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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지나치게 오래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 『콜레라 시대의 사랑』

시간의 흐름을 기억하듯 사랑의 날들을 세어가던 한 남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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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콜레라 시대의 사랑』만큼 요란한 대하 로맨스 (내지는 대하 에로스) 소설을 읽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이 글은 자존심 강하고 드높은 명예를 왕관처럼 쓴 한 아름다운 여인에게 주저하지 않고 인생을 걸어 버린 다음, 자그마치 한 세기에 걸쳐 그 사랑의 쟁취를 위해 전면적인 투쟁에 나선 충족할 줄 모르는 남자의 이야기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말하기 전에 해야 할 이야기가 한 가지 있다. 말하자면 ‘마르케스와 나’ 같은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이건 내가 사람들의 한숨소리와 헛기침 소리만을 따로 모아놓은 릴 테이프(방송국에 녹음하러 온 사람들의 목소리에서 한숨소리만을 떼어내서 방송용 테이프로 이어 붙여 하나의 테이프를 만들었다. 나에게는 영화 <시네마 천국>의 키스 신처럼 고귀한 것이다)를 가지고 있었던 시절보다 조금 뒷 시절의 이야기다.

마르케스의 자서전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언론인인 마르케스는 어느 날 차를 타고 가다가 보고타의 8번가 567번지에 위치한 아름다운 식민지풍 건물의 커다란 현관문에 스스로를 평가절하 하는 간판이 하나 걸려 있는 것을 본다. 그 간판은 이렇다. ‘우체국 산하 수취인 불명 우편 사무소’. 그 건물의 직원들은 수취인 불명 편지의 수취인을 찾아주는 비현실적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 건물은 아주 아름다웠는데 천장이 높고 벽은 부식되어 있었으며 매일 입고되는 평균 100통에 이르는 수취인 불명 편지들은 우표를 붙였어도 봉투에는 아무런 글씨도 써 있지 않거나 하다못해 발신자 이름조차 써 있지 않은 것들이었다. 직원들은 그 편지를 투명인간에게 가는 편지들이라고 불렀다. 마르케스는 그 건물에 관한 기사를 ‘우편배달부는 벨을 천 번 울리다’ 혹은 ‘주인 잃은 편지들의 공동묘지’라는 제목으로 쓴다.

그런데 어느 날 마르케스는 그중 특별히 관심이 가는 어느 편지의 수취인을 찾아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편지는 아구아 데 디오스에 있는 나병 요양소에서 매일 오후 5시 작은 성당의 성당 미사에 참여하는 상복 입은 아주머니에게 가는 것이었다. 마르케스는 주임 신부와 보좌 신부들의 협조 아래 온갖 조사를 해봤지만 성과가 없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상복 입은 여인의 뒤에는 또 다른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을 거란 걸 알았기 때문에 그 실패는 오랫동안 그의 마음을 쓰라리게 했다.

나는 당시 이 이야기에 깊게 빠졌기 때문에 전국의 청취자가 내 프로그램 앞으로 보낸 편지 중 발신인이 적혀 있지 않은 것을 특별히 모아 두게 되었다. 나병 요양소의 환자가 상복 입은 아주머니에게 보내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낯선 사람이 낯선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 또한 외롭고 신비롭긴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어떤 편지는 그 해의 배추 값 폭락으로 배추밭을 갈아엎기 직전에 맘을 바꿔 트럭을 한 대 빌려 서울의 아파트촌을 마이크를 잡고 돌던 농부 아버지를 지켜보던 아들이 보낸 것이었다.

평생 우직한 농부였던 그의 아버지는 상처받은 자존심 때문에 하루 종일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그러고도 팔지 못한 배추는 어느 아파트 뒷담에 몰래 쌓아 놓고 그들 부자는 마치 노상방뇨범이나 방화범처럼 도망쳤다는 것이다. 아들은 구멍가게에서 우유 한 통과 담배 한 갑을 사왔고 둘은 한강에서 담배를 피우게 되었다. 한강에는 때마침 노을이 지고 있었는데 붉은 노을과 담배의 타들어가는 장렬한 빨간 빛이 묘하게 아들의 마음을 건드려 그는 ‘우리 아버지가 오래 살진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그 아버지는 곧 죽었고 아들은 자기의 경망스러운 생각도 죽도록 후회스럽지만 아버지를 서울 어딘가에 그냥 공짜로 내버려두고 도망쳐 온 것 같은 느낌을 줄곧 떨칠 수가 없단 것이었다. 그는 그 아파트에 한번은 더 가보고 싶은데 자기의 아둔함으로는 그 동네가 도저히 어디인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해 미칠 지경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날의 일을 되씹어 보니 그날 아버지의 행동이 좀 묘했단 것이다. 그러니까 그 아파트에 아버지가 아는 누군가가 살고 있었고 아버지와 그 누군가는 시선을 교환하고 서로 알아봤음이 틀림없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단 것이다. 아버지가 알아봤다던 그 또는 그녀는 누구였을까? 도대체 그의 아버지는 왜 죽었던 것일까? 그 아버지의 울분 가득한 하루 동안의 마음의 행로는 어떤 것인가?

