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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누구에게든 아무 말이나 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호밀밭의 파수꾼』 J. D. 샐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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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모든 것을 알고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말을 기준으로 놓고 본다면, 우리가 홀든보다 세상에 잘 대처하고 있긴 한 것일까? 이 춥고 반쯤 불이 켜진 세상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은 자기도 깨지기 쉬운 연약한 미성년에 불과한 홀든이 자기만큼이나 깨지기 쉬운 연약한 아이들을 성인의 세계에서 보호하고 싶어 한다는 식의 마음속 순정에 관한 소설로 읽힐 것 같다. 사실 맞다. 이 험한 세상에서 보다 약하고 보다 깨지기 쉬운 사람 편에 서겠다는 순결한 선언을 하는 홀든에게, 그가 제아무리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퇴학을 당해도 우리는 그의 가슴 밑바닥 깊숙이 자리 잡은 정직성과 고상함, 인간적 품위를 보게 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게 이 소설은, 그보다는 이미 그 존재가 기정사실화된 어떤 정신적 기질에 관한 이야기로 읽힌다. 자아실현과 교양을 꿈꾸는 근대 소설의 주인공들의(이를테면 괴테나 스탕달의 주인공들처럼) 시대도 어언 흐르고 흘러, 어른들이 기대하는 운명을 삐딱하게 포기하고 반항과 도피와 은둔을 꿈꾸는 미성년 주인공들의 이야기 시대에 진입한 지도 이미 오래되어, 홀든 식의 감수성은 사실 이제 별로 새로울 게 없을 정도로 느껴진다. 홀든이 했던 정도의 조롱은 사실 이제 우리에게 일도 아니다. 홀든 정도의 일탈은 일탈도 아니다(칵테일과 담배와 거짓말 정도의 일탈은 이제 애교라고 봐도 좋을 정도다. 홀든은 야동도 안 보고 호텔방에서 포르노를 보지도 않는다). 우리 중 아무도 성인들이 마음속 깊이 성숙하고 왜곡 없이 진리만을 말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호밀밭의 파수꾼』에 우리가 모르는 비밀스러운, 빛나는 경험이라곤 하나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그가 전혀 위험하지 않기 때문에, 거짓말쟁이 낙제생인 동시에 신사인 홀든에게 우리는 친숙함과 편안함을 느낄 지경이 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도 홀든에게도 갈 길은 아주 멀다는 점이다. 아직 어린 주제에(핏덩어리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냉소주의자 흉내를 내는 우리의 홀든은 너무나 다정다감하다. 다시 한번 반복해도 똑같다. 우리의 반항아는 제아무리 냉소적인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그 다정다감함을 숨길 수 없다. 그는 오늘밤 너무 인간적이다. 그의 고독은 아무리 잘난 척 해봤자 어린아이의 외로움 같은 것이라서 더 마음을 파고든다. 막강한 부모들은 그들 자신이 자식을 길거리로 내보낸 거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짐작도 못하지만 아들은 뉴욕의 대로를 걷고 있어도 막막한 코너에 몰려 있다. 네온사인 휘황찬란한 대로를 걸어도 그 길은 그에게 좁고 어두운 길이다. 한 인간이 빛나는 의욕으로 고양되어야 할 시기에 냉소로 가득 차 있다는 바로 그 사실에서 우리의 정신적 기질과 우리의 역사가 나왔다. 우리의 미성년들은 운명적으로 비윤리적일 것이며 한 세대 앞의 시대와 그 자신의 시대로부터 배척될 것이며 어쩌면 한순간도 자기 인생에 대해 강하지 못할 것이다. 그에게 앞날은 영원한 미성숙과 은둔과 고립 사이의 어디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랬을 때 우리가 잃는 것은 어쩌면 찬란히 빛났을 수도 있는 한 세계다. 한 사람이 자기 속으로 숨어버리는 것은 한 세계가 사라지는 것만큼이나 슬프다.

나는 다른 많은 B급 영화를 봤을 때 같은 느낌을 이 소설에서 받는다. 이 소설이 웃기는 건지, 슬픈 건지, 심각한 건지, 그저 노는 건지, 진지한 건지 항상 눈을 찡그리며 생각하게 된다. 홀든의 천연덕스러운 행동에 깔깔거리다가도 또 금세 마음 한쪽이 찡하니 슬프다. 그는 장난과 우울을 부모로 모신 아들처럼 군다. 나는 홀든을 인정하지만, 적어도 교회 학교 청년부 학생들보다 훨씬 더 인간적 호기심을 느끼지만 미국판 ‘물가에 내놓은 아이’ 홀든에 대해 안심할 수는 없다. 그는 유복한 집안에서 그럭저럭 살기엔 너무 시니컬하고 너무 감상적이고 너무 인간적이고 너무 정당한 울분과 짜증을 갖고 있다. 그는 무지막지한 질문들을 코믹하게 청소년의 화법(우리 식으로 하면 ‘왕재수’ ‘왕짜증’ 같은 것)으로 던지는 것 같다. 그에게 세상은 아이러니와 블랙 코미디와 눈앞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의 합체 같다.

