이다. 그리고 올해 ‘2009년 한국인 필독서 시 부분’으로 선정된 시집 『낙타』의 시인 신경림 선생이 나왔다.

『낙타』 출간 후 북 콘서트에도 나온 적이 있었던 신경림 선생은 시 부분에 선정되어 기분이 좋다고 했다. 아직도 시를 사랑하는 독자들이 있다는 것이 힘이 되고 기쁜 일이라고도 했다. 외국엔 시 문학이 자취를 감추고 있지만 우리나라만은 아직도 끊임없이 시를 발표하고 시집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만큼 시에 심취해 있는 나라는 없다고 했다.

신경림 선생은 “시인에게 시는 전부이고 고통이지만 읽는 사람에겐 좋은 동반자이고 즐거움이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 시는 읽는 사람이 자기 생각대로 해석하는 것이라며 시인이 이렇게 썼으니 독자도 이렇게 읽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란다.

이번 시집 『낙타』에는 외국을 여행하며 쓴 시들이 많은데 독재정권 때 외국 여행을 하지 못하고 예순이 다 되어 외국에 처음 나갔는데 오히려 옛날에 나가지 않고 나이가 들어 외국 여행을 하게 되어 좋았다고 말했다.

박용환 아나운서가 “나이가 드셨기 때문에 존경받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현역이기에 존경받는 것”이라고 하자 박후기 시인의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의 제목을 말하며 웃었다. 선생은 그동안 1,000여 편의 시를 쓰셨단다. 하지만 그 시들 중 사랑에 관한 시는 고작 서너 편이란다. 그러면서 두보도 살아생전 1,500여 편의 시를 썼지만 단 한 편의 사랑 시를 썼을 뿐이라며 좋은 시란 사랑과 관련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사랑의 표현도 시를 통해 간접적으로 쓰면 된다. 직접적인 사랑의 시도 제대로 된 것은 아니다.

이번 시집 『낙타』를 보면 선생께서 이생을 정리하는 듯 보여 이 시집이 마지막 시집인 게 아닌지 우려된다고 박용환 아나운서가 말하자 마지막 시집은 아닐 것이라고 대답했다. 또 시 한 편을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일정치가 않다며 단숨에 쓸 때도 있고, 며칠씩 걸릴 때도 있다고 했다. 「갈대」의 경우는 일필휘지로 썼다. 그만큼 생각이 있을 때 쓸 수 있는 것이지 무조건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라며 그런 사람이 있다면 천재일 것이라 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시를 쓸 수 있는지 묻자 “좋은 시는 찾고 있는 가운데 찾을 수 있고, 좋은 시를 알아볼 수 있어야 좋은 시를 쓸 수 있다. 또 좋은 시를 써야만 삶의 진실을 느낄 수 있으니까 이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 시집 많이 읽고, 시집 한 권 얼마 안 하니까 좋은 시집들 사서 많이 읽으면 좋겠다. 그러다 보면 좋은 시도 알게 되고 좋은 시를 쓸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시인도 직업이지만 다른 직업을 가지면 좋겠다. 시 한 편 써서 생활할 수 없다며 그러다 보니 다양한 직업을 가진 시인들이 많다. 그런 직업을 가진 시인들이야말로 다양한 경험으로 좋은 시가 나온다. 그러므로 시만 쓰면서 살기보다는 다른 직업을 가지면서 시를 쓰면 좋은 시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신경림 선생의 『낙타』 중에 하이미스터메모리는 「나의 신발」이 좋았다며 낭송했다.

늘 떠나면서 살았다,
집을 떠나고 마을을 떠나면서,
늘 잊으면서 살았다,
싸리꽃 하얀 언덕을 잊고
느티나무에 소복하던 별들을 잊으면서,
늘 찾으면서 살았다,
낯선 것에 신명을 내고
처음 보는 것에서 힘을 얻으면서,
진흙길 가시밭길 마구 밟으면서,

나의 신발은,

……

이제 나한테서도 완전히 버려져
폐기물 처리장 한구석에 나뒹굴고 있을 나의 신발이.
다른 사람들한테서 버려진 신발짝들에 뒤섞여
나와 함께 나뒹굴고 있을 나의 신발이.


그리고 신경림 선생의 낭송으로 「낙타」를 들었다.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새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신경림 선생이 낭송하신 「낙타」는 선생의 자화상의 일부분이란다.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길동무 되어서라는 문장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는데 어쩌면 그래서였는지 모르겠다.”


박용환 아나운서는 “시와 음악이 함께 하니 시도 우리의 일상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라며 이날 북 콘서트를 마무리했다. 또 신경림 선생은 “앞으로 거대한 계획은 없다. 거대한 계획을 짜도 실천을 한 적이 없기에 그렇다. 열심히 시를 쓰면서 쓰겠다는 계획이 있다. 또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시란 근본적으로 소통이며 다른 사람의 말도 들으며 살아야만 우리가 평화롭고 행복한 나라에 살고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라고 했다. 나의 바람은 선생이 오래도록 건강하게 사시고 오늘과 같은 열정으로 몇 권의 시가 더 나오길 바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이미스터메모리의 노래 「숙취」를 듣고 방송에는 나오지 않은 앙코르곡을 들었다. 바로 2집에 실릴 「꽃순이」라는 제목의 노래였다. 하이미스터메모리의 능청스런 마무리 코멘트와 앙코르곡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세 시인들의 아름다운 시 때문이었을까, 아마도 그 둘이 너무나 잘 어울린 덕분에 어느 때보다도 즐겁고 행복한 북 콘서트를 보낸 것 같았다.

가을이다. 이런 가을엔 감성적인 시도 좋고, 일상적인 생활시도 좋다. 시집을 펼치고 마음에 드는 시를 소리 내어 읊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 어떤 스트레스 해소보다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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