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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강연회] 『고민하는 힘』 강상중 도쿄대 교수

희망은 공동의 것이고, 공적인 것, 이를 위해 고민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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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힘』의 저자 도쿄대 강상중 교수 강연회가 지난 5일 건국대학교 새천년관에서 열렸다. 강연 주제는 ‘고민의 시대를 건너는 법’.

온 사방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익숙한 노래 가사. 그래, 어린이날이니까. 마땅히 즐겁고 신나야 할 그런 날. 그런데 그날 ‘고민’을 품은 강연이 열렸다.

 

고민? 아니, 이 좋은, 좋아야 할 날, 생뚱맞게 뭔 고민, 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법도 하다만, 정작 나는 아이들이 걱정이 됐다. 고민이 됐다. 지금-여기의 우리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 때문에. 아이들에게 빌린 세상인데, 이렇게 쑤셔놨으니. 지금은 말하자면, 그렇다. 어린이날에도 고민이 필요한, 고민의 시대. 하긴 고민 없는 시대가 있었겠냐마는.

『고민하는 힘』의 저자 도쿄대 강상중 교수 강연회가 지난 5일 건국대학교 새천년관에서 열렸다. 강연 주제는 ‘고민의 시대를 건너는 법’.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를 비롯해, ‘고민하는 힘’을, ‘고민의 시대를 건너는 법’을 체득하기 위한 사람들의 열기가 강당을 메웠다.

다시, 어머니를 생각하다


재일동포로서 살아온 가족사부터 꺼낸 강 교수는 3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사무침을 토로했다. 많은 재일동포가 어머니 콤플렉스를 갖고 있단다. 그가 자랄 당시, 재일동포 남자들 대부분이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해 여자들이 가족을 이끌다시피 했기 때문이라고. 그런 애틋함이 뒤범벅된 채, 강 교수는 지금에야 어머니를 ‘여성’으로서 생각하게 됐다.

“어머니로서뿐 아니라 여성으로서 행복했을까를 생각한다. 1941년, 16살에 일본에 건너오신 어머니는 80살로 돌아가실 때까지 일본에서 사셨다. (에릭) 홉스봄이 극단의 세기로 규정한 20세기를 사신 것이다. 그런 극단의 세기를 사셨지만, 연세를 드시면서 어머니가 행복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와 어머니는 문자로 소통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글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강 교수는 한 번씩 상상을 한다. 문자를 모르는 채로 사는 세상을. “사람은 기억하는 동시에 망각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잊어버리기 때문에 기억하는 것이 더 중요했고, 기억하기 위해 문자가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망각하는 게 불가능하셨다. 문자를 몰라서 모든 것을 기억하셨고,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되셨다. 지금 생각하면 반 노이로제 상태가 아니었을까 싶다. 어머니는 어떤 사건이나 사안이 일어난 며칠까지를 정확히 기억하셨다.”

강 교수는 그런 어머니가 지녔을 법한 노이로제의 근간을 불안으로 해석했다. 강 교수 앞의 아이를 한 명 잃었기 때문에 생기는. 그 때문에 매년 무당을 불러 굿을 할 정도로 어머니는 샤머니즘적인 요소를 갖고 있었는데, 그는 그것이 카타르시스(정화) 작용을 했을 거라고 봤다. 시대적, 사회적으로 힘든 상태에서 완전하게 노이로제에 빠지지 않은 것이 그런 전통을 통해 자신을 치유해온 것이 아닌가 하는 것. “어머니는 고민의 바다를 품고 있었기 때문에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가 줄어들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p.15)

그는 또 자연의 시간, 음력의 시간에 맞춰 생태적 삶을 살아온 어머니의 삶에 대해 경배했다. “어머니는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이건 ‘아직도 넌 어린애’라는 생각을 담아 놀리신 것. 지식은 있는데 지혜는 없음을 지적하신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옳은 말씀이다. 그렇게 재일동포 1세들은 전통이나 자연에 연결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책에 나온 이 말. “괴테의 『파우스트』에 ‘악마는 늙은이다. 따라서 늙은이가 되지 않으면 악마의 말을 알 수 없어.’라는 말이 나오는데 매우 의미가 깊은 말입니다. 젊은이의 얕은 지혜는 노인의 성숙한 지혜를 넘어설 수 없겠지요.”(p.66)