편지의 주인은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편지의 주인을 찾아서 지독하게 비슷비슷해 보인다는 서울 외곽의 서민 아파트를 찾아볼 결심을 했었고 실제로 은밀히 착수도 했었다. 내 평생을 아무리 뒤져봐도 우표의 보라색 둥근 도장 자국을 유리겔라가 숟가락을 들어올리는 그 염원에 필적할 염원으로 뚫어지게 들여다 본 건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한 통의 편지는 어느 성폭행당한 여인의 편지다. 한 여인이 늑대가 인간이 되는지 인간이 늑대가 되는지 애매한 보름달 뜬 밤에 이웃집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하는데, 그녀가 그것을 확인하려 들자 그와 그의 전 가족이 달려들어 그녀를 몹쓸 음란한 여자로 몰아 세웠단 것이다.

편지의 대부분의 내용은 자신이 성폭행을 당했음을 밝히는 몹시 사실적인 묘사로 가득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 들었고, 도대체 내가 이 편지를 왜 받아야 하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편지의 주인공은 내가 추적할 필요도 없이 정확히 내 손에 편지가 들어온 다음날 오후 나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신원을 밝히지 않은 채 그 편지의 내용을 아주 절박하게 거의 울다시피 다시 한번 격정적으로 반복했다. 나는 우리나라에도 도움을 청할 여성 단체가 몇 군데 있고 내가 연결해 줄 수도 있단 말 정도밖에 할 수가 없었는데 그녀의 끝말은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그녀는 그런 도움은 필요 없고 단지 내 생각이 궁금할 뿐이라고 했다.

그녀에게 ‘당신은 성폭행 당한 것이 틀림없어요.’란 단정적인 대답이 그렇게 필요하고 절실한 이유는 그것이 그녀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맺은 육체적 관계일 뿐 아니라 긴 생애의 유일하고 확실한 신체적 접촉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당신이라면 여성 단체에 가고 싶겠어요?’라고 말을 맺었다. 나는 그 순간 그녀는 아주 나이가 많고 성폭행은 상상 속의 일이란 걸 눈치 채 버렸기 때문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현실 속에는 받아들이기 힘든 비현실들이 너무나 많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 일들이 있고 나서 마르케스의 몇 가지 작품들을 시간을 두고 차례차례 다시 읽어보았다. 나는 그가 현실 속의 비현실을 어떻게 다루나에 일차적인 관심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내 소설엔 내 삶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은 하나도 없다.’는 마르케스의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었는데, 점차로 아무리 허황되고 황당무계한 내용이라도 그의 고국 컬럼비아에서 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단 것을 믿게 되었다.

이를테면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는 1951년 결혼 첫날밤을 보낸 한 신부가 처녀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바로 다음날 친정으로 쫓겨 돌아온 뒤, 그녀의 오빠 둘이 여동생의 처녀성을 앗아버린 동네의 잘생긴 의대생 총각 하나를 죽이겠다고 ‘살인 예고’를 하고 온 동네의 70%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와중에 벌어진 실제 살인 사건을 다룬 것이고, 『사랑과 다른 악마들』은 1949년 별다른 기삿거리가 없던 날, 마르케스가 별 다섯 개짜리 호텔을 짓기 위해 파헤쳐지는 유서 깊은 산타클라라 수녀원의 예배당 납골당에 갔다가, 공사 감독이 한 무덤 밖으로 쏟아져 나온 머리채를 끄집어 낼 때 그 머리칼의 길이가 자그마치 22미터 11센티에 이르는 것을 보고 쓴 글이다. 그 머리칼의 끝에는 소녀의 두개골이 붙어 있었는데 초석에는 ‘시에르바 마리아 데토도스 로스 앙헬라스’란 이름이 남아 있었다. 그 혼란스럽고 신비로운 『백년의 고독』 역시 그의 외가의 이야기이고, 『콜레라 시대의 사랑』 전반부는 그의 부모의 연애담을 다룬 것이다.

영화 <콜레라 시대의 사랑Love In The Time Of Cholera>(2007)의 한 장면

마르케스의 작품들을 읽는 동안 우리는 몇날 며칠 축제처럼 이어지는 다채로운 광란과, 어느 것이 허구이고 어느 것이 현실인지, 어느 것이 뜨거운 낮잠 속 꿈속에서 벌어진 일인지 구별해내기 힘든 혼돈과 무질서를 그 고장의 땅과 강과 바다의 열기와 습기의 냄새에 뒤섞인 채로 곧장 받아들이게 된다.