-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거만하게 굴지요? 웃기지도 않게.
- 무엇 때문에 나는 배불리 먹는데 저 사람은 굶어야 하지요? 우울하게.
- 무엇 때문에 부모가 욕실에서 싸운 다음날 아이들은 변화하게 되지요?
-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어느 종교를 믿는가를 확인하려 들지요? 진짜 재수 없게.
-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이타적이라고 믿고 있지요? 시시하게.
- 무엇 때문에 잘생겼다고 하는 놈들이나 자기가 잘났다고 우쭐대는 놈들은 늘 남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나요? 젠장.
- 무엇 때문에 화장실 벽에 온갖 지저분한 낙서를 하는 거지요? 우스꽝스럽게.
- 겨울이 되면 누가 오리들을 돌봐 주지요?


홀든은 펜시라는 명문 기숙학교에 다녔는데 그는 다섯 과목 중 네 과목에 낙제를 받아 퇴학을 당한다. 그가 싫어하는 것은 소설 시작 부분부터 바로 나온다. 나이 든 역사 선생님은 그를 불러 낙제시킨 것에 불만이 있느냐고 물어본다. 그는 아니라고, 내가 선생님이었다고 하더라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며, 선생의 일이란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에 대해 사람들이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둥, 맘에 없는 말을 늘어놓는다. 그런데 홀든은 바로 그때 딴생각을 한다. 뉴욕 자기 집 근처 센트럴 파크 남쪽의 연못을 생각한다. 그는 그가 집에 돌아갔을 때, 연못이 얼어붙지는 않을지, 얼어붙는다면 그곳에 살던 오리들은 어디로 가게 될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딴생각을 한다. 역사 선생님은 그전의 학교에서는 왜 퇴학을 당했느냐고 물어본다. 홀든은 그 이유를 선생님에게는 말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가 그전의 학교를 떠난 가장 큰 이유는 주위에 가식적인 인간들만 우글거렸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교장은 일요일마다 학교를 찾아오는 학부모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는데 만만하게 보이는 학부모들은 그냥 지나친다. 학생의 엄마가 뚱뚱하거나 촌스러워 보이거나, 아버지가 낡은 양복을 걸치고 있으면 교장은 억지 미소만 짓고 그냥 지나가 버린다. 그러면서 다른 학부모들과는 30분이나 한 시간씩 이야기를 나눈다. 또 그가 싫어하는 것은 그가 퇴학 후 뉴욕에 와서 찾아간 그리니치 빌리지 어니 클럽의 흑인 피아니스트 어니 같은 사람이다. 어니는 상대가 상류층이나 명사가 아니면 상대도 하지 않은 속물이다. 그는 정말 기분 나쁠 정도로 피아노를 잘 치는데 그래도 홀든은 가끔 피아노를 엎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왜냐하면 상류층이 아니면 상대도 하지 않은 그 인간처럼 그의 음악도 그렇게 들릴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죽어도 아이비리그에 있는 대학은 가지 않을 생각이다. 테이블 밑으로 여자를 만지작거리면서 자살할 뻔한 친구 이야기를 하는 아이비리그 대학생 같은 것은 절대로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대학에 가면 모든 게 너무 늦어버린다고 여자친구 샐리에게 외친다. 홀든은 자기 아버지 같은 변호사가 되고 싶지도 않다. 변호사가 되면 일단은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몰려다니면서 골프를 치거나 브리지를 하거나 좋은 차를 사거나 명사인 척 하는 그런 짓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살다보면 자기가 엉터리라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겠냐는 것이다.

