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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우아한 소년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 『젊은 예술가의 초상』

최근 소녀를 문학적,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작가로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르 클레지오 말고는 두드러지지 않는 것에 비해서 소년들의 활약은 가히 눈부시다고 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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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폭풍우가 치는 밤에 북구의 매혹적인 뱀파이어를 다룬 소설 『렛미인』을 읽었는데, 너무 예쁜 뱀파이어 소녀 앨리를 사랑한 호칸(영화 속에서 앨리를 위해 피를 받아 주러 해 지는 숲에 서 있던 중년 남자)은 영원히 죽지 않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해 ‘오드리 햅번의 미모에 사무엘 베케트의 영혼을 가졌다’고 표현한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하품을 하면서 간신히 읽었던 사람이라도 그 영혼이 오드리 햅번 안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면 아마 초인적인 힘으로 사무엘 베케트를 이해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도 고전을 갖고 몇 가지 심오한(?) 장난을 쳤던 기억이 난다. 이를테면 개인적으론 도저히 숭배할 수 없는 제인 오스틴을 좀더 이해하기 위해 제인 오스틴의 영혼에 퀴리 부인이나 다이애나 비의 외피를 씌워 보면 어떨까 생각해 본 일이 있고, 현대에 와선 그 매력을 거의 잃어 가는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스티븐 더글라스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남자 주인공인 피노키오의 외피를 씌워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일도 있다. 피노키오가 당나귀가 될 때 그 슬프고 애처로운 눈으로 본 세상이나, 고래 뱃속에서 그리워하는 세상을 제임스 조이스 식으로 묘사해 본다면,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새삼 그 아름다움을 빛처럼 뿌리게 될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나의 상상이 아주 부질없지는 않다는 확신이 점점 든다. 그것이 왜 그러냐 하면 내 눈엔 다분히 제임스 조이스적 시선을 가진 소년들이 현대 문학계를 강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소녀들이 자라서 모두 힐러리 클린턴이 되는 건 아닌데도 전 세계 작가들은 일제히 소년들(아직 어린 청년기까지 포함한다.)에게 마음을 빼앗긴 듯하다. 이를테면 영화에선 <중앙역> <빌리 엘리어트> <어거스트 러쉬> <코러스> <더 리더> <스탠 바이 미>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소년들(<슬럼독 밀리어네어>의 경우는 형에게 더 관심이 간다.)이 맡았던 역할을 소설에선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이 가까운』 『스피벳』의 소년들이 해낸다.

최근 소녀를 문학적,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작가로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르 클레지오 말고는 두드러지지 않는 것에 비해서 소년들의 활약은 가히 눈부시다고 할 정도다. 요즘 사랑스러운 소년들은 모두 무한히 탐미적인 시선으로 계시를 기다리는 조이스적 영혼에 전문가 급의 과학 지식과 놀라운 예술적 안목, 자기만의 오타쿠적 지식으로 중무장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의 뉴욕 게토 꼴통 오스카 와오는 도미니카계인데, 안경으로 거의 ‘여자 퇴치 장치’에 가까운 공업용 고글을 쓰고 다니고, 체중은 110kg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저주스러운 용모의 소유자지만 『울트라맨』부터 프랭크 밀러, 앨런 무어, 『스타트렉』 『왓치맨』 등 장르 소설에 관한 한 고등학교 무렵엔 이미 절대 마니아, 절대 강자가 되어 있었다. 괴물이나 우주선, 돌연변이, 지구 최후의 날, 운명을 건 악한이 나오는 만화에서 그를 떼어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는 자신의 오타쿠스러움을 제다이가 광선 검을 차듯 온몸에 휘감고 있다.