마르케스의 글을 읽다보면 ‘비현실적이다’라는 말은 그 땅에선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오래전에 죽은 사람이 거리를 지나가는 것을 봤다거나 심지어 그 사람과 이제는 죽고 없는 어머니의 처녀 시절에 대해 밤새 이야기를 나눴다거나 지난 세기의 옷을 그대로 입은 여인이 폐가 속에서 권총을 겨누고 있는 것을 봤다거나, 그 여인이 햇빛을 보자 그녀의 옷과 함께 한 접시의 재와 먼지로 하얗게 부서져 내렸다거나, 집시 노인이 우산을 타고 날아간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거나, 앵무새가 라틴어를 하고 반 스페인 독립 노래를 우렁차게 뽐낸다거나, 사내들이 촛불 대신 돈다발에 불을 붙이고 밤새 놀았다는 식의 묘사에 더 이상 놀라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그 땅에선 ‘가공할 만한 픽션’이 아니라 ‘가공할 만한 현실’이 먼저 존재했고, 그런 뒤에 픽션과 현실은 너무나 밀접하게 너무나 뜨겁게 너무나 혼란스럽게 섞여 결국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멕시코의 옥타비오 파스가 “우리는 라틴아메리카에서 픽션과 사실을 구분하는 데 여전히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고 말할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그 고장의 매력은 반복되는 에로틱한 리듬이 그러하듯 상상을 초월해 에로틱하고 총천연색으로 강렬해서 우리는 22미터 11센티미터의 머리카락에 칭칭 휘어 감기듯 그 이야기들에 사로잡히게 된다. 지난 많은 세기 동안 그 공간은 전설적인 미인들과 용감하고 명예로운 매춘부와 보물이 묻힌 바다와 유나이티드 푸룻 같은 다국적기업의 불한당과 바나나 농장과 내전과 학살과 콜레라와 열일곱의 전투를 치르고도 살아남은 상처투성이의 장군들이 판치는 흑마술의 세계였다.

마르케스는 화장실이나 기차역에는 ‘신은 두려워하지 않아도 매독은 두려워하라.’라는 경구가 걸린, 영원히 이슬비 내리는 보고타의 창에서 그 풍경을 그저 바라보기만 한 게 아니라 그들 속에서 여러 차례 임질에 걸려 가면서, 내전 상황의 피비린내 나는 도시에서 투혼을 불살라 가장 떠들썩하게 살았고 관찰했고 썼고 이야기했다.

그는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멀어질 만큼 대단한 상상력을 지니고 있지 않아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애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마르케스는 현실 속에 비현실이 가득했던 저마다의 이해 불가능한 삶을 다루는 전략으로 비극을 택하진 않았다. 그는 코미디와 유머와 격정과 에로스의 떠들썩한 신, 보고타의 바쿠스가 되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가 판타지의 대가라고는 할 수는 없다. 그에게 인생의 꽃은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에게는 작은 사건이나 큰 사건이나 다같이 의미 있었고 모든 비현실이 현실이었다. 그는 이야기하기 위해 살았다.

그의 작품 중에서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전 인생의 유일한 사랑을 하루도 잊지 않고 마치 죄수나 로빈슨 크루소가 작대기를 그어 시간의 흐름을 기억하듯 사랑의 날들을 세어가던 한 남자의 이야기다. 나는 『콜레라 시대의 사랑』만큼 요란한 대하 로맨스 (내지는 대하 에로스) 소설을 읽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이 글은 자존심 강하고 드높은 명예를 왕관처럼 쓴 한 아름다운 여인에게 주저하지 않고 인생을 걸어 버린 다음, 자그마치 한 세기에 걸쳐 그 사랑의 쟁취를 위해 전면적인 투쟁에 나선 충족할 줄 모르는 남자의 이야기다. 그 투쟁의 과정에서 그의 남성적인 능력은 비할 데 없이 증가하고 강해지는 것처럼도 보이는데, 그러나 어쨌든 그에게 온갖 것을 가능하게 했던 묘약은 늘 하나의 고유한 이름을 갖고 있었다. 그는 넘치도록, 지나치게 오래, 마치 최면술에 걸린 사람처럼 사랑하는데 그 과정에서 절망이나 환멸이나 피로감이나 고통보다 그 의미가 컸던 것은 ‘왕관 쓴 여신’의 마음을 얻기 위한 그의 의지였다. 손에 총을 들지는 않았지만, 가슴엔 고귀한 대의명분은 없었지만, 그도 충성심으로 가득한(몸은 말고 정신만) 자기 사랑의 파수꾼이었다.

