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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하지만 아프다는 말을 반복할 뿐인 하나의 문장

배수아의 「올빼미의 없음」과 오지은의 「푸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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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의 「올빼미의 없음」은, 우리의 애도는 왜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지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 개인적이고 격렬한 소설을 이해한다는 것은 모두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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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너가 말했다. 너는 죽음을 이해하려고 고통스럽게 발버둥쳐서는 안 된다. 그건 소용없는 짓이며, 어차피 인간은 그 누구라도 죽음을 이해할 수는 없을 테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자연과 우주를 향해 시선을 돌리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너는, 지금은 충분히 슬퍼하되, 그리고 추억은 그대로 간직하되, 스스로를 너무 자책하지는 말고, 마침내는 담담히 작별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것이다. 그게 자연이며, 너 또한 자연의 일부이므로.

갑작스럽게, 누군가를, 그것도 사랑했던 누군가를 잃어버렸을 때, 사람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그 때문에 고통받으며, 또한 이상하게도 그 고통과는 무관하게,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눈물을 흘린다. 눈물은 슬픔의 형식일 뿐이며 고통의, 떨어져버린 껍질에 불과하다. 눈물은 자연의 일부이고, 나무의 등걸과 같은 것이며, 일기장에 적힌 문자들, 말하자면 무의미하게 분리되는 자음과 모음 같은 것이랄 수 있으니 흐르는 눈물에 대고 그 이유를 물을 수는 없고, 이유를 물을 수 없다는 그 사실이 다시 고통을 불러일으킨다. 베르너의 말은 흘러내리는 눈물과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에게 그 말들은 순전한 형식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나’는 베르너의 말에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그러지 않겠다. 나는 다시 한번 더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한 생명이 가고, 알고 있는가 베르너, 한 생명이 가고, 그럼으로써 비로소 다음 생명이 오고, 만일 그런 것이 자연이라면 나는 자연 안에서 더 이상 평화로울 수 없다. 이 말, 한 생명이 가고, 그것에는 우주 전체의 구원과 모든 종교의 진리를 전부 합한 것보다 더 커다란 무게와 의미가 있다. 세상의 종말보다 더 압도적인 아픔과 무너짐이 있다. 측정할 수 없는 상실과 무한한 슬픔의 구덩이에 놓임을 의미한다. 바로 여기에 우리 육신의 비극과 개체의 절대적 절망이 똬리 튼다. 위대한 절대자인 자연은 우리를, 대기 중에 씨를 뿌리기 위해서 태어나는 식물과 한 치도 다름없이, 오직 전체 안에 자리한 일부, 대자연의 생태를 위한 하나의 단위로만 파악할 뿐이다. 나는 자연을 사랑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앞으로 온 마음을 다해 그것을 고통으로 느낄 것이고, 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저주를 내리겠다.

모든 애도는 결국 형식적일 뿐이다

애도란 뭔가를 떠나보내는 일이다. 한때 존재했었던 어떤 생명이 마지막 숨을 내뿜고 사라질 때, 우리는 그를 애도한다. 애도는 오로지 형식으로만 구성된다. 매장이나 화장의 형식, 혹은 눈물이나 회고의 형식. 하지만 그 형식의 속은 텅 비어 있다. 그 형식에는 아무런 내용이 없다. 그리하여 죽음이라는 이 막대한 단절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애도하지만, 그 순간에도 나는 텅 빈 공간을 보게 된다. 거기 텅 빈 공간이 있다. 애도는 어떤 이가 막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을 말하지만, 그 행위 자체는 사라진 그 자리에 사라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애도는 불가능하다. 사랑했던 사람이 죽고 난 뒤에 우리는 구슬프게 애도하지만, 그 일을 통해서 결국 우리는 텅 빈 공간을 보게 될 뿐이다. 그 공간에는 사라짐, 없음, 무(無)가 자리 잡고 영영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의 애도는 헛수고로 돌아간다. 우리는 그와 영영 작별할 수 없다.

배수아의 「올빼미의 없음」(『문학동네』 2009년 여름호에 수록)은 바로 이 과정, 즉 우리의 애도는 왜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지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 개인적이고 격렬한 소설을 이해한다는 것은 모두 거짓말이다. 이 소설은 자연을 향한 압도적인 분노이자 인생에 대한 가장 과격한 저항이다. 거기 사랑했던 사람이 죽고 나면, 그는 우리에게 부재하게 되지만, 또한 그는 그 부재로 우리에게 존재하리라. 그게 바로, 없음으로 존재한다는 의미다. 누군가의 없음을 말하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다. 그 사람은 지금 그의 없음을 보고 있기 때문에.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라는 말은 무의미한 음절들에 불과하다. 이 소설 앞에서는 이런 말들도 모두 허망한 얘기다. 우리는 마음을 담아서 그 사람을 위로할 수 없다. 오직 형식적으로만, 아무런 내용도 뜻도 없는 허망한 말들로만 그 사람을 위로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위로가 그 사람에게 가 닿을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다시 모든 애도는 불가능하다.