스스로 목숨 끊는 사회

강 교수는 곧, 지금의 시대를 꺼낸다. 어머니의 전통적, 생태적 시간과 격리된. 그리고 화두를 던진다. “왜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최근 잇따라 듣고 되고야 마는 어떤 우울한 소식들이 떠올랐다. 20대와 30대 사망 원인 가운데 1위라는 그것. 불명예스럽게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1~2위를 다투는)이라는 자살률. 스스로 죽음과 대면하고자 하는 순간에서도 혼자임을 견딜 수 없어서인지, ‘동반’을 택한 어떤 사람들. 채무자를 협박해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만드는 어떤 작자들. 이건 정말 아니지 않은가.

분명하건대, 이건 ‘스스로 자(自)’를 쓴다고 개인의 문제로 국한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미 사회문제다. 강 교수는 분명히 지적한다. “현재 일본에서는 올 들어 3월 현재 4,000여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국도 일본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10만 명 중 스물 몇 명이 목숨을 끊는다고 봤다. 일본에서도 이것은 중요한 사회문제다. 지난 1998년 이후 급격히 자살률이 증가하고 있다. 매년 3만 수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10년 새 30만 명이 죽었다. 한국에서 이 정도 규모면 어느 도시인지 생각해 보라. 굉장히 큰 숫자다. 또 이 숫자의 열배 이상이 미수나 생각을 해 본 사람이 아닐까.”

문제 제기다. 지금의 시대가 예전 시대보다 편하고 살기 좋아졌다고 말하지만, 정녕 그런가. “어머니의 시대는 힘들고 불안하고 노이로제가 심한 시대였지만, 전통의 힘을 빌려 살아나갈 힘을 스스로 복원하곤 했다. 그런 면에서 카운슬링이나 상담 같은 것을 받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일본에서는 젊은 사람이 노이로제에 걸리면 많은 약을 복용하도록 처방한다. <자살과 우울증>이라는 일본의 TV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그 많은 약을 복용하면서 상태가 악화된 사례를 수도 없이 봤다. 제약회사, 의사, 약국 등의 이해공동체가 만들어 낸 것이다.”

아니, 이상하지 않은가. 정이 많은 사회라고 일컬어지던 한국이나 일본이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율이 높다니. “자살 원인을 보면 물론 가장 큰 것이 경제적 요인이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경제적 요인으로 인해 희망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즉, 희망이라는 말을 잃어가고 있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류가 그랬다. 일본에는 모든 것이 있는데 단 하나 없는 것이, 희망이라고. 오죽하면 도쿄대에 ‘희망학과’가 생겼겠나. 사실 어떤 학문이든 전제는 희망이었다. 그러나 지금 봐라. 경제학은 금융공학 등 탐욕을 확장하고, 정치학은 파워게임의 논리를 제공하는 학문이 됐다. 누구도 희망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다시 어머니의 시대. 행복과 희망의 엇갈림. “어머니의 시대는 괴롭고 어려운 일 많았지만 희망을 갖고 있었다. 행복하지 않아도 희망이 있었는데, 지금은 행복해도 희망 없는 경우가 아닐까. 돈도 있고 가족도 단란하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먹을 수 있고, 가고 싶은 데가 있으면 가서 행복하다. 그런데 희망이 없다. 한국에 처음 왔던 1970년대는 한국 사회는 어두운 암흑이었다. 그래도 한국 사회에 희망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3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선진국 문턱에 와 있다고 한다. 그런데 희망이 있다면, 젊은 사람들은 왜 자살하겠는가. 경제적 요인도 크겠지만, 그게 분명 다는 아니다.”