우리 홀든은 자주 우울해한다. 그의 우울의 원인들 역시 아주 주관적이고 감상적이다. 그를 우울하게 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이를테면 퇴학당해 짐을 꾸리며 가방에 스케이트를 집어넣을 때 같은 경우다. 그 스케이트는 그의 엄마가 이틀 전에 그에게 보내준 것이었다. 그는 짐을 꾸릴 때 운동용품점에 들어가서 점원에게 온갖 질문을 다하면서 스케이트를 샀을 엄마의 모습이 환하게 떠올라 우울하다. 그리고 호텔방에 창녀를 불러 창녀의 드레스를 받아 옷걸이에 걸을 때, 그녀가 옷을 사러 가게에 들어갔을 때는 아무도 그녀가 창녀인줄 몰랐을 것이란 점 때문에 괜히 그녀가 서글프게 느껴지고 우울해진다. 그는 자기가 베이컨이나 달걀을 먹을 때 다른 사람이 커피와 토스트밖에 먹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우울하고, 동생이 묻혀 있는 무덤에 꽃다발을 올려놓고 자동차 안으로 들어가 라디오를 틀어놓고 좋은 곳으로 저녁식사를 하러 가는 부모 때문에 우울하다. 그는 영혼이 천국 어딘가에 있다는 것은 허튼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잔뜩 멋을 낸 여자애들이 남자 친구를 기다리는 홀의 로비에서 그녀들의 다리를 바라보며 앞으로 저 여자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하는 생각 때문에도 우울하다. 그가 이렇게 우울할 때 곧잘 떠올리는 영상은 백혈병으로 죽은 동생 앨리에 관한 것이다. 누구나 좋아하던 똑똑하고 천사 같은 앨리를 그는 곧잘 데리고 놀러 다녔는데, 홀든은 우울한 날엔 이젠 죽고 없는 동생 앨리를 꼭 하루 데리고 놀러 가지 않았던 그날을 생각하는 것이다. 홀든은 속으로 이런 질문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무엇 때문에 나는 그날 내 동생을 데리고 놀지 않았을까?’ 홀든은 동생이 죽던 1946년 7월 18일 차고로 숨어들어 유리창을 전부 주먹으로 깨부숴 정신분석 상담을 받기도 했다. 나는 죽어버린 동생을 그리워하는 홀든이 그 맘을 ‘난 정말 1946년이 싫어. 영원히 싫어할 거야.’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상상해 볼 수 있다. 뭔가 싫다고 말할 때의 그에겐 근원적인 절박함이 있다.

홀든의 또 다른 동생인, 홀든에게는 죽여주게 예쁜 ‘우리 귀여운 피비’(그 꼬마는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 중 유일하게 생기 있고 사랑스럽다. 만약 그녀가 이대로 자란다면 홀딱 빠질 만큼 멋진 여자가 될 것이다)는 “오빠는 싫어하는 게 백만 가지도 넘지? 좋아하는 것을 한 가지라도 말해봐.”라고 하는데 그때 홀든이 맨 처음 떠올린 것은 친구 제임스 캐슬이었다.

제임스 캐슬은 필 스태빌이라는 거만하기 짝이 없는 놈에 대해 자신이 한 말을 절대로 취소하지 않았던 친구였다. 제임스 캐슬은 그 자식을 거만한 녀석이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그 말을 스태빌의 친구 중 치사한 놈 하나가 스태빌 자식에게 고자질을 했던 것이다. 그놈은 지저분한 녀석들 여섯 명을 이끌고 제임스 캐슬의 방으로 쳐들어가서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그 말을 취소하라고 위협했다. 하지만 캐슬은 취소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놈들이 캐슬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너무 끔찍했다. 하지만 캐슬은 끝까지 그 말을 취소하지 않았다. 누구라도 제임스 캐슬이 어떤 아이인지 한번 봐야한다. 그 애는 말라 비틀어졌을 뿐 아니라 몸집도 작고 연약했다. 손목이 연필 굵기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결국 그 아이는 자신의 말을 취소하지 않은 채 그대로 창문으로 뛰어내리고 말았다. 그는 이빨과 피가 사방으로 흩어진 채 죽고 말았다. 그때 그는 내가 빌려준 터틀넥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그런 짓을 저지른 놈들에게 학교에서 내린 조치는 고작 퇴학이었다. 그놈들은 감옥에 가지 않았다.