그의 인생 이야기는 이렇다. 거리에서 잡화상을 운영하는 미혼모의 아들인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우체국의 수습사원이었다. 그는 명석한 두뇌 덕분에 전신 기사의 관심을 끌게 되어 전신 기사에게서 모스 부호와 전신 기계를 다루는 법, 바이올린을 배우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전신 기사는 그에게 로렌소 다사라는 사람에게 전보를 가져다주라는 심부름을 시킨다. 돈은 많았지만 과거의 이력에 대해서는 명예롭지 못한 소문이 돌았던 노새 사업가로 알려진 로렌소 다사에게 전보를 전해주고 나오던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그 집의 재봉실 앞을 지날 때 창문으로 나이 지긋한 여인 하나와 소녀 하나를 보게 된다. 그때 소녀는 눈을 들어 창밖으로 누가 지나가는지 쳐다보았다. 그 우연한 시선이, 오십 년이 지난 후에도 끝나지 않고 세상을 뒤흔들 사랑의 시작이었다.

아몬드 모양의 눈을 가진 아름다운 열세 살 소녀의 이름은 페르미나였고 부유한 집안의 딸들만이 다니는 성모 봉헌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지나가는 길 복음 공원 벤치의 아몬드 나무 아래 앉아 매일 시집을 읽는 척했다. 그러다가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일 년 사시사철 항상 4월이던 아몬드 나무들이 꽃비를 내리던 오후 2시의 가물거리는 햇빛 속에서 아름답게 변한 그녀를 지켜보던 노력의 결실로 그는 드디어 그녀에게 편지를 받게 된다. 그 둘은 이제 상대방의 편지를 받기를 너무나 갈구하게 되었다. 그런데 페르미나 다사에게 편지는 그저 심심풀이용이었다면, 바늘 끝으로 동백꽃 잎에 세밀하게 새긴 시를 보내는 플로렌티노 아리사에게 편지는 마치 시인들이 그러하듯 사랑스러운 광기에 가까운, 온 영혼을 건 것이었다.

어느 날 그는 그녀를 위해 자신이 직접 작곡한 ‘왕관을 쓴 여신’이란 제목의 세레나데를 연주해 주었다. 그녀가 침실에서 놀라 발딱 일어나지 않고도 세레나데를 들을 수 있도록 달이 빛나는 밤에 자신이 선택한 장소에서 연주하기를 즐겨했는데, 그는 자기의 멜로디가 가야 할 곳에 정확히 도착하도록 바람의 흐름을 읽게 되었다. 그 시절은 내전으로 저녁 6시 이후 통행금지가 실시되던 시절이었기에 공중묘지의 수상한 바이올리니스트는 체포되어 며칠 동안 징역살이를 하게 된다. 내전과 또 다른 수많은 내전을 겪으면서 그 도시에서 오로지 사랑 때문에 5파운드나 되는 족쇄를 찬 사람은 유일하게 자기뿐일 거란 건 두고두고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자랑거리가 된다.

어느 날 페르미나 다사는 학교에서 공책에 필기를 하는 척하면서 연애편지를 쓰다가 발각되고, 분노한 그녀의 아버지는 둘 사이를 끝장낼 생각으로 그녀를 데리고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산등성이를 따라 수년 동안 가보지 않았던 처가댁으로 험난한 여행을 하게 된다. 그런데 여행을 떠나기 전에 로렌소 다사는 한 가지 실수를 범했다. 전신 기사를 통해 처남에게 그곳으로 여행할 것을 알린 것이다. 그러자 그의 처남은 그 지방의 수많은 마을과 계곡에 흩어져 있던 친척들에게 전신으로 그 소식을 전했다. 그래서 전신 기사였던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그들의 여행 계획을 완벽하게 알게 되었고 전신 기사들과 장거리로 동료애를 나누면서 페르미나 다사의 흔적을 쫓을 수 있었다. 그 덕택에 로렌소 다사가 이제 딸의 헛된 열정이 끝났다고 안심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자그마치 일 년간 그들은 뜨거운 교신을 취할 수 있었다.

어느 날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돌아온 페르미나 다사를 우연히 보게 된다. 그것은 시장에서였다. 유럽 선박에서 밀수로 도착한 음란한 우편엽서와 정력제, 퍼덕거리는 이구아나의 볏이 달린 카탈루니아의 콘돔이나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꽃잎이 벌어지도록 끝에 꽃을 단 콘돔을 파는, 식민지 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유서 깊은 장터에서 색색의 두건을 쓴 흑인 여자 요술사가 푸줏간 칼끝에 찔러준 삼각형의 파인애플 조각을 페르미나 다사가 입에 막 물었을 때,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눈부시게 성숙해진 아찔한 향내를 풍기는 그녀의 뒤에서 이렇게 말을 건다.

“여긴 왕관을 쓴 여신이 올 곳이 아니라오.”