책도 그렇게 묻고 있었다. 물질적 풍요로움의 한편에 빈 공간. 시장경제의 탈을 쓰고 맹목적으로 휘둘렀던 신자유주의 검투사가 불러온 어떤 지옥도. “자유가 확대되었다고 하지만 그에 어울리는 행복을 느끼고 맛보며 살고 있습니까? 만족감과 안도감을 맛보고 있습니까? 근래에 행복지수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고, 오히려 늘 여유가 없이 서두르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또한 건조하고 살벌한 분위기로 바뀌고 있습니다.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는 공동체가 지닌 목가적 연결이 해체되고 있는 시장경제를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말을 빌려 ‘악마의 맷돌’이라고 불렀습니다.”(p.17)

희망은 개인을 넘어 사회의 것으로

강 교수가 이번 책을 통해 강조하고 싶었던 것. “행복은 사적인 것이지만, 희망은 다 함께 나눠 갖는 것임을 말하고 싶었다.” 어머니 시대가 가진 전통이 사라지고, 시장경제라는 틀에 의해 인간 사이의 유대 관계가 산산조각 난 지금에 필요한 것.

“한국은 일본 이상으로 아주 짧은 시기에 앞만 보고 달려 왔기 때문에 고민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세계 경제는 붕괴 직전이다. 회생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일본에서는 최근 자살률이 높아지는데 한국에서도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한?일은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면서도 내부적으로 이런 면에서는 비슷한 문제를 껴안고 있다. 일본은 최근 한 NPO단체 등을 통해 자살이 사회문제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생각해 봐라. 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10~20명 주변에서 슬픔을 느낀다. 최근 10년 동안 일본서 30만 명이 그랬다고 생각하면 600만 명 이상이 슬픔에 잠겨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통계가 정확하게 나와 있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그런 일이 있어도, 세상에 대놓고 얘기 못하지 않는가 말이다.”


지금 일본도 비정규직 고용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1억2,000만 인구 가운데 1할 가량이 연 수입 200만 엔 이하의 비정규직이란다. 그들은 맥도날드나 PC방에서 잠을 잔다. 결국 국가나 기업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아니, 우리는 더 심하지 않은가. 일본은 1할이라지만, 우리는 노동인구의 3~4할 이상이 비정규직이 아닌가 싶은데. 그것도 점점 확대되는 추세고. 강 교수는 이런 지적을 한다. “글로벌리즘 하에서 노동력은 쓰고 버리는 것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동의하지 않은가. 당신의 몸뚱아리는 온전히 당신의 것인가. 노동자로서 존엄성을 획득하고 있는가.

“최근 일본에서는 맑스주의 책이 선전하고 있다. 독일에서도 『자본론』이 잘 팔리고 있다고 한다. 젊은이들의 지금과 같은 빈곤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우리 세대로 불안해하고 있다. 일본의 프리터들은 이런 말들을 한다. ‘우리의 미래는 홈리스다. 전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물론 그들이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아이러니로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불안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최근 도쿄의 중심가 아키하바라에서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무차별 살인이 있었단다. 범인은 비정규 고용직의 젊은이였다. “나는 이것을 자살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 1940년 이전이라면 이것은 테러나 다름없다. 왜 이렇게 젊은이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회가 됐는지 모르겠다. 이 책도 젊은이들이 많이 읽어주길 바랐다. 나는 내년이면 환갑이다. 지금까지는 괜찮은 인생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의 젊은이들을 보면, 마냥 그렇지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젊은이들이 30년 뒤 어떻게 살아갈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한?일 양국이 서로 비슷한 면을 공유하면서도 다른 점은 이런 것이다. “일본은 사회운동이 거의 없다. 한국은 지금 촛불시위가 1주년이 됐다. 이 풀뿌리 운동은 정말 획기적인 것이다. 참가한 사람들은 자기 생활이 힘들어도 거기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지 않았나. 일본은 지금 촛불시위를 할 만한 젊은이를 찾기가 힘들다. 행복은 개별적으로 찾아낼 수 있을지 몰라도 희망은 찾을 수가 없다. 희망은 공동의 것이고, 공적인 것이다.”

지금 필요한 건 뭐? 서로가 서로를 받쳐주는 사회적 연대!

