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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어린이는 이해 못하는 어른 독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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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는 말 그대로 어린 왕자를 다루기 때문에 어린이에겐 별 감흥이 없습니다. 『어린 왕자』가 다루는 어린이의 특징은 사실 어린이에겐 너무 당연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주제들이기 때문입니다.

생텍쥐페리라는, 한국어로는 표기도 발음도 쉽지 않은 작가의 그림과 글이 곁들여진 동화책을 여러분께서는 언제 처음 보셨습니까? 대략 20대 중반에 걸치는 남녀를 붙잡고 물어보니 무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봤다는 친구도 있습니다. 저는 대략 초등학교 6학년쯤이었는데, 솔직히 말해 그때 읽은 『어린 왕자』는 재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책이었습니다.



 

위에서 물어봤던 사람들의 반응도 비슷했습니다. 적어도 동화라고 분류되는 『어린 왕자』는 정작 어린이들에게는 별 호응을 얻지 못한 것이 사실인 듯합니다. 이는 저와 제 주변의 몇몇에 국한되는 경험이 아니라, 책 읽는 인구 전반에 걸친 현상으로 여겨집니다.

어린이에게 별 감흥을 주지 못하고 그저 골치 아픈 독후감 숙제거리로만 남아 있는 『어린 왕자』는 그러나 나이를 먹을수록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는 책이기도 합니다. 중학교 때 읽은 감상이 다르고, 고등학교 때 읽은 감상이 다릅니다. 군대에서, 대학에서, 백수 시절에, 혹은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의 읽기가 각각 다르고, 애인이 생겼을 때, 헤어졌을 때, 결혼이라도 하게 되었을 때, 아이라도 생겼을 때의 느낌이 또 다릅니다.

어린이를 뺀 모두의 모든 상황에 새로운 감동을 주는 『어린 왕자』는 말 그대로 어린 왕자를 다루기 때문에 어린이에겐 별 감흥이 없습니다. 『어린 왕자』가 다루는 어린이의 특징은 사실 어린이에겐 너무 당연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주제들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당연한 시선과 가치들은 오직 어른들의 눈에만 들어옵니다. 자신들도 한때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제는 잊어버려 이상하게 여겨지기까지 하는 아이들의 시선을 『어린 왕자』는 보여주고 있고, 그렇기에 사실상 동화라기보다는 어린이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어른용 소설이 『어린 왕자』를 규정하기에 보다 합당한 단어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 왕자』가 꿰뚫고 있는 큰 주제 중 하나는 바로 ‘어른스러운 것들’에 대한 되짚어 보기입니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당연했던 것들을 작가와 독자는 어린이라는 새로운 잣대를 통해 되새깁니다.

잣대로서의 어린이는 매우 유의미합니다. 어린이는 어른에 앞선 존재입니다. 어른은 어른이 되기 전에 반드시 어린이를 거치고, 그렇기에 모든 어른은 기본적으로 어린이로서의 경험을 토대로 성장해 왔습니다. 누구나 어른이라면 가지고 있을 어린이의 시점은 그러나 세상 살기가 쉽지 않아 잊혀지고, 또 스스로 잊어버리고 맙니다. 바로 그 어른에 선행했던 어린이 개념을 통해 우리는 지금의 어른들이 가진 가치가 과연 올바른지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유명한 삽화, ‘모자 그림’ 또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으로 불리는 그림은 어른이 놓쳐버린 상상력의 공간을 이야기합니다. 선과 면으로 표현하는 그림의 세계에서 어린이는 단순 2차원 평면의 시각 이미지뿐 아니라 거기에 자신의 사고와 감성을 더해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그것이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고, 그 두터움을 배제한 것이 어른의 모자 그림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어린 왕자』의 도입부에 나오는 이 삽화 인용은 사실 어린 왕자라는 인물과는 무관하다는 점입니다. 비행사로 등장하는 화자는 스스로 어린 왕자의 등장 전에 보아뱀 이야기를 합니다. 자신의 어린 시절에 어른들과 겪었던 그림에 대한 갈등을 어른이 된 화자 입장에서 이야기하면서 이미 어른인 우리 모두 그러한 어린 시절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서론에서 미리 짚어 둡니다.