페르미나 다사는 뒤를 돌아보고 플로렌티노 아리사를 알아보고는 자신이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이 열정적인 망상에 사로잡혔던 남자는 나이 들어 보이는 어두운 색의 우스꽝스러운 옷차림에 빈약한 몸을 갖고 있는 초라한 남자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런 편지를 보낸다. “오늘 당신을 보자마자 우리의 사랑은 꿈에 불과했단 걸 알았어요.” 이제 그의 사랑은 사랑 중에서도 가장 매혹적인 사랑, 바로 짝사랑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단둘이 만날 기회는 51년 9개월 4일 후에나 생겨났다. 왜냐하면 페르미나 다사는 곧 그 도시의 모든 여자들이 탐내던 미혼 남성인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재력과 명성을 겸비한 최고의 상류층 인사인 후베날 우르비노는 결혼 직전 파리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다. 돌아오자 그는 묘지의 땅을 밟을 때마다 오염되고 구역질나는 피가 새어나오는 콜레라 시대에 콜레라 환자를 치료하다가 결국 콜레라로 죽은 시민 영웅 의사였던 아버지의 진료실을 차지하고 위험한 지경에 빠진 도시의 위생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배수장을 만들고 식수 문제에도 도전한다.

당시 사람들은 물통의 물벌레들이 신비스러운 정령이라고 생각했고 물벌레들 때문에 음낭에 생긴 병으로 음낭이 길고 빛나게 된 것을 남성들의 명예로 여겨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집 앞 계단에 앉아 거대해진 음낭을 자랑하는 그런 시대였기 때문에 그 일은 쉽지 않았다. 오직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만이 진실의 눈으로 도시를 바라보며 일을 추진했고 결국 콜레라 평정에 관한 그의 안목 덕에 그는 평생 동안 이어질 명예를 얻게 된다. 그런데 그 당시 그는 명예에 관심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콜레라 환자로 의심되던 열여덟 살의 활짝 꽃핀 페르미나 다사 양을 진료하다가 그녀의 서민적인 매력에 저항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영화 <콜레라 시대의 사랑Love In The Time Of Cholera>(2007)의 한 장면

신분을 뛰어넘은 그들의 결혼이 온 도시의 화제가 되었을 때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눈물로 범벅이 되어서 마지막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도시의 모든 개들까지 절규하는 선율로 감화시킨 다음, 베개와 요강과 모기장과 침대 시트로 구성된 침낭 세트를 들고 강을 따라 도시를 떠난다. 그 강 여행에서 그는 오직 페르미나 다사만을 위해 지켜왔던 동정을 잃게 된다. 그가 아무도 없는 식당을 지나갈 때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매의 발톱처럼 생긴 손이 셔츠의 소매를 잡아당겨 그를 선실 안으로 끌어들였고, 그는 어둠 속에서 나이를 알 수 없는 벌거벗은 여인에게 아무런 영광도 없이 동정을 빼앗기고 만 것인데, 그날 그는 페르미나 다사에 대한 가공의 사랑이 속세의 열정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 밤 이후 그는 ‘인간은 모두 몇 번 섹스할 것인가 미리 정해진 횟수를 가지고 태어나는데, 자의건 타의건 그 횟수를 다 쓰지 않은 사람은 영원히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라고 도시의 우울한 과부들을 설득하는 수완가가 되었다. 그래도 페르미나 다사에 대한 그의 사랑은 그 누구도 지울 수 없는 것이라서 그는 그녀에게 걸맞은 상대가 되기 위해 돈을 벌겠다고 결심하고 카리브 해운 회사에 취직해 오로지 자기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간다. 그리고 그 뜨거운 마음은 도시의 필경사의 거리에서 글을 모르는 연인들에게 공짜로 사랑의 편지를 써주면서 해소한다. 그는 미치도록 뜨거운 사랑의 편지를 써서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는데, 어느 날은 한 처녀가 바로 전날 자신이 쓴 편지를 들고 와서 답장을 해달라고 부탁했고 결국 이런 일이 쌓여서 그는 자기 자신과 열렬한 편지 교환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결혼한 쌍들이 낳은 아이들의 대부가 돼 주었다.

그는 전 인생을 통해 화끈한 연인, 다정한 연인, 소통이 되는 연인, 애달픈 연인, 부정하지만 배신은 하지 않는 연인, 달이 뜬 밤마다 옥상에 올라가 벌거벗고 첼로를 연주해 주던 연인 등 수많은 연인을 만났는데, 그는 한 여자가 없었던 까닭에 모든 여자들과 동시에 함께 있기를 원했고, 그 어떤 여자도 배신하지 않은 채 여러 사람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게 되었으며, 각각에게 똑같은 슬픔을 느낄 수도 있게 되었다. 그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창녀들이 우글거리는 싸구려 호텔보다 더 많은 방이 있다고 생각했다. 러브 어페어를 꼼꼼히 기록한 그의 노트에 근거해 보자면, 일회성 사랑을 제외하고도 오래 지속된 사랑의 숫자는 그의 말년에 이르러 자그마치 662가지나 되었다.