지금 세계경제는 왜 붕괴하게 됐을까. 그 숱한 경제이론과 경제학은 뭘 하고 있었단 말인가. “경제학은 의식주 생활부터 시작해서 인간의 삶과 연관된 기본에 대한 이야기”(『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경제를 말하다』)이며, “경제학의 목표가 많은 사람을 좀더 잘 살게 하는 것이라면, 먼저 가난한 이들을 보고 마음 아파할 줄 알아야 한다”(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학 교수) 아닌가 말이다.

강 교수는 역시 희망의 부재를 이야기한다. “아담 스미스가 경제학을 정립할 때는 희망을 항상 생각했다. 도덕적 신뢰와 공감이 시장경제를 지탱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CEO가 퇴직하면서 수억의 퇴직금을 챙겨 나오는 지금의 자본주의에 무슨 희망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신뢰를 강조한다. 타인과 사회에 대한 신뢰. “현재 우리 사회는 안타깝게도 불신의 소굴처럼 됐다. 한?일 모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랑이 서로를 지탱해주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한 신문에서 ‘이왕 죽을 거면 다른 사람에게 폐 끼치지 말고 죽자.’라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 지금 이 시대가 그렇다.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주지 못한다. 오죽하면 신문에 이런 칼럼이 나오겠는가. 사회는 우리가 폐를 끼쳐야 한다. 서로가 힘들 때 지탱해주는 것이 사회다. 어머니가 (그 엄혹한 시절을) 견딜 수 있었던 것도 서로가 서로를 받쳐주는 사회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희망은 사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회를 강하게 만들고 성실하게 살아갈 때 희망이 만들어진다.”


그랬다. 우리의 좌절은, 우리의 절망은 그런 것에 기인하고 있었다. 가난을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아닌, 개인의 능력과 노력, 선택의 문제로 보거나, 성장하면 가난이 절로 해결된다고 믿는 지도자의 철학적 곤궁함 때문이었다. 모든 문제를 개인의 것으로 환원하는 사회적 무책임함. 마가렛 대처의 취임 연설을 떠올려보라. “사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개인뿐이다.” 결국 그것이 신자유주의라는 무시무시한 괴물을 키운 ‘뻘짓’이 아니었을까.

강 교수가 롤모델로 삼았던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의 자본에 대한 이런 태도. “그들은 돈과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p.60) 그리고 신뢰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 “가능한 범위 내에서 돈을 벌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돈을 사용하고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윤리에 대해 고민하면서 자본의 논리 위를 걸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하면 너무 평범할까요?”(p.62)

또 뭐? 여태까지와는 다른 가치관과 삶의 방식!

그렇다면 현 정권에서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어쩌면 당연하게도, 강 교수는 고개를 흔든다. 종전 북한의 6자 회담 참가를 정확하게 예언했던 그였다! “내 판단으로는 이 정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많은 이들이 지금 정부에 대해 기대하지 않는다. 이런 시대에 무엇이 희망을 가져올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2003년 찾아간 아르헨티나에서 찾은 어떤 희망을, 단초를 말해준다. 2000년대 들어 아르헨티나는 경제파탄에 맞닥뜨렸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도탄에 빠져 있었지만 희망이 보였다고 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주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태까지와는 다른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 아르헨티나의 지역운동가를 만나서 얘기를 들었는데, 그는 인간이 희망을 가지기 위해서는 우선 지역(로컬)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또 희망은 크지 않아도 좋고, 첨단이 아니어도 좋다고 했다.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 줄 수 있도록 중규모 기술로 생활 속에서 가능한 것을 만들어나가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글로벌화는 거대한 세탁기다. 한가운데 있는 이는 완벽하게 무풍지대다. 그러나 바깥에 있는 사람은 거대한 힘을 휩쓸리게 된다.”


그래서 생각이 났다. ‘와이퍼’ 특허권 소송에서 거대 자동차 회사 포드를 이긴 발명가이자 교수인 로버트 컨스의 실화를 다룬 영화 <플래시 오브 지니어스>에서 나온 이 말. “이젠 우리는 성품도 바꿔야 해.” 정말 바꿔야 하지 않을까. 이참에. 그리하여, ‘소수의 탐욕에 봉사하는 경제가 아니라, 다수의 생계를 안정시키는 경제 구조’를 만드는 것.