그슴 사춘기 내내 여자 없이 지냈기 때문에 5년만 이렇게 지낸다면 누군가 자기의 이름을 따서 교회의 이름을 지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사랑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고, 반대로 거의 백색 왜성의 밀도로 사랑을 원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열정에 관한 한 불꽃 튀는 포스를 뿜어댄다고 믿고 있었지만 여자들은 그 포스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다 허상이었다. 용감한 도미니카 여성인 그의 엄마는 집에만 콕 박혀 있는 오스카를 보고 “아들이 아니라 아예 은자를 모시고 사는구나.” 하고 모질게 잔소리를 해댔다. 그러나 그 시절엔 어느 도미니카 집안에나 그놈의 미친 사랑 이야기는 다 있었고, 오스카의 집안도 마찬가지였으니 결국 그도 그 운명을 따르게 되어 있었다. 그는 지구 최후의 날 유일하게 살아남을 여자를 잿더미에서 구해 낼 고결한 최후의 전사 급의 사랑을 할 운명이었는데, 소설의 마지막 몇 장까지도 자기 자신도 그걸 모르고 있다. 그는 단지 『왓치맨』의 이런 문장 ‘더 강력하고 더 따뜻한 세상’이라는 말에 동그라미를 치고 있을 뿐이었다. 비밀경찰과 가혹한 독재의 도미니카와 뉴욕을 오가는 오스카 와오의 여정은 <터미네이터><반지의 제왕>에 제임스 조이스를 섞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스피벳』의 스패로를 예로 들자면, 그는 8월 어느 날 누나와 함께 앉아 옥수수 껍질을 까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누나가 옥수수 껍질을 깔 때 옆에 앉아 작고 파란 노트에 누나가 어떻게 껍질을 까고 있는지 간결하게 표현한 다이어그램 같은 도해를 그리고 있었다. 그에게는 몇 권의 노트가 있었다. 사람이 일하는 방식을 그린 파란 노트, 동물학과 지리학과 지형학 도해를 그린 초록 노트, 동물 해부도를 그린 빨간 노트 등이다. 그와 가족들이 사는 목장은 몬태나 주 디바이드라는 곳 근처에 있었는데, 이끼와 진흙, 세이지 냄새가 섞여 가끔 허클베리 핀의 냄새를 풍기는 곳이었다. 해발 1,629m의 외딴 목장에 사는 스패로는 대륙 분수계의 거대한 경계선을 짊어지고 산다고 생각한다. 이 경계의 존재는 그의 뼛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그곳의 8월의 여름, 찢으면 이탈리아제 실크 바지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나는 옥수수 껍질을 까기 전 날, 그는 전나무로 장식된 파이오니어 산맥의 부드러운 등뼈에 새벽이 고요히 쏟아질 때까지 인간 신체의 내부에 대한 나바호 족과 쇼스니 족, 샤이엔 족의 생각을 그린 그림들 위에 고대 진 왕조의 인체 해부도를 겹쳐 놓은 플립 북을 그리느라 밤새 깨어 있었다. 그리고 동이 트는 가운데 잠을 못 잔 상태에서도 맨발로 걸어 나가 그 순간이 선사하는 은밀한 마법을 느낀다. 태양이 파이오니어 산맥을 다 비추고 마침내 자신의 얼굴을 비출 때까지 그는 등 뒤에 새끼손가락을 오므리고 있었다. 새벽이 주위를 온통 밝힌 다음 자신의 얼굴을 비출 때까지 등 뒤에 손가락을 꽉 움켜쥐고 있는 이 모습만큼 12살 소년의 이미지를 아름답게 그려낸 장면을 만나기는 당분간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날 그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온다.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티에스 스피벳 선생님이십니까? 선생님이 카라비대 브라치누스(폭격대 풍뎅이)가 하복부에서 부글거리는 분출물을 배출하고 섞는 모습을 그린 아주 멋진 다이어그램을 그리신 바로 그 티에스 선생님이십니까? 정확히 주소가 어떻게 되십니까?”

“서경 114도 44분 19초, 북위 45도 49분 27초. 제 방 위치는 그렇습니다.”

