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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속의 그대, 바라나시

인도 바라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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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음악의 매력에 빠져있던 나는, 갠지스 강을 바라보며 악기를 두드리고 노래를 읊조리면 해탈의 경지에 이를 것만 같다는 환상을 품고 있었다.


바라나시.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바라나시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설렜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 나는 바라나시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낀다.


여행을 떠나기 전 인도의 여러 도시 중에 내 마음속에 가장 크게 자리하고 있던 곳은 바라나시였다. 우연히 인도 악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몽환적이면서도 또 한편으론 지극히 세련된 인도 음악의 매력에 빠져있던 나는, 갠지스 강을 바라보며 악기를 두드리고 노래를 읊조리면 해탈의 경지에 이를 것만 같다는 환상을 품고 있었다.

그렇게 환상속의 그대를 찾아 밤새 기차를 타고 도착한 바라나시는 익히 들어온 대로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워낙 바라나시의 골목이 미로 같고 지저분하다는 말을 들어왔던 터라 각오를 단단히 했었기에 길거리의 오물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상대해줄 수 있었지만 첫날부터 소와 맞짱을 뜨게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다.


나는 인도 여행을 하며 소가 달리는 모습은 딱 한 번 본 것 같다. 힘차게 달리는 소의 모습을 상상하면 멋지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소가 나를 향해 달려오는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딱 한 번 달리는 것을 본 그 소는 하필 피하기도 힘든 바라나시의 그 좁은 골목길을 달려 나의 왼팔을 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인도에서 워낙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을 많이 겪다보니 소와 부딪히는 정도의 웬만한 일로는 그리 놀라지도 않게 되었다. 그 소와 정면충돌 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말이다. 그저 소에 부딪혀본 선배로서 조언을 하자면, 소가 달려올 때는 자신이 엿이 되었다는 생각으로 무조건 벽에 철썩 붙어야 한다. 아무리 벽이 지저분하다고 할지라도.

<갠지스 강에서 버터플라이>(여기서 버터플라이는 나비가 아니라 접영을 말한다)라는 2부작 일본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일본의 한 여대생이 면접을 보러 갔다 내세울 게 없자 갠지스 강에서 버터플라이를 해봤다는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 말을 지키기 위해 진짜로 갠지스 강에 버터플라이를 하러 간다는 얘기였다. 박력 있게 강물 속으로 점프하여 물살을 가르며 나비처럼 날갯짓하는 모습, 상상만 해도 멋지지 않은가.


갠지스 강에 있는 마니까르니카 가트(강으로 이어진 계단) 화장터에는 항상 시신을 화장하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나는 태어나 처음 그곳에서 죽은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그 얼굴은 금방이라도 눈을 번쩍하고 뜰 것처럼 생생했다. 어떤 사람은 불에 타는 시신을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충격을 받아 며칠을 앓기도 했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나도 무언가 거대한 감정의 물결이 쓰나미처럼 밀려올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다. 타다 남은 다리 한 점을 건져내어 눈앞에서 들고 ?나가는데도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성스러운 갠지스 강에 시체를 흘려보내면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을 얻는다고 믿고 있다. 이곳에서 죽는 것이 평생의 소원인 사람들도 많기에 몇날 며칠이 걸리는 먼 곳에서 와서 죽음을 기다리기도 한다. 그렇게 화장이 되고 신성한 강물에 뿌려지는 순간은 그들에게 슬픈 일이 아니라 평생의 소원을 성취하는 순간이었다. 죽음을 슬퍼하지 않아도 되는, 그렇게 행복하게 죽을 수 있는 그들이 나는 오히려 부러웠다.

하지만 그 성스러운 갠지스 강에는 그렇게 타다 남은 시체도 떠내려가고, 사람들은 그 물로 빨래를 하고 목욕도 하는가 하면(사람뿐만 아니라 소들도 같이), 심지어 그 물을 마시는 사람도 있었다. 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위들이 갠지스 강, 이 한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갠지스 강에서 수영하는 모습이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눈 딱 감고 한번 이 성스러운 강에서 힘차게 버터플라이를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하다. ‘나빠 봐야 피부병밖에 더 걸리겠는가’ 하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말이다.