홀든은 어느 날 인도가 아니라 차도로 걸어가고 있는 한 꼬마를 보았는데 그 꼬마는 인도와 차도 사이에 놓인 연석 바로 옆을 걷고 있었다. 그 꼬마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홀든은 그 가사를 귀 기울여 듣는다. 그 가사엔 ‘호밀밭을 들어오는 사람을 잡는다면’이란 구절이 들어 있었다. 꼬마가 아슬아슬하게 연석을 걸으며 그 노랠 부를 때 교회에 다녀오는 것으로 보이는 꼬마의 부모는 아이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차들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있었다. 그 영상 때문에 홀든은 ‘대체 뭘 좋아하냐고?’라고 묻는 피비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늘 넓은 호밑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 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애기란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약하고 무력한 편에 서겠다는 우화 같은 바로 이 선언 때문에 우리는 냉소적인 홀든의 따뜻함과 천진함에 빠져 들어 버린다. 아마 그 꿈을 진심으로 조롱할 수 있는 사람은 전 지구상에 다섯 명도 안 될 것이다. 소설에서 유일하게 그가 행복감으로 소리를 질러버리고 싶어 하는 장면은 여동생 피비가 파란 코트를 입고 회전목마를 타고 빙글빙글 도는 장면을 비에 흠뻑 젖어 바라볼 때다. 그는 그냥 피비가 너무 예뻐 보여서 누구한테라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하고 불현듯 행복감을 느낀다. 나는 이 장면에서 홀든의 시선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좀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나 따위는 상관없어!’라고 말하는 것이나 같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행복감이 측은하게도 느껴진다. 그는 호밀밭의 아이들을 돌보고 나는 호밀밭의 아이들을 돌보는 그를 돌봐주고 싶다.

우리의 홀든은 정상적인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순종적이 되지 않는 것의 매력을 아슬아슬하게 펼쳐 보인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가 그 순간에 세계를 더 풍요롭게 만들었다고는 볼 수 없다.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회피한다’란 식의 치열하지 않은 늙은 냉소가 그에게는 있다. 그에게 솔직함과 천진함이 있다면 그건 그가 아직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즉 그는 미성숙하기 때문에 순진하다(내가 생각하는 미성숙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스스로 세계를 축소시킨다는 점이다. 취향에 맞는 사람만 이해하려 든다는 식으로. 미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세계를 축소시키면서 세계도 축소시킨다). 마침 시대는 흑인 아이들이 ‘니그로 강처럼 깊은 영혼’을 만들고 있을 때인데도 우리의 홀든은 그저 서부로 가고 싶어 한다. 그의 상상 속에서 서부는 아주 아름다울 뿐 아니라 햇빛도 따뜻한 곳이다. 그곳에 가서 그는 귀머거리에 벙어리 행세를 하며 살 참이었다. 소설 전체를 통해 그는 피비하고 말고는 아무하고도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못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누구하고도 쓸데없는 바보 같은 대화를 하지 않고 누구라도 내게 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종이에 써서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 평생 아무하고도 말을 하지 않고 지내게 되리라. 작은 오두막집을 짓고 죽을 때까지 거기 사는 것이다. 결혼하고 싶어지면 나와 똑같이 귀머거리에 벙어리인 귀여운 여자를 만날 것이다. 그녀도 내게 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다른 사람들처럼 종이에 써야할 것이다. 그러다가 아이가 생기면 그 애를 어딘가에 숨겨놓을 것이다.

나는 벙어리에 귀머거리인 귀여운 여자를 만나 결혼할 거란 이 부분 때문에라도 앞으로 홀든이 연애와 결혼엔 백 퍼센트 실패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여성 혐오자에 가깝다. 하지만 홀든은 어떻게 얻은 아이든 아이는 잘 기를 거란 느낌이 든다. 그는 아이가 흉악한 음식 가공 유통업체의 손길을 탄 나쁜 음식을 먹을까봐, 지나치게 계산에 밝은 아이가 될까봐, 인간의 속사정을 존중하는 마음을 잃을까봐, 가식적인 속물이 될까봐, 사색하는 법을 모를까봐, 동화를 믿지 않을까봐, 동물을 얼어 죽게 할까봐, 단순하고 표피적인 인간이 될까봐 몇 번은 신에게 진심으로 기도할 것이다. 그는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그 스스로 상당히 사회와 거리를 두고 살지도 모르겠다. 그는 친구를 사귀는데도, ‘너는 정말 멋진 놈이야.’란 말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자존감을 갖는데도 앞으로도 계속 어려움을 겪을지 모르겠다. 그는 영원한 미성년처럼 맘에 맞는 사람하고만 사귀려 들 수도 있고, 마음 깊은 곳 안쪽으로부터 마음의 자물쇠를 걸어 잠그고 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언제 타인을 필요로 할까?’ ‘타인과 나 사이의 거리는 그렇게 멀기만 한가?’라는 질문을 홀든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던져보게 된다. 나는 그가 공중전화 부스에서 20분 동안 서 있으면서 아무에게도 전화를 걸지 못하고 그냥 돌아서 나오는 장면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홀든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근대 사회의 인간에게 근본 경험은 자기 소외가 아니라 세계 소외’(인간은 세계로 내던져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자신 내부에 있는 생명 과정으로 내던져졌다)란 말이 떠오르고 ‘세계로부터의 도피가 반드시 개인을 해치는 것은 아니지만 각자의 이러한 도피 때문에 세계에 대한 명백한 손실이 일어나게 되고 그 손실이란 개인과 그의 동료들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했던 독특한 가치를 지닌,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는 사이(in-between)’란 말이 자꾸만 생각난다.

