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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광주, 아픈 청춘들의 이야기를 사반세기만에 그리다 - 소설가 공선옥

반세기를 가슴에만 품어둔 이야기가 소설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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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광주를 배경으로 모진 시대의 바람에 흔들리면서 청춘이라는 꽃을 피워내는 아홉 사람의 이야기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언젠가 쓰리라고 생각했지만 언제 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던 소설이기도 했다.

아파트 벨을 누르자 소설가 공선옥이 문을 열어주었다. “아이구, 오늘 인터뷰가 있는 줄 알면서도 정신이 없어서 화장도 못했다.”고 중얼거렸다. “하필 집이 어지러울 때 인터뷰를 왔으니 어쩔까잉.” 사람 사는 게 뭐 별게 있겠느냐, 다 이렇게 정신없이 복닥거리며 사는 거지 싶었다. 살림 사는 주부 냄새가 풀풀 나는 공선옥이 거기에 있었다.

거실 한편에 컴퓨터가 놓여져 있었다. 거기서 작업을 하는가 물었더니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작업을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두 딸을 위한 것으로, 얼마 후 제주도 같은 곳으로 훌쩍 떠나서 글을 쓰고 싶다는 말도 했다. 요즘엔 집필을 컴퓨터가 아니라 원고지에 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컴퓨터로 글을 쓰는 건 ‘공업용 미싱’을 돌리는 느낌이었단다. 한 글자 한 글자 몸으로 써내려 가는 충실감을 느껴보고 싶어서 만년필로 원고지에 작품을 쓰고 있다.


사반세기 동안 묻어 둔 광주 이야기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거의 반세기를 가슴에만 품어둔 이야기가 소설이 되었다. 80년 광주를 배경으로 모진 시대의 바람에 흔들리면서 청춘이라는 꽃을 피워내는 아홉 사람의 이야기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언젠가 쓰리라고 생각했지만 언제 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던 소설이기도 했다. 아직도 광주는 그의 마음 한구석에 생생한 고통으로 살아있다. 이미 30년 전의 이야기지만 그 시절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눈가는 젖어 있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성장소설이라기 보다는 청춘 소설입니다. 성장은 인생의 모든 시기에 있을 수 있는 거니까요. 노인의 성장소설도 가능하고, 지금 내 나이의 여성이 주인공인 성장소설도 쓸 수 있죠.”

“작가님이 청춘을 보내기도 했던 80년대는 어떤 시대였나요?”

“가혹한 시절이었어요. 젊은이들이 죽어가던 잔혹한 시절이었지요. 시대가 수상하지 않았다면 죽지 않았을 이들이었지요. 수많은 어머니들이 자식들을 잃었지요. 그 아픔을 어디에 비할 수 있을까요? 의문사가 많았어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죽음들이 너무 많아요. 살아 남은 사람들도 힘들긴 마찬가지였지요. 현실을 살아야 하는데, 그 현실을 인정하기가 너무 힘든 거예요. 그래서 정신이 분열되어 버린 사람도 있었어요. 80년 광주에서 시민군에 섰던 이들도, 진압군에 섰던 이들도 모두 상처가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


사막 같던 시절을 위로한 두 가지, 사랑과 시


오십이 넘으면 그때의 이야기를 쓸 수 없을 것 같아서 펜을 들었다.

“작가가 모국을 떠나면 모국이 잘 보이는 것처럼, 창작을 하기 위해선 거리감이 꼭 필요합니다. 또, 그리움이라는 감정도 필요하지요.”

거의 반세기가 넘게 시간이 흐른 후에야 80년 광주와 그때 살았던 청춘들이 주인공인 소설을 쓸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면 이 소설은 조금도 웃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청춘의 풋내가 시대의 무게에 짓눌려 버렸을 테니까.

“거의 30년 만에 광주 이야기를 쓰신 셈인데요.”

“그 시절의 기억이 언제나 내 마음에 있었어요. 항상 마음이 아픈 상태였지요. 젊은 시절에는 차마 쓸 수가 없었어요. 쓰려고 하면 가슴이 탁 막혀오고, 먹먹해서 한 자도 쓸 수 없었어요.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에 후일담 소설을 쓰는 동료 작가들을 보고 많이 놀랐어요. 한편으로 부럽기도 했지요.”

“아마 그때 이 이야기를 쓰셨다면 이 작품과는 사뭇 다른 소설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랬겠지요. 이제야 그 시대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을 만한 힘이 생겼어요. 세월이 준 힘이지요. 하지만 글을 쓰는 건 여전히 힘들었어요.”

“책에서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은 승규가 자살하는 이야기였는데요.”

“그 시대에는 너무 흔한 일이었어요. 군대에 끌려가서 자살하는 친구들이 많았지요. ‘영혼의 한 귀퉁이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편지를 쓰고 며칠 뒤에 죽었어요. 휴가 나가서 동지들 정보 빼오라는 강요를 받고 죽음을 선택한 거였어요. 지금도 친구 시신이 잊혀지지 않아요. 반팔 러닝셔츠를 입고 누워있는데, 얼굴은 푸르딩딩하고, 피가 흘러서 검게 말라붙어 있는 그 모습을 소설에서 그대로 쓸 수 없었어요. 그걸 쓴다면 소설을 마무리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것 말고도 차마 쓰지 못한 이야기가 더 많을 것 같아요.”

“많지요. 해금이 아버지도 안기부에 끌려가 보름 동안 고문을 받아서 초죽음이 되어서 돌아와요. 그래서 결국 돌아가시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이 진 짐도 어마어마한데 거기다 해금이 아버지의 이런 사연까지 더해지면 그건 독자에 대한 가혹 행위가 될 것 같아서 소설에는 쓰지 않았어요.”