이 없음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함께 울어주는 일뿐이다. 그 눈물에는 아무런 논리도 이유도 의미도 없다. 그건 그냥 눈에서 솟구쳐 흘러내리는 물방울들일 뿐이다. 올해 들어 나는 몇 번의 죽음을 목격했다. 나는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 눈물의 의미를 설명할 수 없었다. 때로 그 눈물마저도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그건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생리 작용에 불과한 듯 보였다. 나는 나의 눈물을 이해할 수 없었다. 또 나는 그 눈물들이 너무 값싼 것이고, 더군다나 제풀에 겨운 감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눈물이었다. 「올빼미의 없음」을 구성하는 모든 글자들 역시, 그처럼 무의미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나는 밤에 잠들지 못하고 이 소설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한국어라는 걸 알지만, 굳이 한국어로 쓰이지 않았다고 해도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읽어도 나로서는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건 다음과 같은 한 문장뿐이었다.

사람은 아프며,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을 겪은 다음이라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불안과 고독을 느끼고, 그리하여 스스로 깊은 우울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며, 그것은 원인으로 다가가기가 두려운 우울이므로 치유가 불가능하고, 일생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일을 하며, 당연하게도 미친 듯이 일을 하며, 그런 다음 자신이 해놓은 일이 모두 아무 소용없는 것으로 판명날 것임을 깨닫게 되고, 어떤 날 이후부터는 오직 종이와 필체의 산더미에 지나지 않게 될 것임을 깨닫게 되고, 그런 자신의 필체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조차 언젠가는 모두 떠날 것이며, 그리하여 남몰래 좌절한 채 그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는 개인적이고 불명확한 좌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에 몰두하기 위해 책상으로 다가가고, 어느 날 신문을 펼쳤는데, 다시 친구가 죽고, 친구가 이해할 수 없는 몸짓으로 갑자기 죽고, 함께 차를 마시다가 문득 눈을 들어보니 그 자리에 친구가 없고, 한마디 인사도 남기지 않은 영원한 작별, 비명 없이 베어져나가는 마음, 스스로에게 대답 없는 질문을 던지고, 늘 그렇듯이 여행을 하고, 비행기와 기차를 타며, 때로는 대양과 대륙을 가로지르는 여행을 하고, 비행기의 창 밖으로 하염없이 시선을 돌리며, 그것과 문득 눈이 마주치고, 자주 반복되는 그 행위로 인해 음울의 정서가 가슴에 쌓여가며, 태양이 비치는 드문 날이면 화분을 발코니에 내다놓고, 때로는 농담을 하고 미소도 지으며, 외국으로 이메일을 쓰고 우체국에서 엽서를 부치며, 명랑한 자리에 초대될 때도 있으며, 그리고 글을 쓰며, 친구를 생각하고, 이미 죽은 친구들과 살아 있는 친구들을, 이미 죽은 친구들과 이제 앞으로 죽게 될 친구들을, 이런저런 약속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전시회나 음악회, 극장을 찾아가고, 무엇보다도 책을 읽고, 집에 돌아와서는 일을 시작하기 전 다시 한번 창밖을 바라보며, 눈보라에 대해서 생각하고, 멀리 있는 것을 생각하고,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고, 그 생각을 생각하고, 하루 종일 일을 하며, 잠자리에 들기 전 문득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들었으나 장거리 전화는 연결되지 않고, 그리고 마침내 어느 날, 다시 아프다.