가장 화끈한 연인이었던 한 과부는 그가 올 때마다 일곱 살짜리에게나 어울릴 만한 오건디 리본을 달고 완전히 벌거벗은 모습으로 문을 열어 주었다. 그런데 또 그녀는 집안에 옷 입은 남자를 들여 놓으면 불행이 찾아온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현관에서부터 그를 모조리 벌거벗겨 버렸다. 그리고 사랑의 절정에 오르면 그녀는 오로지 자신만 아는 자기 지방 속어로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했다. 그래서 그는 그녀가 조금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그녀는 현관에 서서 그를 벌거벗기는 대신 안경을 먼저 벗겼다. 그 순간 그는 그녀도 이젠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가장 애달픈 애인은 비둘기를 기르는 여인이었다. 그들은 비둘기의 다리에 사랑의 편지를 묶어 보내며 서로에 대한 관심을 나눴는데 그녀는 가장 사랑에 굶주려 있으면서도 가장 사랑에 인색한 여인이었고,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을 원하는 여인이었기 때문에 첫 만남 후 6개월이 지나서야 두 사람은 도색 수리 중인 하천의 선실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여러 시간 벌거벗은 채 천천히 움직이면서 휴식을 취했는데 엉뚱한 영감을 받은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옆에 있던 빨간 페인트 통에 손을 집어넣어 집게손가락에 페인트를 묻혀 비둘기 여인의 음부에 ‘OOO는 나의 것이다’라고 썼다. 그리고 그녀는 그날 밤 자기 배에 글자가 써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 채 남편 앞에서 옷을 벗었다. 남편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가 그녀가 잠자는 동안 면도칼을 가져와 단칼에 그녀의 목을 베어버렸다.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한참 후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놀라고 슬펐지만 동시에 페르미나 다사가 그 일을 알게 될까 두려워하게 되었다.

성적 몽상으로 땀에 젖은 청년의 깊은 밤이 그러하듯 그는 이제 다소 애처롭긴 해도 죄악에 물든 인간이 된 셈인데, 심장 한쪽에는 절대 복종하는 굳건한 정신적 사랑이, 심장 한쪽에는 죄 많으면서도 요란뻑적지근하고 명랑한 육체적 사랑이 자리 잡아 참으로 기묘한 사랑의 순교자이자 동시에 사랑의 해방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한편 페르미나 다사는 자신의 남편이 자기 아버지가 생각한 이상적인 남편의 속성과 너무나 맞아떨어져서 오히려 마음이 불편하고 자존심이 상한다. 열정적인 2년간의 유럽 신혼여행 후 그 고장에 새 문물을 들여오는 새로운 지도자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한 그들이지만, 그들은 결혼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들은 사랑한단 말은 하지도 않고 목욕탕 바닥에서 죽을 듯이 사랑을 나누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에 페르미나 다사는 향수 냄새가 나는 종이에 담배를 말아 혼자 화장실에 숨어 피우고, 남편이 침실에 들어오면 자는 척하거나 달거리 중이라고 말을 해서 우르비노 박사는 수업 중에 결혼 생활 십 년이 지나면 여자들은 일주일에 세 번씩 월경을 한다고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도 한다.

그녀는 남편이 빌려준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이 세상 누구보다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오로지 자기를 위한 것이었으니 그녀는 자신이 남편의 신성한 하녀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삐걱대는 동안에도 사회적으로는 그렇게 어울려 보이고 그렇게 존경받는 한 쌍은 없었다. 그 둘은 전통적인 질서를 위반하는 것이라면 전혀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던 사회의 적대감과 싸워 최대한의 승리를 이끌어 냈기 때문에 이제 그들 두 사람을 빼고는 시 축제, 예술 행사, 자선 복권 판매, 최초의 기구 여행 등 도시의 어떤 행사도 치뤄지지 않는다. 페르미나 다사는 가끔 궁금했다. 그렇게 자주 다투면서도 그렇게 행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서로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사랑하기에 적당한 조건들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는 것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까 궁금했다.

충실한 우르비노 박사에게도 맹그로브 숲 같은 어두운 사랑의 사건이 딱 한 건 있었다. 우르비노 박사의 그녀는 흑인과의 혼혈인 뮬라토였다. 그는 자선 병원의 외래 진료실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는데, 그녀는 키가 크고 우아하며 체격이 좋고 검은 피부는 부드러웠고 다른 사람보다 훨씬 섹시하게 보였다. 그녀는 끝없이 아름다운 여인이었는데 깜짝 놀란 듯한 가슴과 세이렌 같은 허벅지를 갖고 있었다. 이제 박사는 온 도시 사람들이 다 알아볼 수 있는 그의 유명한 마차를 타고 왕진이란 명분을 대고 변두리의 가난과 소음이 들끓는 그녀의 집을 드나든다.