“소설에는 역사적인 사건들이 문면에 등장하지 않아서 광주를 모르는 어린 독자들은 행간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을 텐데요.”

“책에 나오는 일들은, 80년도에는 너무 흔한 일이어서 이런 일을 소설로 써도 될까 고민할 정도였어요. 『내가 가장 예뻤을 때』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거의 실화이고,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를 직접 빌어다 썼어요. 그런데 어느 어린 독자가 “와, 작가님 상상력이 대단하시네요.” 그러는 거에요. 이 이야기들을 다 꾸며낸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거죠. 이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으리라곤 상상도 못해요. 80년대 시위 장면을 이야기해주면 믿질 않아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반문해요.”

『내가 가장 예뻤을 때』에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는 다음 작품으로 이어지겠네요.”

“의문사에 대한 이야기는 제대로 쓰고 싶어요. 그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담으면서요. 아마 예순 살쯤 되면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청춘 이야기에는 사랑이 빠지지 않지만 『내가 가장 예뻤을 때』에서는 더 애틋하고 가슴 아팠습니다.”

“그 사막처럼 황폐한 시절을 덮을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이 사랑이었어요. 그것 말고는 기댈 것이 없지요.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타인을 사랑하는 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에요. 사랑에서 생명이 태어나잖아요. 어마어마한 것이지요. 인간이 사랑을 할 때는 마치 꽃이 활짝 피어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그중에서도 어머니의 사랑은 신이 베푸는 사랑이지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어머니는 지극히 계산적이고 현실적인 어머니이기도 하면서 시대의 아픔에 부대끼는 아이들을 모신(母神)의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시절에는 시가 있었어요. 말라버린 마음에 비가 내리듯이, 영혼을 위로하는 시에서 힘을 얻었지요.”


돈에 눈이 먼 가난한 청춘들을 아파한다


정말 우리 사회가 좋아져서, 그때의 일들이 과거로 남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광주를 증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소설은 여러모로 지금 여기를 비추고 있다. 이 이야기에는 우리 시대가 담겨 있다. 여전히 우리는 자유로운가, 그때 꿈꿨던 세상에 얼만큼 가까워졌는가를 묻게 한다.

“그 시절에는 정치권력이 노골적으로 폭력적이어서 오히려 단순했지만, 지금은 너무나 사악하고 교활하게 권력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경제 권력이 언론을 장악하고, 언론이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 되어버렸지요. 여기에 대해서 저항 의식을 가져야 하는데 젊은이들이 거기에 대해 자각조차 하지 못하는 게 두렵습니다.”

꿈과 이상 대신 돈이 젊은이의 심장을 뛰게 한다. “내 청춘은 가혹했지만 손해 봤다는 생각이 든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때 우리가 애를 쓴 덕에 지금의 젊은 사람이 이 정도의 자유를, 청춘을 누리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지금 젊은이들은 그저 젊음을 소비하는 것 같아요. 젊음의 특권은 이상을 품어도 우스꽝스럽지 않다는 건데, 아무도 그런 이상을 품지 않는 것 같아요. 오직 더 많이 소유하려고만 하지요. 이들이 삼십 대가 되고, 사십 대가 되었을 때 어떤 힘으로 삶을 살아갈지 한편으로 걱정이 됩니다. 삶의 긴장은 비어 있음에서 옵니다. 적당히 비어 있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봐야 하거든요. 아차 하는 사이에 물이 철철 넘쳐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돈은 결코 사람을 살게 할 수 없다. 그리스 신화 속 미다스 왕처럼 황금을 먹고 마실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돈을 많이 벌었어요. 그런데 그 정신의 풍경은 황폐하고 추악해요. 더 끔찍한 것은 자기 정신이 황폐하고 추악하다는 것을 깨달을 능력마저 사라져 버렸다는 거지요. 사회마다 허용될 수 있는 물(物)의 용량이 있어요. 우리 사회의 정신적 수준에 맞는 국민소득은 3~4천 불 정도라고 봅니다. 그런데 벌써 2만 불이 훌쩍 넘었지요. 우리 사회의 정신이 경제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나라가 이만큼 부자가 되었는데 가난은 더 심각해지고 있어요. 사람들은 참 가난을 두려워하지만 정작 두려워할 것은 정신의 가난입니다. 우리 사회의 정신적 가난은 심각한 수준이에요.”


나는 독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작가이고 싶다


공선옥은 2000년대의 용산을 80년의 광주라고 말한다. 그는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최인훈의 『광장』이 다시 읽히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 작가로서 곤혹스럽고, 공허한 말들이 난무하는 현실이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여전히 한국 작가들에겐 시대의 무게가 무겁다. 우리 사회가 좀더 민주화되고 사회 곳곳에 지성이 스며들면 작가들도 좀더 자유로워지리라.

“아직 저는 우리 사회가 지적인 사회가 못 된다고 생각해요. 물적인 사회지요. 사회에 대한 책임은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몫입니다. 사람들의 결정이 모여 사회가 구성됩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정신적인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출세를 위한 자기 계발, 돈을 벌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인문학 공부가 필요합니다. 인문학 공부가 배운 사람들의 몫이라는 편견이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인문학 공부를 통해 개인에게 지성이 싹트고, 그런 지성들이 사회 전반적으로 스며들게 되는 거지요.”

어떤 독자는 공선옥의 소설을 읽고 그가 그린 현실이 너무 구질구질하다며, 앞으로 이런 소설을 읽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런 독자에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행복한 작가와 행복한 독자만 있는 세상은 오히려 비극에 가깝다. 독자를 행복하게만 만드는 글은 설탕처럼 해롭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는 불화가 있어야 한다. 내 글을 읽고 불편한 사람이 있는 편이 작가로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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