“무엇인가에 홀린 듯이 풍요로움과 발전을 추구하며 끝없이 앞으로 앞으로 돌진해 온 한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지탱해 온 가치나 삶의 방식에 대해 그 뿌리에서부터 반성을 해야 하는 내적 반성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그렇다면 철저하게 ‘고민하고’ 그래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내기를 기원합니다.”(p.9)

또한 완전히 동조할 수밖에 없었던 강 교수의 이런 이야기. “타워팰리스에 살고 있는 사람과 88만원 세대를 어찌 한 국민이라고 할 수 있나. 타워팰리스에 사는 사람에게 88만원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들은 외계인이다.” 빙고. 진즉부터 나는 그랬다. “하나의 국민은 이제 픽션이 됐다. 하나의 국민은 붕괴되기 시작했다. 한 국가 안에 2~3개의 국민이 만들어지고 있다.”

“고민하는 힘이 희망을 만든다”

“고민하는 힘은 희망을 만들어내기 위한 진수라고 생각한다. 나의 어머니는 ‘인간은 고민의 바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늘 고민하셨다. 나는 그 고민이 고민으로 끝나지 않고, 살아가는 힘을 될 수 있음을 배웠다. 지금은 자신의 힘만으로 어쩔 수 없는 거대한 힘에 휘둘리는 시대다. 자신이 어쩔 수 없는 거대한 힘의 의해 자신의 인생이 흐트러진다. 그것이 노이로제다. 그렇기에 ‘큰 것, 빠른 것, 높은 것이 좋은 것이다’를 이제는 바꿔야 한다. 가족 간에 대화도 없고 차가운 냉기만 도는데 연 수입 1000만 엔을 버는 사람과, 부부간에 따뜻한 정이 흐르고 단란한 가정에 연 수입이 200만 엔인 사람 가운데, 누가 행복하겠나. 누가 희망이 있겠나. 그런 가치관이 형성돼 있지 않은 것이 우리가 겪는 괴로움의 근본이다.”

강 교수는 그렇게 고민할 것을 강조했다. 제대로 된 가치관이 아닌, ‘대박’에 쫓기는 사회가 됐기 때문에 우리가 겪고 마는 절망의 한 단면을. 그리고 점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많아지는 현실을. 정부는 그야말로 ‘실격정부’가 아니고 뭔가. 방조죄 정도로는 약하다. 교사죄, 유도죄, 이런 죄명이 필요하다.

“나는 65세에 정년퇴직을 한다. 그 이후의 희망은 농어업이다. 아, 그리고 오토바이 한 대 있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맞다. 그는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싶다고 했다. 아니, 늙어서 노망? 천만에, 늙어서 희망! “그것은 ‘뻔뻔함’입니다. 개조한 오토바이 스타일인 할리 데이비슨에는 단정한 예의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몸체에 앉아 있으면 뻔뻔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좋은 것이지요.”(p.167)


그는 역시 고민의 화두를 던진다. “새 가치관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일본 사회에 던진 이 말은 결국, 우리 사회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조금 나쁜 아버지’ 따위는 이제 그만둡시다. 젊은 사람들은 더 크게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고민을 계속해서 결국 뚫고 나가 뻔뻔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새로운 파괴력이 없으면 지금의 일본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미래도 밝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p.170) 이젠 우리가 고민하고, 뻔뻔하게 역습을 가할 때다. 이젠 구닥다리가 된 신자유주의는 시궁창에 처박아버리고, 찰떡지게 연대할 때다.

그리고선, 이 말이 맞물렸다. 홍상수 감독의 <극장전>의 마지막 대사. “생각을 해야겠다. 생각만이 나를 살릴 수 있어. 죽지 않게 오래 살 수 있도록.” 생각을 고민으로 바꿔도 무방하겠다. 어쩌면, 그것만이 개념을 탑재하지 않은 시대를 돌파하는 법. 고민의 시대를 건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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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힘

<강상중> 저/<이경덕> 역9,9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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