그것 말고는 특별히 전할 내용이 없습니다

오지은의 두 번째 앨범 <지은>에 실린 「푸름」을 듣는 일은 내게 한국천문연구원의 홈페이지(//www.kasi.re.kr)에 있는 ‘해달출몰시각’을 읽는 일과 비슷했다. 거기에는 일출몰, 월출몰, 시민박명, 항해박명, 천문박명 같은 이해할 수 없는 문자들이 적혀 있었다. 6월 1일은 음력 5월 9일. 일출은 5시 13분, 남중은 12시 30분, 일몰은 19시 48분. 월출은 13시 29분, 남중은 19시 36분, 월몰은 1시 6분. 시민박명은 아침 4시 42분, 저녁 20시 18분. 항해박명은 아침 4시 4분, 저녁 20시 56분. 천문박명은 아침 3시 22분, 저녁 21시 39분. 그리고 다시 반복된다. 6월 2일은……. 그 모든 게 예정되어 있다는 듯이 2051년 12월 31일의 자료까지. 그 죽음들이 모두 예정돼 있었다는 듯이. 결국 우리도 모두 죽는다는 듯이. 마치 베르너의 말들처럼. 영원한 것은 그렇게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일 뿐이라는 듯이. 죽음마저도 그 일상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듯이.

사랑이 손에 들어와서 기쁨에 힘껏 잡았더니
사랑이 그만 다 스러져 아픔에 조각만 남았더라.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
사랑들 말하길 시간만이 약이라고.
아픔이 마음에 들어차서 시간의 강으로 흘렸더니
시커먼 강물이 들어와서 내 몸이 검게 타들었다.


사월의 달력이 오월의 달력으로 바뀌고 다시 유월의 달력으로 넘어가는 동안, 달이 두 번 이지러지고 다시 차오르는 동안, 나는 운동용품 매장에 가서 마라톤화를 새로 사서 달리기를 시작했고, 그 달리기를 다시 중단했고, 담배를 끊었다가 나도 모르게 담배를 사서 피웠으며, 몇 권의 책을 읽었고, 더 많은 책들을 읽지 못한 채 바닥에 던져놓았다. 자전거를 타고 오월의 거리를 달려갈 때면 임의 재생으로 설정해놓은 아이팟에서는 록음악과 클래식과 뉴에이지와 헤비메탈이 두서없이 흘러나왔고, 때로 오지은의 이 노래 「푸름」이 흘러나왔다. 그건 아주 오래 전에 들어본 일이 있는 듯한, 혹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노래였고, 나는 오래 전의 일들을 생각하고 또 최근의 일들과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했다. 배수아의 문장과 마찬가지로 나는 그 생각을 생각했다. 노래를 노래하고, 슬픔을 슬퍼하고, 쓴다는 사실에 대해서 쓰는 것처럼.

「올빼미의 없음」은 이렇게 시작한다.

2008년 12월 2일, 빌레펠프 : 오늘은 특별히 전할 만한 소식이 있는 거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집 주변에 서 있던 두 그루의 커다란 전나무가 베어졌고, 크레인에 실려 어디론가 운반되어 가버렸다는 것만은 당신에게 알리고 싶군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아십니까. (……) 그 전나무는 지난여름까지도 인근 숲에서 날아온 올빼미가 매일 저녁 머물다 가는 곳이었습니다. 올빼미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몇 시간이고 나를 지켜보며 가만히 있었고, 나는 내 구형 필름카메라로 그것을 찍었지요. 당신은 그 사진을 매우 좋아하였고, 그래서 나도 기뻤습니다. 이제 올빼미는 이곳에 다시는 오지 않겠지요. 그것 말고는 오늘은 특별히 전할 만한 다른 내용은 없습니다.

올빼미는 이제 이곳에 다시는 오지 않는다. 그것 말고는 특별히 전할 만한 다른 내용은 없다. 거기에 아무런 내용은 없다. 그저 반복해서 쓸 뿐이며, 마침표를 찍는 게 두려워서 끝없는 쉼표와 접속사로 계속 잇대어 아무런 내용도 없는 문장을 쓸 뿐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마침표를 찍는 시간은 찾아온다. 한 문장은 아무리 길어도 결국 끝나게 되고, 그 수많은 자음과 모음은 아무런 내용도 없는, 그저 아프다는 말을 할 뿐인, 아주 오래 전에 이미 읽었던 것과 비슷하고 또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 읽게 될 것과 비슷한 한 문장일 뿐이다. 그 기나긴, 하지만 아프다는 말을 반복할 뿐인 하나의 문장이 마침내 끝나게 되면, 우리가 알게 되는 건 다음과 같은 것이리라.

나는 베르너의 카메라를 통해 네 모습을 보려고 한다. 마지막 순간 빛이 세차게 네 얼굴에 쏟아졌고, 그러자 네 얼굴은 빛 속에서 빛보다 밝은 색채가 되어 그대로 사라졌다. 두 개의 꿈속에서, 한 사람이 가고 있다. 나는 그 안을 응시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볼 수가 없다. 단지 그것이 이곳을 지나가고 있음을 느낄 뿐이다.

나 역시 그것이 이곳을 지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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