그런 연후에야 ‘어린’ 왕자가 등장합니다(작은따옴표의 위치에 유의합시다). 어른인 비행사는 먼저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이야기했고, 그 다음에는 정말 ‘어린’ 왕자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똑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양’ 그림인 것이죠. 분명 어린 시절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릴 수 있었던 화자는 그러나 양을 그려달라는 어린 왕자의 말에 아무 생각 없이 빈 상자 하나를 그려 주고 맙니다.

어른인 비행사가 귀찮은 투로 그려준 그 상자는 그래서 어른이 단순한 어른만은 아님을 다시 한번 상징합니다. 이미 앞서 이야기한 바대로 어른은 어린이를 거쳐 태어나는 존재고, 지금 어른인 비행사는 어린 시절 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경험과 감성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린’ 왕자를 다시 만나게 되면서 어른인 자신에게로 돌아온 감정이기도 합니다.

어른스러움이란 그래서 사실 어린이스러움에 대한 안티 테제입니다. 어른은 기본적으로 어린이처럼 사고할 수 있으면서도 어린이와의 차별을 만들고, 어른들에게 필요하고 실용적인 무언가를 위해 어린이스러운 요소들을 배척합니다. 그러나 이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특성이고, 그렇기에 어린이를 만나면 다시 발현되기도 하는 특성입니다. 우리의 어른스러움이란 결국 그것밖에 안 되는 것임을 『어린 왕자』는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어른스러움의 다양한 예시를 보여주기 위해 『어린 왕자』는 여러 유형의 어른들과 어린 왕자를 만나게 합니다. 주변 소행성들로 여행을 떠나는 어린 왕자가 만나는 왕과 장사꾼, 술주정뱅이와 지리학자 등은 그러한 어른스러움이 자신의 근원ㅡ어린이를 만나는 장면들을 보여 줍니다. 어른의 특성이랄 수 있는 여러 모습들ㅡ명령하기, 술 마시기, 돈 벌기 등ㅡ을 어린이와의 대화 속에서 풀어 내며 소설은 어른스러움의 상징들이 갖는 무의미함을 독자에게 전달합니다.

『어린 왕자』는 어른스러움에 대한 이야기를 비행사(어른)와 왕자(어린이)의 이야기를 통해 풀어내고 있는데, 책의 또 다른 큰 주제 중 하나는 제3의 인물인 ‘꽃’과 어린 왕자와의 관계를 통해 드러납니다. 이는 바로 ‘사랑’입니다.

어린 왕자의 코딱지만한 행성의 식물이란 행성의 존재를 위협하는 바오밥나무 싹과 이름 모를 잡초들뿐인데, 어느 날 꽃이라는 녀석이 싹을 틔웁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꽃의 아름다움에 어린 왕자는 반하지만, 꽃은 가시를 세우고, 거만하며, 냉정하고, 심지어 왕자를 우롱하기까지 합니다. 꽃의 아름다움에 반하지만 그 신경질적 반응에 놀라기도 한 왕자는 결국 행성을 떠나 여행을 하기로 결심하고 맙니다.

그런 여행의 끝에 지구에 도착한 왕자는 뱀과 여우와 비행사를 만나 이야기하면서 혼자가 아닌 삶에 대한 배움을 얻습니다. 오직 작은 별에 혼자 살았던 왕자에게 ‘둘’이라는 개념은 많은 것을 필요로 하는 개념이었습니다. 둘은 혼자와 달리 관계를 맺어야 하고, 대화해야 하고, 스킨십도 필요하며, 나와 다른 존재로 인한 기쁨과 슬픔을 겪어야 한다는 숙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린 왕자는 행성에 혼자 살았고, 그랬기에 그 관계라는 것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그 때문에 꽃이 말을 걸고 화를 돋우어도 아름답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고, 여행을 떠난 것입니다. 이해되지 않는 그 개념이 바로 관계입니다. 혼자 살 때는 경험할 수 없었던 관계라는 이야기를 처음 배우게 되면서, 어린 왕자는 새로운 사실들을 깨닫습니다.