그는 8살 때부터 모든 일을 꼼꼼하게 기록하게 시작했다. 그는 그 나이 때 밤이면 가끔 이불에 오줌을 싸는 아이였지만 도해를 그릴 때는 어린아이의 불확실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여기와 저기’ 그는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은 저기에 가 본 적이 없었고 여기에 있은 적도 거의 없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없음이 전 세계의 탐미적인 소년들의 슬픔이다. 이 세상의 수줍고 죄 많고 어수룩한 관찰자이자 방관자. ‘나는 다른 곳에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슬픔 때문에 스미소니언 박물관을 향해 몬타나주를 떠나는 소년의 여정이 시작된다. 그날 그가 제도 장비를 가득 넣은 여행 가방을 이제는 죽고 없는 동생의 수레에 싣고 정든 목장을 떠날 때, 등 뒤에서 빨간 미등을 켠 아버지의 낡은 픽업이 따라왔다. 아버지는 그를 붙잡아 세울 것인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마치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아버지는 왜 그를 가게 내버려 뒀을까? 이 장면 또한 소년과 아버지의 관계를 형상화한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로 꼽힐 것이다. 아버지들은 소년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단지 무사하기만 바랄 뿐이다.

스패로가 열차를 타고 떠날 때 ‘웜 홀’을 통과하는 것은 너무나 의미심장하다. 웜 홀은 서로 다른 우주들 사이를 연결하는 지름길 같은 통로인데, 그가 웜 홀을 통과해 만난 것은 총기 오발 사고로 죽어 버린, 어린 나이에 이미 그 누구보다 탁월한 카우보이였던, 아버지가 세상 그 무엇보다도 사랑했던 동생 레이턴이었다. 부드러운 후광 아래 가방을 들고 서 있던 레이턴은 “내가 어디에 다녀왔는지 들으면 형은 깜짝 놀랄걸!”이라고 말한다. 물질세계가 아닌 평행 세계에서 레이턴과 스패로 둘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많았다.

스패로의 긴 여정은 제임스 조이스에 마크 트웨인, 스티븐 호킹을 더한 소년의 여정처럼 읽히는데, 우리 우아한 소년들의 계보는 인생에 가치 있는 것이 따로 있다고 믿는 소년들의 계보이기도 하지만 소년들의 죄의식과 불안감의 계보이기도 하다. 소년들은 한 세계에서 다음 세계로 부드럽게 넘어가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부모의 기대라는 손을 슬며시 놓아 버렸기 때문에 죄의식을 느낀다. 아름다움과 죄의식으로 범벅된, 자신이 위태로운 매력의 소유자라는 걸 모르는 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만약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평행 우주와 웜 홀에 대해 조금은 들려주고 싶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기독교 세계의 제7의 도시’ 아일랜드의 더블린에 사는 스티븐 더글라스라는 남자의 이야기다. 소설의 1장에서 그는 어린아이였다가 2장의 끝에 동정을 잃고, 3장엔 번민하다가 4장엔 새 같은 아름다운 소녀를 만나 이카루스의 비상을 꿈꾸게 되고, 5장엔 대학생이 되었다가 모든 것을 경험하고, 모든 함정에 빠져보리라 마음먹고,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아름다움을 팔에 꼭 껴안고 고향을 떠나는 걸로 되어 있다. 1장의 첫 문장은 아버지가 어린 스티븐에게 해 주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옛날에 아주 살기 좋던 시절, ‘음매’ 하고 우는 암소 한 마리가 길을 걸어오고 있었단다. 길을 걸어오던 이 음매 암소는 턱쿠 아기라는 이름을 가진 예쁜 사내아이를 만났단다.”

우리의 스티븐은 자기 아버지의 턱쿠 아기였다. 내가 갓난아기 적에 우리 엄마의 쪽쪽 빨아먹고 뜯어먹고 싶은 강아지였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 환각적으로 아름답던 시절은 금방 가버리고 1장에서 그는 비교적 명문인 클롱고우스 기숙학교에 다닌다. 그는 지리책 여백에 이런 글을 쓴다.

스티븐 더글라스
기초반
클롱고우스 우드학교
샐린스 마을
킬데어 군
아일랜드
유럽
세계
우주


그러자 스티븐의 친구는 다른 페이지에 장난삼아 이런 글귀를 적어 놓는다.