그래서 홀든이 병원(그의 병명은 정확히 나와 있지만 정신과 치료도 병행한 것만은 밝혀져 있다. 그는 병원에서 소설 전체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한 것으로 되어 있다)에서 “난 이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한 걸 후회하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이 이야기에서 언급했던 사람들이 보고 싶다는 것 뿐. 이를테면 스트라드레이터나 애클리 같은 녀석들까지도, 모리스 자식도 그립다. 정말 웃긴 일이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말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라고 말을 하는 장면을 『호밀밭의 파수꾼』의 그 어떤 장면보다도 좋아한다(스트라드레이터는 자동차 앞좌석에 누가 있건 뒷좌석에서 여자랑 갈 데까지 갈 수 있는 뻔뻔하고 아주 음란한 놈이고, 애클리는 홀든과 함께 사는 동안 단 한번도 이를 닦지 않은 진짜 지저분한 놈이고, 모리스는 홀든에게 창녀를 소개하고 돈을 뜯어간, 털이 잔뜩 난 뚱뚱한 배를 가진 엘리베이터 보이다). 그리움이 있는 한, 우리는 너무 많이 멀어지진 않는다.

나는 이 장면을 오랜만에 읽으면서 ‘자신의 삶 속에서 의미 있는 사건을 끝없이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인간적 가능성이라는 말’에 대해 좀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여전히 (아니 나부터) 하나의 인간적인 가능성으로 남아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세계는 훨씬 더 인간적인 곳이 될 수도 있을까? 남과 좀 다른 식의 삶의 방식을 끝없이 제시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의미를 지니는 것 아닐까? 그러다가 결국 우리도 우리 자신의 운명을 세상과 화해시키는 기막힌 존재의 기술을 찾아내게 될 수도 있을까? 세상을 웃기기도 속이기도 하면서 흥미와 경탄과 판타지를 제공하는 신비로운 마술사 같은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좀 엉뚱한 말 같지만 나는 『호밀밭의 파수꾼』 홀든이 레이먼드 챈들러가 만들어낸 캘리포니아(서부)의 사립 탐정 필립 말로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어느 날 밤 생각했다. 필립 말로가 누구냐 하면 바로 이런 사람이다.

“챈들러는 미국 영웅의 결정판-모든 것을 알고 희망을 잃지 않으며 사려 깊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감상적인 동시에 시니컬하고 반항적인 영웅을 창조했다.” - 로버트 B. 파커

그런데 모든 것을 알고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말을 기준으로 놓고 본다면, 우리가 홀든보다 세상에 잘 대처하고 있긴 한 것일까? 이 춥고 반쯤 불이 켜진 세상에서.

오늘 밤 인간적이지 않으니까. 말로. 아마 한번도 인간적인 적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을지도 몰라. 어쩌면 난 사립 탐정 면허증을 가진 허깨비인지도 몰라. 우리 모두가 그렇게 되는지도 모르지. 항상 잘못된 일들만 일어나고 결국 바로잡을 수도 없는 이 춥고 반쯤 불이 켜진 세상에서는. 말리부. 더 많은 영화 스타들, 더 많은 핑크색과 푸른색의 욕조들, 더 많은 술 장식이 달린 캐딜락, 더 많은 바람에 날린 머리카락과 선글라스, 건방진 태도, 가짜로 세련되게 꾸민 목소리와 부둣가의 법칙들. 잠깐 기다려봐. 근사한 사람들이 많이들 영화에서 일하지. 자네. 태도가 글렀어. 말로, 오늘밤 인간적이지 않다니까.
- 레이먼드 챈들러, 『리틀 시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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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저/<이덕형> 역9,000원(10% + 5%)

20세기 최고의 미국 현대소설로 칭송받는 책. 존 레넌이 암살되던 때 피격자가 이 책을 들고 있던 것으로 유명하다. 넓은 호밀밭을 뛰어노는 아이들이 굴러떨어질 때 벼랑 끝에서 붙잡아주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어하는 주인공 홀든이 누군가 자신을 붙잡아주기를 바라며 헤매이는 48시간의 독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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