소에 치이고 시체가 떠내려가는 강을 보는 정도로 바라나시에 대한 나의 환상은 쉽게 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나를 시험하듯 비가 내렸고, 인도의 우기는 우리나라 장마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섭게, 살수차로 퍼붓듯 비가 쏟아졌다. 길거리에는 쓰레기와 배설물이 어지럽게 뒤엉켜 흘러내렸고, 세상은 온통 어둠뿐이었다. 그렇게 빗속에 길 잃은 고아가 되어 몇 시간을 헤매다보니 나는 바라나시에 대한 환상을 고이 접고 말았다. 겨우 숙소를 찾아 돌아온 나는 어느새 짐을 싸고 ‘여긴 지옥이야’라는 생각을 하며 서둘러 바라나시를 떠났다. 중요한 무언가를 놓고 가는 것 같아 찜찜한 기분이 들었지만 발가락에 걸리는 오물과 쓰레기보다 더 찜찜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바라나시를 떠나며 다시 그곳으로 돌아오게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네팔에서 비행기 좌석을 구할 수 없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육로로 가려면 거칠 수밖에 없는 바라나시로 다시 오게 되었다. 그런데 다시 찾은 바라나시에는 더 이상 비가 오지 않았고, 비가 내리지 않는 바라나시는 그전처럼 끔찍한 곳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숙소의 옥상에서 맞는 바람과 바람이 나고 말았다. 달빛을 담고 갠지스 강 내음을 담아 넘어오는 갠지스 강바람의 유혹은 뿌리치기 힘들었고, 나는 그 유혹에 넘어가 이 끔찍한 바라나시에 눌러앉고 말았다. 눈만 크게 뜨고 다니면 길바닥의 오물과 달려오는 소는 충분히 피할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머물며 동네 사람들과 낯을 익히고 수다를 떨다보니 어느새 바라나시는 <전원일기>의 양촌리 같은, 소박한 사람들의 정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환상을 접어둔 바라나시의 일상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타블라를 연주하는 전도유망한 연주자였지만 실연의 상처로 음악도 말도 닫아버린 한 남자를 보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자리에 누워 꼼짝 않고 만화책만 보는 히키코모리 행동을 인도에서까지 하고 있는 일본 친구도 만났고, 인도의 전통 악기를 어른보다 더 열심히 연습하며 연주자의 꿈을 키우는 6살 꼬마도 보았으며, 모퉁이의 한 평 남짓한 구멍가게에 하루 종일 앉아 있는, 바라나시 밖으로는 한 번도 나가본 적 없지만 전 세계에서 온 수많은 친구가 있는 아저씨도 만났다.

바라나시가 매력적인 이유는 강바람과 시타르와 타블라의 음악 소리와 갠지스의 일출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바라나시의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점점 나는 그들에게 동화되어갔다.


바라나시의 가트에서는 매일 해질 무렵이면 시바 신에게 제를 올리는 의식인 아르티 뿌자가 열렸다. 오르겐 음악이 퍼지고 사제들이 의식을 진행하는 동안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주문 같은 것을 외우며 광신도처럼 박수를 치곤했다. 처음 그들을 봤을 때는 나는 그들이 집단 최면에라도 걸린 사람들처럼 이상하게만 보였다. 하지만 어느새 나도 그들과 같이 박수를 치고 있었고, 그들과 같이 뜻도 모를 그 노래들을 흥얼거리게 되었다.

바라나시를 떠나는 날, 나는 바라나시에 첫 발을 딛었을 때를 떠올렸다. 그 낯설고 지저분하고 끔찍했던 첫 인상은 이제, 정겹고 익숙하고 따뜻한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때를 떠올리며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마을을 빠져나가는 나에게 동네 사람들이 작별 인사를 건넸다. 골목을 금방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하며 나는 고향을 떠나는 기분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살던 내가, 이 낯선 바라나시에서 떠남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을 두고 가며 코끝까지 찡해지게 될 줄은 몰랐다.

‘환상 속의 그대’였던 바라나시는 밉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다 정들어버린 이웃집 오빠가 되어 있었다. 이 모순투성이인 도시를 떠날 때 내 코끝은 찡했지만 입가에는 따뜻한 미소가 지어졌다. 지금도 나는 그곳에 두고 온, 웃기고 지저분하고 버릇없는 나의 이웃들이 그립다.


채유희
『로맨틱 인디아』
모범생 흉내를 내며 어린 시절을 보내다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에 들어갔다. 신입생 환영회 때는 참한 외모로 「매일매일 기다려」라는 헤비메탈곡을 불러 선배들을 홀딱 깨게 만들었고, 도서관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는 여행 다니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았다. 20대 중반 갑자기 그림을 그리겠다고 런던으로 갔고 킹스턴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영국에서도 그림보다는 여행에 조금 더 열심이었다. 연애 빼고는 못하는 게 없어 팔방미인이라는 소리를 들어왔지만, ‘재주 많은 놈이 밥 굶는다’는 속담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밥을 굶을지언정 여러 일을 해보며 살자는 주의로 외국계 기업 홍보실, 호텔리어, 번역가, 패션 등 여러 분야에 발끝 정도를 담갔었다. 남들은 파란만장 인생이라고 하지만 스스로는 인생이 늘 심심하다고 여기며 오늘도 즐거운 일을 찾아 방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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