그러나 너무나 번민하던 그가 사랑을 나누는 데 걸린 시간은 혈관주사 딱 한 대를 놓는 데 걸리는 시간이었다. 결국 남편 옷에서 전에 없이 풍기는 야릇한 냄새로 남편의 외도를 눈치 챈 페르미나 다사는 남편이 너무나 쉽사리 고백을 하고 고해성사를 하러 달려가는 걸 보고 남편에게 실망해 버린다. 그 남자는 자기의 사랑을 지킬 용기도 없단 말인가? 이런 일들을 겪은 그 두 사람이 진정으로 서로 사랑하게 된 것은 결혼 삼십 년이 지나서였다. 이제 그 둘은 서로를 부축해 계단을 올라가야 했고 돋보기가 없이는 책을 볼 수 없게 될 만큼 나이 들었지만, 그때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들이 이렇게 사는 동안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카리브 하천 회사에서 불굴의 의지로 승진해가는 것은 도시의 화젯거리였다. 그들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가끔 만나기도 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사에게 그녀는 인생이 얼마나 흘렀는지를 나타내주는 지표였다. 그는 시간의 잔혹성을 자신의 몸으로 겪지 않고 페르미나 다사에게 나타나는 미묘한 변화로 경험했다. 그로 말하자면 그녀 때문에 재산과 명예를 손에 넣었고 결혼도 하지 않았고 건강을 유지했고 외모를 엄격히 관리했고 한시도 절망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대머리와 의치에도 불구하고 놀랄 만큼 젊고 정력적이었다.

이 상황에 롤랑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에 나오는 이 말 “내게 있어 최고 가치는 존재하며 그것이 내 사랑이다. 나는 결코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나는 허무주의자가 아니다. 사랑이 완벽하게 만든 나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를 붙여보면 완벽해지기 위해서라도 지금 하는 사랑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 같고, “형식이야말로 인생의 비밀이야. 슬픔을 표현하려고 애써보게. 그러면 슬픔은 자네에게 귀중한 것이 될 거라네. 기쁨을 표현하려고 해보게. 그러면 그 환희가 훨씬 커질 테니까. 자네는 사랑하고 싶은가? 사랑의 기도를 써보게. 그러면 그 단어들이 사랑의 열망을 만들어 낼 거야. 그러면 자네는 단순히 표현하는 것이 곧 위로의 한 방식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라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붙여보면 우리도 우리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 어떤 형식을 취하는 것이 올바른 일일 것 같은 느낌을 받고, “나와 타자가 서로 마주 보고 출발했을 때 이것은 정확하게 계산이 맞아떨어지지 않고 여분이 남는다. 그 여분은 영혼이 중단되고 세계가 아직 시작되지 않은 그 어떤 곳에 있으며 그리고 여분이 본질적인 것이다.”라는 마르틴 부버의 말을 붙여보면 행여 내가 더 많이 사랑해 손해보고 있을까 봐 안달하기보다는 아무런 대가도 없이 펑펑 남아도는 내 사랑의 잉여분이야말로 나를 키워온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윤리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사랑에서도 뭔가 이득을 취하려는 마음이 불편해도 어쨌든 성장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 인생의 의무니까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마침내 고귀한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가 죽었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온 도시 창공에 울려 퍼진다.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그 잔인한 밤이 이미 페르미나 다사와 자신 두 사람의 운명에 쓰여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상복을 입고 그녀의 집으로 찾아가 마지막 문상객들이 떠난 순간에 떨리는 순간에 근엄하게 모자를 가슴에 대고 평생 동안 참고 견뎌왔던 말을 내뱉는다.

“페르미나, 반세기가 넘게 이런 기회가 오길 기다렸소. 나는 영원히 당신에게 충실할 것이며 당신은 영원한 나의 사랑이라는 맹세를 다시 한번 말하기 위해서 말이오.”

여기까지가 마지막 장을 뺀, 쉴 틈 없이 이어지는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이야기다. 사실 마지막 한 장을 읽지 않는다면 그에게 시간의 기억이란 것이 평생 요란스럽게 몸을 섞은 기억인지 불멸의 정신적 사랑을 한 기억인지 헷갈릴 정도로 마르케스의 글에는 다양한 에로스가 넘쳐흐른다. 그렇지만 이 글을 그 시대적 상황, 이를테면 소설 속 레오 12세의 “난 백 살까지 살 거야. 난 모든 게 바뀌는 것을 보았어. 심지어 우주 속에서 행성의 위치가 바뀌는 것도 보았지. 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아직 변한 것을 보지 못했어. 여기서는 석 달마다 새로운 헌법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법률이 제정되고 새로운 전쟁이 터졌지만 우리는 아직도 식민지 시대를 살고 있어.”란 말과 겹쳐서 생각하면, 이 에로스는 뜨거운 어느 거리의 카니발처럼 파괴와 재생의 이미지에 가깝다.