스티븐 더글라스는 내 이름이요,
아일랜드는 내 나라로다.
클롱고우스는 내 거주지요,
하늘은 내 소망이로다.


스티븐은 이것들을 끝에서부터 다시 되짚어 읽어 본다. 맨 마지막에 그의 이름이 나왔고, 그 이름이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그는 그 사실에 고통을 느꼈다. 우주가 어디서 끝나는지를 모른다는 것에 고통을 느꼈고, 자기가 작고 약하다는 느낌에 고통을 느꼈다. 크리스마스 방학 때 돌아온 그의 집 식탁에서는 어른들의 정치 이야기가 길게 이어진다. 그때 그는 맘에 두던 소녀 아일린의 하얗고 긴 손을 생각한다. 그 손으로 아일린은 어느 날 저녁에 술래잡기를 하다가 그의 두 눈을 가린 적이 있었다. 그래서 1장은 ‘어른들은 모르는 어린 아이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 어른들이 정치 이야기를 할 때 아이들은 이런 생각을 한다. 스티븐이 지리책 여백에 적어 놓은 문장이야말로 소년들의 유서 깊은 질문이다, ‘나는 어디서 왔을까? 나는 알에서 태어났을까? 이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끝을 맺을까?’

2장에 가면 스티븐은 어른들의 대화를 완전히 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언젠가 자기 몫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남몰래 준비하는 시기를 보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자기를 버린 메르세데스와 단둘이 달빛 어린 정원에 서 있다가 그녀가 권하는 포도를 오만한 몸짓으로 거부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기도 하면서 더블린을 산책한다. 베일에 싸인 듯한 그 거리를 걸으면서 소년이 성장하는 동안 집안의 살림은 기울대로 기운다. 그래도 그는 언젠가는 연약함과 소심함과 무경험으로부터 벗어나 인생을 맞닥뜨릴 어떤 순간을 만나게 될 것이란 예감을 갖는다. 그래서 소년은 음침하고 어두운 거리 어디든 헤집고 다닌다. 2장은 소년의 떨리는 예감에 관한 글이지만 그러나 2장 끝에서 다가온 현실은 이런 것이었다.

“키스해 줘요.” 그녀가 말했다.

그의 입술은 좀처럼 키스를 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차라리 그녀의 품에 꼭 안겨서 천천히, 천천히 애무나 받고 싶었다. 그의 입술은 좀처럼 그녀에게 키스하려 하지 않았다. 갑작스런 동작으로 그녀는 그의 머리를 아래로 끌어당겨 자기의 입술을 그의 입술에 맞추었다. 그는 치켜뜨고 있는 그녀의 솔직한 두 눈에서 그 동작의 의미를 읽었다. 그것은 그에게 너무나 벅찬 것이었다. 그는 온몸과 마음을 그녀에게 내어 맡기면서 눈을 감은 후 그 다정하게 갈라지는 입술의 어두운 압력만 느낄 뿐 이 세상의 어느 것도 의식하지 않았다. 그녀의 입술은 어떤 모호한 언어를 전달하는 매개체인 양 그의 입술뿐만 아니라 두뇌까지 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두 입술 사이에서 그는 어떤 정체불명의 겁먹은 듯한 압력을 느끼기도 했는데 그것은 죄의 황홀경보다 더 어둡고 소리나 냄새보다도 더 부드러운 것이었다.


제임스 조이스가 소년 시절에 겪기 마련인 필연적인 욕망에 대해 ‘죄의 황홀경보다 더 어둡고 소리나 냄새보다도 더 부드러운 것이었다.’라고 말해주었기 때문에 나에게 그 죄는 구슬픈 비현실적 숙명이나 삶의 어두운 신비를 말하는 것처럼만 느껴진다.