혼자 있던 별에서라면 그의 여행은 그냥 여행이지만, 적어도 꽃과 관계가 형성된 상황에서 그의 여행은 ‘버림’, 또는 ‘이별’이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꽃이 왕자를 귀찮게 했건 어쨌건 간에 왕자가 꽃을 혼자 내버려두고 떠나온 것은 사실입니다. 관계의 의미를 모르던 어린 왕자는 그것이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지구에서 관계의 의미를 배운 뒤로 왕자는 새로운 생각을 합니다.

“난 꽃에게 책임이 있어.”

책임을 갖는 이 관계는 바로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책임을 사람에게 지우는 것은 제도나 명령으로도 가능하지만, 책임을 마음에 지우는 것은 사랑이어야만 가능합니다. 왕자는 자신에게 처음 관계로 다가와 주었던 존재인 꽃에게 마음으로부터의 책임을 느꼈고, 마침내 자신의 여행이 누군가를 버리고 온 여행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는 돌아갑니다.

생텍쥐페리 (1900~1944)

『어린 왕자』에 흐르는 큰 두 개의 주제. ‘어른스러움’과 ‘사랑’은 전체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따로 놀지 않고 함께 흘러갑니다. 다시 한번 시간 순서로 정렬해 보면 이렇습니다. 혼자 살던 어린 왕자는 어느 날 별에 날아온 꽃과 관계를 갖게 되었고, 약간의 호감과 약간의 짜증 속에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여행을 떠납니다. 여행길에 어른스러움과의 대면을 통해 어린 왕자는 자신이 어른과 다른 존재임을 확인하고, 지구에 도착해서는 혼자가 아닌 둘이라는 관계에 대해 배웁니다. 어른의 모든 것을 왕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한때 어린이였음이 분명했던 한 조난당한 비행사로부터, 그리고 외로워하는 여우로부터 왕자는 ‘둘’의 의미를 배우고, ‘외롭지 않음’을 배우고, ‘사랑’을 배운 뒤 돌아갑니다.

이 이야기의 흐름이 바로 어른들에게 감동과 여운을 남기는 요소일 것입니다. 사실 이 과정은 동화스러운 각색만 벗겨낸다면 굉장히 일반적인 공감을 이끌어내는 소재입니다. 언제나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을 합리화하는 인간의 습성은 어린 왕자가 별마다 만나던 어른들의 관습적인 모습에서 동질감을 찾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아름다운 꽃에 마음을 빼앗기면서도 짜증 속에 꽃을 떠나는 것은 어른들이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모습과 동일합니다. 처음 어른이 되면서, 다시 말해 스스로의 손으로 밥을 먹으며 자기 살 길을 찾아가야 하는 홀로서기의 단계에서 다시금 ‘둘’의 의미를 깨닫는 경험은 어른이라면 누구나 눈물 속에 공감할 만한 주제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주제가 주는 감동은 어린이들은 모르는 것입니다.

『어린 왕자』는 그렇게 어른들에게 다가오는 책입니다. 한때 분명 어린이였던, 그러나 어린이임을 잊고 사는 우리들에게 『어린 왕자』는 우리의 과거 모습을 우화 소재로 사용하면서 우리에게 새로운 경험의 장을 열어 줍니다. 어른이 되었지만 어른의 현실을 높은 가치로 치지 못하는 것이 어른이고, 어른이 되면서부터 혼자인 그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것도 어른입니다. 『어린 왕자』 책의 주인공은 그래서 왕자가 아닙니다. 제가 보기엔, 읽는 독자 자신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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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우아하고 고고한 이미지가 되어버린 책 읽기가 어느 날부터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어디 가서 취미가 책 읽기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책보다 좋은 것은 먼지 날리는 시골 비포장도로에서 하루 두 번 오는 버스 기다리며 담배 한 대 피우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그는 나이가 좀 더 들고 감성과 지성이 경륜으로 불릴 쯤이 되면 포크 가수로 전업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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