젊은 시절의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매춘부들이 묵는 싸구려 호텔에 장기 투숙하면서 악취 나는 앞바다에 가라앉은 보물선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스페인 제국 시절의 전설적인 항구들을 거쳐 온 그 배에는 은 300상자, 진주 110상자, 에메랄드 116상자, 금화 3,000만 개가 실려 있었는데, 그 배는 영국 소함대의 함포 사격을 받고 사령관과 승무원 전원을 태운 채 가라앉아 버렸다. 그 보물을 찾기 위해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고용한 소년 잠수부는 자신의 눈으로 그 배를 봤는데, 그 배는 배가 가라앉은 6월 9일 토요일 아침 열한 시의 햇빛을 받으며 아직도 화사하게 빛나고 있어서 마치 그들만의 시간과 공간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고, 배의 식당 안엔 삼백 살이 넘는 낙지가 살고 있는데 너무나 커서 그를 꺼내려면 배를 부수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나에게 콜레라 시대의 에로스는 이런 이미지로 남는다. 선장들은 뱃고동을 올리며 바다에서 돌아오고, 연인들은 바다의 배를 닮은 거대한 침대에서 현실보단 덜 고통스러운 땀을 흘린다. 보물을 품은 채 썩어가는 바다의 불빛이 색정적인 도시의 열락을 비추는 빛이었다. 나는 어느 날 “거리는 그 겉모습만으로도 우리가 저항 없이 무력하게 수용해야만 하는 어떤 개념을 우리에게 심어준다.”란 발자크의 말을 읽은 적이 있다. 또 다른 어느 날에는 “하나의 삶이 있기 위해 너무 많은 삶이 필요하다.”라는 시구를 읽은 일도 있다. 나는 이 두 말들이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어쩌면 플로렌티노 아리사와 페르미나 다사의 사랑이 아니라 플로렌티노 아리사와 그의 넘쳐나는 수많은 이름 없는 연인들과의 사랑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희망 없는 불완전한 세상에서 인생의 고통에 정면으로 맞선 것은 마치 수많은 전쟁의 병사들이 그러했듯 이름 없이 사라져간 그의 연인들 쪽이기 때문이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 마지막 장에서 플로렌티노 아리사와 페르미나 다사는 마그달레나 강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그 강은 악어가 나비를 잡으려고 입을 쩍쩍 벌리고, 매너티가 세이렌처럼 인간을 유혹하는 그 옛날의 풍요로운 강이 아니라 개발과 오염으로 죽은 기름 덩어리의 강으로 변해 버렸다. 그래도 배가 가는 곳에는 다시 매춘부들이 이동식 천막을 들고 애타게 무슨 일인가를 기다린다.

나에게 마지막 장에서 가장 강렬했던 것은 이 강의 이미지였다. 카리브해의 바람이 새들의 지저귐과 함께 식당으로 들어오고, 오른편으로는 진흙투성이의 보잘것없는 강어귀가 세상 저편을 향해 뻗어 있고, 그 위로 구름 하나 없는 12월의 하늘이 펼쳐져 있을 때, 그 두 사람은 세상이 혐오스럽기 때문에 오히려 무릎을 꿇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선장에게 말한다. “계속 갑시다. 계속해서 앞으로 갑시다.” 그들에게 강물은 다시 영원히 항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강물이 되었다. 세계가 사라지고 강들이 오염되어도 언제나 존재하는 것은 인간이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은 우주적 공허의 비밀을 지키는 자이면서 떨리는 우주 자체인데, 그래도 누군가 사랑하고 있는 한 세상은 바뀐다.

결국 플로렌티노의 사랑에서 충족이나 획득보다 중요했던 것은 절망적 상황에서 빛나던 의지였다. 이 상황은 롤랑 바르트의 “지나친 것이 나를 알맞은 것으로 인도한다.”라는 말을 생각나게 한다. 53년 7개월 11일의 낮과 밤 동안 사랑해온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지나치게 오래, 지나치게 길게 사랑해서 신비한 항해를 떠나게 되었다.

이 우주적으로 불안정한 땅에 살고 있기 때문에 나는 아직도 마르케스와 나의 이야기가 좀 더 필요하다는 걸로 이 긴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는 보고타에 살 때 라디오 방송국의 한 음악 프로그램을 좋아해서 그 방송이 끝나고 나면 카리브 연안 출신 다른 학생들과 방송국 사무실에 찾아가서 늦은 오후까지 춤을 추었다고 회고했는데, 그것이 보고타에 유학 온 해안 출신 학생들의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키는 계기가 되었단 것이다. 나도 우리나라에 찾아온 몽골인, 네팔인, 파키스탄인, 연변 자치주 사람들을 위한 음악 방송을 꿈꾼다. 그들이 방송이 끝나는 오후에 방송국 옥상으로 몰려와 춤을 추고 놀았으면 좋겠다. 비현실적 꿈이 현실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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