3장 처음은 다시 소년이 창녀를 만나는 장면에 관한 묘사로 시작되는데, 스티븐이 흐릿한 네모꼴 창문을 통해 밖을 응시하고 있을 때 그의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는 무, 당근, 감자, 기름기 많은 양고기 조각을 넣은 스튜를 먹고 싶었다. 공복감이 그에게 실컷 먹으라고 타이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은밀하고 어두운 밤, 때 이른 저녁, 한길을 따라 우회하며 오락가락하다 두려움과 기쁨의 전율을 느끼며 결국 어떤 모퉁이를 갑자기 홱 돌아서 마침내 노란 등불이 켜진 사창가에 들어선다. 어떤 모퉁이를 홱 돌아서 사창가에 들어설 때 그는 “헬로 버티, 뭐 신통한 일 없어?” “이건 풋내기 아냐?” “10번이에요. 싱싱한 넬리가 시중들어 드릴까?” “어서 오세요. 쇼트타임을 원하세요?” 같은 창녀 고유의 인사말들을 듣게 되고, 결국 체험을 찾아 떠난 그는 죄의식의 싸늘한 혼돈 속에 빠져 버렸다. 그래서 3장 전체는 스티븐이 사흘 동안의 피정에 참여해 지옥에서 당할 수 있는 온갖 육체적 고통에 대해 쉴 틈 없이 듣고 또 그다음엔 지옥에서 당할 수 있는 온갖 정신적 고통에 대해 쉴 틈 없이 듣는 장면에 바쳐진다. 결국 그는 처치 스트리트의 성당에 찾아가 고해를 하고 만다.

“혼자서 범했나요?”
“여자들과 범했나요?”
“결혼한 여인들이었나요?”
“지금 몇 살이지요?”


고해 후 스티븐은 집으로 돌아와 하얀 푸딩과 계란과 소시지와 두어 잔의 홍차를 들게 될 식탁을 상상하면서 삶은 순박하고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4장에 가면 스티븐은 성공 코스라 할 수 있는 사제직을 권유받게 되는데, 스티븐은 그 제안을 거절한다. 그 후 스티븐은 해변에서 자기의 이름을 하나의 예언으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그때 하늘은 시간을 초월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한 날개 달린 형체가 파도 위를 날아 서서히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있는 듯하다고 느낀다. 스티븐은 생각한다.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예언과 상징으로 가득한 중세 서적의 한 페이지를 여는 기이한 도안을 보고 있는 것일까? 매처럼 생긴 사람이 태양을 향해 바다 위로 날아가다니 안개 같은 유년기와 소년기를 통해 꾸준히 추구해 오기도 했던 목표를 예언 받고 있는 것일까? 혹시 자기의 작업실에서 이 지상의 맥 빠진 물질을 가지고서 새롭고 신비한 불멸의 비상체를 빚어내 보라는 상징일까?’

스티븐은 자기 육신이 정령의 원소와 뒤섞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한순간의 황홀한 야성적 비상이 그를 해방했고, 그도 이제 오로지 영혼의 자유와 힘을 밑천으로 하나의 살아 있는 새 비상체를 오만하게 창조해보고 싶어 한다. 그의 발에는 방랑의 열기가 붙었다. 순식간에 그는 맨발이 되었는데, 그의 앞에는 한 소녀가 개울 가운데 혼자 서서 가만히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 장면이 『젊은 예술가의 초상』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마술에 걸려 신기하고 아름다운 바다 새의 모습으로 변모한 듯한 소녀였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그 길고 가냘픈 다리는 학 다리처럼 연약했고, 한 줄기 녹색 해초가 살갗에 새겨 놓은 징표처럼 붙어있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순결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녀의 얼굴 또한 소녀다웠고 경이로운 인간적 아름다움을 띠고 있었다. 그녀는 혼자 가만히 서서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가 자기 앞에 와서 숭배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자 그녀의 눈은 그를 향했고 조용히 그의 응시를 받아들이면서도 부끄러워하거나 경망스러운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실로 오랫동안 그녀는 그의 응시를 받아들이고 있다가 조용히 눈을 떼어 개울물을 내려다보면서 발로 점잖게 물을 이리저리 헤쳤다. 조용하게 출렁이는 희미한 물소리가 처음으로 정적을 깼다. 나지막하고 흐릿하고 속삭이는 듯한 물소리는 잠결에 듣는 종소리처럼 희미했다. 이리저리, 이리저리 물이 출렁이는 소리, 그러자 그녀의 뺨에서는 어렴풋한 불길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녀의 이미지는 영원히 그의 영혼 속으로 옮겨갔고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살며 과오를 범하며 타락해 보고, 승리하고, 삶에서 삶을 창조하는 거다!’ 그때 그의 머리 위에 무심한 돔처럼 드넓게 전개된 하늘이 있었고, 그는 조용히 운행하는 천체를 느낄 수 있었다. 하늘은 한 잎 한 잎 겹겹이 밀어닥치는 빛의 물결을 이루며 부드러운 홍조로 물들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이것은 하나의 세계인가? 하나의 빛인가?”라는 감탄사를 내뱉게 된다.

5장에서 스티븐은 친구 크랜리에게 이런 고백을 한다.

“넌 나에게 내 두려움들을 고백하게 했어. 하지만 나는 너에게 내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들도 말해 주마. 나는 외로이 지내는 것,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쫓겨나는 것, 그리고 내가 버려야 할 것이 있으면 무엇이나 버리는 것, 이런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어떤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이 설사 큰 잘못이고 평생에 걸친 잘못, 어쩌면 영원히 계속될 잘못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오래전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아름다움을 품속에 꼭 껴안고 떠난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읽는 사람은 더블린이라는 미궁을 탈출해 솟구쳐 오르는 비상의 이미지, 태양을 향해 날아가던 매 같은 사람의 이미지 때문에 이카루스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제임스 조이스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 전체를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그리고 그는 미지의 기술에 마음을 쓰고자 한다.”는 문장에 바쳤다.

제임스 조이스는 일상의 아주 자잘한 사건들에 확대경을 들이대고 엄청난 밀도와 상상력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그의 글을 읽는 것은 어떤 순간엔 극도로 작은 공간에 거대한 질량이 상상을 초월해 압축되어 있는 우주를 바라보는 것 같은 기분을 준다. 극도로 작은 것, 찰나적 순간에 존재하는 섬세한 것, 덧없는 것에서 존재를 고양시키는 어마어마한 순간을 포착하는 것ㅡ비록 추락하더라도ㅡ이 내가 이해하는 제임스 조이스의 시선인데, 조이스의 시대엔 계시나 예언으로 표현된 것들(윤회를 믿는 사람들이나 혹은 좀더 슬픈 사람들은 ‘다음 세상에선’ 혹은 ‘천국에서 만난다면’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을 양자역학 세계를 사는 오늘날의 똑똑한 소년들은 평행 우주와 평행 세계, 웜 홀에서 그 길을 찾고 있는 듯하다. (“또 다른 평행 우주에선 더 좋은 아들이 되어 볼게.” 등등.)

아무리 기이하고 터무니없는 사건이라도 확률이 ‘0’이 아닌 한 반드시 일어난다는 데서 출발한 양자역학의 다세계 해석은 ‘수많은 상이한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삶의 판본들이 동일한 시간상에 존재한다는 점, 그것들의 수는 무한하다는 점, 그리고 그것들 모두가 실재한다는 점을 보여준다.’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이름 정도는 들어본 물리학자 파인만은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방을 가로질러 가려고 할 때 별다른 장애물이 없다면 우리는 a와 b를 잇는 최단 거리를 가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파인만은 a와 b를 연결하는 모든 가능한 경로를 탐색하려 했다. 이 경로들 중에는 화성이나 목성을 들렀다 가는 길, 빅뱅이 일어난 시간까지 거슬러 돌아가는 길도 포함된다. 파인만은 이런 경로를 계산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 결과,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유일한 우주’가 아니라 그저 ‘확률이 높은 우주’가 되었다. 이 생각은 앞으로 똑똑한 소년들의 사고 체계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이다.

“Boys, be ambitious!”란 말은 이젠 “소년들이여! 웜홀을 가져라.”로 바뀌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있는 방 안에 내 코 바로 1mm 앞에 또 다른 내가 사는 평행 우주가 있다면, 우리 시대의 아름다운 소년들은 자기만의 웜 홀로, 자유자재로 자신이 원하는 우주로의 비상과 탈출을 꿈꾸려 들 것이다. 머나먼 미래에 정말로 우리 몸이 웜 홀을 통과해 다른 우주로 갈 수 있는지, 그랬다가 해질녘엔 돌아올 수 있을지 아직은 미지수지만, 그래도 그때까지 웜 홀은 소년들에겐 전환의 땅이자 ‘여기’와 ‘저기’를 연결하는 통로, 그리고 수백만의 가능성과 만나는 자기만의 성지로 존재할 것이다. 우주의 광활한 바다에서 불안하게 떠도는 것이 우리 소년들의 영혼 같지만 그건 불행한 일도, 소년들만 겪는 일도 아닐 것이다.(이를테면 우디 앨런 같은 엉큼한 어른들은 파동 같은 몸을 가진 여비서가 6차원 공간의 기하학적 형태로 몸을 비비 꼬면서 미소를 짓는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결합 상수가 그녀의 약력장을 침범해 입술이 그녀의 촉촉한 중성미자를 찍기를 바란다. 그녀의 원자핵과 자신의 원자핵이 서로 격렬하게 부딪히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어 하고, 그녀의 암흑 에너지에 홀리고 싶어 한다.)

우리 시대의 소년들은 삶의 여정을 시작하기도 전에 피곤에 지쳐 있다. 그러나 앞으로 기다리는 삶이 우주의 신비를 경험하는 일이라면 사정은 달라질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경험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신비’다. 신비는 예술과 과학의 근본을 이루는 진정한 모태이다.”

『스피벳』의 스패로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우리 엄마는 나를 하나도 이해하지 못해요. 이게 우주의 신비입니다. 나는 모든 게 맞아떨어지는 우주를 꿈꾸며 그 신비의 한 조각이라도 풀기 전에는 죽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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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예술가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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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자인 아일랜드 출신의 현대 소설가인 제임스 조이스가 유년기부터 대학을 졸업하고 유럽으로 떠나기까지 정신적 성장 과정을 다룬 자화상격인 소설이다. 주인공 스티븐 디달러스가 작가로서 소명의식을 깨닫게 되는 것이 중심 주제이다. 스티븐과 같이 조이스는 10대에 매춘부와 관계를 가졌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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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대한민국,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

경제 규모, 문화적 영향력으로 봤을 때 대한민국의 위상이 드높다. 그런데 한국인은 행복할까? 능력주의가 정당화해온 불평등, 반지성주의, 양 극단으로 나뉜 정치, 목표를 잃은 교육까지 문제가 산적하다. 김누리 교수는 이제는 변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한다.

더 나은 곳을 향한 상상, 그 담대한 목소리

그림책은 세계로 나올 준비를 하는, 다음 세대를 위한 책이다. 이들이 겪어나갈 사회는 좌절과 상실, 모욕과 상처가 필연적인 세상이지만 그림책은 절망 대신 희망을 속삭인다. 아이들에게 더 자유롭게 꿈꾸길 권하는 그림책 작가들. 이 강인하고 담대한 모험가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모든 존재의 답은 ‘양자’ 에 있다

고등과학원 교수이자 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 박권 교수가 쓴 양자역학 교양서. 우리가 어떻게, 그리고 왜 존재하는지 양자역학을 통해 논증한다. 과학, 철학, 영화, SF소설, 개인적인 일화와 함께 이야기로 풀어낸 양자역학의 세계는 일반 독자들도 흥미롭게 읽기에 충분하다.

당신의 사랑은 무엇인가요?

사랑이 뭐예요? 아이의 물음에 할머니는 세상에 나가 답을 찾아보라고 말한다. 사랑에 대한 답을 찾아 떠난 긴 여정 끝에 아이가 찾은 답은 무엇일까? 칼데콧 아너상을 수상한 맥 바넷과 카슨 앨리스가 함께 만든 사랑스러운 그림책. 사랑의 의미를 성찰하는 아름다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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